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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26화 (127/225)

126화 종연(終演)

126화 종연(終演)

용봉지회의 마지막은 정말 내 예상한 그대로 흘러갔다. 당연하지만 참가자에도 작은 대진표가 있는데, 그건 비무가 끝날 때마다 계속 바뀌어져 갔다. 승자 넷, 패자 넷의 싸움이 전부 지나고 일단 결승을 제외한 순위는 전부 정해졌다.

- 금목환 勝 대(對) 양초원 敗

- 선우진 勝 대(對) 금월상 敗

승자조의 경기는 이렇게 끝나서, 결승은 나와 선우진의 싸움이었다. 이건 나머지 사람들의 순위전과 오룡을 선정하는 게 끝나고 한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빨리 나온 이유는 참가자들은 피곤하니 한 방에 힘을 쏟아붓는 정면승부를 원한 것이다.

제삼(第三) 금월상

제사(第四) 양초원

제오(第五) 초유열

제육(第六) 팽상문

제칠(第七) 팽차월

제팔(第八) 남궁홍학

“이제 우리는 오룡이 확정이 됐군.”

내가 순위 서열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선우진이었다.

금월상과 선우진의 비무는 선우진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수준 높은 비무였다. 금월상이 여덟 초식만에 끝나긴 했지만 금월상도 충분히 고수라는 걸 증명했다. 선우진이 한 수 위였을 뿐이다.

내 생각에는 초유열하고 선우진하고 싸우면 퍽 좋은 비무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쳐다보고만 있는 건가?”

선우진이 내 대답을 채근했다. 언젠가 말을 걸어올 줄은 알았다. 그렇게나 흥미롭게 쳐다보는데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단지 마땅한 대답이 준비돼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지.”

“기쁘지 않나?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선우진은 자기는 후기지수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남들이 영예라고 하는 걸 굳이 영예가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자칫하면 ‘은원’ 관계가 생기니 말이다.

그러나 선우진 역시 영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에 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딱히 영예롭지는 않아.”

“그렇겠지.”

선우진은 만족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난 그의 웃음을 처음 봤다. 그러던 그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냈다.

“가짜 정파들이 주는 것인데 영예로울 리가 있나!”

나는 갑자기 일어나 외치는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선우진은 나를 뒤돌아 보며 눈을 이글이글 태웠다.

“안 그런가?”

나는 그냥 선우진을 바라봤다. 내가 영예롭지 않은 이유는 오룡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놀란 건 아니다. 천주성이 어떤 집단인지 아니까. 순수한 정파를 표방하며 나왔고, 그 순수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선우진이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필두로 움직이는 정파를 가짜라고 말하는 것이다.

허나 나는 이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몇몇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렇다고 썩은 사람을 안 본 건 아니었다. 내 대답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랬다.

“글쎄.”

“싱겁군.”

선우진은 내 애매한 대답에도 별 달리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질문에 기다, 아니다를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걸로도 충분하다.”

근데 선우진은 혼자 뭔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자기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금목환.”

“왜.”

“난 너와의 비무에서 기권할 거다.”

“왜?”

난 그제야 선우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천주성 역시 황금세가처럼 명성을 드높이려고 나온 것이 아니었던가. 허나 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너한테 질 게 뻔하니까. 그건 천주성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는 완벽하고, 순수해야 한다. 천주성은 그런 곳이다.”

선우진은 갑자기 천주성의 강령을 내게 말했다.

“네가 이번 기수의 으뜸이다. 축하한다.”

선우진은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나갔다. 나는 턱을 괴었다. 천주성. 역시 이해하기 힘든 희한한 집단이었다.

*

숭산 소림사 본단. 그곳에는 녹색 무복과 영웅건을 입은 사람들과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마주 앉아있었다.

법복을 입은 사람들의 상석은 진권이었고, 녹의를 입은 사람들의 상석은 옹진수였다.

“장문인, 이건 정말 진지한 일이라오. 정말 연관이 안 됐다 확신할 수 있겠소?”

“몇 번을 말해야 아나. 내가 그런 짓을 할 필요가 대체 어디있다는 말이야? 내가 바보야?”

옹진수는 소리를 질렀다. 진권 입장에서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적어도 용봉지회가 끝나고 사람이 흩어지기 전에는 이 사건을 마무리 해야 했다.

안 그러면 이번 용봉지회와 소림사에 오점을 중원에 전부 퍼뜨리는 것이니까. 진권이 열 살은 높은 옹진수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도 당연했다.

“···방장님. 굳이 언성은 안 높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공휴가 말했다. 확실히 흥분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같이 배석한 소림사의 조사관들도 진권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옹진수의 주장이 합당하기 때문이었다. 형산파가 대체 무슨 이유로 용봉지회에서 소란을 부리겠는가. 암살을 하려면 조용히 하지. 형산파와 황금세가의 관계가 안 좋은 건 알고 있지만, 단순한 복수심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큼, 내 불당(佛堂)에서 언성 높인 점 사과하겠소. 아무튼 홍문원이라는 놈은 형산파에서도 이상한 놈이었어. 음습하기도 했고 말이야.”

옹진수는 소림사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의기양양해 했다.

허나 진권은 옹진수에 대한 의심을 전부 거둘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옹진수의 태도에 있었다.

원래 옹진수는 형산파를 구파일방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늘 공손했던 사람이었다.

소림의 방장이라고 해도 강호의 배분이 낮으니 개인적으로는 말을 낮춰도 된다고 했지만, 옹진수는 극구 사양하며 스님이라는 말을 꼭 붙이지 않았는가.

근데 지금은 저렇게까지 성을 내면서 나온다라.

“그 뻔뻔한 홍문원은 뭐라고 했기에 나를 겁박하는 거요?”

옹진수가 물었다. 이제는 아예 자신은 결백하다는 걸 깔고 가는 대화법이었다. 진권은 속 보이는 수작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대답은 해줘야 했다.

“당연히 극구 부정하고 있소. 시비가 형산파에서 보내온 명검이라며 받았을 뿐이라고만 했소. 당연히 시비도 형산파에서 같이 온 사람이니까 의심도 안 하고 받아버린 거요.”

“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검사에게 검은 한 몸과 같은 것. 형산이 그 녀석에게 사주한 것보다 그렇게 검을 그렇게 쉽게 바꾸는 게 더 어색한 말이 아니겠소.”

옹진수는 말했다. 진권은 할 말이 없었다. 옹진수에 대한 건 그저 심증일 뿐이었다. 정황 증거는 모두 홍문원을 가리키고 있다.

용봉지회는 거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딱 오룡과 삼봉을 뽑는 구간만 남겨두고 있었다. 정말 정황증거만으로 홍문원을 흉수로 지정해야 하는가.

“형산은 형산파의 명예와 용봉지회의 명예를 뛰어넘어 정파의 명예에 먹칠을 한 홍문원을 파문하고, 이어 참형을 건의하오.”

옹진수가 쐐기를 박았다. 문파에서는 장문인이 곧 법이다. 장문인이 파문했다고 하면, 그 즉시 파문이었다. 이제 홍문원은 형산파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 것이고, 참형을 건의하면서 본인들이 결백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불태우고 있다.

“···알았소. 일단 하산하지 마시오. 폐회 때까지는 어떻게든 처리해볼 것이니.”

“빠르게 부탁합니다. 진권 스님.”

옹진수는 다시 예전의 말투로 돌아갔다. 극단적인 말투의 변화였다. 누가 옹진수의 성격을 불 같다고 했는가. 옹진수는 불과 얼음만을 넘나드는 성격이었다.

옹진수를 비롯해 형산파가 소림사에서 나갔다. 진권을 포함한 소림사의 사람들이 남았다. 그 무거운 정적을 깬 건 진권의 외마디였다.

“썅.”

*

삼봉은 이미 다 정해졌다고 한다. 확실히 참가자 수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우리가 더 오래 걸리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이제 오룡을 정하는 비무도 끝을 보고 있었다. 이미 두 명의 용은 확정됐다.

금월상은 남궁홍학과 싸우고 이겼다. 애초에 남궁홍학과 금월상은 차이가 나서 예상한 바였다.

금월상은 그저 남궁세가가 독수를 썼다는 정보 이외에도, 그 자리에 내가 있었으며 겁박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 비무는 금월상 답지 않은 음험한 흉수들이 범람했다. 도로 치면 결판이 날 것을 도면을 눕혀 몽둥이처럼 쓴 것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릴 정도로 정말 도면으로 쥐어패고, 온 몸이 부러지고 피와 멍이 가득해질 때쯤에야 심판이 중지 선언을 했다.

이례적이게도 대놓고 심판이 정파답지 않은 비무였다며 금월상을 힐난하기도 했다.

그래도 금월상의 표정은 좋았다. 아마 이번 용봉지회에서 가장 흉한 꼴을 보이면서 패배한 건 남궁홍학이었으리라.

“이제야 속이 좀 풀리는구나.”

금월상은 날 보자마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은원을 갚아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네 은원이 내 은원 아니겠느냐.”

그렇게 금월상이 첫 번째로 정해진 용이 됐고, 두 번째는 양초원과 팽상문이었다.

양초원과 팽차월은 격전 끝에 양초원이 이겼다. 팽차월은 별 말 없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돌아오자마자 내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초유열과 팽상문. 당연히 초유열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그렇게 금월상, 양초원, 초유열 삼룡이 정해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나와 선우진의 비무였다. 누가 이겨도 용은 확정이다. 다만 마지막에서 승리한 용에게는 후기지수 중 최강이라는 명예와, 부상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 뿐이다.

옛날이라면 의미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황금세가도 중원에 들어왔으니 이런 것도 중요했다.

당연히 선우진과 내 대기실은 분리됐다. 원래는 대기실에 참가자 외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안 됐지만, 마지막은 관련자들의 입장을 허락해줘서 내 대기실에는 황금세가 사람들이 들어와있었다.

곽진도, 금월상, 금수린, 팽차월. 한유림은 새로 바뀐 삼봉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다고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원에 들어왔구나. 오룡이 둘에 삼봉이 하나 있는 가문이 중원의 무가가 아니라면 어디가 무가겠느냐.”

먼저 말을 건넨 건 곽진도였다. 뭔가 벅차다는 눈빛이었다.

“용봉지회 한 기수에서 세 명을 배출해낸 곳은 이백년 전쯤 화산파 황금기수 이후 처음이라는구나. 과장이 아니라, 황금세가는 중원의 역사를 만들어낸 거다.”

“그런가요.”

“그래. 그때가 매화검존의 배분이었으니까. 아직까지도 중원에서 회자되는 배분에, 황금세가가 나란히 선 것이다.”

그동안 세가를 위해서 동분서주한 곽진도, 힘들었던 형제들, 내가 구해준 팽차월, 모두가 자랑스러운 눈빛이었다.

“그렇죠. 이제 상가가 아닌 어디에서든, 황금세가의 일원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꺼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말했다. 그때 좌우에 서있던 금월상과 금수린이 날 반씩 껴안았다. 갑작스런 포옹이었다.

“대단해. 우리 동생.”

“동생 하나는 잘 뒀지.”

금월상의 목소리는 활발했고, 금수린은 울먹였다. 뭔가 울컥한 모양이다.

물론, 모두들 다 똑같은 마음일 거다. 여기 있는 금화청도 그러리라 난 생각한다.

처음에는 시비들한테도 빌빌거리던 우리들이 이제 중원 한복판에 서있는 거니까.

“마지막 비무요! 황금세가의 금목환 소협, 천주성의 선우진 소협은 나오시오!”

연무장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엄청난 함성이 울렸다. 대기실의 천장도 흔들렸다. 모두가 하나된 함성소리는 내 마음을 들뜨게하기 충분했다.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이 비무는 끝이 나있었다. 선우진은 기권 선언을 할 테니까. 천주성은 거짓말이 없는 집단이다. 난 나가기 전에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정말, 종연(終演)이군요.”

황금세가의 첫 발자취를 같이 한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난 뒤를 돌아 연무장으로 나아갔다. 원래는 선우진이 나와야 할 맞은편은 황량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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