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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35화 (136/225)

135화 뭐 이런 미친 곳이

135화 뭐 이런 미친 곳이

연회. 나도 가끔 연회에 참여해본 적은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래서 내 생각에서 연회란 술이 좀 들어가 흥겨울지언정 정신사납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연회는 시작부터 혼잡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연회는 특정 건물에서 열리는 게 아니라 내원 전체가 연회장이었다. 해남파의 연간 행사처럼 내원을 다 개방하면서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본디 시끄러울 일이 없던 내원에는 뚝딱거리는 소리와 흙먼지가 풀풀 날았다.

“이번에 중명각 도움을 많이 받았어.”

“도움을 주는 게 우리 일이잖아.”

명재희가 말했다. 지금 나는 명재희와 함께 중명각 꼭대기에서 내원의 공사들을 보고 있었다.

“정말 내가 뭐 간섭 안 해도 돼?”

“그럼?”

내 질문에 명재희가 질문으로 되물었다. 난 잠깐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까 나한테 이런 식으로 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긴 했다.

“우리 목환이가 오만한 가주가 다 됐네. 옛날에는 재깍재깍 대답했을 텐데.”

“그런가?”

명재희는 내 대답에 큭큭대며 웃었다. 그녀는 내 등짝을 소리나게 팡팡 쳤다. 소리만 크게 나고 아프지는 않았다.

“당연히 아니지. 오만한 가주면 나 같은 각주 따위가 반말하게 놔두지 않잖아.”

“넌 어릴 때부터 말 놨잖아. 내가 부른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특별하다는 뜻?”

명재희가 머리카락을 뒤로 확 넘겼다. 향긋한 백합 냄새가 머리칼 사이사이에서 풍겨져 나왔다. 내 앞에서만 이렇게 장난을 치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는 안 할 사람이니 내가 허락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그런 고로 난 정확히 말할 수 있었다.

“특별한 거지.”

“쳇, 재미가 없어요. 하긴 넌 극도로 재미없어서 재미있어.”

명재희는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하고 또 쿡쿡 웃어댔다. 난 그녀에게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냥 아무 느낌이 없다. 둔하다.

회귀를 하고 나서는 저렇게 웃어본 적도 없고, 슬퍼본 적도 없다. 그건 저 먼 과거에 묶어두고 왔으니까. 다시 풀어낼 생각도 없었다. 그러면 이렇게 행동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중명각은 굉장히 잘 돌아가고 있는 걸 확인했어.”

“감사합니다, 가주님. 앞으로도 분골쇄신하겠습니다.”

“그래.”

명재희는 농담으로 받았지만, 확실히 명재희의 일처리는 완벽함을 넘어서 있었다.

중명각의 규모, 능력은 놀랍게도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정보부와 비슷한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무인으로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고, 황금세가의 상로를 이용하여 중명각의 사람들을 심어놓은 거다.

정예인 비각과 숫자로 정보를 동냥하는 하오문의 장점을 취합한 방법이었다. 황금세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방법. 그걸 떠올렸다는 것만으로 명재희는 할 일을 다 했다.

심지어 명재희는 각주로 취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매일을 기록했다. 그곳에는 초임 때 겪었던 고초도 많이 적혀있었다.

나이가 많은 부하가 명재희를 무시했던 일, 비슷한 나이대의 부하가 희롱을 하려고 암습을 했던 일, 그 이후에도 수많은 고초들이 있었다.

“고생했네.”

“그래.”

명재희는 일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말이 간결해지고 단순한 버릇이 있다. 그녀 나름의 공과 사를 구분하는 방법일 터다.

“아까 연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답하자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서 그래.”

명재희는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첫째, 이제 황금세가의 이름이 무거워졌어. 가주는 경거망동하면 안 되지.”

“몰래 움직이면?”

“그럼 우리 자존심 상하는 거고. 우리도 명예가 있잖아?”

명재희가 농담하듯 말했다. 명예라. 내 사람들에 대한 명예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그런 거야. 새 집이 이사를 오면 떡을 돌려야 하는 법이잖아.”

난 갸웃했다. 명예 혹은 명성, 이 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명재희의 말을 그대로 들어야 했다.

“이럴 때 큰 연회를 여는 거야. 주변에 우리가 무가가 됐음을 알리는 거지. 우리 세가와 연이 있는 사람들도 초대하고. 그러면 그냥 무가가 아닌, 영향력 있는 무가로 거듭나는 거지.”

명재희는 숨도 차지 않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강서 주변에 있는 모든 문파들에게 초대장을 돌리는 건 물론이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포함한 명가들에게도 돌릴 거야.”

“음.”

명재희의 사고는 나와 비슷했다. 먼저 피아를 구별해야 했다. 나는 용봉지회에서 날 어떤 눈빛으로 보는지 정도로 피아를 식별했지만, 이게 더 확실한 방법이었다.

“또 중요한 건, 남궁세가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아직 몰라서 그걸 확인해봐야 해. 남궁세가가 마교인가, 아니면 남궁세가도 중간에 거쳐 가는 곳인지 밝혀지지 않았잖아.”

“그렇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재희가 아미를 모으면서 내게 검지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내 콧잔등에 그녀의 얇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넌 좀 쉬어야 돼.”

“그런가?”

“이번엔 가만히 있어도 돼. 네가 이루어낸 세가가 얼마나 잘 컸는지 보라고.”

명재희가 자신 있게 말했다. 글쎄. 그래도 되는 걸까. 그녀는 내가 계속 공사판을 바라보고 있자, 내 등을 밀어 중명각 바깥으로 쫓아냈다.

“이제 나 할 거 많으니까, 가.”

“그래.”

“만나서 재밌었다.”

쾅!

중명각주, 명재희의 방문이 닫혔다.

오랜만에 받는 홀대였다.

*

태산의 정기가 흐르는 곳. 철 하나 없이 목제로만 되어 있는 건물은 따스함과 함께 정돈된 느낌을 준다. 밖에서는 회색 법복에 붉은 천을 두른 중들이 권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것을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는 건 소림사의 장문인, 진권과 그의 지낭 공휴였다. 그들 앞에는 자색 비단에 황금빛 수실로 꾸민 초대장을 보고 있었다.

- 강서의 황금세가가 사해동도들을 위해 연회를 엽니다. 먹을 것, 볼 것, 마실 것들을 전부 준비해뒀습니다. 부디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

황금세가 부가주 금월상

황금세가 외원주 금화청

황금세가 내원주 금수린 배상(拜上).

“···허허. 완전 개방이라.”

“황금세가가 움직이는군요.”

하여튼 황금세가는 무서운 곳이었다. 바로 이렇게 이목을 끌어버린다.

모두가 소문으로는 황금세가가 훌륭한 무가가 되었음을 알고, 오대세가를 대놓고 위협할 정도로 큰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화제가 가라앉기 전에 직접 확인할 수 있게끔 세가를 공개한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듯 짜임새 있는 움직임이 아닐 수 없었다.

“형산파를 바로 치는 것도 좋았을 텐데. 형산파에게 준비 할 시간을 주는 것 아닌가?”

“장단이 있는 선택이죠. 형산파를 무너뜨림으로써 납득을 시킬 것이냐, 납득을 시키고 형산파를 무너뜨릴 것이냐의 차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겠지?”

“가야죠. 이제 황금세가와 공존을 생각해야 될 때입니다.”

공휴가 단언했다. 지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예를 내세우며 안 가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이미 황금세가는 화려히 날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면 시대에 뒤쳐짐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안 오는 곳들은 있겠지.”

“그렇겠죠.”

진권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황금세가가 마치 우리한테 강요를 하는 것 같은데.”

좋은 관계로 지낼 테냐, 아니면 불편한 관계로 지낼 테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들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묻는 조직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진권은 격세지감을 느끼며 답서를 작성했다. 당연히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

난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금화청과 명재희는 물론이고, 금월상, 금수린, 곽진도도 내게 뭐 하나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 연회는 모두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내 옆에는 한유림만 떡하니 남기고 말이다. 말이 근위지 사실상 감시였다.

“그렇게 걱정되시나요. 가주님.”

난 본원에서 혼자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한유림이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아니.”

“걱정하는 것 같이 보이셔서 여쭤봤습니다.”

그렇게 내가 보였던가. 한유림은 내가 놓았던 바둑돌 하나를 옆으로 옮겨주었다. 그제야 판이 보였다. 한유림이 바꿔준 수가 아니었다면 흑(黑)의 대마가 잡혔을 거다. 난 장생(長生)을 노리고 있었기에 실착이었다.

“바둑 좀 둬?”

“조금 둘 줄 압니다.”

“그래?”

나는 흑돌과 백돌을 분리해서 판을 깨끗이 만들었다.

“앉아.”

내 맞은편에 한유림이 조신하게 앉았다. 우린 별말 없이 대국을 시작했다. 난 한유림을 바라보면서 대국을 하려 했지만, 한유림은 기다랗게 깔린 속눈썹을 주렴삼아 판만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바둑만큼 머리싸움이 치열하게 요구되는 오락은 없을 터다. 난 냉정하게 수를 둬갔다. 한유림은 내가 착수하면 바로 착수를 했다.

빠른 속도, 실력. 확실히 한유림은 허언을 한 게 아니었다. 도리어 내 전생에서 바둑을 둔 사람을 포함해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착수가 빠른 편이었고, 한유림도 착수가 빨라서 바둑판은 점점 메워졌다. 그렇게 바둑판을 가득 메울 동안 서로 잡은 돌은 다섯 개가 채 넘지 않았다.

종국에 들어서자, 끝내기의 순간이었다. 공격적인 행마를 할까, 내 집에 가일수(加一手)를 해야 하나. 난 집의 안전함을 더하는 가일수를 했다. 그리고 난 놓자마자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일수라고 생각했던 자리가 자충(自充)이었던 것이다. 굉장히 초보적인 실수였다.

한유림과 나는 말없이 공배를 메우며 대국을 마쳤다. 결과는 내 패배였다. 두집 반 차이로 이기고 있던 것을 실수 하나로 반 집 차이로 지게 된 거다.

난 한유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지금 불안한 건가?”

“불안한 거라고 말하긴 좀 그렇네요.”

“그런가? 그럼 뭔데?”

난 잠깐 생각해봤다. 확실히 내가 쉬어본 적은 거의 없다. 물론 형제들과 같이 밥을 먹고 쉬어본 적도 있지만, 이렇게 혼자 쉬었던 적은 없다.

“가족 분들을 너무 아끼시는 거죠.”

한유림이 말했다. 나로서는 생각도 못한 답이었다.

난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모든 걸 제대로 되돌려놓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 와중에 가족을 지키는 것도 해야 할 일이라고 포함됐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가주님이 따뜻한 분이라는 걸요.”

한유림은 계가를 시작했다. 바둑판이 비워 질수록 내 생각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번만큼은 가주님과 저희들께 한 번 맡겨보시지요.”

한유림이 계가를 끝내고 바둑판을 접었다. 착, 하니 접한 소리가 났다.

당장 내일이 연회였다.

*

청진은 홀로 봇짐을 메고 남창 어귀에 섰다. 장문인께서는 남창에 가기만 하면 황금세가가 어딘지 알 터라고 말했고, 그 말마따나 휘황찬란하며 커다란 장원이 한 눈에 띄었다.

“젠장.”

청진이 여기 온 건 당연히 황금세가의 초대장 때문이었다. 장문인이 바쁘다며 에둘러 제자를 보낸 것이지만, 실상은 그냥 품위를 지키고 탐색을 하러 보내는 것이었다.

무당파에서 우선권으로 용봉지회로 나갔던 만큼, 장문인은 청진을 꽤 아껴했는데 끝나고 나니 이런 일을 도맡게 된 것이다.

‘안 돼. 이대로 끝내서는···’

요즘은 아래 배분들의 오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도 간혹 들려오고, 장문인도 관심 갖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면 청진은 순식간에 버려지는 거다. 강호의 생리란 그랬다.

그러나 언제든 기회는 남아있었다. 여기서 본인이 뜻하지 않는 일을 행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완전 개방 행사에는 분명 도둑들이 들어오기 마련이고, 그런 도둑들을 잡고 협행을 하는 동시에 황금세가의 치안을 비판하는 그런 행동. 장문인이 말은 안 했지만 그런 행동을 바라고 보냈을 지도 모른다.

청진은 곧 외원의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외원 안으로 한 발짝 딛자마자 감탄하고 말았다. 별의별 장식들도 모두 진짜 금, 금, 금이었다.

도가의 특성상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청진은 본인이 한 생각도 깡그리 잊어버릴 만큼 황금세가의 풍경을 둘러봤다. 화려하면서도 웅장한데 도통 거만하다는 생각조차 안 들었다. 그야말로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아니다. 지금 내가 뭔 생각을 하냐.’

청진은 고개를 세게 가로젓고 내원으로 향했다. 트집을 잡으려면 행사의 본진인 내원에서 잡아야 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무당파의 사람이니만큼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은 의심하지 않았다.

청진은 걷는다기보다는 사람들에 떠밀려 가는 것처럼 내원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역시 내원은 외원보다 훨씬 화려했다.

“와, 도존이시다!”

“크, 저 멋있는 도 좀 봐!”

그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청진의 귀에 꽂혔다. 도존이라면 하북팽가의 태상가주가 아닌가. 실제로 저 멀리 도존 선배가 껄껄 웃고 있었다.

그래. 황금세가는 이번 용봉지회에서 하북팽가와 친해졌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참석할 정도로 친한 줄은 몰랐다. 청진은 살짝 불편해졌다. 당연하지만, 고수들이 많으면 본인이 할 일이 없어진다. 어른들이 많은데 소란 부리냐고 욕이나 들을 게 뻔하다.

‘그래도 도존이 열 명은 아니니까.’

내원이 이렇게 넓은데, 도존만 피해 가면 충분했다. 아직 여유롭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던 청진의 귀에 창을 닮은 목소리들이 팍팍 꽂혔다.

“검존님도 오셨군.”

“무림맹주?”

“저 분은 소림사 방장 아니야?”

“해남파 장문인이다.”

“팽가 가주님도 오셨군.”

“허, 종남파 장로도 오셨군. 종남과도 연이 있던가?”

“···헉! 약선님이시다!”

‘···’

청진은 문득 멈췄다. 뒤에서 빨리 가라는 아우성이 들리고 몸이 밀쳐졌다. 청진의 몸은 끈이 떨어진 연처럼 나부끼고, 머리는 계획들이 지워진 백지가 펄럭이고 있었다.

‘···젠장, 뭐 이런 미친 곳이 다 있어?’

청진은 속으로 울부짖으며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안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게 됐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도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사람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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