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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37화 (138/225)

137화 하나도 포기하기 싫어졌습니다

137화 하나도 포기하기 싫어졌습니다

강호에 커다란 강풍이 불었다. 중원에 이름이 드높은 형산파가 마교의 문파라는 것이다.

이러한 음해는 사실 정파끼리 많이 벌어지는 것이기는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음해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사람들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그 이유는 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방을 붙이는 건 중소문파들끼리나 이러지 형산파 같은 거대문파는 이러지 않는다. 명예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전 중원에 뿌렸다는 이야기다. 첫째와 이어지는 이유로, 중원에 방을 붙일 필요가 없는 규모의 문파들끼리 싸우는 방법이니 그럴 필요도 없고, 중원에 방을 뿌릴 정도의 능력도 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셋째, 단순한 음해가 아닌 명백한 증거가 동반되어 있다는 점이다. 형산에서 전신의 피부가 보라색으로 물든 시체들이 발견되었다는 거다. 보라색 시체는 마공에 절어서 당했다는 뜻이었다.

또한 형산에서 마교의 교리를 담은 천마신서(天魔神書)를 발견한 호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여기다가, 거의 동시에 소림사 조사 결과가 나왔다. 용봉지회 때의 소란은 마교에 의해서 벌어진 게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용봉지회의 소란 역시 형산파가 끼어있는 부분이 아닌가. 형산파가 집중의 대상이 된 건 분명했다.

물론, 이렇게 갑작스럽게 퍼진 증거를 의심하는 몇몇도 있었다.

다만 확실한 건, 저 마교라는 증거들만큼은 진짜라는 거다. 형산파를 없애려는 집단이든, 형산파든 마교에 관련되었을 확률은 높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그 중원에 붙은 방을 봤다. 솔직히 남궁세가가 무슨 반응을 할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놓고 버릴 줄은 몰랐다.

“간단하면서도 정밀한 술책이네요.”

“그렇지. 마교 놈들은 이런 수법을 좋아하나봐. 어둠에 숨어서 이간질을 시키거나, 서서히 무너뜨리는 것.”

마교는 내가 구획 지어놓은 황금세가와 형산파의 대결 구도를 이용한 것이었다. 억지로 도화선에 불을 붙임으로써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강제했다.

그 목적은 뻔했다. 형산파를 빠르게 버리고 발을 빼려는 것이다.

형산파가 뒤늦게 남궁세가와 결탁을 했다고 외치고 다닌들 마교라는 의심을 받는 곳을 누가 믿겠는가. 그것도 오대세가의 수위에 있는 남궁세가를 말이다.

“웃기는구나. 남궁세가가 우리를 움직인 셈이 아니더냐.”

“그런가요. 그래도 형산파는 저희가 쳐야하니까요. 그건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다. 저들 뜻대로 움직여주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지.”

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아, 그런데 이것은 내가 많이 듣던 논리가 아니던가. 무형의 명예. 전략에 걸려든다는 건 불명예다. 자부심을 깎아먹는 일이라는 거였다.

“네가 없는 황금세가는 공성(空城)이라 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생각이 되는 걸까. 난 그렇게 생각 안했지만, 금화청은 그런 것 같았다. 금화청은 침으로 종이들을 넘기며 큭큭 웃었다.

“조금이라도 막히면 꼬리를 자르려는 정도의 지능을 가진 놈들이, 우리에게 술책을 건다라.”

그러고 보니 금화청이 웃는 모습은 잘 못 본 것 같았다. 물론 그 웃음은 유쾌한 웃음이 아닌, 비틀린 웃음이었지만 말이다.

“같잖지 않느냐?”

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 대전을 나왔다. 대전에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본다. 언제 연회가 열렸냐는 듯 깔끔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전운을 감지한 동물들처럼 조용하다.

나는 총 점검차 둘러보고 있는 셈이었다.

일단 형제들이 담당하고 있는 게 많으니, 먼저 그들과 대화를 나눴어야 했다. 그 중 금화청은 맨 마지막이었고.

공통적으로,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모습들을 보여줬다.

금월상은 당장이라도 선봉에 세워달라고 눈을 불태웠고, 금수린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황금세가로 적이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절대 안 뚫릴 진법이라고 확언까지 했다. 금화청도 방금 본 대로였다.

난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꺼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름 아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호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황금세가라는 곳을 지키기 위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난 문득 깨달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황금세가는 단순히 남창에 있는 장원이 아니었다. 그저 ‘세가’라는 무언가인 거다. 그건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며, 불러서 답이 오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정파인들이 말하는 명예란 이런 것이었다.

난 더 이상 순찰을 돌지 않았다. 다른 모든 곳도 준비가 끝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난 금정원으로 향했다. 내원에서 가장 높은 곳. 황금세가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지. 난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 지붕 위에 섰다.

확실히 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대형들은 물샐틈 없고 진법들은 작동되고 있으며, 시종들은 지하에 모여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난 문득 입을 열었다.

“신기하군요.”

“신기하냐?”

곽진도가 말했다. 하긴 금정원은 사실상 곽진도의 거처. 내가 지붕을 올라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었다. 아마 나인 걸 알고 올라온 것일 테다.

곽진도는 스리슬쩍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지금 금정원 지붕에 나란히 있었다. 외원까지 탁 트인 시야가 널찍했다.

“이 멋진 경치들을 간자들이 빼앗고 있었군요.”

“난데없이 옛날 얘기냐? 뭐, 그랬었지.”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제 생각보다 제가 뺏긴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곽진도는 그냥 머리를 돌렸다. 가끔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 나오는 태도였다.

노을에 비쳐 빛나는 병장기들이 수확철의 벼들을 보는 것 같았다. 내원과 외원의 벽을 따라 쭉 사람들이 둘러쳐져 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좋네요.”

내 말에 곽진도가 날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한테 그런 감정적인 단어가 나온 건 처음이구나.”

“좋다라는 단어는 많이 쓴 것 같은데요.”

“그 좋다는 동의의 좋다고, 이건 감정의 좋다지. 명백히 다른 얘기야.”

예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이런 지적들이 겹친다는 걸 난 의식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듣지 않았을 뿐, 아주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부터 왜 지적을 받는지 알게 되었다.

“맞죠.”

“웬일이냐. 시치미를 안 떼고.”

“부끄러워서 모른 척 했습니다.”

내 말에 곽진도가 살짝 멍하더니,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주변에서 경계하던 무인들까지 금정원 쪽을 바라볼 지경이었다. 곽진도는 내가 무공의 경지를 뛰어넘는 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시지요. 특히 가족들. 스승님이라 믿고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참으로 귀염성 많은 녀석이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내 감정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솔직한 거다. 근데 그런 음해까지는 인정할 수 없었다.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 말투는 어찌하지 못하는 거냐?”

“입에 붙은 건 뗄 수 없습니다.”

곽진도는 입맛을 다시면서 아쉬워했다. 어째 형산파가 쳐들어오는 것보다 내 말투가 더 신경 쓰이는 듯하다.

“그래, 뭔데? 말해 보거라.”

“아버지와는 어찌 그렇게 친해지신 겁니까?”

내 물음에 곽진도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는 곧 나지막하게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구나.”

“혹여 말하기 힘든 사정이 있으시다면 안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 반대다. 널리널리 퍼뜨려서 알리고 싶은데, 남들이 곡해할까봐 입을 닫고 있었을 뿐이다.”

곽진도의 대답도 내게는 뜻밖이었다. 나는 그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소리로 변하는 순간 곡해가 되는 성질의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래. 그런 거다. 네가 부끄럼쟁이인 것처럼 말이야.”

나는 납득하고 다시 황금세가의 전경을 바라봤다. 저 대전에는 금월상, 금화청, 금수린이··· 아니, 큰형님과 둘째형님, 누님이 있을 거다. 그들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휘하는 사람들이니까.

“스승님.”

“왜?”

“제가 지켜왔던 것들, 하나도 포기하기 싫어졌습니다.”

스승님이 다시 얼굴을 앞으로 돌렸다가, 갑자기 경악한 눈빛으로 내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방축귀매신법이 극성으로 발휘되면, 스승님 같은 초절정 고수도 내 자취를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는, 내가 세가 바깥의 담장을 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난장판. 방은 그것으로밖에 표현이 안 됐다. 찢어질 수 있는 건 찢어져 있고, 부서질 수 있는 건 부서져 있고, 깨질 수 있는 건 깨져있다. 건물의 대들보와 기둥만이 유일하게 방에서 온전한 것이었다.

그렇게 남궁세가에 날렸던 매들은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예 죽여서 불태운 게 분명했다.

간단하게 남궁세가가 마교인 걸까. 아니면 심계가 뛰어나 보이는 황금세가가 이중으로 함정을 친 걸까? 아니면 둘 다? 당장 옹진수가 가진 정보로는 죽어도 답을 낼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둘 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녀석들이라는 거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옹진수의 공허한 물음이 방을 떠돌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부러 장문인실에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주화입마의 영향인지, 천성인지 간언을 한 제자의 목을 일검에 베어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말이야. 응?”

옹진수는 검을 꺼내봤다. 칼날에 비춰지는 모습은 추레하기 짝이 없었다. 검버섯이 성성이 나있는 얼굴과 축 쳐진 눈매, 이제는 머리보다 높게 솟아오른 등과 날갯죽지까지, 어느 하나 납득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남악검군이라는 별호로 강남 지방을 호령했으며, 형산파가 구파일방 문턱까지 들어섰던 그 영광과 설렘이 어쩌다 이렇게 변했다는 말인가.

옹진수는 칼을 내팽개쳤다. 칼은 비장하게 꽂히기는커녕 바닥을 쓸며 먼지만 가득 뒤집어쓴 채로 휘휘 돌다 초라하게 멈췄다.

“대답을 해보거라.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말이야.”

옹진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나지막해졌다. 마치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의 앞에는 녹색의 기둥만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멀뚱히 서있었다.

“대답을 해보거라.”

쿵!

옹진수가 머리를 부딪쳤다. 이마가 찢어져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그 이후 머리와 기둥이 부딪치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옹진수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대답을! 해보거라! 대답을!”

쾅! 쾅! 쾅!

더 긴박해진 소리와 함께 옹진수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머리와 기둥이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의 메아리가 어우러져 투박한 소리가 퍼졌다.

그러던 옹진수는 번뜩 머리를 떼고 검지를 폈다. 뭔가 깨달은 눈빛이었다. 옹진수는 호탕하게 외쳤다.

“둘 다 죽여 버리면 그 답을 알겠구나! 이렇게 고민할 것이 아니었다!”

옹진수는 바로 장문인실을 빠져 나가 이 엄청난 판단을 자랑스레 알려주려고 했다. 적은 지금 형산파가 한참 위축되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줄이 묶여있는 줄 알았던 호랑이가 갑자기 뛰쳐나오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웃음을 만개하고 달려가던 옹진수는 다리가 휘청거려 넘어지고 말았다. 내공도 안 쓴 채에서 머리를 그렇게 박아대니 피가 많이 빠져나간 것이다.

“···하하.”

옹진수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들었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피가 철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손바닥은 끈적하니 점도 있는 피가 걸쭉하게 떨어졌다.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해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또렷하게 각인됐다.

사실 옹진수도 알고 있었다. 본인이 현재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평소 성격보다도 쉽게 분노하고, 도저히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곧잘 찾아왔다. 주화입마 때문인 것일까?

당장 가까운 황금세가부터 가야 했다. 어느 한 놈의 수급이라도 보지 않으면 더 심해질 것이었다.

일 각 이후, 형산파에서 모든 전력이 빠져나왔다. 장문인의 대명이었다.

기습 공격. 사람들은 전혀 이 때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옹진수는 그렇게 믿고 앞장서 달려나갔다.

그리고 뒤 이어 녹색 무복과 녹색 건을 둘렀지만, 본대와 명백히 떨어져 있는 일단의 무리들도 형산을 빠져나갔다. 분명 형산의 보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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