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네놈들이 망쳐놓은 꼴을
156화 네놈들이 망쳐놓은 꼴을
목송은 청진에게 황금세가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청지. 섬서 근방에 있는 온천이 아닌가.
그들은 분명히 진권의 서한도 받았을 거고, 무당파 장문인의 서한도 받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부리면서 휴식을 하고 있는 거다.
“엄청난 위세군.”
목송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황금세가의 가주가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인 건 인정한다. 지금 그는 황금세가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고, 그걸 저울질하는 거였다. 상계다운 천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자.”
명문의 장로급이 열 명 남짓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섬서에서 명문들을 지탄하던 사람들도 그들 무리는 건드리지 못했다.
“···저 사람들 어디로 가는 거지?”
“하나, 둘, 셋··· 개방에서 매듭이 일곱 개면 뭐더라?”
“야, 야. 눈 피해. 눈빛 한 번 사납네.”
모두 매듭을 많이 달고 있는 장로들. 거기다가 더해 흉흉한 표정까지. 자칫 잘못 건드리다가 바로 핏물 한 줌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섬서를 압도해가며 화청지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섬서에서 여산(驪山)으로 가는 어귀에 이상한 팻말이 있었다.
- 금일 화청지는 황금세가가 대여함. 관련인 외 출입금지.
“아주 지랄들을 하는군.”
어쩐지 유명한 온천인 여산으로 가는 길목에 사람이 별로 없더라니. 그나저나 그렇게 커다란 온천 전체를 빌렸다는 건가. 얼마인지 감도 안 잡힌다.
목송도 화청지에 가본 적이 있다. 당연히 물은 뜨끈하니 좋았고, 중원의 도원향이라고 불릴만한 곳이었다. 다만 약간의 단점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거.
그런데 이 황금세가 놈들은 오만하게도 전체를 대여해 마음껏 놀고 있다니. 목송은 심사가 꼬일대로 꼬였다.
곧 목송과 장로들은 화청지에 도착했다. 화청지 정문에는 어린 시동이 바깥을 쓸고 있었다.
“여봐라! 지금 안에 황금세가 사람들이 있는가?”
“···네?”
시동은 입만 벙긋거리며 그 이후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근골이 장대한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로 물으니 자연스럽게 굳어버린 거다.
“황금세가 사람들이 있냐고 물었다.”
목송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시동은 그제야 떨리는 목소리나마 낼 수 있었다.
“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용 못하십니다.”
“아니, 우리는 화청지에 관심있는 게 아니라, 황금세가 사람들한테 볼 일이 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분명 청진이 한 번 들어갔다 나왔다고 했으니, 그들이라고 못 들어갈 건 없었다. 시동은 빗자루를 벽에 기대어 놓고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청지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만 감상하던 사람들이 지루해져서 볼멘소리를 내뱉을 때즈음, 시동이 차분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목송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그러나 시동의 답변은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아뇨. 거절하셨습니다.”
“뭐?”
두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다. 거절이라고? 이렇게 많은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장로들이 있는데 거절이라고? 이건 어이가 없는 걸 떠나서 굉장히 무례한 처사였다.
“비켜라. 내 직접 그 말을 들어야겠으니.”
“···안 됩니다. 못 들어가십니다.”
어린 시동은 몸을 대자로 펼쳤다. 겁이 많은 것치고는 강단이 있는 아이였다. 목송은 난처했다. 지금 자신이 충동해서 끌고 온 뒤의 장로들 역시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목송은 부들부들 떨었다. 이 황금세가 가주라는 놈의 오만이 하늘에 닿은 것만 같았다.
“비켜라! 내가 들어가겠으니.”
평소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한 황보무진이 결국 터졌다. 아이의 머리통만한 주먹을 가지고 있는 황보무진은 아이를 밀쳤다.
그의 입장에서는 밀친 것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굉장한 거력이었다.
“악!”
그 아이는 몇 번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섬돌에 등을 박고서야 멈췄다. 순간 기절했는지 눈동자에 힘이 완전히 풀렸다.
황보무진을 선두로 해서 사람들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관리하는 일꾼들도 많이 뺐는지 화청지는 조용했다.
“황금세가 가주! 나오시오! 황보세가의 황보무진이오!”
황보무진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해졌다. 그때 저기 멀리서 흰색 수건으로 몸을 감은 누군가가 나타났다.
“꺄악!”
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 새된 비명이 화청지를 울렸다.
중년의 남자들은 깜짝 놀랐다. 저 복도 끝에 흰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나온 건 묘령의 여인이었다. 아니, 단순히 여인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맑은 이마와 물망초를 닮은 눈을 가진 절색의 미녀였다. 몸에서 나오는 따뜻한 연기와 옆이 트여 눈부시게 빛나는 다리는 마치 여신의 자태와도 같았다.
바로 지금 화청지에 있는 유일한 여자. 금수린이었다.
“어, 억!”
장로들은 눈을 피하는 척하면서도 금수린의 자태를 계속 훔쳐봤다. 그들도 살면서 산서제일미니, 절강제일미니 많은 사람을 봤지만, 기필코 금수린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금수린은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장로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남색 옷을 입은 사람은 금수린 앞으로 착지했다. 어딘가 멀리서 뛰어온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은 바로 상의를 벗어 금수린에게 덮어줬다.
남자는 보통의 키에 옷의 품이 많이 남아 몸집이 작은 듯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상의를 금수린에게 빌려주고 남은 맨몸에는 조여진 근육들이 팽팽했다.
“누님, 진정하세요.”
그 누군가는 그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이었다. 금목환은 금수린의 가녀린 어깨를 짚어 진정시키는 듯하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뭣들 하는 겁니까?”
금목환의 냉랭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장로들은 그 상황과 목소리에 완전히 압도됐다.
‘무슨 계집 같이 생긴 녀석의 몸이···’
그들 역시 무공을 단련하는 사람이니 알고 있다. 단순히 부풀은 근육이 아닌, 본인이 익힌 무공을 펼치기 적합한 몸이 얼마나 깎여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금목환은 명가의 장로들이 봐도 훌륭한 무인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뭔 일이냐?”
그때 뒤에서 사람들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월상, 금화청, 곽진도 순이었다. 모두 노곤한 표정이었지만, 복도의 사람들을 보고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뭔 상황이냐?”
“저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침범했습니다.”
“아, 아니. 침범이라니!”
“그럼 여기 왜 들어온 거예요!”
금수린이 외쳤다. 장로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황금세가가 대여를 했다는 걸 들었고, 시동이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는데도 들어온 건 침입이 맞았다. 그러나 장로들은 그걸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 그러니까! 진작 나오면 되지 않았나!”
목송이 더듬거리며 외쳤다.
“분명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음에도 들여보내지 않는 건, 강호의 법도에 맞지 않는 무례한 짓이었어!”
“그래! 지금 당장 자네들이 여러 문파들에게 부름을 받으니 눈에 뵈는 게 없나보지?”
원래 이렇게까지 말할 계획은 없었다. 점잖게 황금세가에게 상황의 정리를 종용하고, 황금세가가 숙이고 들어오면 정식적으로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추천할 예정이었다.
금목환은 그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금월상과 금화청, 금수린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저런 궤변이 나올만한 상황인지. 참다 못한 곽진도가 크게 소리쳤다.
“이런, 미친새끼들! 네놈들이 필요할 때 가져다 붙이고 떼라고 있는 강호의 법도가 있는 줄 아느냐!”
“천류유성검, 말을 삼가라!”
“버러지 같은 새···”
“스승님.”
곽진도를 진정시킨 건 다름 아닌 금목환이었다. 금목환은 금월상이 건네준 흰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 가주. 잠깐 얘기나 하지.”
목송이 잘됐다는 듯 말했다. 허나 금목환의 눈빛도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빨리 얘기하시죠.”
“···허. 자리도 안 권한다는 말인가.”
“빨리.”
짧게 끊어진 금목환의 말에 목송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할 말은 해야 했다.
목송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드디어 여기 온 목적을 꺼냈다.
“당장 지금 중원을 시끄럽게 만드는 소란을 알고 있지?”
“네.”
“그 소란을 잠재우는데 당장 자네가 적합한 인재일세.”
금목환은 목송을 여전히 서늘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목송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지금 들고 일어나선 것들이, 자네를 정의의 사자처럼 여기니까. 아, 물론 남궁세가의 가주가 간자인 건 나도 놀랐고, 그걸 잡은 건 굉장히 뛰어난 공이라 생각하네. 지금 황금세가는 용봉지회에서 공언한 것처럼 오대세가를 노리고 있겠지? 지금 중원을 도와주면, 이번 신단회에서 오대세가도···”
“잠깐.”
금목환이 말을 끊었다. 목송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진짜, 이 녀석이 버릇없이···”
“여기까지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더 보여줘야 하는지요.”
순간 닫혀있던 문들이 드르륵 열렸다. 장로들은 깜짝 놀랐다. 이 복도에 수많은 방이 있었지만, 그곳에 당연히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탓이었다.
그곳에는 소림사 방장 진권, 무당파 장문인 목진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수석 장로들이 있었다. 배분으로만 따져도 지금 복도에 있는 장로들보다 높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이건, 대체, 뭔···”
황보무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읊조렸다. 어떤 거한이 문지방을 건너 복도로 나아갔다. 강건해보였던 황보무진의 얼굴이 급속도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옷의 뒤편에 황보(皇甫)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거한이었다.
“···가주.”
그가 바로 당대 칠존 중 권존(拳尊)이자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지운이었다.
그의 주먹이 붉게 물들었다. 벽력신권을 재해석한 적송벽력권(赤松霹靂拳), 황보지운의 성명절기가 피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황보지운의 붉은 주먹이 허공으로 느리게 뻗어졌다. 아직 황보무진과의 거리는 석 장은 넘게 남아있는 상태였다.
투투퉁!
그와 함께 쇠뇌와 동시에 발사되는 소리가 들리며, 황보무진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펑!
벽을 부수고, 사람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격산타우(擊山打牛)의 수법이었다.
진권과 다른 사람들은 씁쓸한 눈치였고, 금목환과 황금세가 사람들은 싸늘한 눈빛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 있는 이상, 저희는 그 사과를 진심이 있다고 받아들일 수 없군요.”
금목환이 말했다. 그는 홱 돌려서 복도를 빠져나갔다. 황금세가의 사람들도 금목환을 따라서 사라졌다.
남은 건 목송이 모은 장로들과 장문인들과 가주들이었다. 그때 황보지운이 누군가의 머리칼을 붙잡고 끌고왔다. 그는 물에 빠져 생쥐꼴이 된 황보무진이었다. 옷도 찢어져있지 않고, 얼굴도 멀쩡했지만 그는 숨을 거의 못쉬고 있었다. 발경으로 명치를 맞은 까닭이었다.
황보지운은 황보무진을 그들 앞으로 가지고 간 다음, 그들 앞에서 솥뚜껑같은 손을 들었다.
촥!
마치 채찍이라도 펼쳐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황보무진이 바닥으로 퍽하니 쓰러졌고, 그와 함께 물방울들이 튀었다.
“봐라.”
황보지운이 말했다.
“네놈들이 망쳐놓은 꼴을.”
아직, 목송을 비롯한 장로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