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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67화 (168/225)

167화 당신께 직접 물은 겁니다

167화 당신께 직접 물은 겁니다

훌륭한 차림새였다. 물론 규모로 치면 우리 세가에서 열었던 회사가 훨씬 컸지만 양념이나 음식, 술의 종류로 치면 더 다양했다. 중원의 것 이외에 새외의 것들도 포함된 탓이었다.

“···크흠.”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헛기침 소리가 무안하게 떠돌았다. 당연하지만 묘한 분위기였다.

서로 이런 연회장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애초에 정파 사람들은 연회를 연 천주성의 저의조차도 의심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던 종리운이 입을 슬쩍 열었다.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리오.”

“아니외다. 본 성이 중원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니 돌려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오. 어서 드시오.”

그 말에도 정파 사람들은 수저를 들기 꺼려했다. 딱 봐도 음식에 뭔가 장난질을 쳤는지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초대를 했는데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

제일 먼저 수저를 든 건 나였다. 난 바로 내 앞에 있는 음식을 들어 입 안에 가져다 넣었다.

“음.”

정파 사람들은 날 보면서 흠칫했다.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확신이 없을 텐데, 난 적어도 천주성이 암수를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만약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늦게 먹었으면 그들이 불쾌했을 터다. 오해를 사는 것만큼 기분이 안 좋은 건 없으니까.

“맛있네요. 운남의 분증육이죠?”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군. 역시 중원제일상계의 가주이니, 모르는 게 없어.”

내가 먼저 입에 넣은 건 분증육(粉蒸肉)으로, 돼지고기에 쌀가루를 입혀 찐 음식이었다. 운남의 요리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내가 음식을 들자 하나둘씩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적막할 뻔한 연회는 천주성이 준비한 악사들의 금음(琴音)으로 채워졌다.

사실 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연회를 연 이유야 궁금하긴 했지만, 천주성은 알아서 알려줄 집단이다. 난 그냥 음식만 먹으면 됐다.

“···잘 먹네.”

옆에 앉은 갈유월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난 음식을 흡입했다.

당연하지만 중원의 음식들은 우리 세가 음식이 더 맛있었다. 그래도 여기 음식도 먹을만했다.

특히 새외 음식들은 처음 맛보는 것들이라 꽤 신기했다. 특히 대추야자가 참 달았다. 처음에는 종려나무 열매인 줄 알았더니 서역에서 건너온 귀한 열매라고 했다.

그 외에도 신강 지역 사막에서 나온 낙타 젖, 북해 설록(雪鹿)의 허벅다리를 통째로 구운 것, 회족(回族)의 요리인 우육면 등. 신기한 음식들이 많았다.

“···정말 호쾌하게도 먹는군. 소제라는 별호로 불릴 법해.”

송천우가 말했다. 다른 당주들도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들마저도 내가 이렇게 먹을 줄은 모른 것 같았다.

“아무튼,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하지. 천주성은 황금세가에 큰 빚을 졌어. 자네의 행동은 응당 협행(俠行)이었네.”

“그런가요.”

“그렇지. 우리에게 성주님은 귀인이지만, 자네에게는 그렇지 않으니까.”

난 문득 화종도가 말했던 협이 생각났다. 숭산지약에서 말했던 협. 선의를 받으면 보답받지 않는 것이 협이라 했던가.

“제가 협객이려면 이 축하연에도 안 오고 떠났어야 되는데요.”

“···숭산지약을 알고 있군. 하긴, 황금세가 사람이니 알 법하지.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남궁연화가 끼어들었다. 송천우를 포함한 다른 당주들도 날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난 이어진 남궁연화의 말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숭산지약은 본 성의 지침이네. 그곳에서 정한 의와 협의 기준을 우리는 따르고 있지.”

“그러면 이건 나를 협객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자리인가요?”

내가 물었다. 내 말에 잠깐 자리에 침묵이 감돌았다. 누군가 큭,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갑자기 연회장은 웃음으로 뒤덮였다.

곧 웃음소리는 잦아지고, 미소를 지닌 송천우가 말했다.

“황금세가 가주는 약간 엉뚱한 면이 있군.”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뭔가를 실수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도리어 모든 사람들이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옆에 있는 갈유월마저. 그녀가 웃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 굳이 돌려서 말할 필요 없지. 효율적인 의사소통 방식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궁연화의 말에 내가 대답하자, 사람들이 또 웃었다. 난 계속 그냥 대답만 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 눈에는 그게 웃긴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난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랬던 적이 없던 건 아니었다. 가끔 내 말을 어이없어하거나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요즘들어 느끼는 거지만, 다른 사람들과 내 대화 방식은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의는 저버릴 수 없는 것이고, 협은 초인의 척도지. 자신의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을 돕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나. 또한 알리지도, 보상을 받지도 말아야 하니.”

“그렇겠죠.”

“그러나 자네가 한 건 분명히 협행이야. 왜냐하면 우리에게 성주님을 고통에서 해방시켰다는 건, 우리가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기 때문에.”

남궁연화가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당주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다른 건 몰라도 성주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진심이었다.

“맞아. 자네는 분명 협객이야. 그래서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싶네.”

송천우가 말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 남궁연화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변했다. 그녀도 송천우의 제안이 뭔지 모르는 듯했다. 다른 당주들을 보니 남궁연화와 표정이 같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송천우는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가 본 성의 당주가 되었으면 하네.”

쩔그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갈유월이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주울 생각도 없을 정도로 놀랐다. 다른 정파 사람들도, 천주성의 남궁연화를 포함한 몇몇 당주들도 크게 당황했다.

“저보고 제 세가를 나오라는 이야기인가요?”

“아니. 그거야 자네 가족들이니 버릴 수 없지. 그냥 자네가 천주성의 당주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네. 만약 당주가 되면 십삼 당주가 되겠지.”

송천우의 말을 듣다못한 남궁연화가 말을 끊었다.

“잠깐, 뭔 소리인가? 어째서 상의없이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우리야 늘 다수결이 아닌가. 이미 다수결 이상의 사람들이 내 생각에 동의했네. 그리고 일 당주는 황금세가 가주가 우리 천주성의 일원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전례 없는 일이라 그렇지. 당장 성주님이 깨어나셨는데 의견도 여쭙지 않고?”

“원래 당주 체계는 우리들이 만든 거잖나.”

남궁연화와 송천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안 할 거기 때문에. 남궁연화와 송천우의 언쟁은 필요없는 게 됐다.

옆에서 갈유월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천주성을 갈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런데 왜 그런 제안을 하셨는지는 궁금하군요.”

나는 송천우를 바라봤다. 송천우는 나를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주는 지금 정파에 있기 아깝다고 생각했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가만히 듣고 있던 종리운도 끼어들었다. 팽의석과 진권도 불편한 표정이었다. 지금 정파, 라고 싸잡아 부른 것이 거슬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송천우는 개의치 않았다.

“당신들도 긍정하는 바일 거요. 당장 전에 가주가 한 말에서도 명백히 드러나지 않소? 그는 면종복배(面從腹背), 소리장도(笑裏藏刀),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정파 사람들과는 다르지. 바른 길을 가고 있으니 굳이 허례허식을 차리지 않지. 왜냐하면 본인이 가는 길이 바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송천우의 정파에 대한 노골적인 악담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워 모두가 반박을 할 겨를도 없었다.

“물론 황금세가 가주는 바른 사람이지. 나중에 정파에서 큰 역할을 할 거야. 그러나 그건 역설적으로 역사에 대죄(大罪)를 짓는 셈이지. 썩은 정파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테니까.”

팽의석, 진권, 종리운을 포함한 정파 사람들이 동시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입이 불만스럽게 꿈틀거린다. 난 잠깐 손을 들어서 그걸 막았다. 썩었냐, 썩지 않았냐는 무의미한 논쟁이었다.

“제가 천주성의 당주가 되면 역사가 달라지나요?”

“그래. 우리는 진정한 정의로 다시 돌아갈 거니까. 그렇게 만들 거고.”

“어떻게요?”

“부패와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을 없앨 걸세. 부패한 사람들과 그걸 방관한 사람 모두.”

정파 사람들이 침음을 흘렸다.

나는 지금 기로에 서있었다. 이건 전생에서도 나온 말일 거다. 천주성은 기존 정파를 완전히 거부하고, 본인들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역할을 하기 원했다.

“그래서 지금 저 소림사 방장 같은 사람은 내 손에 죽게 되겠지.”

송천우가 말했다. 진권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바로 정파 사람들의 기세가 연회장에 퍼졌다. 음식이 담긴 상이 떨렸다.

막 뒤에서 거문고를 타던 사람들과 무희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음악 소리는 불안하게 끊기고, 춤 역시 뻣뻣해졌다. 그렇다고 그만두라는 말도 없으니 억지로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려고 연회를 연 건가?”

남궁연화가 송천우를 노려봤다. 나는 남궁연화가 이 당주를 조심하라는 의미를 알았다.

그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대체하는 걸 넘어서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당주와 상의도 없이 본성의 방향성을 결정하겠다고?”

“우리에겐 힘과 정의가 있다. 이걸 안 쓰는 건 그 자체로 죄악이야.”

“그럼 정파를 힘으로 치겠다는 건가?”

남궁연화의 말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원래 정파와 천주성은 반목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마교가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천주성 역시 마교를 격퇴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 그들도 뿌리는 정파니까.

그러나 문제는 마교의 침략이 언제 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내가 한 행동들로 인해, 마교는 정파 침략을 하는 준비가 많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는 힘으로 중원을 수복할 생각이야.”

송천우가 쐐기를 박았다. 각자 내공이 발출되어 대기가 팽팽하게 조여졌다. 난 미간을 살짝 모았다.

역설적으로 내 행동이 천주성과 정파를 반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내가 한 행동들의 영향이 이렇게 나타날 수도 있었다. 세상은 복잡했다.

송천우는 우리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여기서 자네들과 싸울 생각은 없네. 그럼 우리가 비열한 암수를 쓰는 셈이 되는 거니까. 당신들을 돌려보내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중원을 치겠지.”

“그렇군요.”

“우리는 지체하지 않을 걸세. 성주님은 깨어났고, 이대로 중원에 시간을 줬다가는 황금세가 가주가 중원을 더 힘있게 만들겠지.”

그렇게 될까. 천주성은 날 굉장히 영향력있게 보는 모양이었다.

난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갈유월이 준 그것이었다.

그리고 악단이 있던 막을 바라봤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도 꿋꿋하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긴장된 공기에 일반 사람들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난 한 악사의 그림자를 보면서 물었다.

“그게 천주성주가 바라는 건가요?”

“성주님은 언제나 순결하고 정의로운 길만 인도해주셨지. 또한 우리에게 태원의 기라는 거대한 힘을 주셨어. 중원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말이야. 이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네.”

송천우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난 고개를 저었다.

“당신께 물은 게 아닙니다.”

난 일어났다. 그리고 악사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손으로 막을 뜯어버렸다. 투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구슬들이 떨어지고 막이 땅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곳에는 면사를 쓰고 거문고를 타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다른 악사들은 그저 떨고만 있었다.

“천주성주, 당신께 직접 물은 겁니다.”

그제야 음악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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