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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77화 (178/225)

177화 하나 맡아놨지

177화 하나 맡아놨지

무이산의 깊은 계곡.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장 사람 손길이 안 닿은 게 오래인지 거미줄이 군데군데 쳐져있고, 폭포와 호수가 깨끗했다.

이곳은 산왕채의 반대편 깊은 곳이었다. 무이산은 투왕이 있는 산왕채니 일반 사람들은 올 일이 없고, 도적들은 굳이 이 험난한 곳을 등산할 일이 없다.

누군가가 호수 쪽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췄다. 그곳에는 낭왕 염왕수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일단 허리춤에 달려있는 호리병부터 숲 속 깊은 곳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목 끝을 손가락으로 위쪽으로 긁어나갔다. 얼굴 피부가 찌그러지면서 서서히 말려올라갔다. 인피면구였다.

“번거롭군.”

인피면구를 다 벗은 남자의 얼굴은 냉막했다. 그는 호수의 물로 얼굴에 남아있는 찐득한 물질들을 씻어냈다.

바로 뼈가 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팔과 다리가 길어지고, 체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뼈의 위치를 바꿔 체형을 바꾸는 무공. 천축의 축골공(縮骨功)이었다.

그는 손의 물기를 털어내고 근처 나무 밑둥으로 가서 땅을 팠다. 그곳에는 검은색 피풍의가 있었다. 검은색 피풍의 옆에는 얼굴 피부가 전부 벗겨진 사람이 나신으로 죽어있었다.

그가 바로 중원의 십왕 중 일인인 낭왕 염왕수였다. 남자는 염왕수를 연기한 것이었다. 사실 수결도 거의 가짜였다.

그저 사파 사람들이 날뛰며 중원을 혼란스럽게 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아니, 그의 목적이 아니라, 그가 모시는 사람의 목적이었다.

이제 무이산에서 떠나야 했다. 자신의 주인, 소천마 천유현에게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

지금까지 잡은 사파 고수만 서른 명이 넘는다. 그 중에서 절정이 여덟 명. 초절정이 스무 명이 넘는다. 당연히 그들은 중원에 오랫동안 해악을 끼쳐왔던 자들이었다. 그들을 잡아가면 잡아감에 따라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저 사람이 소제인가?”

“맞는 것 같군.”

“진짜 잘생겼다.”

“거 참, 기생오래비처럼 생겼구먼.”

그들은 분명 내 모습을 말로만 들었을 텐데도 신기하게도 알아봤다. 특히 여기는 강서와도 멀리 떨어진 남녕(南寧)인데도 그러했다.

그러나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바라건대, 저와 한 번 비무를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젊은 고수 중 최강이라. 한 번 겨뤄보고 싶소.”

“소제라는 별호에 걸맞는지 시험을 해봐도 되겠소?”

정말 정파 무인들은 끝도 없이 달려들었다. 여름에 모기떼를 휘저어 쫓아내도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았다. 난 당연히 바쁘므로 모두 거절했다.

내가 찾고 싶은 건 정파의 무인들이 아닌 사파의 무인들이었다. 난 오히려 으슥한 곳, 산골짜기, 심산유곡을 거치는 경로를 짰다. 그러나 사파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수련을 하는 정파인들을 더 봤으면 봤다. 그렇게 산 깊은 곳에서 수련을 하는 사람도 내 얼굴을 알아보는 지경이었다.

“대협 혹시···”

“비무 안 합니다.”

난 그렇게 구애들을 뿌리치며 복건 무이산 앞까지 왔다. 난 무이산으로 발을 얹었다.

“네놈!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발을 내미는 것이냐?”

무이산에 딱 입산하자마자, 산 속에서 쩌렁거리는 고함이 들렸다. 내가 듣고 싶어하던 거친 언어와 말투였다.

나는 머리를 대각으로 치켜올렸다. 깎아지르는 듯한 거친 산세가 보였다. 일반인들은 굳이 산왕채가 없었어도 쉽게 오지 못했을 거다. 바위에 딱히 발을 지지할 곳이 없어 실족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많은 산적들이 숨어있었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았는데, 광동과 광서에 있던 산적들이 여기에 몰려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저거 소제 아니야?”

“어, 맞는 것 같은데?”

“요즘 사파고수 깨고 다닌다는 그 미친놈?”

당연하지만, 나를 사파들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사파 고수들을 깨고 다니니 사파 사람들에게 더 알려졌을 터다.

“용모파기를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용모파기까지 있다니. 내가 사파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도 있었다. 확실히 광동과 광서 지방에서 온 사파들도 있었다. 중원은 지역에 따라 말하는 억양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어, 어째서 온 거냐!”

내게 처음에 당당하게 소리쳤던 목소리가 좀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 외형만을 보고 판단하고 싸우려는 사람은 사라진 셈이다. 이제 중원은 거의 나를 알았다.

“뭘 묻는가? 당연히 사파 고수들을 처리하려고 온 것 아니겠는가.”

“젠장.”

숲 속에서 갈등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들은 정파와 다르다. 정파라면 나를 죽이고 지나가라! 라든지, 절대 못 보내준다! 라는 말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정파 무인이 꿈인 사람은 있었어도, 도적이 꿈인 사람이 세상 어디 있었겠는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되고, 산채에 들어가게 된 거지 충성심 따위는 있지 않았다.

나는 발걸음을 뗐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산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어! 더 다가오지 마라!”

사람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난 오히려 뒤쪽으로 도약해야 했다.

쾅!

내가 서있던 곳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졌다. 누군가는 벽력탄으로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검은 인영을 봤다. 그 검은 인영은, 컸다. 크다라는 말로밖에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네놈이 요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돌아다닌다는 금목환이구나.”

흙먼지가 걷어지면서 장한이 나왔다. 장한은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많았고, 너비는 나를 나란히 붙여놓은 정도였다. 바로 이 사람이 녹림칠십이채의 총채주, 투왕 장덕수였다.

그리고 곧바로 내 주위로 몇 명의 인영들이 쿵, 쿵, 쿵하고 떨어졌다. 난 가만히 그걸 기다려줬다. 최소 스무 명은 되는 사람이 나를 감쌌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감싼 건 아니고, 서로의 방위가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 내 몸에서 기들이 반사적으로 올랐다. 아무리 사파라지만 십왕이 조직한 곳은 다른 건지, 진법까지 쓰고 있는 거다.

“여기는 왜 온 것이냐? 설마 사파고수 척살에 나도 껴있는 건가?”

장덕수는 웃었다. 웃음소리에 불과한데 주변의 대기가 떨리는 듯했다. 당연하다. 십왕 정도의 무인이 그래도 내게 질 거라는 생각은 못할 거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이미 내게 진 십왕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궁금해서 와봤어. 사파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허허. 그야말로 오만불손하도다.”

“뭘 꾸미고 있는 건 맞나?”

내 질문에 장덕수는 움찔했다. 너무 단도직입적이었던 걸까. 그러나 장덕수 역시 중원에서 오래 구른 몸. 재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싹퉁머리 없는 화법을 쓰는군. 나한테 뭘 맡겨놓은 듯한 말투야.”

나는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펼쳐보았다. 명재희에게 건네받은 그 종이였다.

장덕수라는 이름을 찾아봤다. 그 이름은 맨 위에 있었다. 당연하지만, 사파에서 명성이 높다는 건 그만큼 악한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부녀자 강간 살해, 민간인 납치, 통행세를 내면 통과시켜줘야하는 불문율을 어기고 갈취한 건 셀 수도 없다. 태운 마을만 열 개가 아득히 넘는다.

난 손톱을 세워서 장덕수라는 이름에 선을 그었다. 장덕수라는 이름이 있는 곳만 찢어져 창호지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됐다.

“하나 맡아놨지.”

“뭐?”

“네 목숨.”

장덕수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그는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말도 채 잇지 못했다.

“지금 네가 숨쉬고 있는 건 내가 살려주고 있기 때문이거든.”

“···허허, 허허허···”

장덕수의 웃음이 길게 늘어지다가, 갑자기 끊겼다. 산에 새소리도, 곤충소리도 들리지 않고 적막해졌다. 장덕수가 손짓을 했다.

나를 감쌌던 녹림도들이 일순 날았다. 난 머리 위를 바라봤다. 철새 떼가 날아다니듯, 하늘이 가려져 시꺼맸다.

난 검병에 손을 서서히 갖다댔다.

*

장덕수는 내심 이해할 수 없었다. 이름난 사파의 고수들이 어찌 힘없이 하나씩 스러지는지. 솔직히 혼자 돌아다닐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주변에 초절정 고수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황금세가의 장로로 유명한 천류유성검 곽진도라거나.

안 그러면 초절정, 거기서도 삼화취정에 이른 고수들이 그렇게 무력하게 죽어나갔겠는가. 그것도 갓 약관이 된 무인에게? 장덕수의 상식, 아니, 중원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상식 선에서 벗어나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으억!”

진을 구성하고 있던 부하의 팔이 날아갔다. 남쪽에 있는 사람의 팔을 자른 듯하더니,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목도 동시에 날아간다.

이 진법은 장덕수가 정예들만 뽑아 만든 진법이었다. 초절정 고수를 이길 수는 없지만, 최대한 시간을 끌고 체력을 빼놓는 차륜진이었다.

실제로 부하들에게 이 진법을 펼쳐보라고 하고 자신이 들어갔을 때, 꽤 벅찼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지금 금목환은 마치 진법을 헤집고 다니며 안에서부터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건 진법의 흐름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빠른 검광이 대기에 거미줄 같은 상흔을 새겼다. 검로의 끝에는 언제나 피를 동반했다. 한 번 검이 그어지면 어느 한 신체부분이 같이 날아가고는 했다.

“괴, 괴물이다!”

결국 진법에서 한 사람이 무단이탈했다. 사파에게 목숨을 걸고 지키는 의리 따위는 없는 법이었다. 죽을 게 뻔한 곳에 들어가는 건 바보같은 짓이었다.

진법에서 무단이탈은 커다란 후폭풍을 남긴다. 서로 방위를 점함에 따라 기가 이어지는 것인데, 기의 흐름이 중간이 끊어지는 것이다. 그건 운기조식 중간에 누군가 등을 치는 것과 비슷했다.

“컥!”

바로 옆에 있던 사파 무인이 피를 왈칵 뱉어냈다. 이제 모두가 진법을 이탈하려고 했다. 남아있다가는 괜히 진법에 있는 내공을 독박으로 쓰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금목환이 그걸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언제나 억지로 하면 틈이 생기는 법. 칼을 맞대도 막을까, 말까한 상황에 몸을 피한다면 당연히 허점이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금목환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마치 호흡은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장덕수는 부하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멍하니 지켜봤다.

검광을 따라 흩뿌려지는 피와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금목환. 누군가를 내려찍어 어깨를 갈라냈다 싶으면, 자세를 바꾸지도 않고 신형을 흔들어 누군가의 등을 꿰뚫고 있다. 그야말로 고아(高雅)한 검술이었다.

“채, 채주님. 어떻게 할까요?”

누군가 장덕수에게 물었다. 이제 진을 구성했던 부하들은 몇 사람 남아있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분명 본인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말도 안 되지만, 맞서기 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금목환은 이미 십왕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장덕수가 얼어붙은 발걸음을 강제로 떼려고 할 때였다. 창끝과 같은 시선이 장덕수의 몸을 꿰뚫었다. 장덕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금목환이 녹림도가 반으로 갈라지고 있는 틈으로 장덕수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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