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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01화 (202/225)

201화 자네는 뭔가

201화 자네는 뭔가

난 소천마 천유현이 애뇌산에 왔을 때가 당장 어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느낀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물론 내가 삼선과 칠존, 이런 초고수들과 싸워본 적도 없고 내가 천하제일인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난 싸워서 한 번도 밀려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내가 내공 없이 살수들과 싸우고 난 이후로 체력이 떨어져있었다고 해도, 그건 변명으로 삼기에는 궁색하다고 생각한다. 근소한 차이라고 해도 천유현은 분명 나보다 강했다. 정확한 나이는 몰라도 나와 비슷할 것이었다.

오만하다면 오만한 생각이지만, 난 적어도 내 나이 또래한테 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천유현에게 밀렸다는 건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더 강해져야 했다. 천유현이 그 정도면 천마는 훨씬 강할 것이 아닌가. 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강해져야 했다.

구도전은 장문인이 말한 대로 찾기 쉬웠다. 현판은 걸려있지 않았지만 붉은 지붕이 특징적이었다.

“계십니까.”

난 문고리를 잡고 두드렸다. 작은 건물이었지만 기척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다시 두드리려고 할 때, 문틈 사이가 번쩍거렸다. 난 바로 검을 눕혀서 막았다.

쿠쿵. 작은 폭발이 일어났지만 대문은 멀쩡했다. 안에서 날아온 검격은 정확히 문틈 사이로만 날아왔으니 말이다. 빠르면서도 정밀한 검격이었다.

“내가 분명 연구하고 있을 땐 오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야.”

문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왕 공격까지 당한 거 난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난 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었다.

“장문인께 그 말은 못 들었는데요.”

“···자네는 뭔가?”

하지만 산화겸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보면 내가 무심했다. 내게는 은인과도 같은 사람인데, 근 십 몇 년간 찾아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입니다.”

내 말에 산화겸이 움찔했다. 솔직히 내 이름을 못 들어봤다고 강짜를 놓을 수는 없을 거였다.

산화겸도 내 정체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살짝 수그러든 모습을 보였다.

“요즘 강호에 유명세가 자자하신 분이군. 평소 구도전은 외부인이 올 일이 없는 곳이라 실례를 저질렀소.”

“괜찮습니다.”

“그럼 가주시겠소? 나는 연구할 때 다른 사람이 오는 걸 싫어해서 말이오.”

“아. 그런가요?”

난 산화겸의 평소 성격을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 거다. 내가 그와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단지 서로 같은 곳에 갇혀있다는 친밀감 때문이었던 거다.

그러나 오히려 평소 성격만 알고 있는 사람은 진짜 산화겸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웃긴 말이지만, 난 지금 어떤 사람보다 산화겸을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의 가장 진실한 모습에 근접한 건 나다. 난 그런 확신이 있었다.

“이곳에 오면 청라보패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뭔 소리요?”

산화겸이 황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열린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청라보패는 지금 내가 연구하고 있소. 아직 연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누가 준다는 말을 했소?”

“정확히 말하면 준다는 게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교환을 하는 겁니다. 장문인이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청라보패를 소관하고 계신 분을 알려주기에 찾아온 겁니다.”

그제야 산화겸은 내가 어떻게 왔는지 안 것 같았다. 그리고 장문인이 본인에게 책임을 넘겼다는 것도 알게 됐을 거다.

내가 장문인의 속셈을 눈치 못 챈 건 아니었다. 나는 이해한다. 갑자기 대뜸 나타나서 중원칠종신기에 해당하는 귀물을 내놓으라는데 누가 준다고 하겠는가. 이렇게 사람을 돌림으로써 못 주겠다고 거절 표시를 하는 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전통적인 정파의 방식이었다.

“미안하지만 헛걸음을 했소. 난 청라보패를 넘겨줄 생각이 없다오. 장문인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적어도 난 내가 연구하는 바는 마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서 말이오.”

난 살짝 웃었다. 내가 산화겸에게 어째서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았다.

그는 일반 정파사람 같지 않고 반골 기질이 있었다. 정말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만 찾아서 행동했다. 그게 나에게는 좋은 인상이었다.

그러니 독단적으로 행동했을 거고, 마교에게 잡혀들어왔겠지.

난 계속 그에게로 걸어갔다. 산화겸은 내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표정을 구겼다.

“더 오면 큰 실례를 범하게 될 것 같군.”

산화겸은 내공을 발출했다. 살짝 오싹해졌다. 그는 생각 외로 고수였다. 하긴 고수가 아니면 태을신공을 수정하려 들지도 않았으리라.

난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산화겸도 이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허리춤의 검병에 손을 댔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산화겸은 내게 경고를 할 배려 따위는 없는 인간이었다.

그의 발검이 내게 벼락같이 날아왔다.

“태을신공의 연구를 도와드리죠.”

훅!

내 눈 앞에 산화겸의 검극이 멈췄다. 그와 함께 검풍이 내 얼굴을 쓸었다. 머리카락이 펄럭였다.

검 너머에 있는 산화겸의 눈빛은 경악을 띠고 있었다.

“···그것까지 장문인이 말했나?”

“아뇨. 그냥 제가 알고 있는 겁니다.”

“헛소리. 내가 태을신공을 연구하는 걸 아는 사람은 종남파에서도 몇 없건만.”

“어떻게 알고있는지까지는 설명 못 드립니다.”

나는 웃었다. 산화겸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 난 말이야. 입만 둥둥 떠다니는 놈들을 싫어해. 적어도 본인의 모습은 행동으로 보여야지. 정파놈들은 협을 가르치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해.

산화겸이 내게 옛날에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난 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행동으로 보여줬다. 말을 최대한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낀 거다.

나와 산화겸의 눈빛이 마주쳤다. 오랫동안 내 눈을 바라본 산화겸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범상한 사람은 아니라더니. 허명은 아니었군.”

산화겸은 뒤를 돌아서 걸었다.

“들어오게.”

난 산화겸을 따라서 구도전으로 들어갔다. 구도전의 건물에 들어갔을 때 인기척은 없었다.

“아무도 없군요.”

“나만 쓰는 공간이 되어버렸지. 나머지는 멍청하게 칼 휘두르는 일만 하고 있으니까.”

산화겸은 못 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별의 별 이상한 형태의 무기들이 나왔다. 칼날의 끝이 십자(十)로 되어있다거나, 칼이 쇠사슬에 묶여있다거나. 그야말로 조악한 무기들이었다.

여기는 무기들을 실험하는 곳인 거 같았다. 지붕이 없는 공터와 상처가 많은 벽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마치 내가 거처하는 본원의 안뜰 같은 곳이었다.

“실패작들은 보지 말아주길 바라네. 창피한 것들이라.”

“성공의 거름이 될 테니 충분히 자랑스러운 물건들이죠.”

“상계 사람이라 혓바닥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군.”

산화겸은 코웃음을 쳤다. 허나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거였다.

“그래. 내가 태을신공을 연구하고 있는 걸 어떻게 도울 참이지?”

산화겸이 본론을 꺼냈다. 역시 정파 같지 않은 인물이었다.

“태을신공의 구결 수정을 도와드리죠.”

“뭘 알아야 도울 것 아닌가? 아무리 어린 나이에 상승의 경지에 이르렀다지만 너무 오만하군.”

산화겸은 내 말에 더욱 크게 비웃었다. 난 바로 태을신공의 첫 번째 구결을 말해줬다.

“세상 모든 그윽하고 오묘한 것들이 그 문으로 나왔느니라(玄之又玄 衆妙之門).”

내 말에 산화겸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이건 아무리 내가 종남에서 겉도는 사람이라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말이군. 외인이 태을신공의 구결을 알고 있다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다는 거죠.”

산화겸이 내게 반박을 하려 하기 전, 난 그에게 말을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쏘아붙였다.

“일단 먼저 기해를 첫 번째 거점이 아닌 중완을 첫 번째 거점으로 삼으면 됩니다.”

“뭐?”

아무튼 그래서 우리의 수정본은 기해에서 바로 중완(中腕)을 첫 번째 거점으로 삼는다. 태을신공의 안정성과 방향성을 믿고 빠르게 나아가는 거다.

“중완에 모든 기를 뭉친 다음, 그걸 온몸에 기를 불어넣는 풀무처럼 쓰는 것입니다. 그럼 축기 속도가 빨라지겠죠.”

이건 나와 산화겸이 같이 머리를 대어 만든 결과물이었다. 몇날며칠이 걸린 결과물을 내가 주르륵 읊으니까 산화겸은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듣고만 있었다.

나는 거기다가 내가 태을헌원신공을 운용하면서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던 구결도 모두 말해줬다.

장장 반 시진이 걸릴 동안 산화겸은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어이가 없군.”

간신히 꺼낸 산화겸의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처음에는 미심쩍게 들었던 그도 알 수밖에 없다. 내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분명 내 말들은 종남의 무리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순리에 맞으니 말이다.

산화겸은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나 멍한 상태는 아닐 거다. 지금 내가 말한 것들을 천천히 다시 역산하고 있을 터다. 혹시 내 수정이 축기자에게 위험하지는 않은지, 정도가 아닌 마도에 닿아있지는 않은지, 경혈을 꼬이게 하는 순서는 아닌지.

난 가만히 기다렸다. 산화겸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난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대단하군. 대단한 구결이야. 이러면 축기 속도가 느리다는 태을신공의 약점을 메우게 되는군.”

결국 산화겸의 입에서 인정이 나왔다. 그도 무인이다. 자존심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강짜를 부릴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뱉은 구결들이 즉흥적으로 나오지 않은 게 아님을 그는 알 수 있을 거였다.

“그게 당신이 종남파에게 줄 것이었나?”

“맞습니다.”

“그럼 내가 청라보패를 준다는 얘기도 안 했는데 어찌 말해준다는 말인가?”

“상품을 팔 때는 가끔 이런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먼저 상품을 쥐어주고 사용하게 한 다음 사라고 하는 거죠.”“상품, 상품이라.”

그들의 비전심법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것 같았지만, 그도 어쩔 수는 없었다. 산화겸은 이 심법의 종남파에 있어서 얼마나 큰 기연인지 알고 있을 터였다. 필생의 경쟁자인 화산파를 한 번에 제칠 수 있을 정도의 신공. 난 그걸 종남파에게 줬다.

“자네는 뭔가?”

산화겸이 물었다. 날 보며 한 첫 질문과 같았지만 묻는 바는 달랐다. 허나 내가 대답할 건 달라지지 않았다.

“황금세가 가주 금목환입니다.”

“허허.”

산화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태을신공의 수정본, 자네도 쓰고 있나?”

“네.”

“그런가?”

산화겸은 대답하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갈까 했지만, 산화겸은 얼마 있다가 다시 내가 있는 쪽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감색으로 되어있는 패(牌)가 있었다. 난 느낄 수 있었다. 저 패에 서려있는 신비한 기운을 말이다. 저것이 바로 청라보패였다.

산화겸은 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그가 천천히 말했다.

“자네도 인정할 걸세. 사람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말이야. 아직 우리는 미지의 존재야.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온 것이고, 우리는 무슨 사명을 받고 내려왔는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지. 물론 우주는 더욱 더 모르고 말이야.”

산화겸은 말을 계속하며 청라보패를 벽에 붙어있는 선반 위에 얹어놨다.

바로 그의 검병에서 빛이 번쩍했다. 난 곧장 검집을 들어 막았다.

쾅!

검격이 내 검집을 강하게 쳤다. 난 뒤로 걸음을 치며 강기에 담긴 힘을 해소시켰다.

“그러니까, 이론이 완벽해도 직접 인간에게 적용하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지.”

산화겸의 눈이 불타올랐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직접 보고 싶으시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면 재미없지 않나.”

나는 천천히 검을 꺼냈다. 산화겸은 내게 바로 달려들려다가 멈칫했다. 그는 내 검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난 뭐 때문에 그러는지 몰랐지만, 곧 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 검, 송로로군.”

아, 맞다. 이거 종남파의 보물이었지.

날 보는 산화겸의 눈빛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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