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절대무신 (2)
220화 절대무신 (2)
바다를 끌어다 쓰는 빙벽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바다가 치솟아 얼음 장벽이 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웅장했다. 주변의 많은 무인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사실 무인들은 진법에 관해서 어느 정도 경시를 하는 게 있었다. 결국 적을 죽이는 건 직접 칼을 맞대는 무인이니까. 허나 지금 금수린은 최소 초절정고수 백 명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뚫리겠지?”
금월상이 물었다. 금수린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뭐, 그러겠죠. 어차피 이건 폭탄을 최대한 소비시키게끔 하는 역할이 전부에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역할이지.”
“맞아요.”
냉큼 대답하는 금수린을 보며 금월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제 황금세가 사람들에게 겸양이란 없어도 되는 미덕이 되어버렸다.
본인의 능력이 확실한데 없다고 하는 것도 기만. 과례는 곧 비례였다.
“준비하라!”
금월상이 육합전성으로 외쳤다. 여기 있는 병력들 중 대다수는 황금세가의 무인들이었다. 남궁세가는 여전히 봉문 중이었지만, 황금세가가 지원을 요청해 봉문을 풀고 무인들을 내보냈다. 해남파 무인들은 황금세가에 있는 지부의 무인들이 총 동원되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황금세가는 절강과 맞닿아있는 문파들, 세가들에게 지원 요청을 보냈고 그것들이 오고 있었다.
황금세가는 그들이 오기 전까지 절강의 땅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쿵!
크게 솟아오른 얼음이 흔들렸다. 폭탄이 아닌 충차로 때린 것 같았다. 아마 충차가 아니라 뱃머리로 밀어버린 것일 테다.
얼음 사이로 우상각(右上角)에서 왼쪽 아래까지 섬광이 스쳤다.
얼음이 잘려진 단면으로 미끄러지면서 바다로 빠졌다. 얼음이 떨어져 물기둥이 만들어지고, 바람이 불어 물보라가 전장에 퍼졌다.
얼음이 무너진 뒤로 보라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넘어왔다.
아직 정파 병력이 있는 땅과 그들이 넘어온 곳은 거리가 있었다. 몇몇 정파 무인들은 비웃었다. 저렇게 넘어오면 물에 빠질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곧 정파 무인들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저 수많은 무인들이 모두 물을 밟고 뭍까지 달려오는 것이다. 저 많은 사람들이 전부 등평도수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인 것이다.
곧 바로 기가 담긴 화살들이 날았지만, 그들은 모두 강기를 쓸 줄 아는 무인들이었다.
마교의 무인들은 눈 깜짝할 새에 뭍까지 달려왔다. 금월상은 곧바로 검을 빼어들어 앞까지 달려갔다.
당연하지만, 정파 무인들도 앞에는 최정예 무인들이 있었다. 모두 금원대 무인들이었다. 금원대 무인들은 이미 전부 초절정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삼화취정의 경지에 도달했다.
어디 문파를 차려도 충분할 고수들이 모여 있는 셈이니, 강호에서 이만큼 강한 무력대는 없었다.
“모두 칼을 뽑아라!”
금월상의 명령에 금원대 칠십 명이 모두 칼을 스릉 뽑았다. 금색 강기와 보라색 강기가 어울려 굉음을 연달아 냈다.
무인들은 앞에서 싸우고, 위에서는 화살에 맞은 비마진천이 공중에서 터졌다. 원래는 어둠으로 가득차야 할 이경(二更)의 주산이 졸지에 불야성이 되었다.
“와아아아!”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함성을 질렀다. 마교의 사람들도, 정파의 사람들도 이런 전쟁은 처음이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도저히 맨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금원대는 방추형의 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끝에는 금월상이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금월상의 패력을 담은 강뢰도법이 횡으로 그어졌다.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마교도 한 명이 칼과 함께 두 동강이 났다.
금월상의 도가 허공을 가를수록 마교도들의 사지가 하나씩 같이 날았다. 이미 금월상은 일반 초절정 고수들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가 되었다. 같은 강기라도 오기조원에 가까운 무인과, 그냥 초절정에 이른 무인하고는 질 자체가 달랐다.
정파 무인들과 마교도 무인들은 한데 엉켰다. 뒤에서 마교도들을 태운 배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점점 뭍으로 올라오는 마인들의 수가 많아졌다. 정파 무인들이 아무리 잘 막는다고 해도 마교도들의 쪽수가 훨씬 많았다. 남궁세가와 해남파 무인들이 있다고는 해도, 비율로 봤을 때 사실상 황금세가 단독으로 막는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세가는 완벽히 준비를 해뒀다. 들어오는 마교도들도 발을 딛기만 했지 안으로 쉽게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교도들의 배는 계속 가까워졌다. 곧 배가 땅과 맞닿을 정도가 되었다.
선이 밀리고 밀리는 교착상태의 전투가 계속 됐다. 그 교착상태를 깨뜨린 건 하나의 거대한 폭발음이었다.
콰쾅!
“뭐, 뭐야?”
모든 정파 무인들의 눈이 잠깐 돌아갈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었다. 그 굉음은 곧 연달아서 났다. 뿌연 연기가 주산군도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였다.
“이런, 미친놈들!”
멀리서 보고 있던 금수린은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 달려드는 마교도들은 몸 안에 폭탄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심지어 지긋지긋하게 정파를 괴롭혔던 비마진천의 폭발 반경보다 최소 세 배 이상은 큰 파괴력을 자랑했다.
“뒤로 후퇴!”
선두에 있는 금월상도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바로 후퇴명령을 내렸다. 앞을 받쳐주고 있던 금원대가 후퇴하자 마교도들은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후퇴, 후퇴!”
“으아아악!”
점점 폭발에 휘말린 병력들의 비명소리가 커졌다. 황금세가 직계들도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폭탄을 메고 들어올 미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꺄악!”
어느덧 금수린이 있는 곳의 지척까지 폭탄이 터졌다. 옆에 있던 곽진도가 검막을 넓게 펼쳤다. 날아오는 폭탄들이 모두 기막에 부딪쳐 퍼펑 터졌다.
“이거, 다 빼야겠구나.”
곽진도가 말했다. 금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당황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밀릴 건 예상했었다.
“후퇴!”
팽차월이 들고 있던 거대한 빨간 깃발을 내려놓고, 대신 옆에 있는 하얀 깃발을 들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는 신호였다.
황금세가가 가장 많이 했던 훈련은 전투 훈련보다는 퇴각 훈련이었다. 승리보다 중요한 건 각자의 목숨이라는 철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금세가는 훈련한대로 빠르게 빠졌다. 주산군도의 작은 섬 마다 쾌속한 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인들은 일사불란하게 본인에게 할당된 배를 탔다. 수많은 사람들이 엇갈리는 복잡한 상황에서 본인이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주산에 주둔하던 정파의 병력은 이렇다 할 피해 없이 순식간에 절강으로 후퇴했다.
지휘가 아닌 개인의 믿음으로 잡아두고 있는 마교도들은 정신적 유대감은 강할지 모르나, 부대 단위 움직임 부분에서는 명백히 훈련된 정파가 앞서고 있었다.
정마대전 첫 전투에서는 정파가 먼저 기선제압을 한 셈이었다.
*
황금세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투의 결과를 배포했다. 그들은 자신이 있었고, 자신 있는 만큼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쳐들어온 마교도들의 전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황금세가보다 월등했다.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었던 건 훈련과 진법 덕분이었다.
“···대단하네.”
난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심지어 지금 절강에는 하북팽가, 무림맹까지 합세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무당파와 소림사, 제갈세가도 지원을 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는 관측되는 마교의 전력보다 밀리지 않은 상황까지 와버렸다.
“생각보다 전력이 적게 온 건가?”
당연히 나도 마교의 전력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전생에서는 마교의 전력이 이렇게 약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준비를 잘한 거 아닐까?”
갈유월이 그런 가설을 꺼냈다. 난 그건 너무 무책임하게 긍정적인 말 같아서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소취악이 뜻밖에 말을 붙였다.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우리는 단합만 하면 신강의 마교를 완전히 짓밟을 수 있었어. 단지 단합이 안 되고, 서로 눈치를 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
“심지어 정파가 이렇게 한 몸이 된 적도 없으니, 저들도 좀 놀라고 있을 겁니다.”
개방주도 소취악의 말을 이었다. 이러면 생각보다 너무 쉬워진다. 물론 정파의 통합은 내가 이뤄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잠재력이 클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백 번 동안 생을 반복했을 때, 정파와 마교가 정면충돌한 적은 없었다. 그것을 막고자 내가 천마에게 찾아가기만 했다. 난 조금의 피해도 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어쩌면 천마라는 개인은 강할지 모르나, 조직적으로 보면 정파가 애초에 월등히 강했던 건 아니었던지.
“이 정도면 굳이 자네까지 갈 필요도 없겠는데?”
“그런 건가요?”
“그래, 어차피 약선이나 검선도 절강으로 오고 있거든.”
삼선이 온다라. 그건 또 새로 듣는 정보였다. 확실히 그렇게까지 전력이 커진다면, 절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주산군도는 정확히 말하면 중원은 맞지만 중원대륙은 아니다. 해남도와 같은 위치인 것이다.
그 정도의 전력이면 아예 대륙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심지어 천마는 절강이 아닌 신강에 있다.
“그래. 자네 한 거 많으니까 그냥 쉬어.”
소취악이 말했다.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쉬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난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이제 산적한 일들은 전부 치워내고 단 하나가 남았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치워온 장애물보다 더 큰 하나일 수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죠.”
“그럼 절강까지 가게?”
“아뇨. 그건 여러분들에게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전 따로 할 게 있습니다.”
소취악과 개방주는 내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절강까지는 안 간다는 거지?”
“네.”
“그럼 여기서 헤어지겠군.”
난 딱히 거부하지 않고 갈유월만 데리고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갈유월은 뒤를 흘깃 바라봤다. 뒤에 사람들이 안 보일 때즈음 되자 갈유월이 물었다.
“무슨 할 일이 있어?”
“천마를 잡아야지.”
난 간단하게 대답했다. 허나 갈유월은 간단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간단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말이기는 했다.
“천마를 잡는다고?”
“응. 걔가 원흉이잖아. 걔만 없으면 마교도 애들도 분산될 걸.”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잡을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거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신강에 있어.”
“신강 어디?”
“따라와 보면 알아. 너도 같이 갈 거거든.”
갈유월은 그 말에 살짝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거슬리는 게 있나 싶어 물었다.
“가기 싫어?”
“아니. 당연히 같이 갈 거야. 근데 원래 너라면 나를 안 데려가줄 줄 알았거든.”
“나도 좀 바뀌었지. 그리고 네가 진짜 필요하기도 하고.”
난 그녀의 앞에서 혼원지기를 꺼내들었다. 그 회색은 아주 옅지도 않고, 아주 짙지도 않았다. 정도를 따지자면 조금 짙기는 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호북에 들러서 칠종신기도 가져가고, 신강까지 가는 시간도 있으니까. 그동안 갈유월에게 태원지기를 많이 받아내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날 거부하지 않았다. 나한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언덕을 넘어왔던지. 이제야 마지막이 보이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