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절대무신 (3)
221화 절대무신 (3)
호북의 무당파. 난 무당파로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솔직히 무당파에 그렇게 좋은 기억이 있지도 않다.
처음 만난 무당파의 사람들은 목송과 청진. 해남파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부딪침은 무림에서는 일상다반사였다. 그 이후 청진, 목송과 부딪친 적도 없고 나도 그런 작은 은원을 끝까지 가져갈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이유마저 있었다.
“오셨군.”
“오랜만입니다. 장문인.”
목송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 목송은 장문인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징계를 받고 어떻게 장문인이 될 수 있나, 싶었다.
청진에게 들어보니 징계동에서 나온 이후로는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사람은 역시 바꿀 수 있었다. 바뀌기 어려울 뿐이었다.
“검은 맡아두고 있겠소.”
“네. 그러시죠.”
실제로 바뀐 목송과는 얘기가 잘 통했다. 지금의 중원에는 서로의 전통은 인정하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양보가 우선되어야 했는데, 목송은 가장 협조를 잘해준 사람 중 하나였다.
“갈 소저도 오랜만이군.”
“네. 안녕하세요.”
목송의 인사에 갈유월은 멋쩍게 대답했다. 그때는 한창 사회성이 떨어졌을 때라 목송 앞에서 별의 별 얘기를 다 했었지. 아마 욕도 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목송의 인도에 따라 무당산을 올랐다. 아직 호북까지 전쟁의 화가 번지지 않아, 무당산은 고요하고 청신했다.
“아직은 평화롭군.”
앞에 있던 목송이 말했다. 목송도 나와 같은 걸 느낀 모양이었다.
“계속 평화로워야죠.”
“사람은 평화로운 걸 못 견디는 족속들이라. 본디 그렇게 태어났지.”
도사의 입에서 나오기엔 냉정한 말 같지만, 그게 목송의 깨달음인 모양이었다. 각자의 깨달음은 다 다른 법이니까. 물론 극에 가면 하나로 수렴하게 된다.
“그렇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야. 나무 밑에서 개미 부족들끼리 치열하게 싸워봤자,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맞죠.”
“그러니 모든 건 우주 아래 공평하게 무의미하지.”
어째서일까. 목송은 꽤 높은 깨달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그것은 본인을 극복했기에 가능한 것일 테다. 원래 목송은 본인이 말한 대로 평화로운 걸 못 견디는 족속이었지만, 우주와 동화됨으로써 모든 연을 끊어 내버렸다. 그가 장문인이 된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당파 본파를 걸었다. 무당의 도사들이 날 힐끔거리며 바라봤다.
“와, 진짜 의장님이야?”
“진짜 잘생겼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군.”
“옆의 소저도 아름답군.”
이제 나는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난 그게 신기했다.
목송은 우리를 장문인실로 인도했다. 앉은뱅이책상에는 싸구려 녹차 세 잔이 놓여있었다. 이미 목송이 준비를 시켜놓은 모양이었다. 찻잔에서는 방금 끓인 듯 훈훈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목송은 문 맞은편에 앉고, 우리는 문을 등지고 앉았다. 바닥에 패인 곳이 없어 정좌로 앉아야 했다.
“보기 좋군.”
목송이 말했다. 우리의 관계를 보고 한 말일 거다. 갈유월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돌려 차를 마셨다.
“감사합니다.”
“보기 드문 선남선녀니까. 아마 가주의 결혼식은 중원에서 가장 큰 경사가 되지 않을까 싶네.”
“그렇게 만들어야죠.”
목송은 빙그레 웃었다. 옛날에 우리에게 시비를 걸었던 아저씨는 십몇 년이 지나 초로의 노인이 되었고, 얼굴의 심술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시간은 여러모로 참 위대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셨다. 차를 반쯤 마셨을 때즈음, 장문인실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라.”
난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바로 청진이었다.
청진은 팔에 푸르고 반투명한 천쪼가리를 걸치고 있었다. 난 직감으로 그 천쪼가리가 마지막 남은 칠종신기인 수호의라는 것을 알았다.
청진은 그 천을 목송에게 넘기고 조용히 뒷걸음질 쳐 장문인실을 빠져나갔다.
난 목송을 바라봤다. 목송은 뜻 모를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어째, 칠종신기가 무난하게 내 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근데 이건 너무 무난했다.
애초에 우리는 장문인실로 들어와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내가 수호의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난 봤네. 자네가 칠종신기를 들고 천마와 싸우는 모습을 말이야. 그게 미래라면, 우리가 아무리 수호의를 주지 않으려고 버텨봤자 자네 손에 들어갈 게 분명하다는 뜻이겠지.”
목송의 말은 맞았다. 만약 안 가져가려면 훔치려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장문인은 미래를 볼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됐다네.”
“음.”
언제부터 미래를 볼 수 있었다는 걸까. 난 인간의 가능성에 미래시(未來示)도 있다는 걸 안다. 당장 천주성주가 그러지 않았는가. 그래도 목송이 그 경지까지 갔다는 건 좀 놀랄 일이었다.
“언제부터 그러셨죠?”
“글쎄. 언제 딱 생긴 게 아니야. 처음에는 막연히 직감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지. 그 직감을 바탕으로 추론하니 몇 달까지 앞서 볼 수 있더군. 그리고 그게 우주의 눈에서 보니 모든 게 명확하여, 모르는 게 없어지게 된 게지.”
“그렇군요.”
사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수백 번의 회귀를 거친 것도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도 물어보지 않을 터였다.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될 지도 안다는 말인가요?”
가만히 있던 갈유월이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꽤 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송은 그저 웃고 있었다.
“자네들 둘의 관계? 아니면 정파?”
“다, 당연히 정파죠.”
갈유월은 당황했다. 어쩌면 우리들 둘의 관계도 궁금할 것이었다. 그러나 원하는 답변은 얻을 수 없을 것이었다.
“말해주지 않을 거라네.”
“네?”
“말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으니.”
목송은 웃었다. 갈유월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문인은 정파 사람 아니신가요? 근데 정파를 위해서 본 능력을 활용하실 생각이 없는 건가요?”
“그렇다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야 할 이유라는 게 뭔데요?”
“아무 것도 없지. 그러니까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 아닌가.”
갈유월은 답답하다는 느낌으로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난 조용히 갈유월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놨다. 갈유월이 멈칫했다. 난 그녀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어주었다.
“왜? 넌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 근데 그 궁금함도 사실 장문인한테는 의미 없는 거야. 우리한테나 의미 있는 얘기지.”
“의미가 뭔데?”
“말했잖아. 개미들끼리의 전쟁이 사람에게 의미 없는 것과 같은 거야.”
왜냐하면, 이미 저 자는 자연과 동화되었으니 말이다. 시간과 공간이 무의미해지고 하나의 생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
인간은 시간을 거슬러서 무의미하게 만들고, 신선은 시간과 동화되어 무의미하게 만들뿐.
근원적인 차이가 있지만 결과는 같다.
아마 나도 더 시간을 회귀했으면 목송과 같이 됐을 것이다. 몇 천 번의 회귀 끝에 시간에 무감각해졌다면 모든 인연을 저버렸을 거다. 그때는 연이고 추억이고 모두 무의미해지니 말이다.
초월.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과 다른 존재가 되었으니, 인간의 일에 관여할 이유가 없는 거다. 사람이 죽는다고 벌이 눈 하나 깜빡하겠는가.
“자네는 어떻지? 궁금한 게 있나?”
목송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궁금한 게 있죠. 제 세상의 얘기니까요.”
“신기하군. 어째서 자의로 고통의 굴레에 남는 거지? 인생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거야. 지금의 나는 편안하네. 자네도 편안해질 수 있었을 거야.”
“불안함과 고통 속에 아름다움이 있더군요. 그게 인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래. 난 이제 이해 못하겠지만,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건 인정하네.”
“신기하군요. 누구보다 속물적이었던 장문인이 자연과 동화되다니요.”
“모든 건 바뀌기 마련이지.”
목송이 차를 들이켰다. 나도 차를 다 마셨다. 서로 동시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무 탁자에 울리는 소리가 청명했다.
“그래. 수호의를 가졌으니 더 볼 일은 없지?”
“그렇죠.”
“그렇군. 그럼 잘 가게나. 배웅은 청진이가 해줄 걸세.”
목송이 인사를 했다. 우리는 동시에 일어났다. 갈유월은 여전히 찝찝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리의 대화가 이해가 안 될 것이었다.
나는 목송에게 공수로 최대한 예의 있게 인사했다.
왜냐하면 목송을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난 갈유월을 먼저 내보내고 뒤따라 나가려고 했다. 그때, 목송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이보게.”
“네.”
“그때는 미안했네.”
뒤를 돌아봤다. 목송이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그가 지금까지 그걸 담아두고 있는지 몰랐다.
“유일하게 해결해야 할 인연이었지. 자네와 갈 소저는 말이야.”
“그렇군요.”
“이제 내 인생에서 남은 건 없다네.”
“그런가요.”
“처음 태어났을 때와 같이···”
목송은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며 멎었다. 눈을 깜빡했다. 목송의 몸은 사라져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에는 구슬 몇 개가 있었다. 사리였다. 등선의 증거였다.
그가 육체를 벗기 위해서는 모든 연을 끊었어야 했는데, 내가 유일하게 마지막으로 남은 연이었던 거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장문인의 등선을 알리고, 무당산을 내려왔다. 이제 나는 칠종신기를 전부 가진 셈이 되었다.
*
원래 갈유월과 돌아다니며 한 방만을 잡았지만, 이번만큼은 방을 나눠 잡았다. 갈유월은 살짝 실망한 듯했지만, 내가 할 게 있다니까 군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방에서 칠종신기를 늘어놓고 하나씩 살펴봤다. 내가 정리한 칠종신기의 의의는 다음과 같았다.
신옥주는 자연에 있는 기를 더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한다.
명경은 내 안의 오염된 기운을 보여준다.
멸마선장은 내 안의 오염된 기운을 정화한다.
청라보패는 초월할 때 급변하는 정신을 지켜준다. 정신을 지켜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 감정도 되살릴 수 있었다.
혈기린반지는 땅에서 나오는 어떠한 독보다 강한 극독이다. 즉 땅의 요체다.
풍화륜은 바람과 불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한다. 불과 바람의 요체다.
수호의(水狐衣)는 물 안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물의 요체다.
난 이로써 땅, 바람, 물, 불의 요체를 전부 얻었다. 자연의 요체를 꿰뚫었다. 정신이 동화되는 게 느껴졌다.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자연이 곧 내가 된다.
송로를 꺼내봤다. 실험을 할 게 있었다. 송로를 잡은 뒤 손바닥을 쫙 펼쳤다. 송로는 천장을 바라본 채 둥둥 떠있었다. 이기어검의 경지. 전설에만 나오는 경지였다.
이게 바로 화경이었다. 자연과 동화(同化)된 경지. 물론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경지도 화경이었지만, 좀 달랐다.
지금껏 반평생을 같이 한 송로가 검 끝부터 갈라지며 부서졌다. 철조각들은 가루로 분해가 되었고, 내 몸의 겉을 맴돌았다. 송로의 칼날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송로의 칼날은 대기 중에 있는 게 아닌,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되었다.
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땅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선택해! 뭘 할 거야?
- 미래를 볼 테야, 과거로 돌아갈 테야?
- 참 신기한 녀석이야. 역겨운 냄새가 나면서도 친근한 기운이 같이 흐르니.
자연의 것들은 날 두고 왈가왈부하고 있었다. 아마 역겨운 냄새는 내가 시간을 거스를 수 있게 나는 것일 거고, 친근한 기운은 자연과 동화됐기에 풍기는 것일 테다.
“나는···”
나는 그 두 갈래 길에서 고민 없이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