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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22화 (223/225)

222화 절대무신 (4)

222화 절대무신 (4)

갈유월은 몸이 달았다. 솔직히 말하면, 금목환과의 입맞춤은 중독성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의 모든 걸 차지하고, 점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방을 구하면, 눈 딱 감고 돌진을 해보려고 했다. 금목환 몰래 사놓은 검은색 속옷만을 입고서 말이다. 그런데 금목환은 눈치라도 챘는지 각방을 쓰자고 했다.

“음.”

갈유월은 옷깃을 걷어서 자신의 몸을 봤다. 속옷이 있긴 있지만 다 비쳐서 옷의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이지만 퍽 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똑똑.

“우왓···”

갈유월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린 거다.

“···누, 누구?”

누구라고 해봐야 뻔했다. 그녀의 연인이었다.

“나.”

갈유월의 얼굴이 상기됐다. 아무리 금목환이 똑똑하다고 해도 방금까지 옷을 헤치고 자신의 몸을 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터였다.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걸 보면 정말 전쟁통에서도 아이를 낳는다는 말이 거짓만은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들어와.”

갈유월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초롬한 목소리를 냈다. 문이 열리고 금목환이 들어왔다. 금목환은 딱 들어오자마자 갈유월을 바라보더니 갸웃했다.

“어디 아파?”

“응?”

“얼굴이 붉어졌어.”

금목환은 갈유월이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본인의 이마를 갈유월의 이마에 대었다.

“열이 나네.”

“···응.”

“왜 열나는지 짐작은 돼?”

금목환이 물었다. 갈유월은 죄책감이 들었다. 정마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급한 상황에서 야한 생각을 하느라 열이 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갈유월이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금목환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대답하지 마.”

“뭐, 뭔 대답을 할 줄 알고?”

금목환은 도리어 성을 내는 갈유월을 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갈유월은 금목환이 알아맞히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상대방 마음을 꿰뚫는 기술 따위가 중원에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 금목환이 말했다.

“그건 유월이, 네가 위기에 무던하고 불감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제일 마지막 것에 아로새겨진 본능이기 때문에 그래.”

갈유월은 그 말에 완전히 얼어버렸다.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 자신의 생각을 엿보고 한 것만 같은 말이었다.

그래도 혹시, 그냥 던져본 말이 아닐까. 갈유월은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금목환은 그 희망마저 무참하게 부셔버렸다.

“그런 건, 끝나고 나서 하자. 알았지? 절강으로 갈 거야. 준비해.”

금목환은 미소를 끌며 방 밖으로 나갔다. 갈유월은 넋이 나간 상태로 금목환의 나간 문을 바라봤다.

*

사실상 절강으로 들어온 마교도가 막히면 마교가 이길 가능성은 사라진다. 천마만 없다 뿐이지, 소천마인 천희수, 그 외 남은 팔마도 모두 출동한 대규모의 작전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만한 고수들을 가지고 있는데도 아직 마교도들은 주산군도에서 발이 묶여있었다. 대륙을 아예 채 밟아보지도 못한 거다.

“어떻게 할 건가?”

육마 중 하나, 광마(狂魔)가 말했다. 천희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예전에는 둘 다 같이 팔마로 동등한 위치였지만, 지금의 천희수는 소천마였다.

“일단 자리에 맞는 말을 써주길 바라네.”

“개뿔. 그런 식으로 정통성 없이 되는 줄 알았으면 저번 공자님도 그렇게 안 모셨지. 이게 뭐야? 아무리 우리를 병신으로 여기셔도 그렇지.”

광마가 볼멘소리를 했다. 환마는 천유현에게 죽었고, 검마는 소천마가 되었으니 남은 건 육마였다. 광마를 제외한 오마는 광마의 의견에 모두 동감하고 있었다.

동기였던 사람에게 말 높이는 것만큼 배 아픈 일은 없었다. 물론 천마는 아랫것들의 생리 따위야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런 인사를 단행한 것이지만 말이다.

“아니, 천마님은 마신님과 직접적인 통로가 있는 사람이잖나. 소천마는 마신님이 점지해주는 것이고. 근데 소천마가 죽자 마신님이 대충 자네를 소천마라고 점지했다고? 형편 좋은 얘기도 유분수지.”

광마는 별호에 걸맞지 않게 논리정연한 말들을 쏟아내었다. 하긴 광마는 무기를 휘두를 때 미친놈처럼 보인다는 거지, 진짜 미쳤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천희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 앞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한 이유도, 지휘관들이 심적으로 통합이 안 되어있는 게 컸다. 분열이었다.

마교가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정파에게 하려던 그 분열, 그것이 마교의 진영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갑자기 양아들이 된 천희수가 있었다.

“정말 마신님은 너를 천마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판단하신 거냐?”

“대체 네가 뭘 했다고?”

다른 마인들이 울분을 토했다. 천희수는 과거를 더듬어봤다. 이 싸움에 출전하기 전, 천하진이 한 말이 있었다.

- 네가 해야 할 건 통합이다. 부사제의 역할은 늘 그래왔다. 네 아래 있는 사람들을 통합해라.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 역시 끌어안아라. 그것이 부사제의 할 일이다.

천희수는 그 말을 맹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실제로 마신을 봤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불을 지피고, 물난리를 치게 하고, 태풍을 불러일으키고, 땅을 뒤집게 하는 신력.

마신님의 영접은 그렇게나 영광스러우면서도 거룩했다.

- 끌어안아라.

천희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광마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모두가 말릴 새도 없었다.

“무, 무슨 짓이냐?”

당황한 광마가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끝에 갈수록 급격하게 힘이 빠졌다.

모두가 두 눈을 의심했다. 천희수의 품속에 있는 광마가 급격하게 말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악, 으아아악!”

광마의 비명소리에는 진기가 같이 빨려나간다는 섬뜩함을 반영하고 있었다. 어느덧 천희수는 찌그러진 가죽이 된 광마를 놓아줬다. 털썩, 어찌나 가벼웠던지 먼지 하나 일지 않고 가죽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천희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두려운 표정으로 천희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 옛날에야 같은 팔마였다지만, 천마의 무공을 익힌 천희수는 그들보다 월등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천희수는 이것이 천마가 말한 통합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팔마 중 한 명도 볼멘소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공포심으로 일어난 사람의 진기를 빨아들여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천추마령신공이 발동되고 있었다.

“으아아악!”

마교 장로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지만, 그것은 바깥까지 퍼지지 않았다. 천희수가 기막으로 막아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천희수는 여섯 명의 장로를 포식했다.

몸에 힘이 가득 깃들었다. 누구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기분이란 분명 이런 것이리라. 대들다가 가죽쪼가리가 된 전 동료들을 보며, 천희수는 크게 웃었다.

*

전투의 양상은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했다. 주산군도에서 퇴각하면 말할 것도 없는 정파의 승리였다. 어째서인지 마교도들이 주둔해있는 주산군도는 잠잠했다.

“포기한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얼마나 독한 놈들인데.”

오유해와 소취악이 절강의 항구인 진해에서 주산을 바라봤다. 어둠이 깔린 주산군도에서 움직임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검은 바람에 검은 섬이 나부끼는 정도다.

“그나저나 이 나이가 되어서 초병 역할이라니. 참, 뭐랄까. 감회가 새롭구먼.”

“우리가 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은가.”

약선 화종도는 다친 정파 무인들을 살리는 후방의 총책을 맡았고, 오유해와 소취악은 전선 전방의 총책을 맡았다.

절강에 있는 정파 무인들은 본인들이 이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삼선 중 세 명이 전부 와있다. 칠존들도 꽤 많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까지 안 움직일 참이지?”

소취악과 오유해는 안력을 돋워 주산군도를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특이사항은 없었다. 며칠 째부터 사람이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한 명이 섬과 섬을 등평도수로 움직이는 것 빼고는 섬들 자체에 생명력이 아예 없어진 것 같았다.

벌써 한 사람만 움직인지 며칠 째인가. 슬슬 지루하다고 여길 때즈음이었다.

“엇?”

오유해가 소리를 쳤다. 잠깐 다른 곳을 바라보던 소취악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부터 물보라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물보라의 중심에는 검은 인영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설마 지금 우리한테 오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오유해와 소취악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만약 간자로 보내는 거면 좀 더 은밀히 와야 하고, 공격을 하려면 더 많은 사람을 데려와야 했다.

점점 인영은 가까워져갔다. 어느덧 얼굴이 식별될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놀랍게도 남자는 소취악, 오유해가 있는 쪽을 명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이번 마교 원정대의 대장, 소천마로 관측되는 천희수였다.

소취악과 오유해가 천희수를 알아봤듯, 마교 입장에서 가장 큰 적인 삼선의 얼굴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자는 여기가 삼선 중 두 명이 있다는 걸 알고도 달려오는 거였다.

이제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부하도 아니고 저렇게 대장이 혼자 날아올 정도라면 무언가 수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먼저 하겠네.”

오유해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검을 느리게 빼어들었다. 그리고 물보라를 향해 천천히 내리쳤다.

달려오던 남자는 옆으로 피했다. 긴급하게 움직였지만 여전히 물을 밟을 수 있을 정도로 균형은 잘 잡혀있었다. 그와 함께 남자가 있던 쪽까지 바다가 두 갈래로 갈렸다.

남자가 있던 곳 기준으로 양쪽의 파도가 일고, 그곳으로 겹쳐갔다. 남자는 몸을 비틀더니 본인이 밟고 있는 바다를 디뎌 하나의 화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빠르군.”

소취악이 말했다. 천하제일경공이라 불리는 소취악이 인정할 정도의 빠름이었다. 오유해도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웠다. 남자는 나이가 중년 정도에 가까워보였는데, 말도 안 되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뛰어오른 남자의 두 팔에 보라색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자는 소취악과 오유해가 있는 쪽으로 두 팔을 찍어 내렸다. 오유해는 오른쪽으로, 소취악은 왼쪽으로 산개했다.

쿠콰콰쾅!

그야말로 놀라운 파괴력이었다. 땅 전체가 갈라져 지반이 선연하게 드러났다.

그 파괴력은 소취악과 오유해도 쉽게 낼 수 없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 둘은 놀라면서도 곧바로 침착해졌다. 시대의 풍파를 맞으며 단련해온 그들의 마음은 철과도 같았다.

소취악과 오유해, 천희수는 때로는 한 데 엉기다가도 흩어지고, 또 다시 엉기는 걸 반복했다. 그들이 스칠 때마다 섬광이 번쩍거리고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당장 정파 무인들이 나왔다. 나온 사람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검존 종리운, 도존 팽의석, 독존 당해립. 칠존 중 세 명이 있었다.

그들도 바로 합세하려 했지만, 소취악이 외쳤다.

“오지마라!”

“예?”

바로 검강을 날리려던 종리운이 멈칫했다. 이번엔 오유해가 외쳤다.

“너희들이 껴봤자 방해밖에 안 되는 상대다!”

그건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도 중원에서 열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고수들이 껴서 방해만 된다니. 세 명 모두 칠존이 된 이후에는 처음 듣는 짐덩이 취급이었다.

그들은 잠깐 발끈했지만, 곧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지만, 저 신원 불상의 남자가 삼선 중 두 명과 싸우면서도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모든 마교도를 천추마령신공으로 빨아들인 천희수의 공력은 정파를 압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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