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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24화 (본편 완결) (225/225)

224화 절대무신 (6) - 본편 완결

224화 절대무신 (6) - 본편 완결

우리는 주산군도로 갔다. 그곳에는 목내이처럼 변한 수많은 시체들이 깔려있었다.

보나마나 천추마령신공으로 흡수한 흔적일 테다. 천희수에게 말했던 건 농담이 아니었다. 난 전능하지는 않지만 전지(全知)하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과 시간에 동화될 수 있는 능력. 각자 다른 능력이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은 태을헌원신공의 극성을 이뤘기에 얻은 능력이었고, 시간에 동화될 수 있는 능력은 태원지기를 극성으로 이뤘기에 얻은 능력이었다.

시간에 동화된다 함은, 내가 곧 법칙이라는 셈이었다. 내게 일 각은 한 시진보다 더 길게 할 수 있었으며, 그 반대도 가능했다.

무한한 시간과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날 전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목환이.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기는. 지금 자네는 뭔가 낯설어.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

종리운은 날 걱정하는 듯 보며 말했다. 사실 지금 내 존재는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다. 동화와 역천의 사이. 곧게 서있는 기준이 아닌 부표에 떠돌고 있다.

“빨리 일을 끝내야되는 건 맞습니다.”

“일?”

“천마 말입니다.”

종리운은 입을 다물었다. 소취악은 약선이 있는 후방으로 내보냈고, 지금 내 주변에는 오유해, 종리운, 팽의석이 있었다.

그들은 패배가 안겨준 굴욕감에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정파 명숙들이 단 한 명을 상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천마도 아닌, 소천마인 천희수를 상대로 말이다.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네.”

오유해가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어른인 오유해가 가장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강함을 가지고 왜 지금까지 암약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야.”

“일시적인 강함일 뿐이죠. 마기는 결국 역천입니다.”

“역천?”

“정확히 말하면, 뱀의 머리와 꼬리가 뒤바뀐 셈이랄까요. 꼬리로 물고 머리로 걸으니, 그것이 역천입니다. 허나 얼핏 보면 그냥 뱀이 기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죠.”

그게 자연 그 자체인 태원지기와 비슷했던 이유기도 하다. 마기는 역천이다. 아이가 발부터 태어나며, 비와 번개는 아래에서 하늘로 내치며, 꽃잎은 하늘로 떨어진다.

“···아무튼, 그 강함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거라는 얘기입니다. 자연은 역천의 심판관이니까요.”

“알쏭달쏭한 얘기로군. 선문답인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방금 대화에 내가 지금까지 얻은 깨달음을 담았으니. 물론 그 깨달음을 보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건 내 깨달음이 지고(至高)해서가 아니라, 이 깨달음이 개인적이기 때문이었다.

나와 자연, 우주. 그것들과의 상관관계. 이런 것들이 어찌 하나로 결정되어 있겠는가. 사람의 수마다 그 깨달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올라와야 될 경지인 거다.

오유해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물어보면서도 살짝 민망한 느낌이었다. 한참 어린 자에게 깨달음이 밀렸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나이는 깨달음과 전혀 관련 없는 변수다. 우주에서 보면 백 년과 일 년은 똑같이 하나의 점일 뿐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세요.”

내가 말했다. 여기 수많은 과거들이 있다.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어나간 이 수많은 사람들.

나는 등을 돌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갈 곳이 있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하나?”

오유해는 그걸 눈치 채고 물었다. 난 대답할까, 말까 했다. 걱정할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대답하기로 했다.

“신강으로 갑니다.”

“···혼자?”

“아뇨. 일행이 있습니다.”

“일행?”

“항주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 잠자코 기다려주고 있겠죠.”

“왠지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내 말에 끼어든 건 오유해가 아닌 종리운이었다. 선배의 말을 끊고 나타날 정도면 어지간히 급하긴 했나보다.

“설마 그 일행이 유월이인가?”

“네.”

“···허, 허허.”

종리운이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신강이라는 적지로 갈 때의 일행. 종리운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둔하지 않았다.

“유월이가 자네를 많이 좋아하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군. 다행이야.”

종리운은 한숨을 쉬었다. 새벽녘의 공기가 차갑게 담긴 푸른 입김이 빠져나왔다. 그에게는 감개무량한 일일 것이다. 딸처럼 키웠던 제자가 누군가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말이다.

“내 평생 유월이의 짝을 인정할 날이 올 줄이야. 유월이는 내 가슴으로 키운 자식이니, 누구에게 줘도 아깝다고 생각했네.”

“이해합니다.”

“근데 자네라면, 완벽한 혼처지. 누가 말리겠나.”

“감사합니다.”

종리운은 입맛을 쯧 다셨다. 입에서 쓴맛이 나는 걸 테다.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딸과 같은 사람을 보내는 건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신강으로 둘이 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신위를 봤으니 안 보낼 수도 없구먼.”

“그러고 보니까 아직 가주 별호가 소제였지? 이런 사람을 보고 작다니, 대체 어디가 작단 말인가.”

이번엔 팽의석이 끼어들었다. 오유해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이 정도 신위라면 뭔가 상징적인 별호를 만들어야지.”

“뭐가 좋을까요?”

“무신, 어떤가? 그가 보여준 신위라면 응당 받아야 할 별호 아닌가?”

“너무 간단하잖아요.”

“그럼 절대무신?”

오유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낄낄거렸다. 종리운과 팽의석도 웃었다. 원래 과도한 포장은 사람을 맥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절대무신이라니. 그 무슨 쪽팔린 별호인가.

“황금세가 절대무신. 어감 좋네.”

“진짜 구리네요.”

참다못한 내 답에 모두가 웃었다. 아무래도 이 별호는 쓰이지 않을 것 같았다. 농담 속에서 흘러나온 별호이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잠깐 머물다 떠날 이름이었다.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가게. 절대무신.”

“다시는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시지요.”

나는 경고 한 마디를 남기고 주산을 빠져나왔다. 난 내가 정파의 미래인 줄 알았는데, 정파의 미래는 저들이었다.

난 정파의 현재를 지켜야하는 사람이었다.

그 현재를 지키기 위해서, 신강으로 간다.

*

모래바람이 불었지만, 모래는 우리 몸을 침습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내가 기막으로 막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천마를 만나러 가는 거야?”

“응.”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응.”

갈유월의 물음에 난 바로 대답했다. 일반 마교도들은 우리를 볼 수 없었다. 난 지금 자연과 완벽히 동화된 상태니 말이다.

사막에서는 모래처럼 보이고, 숲에서는 나뭇잎처럼, 계곡에서는 물방울처럼 보이는 게 지금의 나다. 물론 갈유월도 그렇게 보이게끔 내가 수를 써놨다.

전지하다는 건 전능하단 뜻은 아니지만, 전능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아마 이건 획기적인 개념일 텐데,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이동식 진법이었다. 갈유월도 이 개념을 보고 어이 없어했다. 살수들이 이런 진을 쓰고 다니면 중원 사람들 다 죽겠다며 말이다. 물론 유출할 생각은 없다.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나 하나다.

우리는 그렇게 신강을 자세히 둘러봤다. 이 추운 신강에서 허름한 삼베옷을 입고 기도를 하는 이가 보였다. 어떤 이는 집에다가 마신의 조각상을 두고 무릎을 꿇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신님, 마신님. 저희 아들을 살려주소서···. 소천마님과 같이 나간 병력들에게 축복을 해주소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미 죽은 걸 떠나서, 마신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없는 존재에게 빌면 존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본인의 공허함만을 드러내는 셈이다.

그 외에도 난 수많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마교도 모두가 무인은 아니었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마공을 익히지도 않았다. 허나 그들은 마교도였다. 정신이 이미 마교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기서 마교를 부순다 해도, 그들 하나하나가 마교의 제단이다.

이 사람들을 전부 죽여야 할까. 그러면 마교는 확실히 절멸될 것이었다. 그때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금목환.”

갈유월이 내 손에 깍지를 집어넣었다.

“이 사람들은 선택할 수 없었어. 구석에 몰린 사람들이니···”

난 갈유월을 바라봤다. 실제로 그녀의 말은 맞았다. 분명 이들 중 중원대륙에서 태어났으면 훌륭한 무인이 될 수 있는 사람도, 평범한 상인이 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저 운이 안 좋게 신강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일개 사람이 버티기는 힘든 중원의 멸시. 그들이 똘똘 뭉치게 만든 계기는 중원에 있기는 했다.

“괜찮아. 죽일 생각 없었어.”

“정말?”

“그럼.”

난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광신도들을 바라보고 나아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도 찝찝했다. 저들이 단순히 운 때문에 마교도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강의 사람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마교도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다.

문제는 단 한 명. 교주인 천마 뿐이었다. 이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 많은 세계, 많은 깨달음을 망쳐놓은 걸까.

난 천산산맥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기를 풍겼다.

쿵!

내 몸에서 기파가 뻗어 천산 꼭대기까지 닿는다. 나뭇가지 위에 있던 눈이 쓸려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산에 쌓여있던 눈들이 불어 흩어지니 천산산맥에 뜻밖에 눈보라가 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갈유월은 등 뒤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녀는 내가 왜 데려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라는 생각 때문에 데려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날카로운 눈매도 귀엽게 보였다.

곧 흰색 장삼을 입은 사람이 산맥에서 느릿느릿 내려왔다. 사백 번의 회귀. 난 그의 얼굴을 까먹을 수 없었다.

“천마. 천하진.”

“반갑네. 가주.”

“죽을 준비는 됐나?”

천하진은 내 말에 껄껄 웃었다.

“몇백 번을 싸워도 안 됐던 것이, 이번에는 될 것 같나.”

난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천마도 내가 시간을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자연과 동화된 사람. 자연이 거슬러지는 걸 감지 못할 리가 없었다.

천마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들었다. 그곳에서는 불로 된 폭풍이 치다가, 물로 된 폭풍이 치다가, 모래 폭풍이 치다가, 그냥 폭풍도 쳤다.

“난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날 죽여도, 난 무엇이든 살아날 수 있어. 몸만 있으면 말이야. 그래서 부천마가 중요했는데, 쯧. 자네가 다 망쳐버렸지.”

천하진은 오만했다. 마치 자신이 죽을 일은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렇겠지. 천마는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노화되는 육체의 껍데기만 바꿔왔을 뿐이다.

매화검존이나 다른 옛 고수들이 있을 때도, 천마는 천마였다. 그러나 매화검존을 비롯한 고수들은 너무 자연과 동화된 나머지, 인간이 만들어낸 법칙들과 멀어졌다. 식물과 동물은 인간이 만들어낸 법을 지키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래서 그들은 천마를 남기고 등선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천마 역시 사라질 사람으로 보였을 거다. 이 세상에 불멸은 없으니까.

그러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에게 영생을 줄 수는 없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도, 마교도들이 태어나고 있다. 삿된 가르침을 받으면서 말이다.

한 사람의 영달과 영생을 위한 거짓부렁에 모두 속아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전지하다.”

“오, 공교롭군. 나도 그런데.”

천하진이 껄껄 웃었다. 난 그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신은 없다. 넌 신을 참칭하는 사람이다.”

“뭐, 그렇지. 그런데 이런 허술한 교리를 믿는 놈이 잘못 아닌가.”

천하진이 쉽게 수긍했다. 물론 당한 사람이 잘못했다는 뻔뻔한 논리였지만 말이다.

“근데 적어도 넌 나를 죽일 수 없어.”

천하진이 웃었다. 그의 몸에서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방어해주지 않았다면 갈유월은 질식해 죽을 정도로 짙은 마기였다.

“나는 천마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우주다. 누가 우주를 베는가.”

물론, 그랬다. 내 검은 천마에게 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난 높이 칼을 들어서, 느리게 내리쳤다. 천마의 몸이 반으로 갈렸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복구가 될 것이었다. 복구가 되는 장면은 징그럽게나 봐왔다.

“어?”

천하진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럴 만도 했다. 원래는 붙어야 할 몸뚱이가 붙지 않으니까.

“뭐, 무슨 짓을 한 거냐?”

갑자기 황급해진 천하진이 말했다. 이제 그는 고통까지 느끼는 듯했다.

“우주를 벨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지.”

내가 말했다. 난 자연과 인간,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니 난 자연도, 인간도 아닌 존재였다.

무어라 칭할 수 없는 곳. 나는 그곳에 와있었다.

난 다시 칼을 느리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하진을 향해 천천히 내리쳤다.

“으악, 으아아악!”

그제야 눈에 공포를 담은 천하진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 비명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나무를 베면 나올 일이 없는 핏물이 흘러 웅덩이를 만들었다.

뒤에서 갈유월은 그걸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난 더 이 상태를 유지하기 싫었다. 이 상태는 전지하며, 이제는 전능에까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갈유월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보내야 할 순간은, 기억들은, 또 수의를 입을 걸 아는 자의 엄숙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란 말이냐.

난 갈유월에게 돌아가 입을 맞췄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입술을 촉촉히 하고 있었다.

다시, 황홀한 시간으로 돌아간다. 난 내 몸에 있는 태원지기를 빼고, 갈유월의 몸에 있는 태원지기도 빼줬다. 이제 이건 필요 없었다. 우리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태원지기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람이 자연을 이해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사람이 자연을 알려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난 이렇게 느끼는 게 좋았다.

이론적인 논리보다는 감각적인 충동.

내 안의 전지함이 빠져나간다.

우주의 비밀. 역학. 또 다른 세계. 다른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빠져나간다.

지금 내게 남은 건 아름답게 눈을 감고 있는 갈유월 밖에 없었다.

난 다시, 인간을 선택했다.

K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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