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가 집착하는 악당이 되었다-5화 (5/328)

EP.5 쇼가 끝난 뒤에

"아이고...  나 죽겠네..."

와.

진짜 죽겠다.

"그으윽... 윽."

겨우겨우 침대에 누운 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으아악..."

악당 살려!

***

"하아, 에휴."

눈을 떠보니 이튿날 아침.

거의 한나절을 자다가 쑤시는 삭신을 뒤로한 체 일어나 티비를 켜보니.

뉴스는 전부 어제의 내가 일으킨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뉴스와이드- 빌런 '에고스틱'심층분석]

티비에는 두 패널이 나와 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초능력이 어쩌구, 해킹 실력이 어쩌구...

그러더니 내 얼굴이 딱-하니 티비에 나왔다.

검은 머리카락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회색 마스크를 쓴 모습.

"와! 어머니, 저 방송 탔습니다! 아, 이 세계에서는 없으시지?"

어머니, 저쪽 세계에서 잘 지내십니까?

저는 이쪽 세계에서 완전 유명인이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저 잡으려고 혈안이 됐네요.

"아이고, 아이고 내 삭신이야..."

나는 허리를 탁탁 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누워 있을 시간이 없어요.

일어나 보니 내 옷은 아직도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다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로브를 입은 모습.

입은 채로 자서 그런지, 여기저기 구겨져 있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휴, 옷이나 갈아입자."

옷장에서 편한 옷을 갈아입고 난 뒤, 노트북을 켰다.

위잉-하면서 뜨는 윈도우 효과음.

켜지기 시작하는 노트북을 뒤로한 체 방을 둘러보았다.

창밖으로는 햇볕이 비추는, 조그마한 원룸.

"씁. 여기도 빨리 떠야 하는데."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꽤 오래 살았던 집이지만, 이제 돈도 벌었는데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이제 명색이 A급 악당인데, 좀 폼나는데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나 정도면 A도 아니고 AAA급 악당정도 되는 거 같은데. S급 승격은 안 시주나?

뭐, 아직 그 정도 악행은 안했으니 안되겠지만.

근데 그건 그렇고, 사람들 반응은 어떠려나?

켜진 노트북에 들어가, 인터넷을 살펴보니...

"자, 어디 보자... 아이고, 난리가 났었네."

포탈 헤드라인에 온통 내 얘기다.

[대규모 테러 생중계....빌런 '에고스틱'은 어떤 인물인가']

"이렇게 뜨거운 관심은 처음인걸."

역시, 어그로를 끄는 게 정답이었다.

저 한강 저 구석에서 배 납치하고 했으면 어디 누가 알아줬겠어?

한국 히어로 협회 특성상 아무도 모르게 묻으려 들었을 거다. 뭐, 그래도 9시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언급은 됐겠지만은...

[오늘 낮 2시, 한강 유람선에서 대규모 테러 행위 일어날뻔.. 다행히 사상자는 '0명']

뭐 이렇게 나오고 땡 끝났겠지.

지금처럼 막 온종일 내 얘기만 하고 이러지는 않았을 거다.

이게, 현장감이라는 게 무서운 거거든.

생각해 봐라, 친구랑 티비로 닌텐도하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티비가 꺼져.

그러더니, 갑자기 내가 나온다. 검은 옷, 회색 마스크에 음흉하게 웃고 있는 내가.

그러더니 배에 폭탄을 설치했다네? 근데 먼저 누른 사람이 살 수 있다네?

내가 이걸 영화관에서 볼 때도 전율했는데, 이걸 실제상황으로 본 대한민국 국민들은 얼마나 집중했겠는가.

솔직히 이 정도면 거대한 예능이지. PPL이라도 받아야 했나? 선실 벽에 콜라 포스터같은 거라도 붙여서.

실없는 상상을 하며, 나는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반응을 살폈다.

무섭다, 대단하다...등등. 대중은 새롭게 등장한 A급 빌런에 주목했다. 하긴, 전파납치와 죽음의 2지선다는 내가 생각해도 임펙트가 엄청날 거야.

거기에 인간 찬가도 빠질 수 없었다. 결국 누구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정의는 승리한다 어쩌구 저쩌구. 이번 사태는 인간이 결코 이기적이지 않다는, 인간의 선함을 증명하는 사건이라는 등.

몇 시간의 서칭으로 대략적인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이번 쇼로 얻은 것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얻은 것 첫 번째. 내 이름을 전국민에게 알린 것.

에고스틱. 솔직히 말해서, 좀 못 지은 거 같다.

내 검은 로브 생각하면 '블랙 로브', '페르소나'뭐 이렇게 지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쩝... 어쩔 수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둬야지.

그런데 뉴스 기사창에 망고스틱 저놈 잡으라는 댓글을 보니 좀 많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

어쨌든, 수익 두 번째. 스타더스를 전국에 알리기.

스타더스도 정말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9시 뉴스에 내 얼굴 다음으로 많이 비췄더만.

스타더스는 원작에서도 대중들에게 꽤 인지도 있는 인물이었다. 일단, 예쁘잖아. 히어로 중에서도 저 정도 미모를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나 스타더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들에게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게 되었다. 애초에 처음에 유명했던 이유가 이뻐서인데...

빌런은 1권, 2권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창의적으로 스타더스를 괴롭히게 된다. 그놈들은 여론몰이와 더붙어 여러 장치를 통해 대중에게 '싸가지 없다'라는 인식을 주게 하는데 성공한다.

거기에 스타더스로의 사회적 관계만이 아닌 신하루로서의 사회적 위치도 교묘히 멸망으로 이끌어가는, 진정한 피폐물.

하. 생각해 보니 또 화가 나는데, 그 못된 빌런놈들은 내가 다 제거할 거니 우리 스타더스는 그냥 나만 생각하면 된다. 범죄 없는 서울, 테러없는 대한민국. 제가 만듭니다. 범죄와 테러는 나만 할 거거든.

그래서 일단, 이번에 스타더스를 대중에게 알렸다.

그것도 외모 관련이 아닌, 정의로움. '히어로다움'을 가진 인물로, 긍정적인 인식을 팍 박았다.

...박은 거 맞지? 뭐, 뉴스 댓글과 커뮤니티를 훑어보니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연설도 잘했고, 내가 앞에서 추켜세워준 것도 좀 먹혔겠지. 원래 적의 인정이 제일 객관적인 거거든. 사람들의 인식이.

"일단 첫스텝은 땠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틈이 없다 쉴 틈이 없어. 바로 다음을 계획해야 할 때다.

이제 또 다른 S급 A급 빌런들을 암살...이 아니라 제거. 제거해야 하고... 또 테러도 계획해야 한다. 테러는 테러인데 사상자가 안 나오는 테러를. 쉬운 게 없구나.

"일단... 그 전에 걔를 다시 한번 만나야겠지."

누구를 만나냐고?

내가 전파납치하는 걸 도와준 놈.

원작에서는 S급 빌런이 되지만, 내가 그 전에 거두어 빌런이 되는 미래가 바뀌었을 아이.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한통 걸기 시작했다.

"어. 어, 서은아. 오빠 지금 일어났다. 어 그래. 아, 그럴 수도 있지. 아 오빠 힘들었다니까? 그래, 그래. 어, 지금 그쪽으로 갈게. 어~."

전화가 마무리되고 나서, 나는 코트를 챙겨서 방 밖으로 나갔다.

순간 이동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보다시피 내가 능력이 딸려서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하면 지쳐서 쓰러진다.

그러니, 걸어가자.

오늘은 날도 좋더라.

***

창밖에 봄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잔잔히 나오는 빗줄기에 우산을 들고 나서 조금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나오는 주택가.

그곳에 있는 한 평범해 보이는 주택.

문짝에 걸려 있는 도어락.

거기에 4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또 문이 있다.

그 문에 또 달린 도어락.

2중 잠금인가... 하며 다른 비번을 누르면 문이 열리고 일반 가정집이 나온다.

그러나 이 도어락에는 비밀이 있다.

비밀의 비밀번호?라고 할 수 있겠지.

그걸 순서대로 입력했다.

족히 13자리는 넘기는 비밀번호.

...내가 원작의 팬이라 대충 외워서 아는 거지, 이거 처음 들었으면 절대 못 외웠다.

이윽고 모든 번호를 누르자, 갑자기 진동하는 실내.

그와 동시에 발밑이 점점 꺼지며, 나는 잠기기 시작했다.

저 밑으로, 점점...

나는 어디로 가는걸까.

심연으로 가는 듯한.... 엘리베이터라 해야 하나?

뭐 대충 발판 승강기라고 할 수 있는 걸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밑으로, 밑으로...

근데 말이다.

음, 근데 생각해 보니까 위에서 지하까지정도는 순간 이동 해도 괜찮은데...

그래, 힘 계속 아껴두면 좋지 뭐.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고, 승강기가 정지했다.

깔끔한 회색 벽으로 정돈된 실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벽에 붙어져 있는 LED빛들이 나를 감싼다.

마치 근미래 SF 영화에서나 볼 풍경.

더, 더 안으로 들어가니 이윽고 큰 방이 나온다.

한쪽 벽면에 디스플레이들이 수없이 붙어 있는, 마치 미국 우주 영화 보면 나오는 NASA연구소의 그 장소 같다. 막 휴스톤 휴스톤 하면 '여기는 휴스톤 오바.'라고 말하는 그런 곳.

모니터들에서 수없이 뿜어져 나오는 빛들 가운데, 자기 몹집에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큰 가죽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

이 아이가 내 전파납치를 실현하게 해주는,

원작 만화의 후반부에 S급 빌런으로 등장하는.

"야, 오빠 왔다."

"오셨어요 '형'?"

천재 해커, 한서은이다.

나는 서은이가 앉아 있는 의자쪽으로 가 머리를 헤집어줬다.

"대체 내가 왜 형이냐... 하여튼, 뭐하고 있었냐?"

"뭘 하긴요, 이거 손보고 있었죠."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터는 서은이.

키도 조그만하고 생김새도 이쁘장한, 영락없는 여자애다... 그런데 자신은 강력히 남자라고 우기고 있는.

이미 원작을 읽은 나로서는 얘가 여자애인 걸 뻔히 알기에 귀여울 따름이다. 자기가 여자라는거에 살짝 트라우마가 있나?라기에는 그런것 같지도 않은데 왜그러는건지...

여자애한테 형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는 좀 묘하기는 하다만... 얘도 나름 중학교 3학년이다. 물론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만.

"어제 전파납치는 정말 잘해줬다 서은아. 그냥 전국에 내얼굴이 나오더만."

"뭘요. 그런 쉬운 거, 누구든지 할 수 있었을걸요."

말은 그리 퉁명스럽게 하면서도, 칭찬해주니 입술을 씰룩이는 서은이. 너 미소 짓는 거 다 보여 인마.

"그리고 형.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일 났어요."

"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 있을게 없는데?

"자, 이거 봐봐요."

이윽고 서은이가 디스플레이 한쪽의 영상을 보여주자, 내 얼굴은 살짝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체 뭐야?"

[에고스틱의 추종자들이 방금 인천 한복판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건물에 폭탄을 설치한 그들은...]

저 새끼들은 누군데 내 이름 팔고 저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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