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백설하의 수업이 시작됐다.
“호흡, 호흡!”
“흡, 흐우.”
“소리 급하게 내려고 하지 마. 호흡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내. 소리는 호흡에 따라서. 그러니까 날숨을 억지로 끄집어내지 말고.”
“흐우…….”
백설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조아라가 지도에 잘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다시 해보자. 날숨에 맞춰서, 헛.”
“흐엇.”
“다시. 헛.”
“흐엇…….”
“잠깐만. 숨 자연스럽게 쉬어보자. 이렇게 스읍, 후우. 아니, 평소에 숨 쉬는 것처럼.”
노래란 게 그냥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많이 부르면 느는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이론을 가지고 하는 것보다는 느리다.
많이 불러서 된다는 사람은 재능이 있는 것이다.
“자, 돌아왔으면 날숨에서, 헛.”
“헛.”
“응 응 그거야! 다시.”
“스읍, 흐엇.”
“이게 배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 끊어지듯이, 성대가 닫히는 거거든?”
백설하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결과, 조아라는 한 가지 깨달았다.
자신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이론을 따라가지도 못하는 인간이다.
백설하가 자꾸만 당황하고 어색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안 이러는 거겠지. 쉽게 하는 걸 거야.’
백설하에게 지도를 받으면 받을수록 조아라는 자존감이 낮아졌다.
이런 꼴인데 어떻게 백설하보다 나은 모습을 여줄 수 있을까.
단기 트레이닝이 끝날 때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노래다운 노래는 불러보지도 못하고…….
“스읍, 헛.”
“다시.”
기본적인 기술조차 빨리 습득하지 못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어.”
“쌤도요.”
수업이 마치는 것과 동시에 연습실 문이 열리고 성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두 사람은 데자뷔를 느꼈다.
근래 성필은 조아라의 트레이닝을 자주 보러 왔다.
“커피 사 왔어요. 드실래요?”
“고마워요. 이사님.”
성필은 백설하에게 아메리카노를 주었다.
“에스프레소는 테이크아웃 안 해준대요.”
“아, 기억하고 계셨네요.”
“설하 씨가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당연히 기억하죠.”
“아…….”
“아라는 이거.”
조아라에게는 카페라떼를 주었다.
조아라가 성필을 올려다보자 그는 미소 지으며 작게 말했다.
“리카한테는 비밀이야. 걔 너한테만 설탕 든 거 줬다고 들으면 나한테 엄청나게 화낼걸.”
애를 다루는 듯한 말투다.
“예.”
“뭐야. 기운 없어?”
조아라는 깜짝 놀랐다.
겨우 ‘예’라는 말 한번 했다. 그런데 성필은 조아라의 기분을 맞춘 것이다.
“아니…….”
“설하 씨. 아라 혼낸 거예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안 혼냈어요!”
백설하가 극구 부인했다. 그녀는 조아라에게 말 좀 해달라며 한껏 눈치를 보냈다.
“안 혼내셨어요.”
“사제 간에 훈육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일차적으로 두 분은 동료니까요.”
“아라가 안 혼냈다고 했잖아요……. 저 안 그래요…….”
조아라는 즐겁게 대화하는 둘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중간중간 성필이 조아라를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그녀는 의욕을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조아라는 자신의 손에 들린 카페라떼와 백설하의 아메리카노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그런데 아라는 좀 어때요?”
“……!”
조아라의 신경이 백설하에게로 쏠렸다.
백설하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역시나 백설하는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잘하고 있어요.”
“음, 그래요?”
전혀 믿는 말투가 아니었다.
조아라는 부끄러워서 카페라떼 컵만 꽉 쥐었다. 그 뒤로도 성필은 조아라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마치 무언의 질타 같았다.
* * *
백민정은 트레이너다.
진짜 선생님들이 들으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선생님의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그런 백민정은 수강생들의 감정을 읽는 데 능숙했다.
“아라야.”
“네, 쌤.”
조아라가 힘없이 답했다.
그녀의 눈에는 지금까지 보이지도 않던 다크서클까지 생겨났다.
백민정은 괜히 그녀에게 미안했다.
“오늘 쌤이랑 밥이라도 먹을래?”
“……네.”
옛날 같았으면 고맙다고 달라붙어서 뽀뽀라도 해줬을 텐데.
이번에 돌아온 건 힘 빠진 대답이 전부였다.
조아라는 식당에 앉아서도 멍하니 테이블만 바라보았다.
“아라야.”
“…….”
“많이 힘들어? 너한테 안 맞아?”
조아라는 백민정의 부탁으로 가로 엔터에 들어갔다.
조아라라면 잘 해내리라 믿었지만, 꼴을 보니 아닌 것 같았다.
미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추천해놓고 이런 말 하기 뭐하긴 한데. 안 맞으면 그만둬도 괜찮아.”
“……아.”
반응 없던 조아라가 무언가 깨달았단 듯이 시선을 살짝 위로 올렸다.
백민정이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응. 말해봐.”
“가사.”
“가사?”
“가사 까먹었다. 뭐였더라.”
조아라는 핸드폰을 꺼내 팝송의 가사를 검색해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면서 따라 부르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 빡대가리!”
“아, 아라야! 뭐 하는 거야!”
“왜 수십 번을 봤는데도 못 외우냐고……. 좀 외워라 좀…….”
백민정은 진심으로 조아라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혼잣말에다 자해까지 한다.
혹시 가로 엔터에서 심한 대접이라도 받는 것일까?
“아라야 너 정말 괜찮아?”
“괜찮아요. 그냥 가사 잊어먹어서.”
“가사 못 외우면 회사에서 뭐라고 해?”
“아뇨. 그냥.”
“나오겠단 말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성필 오빠한테 말해줄게.”
“성필…….”
혼이 빠져나갔던 조아라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드디어 감정다운 감정이 보였다.
조아라가 이를 갈며 말했다.
“박성필. 그 아저씨.”
“왜. 오빠가 뭐라고 해? 막 욕하고 그랬어?”
“자꾸 봐요.”
“응?”
“자꾸 내가 트레이닝받는 걸 본다구요.”
“……그래서?”
“신경 쓰여요.”
“…….”
식사가 나왔다.
조아라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집어넣었다.
백민정은 걸신들린 듯한 조아라를 보곤 헛웃음을 흘렸다.
‘연습생 생활 재밌나 보네.’
* * *
“아라의 단기 트레이닝 기간도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네요.”
한 달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필의 말투는 후련하지 않았다.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아라한테 조금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문제? 문제라고 하신 겁니까?”
“……아라한테 개선사항이 있는 거 같아요.”
“혹시 트집은 아니겠지요?”
“한 이사님은 아라한테 집착하는 거 좀 그만하세요. 자꾸 초콜릿 같은 거 주지 말고요.”
홍규헌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한 이사. 그랬어?”
“그…….”
“과자 먹는 버릇 들이면 나중에 힘들다고. 알잖아? 우리 전에 민길이도 네가 초코바 하나씩 줘서 버릇 다 버렸던 거. 걔 밖에만 나가면 과자 품 안에 숨겨서…….”
“압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조아라 씨 눈이 너무 퀭해 보여서.”
성필은 헛기침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다잡았다.
“먼저, 아라가 리카나 설하 씨랑 어울리려고 하지 않아요.”
“사교성이 없나?”
“리카한테는 말도 안 건답니다.”
“그건 리카 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리카는 조아라를 무서워한다.
아니라고 몇 번이나 설득해도 선입견은 지워질 기미가 없었다.
조아라까지 잔뜩 무게 잡고 가만히 있으니 둘의 사이가 좋아질 리가 없다.
“그런데 리카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설하 씨한테도 마찬가지랍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설하 씨가 굉장히 친절하고 자애로운 성격 아닙니까?”
“…….”
“…….”
“여러모로 친해지려고 하는데 힘든가 봐요. 아라가 막 설하 씨 째려보기도 하고요.”
“설하 씨가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한 이사, 조아라 실드 좀 그만 쳐.”
한구인은 조아라의 변호사라도 된 듯했다.
“아무튼. 케미가 안 좋은 거거나 아라가 친해질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아라가 저희한테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잖습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설마 저한테만 띠껍게 대하는 거예요?”
성필은 어이가 없었다.
조아라는 성필을 만날 때마다 은근히 ‘아저씨’란 말을 강조하면서 놀렸다.
어느 때는 나이 몇인데 애인도 없냐며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거기에다가 어떤 말을 하든지 이기려고 들었다. 어른의 체통을 지키려 입을 다물면, 조아라는 자기가 이긴 줄 알고 피식피식 웃었다.
마음에 안 든다.
“걔를 진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
“왜 부럽다는 듯이 보세요.”
“친밀감의 표시 아니겠습니까?”
“……그것 말고도 더 있어요. 트레이너분들 말로는 아라가 트레이닝을 잘 못 따라온다고 하시더라고요.”
과연 그 사안마저도 한구인이 조아라를 옹호할 수는 없었다.
그는 침울하게 시선을 살짝 떨구었다.
최대한 반박할 말을 찾았으나, 트레이너들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열심히 안 하는 건지. 처음 하는 거라 서툰지. 아니면 아예 재능이 없는지. 개인적으로는 걱정되네요.”
“하지만 단기 트레이닝은 끈기와 열정을 보기 위해 하는 거 아닙니까? 실력적인 면으로 판단하는 건…….”
“한 이사님. 제가 걱정하는 건 실력이 아니에요.”
“네?”
“아라가 흥미를 잃을까 걱정되는 거예요.”
자꾸만 벽을 마주하고 있는데, 거기에 흥미가 붙는 게 더 이상하다.
성필이 조아라의 경쟁심과 도전 욕구를 조절하려고 적절히 건드려주고 있긴 하다.
실제로 조아라는 상당히 자극받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제 의견입니다만. 월말 평가 때 부담을 좀 줄이는 게 어떨까요?”
“줄여? 어떻게?”
“원래 보컬, 댄스, 그리고 전체적인 퍼포먼스. 이렇게 세 개를 보기로 했잖습니까. 퍼포먼스만 보는 건 어떨까요.”
보컬은 보컬만 하는 것.
댄스는 댄스만 하는 것.
퍼포먼스는 둘 다 함께한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준비하기 가장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퍼포먼스를 빼먹을 수는 없다.
아이돌의 무대를 약식으로나마 재현하는 것이니까.
“음.”
홍규헌은 팔짱을 낀 채 오래 고민했다.
규정을 바꾸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조아라를 봐주게 되면 이후에 들어오는 애들은 어떡하겠는가.
그때, 홍규헌은 옆에서 강렬한 눈빛을 감지했다. 한구인이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홍규헌은 한구인에게 약하다.
게다가 성필이 먼저 제안하기도 했으니 고려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박 이사가 조아라한테 힘드냐고 물어봐. 한 이사가 물어보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 같으니까. 박 이사가 적당히 장난스러운 분위기에서 찔러 보는 거지.”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성필과 한구인이 사장실에서 나왔다.
“박 이사님 감사합니다. 전 막연히 조아라 씨가 전부 이겨내실 줄 알았습니다. 힘들어하신단 건 알았지만요. 박 이사님 얘기를 듣고 보니 부담을 줄여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필의 의견은 어찌 보면 무리에 가까웠다.
단기 트레이닝 스케줄은 세 사람이 합의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조아라에게만 허들을 낮춰준다면, 이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구인으로서는 꺼내기 쉬운 제안이 아니었다. 홍규헌은 그가 조아라를 편애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먼저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아라가 마음에 들거든요. 되도록 저희 회사에 왔으면 좋겠어요.”
“정말입니까?”
한구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영락없이 조아라 씨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요.”
조아라는 빛이 넘치는 아이다.
지금도, 미래에도.
그런 인재를 성필이 싫어할 리 있겠는가.
싫어했다면 조아라를 들이는 것에서부터 반대를 하고 나섰을 것이다.
‘이렇게 품을 많이 들였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적당하게 조아라의 비위를 맞춰주거나 신경을 긁는 건, 말이 쉽지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한 노력이 요구된다.
“오늘 아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물어볼게요. 결과는 내일 알려드리고요.”
“알겠습니다.”
* * *
퇴근하기 전, 조아라가 리카를 불렀다.
리카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빵셔틀……. 나를 빵셔틀로 만들려고?’
장소도 하필 휴게실의 주방이었다.
리카가 간식을 찾아 가끔 들락날락하거나, 한구인이 식사를 만들 때 빼고는 사람이 오지도 않는 곳이다.
“왔어?”
“으응…….”
조아라는 찬장을 열어 보고 있었다.
심심해서였을까, 아니면 저 안에 뭐라도 숨겨둔 걸까.
혹시 무기 같은 건 아니겠지?
리카는 갑자기 옛날에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일본의 고등학생들이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조아라의 모습이 그와 겹쳐졌다.
“부른 건 뭐 특별한 용건은 아니고.”
조아라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귀와 뺨이 서서히 붉어지기까지 했다.
“그으…….”
사랑을 고백하기 직전의 소녀 같다, 리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아라는 자신의 용건을 언어로 엮어내고 싶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리카가 올 때까지 수도 없이 되새김질했는데도, 기억이 지워지기라도 한 듯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아, 하아.”
결국, 직설적으로 부딪히기로 했다.
“도와줘.”
“……나니오(뭐를)?”
“뭐?”
“아, 아니! 뭐를? 뭐를 도와줄까?! 나 뭐든 잘하는데!”
“응, 그러게. 너 춤 잘 추더라.”
“에? 아, 아리가토(고마워).”
“나 일주일 뒤에 평가받는 거 알지? 내가 혼자서 한다고 준비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
리카의 머릿속에 꿀꿀한 인상의 조아라가 스쳐 지나갔다.
학원에 갈 때마다 세상 다 망하는 듯한 얼굴이었는데, 저런 고민이 있어서였구나.
“준비하는 거 좀 도와줘.”
조아라는 몇 주 동안 가로 엔터의 연습생으로 지냈다.
리카가 얼마나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남는 시간까지 전부 연습에 투자하는 아이다.
도와달라고 말하기까지 꽤 큰 결심이 필요했다.
“힘들면 안 도와줘도 괜찮…….”
“도와줄게!”
“어? 괜찮아? 시간 없는 거 아니야?”
“시간이 무슨 상관이야. 도와줄게!”
“어, 응, 고마워.”
리카는 왠지 굉장히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아라는 창피해졌다.
괜히 경쟁심을 불태우느라 리카나 백설하를 최대한 무시해왔다.
리카는 지금까지 충분히 기분이 나쁠 만도 했다. 그런데도 선선히 도와주겠다고 하니, 조아라는 부끄러워졌다.
‘이 기회에 친해지는 거야!’
조아라의 걱정과 달리 리카는 지금의 상황이 기껍기만 했다.
무서운 줄 알았던 아이가 부끄러움까지 감수하며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다.
‘나를 싫어했던 게 아니구나’란 마음이 들며,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쌤한테도 도와달라고 하자!”
“쌤? 누구?”
“설하 쌤!”
“아, 그건 좀.”
“왜?”
“음…….”
조아라는 이유를 말하길 꺼렸다.
“아저씨랑 친…….”
“친?”
“……에이 씨. 이왕 도움받는 거 다 받지 뭐.”
* * *
조아라를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는 길.
성필은 슬쩍 운을 뗐다.
“많이 힘들지?”
“……왜요. 내가 힘들어하는 거 보니까 막 기쁘고 그래요?”
“너 심성이 꼬인 거냐. 아니면 나한테만 일부러 비꼬는 거냐?”
“안 힘들어요.”
조아라는 대답이 끝났다는 듯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작게 한숨을 쉬곤 인정하는 투로 말했다.
“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단 힘들긴 하네요.”
“테스트 준비는 잘 돼?”
“그럭저럭.”
“쌤들 도움받아도 힘들긴 하지? 아예 처음 해보는 거니까 당연해. 그래서 말인데, 과제량 좀 줄여줄까?”
“뭔 소리예요.”
“말 그대로지 뭐. 솔직히 보컬, 댄스, 퍼포먼스 전부 준비하는 건 리카나 설하 씨한테도 힘들걸. 처음부터 허들을 좀 높이 잡은 감이 있지.”
“하.”
조아라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모자라다고요?”
“그런 뜻 아니…….”
“아저씨. 아저씨 말대로 조금, 아주 조금 힘들긴 해요. 그렇다고 시킨 거 못 할 정도는 아니에요. 제가 뭐 그런 의지박약으로 보여요?”
조아라의 말투는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조금도 우습게 보일 의지가 없었다.
‘얘는 왜 이렇게 자존심만 센 거야.’
어린애라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기엔 미래의 조아라도 비슷했다.
천성인 것이다.
“진짜 안 힘들다고?”
“월평만 기다려요. 내가 아저씨 입 쩍 벌어지게 해줄 테니까요.”
이렇게 완고하면 성필도 뭐라 더 제안하기가 힘들었다.
“그래.”
“뭐예요 그 무시하는 말투. 안 믿는 거죠?”
“믿어.”
“거짓말.”
이건 뭐, 아니라고 해도 안 믿고.
믿는다고 해도 거짓말이라고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내 밑에서 제발 회사에 들어와달라고 빌게 해줄 테니까…….”
이상한 말까지 해댄다.
성필은 그냥 무시했다.
* * *
단기 트레이닝 31일째.
그 마지막 날.
조아라의 월말 평가일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