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6화 (36/760)

#036화

장하양은 춤에 몰입해서 조아라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조아라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그제야 장하양이 정신을 차렸다.

시끄러운 음악이 연습실을 울리는 가운데, 조아라가 그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숨 참고 춤을 추면 어떡해요?!”

조아라가 장하양의 춤에서 유일하게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었다.

잘 정돈되어 보인단 것이었다.

장하양은 숨차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춤 선을 깔끔하게 이었다.

그 부분만큼은 감각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면 안 돼……?”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장하양이 센스가 있는 게 아니라, 숨을 참음으로써 억지로 깔끔한 춤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이다.

이제야 장하양이 춤을 다 췄을 때 짐승처럼 호흡이 거칠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춤출 때는 호흡을 최대한 절제하니까!

“당연히 안 되죠!”

“이,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아 보여서…… 그랬는데…….”

그러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댄스는 공연 예술이다.

댄서가 무대에 섰는데 숨을 헐떡이며 지친 티를 낸다고 생각해 보라.

관객도 지치고 힘들다.

그래서 아예 춤출 때는 호흡을 절제하는 댄서들도 있다. 그리고 춤이 끝났을 때가 돼서야 깊이 심호흡하는 것이다.

완벽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장하양이 숙련된 댄서인가?

아니다.

그딴 짓을 하면 실신해서 바닥에 드러눕기 딱 좋다.

“계속 이랬어요?”

“응. 이러면 안 되는 줄 몰랐어. 안 할게.”

“호흡…… 하아…….”

조아라는 자조했다.

자신만만하게 장하양을 가르친다고 했으면서 이런 것 하나 짚어내지 못하다니.

조아라의 스승인 백민정은 장하양을 보자마자 단숨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아라는 장하양에게 체력이 없니 뭐니 하는 소리만 해댔다.

자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흡은 따로 디테일에서 손 봐야 하는 부분이에요.”

박자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하긴 하는데, 장하양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호흡을 잘 분배할 줄 알았다면 숨을 참는 짓거리는 하지 않았겠지.

“동작보다 호흡부터 봐 드릴게요.”

“응. 고마워. 또, 미안. 내가 잘 못 따라가지?”

미안하다.

그건 장하양 본인의 미숙함을 탓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조아라가 자신에게 쏟아주는 시간이 미안해서, 그래서 죄책감을 느꼈기에 나온 말이었다.

“더 열심히 할게.”

더는 네 시간을 뺏지 않도록.

조아라는 장하양의 말 아래에 깔린 뜻을 읽었다.

‘이 언니는…….’

벽을 마주했는데도 자기 자신의 능력을 원망하지 않는다.

가르쳐주는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장하양이 가진 유일한 부정적인 감정은 조아라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지?

“언니, 언니이.”

조아라가 장하양을 위로하려는 듯 포옹했다.

“내가 못 가르쳐서 그래요.”

“아니야. 아라한테 배워서 이 정도로 했지, 아니었음 춤도 다 못 외웠을 거야. 내가 미안해.”

천사다 진짜…….

* * *

“집까지 뛰어서 간다고……?”

“넵!”

다들 어이없어하자 장하양이 말에 살을 덧붙였다.

“제가 트레이닝 쭉 받아보니까 제 문제를 알겠더라고요. 저, 체력이 없어요.”

성필뿐만 아니라 조아라도 동의하는 것이었다.

장하양은 살면서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사람 같았다.

물론 그녀의 저질 체력은 단순히 운동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대중교통도 최대한 이용하지 않고 걷기만 하는데 체력이 없단 건 말이 안 된다.

그냥 장하양이 제대로 못 먹고 살아서 그런 것이었다.

“집에 가는 김에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밤인데 위험하잖아.”

“에이, 한국에 위험한 데가 어딨어요. 그리고 큰길로만 다닐 거예요.”

회사에서 장하양의 집까지는 꽤 가깝다.

신호등 타이밍이 좋으면 걸어서 50분 정도가 나오고 차를 타면 20분이다.

빠르면 15분밖에 안 걸리기도 한다.

체력향상 목적의 조깅으론 적당한 거리일지도 모른다.

“정말 괜찮아?”

“괜찮아요 정말.”

“가다가 쓰러지면 연락해.”

“제가 왜 쓰러져요.”

“그래. 요즘 열심히 하네. 꼭 좋은 결과 있을 거야. 그래도 쉴 때는 꼭 쉬어줘야 해.”

장하양은 성필의 격려에 헤헤 웃었다.

“이사님도 일 쉬어가면서 하세요. 쓰러지시면 안 돼요.”

장하양은 성필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곧 그녀도 천천히 뛰어 길 건너로 사라졌다.

수십 분 후, 성필이 아이들을 모두 데려다준 뒤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은 정리를 끝내곤 귀가했다.

잠시 후, 길모퉁이에 숨어있던 장하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번호가 이거였던가.”

삑삑삑삑, 찰칵.

장하양은 회사 2층으로 올라갔다.

연습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열쇠를 어디에 두는지는 알았다.

열쇠를 가져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하양은 불을 켜고 스트레칭했다.

‘내가 남아서 연습한다고 하면 박 이사님도 집에 못 가시니까.’

성필은 장하양의 보충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녀를 태워주곤 했다.

요 몇 주간 계속 그랬다.

장하양은 12시 넘어서까지 보충 연습을 이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새벽까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성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세 시간만 채우고 퇴근했다.

‘죄송하지…….’

자신의 연습 때문에 성필의 잠이 줄어드는 건 원하지 않았다.

장하양은 회사에 내려앉은 적막을 잠시 즐긴 뒤, 음악을 켜고 연습에 몰두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새벽까지, 계속.

* * *

보컬 연습실.

백설화와 장하양이 서로를 보았다.

아니, 장하양은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하양아.”

절제된 분노가 백설하의 입을 타고 전해졌다.

“왜 이러는 거야?”

장하양은 백설하의 가르침을 잘 따라오지 못했다.

그것뿐이었으면 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금 시간만 내서 외우고 반복하면 할 수 있을 것도 장하양은 해내지 못했다.

이 정도면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

백설하는 며칠 동안 참다가 겨우 장하양을 혼내기로 마음먹었다.

“너 연기 했다고 그랬지?”

“네…….”

“연기 처음 배울 때도 스타니슬랍스키 연기 이론 같은 거 외우잖아. 아무리 어려워도 외우고, 습득하고, 반복하고, 숙달해서 자기 걸로 만들잖아. 그냥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왜 노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보컬은 기술이다.

동시에 학문적 기반도 있다.

그냥 부르는 것과 알고 부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백설하가 요구했던 건 ‘아는’ 것이었으나, 장하양은 그런 데 치중하지 않는 듯했다.

공명점이 뭔지. 어떤 건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말해보라고 하면, 장하양은 드문드문 텅텅 빈 대답을 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백설하가 준 프린트물을 읽고 외워보려는 노력이라도 했다면 당연히 답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너한테 빌어 가면서 가르쳐야 해? 이거 좀 해주세요 제발, 이렇게?”

“아니요…….”

“너 아이돌 하려고 왔잖아. 아이돌도 가수야.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많아. 너무 많아.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노래로 벌어 먹고살려는 거잖아 너는 지금. 맞지?”

“네…….”

“그런데 왜 이래? 왜 내가 보라는 거, 외우라는 거, 하라는 거 하나도 안 해?”

장하양은 변명하지 않았다.

매일 백설하가 나눠준 프린트물을 읽는다고도, 외우려고 노력했다고도, 보충 연습 시간 때 숙달하려고 부단히도 연습했단 것도.

전부 말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실제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노력했단 말은 무의미했다.

그 침묵은 백설하에게 수긍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양아.”

백설하는 혼내는 것도 계획적으로 혼냈다.

장하양이란 인간 자체를 탓하지 않고 그녀의 행동만을 꼬집었다.

“최종 시험도 얼마 안 남았잖아. 회사에 들어오기 싫어?”

“남고 싶어요.”

“그러면 더 열심히 해야지.”

“……네.”

백설하가 화냈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

그 역사적인 광경을 리카가 훔쳐보고 있었다.

“오늘은 그만하자. 나가 봐.”

“네…….”

장하양이 처진 걸음으로 연습실을 나섰다.

백설하는 혼내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사람을 혼낸다는 게 즐거울 리가 없다. 하지만 백설하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것이었다.

‘하양이 같은 애가 우리 회사에 들어와도 될까?’

연습 시간은 어찌어찌 채우는 것 같지만, 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원인은 당연하다.

‘노력하지 않은 거야.’

너무도 당연한 진리다.

노력하고 연습하면 당연히 실력이 좋아져야 옳다.

장하양에게는 ‘노력’이라는 기본 자체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성필이 데려온 아이라지만, 백설하는 점점 장하양을 꺼리게 됐다.

“하아.”

백설하는 오랜만에 한숨을 쉬었다.

끼익, 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언니. 죄송해요. 더 열심히 할게요.”

장하양이 다시금 사과했다. 백설하는 재빨리 화난 표정을 만들곤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는 문밖에서 거기까지 지켜본 뒤, 들키지 않으려 재빨리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 * *

성필은 장하양이 전에 다니던 연기 학원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장하양을 가르쳤던 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래서 하양이가 그만뒀구나.”

강사 입장에서 성필은 원생을 뺏어간 도둑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이거, 죄송하다고 해야 할지.”

“학원이란 게 필요하면 다니고 아니면 마는 거죠. 솔직히 하양이가 다른 길로 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재능이 없었나요?”

“그냥 없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얘는 나를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바보인가? 제가 몇 번이나 그 생각을 했다니깐요. 근데 연습하는 거 보면 하라는 건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강사의 말은 이러했다.

장하양은 대본을 외우는 것도, 연기 이론을 이해하는 것도, 지적받은 부분을 수정하는 것도.

그 모든 게 느렸다.

“그 뭐냐, 그냥 머리가 나쁜 거 같아요.”

“…….”

“아, 미안해요. 이사님 회사 연습생 됐다고 했었지. 근데 걔 춤이나 노래는 잘해요? 진짜 연기에만 재능 없던 걸 수도 있으니까.”

춤이랑 노래도 못한다.

성필이 대답이 없자 강사는 ‘역시’란 표정을 지었다.

“걔가 외모는 천상 배우감이잖아요. 그거 보고 몇 번 추천해줬는데 도저히 아니라나 봐요. 그래도 뭐 애가 착하고, 사회성도 좋고. 예체능 말고 다른 쪽으로 갔으면 좋을 텐데.”

성필이 이곳에 온 건 이런 말을 듣기 위해서다.

그도 장하양의 더딘 학습 속도를 걱정했었다.

원하던 대답을 듣긴 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땅바닥으로 끌려가는 듯했다.

학원을 나와 회사로 가는 길까지, 성필은 우울하기만 했다.

“박 이사님 박 이사님!”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리카가 기다렸다는 듯이 성필을 불렀다.

리카는 성필을 구석으로 데려간 후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말했다.

“설하 언니가 화내는 거 처음 봤어요!”

부터 시작해서, 리카는 실감 나게 연기하며 방금 있던 상황을 들려주었다.

연기는 리카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표현력이 뛰어났다.

‘리카가 원래 배우 준비했다고 했었지. 리카도 이 정도인데 하양이는…….’

이야기가 끝나자 리카는 울상을 지었다.

“하양 언니는 우리 회사가 싫은 걸까요?”

“…….”

그래, 이게 보통의 생각이겠지.

상식적으로 몇 시간이나 연습하는 데 진도를 못 따라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반적으로는 ‘얘가 흥미가 없나?’ ‘하기 싫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언니가 우리 회사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언니 좋은데.”

성필은 걱정하지 말란 뜻으로 리카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양이가 왜 싫어하겠냐.”

“그런데 왜…….”

“물어볼게.”

성필은 장하양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연습하다가 갑자기 끌려온 장하양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하양아.”

“네!”

장하양이 힘차게 대답했다.

방금 혼났다던데, 도저히 혼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성필은 리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쭉 생각해왔던 말을 꺼냈다.

“힘들지?”

“네? 아니요. 안 힘든데요?”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다.

벽을 만나면 좌절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장하양은 얼마나 많은 좌절과 절망을 겪어왔을까.

그때마다 ‘괜찮다’고 말하고 넘어가기엔, 인간은 그리 강한 존재가 아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안 힘들어요.”

“…….”

“그리고 힘들어도 안 말하죠. 나만 힘든 것도 아니잖아요. 괜히 힘든 티 보여줬다간 다들…….”

“나한테는 보여줘도 돼.”

“이사님한테는 보여줘도 돼요?”

장하양이 장난스럽게 옷의 어깨 부분을 내리는 시늉을 했다.

성필이 무표정으로 있자 장하양도 그만두었다.

“제가 힘들어 보이세요?”

“……하양아. 너 이거 그만둬도 돼.”

지금껏 방실거리는 미소만 짓고 있던 장하양의 얼굴이 드디어 변했다.

“네, 네? 네? 어, 네?”

항상 올라가 있던 눈가와 입꼬리마저도 서서히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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