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53화 (53/760)

#053화

“이거 아라쨩 어머님이 직접 만드셨대요! 20년 전에!”

조아라가 자랑스레 가슴을 폈다.

볼 테면 마음껏 보란 태도였다.

“……어, 잘 만드셨다. 것보다 얘들아.”

“그게 끝?! 반응이 그게 끝이에요?! 이, 이거 좀 봐요. 진짜 가게에서 파는 거 같다니까요?!”

리카가 조아라의 스웨터를 만지면서 매력을 어필했다.

그럴수록 성필은 더 무표정으로 변해갈 뿐이었다.

리카가 경악했다.

“공감 능력이 없으신가 봐!”

“저 아저씨 나한테만 저래. 편애 오져.”

“맘대로 생각해라. 것보다 너희들 이제 숙소 들어가야 하거든. 이번 주까지 들어올 수 있어?”

연습실에 정적이 일어났다.

“숙소에 간다구요? 저희? 전부? 이번 주까지?”

백설하가 침착한 듯 흥분한 듯 오묘한 투로 물었다.

성필은 충격 발언을 이어갔다.

“너희들 대략 1년 뒤에 데뷔할 거야.”

데뷔.

그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과 분위기는 저마다 달랐다.

백설하에게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조아라는 희열을 느꼈다.

장하양은 불안했고.

리카는.

“이, 이이, 이사니임.”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다리를 떨면서 성필에게 다가왔다.

“리얼? 리얼요? 진짜요? 사실인가요? 혼또(진짜)? 모, 몰래카메라인가요?!”

“리얼이야. 진짜야. 사실이야. 혼또야. 몰래카메라 절대 아니야.”

“데뷔, 데뷔, 데뷔…….”

리카는 성필에게서 등을 돌려 터덜터덜 걸었다.

방의 끝에 선 리카가 홱 돌아 성필을 보았다.

“아타시(저), 지금부터 날겠습니다!”

리카가 전속력으로 성필을 향해 달렸다.

성필은 피할까 고민하며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백설하가 받아주라는 듯 미소 지었다.

“와라.”

성필이 팔을 펼치자 리카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데뷔다!”

성필이 리카를 받아 빙글빙글 돌았다.

리카가 크게 웃으면서 양팔을 번쩍 들었다.

“데뷔야!”

리카가 웃으면서 울었다.

한국에 와서 아이돌이 되기로 마음먹은 지 2년 하고도 4개월 정도.

마침내 데뷔가 확정됐다.

* * *

“엄마. 나 이제 독립할게.”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에, 백설하가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세 명의 동생들은 눈을 크게 떴고, 어머니는 걱정스레 물었다.

“왜 벌써 독립하려고 그래. 너 아직 21살이야. 회사가 멀어서 그래? 멀긴 해도 못 다닐 정도는 아니잖니.”

백설하가 쓰게 웃었다.

그녀는 가족에게 보컬 학원 트레이너로 일한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가로 엔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백설하가 다시금 아이돌에 도전하는 것을 반대할 게 뻔했으니까.

백설하가 아이돌로 지내면서 받았던 상처를 가장 잘 아는 게 어머니이기에.

“출근하는 거 힘들어서 그래? 뭣하면 엄마랑 아빠가 보태줄 테니까 중고차라도 사.”

백설하가 아이돌로서 실패했을 때 그녀가 흘린 눈물보다,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더욱 많았다.

다시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숨겨왔다.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

당당해지고 싶다.

욕심과 효심 사이에서, 백설하는 욕심을 택했다. 꽤 오래전부터.

“나 연습생 됐어. 몇 개월 전부터.”

독립하겠단 말을 했을 때보다 더한 침묵이었다.

눈밭에 갑자기 떨어지기라도 한 듯 황망한 기분을 느끼며, 백설하는 용기를 쥐어 짜냈다.

“다시 아이돌 해볼래.”

밥상이 뒤집혔다.

* * *

오늘은 전원이 숙소로 이사하는 날이다.

리카와 장하양은 이미 숙소에 가 있고, 조아라는 한구인이 데리러 갔다.

성필은 아침 일찍 회사로 나와 백설하가 오길 기다렸다.

‘내가 숙소로 가는 것도 아닌데 들뜨고 그러네. 애들이 잘 지낼지 모르겠다.’

하얀 입김을 뱉으며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 백설하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작은 트렁크를 끌고 있었다.

“설하 씨…… 이?”

“이사님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설하 씨 그건? 왜?”

“아, 이거요.”

백설하가 별거 아니란 듯 웃으면서 자신의 뺨을 쓸었다.

그녀의 왼쪽 뺨에는 거즈가 붙어 있었다.

“어제 계단 내려오다가 넘어졌어요. 하필 벽에 뺨이 쓸려서요. 죄송해요. 조심했어야 하는데.”

“아뇨. 아뇨 아뇨 아뇨 아뇨! 설하 씨가 죄송할 게 뭐 있어요! 괜찮아요? 많이 다쳤어요? 어, 얼마나 다치신 건데요?”

아이돌에게 얼굴은 생명이다.

아니, 굳이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얼굴은 소중하다.

백설하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

성필은 울상을 지으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좀 있으면 나을 거예요.”

“쓸렸다면서요. 병원 안 가도 돼요? 병균 같은 거 들어갔으면 어떡해요.”

“병원 갔어요. 저는 괜찮으니까 이제 가요. 많이 추우셨죠?”

백설하는 일부러 힘차게 트렁크를 들어서 차 안에 넣었다.

안에 든 게 별로 없는 듯, 백설하가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 수 있었다.

“옷 많이 안 챙겨오셨어요?”

“아, 하하. 제가 옷을 잘 안 사거든요. 막상 가져오려니까 별로 없더라구요.”

“…….”

성필은 백설하를 오래 보아왔다. 그녀가 핑계를 대고 있는지 아닌지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마음을 숨기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백설하는 거짓말하고 있다.

그녀는 우울함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더 밝게 웃었다.

‘이사님한텐 못 말하지.’

어제 어머니와 대판 싸웠단 것도.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단 것도.

급히 나오느라 물건을 챙기지 못했단 것도.

말할 수 없고, 말해봤자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알겠어요. 타세요.”

백설하에겐 다행히도 성필은 더 물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성필의 무관심이 고마웠다.

하지만 성필은 운전하는 중 백설하를 수십 번도 더 흘끗거렸다.

어지간히 걱정되는 듯했다.

“설하 쌤이 제일 마지막…… 에? 쌤 뺨이 왜 그래요?”

백설하가 또 변명하려던 차, 성필이 대신 그녀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멤버들은 백설하를 위로해주었다.

“아라는 많이 춥나 보네. 뺨이 호빵맨 같다 야.”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왜 말해요. 말하지 마요.”

한구인은 조아라의 집 앞에 있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조아라의 어머님이 뺨에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는 것이다. 딸이 집을 떠난다는 데 매우 슬퍼했단 모양이다.

“화목한 가정이네. 보통 사춘기 들면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

“나도 싫거든요? 엄마가 억지로 하는 거지.”

“부럽다.”

“뭐가 부러워요. 짜증 나 죽겠는데. 아직도 내가 유치원생쯤 되는 줄 알아.”

조아라가 툴툴대면서 땅을 차자 장하양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들어가자. 춥다.”

“하양 언니가 소개해주면 안 돼요? 사랑의 하우스처럼!”

사랑의 하우스.

옛날에 유명했던 방송 프로그램이다.

일반인에게 이상적인 집을 만들어준다는 게 기본 골자인데, 인기가 매우 많았었다.

하지만 리카가 알 만한 방송은 아니었다.

“사랑의 하우스가 뭐야?”

정작 한국인인 장하양은 사랑의 하우스를 몰랐다.

“벌써 사랑의 하우스를 모르는 세대가 왔네. 설하 씨는 아시죠?”

“……저도 몰라요.”

“…….”

“저 21살이에요…….”

“죄송합니다.”

결국 숙소 소개는 리카가 맡았다. 그녀는 현관에서부터 하나씩 공간을 소개했다.

“여기가 안방1. 여기가 안방2. 여기가 거실, 여기가 주방!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어요!”

“이거 무섭다. 왜 달아둔 걸까. 전에 있던 그룹이 창문으로 도망가기라도 했어요?”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다음으론 방을 정해야 했다.

방이 두 개이니 두 명씩 들어가야 한다.

멤버들은 눈치를 보았다.

‘그렇겠지. 멤버들끼리도 친한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런데 누가 누굴 먼저 고르면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한창 인간관계에 예민할 시기다.

성필이 해답을 내놓았다.

“이런 건 어때? 동생 라인이 같은 방. 언니 라인이 또 다른 방에.”

“아저씨 나 질문. 그거 무슨 기준?”

“그럼 편하지 않을까 해서. 왜, 너 리카 싫어?”

“충격! 차임 11번째 달성! 심지어 아라쨩한테 고백도 안 했는데!

리카는 장난스레 말하긴 했으나, 조아라의 발언에 정말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친하게 여겼던 친구에게 ‘너랑 있기 싫은데?’란 말을 들은 사람 같다.

“나 잘 때 예민해요. 코 고는 사람은 안 돼요. 리카 코 골아?”

“시라나이(몰라).”

“설하 쌤은요?”

“나도 몰라. 누구랑 같이 자본 적이 없어서. 가족들은 딱히 말 안 했는데.”

“하양 언니는요?”

“나도 들은 적 없어.”

“러시안 룰렛인가.”

조아라를 제외하곤 그다지 코골이에 예민하지 않다고 했다.

“그냥 미성년자랑 성년자로 나눠. 그게 지내기도 더 편할 거야.”

“뭐, 그럴게요.”

“아라쨩! 이제부터 같이 사는 거야!”

리카가 조아라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아 미친! 얘 돌았나 봐! 푸핰! 얼굴 치워!”

“충격! 차임 12번째 달성!”

한구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촬영용 스마트폰으로 멤버들을 계속 찍었다.

미리 멤버들에게도 언질을 줬다.

앞으로 그녀들의 생활이나 연습을 영상으로 남겨서 업로드할 것이라고 말이다.

방을 배분한 뒤, 성필은 멤버들을 거실로 불러 모았다.

“너희들은 여기서 몇 년 동안 함께 살 거야. 미리 말하지만 힘들 거다.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야.”

“오오, 아저씨 동거 많이 해봤어요?”

“군대.”

“앗…….”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겠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이해해주고 살펴줬으면 좋겠다. 근데 아무리 잘 지내도 분명 쌓이는 게 있을 거야. 그때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이렇게 해.”

성필은 식탁에서 한구인과 마주 보고 앉았다.

성필과 한구인이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보면서 말해. 시범 보여줄게. 한 이사님. 저는 한 이사님이 극존칭 쓰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냥 반말하면 안 돼요? 동년배잖아요.”

“나중에 친해지면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저도 노력해볼 테니까 한 이사님도 노력해주세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연습까지 해 온 상황극이었다.

멤버들은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누가 그런 걸 해요.”

“어? 너 이거 무시해? 진짜 효과가 있다니까. 나중에 쌓여서 터뜨리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나아.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시선을 맞추는 건 심리학적으로도…….”

조아라는 그저 웃긴 짓으로만 받아들이는 듯했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반응이긴 했다.

“아무튼. 싸우려면 식탁에 앉아서 내가 방금 보여준 것처럼 해. 설하 씨가 잘해주세요. 애들 목소리 높아진다 싶으면 바로 여기로 데려와요.”

“네.”

“다음은 규칙 정하자. 일단 내가 여기 화이트보드에 기본적인 규칙은 써뒀거든? 생활하면서 너희들끼리 추가 규칙 써둬. 여기 적힌 건 반드시 지키는 거야. 알겠지?”

“네.”

“다음으론.”

한구인은 가방에서 노트를 하나 꺼내어 백설하에게 주었다.

“밥은 여러분들이 직접 해 드셔야 합니다. 식재료는 제가 주기적으로 전달해드릴 겁니다. 이 책은 제가 만든 레시피입니다. 여러분들이 먹고 싶은 걸로 해드십시오.”

멤버들은 한구인의 노트를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적은 듯이 깔끔한 필체였다.

거기에 사진마저 붙여져 있고 요리의 과정이 매우 상세히 적혀 있었다.

초심자라도 따라 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을 수준이었다.

“할 말은 이게 끝이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데뷔를 향해 열심히 해보자.”

* * *

성필과 한구인이 회사로 돌아갔다.

멤버들은 오늘만 특별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점심도 저녁도 맛있는 것을 먹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엔 거실에 앉았다.

회사에서도 같이 모여 있다 보니 떨어져 있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여기서 7, 8년을 살아야 하는 거네요.”

“응. 그러니까 빨리 익숙해져. 밥 먹고 이렇게 모여 있을 필요도 없어. 여기 회사 아니야.”

“그렇게 말해도 할 게 없는데.”

숙소는 휑했다.

방을 그녀들 나름대로 꾸며본다고 했으나, 고작 물품 몇 개 들여놓은 게 전부였다.

리카는 벌떡 일어나 거실 중앙에 걸린 화이트보드로 다가갔다.

“계속 신경 쓰였는데요. 여기 2번 규칙 있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 사람이 와서 상태를 점검한다고 하잖아요. 그럼 한 이사님이나 박 이사님이 오시는 걸까요?”

“그렇겠지?”

“청소 잘해야겠다.”

“바로 밑에 3번 규칙이 ‘청소 잘하자’잖아.”

화이트보드 바로 아래쪽에는 한구인이 고심해서 정해준 청소, 빨래, 요리 담당 순번표가 있었다.

초반부터 정해주지 않으면 하는 사람만 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상태 점검이면 어디까지 보시는 걸까요. 막 서랍 열어보고?”

“그건 에바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그렇게 할걸?”

백설하의 말에 나머지 세 명이 충격을 받았다.

“사생활 침해예요!”

“안 좋은 거 숨겨뒀을 수도 있잖아. 나 옛날에 숙소에 있을 땐 서랍이랑 전부 다 열고 검사받았어.”

“이상한 거요? 어떤 거요? 총?”

“그, 있잖아. 전에 우리가 청소할 때 찾았던 그런 거…….”

“고무친구?”

“야, 고무친구가 뭐야! 뭔 친근한 애처럼 부르고 그러냐 그걸.”

“아라쨩. 그런 걸 부끄러워하면 안 돼. 그런 인식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구속하는 거라구! 당당해야 져야 해! 그게 민주시민의 의무야! 어떤 사안에 침묵하는 자는 자신이 필요한 순간에도 침묵하게 돼!”

리카는 가끔씩 거창한 말을 한다.

대부분이 한구인의 수업 시간에 들은 것이었다.

“알겠어요 똑똑이 씨.”

“저 먼저 씻어도 되죠?”

“어, 그럴래? 잘 가.”

장하양은 미련 없이 거실을 떠났다.

“쌤, 잘 가가 뭐예요. 같은 집에 있는데.”

“그, 그러게.”

“하양 언니 약간 독고다이 기질 있는 거 같지 않아요? 혼자 둬도 잘 놀 듯.”

“아앗! 아라쨩 그러면 안 돼!”

“뭐가?”

리카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5번 규칙을 가리켰다.

“‘어떤 사람이 자리에 없다고 그 사람을 대화 주제로 두면 안 된다’? 그래 저거. 난 점검 뭐시기 하는 규칙보다 저게 더 신경 쓰여.”

백설하는 저 규칙이 이해가 갔다.

숙소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이상한 생활양식을 가진 멤버가 있기 마련이다.

그 멤버의 이야기가 대화 주제로 자주 오르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벽 같은 게 만들어진다.

의식적으로 나누는 게 아니더라도 ‘쟤는 좀 특이해’가 ‘쟤는 이상해’로 생각이 변할 수 있다.

5번은 이른바 편 나누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만든 규칙이었다.

“저게 뭐야? 아예 대화를 하지 말란 것도 아니고.”

“아라쨩!”

“또 뭐.”

“박 이사님은 신이야! 저 규칙은 무적이고! 박 이사님도 생각이 있으신 거야!”

“걍 둘이 사귀어. 뭐만 하면 박 이사님, 박 이사님. 아주 그냥 아빠라고 부르지?”

“그건 이사님이 부담스럽지 않으실까.”

“이상한 데서 머뭇거리네.”

조아라가 리카를 껴안고 바닥을 굴렀다.

꺄륵거리는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백설하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씻으러 갔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니, 장하양이 책상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솜씨는 좋지 않았다.

얼마 전 조아라가 준 ‘뜨개질 교본’이란 책을 간간이 보면서 겨우겨우 손을 한 번 놀렸다.

“주무시게요?”

“조금 있다가 잘 거야. 불 켜둬도 돼.”

“아니에요. 스탠드 약하게 켜두고 있을게요.”

“괜찮은데.”

불이 꺼지고 백설하는 이불을 덮었다.

간간이 뜨개질하는 소리만 들렸다.

‘어색해.’

백설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

갑자기 장하양이 불을 켜고 가방을 뒤졌다.

“언니. 이거 바르고 주무세요.”

연고였다.

상자에서 뜯지도 않은 새것이었다.

“산 거야?”

“네. 제가 자주 써봤는데 좋아요.”

“아, 고마워. 잘 쓸게.”

장하양은 싱긋 웃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백설하가 얼굴을 보이는 것을 꺼릴까 배려해서인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백설하는 한동안 연고를 바라보더니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뺨의 거즈를 뜯었다.

동시에 리카와 조아라의 방에선.

“아라쨩 따뜻해.”

“질린다 정말.”

리카는 굳이 조아라의 침대로 들어와 있었다. 무슨 죽부인 껴안듯이 조아라를 안은 채였다.

“더 다가와. 안 추워? 춥지?”

“안 추워. 더워. 떨어져.”

“난 추워.”

“어쩌란 건데 대체.”

둘은 새벽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내일부터 헬스장 다니지?”

“응. 짐(Gym)에 가서 몸무게도 재고 체형도 재고 식단도 받는댔어.”

“……그거 아저씨랑 한의사님이 보겠지?”

“당연히 보겠지. 익숙해져. 나 전에 있던 기획사에선 매일매일 몸무게 쟀어. 근데 아라쨩은 괜찮아. 아라쨩이 우리 중에 제일 가벼울 거야.”

키가 가장 작으니까, 라는 말은 뺏다.

조아라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다.

* * *

검사지를 비교한 조아라가 충격에 빠졌다.

“내가 제일 뚱뚱해……?”

키도 제일 작은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