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71화 (71/760)

#071화

지금까지의 성필이 졸졸 흐르는 빗물과 같았다면, 이제는 둑이 터진 강물이었다.

그의 눈에 커다란 방울이 맺혔다.

“사장님…….”

홍규헌이 다 이해한다는 듯 팔을 펼쳤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 안으려던 때.

“감사합니다!”

성필이 머리를 팍 숙였다.

“사장님이 주신 기회, 절대 헛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성필은 결연한 인사와 함께 후다닥 회의실을 나섰다.

홍규헌은 한동안 뻘쭘하게 팔을 펼친 채로 있었다.

“음.”

홍규헌은 고독히 앉아 마저 담배를 태웠다.

잠시 후, 한구인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사장님 돌으셨습니까?!”

혼났다.

* * *

리카의 레슨이 끝난 뒤에도 정지음은 우두커니 방 안에 앉아 작곡 프로그램을 만졌다.

아직 성필에게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건만, 그에게 버림받았단 생각에 쉽사리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엘릭 곡이 좋지. 좋을 거야. 그래도 내 곡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냐, 괜한 기대 하지 마. 그래. 박 이사님이 곡이 채택 안 됐다면서 사과하러 오실 때 할 말이나 생각해두자. 표정 썩으면 안 되니까 미소 짓는 연습도 해두고…….’

“지음 씨!”

성필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면서 들어왔다.

너무 기세가 격렬하여, 정지음은 성필이 어떤 용무로 왔는지도 모르고 사과부터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오래 있었네요. 앞으론 레슨 끝나면 바로 가겠습…….”

“그 곡 한 번 더 들어봐요.”

“네?”

곡 틀어주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정지음은 곡이 재생되는 동안 성필을 계속 힐끗거렸다.

‘갑자기 왜? 아, 엘릭 곡 듣고 오셨을 테니까 비교하려는 거구나.’

사려 깊은 사람이다…….

‘바로 거절하면 내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구나. 굳이 이런 액션 안 취해주셔도 되는데. 응, 쿨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자. 할 수 있지 정지음? 당연하지!’

“지음 씨.”

성필이 입을 떼자마자 정지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는 괜찮아요……. 어쩔 수 없…….”

“이 곡 쓰실 때 어떤 느낌으로 쓰셨어요?”

“어, 느낌이요?”

“이 곡을 부를 아티스트에게 요구하는 컨셉이나 느낌이요.”

‘곡은 답을 알고 있다.’

안무가나 작사가가 하는 말이다.

작곡가는 이미 곡에 모든 감정과 흐름을 담아놓았기에, 안무가나 작사가가 할 일은 곡을 읽어내는 것뿐이라고들 한다.

기획사에서 따로 요구사항이 있기도 하지만, 그건 작곡가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기획사가 곡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채택한 것일 테니까.

“딱히 그런 건…… 아무렇게나…….”

하지만 정지음은 일반적인 작곡가와는 달랐다.

그는 작곡을 할 때마다 마치 하늘에게서 곡을 받은 것 같다고 느꼈다.

그저 머리와 손이 가는 대로 곡을 만들다 보면 어느샌가 완성되어 있다. 그의 생각이나 사상과는 별개인 것이다.

“음.”

성필은 정지음의 답을 듣고 ‘역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곡은 정말 백지 그 자체다.

“오히려 좋네요.”

“좋나요…….”

괜스레 하는 칭찬이구나, 하고 생각할 때.

“지음 씨. 사장님이 이 곡 완성해서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그럼 그때 후보곡들이랑 전부 비교해볼 거예요.”

“…….”

잘못 들었나?

“가이드까지 입혀서 완성할 거예요.”

“……제가요?”

‘내 돈으로 전부 하라고?’

“아니요. 제가요. 그럼 정말 곡을 어떻게 만들어도 괜찮은 거죠?”

“……네, 네. 저는 딱히 곡의 스타일 같은 건 안 정해뒀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할게요.”

성필은 한시가 바쁘단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지음이 당황해서 물었다.

“진행한다는 게, 그러니까, 그게…….”

“가사 붙이고 가이드 녹음할 거예요.”

“잠시만요. 오늘 엘릭 오지 않았었나요?”

“왔죠.”

“곡이 안 좋았어요?”

“좋았어요.”

“그런데 왜 굳이…….”

“저는 지음 씨 곡에 걸기로 했어요. 저랑 지음 씨는 연맹인 거죠. 엘릭의 곡이랑 싸우는 거예요.”

“…….”

정지음은 이게 꿈이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필은 정말 정지음 자신의 곡에 꽂혔다. 그리고 그 곡을 멤버들의 데뷔곡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박 이사님 사실 제가 여기 보컬 라인을 붙인 버전도 있거든요. 꼭 이대로 하라기보다는 참고용으로만 써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성필은 수정본을 들어보았다.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네요. 이것도 좋아요. 솔직히 저도 좀 막막하긴 했거든요. 작사가들한테 보내면 5분 만에 전화 와서 ‘어디에 가사를 붙이나요?’라고 할 수준이었는데.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 그리고 이사님.”

“네?”

“말 놓으셔도 돼요. 저보다 형님이신데…….”

“그럴까?”

이로써 가로 엔터에서 성필이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다시 셋이 됐다.

홍규헌, 한구인, 백설하.

* * *

성필은 멤버들을 연습실로 불러 모으고 정지음의 곡을 들려주었다.

“자, 이 곡에서 뭐가 느껴져?”

다들 대답이 없다.

이 곡에서 뭐가 느껴지냐고?

어떤 서사나 감정이 느껴지냐고?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리카는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힘겹게 답을 내놓았다.

잔뜩 기대하는 성필의 눈을 보고도 그리 말하기가 참 힘들었을 텐데, 그녀 나름 용기를 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고,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아저씨, 리카 괴롭히지 마요.”

“너도 모르겠어?”

“네. 뭐, 모르겠는데요. 좀 신난다? 약간 미묘하게 신난다?”

“으음…….”

정지음이 수정한 버전은 이전의 것보다는 곡의 형태가 명확해졌다.

벌스나 코러스, 브릿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게 됐단 뜻이다.

보컬 라인을 넣으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설하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랩을 넣으면 좋을 거 같아요…….”

“어디에요?”

“저, 전반적으로 다? 보컬을 넣으면 느낌이 살까요?”

“이거 보컬 라인이었는데요.”

“아, 보컬 라인이었구나.”

상태가 심각하다.

멤버들 전부 감을 못 잡고 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작곡가조차 곡에 아무런 생각도 넣어두지 않았는데 타인이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겠는가.

“저희 데뷔곡은 이걸로 정해졌나요?”

“아니. 이 곡으로 엘릭의 곡이랑 싸울 거야. 하양이 넌 뭐 느낌 없어?”

“당당한 가사여야 할 거 같아요.”

“당당함!”

“아, 깜짝야! 아저씨 왜 소리 지르고 그래…….”

“벌써 감정이 하나 나왔잖아. 역시 하양이다. 또 더 없어?”

장하양은 성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힘 있는…… 당당한 안무?”

“힘! 당당!”

그것으로 아이디어가 메말랐다.

성필이 축 처졌다.

“내 꿈이 너무 컸구나.”

“실망할 거면 아저씨가 의견 내봐요. 여기 뭔 감정이 있는데요?”

“……힘이랑, 당당함?”

장하양이 성필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둘이 하이파이브했다.

“저 또 하나 떠올랐어요.”

“오늘 일은 하양이가 다 하네.”

“이 곡은 패션쇼에 나와도 괜찮을 거 같아요.”

정지음이 이걸 들으면 칭찬이라고 여겼을까 욕이라고 느꼈을까.

성필은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를 전부 필기했다.

[힘. 당당함. 패션쇼.]

“또 다른 의견.”

“…….”

“없어?”

“…….”

“끝? 음악사 수업을 몇 달 동안이나 들어놓고서 이렇다니…….”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왜 미안해야 하는데요. 이런 곡에 감상을 말하라는 아저씨가 잘못한 거지.”

“오, 아라 벌써 컨셉 맞추는 거야? 힘 있고 당당하네. 네 말이 맞아. 감상이 나오기 힘든 곡이긴 하지.”

성필은 수첩을 덮었다.

하루 만에 아이디어가 화수분처럼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기대하긴 했다.

한구인의 음악사 수업은 음악을 듣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단련되었으니, 이 곡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다들 생각이 메말라 있다.

“이거 음원 줄 테니까 다들 자주 들어. 씻을 때도, 잘 때도 들어서 아이디어 생각해.”

“이사님 질문 있어요!”

“해.”

“저희 감상이 중요한가요?”

“응. 가사에 반영할 거니까.”

“서, 설마 저희가 가사 쓰나요?! 아타시 칸고쿠고 요쿠 데키나이나노니(저 한국어 잘 못 하는데)!”

“가사는 작사가님이 쓰지.”

“휴우, 다행이다.”

“질문을 바꾸자. 이 곡에서 뭐가 느껴지냐가 아니라 이 곡에 뭘 담고 싶냐, 그걸 생각해. 너희 나이대의 사람이 갖는 고민이면 더 좋겠다.”

“고민이어야 해요?”

“아, 그냥 생각이면 돼.”

“하이(네)!”

그렇게 1차 곡 아이디어 회의는 처량하게 끝났다. 하지만 성필은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힘. 당당함. 패션쇼.’

이런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윤곽을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장하양의 아이디어는 멤버들이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 해산!”

“여기가 우리 연습실인데요.”

“그럼 해산은 내가 해야겠네.”

성필은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백설하가 급히 그를 따라 나왔다.

“설하 씨 왜요?”

“아, 그게요.”

백설하는 성필의 눈치를 살피며 조곤조곤 말했다.

“방금 그, 애들이랑 저랑 아이디어 못 낸 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예요. 귀찮아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요. 다들 진지하게 하고 있어요…….”

“알죠. 좋은 생각이 빨리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네에, 그쵸. 도움 못 돼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천천히 하면 돼요. 그거 말씀하러 오신 거예요?”

참 걱정도 많다.

성필은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맞다. 설하 씨 춤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지적받은 버릇도 많이 줄었고요. 이대로만 하면 데뷔 때 가면 훨씬 좋아질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하실 말씀은 이제 끝인가요?”

“아뇨. 저, 엘릭 님 오셨을 때요. 그 ‘Oh my own’ 보여드렸을 때요. 저 음 이탈한 거…… 죄송해요. 완벽했어야 했는데. 진짜 무대라고 생각하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엘릭 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그때 월평에서 몇 달이나 지났고, 갑자기 시킨 건데 완벽하면 더 이상하죠.”

그 뒤로도 백설하는 불안한 태도로 자꾸 사과했다. 성필은 계속 그녀를 안심시켜주었다.

대화가 끝난 뒤, 백설하는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며 연습실로 사라졌다.

‘데뷔가 가까워져서 그런가. 점점 자기평가가 야박해지시네.’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건 칭찬받을 일이지만, 오늘의 백설하는 조금 과한 기색이 있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불안은 성취를 위한 좋은 동기다. 다만 심해지면 문제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 * *

“에, 에. 왜 채널이 이것밖에 안 나와?”

“셋톱 끊긴 거 아냐?”

“고장이야?”

리카가 텔레비전을 툭툭 두드렸다.

그런다고 안 나오게 된 채널이 나올 리 없었다.

채널을 몇 번이나 돌려도 공중파 채널 몇 개만 나올 뿐, 리카가 즐겨 보는 채널은 전부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부러 끊은 거 같은데.”

“난데(어째서)?!”

“모르지. 어차피 우리 티비 볼 시간도 없는데 딱히 상관없잖아.”

“손나(그런)……. 아, 아라쨩. 방법 없을까?”

장하양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들었다.

실은 그녀가 성필에게 말해 유선방송을 끊은 것이었다.

맹장염으로 숙소에 계속 남아 있던 리카가 새벽마다 성인방송을 보곤 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씩 그러는 것 같다.

“걍 아이튜브로 예능이나 드라마 엑기스 찾아보면 되잖아. 요즘 누가 티비 봐.”

“우으…….”

장하양은 울상 짓는 리카를 보곤 자그맣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단지 자그마한 죄책감일 뿐이다.

‘리카, 미안.’

장하양은 무거운 결단을 내린 기업가와 같은 태도로 단호히 거실을 나섰다.

방 안에는 백설하가 침대에 앉아 수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끙끙대며 정지음의 곡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을 모두 쓰는 중이었다.

“아, 하양아 다 씻었어? 불 끌까?”

“아니요. 언니 하시던 거 하세요.”

“으, 응, 미안.”

장하양이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백설하는 끙끙거리며 머리를 혹사시켰다.

“언니.”

“응?”

“힘든 거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해결은 못 해드려도, 듣는 건 할 수 있어요.”

백설하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힘든 거 없어.”

장하양은 백설하의 침대로 가서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저희는 팀이잖아요. 언니가 힘들어하는 거 보면 저도 힘들어요. 괴로움도 나누면 반이 된다잖아요. 말해주세요.”

“으응, 아니야. 그런 거 없어. 내가 요즘 피곤해서 그렇게 보였나 봐.”

설령 있더라도 말할 순 없다.

백설하는 리더다.

땅에 깊이 뿌리 박힌 나무처럼 굳건해야 한다.

그녀가 동요하거나 불만을 보이면 다른 멤버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장하양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가 상당히 불안한 티가 났다는 뜻이지만 말이다.

“언니.”

장하양의 손을 통해 한기가 전해졌다. 그녀의 손은 체질 탓인지 차가웠다.

하지만 그 한기가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오히려 포근함으로 다가왔다.

그렇더라도 백설하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동생의 말 몇 마디 때문에 고민을 말할 정도로 백설하는 나약하지 않았다.

이미 오랜 연습생 생활에다가 아이돌 생활도 겪었기에,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않다.

쉽사리 나약함을 보일 수는 없는 법…….

“나 무서워…….”

백설하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 * *

“선호하는 작사가분 있어?”

“아니요. 곡 맡겨본 적이 없어서요.”

정지음은 곡에 대해 아무런 요구사항이 없었다.

성필은 전생에서 그와 작업해 보았다. 그의 스타일은 익히 알던 터라 새삼 곤란해하지는 않았다.

‘멤버들의 아이디어만 기다릴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보기로 했다.

먼저 한구인이었다.

“기업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타깃층을 정하지 않는 겁니다. 막연히 모든 사람에게 팔리는 상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저희의 경우에는 상품이란 곡이겠죠.”

“오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곡 따위는 없습니다. ‘대중성을 노린다’는 말 자체가 허상입니다. ‘누군가는 좋아하겠지’란 생각도 위험합니다.”

“오오오.”

“무조건 타깃을 정해야 합니다. 대상을 한국으로 한정하면 연령과 성별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겠죠.”

“오오오오.”

“주류 집단을 타깃으로 정하는 건 충분한 프로모션 능력을 갖춘 대형 기획사에서나 가능하니, 저희는 소수 집단을 노려야 합니다. 박 이사님은 멤버분들의 이야기를 곡에 담고 싶다고 하셨으니 타깃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솔직히 그것도 너무 넓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셔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성별을 정해야겠죠.”

성필은 막연히 아이돌곡이면 10대 20대가 많이 듣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10대라 해도 학교에 따라 집단이 갈린다.

20대도 세세하게 나이를 나누면 고민이나 생각 등도 다 다를 것이다.

“확실히 한 이사님이 말씀이 맞…….”

“소비자의 종류는 크게 네 개로 나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먼저 모든 제품군을 사용하는 고객, 즉 신제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객을 들 수 있는데…….”

한구인의 경영학 강의가 시작됐다.

성필은 중간부터 이해하기가 힘들어졌다.

1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를 듣고 나오니 머릿속이 정보로 가득 찼다.

벽을 짚으면서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는데,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하아. 조아라 얘가 또 나 놀리려고 하네.’

이번에는 먼저 놀라게 해줘야겠다.

성필은 재빠르게 뒤로 돌아 소리쳤다.

“꺄악!”

놀란 장하양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성필은 크게 당황해서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다쳤어? 미안…… 난 또 아라인 줄 알고 그랬는데…….”

“아, 아하하. 아라라도 이러시면 안 되죠.”

“걔 맨날 나 괴롭힌단 말야. 그, 미안. 앞으로는 조심할게.”

장하양이 성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라랑 매일 이렇게 노세요?”

“논다니. 나는 심장 떨어져서 죽겠는데…….”

“와악!”

장하양이 새끼 사자가 위협하는 듯한 자세로 소리쳤다.

성필이 그런 것으로 놀랄 리가 없다.

눈만 깜빡이고 있자니 장하양이 수줍게 미소 지었다.

“복수예요.”

“어…… 응. 놀랐네.”

“이사님.”

“응?”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잠시 조용한 데로.”

성필은 장하양을 따라 응접실로 갔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성필을 멍하게 만들었다.

“설하 씨가 그렇게 말했어?”

“네. 이사님이 나서주셔야 할 거 같아요.”

“그래. 그러니까, 설하 씨가 나한테 미움받을까 봐 무서워하신다고?”

“말로는 회사 분들 전체라고 했는데, 이사님을 가장 신경 쓰는 거 같았어요.”

장하양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성필의 기대 수준이 과도해서 백설하가 압박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적어서, 실패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며 끙끙대고 있다.

“언니가 계속 그러면 언젠가 무너질 거 같아요.”

“그럼 뭐…… 어떡하지?”

미래에 실패하더라도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증명해?

애초에 증명할 수 있는 건가?

그나마 떠오르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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