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화
준비된 곡은 총 6개였다.
성필, 홍규헌, 한구인, 손혜빈이 전곡을 들어본 뒤 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하나가 선택된다.
전부 가이드가 입혀진 곡이다.
생각해야 할 건 멤버들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
그리고 멤버들이 만들 그룹의 색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무엇보다도, 곡이 좋은가 아닌가.
즉, 팔리느냐다.
“틀겠습니다.”
한구인이 첫 번째 곡을 재생했다.
성필은 수첩에 곡에서 받은 느낌을 빠르게 필기했다. 그는 정지음의 곡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나, 다른 곡을 허투루 들을 생각은 없었다.
‘괜찮네.’
첫 곡만 들었을 뿐인데도 너무 집중했는지 진이 다 빠졌다.
성필은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귓가를 심장 소리가 전부 채울 듯했다.
곡을 정한다는 이 상황이 흥분되기도 했다. 동시에 정지음의 곡이 홍규헌의 마음에 들까 하는 고민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다.
“이어서 하겠습니다.”
곡들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섯 번째, 엘릭이 작곡한 ‘팅글(Tingle)’이 나왔다.
처음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정말 좋다.
가사의 큰 주제는 사랑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은 아니었다.
‘너’라고 부르는데도 특정한 사람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듯했다.
바로 팬이다.
‘팅글’은 팬에게 하는 말을 담고 있었다.
불안한 길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가슴이 떨리고 답답하지만, 너와 함께 앞으로 헤쳐 나가보겠다. 나도 이 충동을 이길 수 없으니 너 또한 나와 같이 가고, 또한 나를 이끌어 달라.
‘누나가 말했던 느낌이 다 담겨 있어. 시작. 도전. 그새 수정 좀 했는지 멤버들 특색을 담을 만한 파트도 구분돼.’
좋다. 좋긴 한데.
‘약해.’
그룹의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서 평이하단 평가가 가시지 않았다.
성필은 마음을 굳혔다.
곡이 끝나고 홍규헌이 물었다.
“이제 마지막 곡인데. 박 이사. 이 곡 이름은 뭐야?”
“아니(Ani)에요.”
“뭐가 아닌데?”
“아니. 곡명이 ‘아니’라고요.”
“뭐?”
“곡 이름이 아! 니! 라고요.”
“아아, ‘아니’.”
말장난하기 좋은 제목이네. 홍규헌은 별다른 감상 없이 곡을 재생하라고 했다.
그렇게 홍규헌의 앞에서 ‘아니’가 처음으로 선보여졌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성필은 필기하는 것도 잊고 홍규헌의 얼굴만 보았다.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홍규헌은 일관된 무표정이었다.
도저히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최소한 찡그리거나 미소만 지어줘도 좋을 텐데.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곡이 끝났다.
“오케이. 한 이사, 쪽지 돌려.”
각자의 앞에 작은 종이가 하나씩 놓였다.
“곡 제목 두 개 적어서 나한테 내.”
홍규헌은 쪽지를 전부 받아서 보았다. 그리고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글자를 적었다.
[팅글(Tingle)]
[아니(Ani)]
성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성필 외의 누군가는 ‘아니’를 선택해주었다는 뜻이니까.
그게 홍규헌이면 더 좋을 것이다.
“일단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전부 딱 이 두 개만 적어서 냈어.”
“와, 저희 회사 단합 진짜 잘 되네요. 아님 듣는 귀가 다 비슷한가?”
“너무 비슷한 애들만 모이면 회사가 기우는데. 암튼 뭐어, 곡들이 좋다는 걸로 이해하자. 먼저 너희들 의견 들어보고 싶은데. 말하고 싶은 사람?”
한국인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힌 특성.
발표하라고 하면 안 함.
“저요.”
하지만 손혜빈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저는 ‘팅글’에 한 표 던질래요.”
“표 던지라는 뜻이 아니었는데.”
“아, 그래요? 헤헤. 그럼 어쩌죠? 비밀투표 원칙 어겨버렸네.”
“그냥 해야지. 장단점 말해. 아니다. 아예 돌아가면서 두 곡의 장단점을 말하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먼저 팅글 이거 팔려요. 느낌이 와요.”
“미리 말하는데 느낌만으로는 안 돼.”
“저도 알죠. 음, 말하자면요.”
손혜빈은 볼을 매만지면서 생각을 다듬었다. 그 후의 말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팅글이 갖는 주제는 꿈의 공유에요. 단순히 ‘내 꿈이 이거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청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는 거죠. 듣는 사람을 공감시킬 수는 없겠지만, 감정이입까지는 가능해요. 일반 청자가 아니라 팬을 고려하면 이 서사구조가 더 유용해요.”
일단 팅글은 아이돌 그룹의 데뷔곡으로 쓰이기에도 적합하다.
“성필이 기획서 있잖아요. 사장님도 거기에 공감하신다고 하셨죠?”
“그랬지.”
“애들이 보여줘야 할 건 성장이잖아요. 그 성장 과정의 시작에 위치해야 하는 게 데뷔곡이고요. 팅글이 가지는 정서는 거기에 알맞아요.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굳게 두 손을 꽉 쥐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의 모습. 무심코 응원하고 싶어지는 약하면서도 당당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잖아요. 자, 여기까지 서사와 캐릭터성을 다 잡았죠?”
이후로도 손혜빈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녀는 팅글이 지니는 이야기의 힘에 초점을 맞추었다.
굳이 코드의 진행이 어떻니, 후렴구가 중독성이 있니 뭐니, 음악적인 부분은 꼬집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듣기 좋잖아요?”
장장 10분에 걸친 손혜빈의 평가가 끝났다. 그녀는 다 이겼단 듯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한구인은 멍하니 손혜빈을 보고 있다가 황급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 정도로 분석해야 했었구나.’
한구인은 그저 사람들이 듣기에 어떨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당장 홍규헌이 감상을 물어본다면, 손혜빈에 훨씬 못 미치는 대답만 나올 것이다.
제발 다음 차례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직 손혜빈이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
“‘아니’는? ‘아니’에 대해서도 말해야지.”
“아, 네. 딱히 찍을 부분이 없긴 한데. 일단은.”
찍을 부분이 없다고 했으면서도 손혜빈은 물 흐르듯 단점을 읊었다.
“이게 저항? 자유? 그런 주제로 쓴 가사잖아. 맞지?”
“어, 맞아.”
“주제는 알겠는데 이야기가 없어. 가사는 전부 단편적이고 선언에 불과하잖아. ‘난 이래!’, 이게 사실 가사의 대부분이잖아. 멤버들끼리 가사로도 감정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게 없어. 그리고 담긴 메시지래 봤자 ‘난 아닌데?’, ‘난 싫은데?’, ‘너희가 틀렸는데?’가 전부잖아. 그냥 어른한테 투정하는 거 같아.”
씁쓸한 비평이다.
볼펜을 쥔 성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간신히 감정을 가라앉히면 손혜빈의 비판이 뒤를 이어서,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단어들을 모아서 뿌려버리는 느낌. 어떤 말인지 알겠어?”
“…….”
“솔직히 말해서 유치해.”
화룡점정이다.
성필이 손에 힘을 꽉 준 탓에 그가 쥔 펜이 크게 휘어졌다.
빠득, 빠드득. 플라스틱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며 아주 작은 파편들이 튕겨 나갔다.
“바, 박 이사님.”
한구인이 성필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사운드도 너무 실험적이야. 너무 비어 있잖아.”
“편곡할 거야.”
“아아, 그래. 편곡할 거구나.”
이 누나 일부러 신경 긁는 말투를 쓰는 건가?
“손 PD. 할 말 다 끝났어?”
“시간 더 주시면 더 할 수 있어요.”
“박 이사한테도 기회 주자. 박 이사. 네 차례야.”
성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첩을 보았다.
손혜빈의 박한 평가를 듣고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시야가 빙빙 돌았다.
이건 안 되겠다.
“먼저 반박하겠습니다.”
성필은 수첩을 놓아두고 머릿속에 있는 말을 쏟아냈다.
“이 곡의 타깃은 10대입니다. 높게 잡으면 20대 초중반도 되겠죠. 멤버들 나이랑 맞죠. 그 나이대의 애들이 가지는 감정에 정교한 배경과 논리가 있습니까? 혈기왕성, 뜨거운 심장을 가지는 시절 아닙니까. 철학적 메시지? 담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건 우상입니다. 아이돌이요. 자신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사랑으로 변하는 게 아이돌을 좋아하는 심리의 기저에 있는 겁니다.”
성필은 멤버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한구인에게 가져갔었다.
그랬더니 한구인이 지식을 동원해서 거기에 해설을 해줬었다.
그리고 멤버들은 한구인의 해석을 듣기 전까지, 자신이 저항감이나 불만을 갖는 근본적인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다.
“가사에서 하나하나 마음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선언이면 충분해요. 그리고 가사가 파편적이라고 했는데, 그걸 모아주는 게 바로 멤버들의 힘입니다. 때론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남들 눈치 안 보는 당당한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해요. 자신감. 순수함. 욕망. 저항. 꿈. 그 모든 것을 담아 ‘너희들 말은 필요 없어 난 내 맘대로 해’라고 말한다! 얼마나 멋져요? 누나 말은 어른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고. 누나는 젊었을 때…….”
“난 아직도 젊어.”
“……누나도 나이가 적었을 때 이랬잖아. 사람에게는 타인과 자신을 일부러 단절시킴으로써 자아를 확인해야 하는 단계가 있어. 이 곡의 가사는 그걸 표현한 거야. 유치하다고? 당연하지! 우린 어른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느끼지!”
성필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먹은 것을 전부 토해낸 듯 탈력감도 있었다.
“단순히 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같이 꿔달라. 이건 다른 아이돌들도 많이 한 거잖아. 그런 말에 뭐가 끌리겠어? 그냥 비주얼이나 음악색 보고 좋아하는 거지. 난 시작은, 적어도 데뷔곡은 애들이 가진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거였으면 좋겠어.”
“그럼 ‘아니’의 가사는 뭐 특별해? 이런 스타일 걸크러시야 지금까지도 꽤 있었잖아.”
“애들의 마음을 담은 게 중요하……!”
“그만.”
홍규헌이 두 사람을 제지했다.
“한 이사. 네 생각은 어때?”
“……저는.”
성필과 손혜빈이 한구인을 바라보았다.
그 불꽃 튀는 시선에 한구인은 눈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
“두 분의 의견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도 이미 두 분이 하셨습니다. 제가 고려할 건 정말 느낌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어. 두 사람 더 할 말 있어?”
“네!”
“있어요.”
“알겠어, 해.”
성필과 손혜빈은 쉬지도 않고 설전을 벌였다. 장장 수 시간에 달하는 싸움이었다.
저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럴수록 두 곡의 장단점은 점점 명확해졌다.
홍규헌은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중간에 곡을 다시 들어보기도 하고, 서로 입장을 정리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4시간 후.
“자, 이제 진짜 한마디로 정리하는 거야. 둘 다 알겠지? 응? 이해했지?”
성필과 손혜빈이 병든 닭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손 PD.”
“팔려요. ‘팅글’은 팔려요. 익숙하고 뻔한 만큼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거예요.”
“오케이. 박 이사.”
“‘아니’는 팬을 만들어요. 대중이라 부를 만한 범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제가 타깃으로 삼은 범주 안에서는 반드시 반응이 있을 겁니다. 데뷔, 즉 시작에서 얻어야 할 기초 팬층은…….”
“사족 붙이지 마.”
“……네.”
홍규헌은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았다. 그녀도 피곤한 기색을 잔뜩 보이며 종이를 돌렸다.
“다들, 써.”
뭘 쓰라는 건지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었다.
홍규헌은 표를 모아 펼쳐 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화이트보드에 각각의 득표수를 적었다.
[팅글(Tingle) 2]
[아니(Ani) 2]
동점이다.
이렇게 되면 홍규헌의 의사에 모든 게 맡겨진다. 성필은 제발 홍규헌이 ‘아니’의 편을 들어줬길 바랐다.
“애들 불러.”
“애들이요? 설마 사장님 애들한테도 투표시키시게요?”
“어. 다수결은 아니야. 그냥 의견을 들으려는 거야.”
멤버들은 연습을 하다 말고 회의실로 불려왔다. 그리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두 곡을 들었다.
“어? 두 번째 곡 가이드 쌤이 한 거…….”
“리카, 조용해.”
홍규헌이 리카의 수다를 막았다. 멤버들이 소통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녀들의 느낌만을 바랐다.
“종이에 써. 어느 게 더 좋은지. 어느 걸로 데뷔하고 싶은지.”
그 말에 멤버들의 표정이 굳었다.
이 자리에 보통 자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종이와 펜을 받아들었다.
종이를 받자마자 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하양이었다. 그녀는 펜을 살짝 움직인 뒤,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빠르게 종이를 접었다.
다음은 백설하였다. 그녀는 손혜빈이나 성필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종이를 제출했다.
“한 번 더 들려주면 안 돼요?”
“안 돼.”
조아라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계속 혀를 찼다.
결국엔 선택하긴 했어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마지막은 리카였다.
그녀는 이혼을 결심한 부모 앞에 선 자식처럼, 엄마인지 아빠인지 골라야 하는 상황에 처한 듯했다.
“리카. 아직 안 끝났어?”
“에. 에에 또…… 조금만 더요.”
30분이 지났다.
대체 고민할 게 뭐 그리 많은지, 슬슬 기다리는 사람들도 지겨워졌다.
리카는 발을 구르며 박자를 타거나, 방금 들은 노래를 옅게 허밍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냥 선택하기 힘들어서 시간을 끄는 건 아니었다.
노래를 머릿속에서 재생하는 것이다.
“리카.”
“조, 조금만 더요!”
리카는 계속 고개를 까딱거리며 허밍으로 곡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약한 신음 정도로만 들렸다.
40분이 넘었을 때, 리카가 종이에 숫자를 적어 넣었다.
마침내 표가 모두 모였다.
“나가 봐.”
멤버들은 결과도 듣지 못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홍규헌은 멤버들이 제출한 표를 확인했다.
“데뷔곡은 ‘아니’야.”
너무도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손혜빈과 성필은 벙쪄서 서로를 보았다.
“회의 끝. 다들 해산.”
“사, 사장님. 다수, 다, 다수결이었나요?”
“응.”
“몇 대 몇인데요?”
“알려줘야 해?”
“……아니요.”
“설마 해서 하는 말인데, 애들한테 뭐 찍었냐고 물어보지 마. 너희 둘로 파벌 같은 거 갈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예.”
“네.”
“가정이지만, ‘아니’가 실패하면 ‘아니’를 고른 애한테 원망이 몰릴 수도 있어. 반대로, 성공해도 나중에 그걸로 서로를 비판할 수도 있고.”
확실히 그건 문제였다.
투표란 건 책임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건 비밀투표 원칙이 지켜졌을 때만이다.
비밀이 박살 나면 사실상 공개 선택이나 마찬가지다.
“할 말 더 없으면 나가봐.”
오랜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 * *
홍규헌은 표들을 전부 펴 보았다.
[팅글(Tingle): 홍규헌, 손혜빈, 백설하, 조아라]
[아니(Ani): 박성필, 한구인, 리카, 장하양]
홍규헌이 했던 말과 달리 결과는 동점이었다.
동점이면 사장의 선택이 중요해진다.
홍규헌은 처음엔 팅글을 택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팅글’이 데뷔곡이 돼야 한다.
다만, 마지막에 홍규헌의 마음이 바뀌었다.
‘팅글은 팔린다. 그래, 팔리겠지.’
좋은 곡이다.
물론 ‘아니’도 좋다.
하지만 ‘팅글’의 강점은 대중에게 익숙하단 점이었다. 익숙하면 귀에 한 번이라도 더 들리고,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줄 확률이 높다.
특히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겠지.
‘팅글’은 안정적인 시작과 성적을 보장해줄 것이다. 홍규헌이 경영자라면 ‘팅글’을 골랐어야 했다.
하지만 표를 전부 펼쳐본 마지막 순간, 다 함께 만들었던 스토리보드가 떠올랐다.
그곳에는 성필과 한구인, 홍규헌의 목표가 적혀 있었다.
‘한 이사는 모든 음방에서 1위하는 아이돌. 박 이사는 최고의 아이돌. 그리고 나는.’
내가 반할 수 있는 아이돌.
“내가 팬이었으면 ‘팅글’보다 ‘아니’에 끌렸을 거야.”
홍규헌은 모든 표를 모아 갈가리 찢었다.
데뷔곡은 ‘아니’로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