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시도라면, 뭐 어떤 거.”
“일단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 사태에 대한 제 생각부터 말할게요.”
사실, 성필은 이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팬이 커뮤니티를 점령한 현상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데뷔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시간이 지나면, ‘소녀연맹 마이너 갤러리’도 개설될 것이다.
그럼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에 있던 팬들이 대거 옮겨갈 것이다.
설령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가 계속 주요 커뮤니티로 남더라도, 멤버별 팬이 골고루 유입되어 정화될 수 있다.
“보통 덕질한다고 하면 트잇터로 하기도 하고요. 또 저희가 팬카페도 개설할 거니까, 갤러리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분산될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야?”
“제 희망 사항이에요.”
희망 사항에다가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다.
하지만 안 좋은 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성필은 계속 불안했다.
프로젝트 그룹 출신 멤버가 다른 그룹에 들어가는 것으로, 팬덤의 분열이 쭉 이어지던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질지 모르니까, 일단 소극적인 조치만 해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아름이 개인 SNS에 글이라도 써보게?”
“아뇨. 갤러리에 직접 쓰게 하려고요.”
“……직접?”
그 야생에?
* * *
26살, 사회초년생, 남자, 유용태.
그는 주말 동안 ‘프로젝트 포유’를 정주행했다.
프로그램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신아름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회, 그녀가 최종선발될 때는 기쁘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좀 빨리 관심 가졌으면 나도 투표할 수 있었을 텐데.’
이어서 의아함도 생겼다.
‘아름이는 왜 포유를 나간 거지?’
포유 내에서 학폭 멤버가 발견되었단 건 알았지만, 신아름을 제외한 이들은 포유에 남아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아예 그룹이 폭발한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침몰하는 배인 줄 알고 나간 건가? 그건 쫌.’
방송에서 ‘우리는 할 수 있어!’라고 외치던 신아름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유용태는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룹 ‘포유’의 프로듀싱을 담당하게 된 기획사 대표의 인터뷰였다. 그는 학폭 사태가 터지고 멤버들에게, ‘데뷔가 불확실하니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도 된다.’라 했다는 모양이다.
그 말에 따라 신아름은 나갔던 것이고.
‘게다가 원래 기획사에서도 나간 건가.’
석세스 엔터면 나름 이름이 있는 곳인데.
가로 엔터가 얼마나 좋은 회사기에, 몇 년 동안 연습생으로 있던 회사까지 나갔을까.
찾아보니 가로 엔터는 망한 그룹만 하나 키워낸 하꼬 기업 중의 하꼬였다.
‘뭐야. 아름이가 정신이 나갔나?’
이런 데서 데뷔를 한다고?
방송에서 그 고생을 해놓고?!
팬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유용태는 신아름 팬들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를 발견하고 분위기를 읽었다.
“뭐야 이건.”
신아름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녀연맹. 즉, 신아름이 속한 그룹의 팬들도 모여 있었다.
아직 마땅한 보금자리가 없기 때문인 것일까.
‘분위기가 이상하네.’
신아름 팬과 소녀연맹 팬이 뚜렷이 갈려 있었다. 신아름 관련 글은 매번 쓰는 사람만 쓰고, 댓글도 달던 사람만 달았다.
소녀연맹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커뮤니티에 두 파벌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신아름 팬의 지분이 훨씬 높았다.
‘그렇겠지. 티비에도 나왔으니까. 소녀연맹 팬이 셋방살이하는 느낌인가.’
불쌍하다.
유용태도 신아름 영상을 찾다가 소녀연맹 멤버 영상을 보았다.
다들 매력이 있다.
그런데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취급인가.
‘딱히 재밌는 얘기도 없네. 아름이는 SNS 있으려…… 음?’
눈을 잡아끄는 최신 글이 나타났다.
제목은.
[신아름입니다….]
재빨리 클릭했더니 인증샷이 있었다.
신아름이 무표정으로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들고 있다.
‘진짜다!’
유용태가 홀린 것처럼 글을 읽어갔다.
[여러분 갤주입니다. 저를 갤주라고 부르는 거 맞죠? 회사에서 알려줘서 들어왔습니다. 스타그래프 라이브도 몇 번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팬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단 게 설렙니다.]
굉장히 정갈한 글이다.
단순히 팬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라기엔 딱딱하기도 하다.
회사 사람이 적어줬나?
신아름은 이후로도 광고를 걸어줘서 고맙다, 응원 고맙다, 관심 고맙다 등등. 감사를 이어가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팬분들. 저는 소녀연맹입니다. 그룹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저한텐 이 그룹이 너무너무 소중해요. 정말 소중한 언니랑 친구들이 있어요.]
중간부터 글의 말투가 바뀌었다.
[멤버들 사랑해요. 그러니까 다들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좋아해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그게 갈등의 이유가 되진 않았음 해요. 부탁드립니다. 서로 싸우지 말아 주세요.]
그 뒤로도 일정한 미사여구가 이어지고, 글이 끝났다.
유용태는 글을 다 읽고 멍해졌다.
‘아니. 아이돌이 커뮤니티에 이런 글도 쓰나? 써도 되나……?’
모르겠다.
유용태는 새로고침을 눌렀다.
댓글이 없었다.
벌써 백 명 가깝게 읽었는데도 댓글이 없다.
커뮤니티 팬들도 뭐라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신아름의 개인팬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아이돌이 장문의 요청 글까지 올린 게 너무도 미안했다.
자신들 때문에, 신아름이 올린 글이었으니까.
* * *
“자정되고 있어요.”
커뮤니티가 점점 더 순한 맛으로 변해가고 있다.
누가 앞장서서 ‘우리 바뀌자!’라고 한 건 아니지만, 변화는 명확했다.
더는 ‘우리도 돈 모아서 단체 광고 올리자!’라거나, ‘신아름이 그룹 캐리할 듯 ㅋㅋ’ 같은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신아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더라도, 그녀의 사진을 첨부해두고 ‘아름인 내가 가져간다.’ 정도의 글만 쓰는 것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하하하!”
프로젝터 스크린에 뜬 게시글을 본 한구인이 크게 웃었다.
시선이 모이자 그는 재빨리 웃음을 지웠다.
“저 댓글이 웃겨서…….”
‘아름인 내가 가져간다.’란 제목의 게시글.
댓글로는 ‘이미 내 마음속에 있는데 어케 빼가실?’이 있었다.
“한 이사는 덕질하면 행복하겠네. 종일 커뮤니티만 돌아다녀도 좋아하겠어.”
“크흠.”
“근데 팬들이 착하네. 신아름이 글 써줬다고 바로 정화 들어가고 말야.”
팬들도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설마 신아름 본인이 와서 분란을 그만두란 글을 쓰다니.
아마 전례가 없지 않을까.
심지어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말이다.
“악성인 사람은 적어서 다행이에요. 아마 갤러리 사람들도, 아름이 좋아하면서 소소하게 덕질하다가 갑자기 소녀연맹 팬들이 모여들어서 상실감을 느꼈을 거예요. 그 반발심리로 더 갈라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뭐어, 잘 해결돼서 다행이야. 이런 작은 일에 마음 쓴 게 어이없기도 하네. 데뷔도 코앞인데. 애들은 별 탈 없지?”
“적당해요.”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히 기대하고 있다.
* * *
숙소 옥상에는 빨래 건조대와 플라스틱 의자가 두 개 있다.
신아름은 그 의자에 앉아 밤공기를 만끽했다.
날이 추워서 숨을 쉴수록 목이 아파 오기만 했으나, 시원하긴 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신아름 마이너 갤러리의 글을 몇 개 읽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성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와, 첫마디부터 ‘나 전화하기 싫어요’라고 티 내시네. 내가 전화 건 게 기분 나빠요?”
[자세 바로잡느라고 대답이 미진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저 지금 정좌하고 공손히 폰을 귀에 대고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개노잼.”
[응 알겠다. 나 바쁘니까 끊을게. 아름이도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렴.]
“아 뭔 어른이 이렇게 빨리 삐져!”
신아름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다.
그저 수다만 떨었다.
웃음과 미소가 이어지자 폐에 가득 찼던 찬 공기도 따뜻하게 변해갔다.
[아름아.]
“네.”
[근데 너 언제 자?]
“왜요?”
[우리 통화한 지 40분도 넘었는데……. 미안한데 나 아직 일이 좀 있어서…….]
“에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 봐. 항상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하죠?”
[널 위해서 일하는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자식한테 관심 안 두고 일만 하는 아빠들도 다 그런 말 하거든요. 암튼 알겠어요. 끊어요.”
[그래. 내일도 연습해야 하니까 일찍 자.]
“네네, 팀장님 알라뷰.”
[미투.]
신아름은 전화를 끊고, 가벼워진 기분에 몸을 좌우로 까딱였다.
“혼자 청승맞게 뭐하냐.”
“아 씨 깜짝야!”
조아라였다.
“아, 뭐야. 너 사람 놀래키려고 하는 거 그거 병이야.”
“걍 부른 건데 자기 혼자 호들갑 떨어놓고선. 그래서 뭐 하냐고.”
“바람 쐬러 왔어. 기분 전환하려고.”
“너 기분 전환할 때 리카 괴롭히잖아.”
“괴롭히긴. 리카도 즐기는 거야 그거.”
“진짜 가해자가 할 법한 말이네.”
리카가 놀리기 좋은 성격이긴 하다.
조아라는 자연스레 신아름의 옆에 앉았다.
“고민 있…….”
“내가 팀에 피해 주는 거 아니지?”
조아라가 묻기도 전 신아름이 말을 꺼냈다.
“피해?”
“이번에도 그렇잖아. 커뮤니티에 그거.”
“뭐, 별로. 그게 피해야?”
팬덤이 갈라지는 폐해는 조아라도 익히 알 텐데, 너무도 속없이 답한다.
아이돌은 팬의 사랑으로 힘을 얻는다고 하던가.
게다가 사람이니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인터넷에서 팬들의 반응과 응원을 찾아보고 활력을 얻은 아이돌은 많다.
그런데 힘을 줘야 할 팬덤이 분열되어 싸우고 있으면, 아이돌도 힘들다.
“피해지 그럼.”
“야야, 그런 말 하지 마. 네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너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피해준다고 하면, 듣기 좀 이상하잖아.”
신아름은 하, 하고 높게 웃었다.
‘아라한테 위로받는 날이 다 오네.’
조아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신아름을 달래주기 위해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다.
“네 말이 맞네. 어차피 우리 그룹은 내가 다 먹여 살리는데 말야. 팬 모아주면 고마운 거지, 피해는 아냐. 맞지?”
“또 말 기분 더럽게 하네. 네 팬 내가 다 뺏을 거야. 방송만 나가봐. 바로 조아라 찬양 글로 도배될걸?”
“꿈도 크다. 입덕 멤버도 나고 출구 봉쇄하는 것도 나거든? 나 봐.”
신아름이 자신의 머리칼을 쓸었다.
“거의 개미지옥이지.”
“개미지옥 닮았단 뜻?”
“응, 그래. 아라는 질투하는 모습도 귀엽네. 차라리 질투를 컨셉으로 잡는 게 어때? 우리 아라는 무섭게 생겼으니까 아예 그쪽으로 나가보는 건?”
조아라가 신아름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조아라는 리카가 실없는 소리를 할 때마다 약하게 헤드락을 걸어서 제지하곤 했다.
그것을 직접 당하자, 신아름은 기뻤다.
조아라와의 거리가 줄어든 것 같아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 것 같아서, 마냥 기뻤다.
신아름이 애교 섞인 웃음소리를 내며 조아라를 살짝 밀어냈다.
“야아, 그만해애.”
“…….”
“그, 그만하라니까.”
“…….”
“아아악! 아파! 아파아!”
“내가 질투해? 무서워 보여? 진짜 무섭게 해줄까?”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서열 정리를 끝낸 후, 두 사람이 숙소로 들어왔다.
리카가 반겨줬다.
“둘이 나만 왕따시키고 어디 다녀온 거야! 너무해! 이사님들한테 이를 거야!”
“앞으로 동생 라인 대장은 나다.”
“쌤! 아라쨩이 일진놀이 해요!”
리카가 백설하에게 이르러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조아라와 신아름이 동시에 웃었다.
“우리, 데뷔하고도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조아라가 신아름의 등을 두드렸다.
“이거보다 더 밝아지지. 앨범 10만 장 넘게 팔 거야. 성공할 거라고.”
* * *
데뷔 6일 전, 단체 컨셉 티저 영상이 풀렸다.
데뷔 5일 전, 뮤비 티저 영상이 풀렸다.
“반응이 진짜 좋네.”
뮤비 티저는 멤버들이 단체 안무 파트를 짜깁기 한, 20초 남짓 되는 분량이었다.
매일 풀어주는 사진만 떡밥으로 삼키던 팬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처음으로 데뷔곡의 윤곽을 들을 수 있고, 멤버들의 보컬 실력과 뮤비의 기본적인 장면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조회 수가 5만을 넘었어. 역대급이야.”
어떻게 티저 조회 수가 하루 만에 이렇게 상승하지?
성필은 떨리기도 하면서 의아했다.
반응이 있는 건 좋은데, 이 반응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를 모르겠다.
물론 가로 엔터가 인터넷 신문사에 보도자료를 넘기긴 했다.
그에 따라 ‘전원 비주얼 센터급 신인 걸그룹, 데뷔 준비’ 같은 오글거리는 제목의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 보도자료를 성필이 쓰긴 했는데, 오글거리는 건 오글거리는 거다.
“겨우 그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데.”
“트잇터나 페이스룩 아니야?”
손혜빈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가로 엔터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도 손을 빌리고 있는바, SNS에서도 소녀연맹의 정보가 퍼져나갔다.
[어떻게ㅋㅋㅋㅋㅋ 걸그룹ㅋㅋㅋ 이름잌ㅋㅋㅋ 소녀연맹ㅋㅋㅋㅋ]
같이, 일견 조롱글 같지만 엄연한 광고 게시글이 SNS에 퍼져나갔다.
혹은 단순하게 멤버들의 사진을 올려두고 [얘네 예쁘다] 정도도 있었다.
“어, 그럴 거 같긴 한데…….”
“내가 찾아보니까 팬들이 열일하고 있더라. 덕분에 사진도 많이 퍼져나가고.”
“팬들…… 아름이 팬들?”
한때는 골칫거리였지만 이렇게 도움이 되나?
“아니. 소녀연맹 팬들.”
“어? 소녀연맹 팬들?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화력이 이렇게 강해?”
대형 기획사도 아닌데.
“다 우리 박 이사님 선구안 덕분이지.”
“나? 내가 뭐…….”
“여러 가지 있잖아. 아이튜브나 SNS나.”
“그럴 거 같긴 한데…….”
“아니 뭔 아까부터 계속 ‘그럴 거 같긴 한데’만 반복해! 애초에 애들 개인 SNS 팔로워 수만 합쳐도 그 정도 조회 수는 나오는 게 당연하잖아!”
“이게 어떻게 당연해. 누나 대형 기획사에서 일하다 보니까 감 잃었네.”
“말을 말자.”
아이튜브 채널이 예상 이상으로 흥하긴 했다.
그 상승세는 신아름의 가로 엔터 입사 기사를 내보낸 이후 가속했다.
채널의 조회 수가 전반적으로 오르고, 알고리즘의 축복이라도 받았는지 10만을 넘는 영상도 나왔다.
그 영상이 바로 리카가 한국사를 배우는 영상들이었다.
특히 30초가량의 한 하이라이트 영상은 조회 수 40만을 돌파했었다.
“일본인이 한국사 배우면서 놀라는 게 그렇게 재밌나?”
“너도 한일부부 같은 채널 보잖아.”
“그거 그냥 알고리즘에 떠서 본 거라니까 몇 번을 말해!”
“에휴, 알겠슘당. 그러케 알고 이쓰께요 저는.”
손혜빈은 상대해주기 귀찮단 듯 자신의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아까부터 성필은 커뮤니티, SNS, 아이튜브에서 오는 예상 이상의 반응에 놀라면서.
“이게 왜 이러지?”
이런 말이나 반복했다.
상대해주는 것도 한 번이지,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손혜빈도 피곤했다.
“뭐야 대체. 원래 이런가?”
성필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 * *
“아악! 멤버별 뮤비 티저 같은 거 말고 그냥 곡을 빨리 발매해달라구요오오옷!”
몇 주 뒤면 17살이 되어 중학생 딱지를 벗게 되는, 김채현이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소녀연맹의 데뷔가 6일도 안 남았지만,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김채현의 친구, 이선주가 혀를 쯧쯧 찼다.
“기다리는 시간도 다 덕질의 재미거늘. 넌 아직 멀었다.”
“기획사 넘 싫어…….”
“이만큼 떡밥 챙겨주는 회사도 드물어. 좋게 좋게 받아들여.”
이선주는 항상 이런 태도였다.
아주 괘씸하기 짝이 없다.
사실은 자기도 초조하면서 말이다.
“으아아앙, 6일을 어케 참아!”
“그만 칭얼대고 빨리 일로 와. 뮤지 티저 보자.”
“위로 좀 해줘! 너 땜에 입덕한 거잖아!”
“난 강제한 적 없다.”
김채현은 툴툴대며 컴퓨터로 다가갔다.
“멤버별 티저면 누구 거야?”
“리카라고 나와 있는데.”
“10초? 장난하나 이것들이!”
간에 기별도 안 가겠다!
이선주는 김채현의 앙탈을 무시하고 영상을 재생했다.
여럿이 발을 구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리고 있는 건가?
어둠으로 채워진 화면이 갑작스레 밝아졌다. 태양이 고성(古城)의 벽으로부터 짓쳐 들어온다.
그 빛을 받아 기사와 병사들의 갑옷과 무기가 빛난다.
돌격하는 군대, 그 안에서 두드러지는 존재가 있었다.
갑옷을 입은 채 백마를 타고 칼을 든 소녀.
소녀는 태양과 같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
미친.
영화인가?
영화를 찍은 건가?!
“으헉, 크허헉.”
김채현은 호흡 곤란이 와서 드러누웠다.
곧 회복한 김채현은 재빨리 이선주의 옆에 붙었다.
이선주는 숨도 안 쉬고 댓글을 살피고 있었다.
호평 일색이다.
“얘넨 뜬다. 돌판 오래 봤던 내가 장담한다.”
“반박불가.”
한창 댓글을 보며 행복회로를 태우던 이선주의 눈이 멈추었다.
“근데 씨, 이건 어느 나라 말이야? 아까부터 계속 보이네.”
“복사해서 검색해봐.”
그 말대로 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말레이시아어?”
“뭐고, 우리 언니들 벌써 월클이야?”
“대박. 근데 말레이시아가 어디임?”
“몰라.”
* * *
가로 엔터의 사무실.
광란이 펼쳐졌다.
“SNS 언급 횟수 미쳤어!”
“와 씨, 젤 큰 커뮤니티 베스트 글에 리카 뮤비 티저 올라갔어요!”
“어이어이! 이럴 거면 마케팅 업체에 맡길 필요도 없던 거 아니냐고!”
미쳐 날뛰는 성필, 손혜빈, 민경섭을 보고.
용무가 있어서 왔던 백설하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았다.
‘많이 바쁘신가 보다.’
데뷔 5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