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15화 (115/760)

115화

“……하아.”

홍규헌이 무거운 한숨을 뱉었다.

그게 마치 대답을 대신하는 듯해서, 성필의 몸은 충격으로 바들바들 떨려왔다.

“맞아.”

“말도 안 돼요……. 왜, 사장님이 어째서…….”

“아니, 너 맞으라고.”

“네?”

홍규헌이 성필의 어깨를 팍팍 때렸다.

“그딴 걸 왜 진지하게 묻고 있어? 사재기라고? 사재기할 거면 음원을 하지 내가 뭐하러 앨범을 사?”

그녀의 말투는 조곤조곤했으나, 내면에 숨겨진 분노가 엿보였다.

“내가 그 정도 인간으로밖에 안 보여?”

“아니요,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현실을 논리에 맞추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사재기’란 게 없고서야, 초동판매량 1만 장은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수치였으니까.

“그럼 이건 뭐예요? 진짜 1만 장이나 팔린 거예요?”

아직도 의심이 서린 민경섭의 질문에, 홍규헌이 시원하게 답했다.

“아무래도 우리, 진짜로 일낸 거 같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잠깐의 침묵이 필요했다.

그러나 곧, 아까와 다른 의미의 광란이 찾아왔다. 저마다 더없는 기쁨을 느끼며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우리가 1주일 만에 1만 장을 팔았어!”

“회식! 오늘 회식해요!”

“그래요 멤버들까지 다 불러서 회식해요!”

서로의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도는 이들을 보고서도, 성필은 아직까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왜 이러지 진짜? 어떻게 이렇게 팔릴 수가 있지? 말이 안 되잖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오늘 새벽까지 달려엇!”

기뻐서 정신 나갈 거 같아!

“다들 기쁨은 잠시 접어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들뜬 공기의 한가운데서 한구인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회식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아!”

손혜빈이 한구인의 의도를 간파한 듯 ‘아’ 소리를 냈다.

“그렇습니다. 먼저…….”

“헹가래 쳐야지! 성필아, 경섭아! 사장님 잡아!”

“뭐?”

홍규헌이 저항할 새도 없이, 세 사람이 달라붙어 그녀를 천장에 닿을 듯 올려보냈다.

“꺄아아악!”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홍규헌의 새된 소리가 사무실을 잔뜩 울렸다.

그녀는 세 사람의 손에서 내려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졌다.

“다음은 한 이사님…….”

“그게 아닙니다!”

한구인은 공포에 떨며 손혜빈을 제지했다.

“앨범이 왜 이만큼 팔렸는지 알아내야 하지 않습니까!”

“네?”

“초동판매량 1만 장이란 수치는 정상이 아닙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데뷔한 중소기업의 신인이 이 정도의 성과를 내는 건 2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저희가 그 예외의 주인공이 됐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고 알아내지 못한다면, 다음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회식도 좋지만, 먼저 이유를 밝혀내야 합니다.”

“……오, 한 이사님 진짜 사업가 같네요.”

기쁨은 잠시 접어두고, 다들 의자를 한데 모아 약식으로 회의를 할 준비를 마쳤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홍규헌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계속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성필이 다가오자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의 정강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나한테 이딴 짓 다시는 하지 마!”

계속 때렸다.

성필은 홍규헌의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하며 한구인에게 답을 구했다.

“높은 데를 싫어하십니다.”

“그렇군요.”

성필이 홍규헌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 * *

백설하는 성필의 연락을 받자마자 세상이 뒤집힌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순간적으로 쓰러질 뻔했다.

기우는 몸을 겨우 일으키고, 백설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초동판매량이 뭐예요?”

“뭐?”

다들 곧장 얼싸안고 기쁨을 나눌 줄 알았는데, 장하양은 초동판매량이 뭔지도 몰랐다.

“앨범이 발매되고 일주일 동안 팔린 개수야! 우리 앨범이 7일 만에 1만 장이 팔린 거야!”

“아아, 그게 초동판매량이구나.”

장하양이 기절했다.

“쌤! 하양 언니가 의식을 잃었어요!”

“무, 물 가져와!”

리카와 백설하가 아무리 흔들어도 장하양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백설하가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잃는 것을 본 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성필이 문에 머리를 박았을 때였다.

백설하는 두 번이나 똑같은 일에 허둥대지 않았다. 바로 119를 누르려 했다.

“쌤, 언니 일어났어요!”

“으…….”

리카가 물을 끼얹었는지, 장하양의 얼굴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수분 크림 광고에 내보내면 인기를 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앨범이 13,800원이죠?”

“응! 우리 1억 3천만 원 번 거야!”

“아하하, 하하…….”

장하양의 현실 파악이 끝났다.

그제야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이대로면 빚을 까는 것도 시간문제예요! 일 년에 앨범을 열 개 내면 10억이에요!”

“일 년에 앨범을 열 개 내는 그룹이 어딨어…….”

“그런데 저희가 회사에 쌓인 빚이 얼마예요?”

장하양의 물음에 백설하는 계산에 들어갔다.

일단 가장 간단한 건 트레이닝과 관리비였다.

한 달에 인당 2, 3백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럼 1년에…….

‘삼천?! 일 년에 트레이닝만 받아서 삼천…….’

여태껏 회사에서 자신에게 어느 정도 투자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 이상 생각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 아니야. 이런 건 확실히 알아둬야 해.’

숙소에서 생활하는 비용이 있을 것이다.

백설하는 잘 몰랐지만, 건물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돈이 든다고 들었다.

그 세금에 전기 요금, 수도세, 인터넷 요금, 그리고 식비.

‘1인당 일 년에 5백은 넘으려나……. 먹을 거에 얼마나 쓰는지를 모르니.’

또, 회사가 지급하는 생활비 개념의 용돈과 교통비도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것도 공짜가 아닐 터다.

백설하의 생각은 계속 뻗어 나갔다.

그럴수록, 회사가 자신들에게 투자한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사소한 비용을 전부 지우고 나자, 대망의 활동비까지 도달했다.

‘곡비. 작사비. 뮤비 제작비. 마케팅, 프로모션비. 앨범 제작비…… 도 우리가 갚아야 하는 걸까? 우리가 회삿돈을 빌려서 앨범을 발매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정산비가 6대 4고…… 으, 그 조항이 있었는데. 제작비는 몇 대 몇으로 부담하는 거였더라……. 아, 5대5였어.’

대충 계산이 끝났다.

동시에 백설하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우, 우리 개인 빚이 1억 넘는 거 같은데?”

“아하하.”

장하양이 기절했다.

이번에는 리카와 백설하도 그녀를 깨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럼, 아타시(저)는 언니나 다른 애들보다 더 빚이 많겠네요. 제일 빨리 들어왔잖아요.”

“응, 그렇지…….”

“……다이죠부(괜찮아)! 일 년에 앨범 스무 개씩 내면 돼요!”

“으, 응! 그렇지!”

그럼 거의 20일에 하나씩 앨범을 내는 건가?

백설하는 태클을 걸지 못했다.

평생 1억을 손에 쥐어본 적 없이 죽는 사람이 태반이라는데, 멤버들은 1억을 빚으로 지게 된 것이다.

충격적이다.

그러니 리카가 망상으로 도피하는 것 정도는 보아 넘길 수 있었다.

“딴 애들한테도 말해주고 올게.”

“아타시(저)는 하양 언니 일어날 때까지 구경하고 있을게요.”

“안 깨우고?”

“저는 하양 언니 얼굴 보는 게 제일 재밌어요. 언니는 거울만 봐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하양이가 예쁘긴 하지.”

“뽀뽀해야지.”

“그거 성추행이야!”

백설하는 조아라와 신아름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러 갔다.

쌓인 빚을 알려주려는 게 아니라, 초동판매량 1만 장 소식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너 전 회사에 있을 때 남자 연습생들이랑은 친했어?”

“아니. 석세스 엔터는 남녀 분리했어. 레슨실 사용 시간이랑 식사 시간까지. 그래서 얼굴 보는 건 그냥 오며 가며? 그때만 봤지.”

“그럼 친한 애도 없겠네.”

“가끔 인사하고 잡담이나 했지. 근데 그것도 걸리면 혼나고 그랬어. 왜, 소개라도 시켜줄까?”

“나 퇴출시키려고?”

“이걸 눈치채네.”

“얘들아?”

백설하가 방문을 열었다.

조아라가 움찔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너희 그 소식 들었어? 우리 초동판매량.”

“나왔어요? 아, 맞네. 일주일 지났구나. 몇 개 팔았는데요?”

“잠깐. 명탐정 조아라의 예상. 2천 장.”

“우리 1만 장 팔렸대.”

백설하는 최대한 밝고 크게 말했다.

분명 놀라겠지?

“우와, 많이 팔았네. 팀장님이 좋아하셨겠다.”

“1만 장이면 얼마냐?”

“1억 3천. 너 바보야? 그것도 계산 못 하네.”

“뭐?”

조아라와 신아름이 또 투닥거리며 싸웠다.

그에 당황한 건 백설하였다.

“너희 안 놀라?”

“아하, 언니 놀라셨구나?”

신아름은 오만을 잔뜩 담아 머리칼을 쓸었다.

“뭐, 제가 소녀연맹에 들어왔으니 당연한 거죠. 내 얼굴 보고도 앨범 안 사고 배기겠어요?”

“그래, 포토북에 실린 보정한 네 얼굴도 그 모양인지 궁금해서 사겠지.”

“흐흥, 그래 아라야 많이 질투해.”

도저히 신아름과 조아라에게서 놀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기뻐하는 것 같긴 했으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애인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당연한 행복을 느끼는 듯했다.

‘얘네 현실감각이 없나……?’

아니면 정말 이만한 대성공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백설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마라톤 회의가 끝나간다.

모두가 그것을 직감했다.

한구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한 결론을 말했다.

“결론은, 모르겠단 겁니다.”

대체 앨범이 어떻게 1만 장이나 팔렸지?

그 1만 명은 무슨 생각으로 앨범을 샀지?

“여러 가설이 나왔으나 어느 하나 정확하게 진실을 관통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두가 동의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첫 번째 가설, 프로듀싱의 승리.

곡과 비주얼, 퍼포먼스 모두 완벽했다.

가로 엔터는 무명의 갓 데뷔한 아이돌조차 성공의 반열로 올려놓을 프로듀싱 능력을 증명했다.

성공은 시간문제다!

“저는 이쪽에 무게를 두고 싶어요.”

민경섭이 말했다.

“솔직히 저 처음 ‘아니’ 들었을 때는 ‘뭐 이런 곡이 다 있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까 곡이 깊이가 있어요. 들어도 들어도 잘 질리지가 않아요.”

‘아니’는 정지음이 만든 곡이다.

성필이 듣기에 ‘아니’는 트렌드를 2, 3년 정도는 앞서 나갔다.

베이스와 드럼을 최대한 활용하고, 다른 사운드는 최소화한다.

그럼으로써 기본에 충실하여 시대를 잘 타지도, 질리지도 않는 곡을 만들어냈다.

정지음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역작이었다.

“퍼포먼스와 시너지도 좋고요. 트렌드랑 안 맞긴 한데, 아니. 아예 트렌드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거기에 팬들이 끌린 거 아닐까요?”

두 번째 가설, 소통과 메시지.

소녀연맹의 멤버들은 데뷔 전부터 SNS와 아이튜브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특히 데뷔 전 프로모션 기간에, 소녀연맹의 티저 포토와 영상은 상당한 이목을 끌었다.

거기다 SNS와 아이튜브에 쌓인 방대한 컨텐츠가 프로모션으로 이끌린 대중을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컨셉 사진이랑 뮤비 티저부터 미치게 잘 뽑혔잖아요.”

손혜빈이 말했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도 보는 순간 관심 가질 정도예요. 거기에 뮤비, 가사까지 보면 그냥 끝나는 거죠. 멤버들이 직접 낸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가사, 뮤비가 다 나왔잖아요. 멤버들 덕이 크다고 봐요. 참신했죠. 저희끼리만 진행했으면 그런 컨셉은 나오지도 않았을걸요.”

세 번째 가설, 마케팅.

“손 PD님의 의견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데뷔 전부터 알려졌단 게 중요합니다. SNS와 아이튜브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구인이 말했다.

“상품의 초기 대중 고객은 소속감을 가지기 쉽습니다. 데뷔 전 소녀연맹분들의 팬이 초기 대중 고객입니다. 그분들이 데뷔 프로모션 기간 동안 스니저(sneezer)의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스니저란 경영학에서의 고객 분류 중 하나로, 남들에게 상품을 홍보하길 좋아하는 고객군이다.

“원래 스니저 고객군은 상품 유행 단계에서 발생하지만, 장기간의 SNS와 아이튜브 관리가 데뷔 전부터 스니저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때때로 스니저 고객군은 기업의 마케팅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확실히 있었다.

티저 포토가 뜨자마자 바이럴마케팅 업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SNS에 광고하고 다니는 팬들.

온갖 게시판에 사진과 티저 영상을 올리며 한 번만 봐달라던 팬들.

가로 엔터가 음원 사이트에 올린 소배너 광고 따위보다도, 게시판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 하나가 더 큰 광고효과를 지닌다.

“그리고 아름 씨의 영입도 상당한 효과를 보았고요.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데뷔도 없이 팬을 만들 정도로 매력 있으신 멤버분들입니다.”

그게 회의의 결론이었다.

세 가지 가설은 모두 일리가 있었으나, 어느 것 중 하나가 원인이라 판단하기 어려웠다.

“결국.”

홍규헌이 종합하려는 듯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박 이사가 잘했단 거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성필에게로 옮겨갔다.

“정지음 곡 쓰자고 난리 쳤던 것도 박 이사고. 멤버들 아이디어랑 의견으로 가사랑 안무 쓰자고 한 것도 박 이사고. SNS랑 아이튜브 개설하고 관리한 것도 박 이사고. 신아름 영입한 것도 박 이사잖아.”

“……그러네요?”

성필은 머쓱한 기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사장님 저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다 같이 한 거잖…….”

“박 이사님 미래라도 보십니까?”

“박성필 그는 신인가?”

“박성필! 박성필! 박성필!”

“다들 조용해 봐.”

홍규헌의 한마디에 성필을 헹가래 쳐주러 가던 이들이 순식간에 멈춰 섰다.

“내가 말한 거긴 한데, 그런 결론이 나오면 안 돼. 단 한 명의 전략 때문에 성공했단 게 말이 돼? 그건 건강한 회사도 아니고, 적절한 해답도 아니야.”

만약 성필의 아이디어 하나로 이 성공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다른 직원들은 무엇이 되는가.

그 의도를 읽은 다른 이들이 숙연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 이사가 잘한 거 맞아.”

“……네?”

홍규헌이 언제 정색했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다들 열심히 했어. 다들 잘했어. 그런데 박 이사가 프로듀서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맞아. 맞는 거 같아. 우리 회사 초기부터,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1만 장…… 나…….”

“사장님?”

홍규헌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그러나 잠시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작아지나 싶더니, 곧바로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아직 더 분석할 게 있긴 하지만, 오늘은 이걸로 끝내자. 다 같이 회식하러 가자. 비싼 것도 돼. 뭐든 먹고 싶은 거 말해.”

그리 말하며 카드를 꺼내는 홍규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가로 엔터의 첫 번째 그룹 ‘서프레스’. 그리고 처참한 실패.

가족들의 비웃음과 멸시.

투자자들의 압박.

그 모든 어둠을 건너서 마침내 한 줄기 빛을 잡았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그 빛은 홍규헌의 앞에 모인 네 명의 남녀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홍규헌은 그들 중 하나, 그녀가 가장 먼저 영입한 직원을 보며 물었다.

“박 이사. 뭐 먹고 싶어?”

“레시엔느요!”

인당 38만 원의 뷔페 레스토랑이다.

“적당히 해라.”

“소고기요…….”

“……그래, 레시엔느 가자! 오늘 아니면 언제 다 같이 그런 데 가보겠어?”

그날, 성필은 홍규헌을 말리느라 꼬박 40분 써야 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제가 미쳤다고 다섯이서 거기 가자고 하겠어요?!”

“아 놓으라고! 나 돈 많다고! 부하 직원이 먹고 싶다는데 그거 하나 못 사주겠어?!”

이상한 부분에서 자존심이 강하다.

그래도, 성필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인당 38만 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으니까.

홍규헌이 가로 엔터 사람들에게 가지는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 * *

[연말의 걸그룹 데뷔 전쟁!]

성필은 그 기사를 클릭하여 대각선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대충 해가 끝나갈 시점에 걸그룹의 데뷔가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룹들은 물론, 프로젝트 포유에서 탄생한 서바이벌 그룹 ‘포유’.

보이그룹 엡실론으로 안정적인 팬덤을 구축한 석세스 엔터의 ‘글로브‘.

떠오르는 강자인 ’소녀연맹‘.

그리고.

“케이어스.”

과거 리카가 속했었던 대형 기획사, KS 엔터에서 6년 만에 선보인 걸그룹이다.

만약 리카가 KS 엔터의 데뷔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케이어스로 데뷔했을 것이다.

저번 주에 소녀연맹은 우연히 사전 녹화를 할 수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그룹이 데뷔를 일주일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 그룹이 케이어스였다.

‘이 바닥에선 신이나 다름없는 게 음악 방송이야.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음방 스케줄을 뒤로 미룰 정도로 KS 엔터의 힘이 강하단 거지.’

그런 KS 엔터는 왜 케이어스의 데뷔를 뒤로 미뤘을까.

정확한 이유는 아니지만,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쩌리들 전부 데뷔한 뒤에 대비 효과 줘보겠다는 거야?’

포유, 글로브, 소녀연맹.

그 잡다한 그룹들의 어중간한 데뷔를 본 뒤, 케이어스가 등장하길 바랐던 것이다.

우리는 정말 클래스가 다르다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초기 선점 효과를 버리면서까지…….’

아니, KS 엔터는 초기 팬 선점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케이어스가 데뷔하면, 다른 그룹의 팬들 따위 얼마든지 빼앗아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오만하네.’

오만하지만, 사실이었다.

“이사님 이번 주도 파이팅!”

메이크업을 끝낸 리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월요일의 아타시(저)는 어떤가요!”

“어제보다 더 예쁘네.”

“슬슬 이사님 칭찬도 질리네요. 더 미사여구를 붙여주세요!”

“질리는 게 당연하지. 사람은 당연한 말을 들으면 감흥이 없잖아. 사과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게 당연한 것처럼 리카가 예쁜 것도 당연하니까.”

“뭔가요 그 싸구려 로맨스 소설에 나올 거 같은 칭찬은!”

“놀고 있네.”

조아라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리카의 옆을 쌩하니 지나갔다.

이어서 다른 멤버들도 메이크업을 마치고 왔다. 성필은 그녀들을 인솔하여 샵을 빠져나왔다.

“이사님,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응? 왜 뭐, 내가 고민 있는 것처럼 보여?”

“평소보다 걸음이 느리셔서요. 이사님은 생각 있을 때 걸음이 느려져요!”

“너 나를 너무 잘 아는 거 아니냐.”

성필은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고, 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고민 없어. 2주 차도 힘내자.”

“하이(네)!”

가자, 방송국으로.

케이어스가 있는 곳으로.

성필이 생각하는 걸그룹의 정점, 미래에 세계를 휩쓰는 아이돌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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