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아닌데.
이게 아닌데.
리카가 아는 성필이라면, 당장 리카를 안고 360도로 10회전 해도 모자랐다.
이렇게 차갑게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에(아니)…….”
성필은 리카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어째서?’
어째서라니.
이유는 명확했다.
성필이 멤버들의 안부를 물으려 전화를 걸 때마다, 리카는 받지 않았다. 왜 안 받는지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말이다.
그것을 성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지사지로, 리카 자신이 그런 처지라면 성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밀당은 개뿔이!
리카는 부부 고민 상담 방송에 나왔던 전문가를 십자가에 걸어두고 길거리에 전시하고픈 마음이 들끓었다.
“이사님!”
리카는 즉시 성필을 따라잡아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아, 아니에요. 안 바빴어요!”
“안 바빴는데도 내 전화 안 받은 거네 그럼.”
성필은 리카가 말을 걸었는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녀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에, 에. 아니, 아니에요……!”
“알겠어. 너도 이유가 있었겠지. 알겠으니까 설명 안 해도 돼.”
왜.
왜 이렇게 됐을까.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닌데…….’
들이마시는 공기가 쇳덩어리 같다.
그 녹슨 쇠의 쓴맛이 뱃속에 천천히 쌓여 몸을 짓눌렀다.
이러면 안 된다.
성필이 자신을 미워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이이, 이사니임!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리카가 떠나가는 성필의 옷을 잡으려 할 때, 갑자기 그가 뒤로 돌아 활짝 웃었다.
“짜자어으억?”
리카가 잡은 성필의 셔츠가 부욱 찢어졌다.
얼마나 세게 당겼는지, 저항 없이 공기를 움켜쥔 것 같았다.
“…….”
리카는 바들바들 떨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의 손에 잡혀 있던 성필의 옷자락이 나풀나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필의 찢어진 티셔츠로 그의 가슴부터 명치가 훤히 노출되었다.
“…….”
“고, 고고, 고멘,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성필은 자켓의 단추를 꼭꼭 잠갔다.
“사드릴, 끅, 사드릴게요, 다시…….”
맨살을 감춘 성필은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짜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페이퍼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리카에게 내밀었다.
“리카, 선물이야.”
“에?”
리카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거친 파도를 맞는 조각배와 같아서, 당장이라도 철렁이며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 떨리는 손으로 성필의 선물을 받았다.
“이어폰이야. 미국에 음향 장비 가게에 갔을 때 샀어. 그거 어어엄청 비싸다? 너야 작곡할 때 작업실 장비 쓰면 되겠지만, 밖에선 그거 써.”
“…….”
“보자마자 너 생각나서 샀어.”
“…….”
“잡을 수 있는 음역대도 높대. 원랜 헤드폰도 생각했었는데, 그건 휴대성이 낮을 거 같아서 이어폰으로 했어. 이렇게 비싼 이어폰은 나도 처음 사 봤는데, 마음에 들면 좋겠다.”
성필이 미소 지었다.
* * *
“자, 하양이 선물은 이거.”
유명 뮤지컬과 연극의 블루레이 디스크였다.
한국에서 구하려면 해외배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막이 없는 게 흠이지만, 한 이사님한테 영어 배웠으니까 문제없지?”
“아하하, 당연히 문제 있죠. 제가 미국 본토 뮤지컬을 어떻게 해석해요? 배려심이 너무 없으신 거 아니에요?”
“…….”
“농담!”
장하양이 블루레이 패키지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농담 맞지……?”
“네, 농담이에요. 기뻐요.”
“너 드라마나 극 좋아한다고 해서 샀거든. 반신반의하긴 했는데, 기뻐해 주니까 다행이다.”
장하양은 연기를 배웠다.
그리고 그녀가 가로 엔터로 오기 전, 유일하게 취미라 할 만한 건 텔레비전의 드라마 재방송 보기였다.
아무튼 연기와 관련된 것에 흥미가 있을 듯하여, 뮤지컬과 연극 블루레이를 골랐다.
“아름이는 이거.”
컸다.
아예 페이퍼백 하나를 신아름에게 주었다. 그녀는 잔뜩 들떠서 안을 살폈다.
“옷이네요?”
“어. 구제샵 가서 너한테 어울리는 걸로 쓸어 담아 왔어.”
“사이즈 안 맞는 거 아니에요?”
“내가 네 사이즈를 틀리겠냐?”
신아름이 경멸을 담아 성필을 바라보았다.
“우리 의상 맞출 때도 지시서 봤고! 짐(Gym)에서도 네 체형 달마다 전달받고! 하물며 석세스 엔터 있었을 때도 연습생 관리 내가 했잖아! 내가 네 사이즈 아는 게 이상해?!”
“팀장님이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거 보니까 기분 더 나빠졌어요. 마이너스 10점.”
“…….”
“근데 플러스 1만 점이니까 괜찮아요. 고마워요, 잘 입고 다닐게요! 뭐 보답으로 바라시는 거 있어요?”
“아냐. 난 네가 기뻐하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
“뜯어먹기 쉽네.”
“너 그딴 말 어디서 배웠어?!”
“티비요.”
숙소 유선 방송은 다시 끊는다!
신아름은 말은 그렇게 해도, 옷을 살펴보는 표정에서는 행복이 떠나가지 않았다.
단순히 옷이 많이 생겨서 행복한 게 아니었다.
성필에게 받았기에 의미가 있었다. 그가 일일이 살펴보고 사이즈까지 맞춰서 가져온 것이다.
그저 기성복이지만 정성이 담겨 있다.
“자, 그럼.”
백설하가 눈을 빛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녀는 성필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가볼게.”
“……?!”
성필이 정말 연습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자, 자, 이, 이, 저, 이거, 저, 저는, 어, 자, 이거, 잠깐…….”
“팀장님, 쌤 고장 났는데요?”
“뭐가?”
“쌤이요.”
백설하는 전설상의 동물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였다. 그녀의 동공에는 경악과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저어, 저어, 이, 이이, 저는, 저는…….”
성필은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백설하의 앞에 섰다.
“선물 받고 싶어?”
백설하가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리더잖아. 멤버들이 선물 받는 것만 봐도 배부르지 않아?”
백설하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장난이야. 설하 네 선물은 숙소에 있어.”
“네?!”
“와, 뭐기에 숙소에 선물을 둬요? 우리랑 격이 다른데? 하양 언니, 연장자로서 뭐라고 좀 해줘요.”
“…….”
“어, 언니. 손에 힘 빼요. 블루레이 그거 박살 나겠어요. 아, 아니 리더니까 좀 큰 거 받을 수도 있죠!”
신아름이 장하양을 진정시켰다.
“설하 선물은 숙소에 가서 봐.”
“저, 갔는데 아무것도 없거나 하는 거. 그러면, 어, 아니죠……?”
너무 심한 장난을 쳐서 그런지, 성필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듯했다.
“아니야. 확실히 있어. 내가 두고 왔어.”
“어디에요?”
“설하랑 하양이 바…… 앙…….”
아, 이 느낌 안다.
이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팀장님 언니네 방에 들어갔어요? 언니들 없을 때? 와, 거기서 뭔 짓을…….”
“아름아, 선물 주려고 들어가셨을 수도 있지. 팀장님한테, 아, 아니. 이사님한테 뭐라고 하지 마.”
백설하가 성필의 실드를 쳐주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앞으로 3분 동안은 필사적인 변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저, 이사님.”
“아직도 내가 네 선물 안 뒀을까 봐 불안해?”
“아니요. 저기, 리카는 왜 자꾸 이사님 등을 두드리는 거예요?”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리카는 성필의 뒤에 꼭 붙어서 그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두드리는 게 아니라 때리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런가? 왜 때리는 거예요?”
“나도 몰라.”
“리카는 선물 받았어요?”
“아까 밖에서 먼저 받았어.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선물 감사합니다.”
성필은 연습실을 나왔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열, 성필이. 자동 안마기 마련했어? 시원하겠네. 어디서 팔아?”
“안마하는 게 아니라 때리는 거래.”
“왜?”
“글쎄…….”
리카는 많이 억울한가 보다.
나쁜 짓의 정도로 치면, 미국에 있을 때 전화를 받지 않은 리카가 더 심한 거 같은데…….
물론 성필은 리카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았다. 백설하에게 들은 덕이었다.
어른이 돼 놓고서도 리카를 괘씸하게 여기고, 복수하려고 맞불을 놓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설마 화난 척 좀 했다고 리카가 이렇게나 속이 상할 줄은 몰랐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선물을 받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성필을 때리고 있겠는가.
“왜 싸우는진 모르지만 둘이 원만한 합의로 끝내. 아니다. 성필이 네가 먼저 사과해. 어른이잖아.”
“했어.”
“했는데도 이래? 네가 어지간히 잘못했나 보네. 뭐 읽씹 100번 정도 했어?”
그 정도인가……?
어쨌거나, 리카의 분노는 오래도록 풀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저녁 때 성필이 간식을 주며 허심탄회한 속내를 말해주기까지.
“이게 뭐야?”
“친구 계약서예요.”
성필은 계약서를 읽었다.
“첫째, 거짓은 없다.”
“앞으로 하나씩 추가할 거예요!”
“그렇구나. 사인 안 할래.”
“난데(어째서)?!”
“감춰서 좋은 것도 있는 법이거든.”
“손나(그런)!”
성필은 리카의 어리광에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해주었다.
“그럼 바로 계약을 이행할게요!”
“나한테 비밀이 있었어?”
“저는 이사님이 보고 싶었어요! ……많이요!”
그리 말하는 리카는 부끄러운 듯 입매가 자꾸만 일그러졌다.
그래. 이런 말을 하면 누구든 부끄럽겠지.
“그게 비밀이야?”
“비밀에는 부끄러워서 못 하는 말도 포함이거든요!”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에엑?!”
다들, 많이 보고 싶었다.
* * *
백설하는 일과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숙소로 가는 중에도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오늘도 고생 많…….”
민경섭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백설하가 바쁜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설하 왜 저래? 아까 차에서도…… 많이 급한가?”
“매니저님!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시면 안 되죠!”
“미안. 설하가 저러는 거 처음 봐서.”
“쌤은 크리스마스 전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일 뿐이라구요!”
민경섭을 떠나보내고 멤버들도 숙소로 올라갔다. 목적지는 당연히 백설하의 방이었다.
“선물 뭐예요?”
커다란 박스였다.
이미 크기에서부터 다른 이들의 선물을 능가하고 있었다.
백설하는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어냈다.
“CD 플레이어!”
금속성 오디오와 한 세트였다.
신아름은 백설하가 널브러뜨린 박스 더미에서 영수증을 찾아냈다.
“와, 개비싸네. 이건 진짜 차별대우다, 인정?”
“차별이얏!”
“하양 언니도 인정하…… 아니 그렇다고 이사님한테 전화 걸면 어떡해요!”
신아름이 다급히 장하양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통화 종료를 눌렀다.
“다, 다 같이 쓰라고 주신 거겠지.”
그리 말하는 백설하의 표정은 행복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싱글벙글 매뉴얼을 읽어갔다.
“오늘 쌤 먼저 씻는 차례잖아요. 안 씻어요?”
“어? 어어, 나는 좀 있다가.”
그렇게 백설하는 홀로 방에 남아 플레이어를 만지작거리고, 매뉴얼을 읽으며 조작해보았다.
CD 플레이어.
요즘 세상에는 가진 사람이 적은 물건이다.
안 그래도 CD는 MP3라는 적에게 빈사 상태까지 몰렸지만,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스피커라는 생태파괴종의 등장으로 아예 사망 선고를 받기 직전이었다.
‘이제 CD로도 음악 들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도 CD는 큰 의미를 지닌다.
모든 예비 가수들의 꿈 중 하나는 피지컬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다.
앨범 케이스와 CD가 동봉된, 물리적으로 형체가 존재하는 앨범을 내는 것.
아이돌의 앨범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원으로 음악을 즐기지만, 아이돌들은 꼭 피지컬 앨범을 발매한다.
그렇기에 CD는 애물단지가 되기 마련이다.
CD로 들을 바에야, 당장 스마트폰을 열어 음악을 재생하면 되니까.
‘어디 뒀더라.’
백설하는 책상 선반을 뒤졌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손혜빈의 정규 앨범 CD였다. 재킷에는 그녀의 친필 사인도 있었다.
백설하는 긴장된 손길로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커다란 오디오를 타고 트랙 1번이 재생됐다.
“아…….”
CD가 의미 없어진 세상.
그럼에도 가수에게 CD란 로망이었다.
그 팬에게도.
백설하는 30분에 달하는 모든 트랙을 감상하고, 여운에 젖어 거실로 나갔다.
리카와 신아름은 다 씻었는지, 그녀들의 방에선 드라이기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 있는 건 장하양뿐이었다.
“하양아 뭐 해?”
“아, 언니.”
장하양은 숙소 텔레비전 이곳저곳을 더듬는 중이었다. 그녀는 블루레이 디스크 패키지를 내밀었다.
“이거 어디에 넣어요?”
“응?”
백설하는 블루레이를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한구인에게 배운 영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영어로 적힌 경고문을 읽었다.
“본 기기는 블루레이 전용 재생기가 필요합니다…… 라고 하는데?”
“티비에는 못 넣어요?”
“응, 티비에는 없지 않을까?”
장하양은 블루레이를 받자마자 ‘테이프 같은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본가에도 수십 년이 된 테이프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런데 숙소의 텔레비전에는 그런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아서 한참 찾던 중이었다.
“이거는요?”
“그건 셋톱이잖아…….”
“음.”
장하양은 곤란한 낯빛으로 블루레이 패키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표지에는 ‘Cats’란 글자와 함께 애절한 눈빛의 배우가 그려져 있었다.
백설하는 장하양을 위로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도 사면 되지. 얼마 안 할, 비싸!”
대충 가장 낮은 가격대가 10만 원 정도였고, 더 둘러보니 200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었다.
블루레이, 말도 안 되는 사치품이다!
“십만 원이요?”
백설하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장하양은 누구보다 돈에 민감하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용돈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둔다.
어찌나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돈을 모아두는 장소가 베개 안이었다.
“아, 아하하……. 그럼 이건 나중에 정산받으면 봐야겠…….”
“사자! 내가 사줄게 하양아!”
장하양은 ‘즉시 결제’를 누르려던 백설하를 가볍게 제압했다.
“하양아 힘 언제 이렇게 세졌어…….”
“저 때문에 괜히 돈 안 쓰셔도 돼요.”
“괜히라니! 하양이 때문에 쓰는 거면 안 아까워! 그으, 그리고 나도 그거 연극? 뮤지컬? 보고 싶고.”
장하양은 따스하게 미소 지으며 백설하를 달랬다.
“아니에요. 제가 선물 받은 거니까, 제가…….”
그리 말하던 장하양의 표정이 굳었다.
이상하게 여긴 백설하가 그녀를 불렀다.
“하양아?”
“……언니. 이사님이 이걸 주셨단 건, 이사님은 블루레이를 볼 방법이 있단 거겠죠?”
그야, 본인이 써본 적도 없는 물건을 선물로 줄 리가 없다.
성필 정도 되는 사람이 사려 없이 DVD 대신 블루레이를 샀을 리도 없다.
“그으, 그렇지 않을까? 집에 플레이어가 있으시다거나.”
“음…….”
“언니들 큰일이에요!”
갑자기 리카가 거실로 우당탕탕 뛰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앨범이 여러 개 들려 있었다.
“설하 쌤이 선물로 받은 박스 안에 들어 있었어요!”
백설하가 플레이어에 정신이 팔려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살펴보니, 유명한 팝스타들의 앨범이었다.
“그리고 이거!”
그중에선 케이어스의 앨범도 있었다.
“무려 초회 한정판이에요! 발매일까지 눈 부릅뜨고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구할 수도 없던 거라구요! 저희보다 케이어스를 더 좋아하시나 봐요! 같이 항의해요!”
리카가 성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심문관처럼 그를 몰아붙였다.
“이 초회 한정 물량을 어떻게 구하신 건가요! 이러다가 KS 엔터로 이직하시겠어요!”
[내 맘대로 앨범도 못 사? 좀 봐줘라.]
“이사님은 경쟁사를 도와준 거……!”
[난 너네 앨범 24장 샀단 말야. 포카 다 모으려고. 내 집에 오면 사방이 너네 브로마이드로 도배돼 있어.]
“손나(그런)!”
[이래도 안 봐줘?]
“봐 드릴게요! 혹시 제 브로마이드는 어디 붙이셨나요?”
[침대 위 천장.]
“케이어스 앨범 10장 사셔도 돼요!”
[12장 샀어.]
“이사님 저축 안 하시나요?! 결혼도 하고 집도 사야죠!”
[내 결혼은 나 혼자 걱정할게.]
“손나(그런)……!”
* * *
“미니 앨범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요.”
손혜빈이 결심한 듯 단호한 투로 말했다.
“저는 지금 컨셉 이어가는 거 반대예요. 성필이는 미니 앨범이 팬덤을 다지는 시기니까, 데뷔의 컨셉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잖아요. 반대예요.”
“이유는?”
“팬덤을 다지는 게 아니라, 팬의 외연을 확장해야 해요. 대중을 겨냥해서 주제를 조금 라이트하고 소프트하게 바꿔보죠.”
“라이트한 주제면 뭐가 있지”
손혜빈이 손하트를 만들었다.
“사랑.”
동서고금,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