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53화 (153/760)

153화

유용태는 다시 커뮤니티를 관찰했다.

‘앨범 컨셉 분석하는 사람이 2/5.’

[영화 대부 오마주 아니냐?]

[마피아 설하 빨리 보고 싶다.]

[Long For가 곡 제목이겠지? 이번 곡은 좀 다크할 듯.]

[나레이션은 완전 창작임? 아니면 어디 출처가 있음? 아는 동무 답 좀.]

[설하가 마피아면 다른 소련이들도 다 마피아인가?]

‘좋아하는 사람이 또 2/5.’

[설하 눈빛 녹아 진짜 ㅠㅜ]

[설하 손등에 키스한 남자 누구냐. 부럽다.]

[이번 곡 컨셉 레전드인 듯.]

[코디만 봐도 소속사 열일하는 거 알겠음 ㅇㅇ]

‘그리고…….’

아까 봤던 대로.

‘불타는 사람이 1/5.’

커뮤니티는 혼란과 공포, 기쁨과 기대, 이성과 추리라는 세 개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유용태는 어디에 낄 것인가.

‘모르겠어.’

백설하의 복장이나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컨셉이 소녀연맹에 어울리는가? 모르겠다. 아직 밝혀진 거라곤 티저 하나가 전부이니.

대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반응이 이렇게 갈리는 것도 드물 텐데.’

그래도 확실한 건.

‘뮤비는 데뷔 때처럼 잘 나올 거 같아.’

유용태는 망설이다가, 티저를 두고 분석하는 쪽에 끼었다.

예전에 멤버들 SNS와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보고 듣길, 멤버들도 컨셉 선택 과정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했었다.

‘그러면 소녀연맹…… 아름이도 이 컨셉에 찬성했다는 뜻이니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다.

유용태는 뮤비 티저를 돌려보며 분석글을 올렸다. 하지만 곧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아직 곡도 안 나왔는데 망했다고 하는 새끼들은 대체 뭐야?’

유용태는 추리 대신 ‘정화’의 행렬에 끼었다. 부정적인 글이 아래로 내려가도록 긍정적인 게시글만 썼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부정적인 글을 보지 않았으면 해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쓰고, 또 썼다.

하지만 이미 여러 SNS를 타고 소녀연맹의 티저는 퍼지고 있었다.

혼란을 겪는 건 ‘소녀연맹 마이너 갤러리’만이 아니었다.

* * *

홍규헌은 사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미동도 없었으나, 그녀의 머리만큼은 캐치볼처럼 생각을 쉴 틈 없이 이어갔다.

‘반응이 안 좋아.’

첫 번째 뮤비 티저가 나온 이후, 당연히 가로 엔터는 반응 수집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데뷔 때랑은 전혀 달라.’

그때는 기대한다는 글과 댓글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저 인터넷에서 하는 헛소리에 불과하겠지만, 기획사를 불태우겠다는 글마저 올라왔다.

홍규헌은 사설 경비 업체 계약을 더 높은 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리가 확증 편향에 빠진 건가?’

정지음이 만든 ‘롱 포’가 너무도 좋았다.

백설하의 가이드 보컬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멤버들이 ‘롱 포’를 타이틀로 밀었다.

가로 엔터 임직원들도 이에 동의했다.

그 과정까지 반대 의견이 거의 없었다.

아니, 반대 의견은 전부 자취를 감추었다.

‘박 이사 때문에.’

성필.

그는 ‘롱 포’의 반대 의견을 특유의 설득력으로 전부 억눌렀다.

물론 억눌렀단 말은 어폐가 있다.

어쨌거나 그는 설득했을 뿐이고, 다른 임직원들이 넘어간 것이니까.

‘롱 포’가 소녀연맹에 어울릴지 확신이 없었던 홍규헌마저도, 나중엔 그의 말솜씨에 홀려버리지 않았던가.

‘너무…… 생각이 굳어버린 건가?’

팬, 고객의 입맛을 맞추지 못했다.

어쩌면 이번 앨범은 실패하는 게 아닌가…….

“겨우 티저가 나왔을 뿐입니다.”

한구인이 커피를 타왔다. 그는 홍규헌의 무표정에서도 감정을 읽어냈다.

오랫동안 보아 왔으니까.

“아직 앨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재단하기엔 이릅니다. 벌써 탓할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탓할 사람?”

그런가.

그렇다.

홍규헌은 벌써 앨범이 실패한 듯 생각했고, 그 실패를 이끈 사람을 찾아내려 했었다.

누구보다 ‘롱 포’의 제작에 적극적이었던 인물, 성필을 머릿속에서 샅샅이 해부하고 있었다.

그가 가로 엔터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에 대해 지레짐작 걱정해버렸다.

‘시작했으면 겁먹지 마라, 라고 항상 아버지에게 들어왔는데도.’

소녀연맹의 데뷔. 처음 겪어보는 성공.

홍규헌은 하늘을 나는 듯했다. 그리고 높이 날수록 떨어질 때가 더욱 걱정되는 법이다.

처음 날아보는 높이에서의 비행이기에,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

“……그러네.”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고작 반응 하나둘에 부화뇌동하다니.

게다가 누구보다도 충성스럽고 가로 엔터를 생각하는 성필을, 잠시나마 부정적으로 여기다니. 성필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한구인은 홍규헌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는 듯 보이자, 자신감을 얻고 위로를 이어가려 했다.

“사장님. 옛말에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했습니다.”

“한 이사. 우리 팬들이 개라는 거야?”

“아, 아닙니다. 그, 죄송합니다. 안 좋은 비유였던 것 같습니다.”

“뭐어, 하고 싶은 말은 알겠어.”

이미 앨범 제작은 끝물에 들어섰다.

더는 바꾸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믿어야만 한다.

성필이 프로듀서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곤 하지만, 모든 임직원이 동의한 것이니까.

무엇보다, 사장인 자신이 모두를 믿어서 결정한 일이다.

“커피 잘 마실게.”

“예. 너무 심려친 마십시오.”

한구인은 사장실을 나와 성필을 찾아갔다.

“사장님을 안심시켜 주시겠습니까? 너무 떨고 계신 듯합니다.”

“사장님이요?”

홍규헌은 오늘 아침 회의 때만 해도.

“다들 부화뇌동하지 마. 우리가 만든 거야. 우리가 결정한 거야. 다들 믿고 있잖아? 고작 몇 마디 말에 흔들릴 생각으로 만든 거야?”

그러면서 임직원과 멤버들마저 안심시켰던 홍규헌이다.

그녀가 떨고 있다니.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성필은 홍규헌을 찾아갔다.

그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표정으로 커피를 음미하는 중이었다.

“박 이사?”

“사장님, 잠깐 시간 있으세요?”

“뭐어, 그런 편이지.”

성필은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책상뿐.

성필은 그마저도 넘으려는 듯 책상을 손으로 짚고, 홍규헌을 향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커뮤니티 반응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직 저희가 보여준 건 뮤비 티저뿐이잖아요. 저거 다 고나리예요.”

“……고나리?”

“아, 관리요.”

부정적인 간섭을 고나리라고 표현한다.

“팬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겠죠. 하지만 회의 때도 계속 주제로 나왔었고,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잖아요. 저희는 그걸 감수하고 컨셉을 잡았어요. 게다가 팬 반응이 부정적인 것만 있지도 않아요.”

오히려 좋다는 의견이 더 많다.

그럼에도 사람은 천 개의 칭찬보다 하나의 욕에 신경 쓰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욕이 천 개 중 이백 개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고는 못 참는다.

일종의 부정적 확증 편향이다.

안 좋은 반응만 눈에 들어오고, 결국 자신이 실패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저희들을, 멤버들을 믿어주세요. 곡 잘 뽑혔잖아요? 아티스트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박 이사. 지금 나 위로하는 거야?”

“네? 으음, 그냥…….”

“박 이사나 지레짐작하지 마. 오늘 아침 회의 때도 들었잖아. 난 확신이 있어. 네 말대로, 고작 팬 반응으로 안 흔들린다고.”

한구인이 떨고 있댔는데…….

아마 홍규헌은 허세를 부리는 것일 터다. 한구인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으나…….

‘나한테는…… 안 되는 건가.’

홍규헌은 오히려 성필을 위로했다.

“또 반응 같은 거 둘러보고 온 모양인데. 그러지 마. 반응 보려면 다음 티저나 앨범 발매되고 보던가. 박 이사는 박 이사 일에만 집중해. 성공이든 실패든, 아니. 실패는 다 내 책임이니까, 박 이사는 박 이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예.”

“그래도, 고마워.”

성필은 별 소득도 없이 사장실을 나서야 했다.

그때.

“박 이사.”

“예?”

“난 박 이사 믿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홍규헌은 성필에게 믿음을 주려고 했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믿음을 주는 것.

옛말에도, 나라는 무력과 경제력이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회사도, 세상 어느 단체든 마찬가지다.

“우린 또 성공할 거야.”

성필은 미소로 화답하고, 사장실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팬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폈다.

‘1/5은 적은 수치가 아니야.’

회사가 신상품을 준비했는데 기존 고객군 중 1/5이 싫어한단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신상품으로 그보다 많은 소비자를 끌어올 수 있을 확신이 없다면, 당장 사과하고 계획을 백지화시켜야 할 정도의 수치다.

그렇다면 성필에게 확신이 없는가?

‘아니.’

그렇다고 기존의 고객, 즉 팬을 버리겠단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반응 차이는 성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아.’

성필이 소녀연맹에게 바라는 건 단순히 국내에서 뜨는 그룹 정도가 아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선 세대와 성별, 환경을 통합한 팬층의 호응을 얻어내야 한다.

‘소녀연맹의 성장이 걸린 문제야.’

다음 앨범에서 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미 성필의 머릿속엔 이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 한 명의 인물이 떠오르고 있었다.

‘엘릭.’

소녀연맹이 대중성을 잡아야 한다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성필을 설득했던 엘릭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팅글’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팅글…… 뮤비를 만들어야…….’

일단, 부정적인 팬층을 위한 탈덕(아이돌 덕질에서 벗어나는 것) 방지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부정적 반응이 앨범 발매 후에도 이어진다면, 다음 앨범에선 엘릭과의 협업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가 동의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성필은 부정적인 게시글을 적는 사람들의 말투를 분석하려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누나, 이거 어떻게 생각해?”

그가 보여준 것은 백설하의 컨셉 포토였다.

정장을 입은 채 단정하면서도 중후함을 한껏 살린 의자에 앉아, 차갑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여자가 보기엔 별로 안 끌리나?”

“얜 뭐래. 보자마자 심장이 아픈데. 너 없었으면 모니터 핥았다.”

“……응.”

“못 믿어? 보여줘?”

“아, 아니. 못 믿는 거 때문이 아니라…….”

모니터를 핥는다는 말 자체가 좀 확 깬다.

“그럼 남자는 어떤데. 이거 별로야?”

“…….”

“왜 대답이 없어. 너 별로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나는 좋지.”

성필은 좋지만.

‘걸크러시 컨셉 자체가 남자에게 호응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아이돌 그룹들의 컨셉과 팬덤 성비를 분석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크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매니시한 정장을 입은 백설하의 모습.

멋지다, 멋지지만.

‘남자 팬의 직관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란 건가.’

드물게 걸크러시이면서도 남초 팬덤을 가진 그룹이 있곤 하다.

그와 같은 이례적인 경우처럼, 성필은 ‘롱 포’의 걸크러시 컨셉이 남자에게도 여자와 비슷한 비율로 먹히길 바랐다.

하지만 경험은 무시하면 안 된다는 교훈만 얻었을 뿐이었다.

‘역시, 데이터는 거짓말을 안 하네.’

앞으로도 소녀연맹은 청순하거나 페미닌(Feminine)한 느낌을 타이틀 컨셉으로 잡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가?

선택과 집중이란 말처럼, 소녀연맹은 여초 팬덤을 기반으로 남자 팬의 성향을 배제하는 쪽으로 성장해야 하는가?

‘아니.’

해결책은 있다.

‘퍼포먼스와 메시지.’

눈을 사로잡는 예술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곡에 담긴 메시지.

‘성별과 세대를 관통하는 아이템이야.’

그것으로, 다음 앨범에서는 한계를 뚫는다.

* * *

‘롱 포’가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접어들기 전.

모든 악기가 멈추고 침묵했다.

장하양은 스탠드 마이크를 꽉 붙잡고.

‘지금이다.’

사운드가 터져 나오며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 순간, 스탠드 마이크를 뒤로 홱 돌려 넘겼다.

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마이크를 쥐고, 그대로 팔을 옆으로 움직여 마이크를 뒤로 보내는 것이다.

그럼 주인이 없어진 마이크는 장하양의 뒤에서 기울어지다가…….

쿵!

“에고고, 죄송해요.”

리카와 신아름이 이번엔 마이크를 받아내지 못했다.

그녀들이 스탠드 마이크를 받은 후 대열의 뒤에 세우고, 하이라이트 댄스에 합류했어야 하는 파트였다.

“미안. 살살 했어야 하는데.”

“아녜요. 안무 속도 맞추려면 이렇게 해야죠. 저랑 리카가 잘 잡을게요.”

이 안무의 성공률은 대략 90%다.

10번 해서 1번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이래선 안 된다.

완벽해져야 한다.

“…….”

조아라는 묵묵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컴백까지는 2주도 남지 않았다.

14일.

길다면 긴 시간이기에, 그사이에 안무는 완벽히 숙달될 것이다. 하지만 조아라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다들 서랍 열어.”

금요일 저녁, 손혜빈이 숙소를 점검하러 왔다.

위생 상태나 멤버들이 가져선 안 되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마음껏 봐주세요!”

자신이 얼마나 정리를 잘하는지 보여주려는 듯, 리카는 서랍을 활짝 열어뒀다.

“어디 리카가 얼마나 정리를 잘하는지 볼까아.”

손혜빈은 옷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는 리카의 서랍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때, 손혜빈이 기겁하면서 소리쳤다.

“리카!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 어떡해!”

“에, 에?”

“얘 진짜 성인 됐다고 막 나가네! 너희들은 이런 걸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어?!”

조아라와 신아름도 한껏 당황해서 눈동자만 굴렸다.

“뭐, 뭐가 있는데요?”

“리카 설마…….”

리카는 울상이 되어서 도리질쳤다.

“지가우(틀려)! 아, 아타시(나)는 부끄러운 물건은 하나도 없단 말야! 언니이 진짜예요. 뭐가 있어도 아라쨩이 숨겨둔 걸 거라구요오…….”

“내가?”

크크.

손혜빈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흘렸다.

“농담이야. 리카는 매주 정리 잘해두네. 너무 정리 잘해둬서 놀리고 싶었어.”

“나쁜 언니! 나쁜 사람!”

리카가 손혜빈의 등을 마구마구 때렸다.

“아우, 시원하다.”

화장실과 세면실, 주방까지 세심한 점검을 마쳤다.

손혜빈은 백설하에게 ‘생활품 요구서’를 전달받은 뒤, 숙소를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손혜빈이 갑자기 생각났단 듯 조아라를 불렀다.

“아라야. 미안한데, 내가 너희들한테 전달할 물건을 차에 두고 올라왔거든. 나랑 같이 가져와 줄래?”

“네.”

조아라는 슬리퍼를 신고 손혜빈을 따라 내려갔다. 손혜빈은 조수석에서 휴지와 물티슈 등을 꺼내려다가, 차 문을 닫았다.

“아라야. 고민 있어?”

“네?”

“너 회사에서부터 계속 그러던데. 고민 있으면 말해.”

성필도 그렇고, 회사 사람들은 전부 귀신인가?

아니면 조아라 자신이 감정이 잘 드러나는 타입인가.

조아라는 당황하면서 자연스레 ’아니‘라고 답하려 했다. 하지만 확신에 가득 찬 손혜빈을 보곤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요. 저희 하이라이트 안무 있잖아요. 아니, 그 브릿지에서…….”

“하양이가 스탠드 마이크 뒤로 보내는 거?”

“네. 그거, 연습해도 완벽해지기 힘들 거 같거든요.”

스탠드 마이크의 바닥은 둥근 평면이다.

그래서 장하양이 뒤로 넘길 때 둥근 면이 바닥을 따라서 구른다.

장하양이 마이크에서 손을 떼는 순간, 마이크는 기울어진다. 그때 신아름과 리카가 받아내야만 하는데.

“안무 타이밍 맞추려면 빨리 뒤로 보내야 하는데. 보내는 것도 받는 것도 타이밍 맞추기 어려워요.”

“그렇겠더라. 그리고 그걸 해야 하는 게 음방 무대잖아. 바닥 상태가 다 균일하진 않을 테니.”

연습실 바닥과 음방 무대 바닥이 다를 것은 당연하다.

손혜빈도 데뷔 때는 바닥의 재질이나 상태가 무대마다 달라서 여러 번 곤욕을 치렀었다.

설령 연습실에서 안무 성공률이 100%를 찍더라도, 무대에서는 또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요. 짧게나마 댄스 브레이크를 넣으면 마이크를 뒤로 돌릴 시간이 날 거 같아서요.”

“댄스 브레이크? 차라리 마이크를 그냥 손에 쥐여주는 형태로 넘기는 쪽이 편하지 않아?”

“멋이 안 살잖아요.”

“그렇긴 해. 그 동작 멋지지.”

그래서 댄스 브레이크를 삽입하자는 건가…….

그러려면 곡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브릿지에서 하이라이트 코러스로 이어지는 사이에 들어갈 것이니, 또 정지음이 만들어야 하리라.

‘시간이 문제라면 차라리 브릿지 정적을 1, 2초 정도 연장하는 편이 나을 텐데. 왜 굳이 댄스 브레이크를…….’

단순히 생각만 해도 여러 문제점이 떠오르지만, 손혜빈은 조아라의 아이디어를 차단하려 하지 않았다.

“멤버들한테도 말해봤어?”

“아니요.”

“왜? 괜찮은 거 같은데.”

“…….”

조아라는 바로 답하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당연히 너희 의견이 중요하지. 너희는 아티스트야.’

성필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는 말이다.

그 때문에 멤버들도 데뷔 때부터 의견을 내왔다.

처음에는 창피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멤버들은 적극적으로 변했다.

이번 미니 앨범처럼.

‘와, 이걸 이렇게…….’

고작 멤버들의 말 몇 마디가, 부정형의 상상력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곡. 안무. 의상. 뮤비. 메이크업과 헤어.

처음 멤버들이 가졌던 아이디어를 아득히 상회하는 모습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가공되어 그녀들 앞에 내놓아진다.

가로 엔터는 마치 손님이 먹고 싶은 생선을 고르자마자, 절로 감탄을 터뜨릴 만큼 아름다운 요리로 만들어오는 요리사 같았다.

‘이 사람들, 아저씨도, 전부 전문가구나.’

조아라는 경외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동시에 자신이 냈던 아이디어가 앨범 구성에 포함되고, 팬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남모를 자만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뮤비 티저가 나오고 나선.

‘어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조아라가 입고 싶다던 정장이 메인 복장으로 정해졌다. 그에 따라 정장에 기초하여 온갖 옷들이 도착했다.

그런데 정작 그 반응이 좋지가 않다.

조아라는 불안했다.

그 불안은 책임감으로부터 왔다.

단순히 회사가 해준 것을 받아먹는 아이돌이 아닌, 자신의 의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아티스트로서의 불안이었다.

‘나 때문에, 내가 낸 의견 때문에 앨범이 망하면 어떡하지……?’

창작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멤버들한테 말해보지.”

손혜빈이 따스한 말투로 권유했다.

조아라는 깊이 가라앉았던 의식을 다시 표면으로 끌어왔다.

“멤버들이요…….”

그래. 멤버들은 호응해줄 것이다.

조아라는 춤에 관해선 멤버들 중 가장 식견이 있었으며, 또한 전문가니까.

안무 소화를 위한 의견이니, 댄스 브레이크를 넣자고 하면 존중해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면.

‘내 책임이 아니라, 멤버들 공동 책임이 되잖아.’

조아라가 내놓고, 멤버들이 동의하고, 만약 가로 엔터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망한다면…….

‘소녀연맹 전원이 책임을 질 순 없어.’

그러니까, 이건 조아라 자신만의 의견이 되어야만 한다.

이후 실패해서 원망을 받더라도, 그건 조아라 홀로 받을 원망이어야만 한다.

조아라 혼자 짊어질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

“아뇨, 그냥, 나 혼자 생각하는 거고요. PD님은 어케 생각하나 해서요. 가볍게 생각해본 거예요.”

“흐음, 그래애?”

손혜빈은 히죽히죽 웃었다.

‘이 귀여운 애를 어떻게 하면 좋지?’

그녀는 조아라의 생각을 손에 잡힐 듯 읽을 수 있었다.

‘상대가 성필이나 한 이사님이면 곧이곧대로는 안 말했겠지?’

두 사람의 직함은 이사니까.

아무래도 직급이 낮은 손혜빈에게 털어놓기 더 편했을 것이다.

“그렇구나아.”

“뭐, 어떤 거 같으세요?”

“내가 판단할 게 아닌 거 같은데?”

“네?”

“아티스트님의 생각이잖아! 적합한 분을 찾아가야지!”

“아니…….”

“나만 믿어!”

다음 날.

“…….”

응접실.

조아라는 성필과 1대1 대면하게 됐다.

‘파이팅!’이라며, 손혜빈은 응접실을 나가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 아라야. 왜?”

“어, 음, 아뇨, 별건 아니고.”

데뷔 앨범이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둔 이후, 조아라는 성필을 대하는 게 조금씩 꺼려졌다.

성필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업적이 만들어내는 후광이겠지, 아마.’

조아라는 그 후광을 이겨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만 했다.

“아니이, 그으.”

울렁거려…….

‘아저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조아라는 손만 꼼지락대며 말을 흘렸다. 그러다가, 겨우 말만 하는 건데 무슨 큰일이 있겠냐며 의지를 다잡았다.

“우리…….”

하지만 금세 의지가 무뎌지고, 조아라는 주제를 돌렸다.

“그거, 궁금한 거 있어서요. 곡 만드는 과정이요.”

“곡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

한 번에 설명하려면 복잡한데.

성필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후일 조아라가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언젠가는 알아야 할 지식이었다.

“최대한 간단하게 알려줄게. 먼저 아티스트와 곡이 있어야겠지. 작곡과 편곡, 보컬 녹음. 그리고 곡에 따라서 세션 녹음도 필요할 거고.”

“세션이 뭔데요?”

“‘롱 포’가 밴드 사운드 곡이잖아. 너희한테는 말 안 했지만, 지음이가 곡 만든 뒤에 따로 밴드를 불러서 사운드를 다 녹음했거든.”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게 필요해요?”

“응. 음악적인 느낌을 살리려면 필요하지. 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이 세션 녹음 방식이 합주랑 오버더빙…… 이건 스킵할게. 아무튼 아티스트가 노래도 부르고, 세션 녹음도 끝났다. 그럼 믹싱으로 들어가는 거야.”

믹싱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만들어진 곡을 더 좋게 수정하는 것이다.

“악기와 보컬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각 음의 개성을 살리고, 충돌이 없게 하는 거지.”

“그건 지음 오빠가 해요?”

“아니. 믹싱 엔지니어가 따로 있어. 너희 녹음할 때도 레코딩 엔지니어님이 따로 계셨잖아. 그거랑 같은 거야. 물론 믹싱을 지음이가 할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전문가가 훨씬 잘하겠지? 그리고 다음이 마스터링이야. 이것도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따로 있어.”

마스터링은 앨범 전체의 완성도를 올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개개 곡의 완성도, 그리고 곡의 이어짐 등을 점검하는 등, 작업의 마지막 단계다.

“여기서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마스터 버전을 확보하면, 가로 엔터에서 최종적으로 확인 후에 프레싱에 전달하는 거야.”

“프레싱은 뭔데요?”

“CD로 찍어내기.”

“아.”

“여기까지가 대충, 정말 대충 설명한 곡의 탄생 과정이야.”

그리고 과정마다 돈과 시간이 든다.

앨범 하나 내는 데 억이 든다는 소리는, 이 모든 과정이 전문적으로 진행됐을 때의 경우다.

당연히 가로 엔터는 전문적으로 진행했기에, 앨범을 하나 만드는 데만도 억이 넘는 비용을 치렀다.

“…….”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조아라는 더 기가 죽었다. 원래 용건을 꺼내기가 훨씬 힘들어졌다.

‘내가 댄스 브레이크를 넣자고 하는 건…….’

이미 완성된 과정을 다시 되돌아가자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믹싱이나 마스터링을 다시 해야 할 테고…….’

돈이 더 들겠지.

조아라는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결국은 포기하기로 했다.

“알겠어요. 고맙…….”

“너 혹시 곡 관련해서 아이디어 있어?”

“네? 아뇨, 나는…….”

“있잖아. 아니면 굳이 날 찾아올 필요도 없고.”

성필은 조아라의 속내를 대충 알 수 있었다.

굳이 곡의 제작 과정을 물어본 건, 자신의 요구가 합당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겠지.

“말해도 돼.”

“……근데, 이미 마스터링? 그거까지 끝난 거 아니에요?”

“끝났지.”

“그럼 내가 말해도 쓸모없는 거잖아요.”

“왜 쓸모없어. 네가 낸 의견이 좋으면 모든 과정 다시 돌리더라도 반영해야지.”

“돈이…….”

“아라야.”

성필이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러자 조아라가 당황했다.

“넌 돈이 마음에 걸려?”

“당연히…….”

“아티스트가, 더 완벽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데 돈을 신경 쓰는 거야?”

조아라는 픽 웃었다.

성필의 말이 너무나 뜬구름 잡는 듯했기 때문이다. 세상만사 다 돈이라는데, 그럼 돈을 신경 쓰지 않고 어쩌겠는가.

“그럼 아저씨는 신경 안 써요? 됐어요. 어차피 내가 말하려던 거 별로 좋은 생각도 아니었고.”

“말해봐. 네 의견이잖아. 좋을 거라고 믿어.”

“날 그렇게 믿어요?”

“당연하지.”

조아라가 자조했다.

자신은 성필이 믿어주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게다가, 어차피 성필은…….

“아저씨는 딴 애들한테도 다 그러…….”

“난 너 믿어.”

아티스트를.

“못 믿으면.”

프로듀서가.

“누굴 믿어?”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조아라마저도.

“……뭐라고요?”

“널 못 믿으면 내가 누굴 믿어, 라고 했어.”

성필의 그 말에는 움찔 떨며 굳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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