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미니 앨범 ‘Girls’ Craving’ 초동판매량 약 21,000장 달성!
이 소식은 빠르게 소녀연맹의 숙소로 전해졌다. 숙소의 거실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기절한 장하양을 배경으로 리카와 조아라가 서로를 껴안은 채 방방 뛰는 중이다.
“이제 빚 갚는 것도 시간문제야 아라쨩!”
“어, 진짜 고생했다 리카. 우리가 거의 4억 원 번 거야!”
미니 앨범의 가격은 20,900원이었다.
초동판매량 포함, 이후로도 팔릴 것을 고려하면 미니 앨범으로 거진 5억 원을 벌 수도 있다.
리카의 말마따나, 빚을 까는 것도 곧이다.
“정말로…… 힘들었지만…… 재밌고…….”
“아라쨔앙!”
리카가 눈물을 보이는 조아라를 가슴에 품고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기쁜 날엔 웃어야지! 웃어! 아타시(나)의 가슴에 맘껏 눈물을 흘려도 좋아!”
“……기분 나빠.”
“난데(어째서)?!”
자신을 아득히 추월할 정도로 성장해버린 리카에게, 조아라는 희미한 질투를 품었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넌 정산 받으면 뭐 살 거야?”
“일단 박 이사님 티셔츠 사드릴 거야!”
데뷔 첫날, 리카는 성필의 가슴에 얼굴을 박고 울어버렸다.
그 결과 그의 티셔츠를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바꾸어놓았다.
눈물과 화장으로 범벅된 티셔츠의 행방은 아무도 몰랐다.
“넌 아직도 뭐만 하면 박 이사님, 박 이사님 그러냐. 연습생 때랑 달라진 게 없어.”
“아라쨩, 원한은 잊어도 은혜는 잊지 말랬어!”
“누가?”
“한 이사님이!”
“반대 아닌가?”
“반대면 쓰레기잖아?!”
생각난 김에 리카는 티셔츠 쇼핑을 시작했다.
“코레(이거)!”
“입생로랑……. 너무 비싸잖아.”
“첫 정산으로 5,000만 원 정도 받지 않을까? 우린 앨범 하나 내면 몇억 원씩 벌어들이는 초(超)인기 아이돌이라구!”
초인기 아이돌?
조아라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지도나 판매량 모두, 여타 유명 그룹에 비하면 확연히 떨어졌으니까.
‘잠깐만. 그럼 다른 유명한 그룹들은 대체 얼마씩 벌어들인단 거야?’
이래서 아이돌을 만드는구나.
한 번만 대박 나도 인생 역전!
“아라쨩은 뭐 살 건데?”
“자동차?”
“에, 아라쨩 운전면허 있는 거야? 그럼 아라쨩의 첫 조수석은 아타시(내) 차지야!”
“없는데.”
“난다(뭐야). 김 팍 샜어.”
“이제 따야지.”
“언제?”
“어?”
그러게.
데뷔 앨범에서 미니 앨범까지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쉴 기간은 없을 것 같았다.
“……우리 휴가 안 받나?”
“우린 언제 쉴까?”
아이돌, 한 번만 대박 나도 인생 역전!
그러니까 대박 나면 쉴 새 없이 굴려야 한다!
“……언젠간 쉬겠지. 그때 면허 딸 거야.”
“그럼 첫 번째 탑승자는 나 맞지?”
“뭐, 그래.”
“아라쨩 다이스키(정말 좋아)!”
“아 쫌 이러지 말라고. 네가 맨날 이러니까 이상한 팬픽이나 올라오잖아…….”
조아라도 호기심에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것을 본 뒤로 리카가 침대에 들어올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아라쨩, 잠이 안 오는 거야?]
[리카, 이러지 말라니깐…….]
[난데(어째서)?]
[회, 회사에 알려지면 안 돼…….]
[그럼 알려지지 않으면? 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흐읏, 안 돼애…… 아름이도 있는데엣……!]
리카가 팬픽과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을 건 알아도…… 무섭다고…….
“에에, 아라쨩 요즘 사랑이 식었어.”
“원래 안 뜨거웠으니까.”
“히도이(너무해)!”
“근데 하양 언니 기절한 거 언제 깨울 거야.”
“그냥 두자. 하양 언니 자는 모습 볼 기회가 별루 없단 말야.”
“별 희한한 이유네.”
“뽀뽀해야지.”
“성추행이야 그거!”
리카 얘 설마 진짜……?
세 사람(기절한 장하양 포함)이 저마다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시각, 신아름과 백설하는 어쩐지 침울한 분위기였다.
“언니,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 ‘롱 포’ 엄청 떴잖아요. 근데 판매량은 이거밖에 증가 안 했어요.”
“응,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려가진 않았으니까 좋은 거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백설하는 신아름이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랐다.
소녀연맹의 컴백은 성공적이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이거 봐요. 저희 전에는 음원 차트 광탈했는데도 1만 장 팔았잖아요. 근데 20위권 들락날락하는데도 고작 1만 장 늘었어요. 이러면 1위 해도 3만 장 정도밖에 안 팔리는 거 아니에요? 이상하잖아요.”
“으, 응.”
“……대중성은 있는데 팬이 될 만큼은 아닌가?”
백설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인지도와 판매량은 보통 비례하지 않나?
백설하도 이유를 알고 싶긴 했지만…….
“아름아.”
그녀는 신아름의 손을 맞잡았다.
“판매량은 올랐잖아. 좋은 일이야. 오늘은 걱정하지 말고, 축하하자.”
“……네.”
둘은 손을 잡고 거실로 갔다.
리카가 기절한 장하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리카야 그거 성추행이야!”
“아라쨩도 그렇고 쌤도 왜 그래요! 그냥 보기만 하는 거라구요!”
백설하가 긴급하게 장하양을 깨웠다. 더 놔뒀다간 리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으, 음, 언니?”
“하양아 괜찮아?”
“제가 왜…….”
“너 초동판매량 듣더니 기절했대.”
“아, 맞아요. 저희가 4억 원을 벌었…….”
장하양이 또 기절했다.
* * *
“팬층의 이탈이 문제라면, 소녀연맹의 강점은 멤버 자체가 아니라 컨셉에 있었단 거야?”
“그렇게 판단해야겠죠.”
“멤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라…….”
그렇다면 ‘롱 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멤버 개개인이나 그룹에 반했다기보다 단순히 곡 컨셉에 홀렸다는 건가.
팬덤 응집력이 약하다는 소리다.
“뭐가 문제지?”
아무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가로 엔터의 임직원들이 보기에, 소녀연맹 멤버들은 모두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무튼 천사나 다름없었기에.
다른 걸그룹 전부와 비교해도 소녀연맹이 가장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이하 생략.
“박 이사는 알지 않아?”
“제가요?”
“케이어스랑 소녀연맹이 다른 점을 분석하면…….”
“저도 우리 애들이 더 좋아요!”
“아, 그래. 진저랑은 요즘도 연락해?”
“…….”
“농담이야.”
뮤비 조회 수도 일주일 만에 2,000만에 가까워졌다. 음원 차트 순위도 유지하고 있다.
이전보다 월등히 높은 성적이다.
그런데 대체 왜 초동판매량만…….
‘초동판매량이 중요한 이유는, 앨범이 발매되고 일주일이 지나면 사람들이 거의 사지 않기 때문이야.’
사실상 일주일에 팔리는 양이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게 인지도가 낮은 그룹이라면 더 두드러진다.
인지도가 낮은 그룹의 앨범을 사는 건 거의 팬들이다.
팬들은 앨범 발매일도 알고 있기에, 발매되자마자 사는 게 일반적이다.
‘사실상 초동판매량이 전체 판매량이나 마찬가지…….’
데뷔 앨범 때는 초동판매량 이후에 5,000장을 더 팔긴 했다.
일반적으로 발매 후 한 달 동안 50% 아래로 더 팔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50%쯤 더 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범위는 보통 1%에서 50% 사이다.
어쨌거나, 가로 엔터는 초동 이후 앨범이 꾸준히 많이 팔린 이유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었다.
정확하진 않더라도, 팬 유입이 꾸준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뭐어, 하루 이틀 만에 알아낼 이유는 아니지. 확실히 뮤비 티저가 나오고 나서 반발이 꽤 있었잖아. 초기 팬층이 이탈했다는 한 이사의 진단은 정확하겠지. 그만큼 새 팬층이 들어왔고.”
그럼 데뷔에 이어 미니 앨범까지 남아 있던 콘크리트 팬층은, 소녀연맹 그 자체를 좋아할 테지.
“그 콘크리트 팬층의 수를 가늠해야 하는데…….”
유통사로부터 개인정보라도 얻어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초기 팬의 수를 알아내야 이전 컨셉이 더 좋은지, 이번 컨셉이 더 좋은지 결과가 나온다.
“일단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여성 구매자 비율이 이전보다 5% 상승했단 거네요.”
“은근히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어. 성별이 큰 변수일 줄 알았는데.”
또, 초동판매량이 낮은 이유를 말해보라면.
“아름이 영향이 있을 수 있겠죠.”
초동판매량이 집계되는 컴백 후 일주일.
그 중반에 신아름의 학폭 논란이 떠올랐다.
“보통 학폭 논란이 뜨면 폭로글은 봐도, 해명문은 보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람들은 진실보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현 아이돌 멤버의 충격적인 과거] 같은 제목이 [아이돌 멤버 학폭 논란의 진실] 같은 제목보다 훨씬 조회 수가 많다.
“학폭 논란까지만 보고, 이후의 사건은 보지 않았을 사람들도 있겠죠.”
“신규 팬 유입에 차질이 있던 건가.”
전부 가설의 영역이다.
오히려 가로 엔터와 신아름의 대응, 그리고 이후 사건의 결말로 홍보가 더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홍보가 되고도 초동판매량 2만 장이란 결과가 나온다.
“……머리 아파.”
홍규헌의 말은 모든 임직원들의 생각을 대변해주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대기업이면 몰라도, 가로 엔터는 그럴 수가 없다.
사람이 직접 하나하나 통계를 수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나중에 또 회의해보자. 아직은 미니 앨범 활동 기간이니까, 성공을 즐기고. 다들 회식 가지?”
홍규헌은 억지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미니 앨범은 성공했다.
성공했지만, 그 성공을 바탕으로 나아갈지 말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가로 엔터는 찝찝한 성공을 만끽했다.
* * *
소녀연맹의 초동판매량을 본 김민주는 숙소가 떠나가라 웃었다.
“왜 그러심미까?”
진저가 다가오자, 김민주는 배꼽이 빠져 죽겠다는 듯 모니터를 가리켰다.
“초동판매량 21,000장?”
“웃기지 않아? 이래놓고 우리 보고 라이벌이니 뭐니 그딴 말이나 하잖아.”
“소녀연맹 멤버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슴미까?”
“…….”
이제 생각해보니, 그런 적은 없었다.
김민주가 뇌내망상으로 멋대로 그런 대사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많은 거 아님미까? 단순히 계산해도 4억을 번 검미다.”
“진저 너 우리 초동판매량 몰라?”
“10만 장 넘었지 않았슴미까?”
“그래! 웃기지?”
“……? 뭐가 말임미까?”
말이 안 통하네.
김민주는 거칠게 컴퓨터 본체를 껐다.
“아.”
뒤늦게 깨달은 듯 진저가 목소리를 냈다.
김민주는 기대를 담아 그녀의 입을 바라보았다.
“안 웃김미다.”
“뭐?”
“소녀연맹과 저희는 출발점이 다르지 않슴미까.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거야 당연함미다.”
“……출발선이 다르다니? 무슨 소리야?”
김민주가 진저의 앞에 섰다.
“달리기 알지? 거기에 설 땐 모두 같은 선에 있잖아.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연습했느냐, 얼마나 단련했느냐는 다르지만, 다들 같은 선에 서 있어. 우리도 그런 거야. 누가 앨범 파는데 못 팔게 막는 거 아니잖아?”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환경 자체가 출발선에 포함되는 거 아님미까.”
“……됐어. 그렇게 알고 있어라.”
“김민주.”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에리카가 목소리를 깔았다.
김민주가 퉁명스레 답했다.
“뭐.”
“다른 그룹 까내리지 마.”
“까내려? 아니 그냥 웃기다고.”
“비웃은 거잖아.”
“아니거든?”
에리카가 김민주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볼 만큼, 에리카의 키가 컸다.
“김민주.”
“……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
“…….”
“정 이사님도 항상 그러셨잖아.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망한 사람을 보라고. 그들이 어떻게 망했는지 보라고. 너는 뭔가 깨달은 게 없었어?”
에리카는 김민주와 동갑이다.
동갑이지만.
에리카는 리더고 김민주는 팀원이다.
케이어스의 멤버들 중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고, 모든 방면에서 실력도 뛰어나다.
그 후광이 김민주의 기를 죽게 했다.
에리카의 말과 눈빛은 압력 같았다. 김민주의 자존심은 채에 담겨 손으로 꾹 눌려져, 아주 작은 파편밖에 남지 않게 된 듯했다.
하지만 김민주는 그 작게 남은 자존심도 지키려 했다.
“그래 너 잘났다.”
톡 쏘고, 김민주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짜증스레 발을 굴렀다.
‘21,000장?’
왜 그거밖에 못 팔아?
신아름 웃긴 년.
싸가지도 더럽게 없고 사람 신경 긁을 줄밖에 모르는 년이…….
‘하아, 씨. 이게 아닌데…….’
방금 대화 맥락이 왜 그따위로 간 거지?
김민주의 계획은 이러했다.
‘초동판매량 이거밖에 안 돼! 웃기지 진저?’
‘웃김미다! 그런데 아라 씨랑 리카가 불쌍함미다. 도와주고 싶슴미다.’
‘흐흥, 그러네에. 불쌍하니까 도와줘 볼까?’
대충 이런 맥락으로 가면, 김민주는 신아름과 다시 아이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려고 했다.
왜 굳이 이렇게 귀찮은 일을 감수했느냐면.
‘소녀연맹이 이 정도로 못 팔 줄은 몰랐지…….’
김민주는 우습게도 소녀연맹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었다.
신아름이 아육금에서 보여주었던 투지. 그리고 리카가 소녀연맹에 속해 있다는 것. 또한 소녀연맹의 곡이나, 이번에 나왔던 뮤비가 너무나도 멋졌다.
얘네는 정말로 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해버리게 된다.
그게 너무 자존심 상하고, 밤에 자다가 이불을 박차고 싶을 정도로 짜증 났다.
신아름과 ‘죽고 못 사는 친구’ 촬영을 거부했던 것도, 그녀가 너무 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이거 조회 수가 100만이라고? 1%만 팬이 돼도 얘네가 앨범을 1만 개나 더 파는 거잖아? 이걸 시리즈로 찍으면…….’
케이어스가 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절로 안색이 창백해졌었다.
초동판매량으로 패배한 뒤 신아름을 만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아예 소녀연맹이 나가떨어지는 건 보고 싶지 않고…….
‘죽고 못 사는 친구. 아이튜브 영상. 그거 그냥 찍을 걸 그랬어…….’
자괴감과 후회, 짜증에 몸을 떨고 있자니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에리카였다.
어른답게 대처하지 못하고, 에리카에게 톡 쏜 뒤 그냥 방으로 들어 와버렸다.
‘사과해야…… 하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김민주는 자존심과 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 싸웠다.
방에 불을 끄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으니,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진저겠지 싶었다.
“민주야.”
에리카였다.
이불을 덮어쓴 채 등을 돌리고 누운 김민주의 머리칼을, 에리카가 섬세하게 쓸었다.
“미안해. 내가 말이 너무 심했지? 다시 생각하니까, 내가 잘못했던 거 같아. 너도 악의가 없었잖아.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용서해줄래?”
“…….”
에리카는 김민주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안해.”
세상에 어떤 사람이 혼낸 뒤에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리더로서의, 사람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그러긴 매우 어렵다. 심지어 그게 막 20살이 된 인간이라면 더욱.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리낌 없이 사과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다른 이들의 위에 설 자격이 있을 것이다.
“……아니야. 나도 심했어.”
김민주가 사과를 받아주었지만, 에리카는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팔을 쓸며 온기를 전달했다.
이윽고 에리카가 애정을 듬뿍 담아 말했다.
“아리가토(고마워).”
김민주는 에리카가 먼저 굽혀주는 게 고마웠다. 또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팀원으로 존중받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정작 에리카는 미안함도 고마움도, 그 조각조차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에리카만을 보고, 김민주는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게 됐다.
* * *
컴백 2주 차.
가로 엔터는 충격에 빠졌다.
“어, 법, 버버, 브, 어, 으에?”
진짜 입 안에서 어버버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성필은 물론이요 임직원 전체가,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듯한 놀라움에 휩싸였다.
“1만 장을 더 팔아……?”
소녀연맹 컴백 2주 차.
앨범 판매량, 3만을 넘기다.
“왜?”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니,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 누구를 데려온들, 어째서 1만 장이나 더 팔았는지 가설조차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손혜빈이 소리 질렀다.
“1주 차 때 안 샀던 팬들이 우리 놀라게 해주려고 대량 구매한 거야 뭐야아!”
“왜 나한테 소리 질러어어어!”
성필도 패닉에 빠져서 그 말을 받아쳤다.
“……아!”
“왜 그래. 성필이 너 뭐 떠오른 거 있어?”
“유통사가 실수한 거 아닐까?”
“아, 맞네. 그렇겠네. 어떻게 1만 장이 더 팔리겠어?”
데뷔 때의 초동판매량은 1만이었다.
그리고 활동 종료 시점까지 5천 장이 더 팔렸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자축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1주일 만에 1만 장을 더 판 것이다.
“전화해볼까?”
“하아, 뭔 전화야. 대체 갈피를 못 잡겠네. 아이돌 키우는 게 이렇게 놀람의 연속일 줄…….”
“여보세요?”
성필이 진짜 유통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혜빈이 깜짝 놀랐다.
“야, 너 진짜 전화하면 어떡……!”
“네, 대리님. 저희 이번에 1만 장…… 아, 네. 감사합니다. 그 이거 혹시 판매량이 누락되었다가 한 번에 나온 건가요?”
그게 훨씬 더 설득력 있다.
손혜빈도 그게 더 신빙성 있다 생각하여 조마조마하게 성필을 바라보았다.
“……네, 아니라고요. 알겠습니다.”
역시나, 누락됐을 리가 없었다.
손혜빈이 실망해서 어깨를 늘어뜨릴 때.
“……네?”
성필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해외, 음반, 판매요? 정식으로…… 다른 나라에 유통…… 이라고요?”
성필은 핸드폰을 두 손으로 잡고 담당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동안 고개만 꾸벅이며 ‘예’를 반복하던 성필의 표정이 환희로 물들었다.
담당자의 설명을 전부 듣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애초에 우리가 이유를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유통사를 통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들이 미리 알아내지 못했다면, 가로 엔터는 계속 혼란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데뷔 앨범의 성공. 그리고 미니 앨범에서의 비정상적인 판매량. 이건 전부…….’
애초에 데뷔부터 전제를 잘못 잡았다.
‘전부 설명이 돼. 데뷔 때 뮤비 조회 수가 지속적으로 올라갔던 것도. 음원 순위에 비해 많은 음반 판매량도. 그리고 이번에 말도 안 되는 음반 판매량 변화도.’
성필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가로 엔터의 고객들은, 소녀연맹의 팬들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다 너머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상당수가, 다른 나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