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63화 (163/760)

163화

김민주는 운동을 마치고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케이어스 팬카페에 올라온 글을 적당히 읽어본 뒤, 검색창에 ‘소녀연맹’을 쳤다.

시답잖은 기사들이 떴다.

소녀연맹이 어느 군부대에 위문공연을 갔다. 부대원의 수는 20명 정도다. 오로지 고생하는 군 장병을 위하여 이틀의 딜레이도 감수하고 무사히 공연을…….

‘어떻게 내용이 다 천편일률이야.’

아마 가로 엔터에서 언론에 뿌린 보도 자료일 것이다.

진짜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에 기사로 쓴 게 아닌, 기획사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올라오는 글들이다.

그것을 보며 김민주는 생각했다.

‘다행이다.’

KS 엔터에 남을 수 있어서.

만약 케이어스로의 데뷔가 실패하고 다른 기획사에 갔다면.

자신도 이런 저급한 프로모션이나 받으며 언제 뜰지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근데 뭐 사진 같은 것도 없고.’

위문공연이면 사진이라도 찍혀야 할 텐데.

김민주는 기사를 더 뒤졌다. 그랬더니 연관검색어로 ‘동해안 탈북자’라는 게 떴다.

검색하니, 그가 북한의 군 장교라는 정보들이 주르륵 떴다. 거기다 쪽배를 타고 건너온 그를 붙잡은 부대가…….

‘소녀연맹이 공연했던 부대?’

상황의 특수성 때문인지, 소녀연맹도 조금씩 부각되는 중이었다.

그래봤자 한 줌의 관심일 뿐이겠지만.

“위문공연?”

어느새 김민주의 뒤로 온 진저가 물었다.

“소녀연맹이 군에 공연을 간 검미까?”

“어.”

“그렇슴미까. 저희는 안 감미까?”

“뭐? 우리가 위문공연을 왜 가?”

“군이 부르면 가야 하는 거 아님미까?”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국적의 차이 때문인지 상식의 괴리감이 있었다. 김민주는 한숨을 쉰 뒤 위문공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진저. 위문공연이란 게, 한 번 가봤자 100만 원 정도밖에 못 받아. 그래서 거기 제작진들도 미안해서 인지도 있는 그룹은 안 불러. 고작 100만 원에 유명 그룹을 콜한다는 건 프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메이크업, 스타일링, 매니저의 인건비.

그리고 위문공연이 진행되는 곳까지의 이동 거리는 교통비와 시간을 동시에 잡아먹는다.

소녀연맹만 해도 서울권 행사에 가면 1,000만 원 이상을 받는다. 그러니 위문공연에 가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그룹이라면 이익은커녕 손해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 소녀연맹은 왜 간 검미까?”

“사람들 관심 끌려고 그랬겠지.”

“그렇슴미까. 그럼 저희는 평생 못 하는 검미까?”

“그렇겠지. 우리가 고작 몇백 받자고 공연을 뛸 수는 없잖아.”

오히려, 케이어스는 행사 무대 따위에는 오르지 않는다.

고급화 전략이라고 하던가.

정호환은 콘서트와 팬미팅을 제외하곤, 그 어떤 무대에도 케이어스를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진짜 우상이니까.”

“그렇군요.”

“근데 소유 아직도 씻어?”

“그렇슴미다.”

김민주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는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진소유! 어떻게 사람이 매일 샤워를 1시간씩 해! 자기위로하려면 네 방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해 이 년아!”

대답이 없었다.

김민주가 다시 샤워실 문을 두드렸다.

“뭐 하냐고!”

“으응? 누구야?”

“나!”

“아, 민주구나. 왜?”

“빨리 좀 나오라고!”

“응, 빨리 나갈게. 조금만 더 있다가아.”

“…….”

저런 애랑 6년 넘게 같은 집에 사라고?

화병 나서 죽을 것 같다.

‘또 거울만 수십 분 쳐다보고 있었겠지……. 평생 짝없이 거울만 보다가 죽어라.’

김민주는 화가 나서 거실로 돌아왔다.

언제 왔는지, 에리카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에리카 방금 왔어?”

“응.”

“뭐 봐?”

“방송 들어온 거.”

슬쩍 보니 참 많이도 왔다.

대부분은 케이어스 전원을 요청했으나, 드물게 개인 멤버를 요구한 방송도 있었다.

에리카가 보는 건 자신에게 출연 요청이 온 방송이었다.

“뭐 나가고 싶은 거라도 있어?”

“이거.”

에리카가 하나를 가리켰다.

“나석문 PD? 처음 들어보는데.”

케이어스 멤버들은 데뷔 전에 방송국의 유명한 PD나 CP의 이름들도 간략하게 외웠었다.

방송을 선택하는 역량도 있어야 한다던가 뭐라던가.

“이름값보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프로그램명 ‘음악을 위한 동행’.

싱어송라이터들이 여행을 떠나며 함께 음악을 만든다, 라…….

“에리카 너 작곡 배웠었지. 나가게?”

“…….”

고민을 이어가던 에리카는,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빛냈다.

“응. 나 이거 하고 싶어.”

* * *

“경섭아, 안전 운전 해라.”

“네.”

“피곤하면 꼭 눈 붙이고.”

“걱정 마요. 내가 누군데.”

성필은 민경섭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그와 소녀연맹을 떠나보냈다.

오늘, 그들은 강원도와 경상도의 대학에서 공연이 두 개 잡혀 있었다.

민경섭이 없는 채 아침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놀랍게도 저희한테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는데요.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요.”

프로그램명, 음악을 위한 동행.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여서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곡을 만들어낸다는 컨셉이다.

진짜 시청률이 조금도 안 나올 것 같은 내용이다.

“요즘 힐링이 유행이라더니. 그거 따라서 가는 건가?”

“출연자가 중요하겠네요. 일단 섭외 요청이 들어온 건 설하고요.”

나석문이 새롭게 메인 PD로 들어가는 방송이었다.

옛날에 친구인 유하음의 대타로, 성필은 나석문이 연출했던 ‘여가 시간’ 촬영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스타일리스트인 이유이도 만나고, 아무튼 많은 일이 있었다.

“그때 ‘여가 시간’ 제작진한테 CD 돌리고 인사했었거든요. 그거 때문에 소녀연맹 알게 되신 거 같아요.”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성필은 나석문 PD가 다음 작품을 고심 중이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

그래서 그와 연이 있는 작가들과 만나고 다니면서 팔불출처럼 백설하를 자랑했다.

‘우리 설하가 기타도 치고 이번 타이틀곡에선 작사에도 관여했고 노래도 정말 잘 부르고…….’

당연히 작가들의 머릿속에는 백설하라는 이름 세 글자가 떡 하니 박힐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은 설마 성필이 ‘음악을 위한 동행’이 계획 중이란 것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 백설하 자랑은 영업이라기보다는 정말 자랑으로만 들렸다.

“백설하가 꼽힌 이유는?”

“기타 때문이겠죠.”

백설하가 기타를 치는 영상은 아이튜브를 찾아보면 몇 개 나온다.

게다가 인터넷 매거진 중에선 소녀연맹의 컴백 인터뷰도 있었다.

그곳에 백설하가 ‘롱 포’의 기본 가닥을 잡았단 내용도 실렸다. 나석문 PD의 작가진이 백설하의 능력을 가늠하기엔 충분했으리라.

“악기도 다루고, 기본적으로 곡의 멜로디를 짤 수 있는 능력도 있고, 무엇보다 설하는 가수죠. 요즘 들어 소녀연맹이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납득이 되네. 내보내야 할까?”

‘음악을 위한 동행’의 시놉시스만 보면 인기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리얼 버라이어티긴 해도, 특별한 사건이나 위기가 있는 종류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성필은 이 프로그램이 초기에 성공을 거두었단 것을 알았다.

‘케이어스의 에리카가 출연했었지.’

케이어스 팬덤의 멱살잡이로 나석문 PD의 새로운 프로그램은 성공을 거둔다.

나석문의 기획력과 케이어스 팬덤의 전방위적 영업이 합쳐져 시너지를 낸 것이다.

‘에리카와 함께 촬영한다면, 시청률 5%는 반드시 보장받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거니까.’

내보내는 쪽이 당연히 좋을 것이다.

“처음으로 들어온 방송 출연 요청이에요. 받아들여야죠.”

“……내보내자, 는 거지?”

“예.”

홍규헌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건 손혜빈과 한구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프로그램은 준비 기간이 꽤 있어. 그리고 이 여행이라는 것도 소비 시간이 최대 일주일이고. 다음 앨범 준비까지, 백설하가 부담을 가지진 않을까?”

성필이 제시했던 다음 앨범은 9월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남은 기간은 120일 이하였다.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사실, 다음 앨범 계획을 생각하면 멤버들의 모든 행사 활동을 종료하고 앨범 준비에만 매달려도 모자라다.

“거기에 백설하의 방송까지 더하자는 건 너무 배수진이야. 박 이사도 알지 않아?”

홍규헌의 언짢음은 그곳에서 나왔다.

당연히 성필도 무리란 것을 알 텐데, 어째서 백설하의 방송 출연을 지지하는 건가.

“사실 오늘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가 나왔으니 미리 말씀드릴게요.”

성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 앨범은 정규로 9월에 맞추자고 했고, 애들 컴백 기간 중에도 그 계획에 따라 프리프로덕션이 진행됐습니다. 다들 고생하셨던 거 압니다. 그런데, 미뤘으면 합니다.”

회의실은 조용했다.

소녀연맹의 컴백 기간에도 가로 엔터 임직원들이 놀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컴백 직후, 가로 엔터는 다음 앨범 작업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성필이, 프로듀서가 그 계획을 백지화하자고 말한다.

“확실히.”

한구인이 입을 열었다.

“4개월 단위로 앨범 발매라는 건 퀄리티를 포기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A&R이 체계적으로 구축된 기획사라면 모르겠으나, 가로 엔터는 겨우겨우 회사의 형태를 유지하는 정도였으니까.

“결과적으로 미니 앨범에는 설하 씨와 아름 씨의 솔로곡도 들어가지 못했잖습니까.”

백설하는 ‘롱 포’의 멜로디 메이킹에 참여했으며, 작사에도 영향을 미쳤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신아름의 개인곡까지 담지 못한 건 이번 미니 앨범의 취지에도 맞지 않았다.

심지어 팬미팅에서 신아름이 ‘다음 앨범에 자작곡을 꼭 넣을게요’라고 했음에도 말이다.

그로써 신아름은 팬의 기대를 배신한 게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4개월 이내에 정규 앨범을 발매하겠단 건 정말 무리한 스케줄입니다.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하면서도 이게 될까 싶더군요.”

“동의요.”

손혜빈이 말을 받았다.

“동의하는데. 프로듀서인 성필이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성필이 프로듀서로서 모두를 이끌었다.

컴백 전부터, 그는 다음 앨범 발매는 9월이라며 모두를 채찍질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미루자고? 미룰 수야 있지. 근데…… 아니다.”

프로듀서의 일은 크게 네 가지다.

예산을 관리하고, 사람을 관리하고, 곡의 제작 과정인 프로덕션을 관리하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시간을 관리한다.

성필은 그 시간 계획에 실패했음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만해. 이유 들어봐야지.”

홍규헌이 회의실을 다시 조용히 만든 뒤, 부드러운 투로 성필에게 질문했다.

“왜 미루자는 거야? 백설하 때문에? 아니면 애들 행사 더 돌리려고? 아님 정말 시간이 부족해서 말미를 조금 더 달라는 거야?”

“마지막 거에 가깝겠네요.”

“시간이 부족해서…….”

역시, 시간 관리 실패인가.

“아니요.”

성필이 단호히 답했다.

“단순히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성필이 9월 컴백을 고집했던 이유는 케이어스와의 일전 때문이었다.

미래 걸그룹의 정점인 케이어스를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는가. 적어도 그녀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가능성이 소녀연맹에게는 있는가.

그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

“소녀연맹의 다음 앨범은 정규입니다. 정규 1집이요.”

“그렇지, 원래 그러려고 했잖아.”

“여기서 저희는 15곡 이상을 확보합니다. 원래 생각했던 볼륨보다 조금 더 늘려서요.”

15곡.

정규 앨범에 15곡.

양이 꽤나 방대하다. 그리고, 왜 굳이 그렇게 많은 곡을 확보해야 하지?

“이번 미니 앨범으로 소녀연맹은 훨씬 더 높은 가능성을 증명했어요.”

그 가능성이란 늘어난 판매량 따위가 아니다.

“해외 팬덤이요. 저희는 다음 정규 앨범까지 해외 팬덤을 위한 팬 인프라를 구축하고, 해외 음반을 정식 유통하며, 무엇보다 모든 앨범을 합쳐 곡의 수를 20개 이상 확보합니다.”

그 순간, 손혜빈이 무언가 알아냈는지 ‘아’ 소리를 냈다.

“너……!”

성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규 앨범 이후.”

음악시장의 규모 중 음반과 음원이 차지하는 건 고작 30%다.

그럼 나머지 70%는 어디에 있는가.

“소녀연맹은 콘서트를 준비할 겁니다.”

콘서트 시장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음악산업의 젖과 꿀은 콘서트에 있다.

“케이팝 스타잖습니까. 해외 투어,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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