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64화 (164/760)

164화

해외 투어.

아티스트 본인은 물론이요, 기획사 직원들의 심장조차 뜨겁게 울리는 단어였다.

성필의 말마따나 케이팝 스타라면 투어 정도는 돌아줘야 한다.

“한국의 콘서트 시장은 작으니까요.”

공연을 한다고 해봤자 1년에 한두 번 정도가 최대일까.

콘서트 사업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바다를 건너야만 한다.

“먼저 일본입니다. 정규 앨범 전에 일본에도 음반을 발매하죠. 데뷔와 컴백 앨범을 그대로 유통하는 것을 넘어서서, 일본판으로 발매하는 겁니다.”

일본의 음악 시장 규모는 전 세계 2위다.

한 번은 미국마저 넘기도 했었다.

대중문화의 금자탑에 서 있는 미국의 팝스타들이 괜히 앨범을 발매하면 일본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를 해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일본의 콘서트 시장 규모는 음반 시장 규모를 아득히 상회한다.

일본은 전 세계의 음악인들에게 돈이 흘러나오는 낙원으로 그려지곤 한다.

“만약 일본 진출에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그로부터 얻는 이익은 본국의 것을 단숨에 추월하니까요.”

하지만 현대 일본의 음악 시장은 진입하기가 어렵다.

마치 케이팝 스타들이 유럽과 영미권을 뚫기 힘들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으로, 케이팝 스타들은 다른 이점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유사성.”

소녀연맹 이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스타 아이돌 덕분에, 이미 일본 시장은 케이팝을 저항감 없이 수용할 준비가 끝나 있다.

성필은 그 업적을 이루어낸 프로듀서와 아이돌들에게 무언의 감사를 마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유사성에만 기대는 건 너무 성의가 없죠. 타이틀곡이었던 ‘아니’와 ‘롱 포’를 일본어로 재녹음하고, 데뷔와 컴백 앨범을 합쳐서 스페셜판을 발매합시다. 그럴 가치가 있는 시장이에요.”

“박 이사 말도 일리가 있는데, 그래. 음반을 발매한다고 치자. 프로모션이랑 마케팅은 어떻게 해. 우리가 따로 국외 법인을 설립할 수는 없잖아. 일본에 투자할 돈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매니지먼트사에 위탁하면 되지 않습니까.”

한구인이 성필의 말을 받았다.

“음반과 관련된 모든 일은 위탁하면 됩니다. 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로 엔터는 일본 시장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위탁……. 하지만, 그렇다 해도 프로모션에 쓸 돈은…….”

“굳이 프로모션에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케이팝은 일본 시장에서 캐즘(Chasm)을 돌파한 지 오래니까요.”

캐즘이란 상품이 주류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 수요가 정체되고 후퇴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많은 기업가들이 캐즘 직전 단계를 상품의 성숙기로 판단하여, 과도한 투자를 벌이는 등의 실수를 저질러 몰락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SMS 엔터가 미국 진출을 시도했던 게 있습니다. SMS 엔터가 미국 시장에 관심을 쏟았던 1년 반 동안, KS 엔터는 국내와 아시아 시장에 집중했죠. 결국 두 회사의 차이는 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습니다.”

손혜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전에 가수로서 소속되었던 기획사도, 디자이너로 있던 회사도 SMS 엔터였기에.

당시의 삽질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던 손혜빈으로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시장은 확실하게 캐즘 단계를 돌파했습니다. 일본에서, 케이팝은 주류 상품입니다. 정확하게는 케이팝을 주류 상품으로써 소비하는 집단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구인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니 굳이 프로모션과 마케팅에 과도한 투자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의 음악 방송과 예능, 혹은 아이튜브 콘텐츠 자체가 일본에서도 홍보력을 발휘하니까요. 게다가 박 이사님이 말씀하시는 일본 시장 진출이란 것도 거창한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떻습니까?”

“한 이사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바라는 건 딱 1,000석 규모 콘서트 한두 번 정도가 가능할 관객동원력이에요.”

홍규헌은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성필과 한구인이 말을 주고받는 게 마치 짠 것처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둘은 거의 일심동체처럼 보였다.

“누나도 옛날에 일본 활동했었잖아. 어땠어?”

“어땠냐니. 그냥 뭐, 좋았지.”

“얼마 벌었어?”

“거기까지 묻는 거야?”

“사장님 안심 좀 시켜드리려고 그래.”

“음…….”

손혜빈은 손가락을 몇 개 접었다 펴더니.

“한 해 순익 말고 매출이 500억 넘었지.”

“500억?!”

홍규헌이 경악했다.

“소, 손 PD 엄청 유명한 거야?”

“유명하다고 했잖아요! 성필이가 매일 저 물고 빠는 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물고 빠는 정도는 아닌데…….”

아무튼.

“일본 시장의 규모는 대충 짐작되셨으리라고 믿어요. 소녀연맹은 데뷔한 지 1년도 안 됐으니까, 저도 거창한 걸 바라진 않아요. 딱 작은 홀에서 콘서트 한번 가능할 정도!”

일본에 스페셜판으로 음반을 발매하면, 첫 해외 투어의 목적지는 일본이 될 것이다.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쭉 돕니다.”

소녀연맹의 팬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미국에서도 한 번.”

한인 사회에서도 소녀연맹의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 하니, 마케팅용으로라도 한 번 미국에는 들러주는 게 좋다.

비록 콘서트장이 전부 차지는 않더라도…….

“만약 정규 앨범 이후, 제가 말한 계획이 전부 이뤄진다면요. 사장님이 소녀연맹에 투자하신 돈, 전체 회수할 수 있으실 겁니다.”

“박 이사님.”

“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생각보다 들인 돈이 더 많…….”

“한 이사 조용.”

홍규헌이 한구인의 말을 막자, 성필은 얼떨결에 사과를 입에 담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많나 보네요…….”

“……그래, 어쨌든 박 이사 행복회로 잘 들었어.”

“그냥 행복회로가 아니에요!”

“알아 알아. 실현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 아무튼 다음 앨범까지의 기한을 늘려서라도 15곡 분량으로 정규 앨범을 발매하자는 거잖아.”

“네.”

콘서트의 세트리스트를 짜기 위해선 곡이 20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

“뭐, 기한을 미루는 것 정도야 메인 프로듀서의 요청이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 가로 엔터는 매출을 뽑아낼 수 있단 걸 증명했으니까.”

어쩌면, 다시금 투자를 받아 말라버린 자금줄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만요 사장님. 성필이 말에 동의하시는 거예요?”

“어? 뭐어, 그런 편인 거 같기도 하고…….”

15곡 분량 정규 앨범이 대체 무슨 소리냐.

한 앨범에 그 정도의 곡을 집어넣고도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이냐.

그것을 다 외우고 소화할 멤버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콘서트를 돌겠다며 보장도 안 된 곡을 마구잡이로 넣으면, 아티스트로서의 소녀연맹은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

이런 반박들은 충분히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긴 한데…….”

홍규헌이 듣기에도, 성필의 말은 듣기에 너무 달았다.

콘서트 산업! 일본 진출! 해외 투어!

그야말로 기획사가 돈을 쓸어 담는 청사진이 아닌가!

게다가 감수해야 할 대가란 것도 정규 앨범의 볼륨을 원래 계획보다 조금 늘리는 데 불과하다. 다음 활동까지의 기한이 길어지는 건 신경 쓰이지만…….

“왜. 손 PD는 안 내켜?”

“그럼 저도 제안할 게 있어요. 저희, 좀 회사답게 만들어요.”

“회사답게…… 가 무슨 뜻이야?”

손혜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 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유려한 필체로 글자를 써나갔다.

[A&R(Artist&repertory)

매니지먼트

홍보(마케팅, 프로모션 포함) + 콘텐츠?

재무(경리, 총무)]

“저희도 부서 형태는 좀 갖춰요. 인원도 뽑고요. 그 정도 분량의 정규 앨범을 내겠단 건, 정말 저희들만 갈아 넣어서 될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한 이사님도 나름 이사신데 매일 영수증 정리하고 있는 거 불쌍해요.”

“저는 괜찮습…….”

“A&R에는 저랑 지음이랑 신입 하나 뽑아서 세 명으로 하고요. 매니지먼트는 경섭이 아래에 로드 두 명 더 뽑아서 훈련도 시켜요. 홍보 쪽은 두 명. 그 안에는 콘텐츠 담당자도 필요해요. 저희가 SNS랑 아이튜브를 주요 홍보 창구로 쓰고 있잖아요. 소재 생각하고 영상 편집하고 관리할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한 이사님 대신 영수증 정리할 사람도 제발 뽑아주세요.”

“괜찮…….”

“안 괜찮아요!”

손혜빈이 단호하게 마카를 내려놓았다.

“최소한 사장님이 여기까지는 보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규 앨범까지 기한도 미루기로 했으니까, 조직 만들 시간은 충분하잖아요.”

성필은 홍규헌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저도 저건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장님…….”

성필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이번 미니 앨범이랑 애들 공연 돌아서 생기는 수익을…… 회사에 재투자해주시면…….”

중소기업에서 이익이 발생하면, 그 회사의 사장이 대부분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이익이 회사에 재투자되지 않으니 회사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만 착취되곤 한다.

인터넷 고민 상담으로 흔히 올라오는, 직원들은 개처럼 일하는데 사장은 골프만 치러 다닌다고 하는.

그런 기업들이 이익 재투자가 잘되지 않는 곳들이다.

“……박 이사.”

홍규헌이 무섭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회사에 들어오는 돈을 어떻게 쓸지는 당연하게도 사장이 결정할 사항이다.

이사 직함이 있다 해도 이래라저래라할 게 아니다. 심지어 그 사장이 회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돈의 흐름을 막을 방법이 없다시피 하니까.

무늬뿐인 이사회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회사의 순익을 전부 사장의 연봉으로 책정해도, 직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내가 제지공장 가지고 있는 건 알지?”

“네? 어, 네. 알죠.”

“난 거기서 나오는 순익도 가로 엔터에 넣어.”

“……네?”

“당연히 가로 엔터에서 나오는 이익도 가로 엔터에 넣을 거고. 박 이사는 날 뭘로 보는 거야? 야호, 이번에 대박 났으니까 해외 여행이나 돌아야겠다. 뭐어, 그렇게 생각할까 봐?”

성필은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홍규헌이 피식 웃었다.

“그래. 우리도 좀 커질 때가 됐지. 이번 분기도 순익은 마이너스겠네.”

회의는 순조롭게, 그리고 길게 진행되었다.

결과도 별다른 분쟁 없이 도출되었다.

“다음은 정규 앨범. 발매 시기는 가능하면, 진짜 가능하다면 올해 안이야. 그리고 이번 1, 2개월 동안은 새롭게 인력을 들이고 조직을 정비하는 시기로. 애들한테 일본어 좀 가르치고. 이거면 됐어?”

“예!”

홍규헌은 회의를 정리하려는 듯 앞에 놓인 서류를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사장님.”

“어, 박 이사.”

“저희 밴 사면 안 될까요? 오늘도 애들이 좁은 차에 타고 갔잖아요. 스태프도 없이 옷만 가지고요.”

“아아, 밴. 그것도 사야지.”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조만간 한 이사랑 같이 중고차 파는 데 가서 사.”

아, 중고차구나.

그렇지. 새 밴은 비싸니까…….

“걱정마십시오 박 이사님. 제가 차를 보는 눈 하나는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요? 차에 관심 많으신가 봐요.”

“그렇습니다. 제 취미 중 하나가 차량 견적 맞춰보기입니다.”

왠지 씁쓸하게 느껴지는 취미였다.

* * *

저녁.

홍규헌은 화이트 보드에 적힌 조직도를 보며 계속 고민했다.

그녀는 마카로 계속 각 조직들을 이었다가 분리했다가를 반복했다.

“사장님, 뭐 하십니까?”

“한 이사, 이거.”

[A&R]

[매니지먼트]

[홍보, 콘텐츠]

[재무]

“재무는 한 이사가 감독 관리한다고 치면, 나머지 세 개가 남잖아. 그럼 나머지 세 개를 박 이사가 감독 관리하겠지?”

“예, 그게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성필이 여태껏 그 세 영역을 홀로 관리하다시피 했으니까.

“부서의 상위 감독자가 생긴다는 건 회사 조직면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홍규헌은 그 의미를 깨닫고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지금까지, 홍규헌은 웬만해선 가로 엔터의 전원과 함께 회의를 거쳤다.

소녀연맹 멤버들, 그리고 정지음과 민경섭은 오락가락했으나, 중요한 결정은 모두가 모였다.

“이제 진정으로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신 겁니다.”

회사 직원 전체 회의.

그곳엔 당연히 홍규헌도 참여한다.

그 안에서도 홍규헌의 영향력이 강했으나, 역설적이게도 전체 회의는 홍규헌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설령 사장이더라도, 전체 회의 결정 사항을 번복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규헌이 후일 결정을 바꾸기로 해도, 직원들이 ‘다 같이 결정했잖아요!’라고 말하기라도 한다면 명분이 살지 않는다.

“사장님의 위신도 커지신 겁니다.”

하지만 홍규헌을 정점으로 성필과 한구인이 있고, 그들이 하위 회의를 주관한 뒤 홍규헌에게 보고한다면.

그리고 두 이사와 사장인 홍규헌끼리 임원 회의를 거쳐서 결정 사항을 전달한다면.

그건 곧 사장의 권한이 커지는 것을 의미했다.

아래에서 올라온 논제라도, 홍규헌이 얼굴도 보지 않고 거부하는 게 가능해지니까.

드디어 회사의 위계가 명확해진 것이다.

“그렇지. 그렇긴 하지.”

예로부터, 왕과 신하의 분리는 국가가 얼마나 세련되었나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삼국시대의 정사암 회의나 제가회의도 왕을 배제한 귀족끼리의 회의였다. 귀족끼리 합의하면 왕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기다렸던 것이다.

왕이 ‘허락’할 수 있단 것은 곧 왕권의 강화를 의미했다.

홍규헌도 회사가 커지면 전체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결정권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뭔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한 이사. 나는 손 PD도 이사로 올리고 싶어. 손 PD는 데뷔 전부터, 초창기 컨셉 회의부터 참여했으니까.”

손혜빈은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안목과 능력을 증명해내었다.

“A&R팀장, 혹은 홍보팀장. 이 정도 직위만 주는 건 부적절해.”

만약 그렇게 되면, 후일 회사가 확대 개편되었을 때 손혜빈은 최종 의결 참여 자격이 없을 것이다.

최종 의결 회의에는 사장인 홍규헌과 이사 둘만 참여할 것이니까.

“하지만 손 PD를 이사로 올리게 되면…….”

한구인이 재무팀을 감독 관리한다.

성필은 당연히 경험을 살려 매니지먼트팀을 감독 관리할 것이다.

그럼 홍보팀과 A&R팀이 남는다.

성필과 손혜빈 중, 누가 그 두 가지 팀을 감독하고 관리할 것인가.

“박 이사의 꿈은 프로듀서야. 이미 프로듀서지만. 그러니까 A&R팀을 관리하는 게 맞아. 동시에 손 PD도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증명했어.”

손혜빈이 주로 참여한 파트는 곡의 대주제 결정과 레코딩.

스타일링, 메이크업, 헤어와 자체 제작 의상 등의 비주얼.

그리고 앨범 패키지 디자인과 제작이었다.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두 사람을 동시에 A&R팀 관리자에 임명하면…….”

알력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그럼 손 PD를 홍보팀 관리로 임명하면? 박 이사도 홍보와 콘텐츠 쪽으로 일가견이 있어. 당연히 박 이사도 그쪽으로 의견을 내고 본인의 주장이 있을 테니.”

또 알력 다툼이 생긴다.

두 사람 모두 능력과 자격이 있기에 생겨버린 아이러니다.

“자리는 욕심을 만들어. 손 PD도 본인이 우리 회사에 한 게 있는데, 고작 팀장 자리에 머무는 걸 납득하기 힘들어할 거야. 그리고 이사가 된다 해도, 자꾸만 박 이사랑 다툼이 생기면…….”

“사장님.”

“어?”

“이런 문제는 홀로 고민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닙니다.”

위에 서는 자로서 가져야만 하는 당연한 고민이다.

그리고 신상필벌은 예로부터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을 홀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한 이사가?”

“예. 손 PD님의 의견과 박 이사님의 의견을 모두 들어보고, 어떻게든 조화시키겠습니다.”

다들 한구인을 단순히 한 이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명확한 직책명이 있었다.

최고 운영 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

기업 내 사업을 총괄하며 업무의 원활화를 꾀하는 전문 경영직이다.

그 목적은 최고 경영자가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제가 하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 * *

다음 날, 한구인과 손혜빈이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아하핰! 제가 뭔 이사예요. 걍 팀장 할게요.”

“……예?”

최고 운영 책임자는 멍청한 목소리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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