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89화 (189/760)

189화

“그러니까 박 이사 말은…….”

임원 회의가 시작된 지 1분이 지나고, 홍규헌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애들이 댄스랑 보컬 전부 다 무게를 두는 쪽으로 찬성했고.”

“네.”

“지금 A&R에서 조아라랑 백설하, 리카가 동시에 붙어서 타이틀곡에 조언을…… 자기 의견을 내고 있고?”

“네.”

“심지어 어느 정도 곡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한 합의가 나서, 타이틀곡이 그런 쪽으로 나온다고?”

“네.”

장하양 때 일을 전부 잊은 것일까.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양이는…….”

“알아. 실력 많이 는 거. 노력하잖아. 장하양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게 진짜 신이 없단 증거지.”

“…….”

“한 이사 뭐. 내가 신으로 농담하니까 놀라워?”

“아, 아닙니다.”

홍규헌도 일이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다.

결국은 소녀연맹 사이에서 합의가 나지 않아서, A&R팀이 주도하여 타이틀곡을 만들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백설하랑 조아라가 화합한 게 의외네.’

장하양은 워낙 착한 성격이라, 두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한다면 받아들여 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가로 엔터에서 장하양은 천사의 강림과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음, 일단 알겠어. 타이틀곡 나오면 보컬 라인 붙여서 바로 가져오고.”

“알겠습니다.”

의외의 전개이지만, 홍규헌은 기대됐다.

‘롱 포 때도 조아라가 작곡에 참여하면서 좋은 결과를 냈었지.’

정지음의 말에 따르면, 댄서와 함께 작업하면 안무까지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퍼포먼스 퀄리티가 상승한다는 모양이다.

무려 세 명 사이에 끼어서 작곡하는 정지음과 엘릭은 죽을 맛이겠지만, 잘 버티겠지.

‘정규 타이틀의 보컬과 댄스 퍼포먼스는 난이도가 높을 거야. 그걸 받쳐주는 곡은 어떤 게 나올까.’

백설하와 조아라의 기대치를 동시에 충족하려면, 정말 예상을 뛰어넘는 곡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어디 보자…….”

홍규헌은 A&R팀의 보고서를 눈으로 훑었다.

“신아름 개인곡은 시간이 더 걸리겠고, 장하양은 이전에 만들어 뒀던 싱잉랩을 개인곡으로 넣고……. 이 둘은 타이틀곡에 딱히 의견 없어?”

“아름이는 그런 상황이에요.”

“장하양은 뭔가 있단 거네.”

“그게요…….”

손혜빈이 홍규헌의 질문을 받았다.

“이거 어제 구성이가, 아니, 엘릭이 말했던 건데요. 좀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어요.”

“당황스러울 게 뭐 있어.”

홍규헌은 이미 어떤 의견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타이틀곡의 퍼포먼스가 백설하와 조아라를 기준으로 탄생하리란 것도 충분히 당황스러웠다.

A&R팀도 꽤 큰 도박을 한 것이다.

“엘릭이 낸 의견이면…… 뭐어, 타이틀곡 장르가 좀 당황스러운가? 카와이 퓨처 베이스 같은 걸로 하자는 건 아니지?”

침묵 3초.

“농담이었어.”

반응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하, 네, 그럼 말할게요. 엘릭이 뭐라고 했냐면…….”

3초 후.

“더블 타이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견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릭이 타이틀곡을 하나 더 넣자고 했단 거 맞지……?”

“네. 하양이랑 얘기하다가 주제가 그쪽으로 넘어갔대요. A&R팀에서도 논의돼서, 정말 의외로 만장일치로 찬성했어요.”

“아니, 뭔 얘기를 하다가. 거기다 만장일치? 어…… 잠깐만, 근데 엘릭도 아는 거지?”

“사장님이 걱정하시는 거면…… 네. 걔도 알고 있죠.”

홍규헌은 하나씩 손가락을 접었다.

“일본 활동 때 쓸 ‘팅글’.”

뮤비 하나.

“정규 앨범 1집 타이틀.”

뮤비 둘.

“여기까지 두 개. 거기에다가 타이틀곡을 하나 더 만들자는, 그러니까 더블 타이틀을…….”

뮤비 셋.

뮤비가 셋이다…….

넋 나간 홍규헌을 보고, 성필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의중을 살피려 했다.

“돈이 좀 많이 들겠죠?”

‘아니’의 뮤비 촬영에 쏟았던 돈은 2억이다.

단순히 뮤비를 세 개 찍겠다고 한다면, 6억이 들 수도 있는 노릇이다.

갑자기 회사의 돈이 6억이 나간다고 하면 그야 놀라겠지.

당장 한구인도 공포에 떨며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있지 않은가.

“……돈이 문제가 아니야.”

오랜 기다림 끝에, 홍규헌이 말했다.

그 대답에 한구인이 공포를 넘어 불가해한 현상을 마주한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사장님, 돈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홍규헌이 재빨리 말을 수정했다.

“돈도 문제긴 하지. 그런데 돈을 제외하고서 두 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첫째로 애들이 걱정이야.”

데뷔 때도 멤버들에게 질리도록 말했던 게 있다.

소녀연맹의 곡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소녀연맹이 가장 잘 추고, 가장 잘 불러야 하는 거라고.

대충 구색만 맞추겠단 생각이면 안 된다.

“그 정도 수준으로 곡 두 개를 소화할 수 있어? 퍼포먼스 두 개를 숙달할 수 있겠냔 거야.”

“괜찮아요.”

답한 건 손혜빈이었다.

홍규헌이 표정에 불신을 담았다.

“손 이사 ‘아니’ 때도 장하양 보고 괜찮다고 했잖아. 그러다가 안무까지 바꿨…….”

“그땐 저도 하양이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구요?! 그리고 하양이 이제는 잘 춰요!”

손혜빈은 뭐라뭐라 구시렁거리다가, 다시금 진지한 태도로 돌아왔다.

“1년 동안, 애들은 많이 발전했어요.”

“애들을 믿는단 이야기야?”

“그렇기도 하고, 결국은 넘어야 할 산이에요.”

“……그렇지.”

내년 가로 엔터의 가장 큰 목표는 콘서트다.

소녀연맹은 약 20개에 달하는 곡의 퍼포먼스를 숙달해야만 한다.

“더블 타이틀이 콘서트를 위한 실험대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결국 넘어야 할 산이다.

“일본 활동을 순조롭게 끝낸다면, 콘서트까지는 1년도 안 남아요. 저희는 정규 앨범까지 6개월보다 덜 남았죠? 그 기간 안에 퍼포먼스 두 개도 숙달할 수 없다면, 콘서트는 그만두는 편이 나아요.”

그리고 손혜빈은 믿고 있다.

소녀연맹은 그 정도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

“알겠어.”

홍규헌은 일단 납득했다.

손혜빈이 말한 대로, 정규 앨범 발매까지 퍼포먼스 두 개도 숙달하지 못하면 콘서트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사장님, 그럼 두 번째는?”

“사실 이게 가장 큰 걱정이지.”

홍규헌도 멤버들의 향상된 기량은 믿고 있다. 하지만 이건 멤버들만으로 어떻게 될 일이 아니다.

“음방에서 무대 두 타임 얻어낼 수 있어?”

대형 기획사의 신규 아이돌이나 웬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이들이 아니고서야, 한 방송에서 무대를 두 타임이나 받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더블 타이틀이란 이름이 있어도, 음방에 나오지 않으면 홍보력이 거의 없어.”

신인 아이돌이 음방 출연에 목숨을 거는 것과 같은 논리다.

아무리 뮤비를 잘 만들어도, 사람들은 음방에 나오고서야 ‘이런 애들이 데뷔했구나’란 사실을 알게 된다.

타이틀곡도 마찬가지다.

“음방에 나와야 더블 타이틀에도 의미가 생기는 거야.”

하지만, 성필이라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홍규헌은 기대와 불안을 담아 질문했다.

“어떨까, 박 이사.”

“사장님, 제가 누굽니까.”

성필의 답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홍규헌이 혀를 내두르고 한구인이 동경의 시선을 던지는 순간.

“제 무릎이 걸레가 되도록 방송국 바닥을 쓸고 다니겠습니다! PD들한테 무릎 꿇고 머리도 박을게요!”

“……머리도 박아야 해?”

“그 정도 아니면 무대 안 내줄 거예요.”

“……그렇구나.”

머리를 박는 것보다, 머리 박으면 무대를 내준다는 게 더 신기하다.

“뭐어, 농담은 이쯤 하자. 더블 타이틀은 더 신경 쓰…….”

“농담 아닌데요.”

“……그래. 암튼, 더블 타이틀은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야.”

소녀연맹이 타이틀 두 개를 소화할 능력이 있는가? 그건 임직원들이 보증한다.

편의상 장하양의 아이디어에 따른 곡을 ‘타이틀곡2’라고 부르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곡이 잘 뽑히고 나서야 타이틀이란 호칭을 붙일 수 있다.

“타이틀곡이란 이름답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좋은 곡이어야 해. 타이틀곡이 두 개라면, 정지음과 엘릭이 들어야 하는 품도 더 늘어날…….”

“농담 아니라니까요. 진짜 방송국 바닥 쓸고 다닐게요.”

“그 얘기 그만하…….”

“사장님이 결단만 내려주시면, 제 자존심은 전부 팽개치고…….”

“알겠다니까! 일단 곡부터 완성시키라고!”

“헤헤.”

홍규헌은 인생 최초로 부하 직원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방송국 바닥을 무릎으로 청소하러 다니는 부하라니…….

* * *

“우리 진짜 더블 타이틀로 가요?”

소식을 들은 신아름은 즉각 성필을 찾아왔다.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도 쉬는 시간이니 성필을 찾아갈 생각이긴 했다.

“그건 더 논의해보게. 곡이 나온 뒤에 결정해야 할 거 같아.”

“아, 역시 그쵸? 무대 두 개 얻어내는 건 보통 그룹이 못 하잖아요.”

그리고 소녀연맹은 그 ‘보통’ 그룹이었다.

해체할 때까지, 무대를 두 타임씩 받아 본 그룹은 손에 꼽는다.

애초에 더블 타이틀로 미디어 활동하는 그룹이 적기 때문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좌 플러스 패딩좌 신아름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름이가 있으면 음방 전체를 소녀연맹 콘서트로도 만들 수 있지.”

“헤헤, 아부 티가 너무 나서 별로 기분이 안 좋네요.”

“나 보고 어쩌라고…….”

비위를 맞춰줘도 뭐라고 하네…….

딸 하나 키우기 너무 어렵다.

“진짜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네 말도 맞지. 근데 그거 때문에 논의해보자는 건 아니야. 정말 더블 타이틀로 하고 싶으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거든.”

“어떻게요?”

“후속…….”

“팀장님이 무릎 꿇고 방송국 바닥 청소하기?”

누구한테 들은 거지?

설마 홍규헌이 신아름에게 이야기한 건가?

아니면 신아름이 혼자서 생각해낸 방법인가?!

무섭다. 성필을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않다니.

“근데 그건 제가 허락 안 해요. 다른 사람 앞에서 무릎 꿇지 마요.”

“네가 말 안 해도 무릎은 안 꿇거든. 그런 거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일이야.”

“리카는 팀장님 앞에서 꿇었다면서요.”

“……그러게.”

리카를 영입할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너무 적극적이고, 너무 달라붙어 오고, 너무 소리를 크게 질렀었다.

성필은 리카가 무서워져서 카페 밖으로 도망갔었다.

그랬더니 리카가 성필을 추월해서 무릎을 꿇고 제발 가로 엔터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떠올리니 또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름아 나 현기증 올 거 같아…….”

성필의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일 TOP5 안에 드는 경험이었다.

“잠시 누워요. 제 무릎에 머리 댈래요?”

“아니.”

“죽여버릴까…….”

“너 그딴 말은 누구한테 배웠어?!”

“팀장님이요. 섹세스 엔터에서 가끔 윤상열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었잖아요.”

부모와 자식은 닮는다, 증명 완료!

자식 앞에서는 물도 조심조심 마셔야 한다던데, 사실이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말 쓰지 말아줘…….”

“생각해보고요.”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정 타이틀을 두 개 쓰고 싶으면 후속곡 활동을 해도 돼.”

“그게 뭔데요?”

“일반적인 앨범 활동 기간이 6주잖아. 그걸 원하는 비율로 나눠서…….”

“아아, 곡을 두 개로 쓰는 거구나. 팀장님 똑똑하시네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해낸 방법이야. 그리고 그게 아니면, 아예 12주를 활동할 수도 있어.”

“그게 돼요?”

“12주는 아무래도 힘들긴 하겠지만, 그보다 짧은 기간은 될 거야. 앨범을 연달아 낸 걸로 치는 거지. 이것도 실현하긴 어려워도, 무대를 두 타임 쓰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성이 있어.”

그 외에도 비중이 덜한 곡을 1분 30초로 줄여서 내보내는 방법도 있다.

무대를 두 타임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사전녹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사전녹화를 받는 것도 소녀연맹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인데, 그걸 두 개나 받는다?

“힘들어.”

“글쿠나.”

“그래도 너희들이 원하면 방송국 바닥 내 무릎으로 청소해서라도 받아줄게.”

“하지 말라니까요 그거! 진짜 하면 가만 안 둬요 제가. 팀장님도 하양 언니처럼 농담 통제 당해볼래요?”

“뭔데 그건.”

“아무튼 절대 그런 짓은 하지 마요.”

성필은 재롱부리는 딸을 보듯 신아름의 투정을 감상했다.

‘그렇지, 힘들지.’

신아름이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정말 PD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한이 있다 해도 노력하겠지만.

더블 타이틀을 고민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곡이 기대보다 못할 경우.’

타이틀곡2에 대한 의견을 낸 장하양이 한껏 기대했다가, 더블 타이틀로 채택되지 않았단 소식을 들으면 실망할 게 확실하다.

‘논의해보겠다’는 말은 이른바 안전장치인 것이다. 장하양의 기대가 부서졌을 때, 그녀가 덜 상처받도록 하는 안전장치.

창작자는 거절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으니 말이다.

“근데 하양 언니도 특이하네요.”

“그치? 생각이 너무 예쁘지 않아? 너희들이랑 팬과의 추억을 기념하는 의미로 타이틀을…….”

“하양 언니가 그렇게 말했어요?”

“……뭐가? 너희한테는 다르게 말했어?”

“아뇨, 뭐라고 말한 건 아닌데. 우리 정규 타이틀로 나올 게 강렬한 느낌이잖아요.”

“그럴 거 같긴 하지.”

“남자들한테는 인기 없을 거 같아서 따로 타이틀 내자는 뜻 아니었어요?”

“……어?”

“그래서 컨셉도 그런 거고. 아니에요? 일본 활동곡 ‘팅글’로 한 것처럼요. 팬덤 성비 생각한 아이디어 아닌가.”

……장하양이 그런 생각까지 했다고?

* * *

“아하하.”

멋쩍게 웃는 것을 보니, 신아름의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성필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양이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팬의 성비까지 생각이 닿았다면, 소녀연맹의 앨범 판매량에 대해 고민했단 뜻이다.

‘나도 그건 고려하고 있어.’

소녀연맹의 목적은 최고의 아이돌이다.

보이그룹이라면 몰라도, 걸그룹이 정점에 앉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의 지지가 필요하다.

강한 팬덤 응집력을 가진 보이그룹과 비슷한 선상에라도 오르기 위해선, 말 그대로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프로듀서의 고민이어야 한다.

‘하양이는, 멤버들은, 곡으로 표현하고픈 거에만 집중해주길 바랐는데…….’

성필 자신이 멤버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장하양은 밤마다 소녀연맹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 통계 자료를 보고 다닌 게 아닐까?

장하양을…… 걱정시킨 건가?

“하양아…….”

“오해하지 마세요.”

장하양은 성필이 뭐라 말할지 안다는 듯, 그의 이야기를 끊었다.

“박 이사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제가 걱정이 많지는 않아요. 저는 지금에도 충분히 만족해요.”

“만족해?!”

“아하하, 더 잘 되면 좋겠지만요. 저, 초동판매량 들을 때마다 기절해요.”

“기절한다고?!”

이제 영양결핍은 해결된 거 아니었나?

“아뇨,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요. 기뻐서요.”

지금 소녀연맹의 성적도, 장하양의 입장에서는 꿈과 같은 것이다.

장하양이 아이돌 외에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한 번에 몇억의 매출을 올리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이건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성과다. 장하양은 항상 그리 생각해왔다.

“저는 항상 이사님한테 감사했어요.”

“그런데 왜…… 그런 걱정을 한 거야……?”

아이돌로서의 목표가 높아진 건 좋다만, 삭막한 통계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 목표는 최고의 아이돌이니까요.”

장하양이 성필의 어깨 위를 손으로 털었다.

“실밥이요.”

“아, 고마워.”

“제 목표는 최고의 아이돌이에요. 박 이사님이랑 같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최고의 아이돌에 대한 고민을 해요.”

그 결과가 더블 타이틀 제안이었다.

강렬한 느낌의 타이틀곡1과 함께, 부드러운 느낌의 타이틀곡2를 또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고 리카의 꿈도 제 꿈으로 삼고 싶어요.”

“어?”

“리카는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해요. 저는 그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

“설하 언니는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세요. 그러려면 많은 사람이 언니의 노래를 들어야 해요. 아라는 춤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요. 춤이란 게 원래 보이는 거니까, 많은 사람이 인정해주기를 바라죠.”

신아름은…….

“네, 아름이 꿈도 최고의 아이돌이고요.”

왠지 모르지만, 장하양은 뜸을 들였다.

“아름이는…… 그렇죠, 그게 아름이 꿈이죠. 그래서요, 저는 이사님 꿈도 이뤄드리고 싶고 멤버들의 꿈도 이뤄주고 싶어요.”

성필은 장하양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했다. 그녀의 목소리 한 음절마다 눈물을 한 방울씩 흘리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장하양 앞에서 얼마든지 엎드려서 엉엉 울 수도 있었다.

그만큼 기쁘다. 기쁘긴 하지만.

“그럼 하양이 네 꿈은 어떻게 되는 거야?”

장하양이 살포시 웃었다.

“말했잖아요. 제 꿈은…….”

성필의 꿈과 같다.

물론 그건 온전히 자신만의 꿈이 아니지만, 장하양은 반해버렸다.

“이사님…….”

의 꿈에.

“그러니까 그것도 제 꿈으로 쳐주세요.”

성필은 목구멍으로부터 입 밖으로 나오려는 물기와 열기를 필사적으로 삼켜야만 했다.

정신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진짜로 장하양 앞에서 대성통곡을 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장하양이 아이 달래듯 안아줄지도 모른다. 어른으로서, 그런 모습은 피하고 싶다. 장하양에게도 실례일 테니까.

성필은 간신히 진정했다.

“응, 그럴게. 고마워, 하양아.”

요즘 고맙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성필은 그리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정말, 소녀연맹 멤버들과 만난 건 성필의 인생에서 제일가는 축복이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하하, 저는 리카가 아니에요. 먹을 걸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아요. 이사님이 받은 감동의 대가로는 너무 성의 없으신 거 아니에요?”

“그런가……. 어, 뭐야. 일부러 나 감동받으라고 한 말이야?”

“으음, 그럼 이 앞에 편의점에서 고로케라도 하나 사주실래요?”

장하양은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품으며 일부러 성필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놀리는 거구나.

이제는 그녀가 장난도 치니, 성필은 장하양과 많이 친해졌단 느낌을 받았다.

“그래, 가자.”

둘은 회사 밖으로 나갔다.

가면서, 둘은 장하양이 연습생일 때처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돌로 활동하고, 앨범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벌충이라도 하듯이.

“하양아, 블루레이는 잘 보고 있어?”

“네. 근데 플레이스테이션 고장 났어요.”

“뭐?!”

“그래서 이제 못 봐요.”

“어쩌다가…….”

“다시 박 이사님 집에 가도 돼요?”

“내가 플레이어 하나 사줄…….”

“아하하, 농담이에요.”

조아라가 장하양에게 농담 통제를 건 이유를 알겠다.

정말 영양가가 없는 농담이다…….

“하양아.”

“네.”

“너 옛날에 배우에 미련 조금 남았다고 했었잖아. 연습생 됐으니 털어낼 거라고.”

“아하하, 제가 그랬나요.”

“이제는 어때?”

“미련이요?”

“응.”

“조금도 없어요.”

장하양의 마음속에 있는 목표는 ‘최고의 아이돌’뿐이다.

“앞으로도 영원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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