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49화 (249/760)

249화

조진만의 선언에 아틀라스사(社)의 직원들이 아연실색했다.

“지금…… 출국하신다고요?”

“어.”

조진만은 캐리어에 온갖 서류를 집어넣었다. 노트북과 충전기가 들어갔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그는 캐리어를 아주 굳게 닫았다.

“아까 들었다시피 소녀연맹의 해외 투어 장소로 지정된 나라를 쭉 돌고 온다. 거기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거야. 미팅은 매일 아침 9시 30분. 초기 기획은 내일부터 시작이다. 민 피디.”

“네, 네.”

“각국마다 작성할 테크니컬 라이더 양식 검토해 둬. 로컬에서 장비 다 들여야 하니까 국제 인증 제대로 확인하고.”

“아, 네, 알겠습니다.”

“도면은 내가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정확한 걸로 구해서 업데이트할 건데. 일단은 내가 지정해준 곳에 연락해서 사양을 받아. 구 팀장.”

“예…….”

“나랑 반대로 돌자.”

“예?”

“내가 오른쪽으로 간다. 일본 통해서 아메리카로. 구 팀장은 동남아에서 호주 찍고 유럽으로 가.”

“저, 저도, 저도 해외로, 지금 바로……?”

“눈으로 확인해야 해. 양 작가.”

“넵!”

“소녀연맹 아이튜브에 올라온 콘텐츠 작가 인력 데리고 전부 다 체크해.”

“전부 다?”

“연습생 때부터 올린 거 있어. 거기서 대본에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거 전부 다 채집해서 정리해놔.”

“……전부 다?”

“전부 다. 외에 필요한 건 민 피디한테 전달받아. 다시 말한다. 미팅은 매일 9시 30분 화상으로 진행해. 각 파트 팀장들은…….”

“자, 잠시만요 사장님.”

아틀라스사의 창업 멤버 중 하나인 구 팀장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조진만에게 다가왔다.

“계약 파기 전하러 간다고 했잖아요. 사장, 아니, 형. 소녀연맹 일 받은 거야?”

“아니.”

“아, 아니면?”

“일단 기획부터.”

“일 안 받았다면서? 그런데 기획을 왜…….”

“일단 기획서로 승부를 본다.”

“……승부? 가로 엔터에서 기획서부터 가져오래? 아니 뭐 이런…….”

“아니야. 승부를 펼치는 대상은 ‘시지프’다.”

십수 명의 직원들이 죄다 침묵을 지켰다.

“시지프와 기획을 비교할 거야. 난 완성도를 위해서 직접 무대를 돌아볼 거고. 국내는 맡겨도 되겠지?”

조진만과 가장 오랜 시간 일해온 구 팀장은 모든 직원들의 생각을 대변하여 행동했다.

바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단 눈빛을 조진만에게 박아 넣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최대한의 항의를 마친 구 팀장은 한숨을 거하게 토해냈다.

“알았어, 형. ……아니지, 사장님. 저도 바로 나갈게요.”

“그래, 고맙다.”

일본 쪽 일을 받기로 했던 것도 최종적으로는 조진만의 판단이었다. 아틀라스의 직원들은 그 판단을 존중했다.

그러니 가로 엔터로 거절하러 갔다가 다시금 의지를 불태우는 것도 존중해야 마땅하다.

몇 시간 만에 바뀐 사태에 충격받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직원들. 꾸물꾸물 사장의 지시를 이행하려는 그들에게, 조진만이 말했다.

“나는 우리 회사가 얻을 금전적 이익이나, 대규모 공연 기획을 맡음으로써 얻는 경험 대신 다른 걸 택했다.”

회사에 가장 필요하고 사장이 항상 신경 써야 하는 건 비전이다.

사장이 어떤 강렬하고 멋진 비전이 있어도 마음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직원들이 사장의 마음이나 생각까지 꿰뚫어 볼 수는 없으니까.

그 비전은 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회사의 성격이 되어 숨 쉰다. 법인(法人)은 그때부터 진정으로 인간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내가 택한 건 미래를 향한 투자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의 눈동자가 조진만에게로 쏟아졌다. 처음 사장의 위치에 앉았을 때는 고작 두세 명의 주목을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꽤 버틸 만했다.

조진만은 몇 년간 얻은 사장으로서의 기세를 담아 선언했다.

“우리가 맡을 건.”

소녀연맹, 미래의 톱스타다.

“내가,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다. 우리는…….”

먼 미래겠지만.

소녀연맹의 콘서트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투어 오브 더 이어(Tour of the year)’도 받을 거고.

유서 깊은 영국 주간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로부터 ‘뮤직 모멘트 오브 더 이어(Music moment of the year)’에도 선정될 것이다.

“소녀연맹은 우리를 성으로 데려다줄 호박 마차다. 일단 거기 타려면 요정의 주의를 끌어야지. 열심히 해보자.”

아틀라스로서 일치된 답이 십수 명의 입을 빌려 공간을 넘치도록 채웠다.

* * *

뉴욕, 공연과 예술의 도시.

매년 패션위크마다 수백 개의 패션쇼가 열리며 그로 인한 관광 수입은 10조 원에 근접한다.

또한 도시의 예술업 종사자가 10%에 달하는, 대중문화의 정점이라는 미국에 어울리는 도시. 명실상부 세계의 문화 수도(首都) 중 하나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농담으로, 뉴욕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아무 빌딩이나 골라서 들어가 보라고 한다. 어디든지 연습실이 있으니까.

또한 공연을 보고 싶다면 아무 모퉁이나 돌아보라고 한다. 지하, 지상, 빌딩,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 공연장이 있으니까.

그곳, 뉴욕에 조진만이 있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클라이언트에겐 당연한 서비스죠.”

조진만은 중년의 안내인을 따라 뉴욕 더 타운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입구의 장식이며 복도의 구조 하나하나 눈에 박아넣을 기세였다.

“뭘 그렇게 쓰십니까?”

“아…….”

조진만의 손에 들린 태블릿에는, 한국인이 보았다면 정신 사납다고 말할 게 틀림없는 필기가 쉴 새 없이 적히는 중이었다.

“영감이요.”

“영감! 예술가시군요.”

“연출가도 예술가가 맞지요.”

“하하, 아, 여깁니다.”

안내인이 무대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조진만은 안이 어두울 거라 생각하고 지레짐작 손전등을 안쪽으로 향했건만.

“음?”

무대 위에 촛불이 놓여 있다. 그 은은한 빛이 주변을 흐릿하게나마 인식하도록 도왔다.

“고스트 라이트…….”

“오, 알고 계시는군요. 외국 분들은 잘 모르던데 말입니다.”

안내인은 조진만은 무대 안으로 안내했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1,500석 규모의 관객석이었다.

영국의 레드코트처럼 도열한 의자의 붉은 시트가 딱 보기에도 앉기에 편히 느껴졌다.

“고스트 라이트, 말 그대로 유령을 위한 빛이죠.”

“전통이고요.”

조진만은 가장 앞 열의 의자에 앉았다. 보기와는 달리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3시간에 이를 공연을 감상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여기서 소녀연맹을 볼 수 있는 건가.’

무대를 올려다보니 고스트 라이트의 빛이 더욱 선명하게 망막을 파고들었다. 그 빛에 의지하여 조진만은 상상력을 발휘했다.

8인 정도의 밴드, 재즈 세션이 저마다 자리를 잡으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무대였다.

물론 조진만의 감상으로 작단 것이다.

‘음방 무대보다는 공간감이 낮군. 그게 관객과의 거리를 줄여줄 테지만.’

조진만은 아틀라스에서 보내준 현지 장비 대여 업체의 응답지를 보았다. 만약 이곳에서 공연할 시, 어느 수준의 설비를 구현할 수 있는지 대강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기대에 못 미쳐.’

하긴, 1,500석 규모에 이 이상을 기대하는 건 미안할 것이다.

‘내 상상을 구현하려면…….’

그래. 1만 석이 약간 안 되는 일본의 무도관(부도칸)이 적당할 것이다.

무도관에서 콘서트를 할 수만 있다면 조진만이 구현하고픈 모든 연출이 가능할 터였다.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조진만은 자신이 꿈꿔온 망상을 전부 펼쳐 보이겠지만…….

‘아직은 여긴가.’

뉴욕의 1,500석 규모 극장. 소녀연맹의 콘서트는 여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 이곳에서 공연한 아티스트는 누구입니까?”

“록밴드입니다.”

“반응은 어땠습니까?”

“여느 록밴드의 팬들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광란의 도가니였단 뜻이다.

조진만은 시트에 몸을 깊게 묻고 추억에 빠졌다. 옆에 안내인이 있단 것을 잊고 자신만의 시간에 정신을 푹 담근 것이다.

그는 10년도 더 전으로 향해 있었다.

최초로 한국에서 록밴드의 공연장에 갔을 때다. 그날은 비가 왔다. 밖에서 줄을 서느라 젖은 옷,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대망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멋졌지.’

비를 맞았단 것마저 잊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공연에 존재하는 마력, 아티스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를 직접적으로 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공간에서 록밴드는 신이었다. 팬들은 신을 향해 손을 뻗고 고함을 지르며 그들의 복음과 시선을 갈구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아이돌의 공연을 본 뒤로 최고의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밴드와 팬의 관계는 수직이다. 엄격한 위계질서 안에서 팬들은 신의 옥음을 갈구할 뿐이다. 하지만, 조진만이 목격한 아이돌은 달랐다.

‘아이돌에겐 이야기와 사랑이 있어. 굳이 말하자면 관계가 수평적이라 해야겠지.’

조진만이 처음 본 아이돌의 공연에서, 그는 그 아이돌의 팬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돌을 향해 쏟아지는 막대한 사랑의 에너지는 가감 없이 느끼는 건 가능했다.

아이돌이 받는 사랑은 록밴드가 받는 신앙과는 종류를 달리했다. 아이돌과 팬은 유대감을 만들어 서로 소통하는 게 가능했다.

금속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밴드 공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치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와 같은 따스함이 아이돌에겐 존재한다.

그리고 조진만은 아이돌 쪽이 취향이다.

‘다시 그걸 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손으로 그때 느꼈던 수평적인 사랑의 교환을 창조할 수만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거다.’

조진만은 예술가다.

그 예술은 아티스트와 팬이 있음으로써 완성된다. 그리고 조진만의 역할은 두 주체를 하나로 묶는 것이다.

“이제 그만 보시겠습니까?”

“예, 무대 안쪽을 더 보겠습니다.”

조진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올랐다. 그리고 아련하게 켜져 있는 촛불, 고스트 라이트를 응시했다.

‘이 어두운 무대에서 유일하게 빛을 뿜는 이 촛불처럼.’

소녀연맹을 무대의 빛으로 만들 것이다.

* * *

아틀라스사가 기획안을 보내온 건 일주일이 조금 넘어서였다. 그것을 가로 엔터의 임원진이 검토했다.

회의실에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30분을 지배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이들이 종이를 내려두었다.

홍규헌은 임원들의 반응을 살피듯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와, 이건…….”

대화의 물꼬를 튼 건 손혜빈이었다.

“글로만 읽어도 감동적인데요? 저 진짜 마지막 연출 읽고 울 뻔했어요.”

“맞습니다…….”

“한 이사님 우세요?!”

한구인은 진짜 울고 있었다.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손수건을 찾았다.

“스포일러 당한 기분입니다. 이 연출을 모르고 공연을 봤어야 하는데…….”

“이사가 콘서트 기획도 모르면 어쩌자는 거예요.”

손혜빈은 손수건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한구인의 손 대신, 티슈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들 비슷한가 보네. 성필인 어떻게 생각 너 울어?!”

“끄윽…….”

성필도 한구인과 마찬가지로 우는 중이었다. 그의 눈물을 닦는 건 홍규헌의 몫이었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감정적이 된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새삼 박 이사 나이가 체감돼.”

“저 아직 젊거든요.”

성필은 코를 훌쩍이면서 다시 기획안을 빠르게 되짚었다.

공연 기획이라기에 사무적인 글의 모음일 줄 알았는데, 마치 연극 대본과도 같은 유기성과 서사를 갖추고 있었다.

“이건…… 애들도 울 거예요.”

“울지. 울 수밖에 없지.”

벌써 무대 위에서 오열하는 소녀연맹 멤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뭐어, 형식적인 거 같지만. 다들 어때? ‘시지프’ 거랑 비교해서.”

말해 무얼 하겠는가.

* * *

홍연헌의 비서는 노크한 뒤 사장 집무실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흠칫하면서 집무실 안의 상황을 살폈다.

홍연헌이 창밖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사장님?”

“음? 어, 진호. 무슨 일이야?”

“미팅 시간…….”

“알겠어. 갈게.”

비서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재빨리 집무실에서 나갔다. 향에 민감한 홍연헌은 집무실 안에 담배 냄새가 밸까 걱정하여, 절대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즉, 현재 비서가 목격한 광경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란 것이다. 일종의 환각 현상과 같으니,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최선이다.

“……하.”

홍연헌은 짧은 웃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내팽개쳐 두었던 공연 기획안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어이가 없다.

“그래, 네가 다 해먹어라 해먹어.”

공연 기획이란 게 기획사에서 홀로 쓴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아이돌의 소속사가 바라는 요구를 구현시켜야 하니, 양측에서 끊임없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크게는 일정이나 전체적인 컨셉부터, 디테일하게는 설비나 무대 연출까지.

절대 공연 기획사 혼자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드백이 없는 기획안이란 전체적인 내용만 있어야 한다.

그런데.

“뭔, 조 사장 이 인간은 얼마나 소녀연맹 빠돌이인 거야.”

조진만은 모든 연출과 상황, 대본을 소녀연맹 멤버들과 대화라도 나눠본 것처럼 써두었다. 사소한 것부터가 소녀연맹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런 거, 시작부터 이길 수 있는 승부가 아니었다.

“대강 써서 내는 게 당연한 거잖아. 근데 뭔…….”

조진만이 말도 안 되는 초인이거나, 회사 인간들을 일주일 넘게 좀비처럼 굴린 게 틀림없다.

따낼 수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일에 직원들을 10일 가까이 굴린다? 폭동이나 안 일어나면 다행이다.

‘그나마 공연 기획 성수기가 지나서 다행인가. ……잠깐, 내가 왜 조 사장을 걱정하고 앉았어?’

홍연헌은 인재에게는 관대해지곤 한다. 그게 비록 경쟁사라도 말이다.

그녀는 경쟁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 세상은 재능 있는 소수가 있어야 발전하고 행복해진다고 여기니, 조진만 같은 인간이 존재하는 게 기분 나쁠 리 없다.

‘인재 수준이 아니야. 괴물이지. 일에 미친 인간. 평생 이 업계에 붙어 있을 지박령.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소녀연맹을 사랑하는 팬이 틀림없다.

“이거…… 테크니컬 라이더는 어떻게 쓴 거야.”

대충 짐작해서 제출한 건가? 아니면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나? 그것도 아니면…… 직접 공연장으로 가서 현지 업체와 미팅이라도 했나?

‘……그럴 리 없지.’

10일 만에 세계일주를 했다고? 몸이 축나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세계일주만 문제가 아니다.

고작 10일인데 언제 현지 업체를 다 알아보고 공연장을 돌아보며 기획까지 끝마치겠는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홍연헌은 담배를 끄고 새로운 것을 입에 물었다. 그녀는 불을 붙인 뒤 창을 통해 맑은 하늘을 응시했다.

‘……왠지, 규헌이 시집 보내는 기분이네. 걔가 결혼하면 이런 느낌일까.’

동생을 빼앗겼단 불안감, 그리고 좋은 사람에게 맡겼다는 안도감이 교차한다.

홍연헌은 담배를 다 태우지도 않고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받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긴장과 위기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조 사장님, 제가 졌어요. 파이팅. 나중에 회사 사정 위험해지면 말해요. 내가 사장님 포함해서 직원들 다 살게요.”

뭐, 아틀라스가 망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 * *

소녀연맹 정규 앨범 활동, 무사히 종료!

“앞으로 남은 건 글로벌 팬미팅인데 ‘미팅 앤 그리팅’이란 온라인 채널로 진행할 거야. 그리고 한국 팬사인회도 있고. 일정은 알려줬던 대로고…….”

성필은 스케줄표를 고이 접어 선반에 두었다. 그리고 회의실 책상에 양손을 대고 잡고 씨익 웃었다.

그의 미소에 멤버들은 짚이는 게 있었다.

‘드디어 일본 데뷔구나!’

정규 앨범 활동을 마쳤으니, 이전에 성필에게 들은 대로라면 일본 데뷔를 진행할 것이다.

멤버들은 타국에 소녀연맹을 알린다는 기대감에 미약한 흥분을 얼굴에 띠었다.

특히 리카가 그러했다. 그녀는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이제 너희들은.”

“일본 데뷔인가요!”

“쉴 거야.”

“……하이(네)?”

성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멤버들이 귀로 받아들이고 뇌로 소화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아니, 쉬는 게 뭐지?

“얘들아, 너희들 1년간 진짜 조금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잖아. 이제 쉴 때도 됐어.”

1년도 아니다.

그녀들이 ‘아니’로 데뷔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까지 합한다면 1년이 넘는 기간을 일에 치여서 보냈다.

새벽까지 연습하는 건 거의 정해진 일과나 다름없었고, 아예 새벽을 넘기는 경우마저 있었다.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다.

“한 달, 진짜 아무런 걱정 없이 쉬기만 해. 아, 당연히 글로벌 팬미팅이랑 팬사인회 준비는 하고. 그거 외에는 일정 아예…… 아예 안 잡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처럼 혹사당하지는 않아. 간단한 촬영 정도만 있을 거니까. 너희들 SNS에도 휴식기를 공지하고…….”

멤버들이 기뻐할 것을 기대하고 활기차게 설명하던 성필은 불현듯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리, 리카?”

리카가 흐느꼈기 때문이다.

“리카 왜 그래. 왜 울어?”

성필이 그녀를 걱정하여 한걸음에 곁에 섰다. 멤버들도 성필처럼 당황한 건 매한가지였다.

울 타이밍이 아니다. 그렇기에 리카가 눈물을 떨어뜨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저희이, 저…….”

리카는 성필이 등을 쓰다듬어주자 더욱 감정이 복받치는 듯 흐느낌이 아까보다 더욱 강해졌다.

“쉬, 쉬어도오, 되는, 건가요오……?”

그 질문에 리카의 심정이 전부 담겨 있었다.

항상 활기찬 모습만 보여주던 리카는, 실은 내부에 피로가 첩첩이 쌓이고 있던 것이다.

1년 넘게 평범한 사람을 훌쩍 뛰어넘는 삶의 밀도를 살아왔으니 지칠 만도 하다. 그것을 특유의 쾌활함으로 이겨내고 또한 밝음을 가장하여 왔지만.

“쉬어도…… 괜찮은 건가요……?”

그녀는, 사실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응, 리카. 열심히 했잖아. 열심히 노력해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지?”

그날, 성필은 하고픈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리카를 달래느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 * *

휴가 첫날.

항상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소녀연맹 멤버들은 10시가 다 되도록 늦잠을 청했다.

오직 신아름만이 그나마 일찍 일어나서 시리얼을 우적우적 씹고 있을 뿐이었다.

‘……뭐하지?’

신아름은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또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 물도 주었다.

하지만 도저히 무료함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니 죄를 짓는 기분이다.

결국 신아름은 운동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위에 롱패딩을 겹쳐 입고 숙소를 나섰다.

1층, 숙소를 나가기 직전. 신아름은 우편함에 편지가 하나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네. 아침마다 국밥집 사장님이 다 가져가는데.’

신아름은 하나 남은 편지를 들어 확인했다.

‘나한테 왔잖아?’

송신인의 이름은 없다.

신아름은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편지 같은 건 없었다. 대신 티켓이 있었다.

‘포유 콘서트 티켓……?’

다섯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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