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바로 ‘안 된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성필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효민의 절박한 표정은 이 부탁이 얼마나 긴 시간 고민한 끝에 나왔는지 알려주었다.
그녀의 부탁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유 정도야 줄줄 외울 수 있겠으나, 너무 성급한 답은 그녀를 실망에 빠뜨릴 터였다.
“효민 씨 생각은 알겠어요.”
우효민이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 충분히 지났다고 판단한 성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많이 힘들어요. 왜냐하면, 포유 콘서트에 오는 분들은 포유분들을 보러 오는 거잖아요.”
콘서트에 게스트로 다른 가수가 등장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게스트의 등장이 콘서트에 생기를 더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특히, 포유 콘서트에 등장하는 신아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효민 씨도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아름이가 포유 팬분들한테 그다지…….”
취급이 좋지는 않다.
우효민은 생략된 말을 이해했는지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이가 무대에 서면 달가운 상황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어쩌면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
“대표님이랑……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성필과 김명운은 서로를 보고 쓰게 웃었다. 둘 다 우효민의 마음을 이해했고, 동시에 그녀가 한 부탁의 불가능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마음이 약한 사람인지.’
우효민은 지금껏 신아름에게 취해왔던 태도를 사과하고픈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콘서트 티켓을 건넸고, 또한 신아름을 포유의 콘서트 무대에 세우고 싶어 한다.
아마 원안은 우효민의 머리에서 나왔겠으나 포유 멤버들도 동의한 것일 게 분명했다.
신아름을 대면하지 않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나온 결과가 이것이다. 참으로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고…….
‘자기중심적이네.’
사람들은 아이돌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아이돌이 지니는 가치의 일면으로서 나이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녀들의 나이와 정신 상태를 일치시키지 않는단 것이다.
공인이니까, 아이돌이니까, 그녀들은 나이를 훌쩍 넘어선 태도를 요구받는다.
아이돌의 삶은 오랜 세월 여러 매체에서 우상화되었다. 아이돌들은 매일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노력하고, 고통을 견디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또한 시련 끝에 열매를 얻는 존재로 비친다.
‘새삼 이런 걸 보면 나도 느끼곤 해.’
그러니 사람들은 그런 아이돌이 10대나 20대의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길 어려워하고, 어린아이로 생각할 마음도 없다. 그만한 고통을 감내하니, 분명 성숙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동시에 기대한다.
사람들은 아이돌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그들의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자신의 척박한 현실과 달리 빛나는 무대 위의 영웅을 바란다.
아이돌은 대중을 대신하여 광채가 내리쬐는 하늘 위의 검투사다. 그 검투사가 일반인과 같단 사실을, 대중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그마한 실수도 죽일 기세로 물어뜯는 것이다.
‘효민 씨는 팬들이 다 자기랑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 포유 팬들은 아름이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데, 적당한 기회만 있으면 아름이를 다시 좋아해 줄 수도 있다고 믿으니.’
성필은 우효민이 기획한, 만약 실현되었다면 크게 논란이 되었을 실수에 인자한 태도를 취했다.
“아름이랑 만나고 싶으신 거죠?”
우효민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제가 효민 씨 마음은 모르지만.”
정말, 짐작은 해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1년간 냉랭하게만 대했으면서 갑자기 신아름과 화해하고 싶다니.
소녀연맹이 성공했고, 우효민은 이후에도 연예계 활동을 해야 하니 비즈니스적으로 관계를 정상화하고 싶은 게 아닐까.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런 거라면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봐요. 직접 만나보세요.”
우효민이 불안한 눈초리로 김명운을 보았다. 그는 따스하게 미소 지으면서 걱정 말란 듯 여유롭게 말했다.
“같이 가줄게.”
고민의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우효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효민 걔가 나랑 만나자고 했어요? 어디서요?”
“뭐, 그냥 카페?”
“왜요?”
“나야 모르지.”
“내가 걔를 왜…….”
“콘서트도 가기로 했잖아. 그거 보고도 아예 안 만날 생각은 아니었지? 이왕 공연도 보는 거 미리 만나서 얘기도 나눠 봐.”
“…….”
신아름은 멍한 눈길로 성필을 응시했다. 그를 탓한다거나 분노를 시선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신아름도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우효민을 보고 싶기나 한지, 전혀 판단할 수 없었다.
“……에휴, 네, 보기나 할게요.”
신아름은 공원에 산책 가는 마음가짐으로 우효민과의 만남을 수락했다.
설마 만나서 얻어맞기야 하겠는가. 혹은 안 좋은 일이 더 생기겠는가. 그냥 우효민을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누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매일 회사에 오는 거야? 할 일이 없어서?”
“네? 저 할 일 있는데요?”
할 일이 뭘까.
신아름은 회사에 와선 연습실에 틀어박혀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말이다. 혹은 1층 홀 소파에 누워서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보거나.
“팀장님 보는 거요.”
“아…… 그건 중요한 일이지.”
“저 숙소에만 있으면 팀장님 코빼기도 안 비출 거잖아요. 제가 와야죠.”
“뭔 소리야. 아름이가 부르면 언제든지 가지.”
“‘제가 부르면’ 오는 거죠?”
“언제든지 와도 된다고 허락하면 매일 갈 거고. 나 가도 돼?”
“우리 숙소에요? 팀장님 놀랄 텐데.”
“왜?”
“조아라 차림…….”
“됐어. 그만 말해.”
신아름은 성필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척할 수 있었다. 아니, 우효민을 만나겠다고 말할 때만 해도 실제로 평온했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당일이 되자, 신아름은 스스로도 진정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타인에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계속 심장이 거세게 뛰고 머리가 어지러운 기분이다. 자꾸 시계만 확인하면서, 아예 시간이 멈추길 바라기만 한다.
약속 당일 아침에 일어나고부터 계속 그런 상태였다. 심지어 옷까지 다 입은 상황에서도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
신아름은 식탁에 앉아 시계와 바닥만 번갈아 보았다. 곧 있으면 성필이 데리러 올 것이다.
일어난 멤버라도 있었다면 수다를 떨면서 어떻게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릴 텐데, 이른 아침이라 다들 꿈나라에 머물기 바빴다.
신아름은 멍하니 있다가 무심코 주방으로 향했다. 목이라도 축일 생각이었건만, 냉장고를 여니 캔맥주가 몇 개 보였다.
‘조아라 거.’
주에 한 번씩, 조아라는 멘탈 안정이란 이유로 캔맥주를 마신다.
술을 마실 때마다 이상해지긴 해도, 아직까지 별다른 터치는 가해지지 않았다. 물론 조아라가 핸드폰을 백설하에게 맡긴다는 전제하에 터치가 없단 것이다.
“……후우.”
신아름은 캔맥주를 하나 꺼내 망설임 없이 땄다. 탄산이 부글거리는 소리를 몇 초간 듣다가, 신아름은 시원하게 맥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한여름 바깥에서 고생하다가 돌아와 물을 벌컥이는 사람처럼, 신아름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맥주를 위 안으로 들이부었다.
“지랄 났다 지랄 났어.”
원샷으로 맥주를 비우니 뒤에서 조아라의 비꼼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패딩에 팬티만 입은 아방가르드한 차림의 조아라가 보였다.
“노출증 걸린 너만 하겠냐.”
“일어나니까 바지가 없어졌다고. 리카가 벗겼나? 신아름 너 혹시 봤어?”
“또 자다가 네가 벗어 재꼈겠지. 침대 밑에 찾아보든가.”
요즘 조아라는 일어나면 바지가 없어지는 현상을 겪었다. 물론 리카가 벗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리카에게도 일정 지분 책임이 있었다.
원래 조아라는 몸에 열이 많아, 겨울에도 얇은 이불만 하나 덮는다. 그런데 리카는 추위에 약하다.
리카가 잘 때마다 조아라의 침대로 파고들기에, 사실상 조아라의 침대가 리카의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리카는 매트릭스 덮개 아래에 전기장판을 추가해버렸다.
“아님 리카한테 나가라고 해.”
“네가 말해줘.”
“싫어.”
리카의 탓으로, 조아라는 매일 전기장판의 열기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서 잠결에 자꾸 바지나 윗도리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언제 한 번 리카에게 장판을 깔 거면 침대에서 나가라고 했었는데…….
“걔 또 운다고.”
리카는 자신의 침대에 홀로 자게 되자 외로움을 곱씹었다. 결국 마음이 약한 조아라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불러 들어야만 했다.
“아주 애인 납셨어. 나중에 둘이 네덜란드에 가서 결혼해라.”
“아침부터 술은 왜 마셔?”
신아름이 아는 조아라라면 왜 자기가 사둔 술을 마시냐면서 이빨을 세웠을 텐데, 조아라의 어조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다정하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신아름에게 그렇단 것이지, 말투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SNS 댓글이라도 정독했냐? 아님 트잇터?”
“난 너처럼 인터넷 중독 아니거든.”
그 순간 신아름의 시야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있잖아.”
술기운을 빌려, 신아름은 자신의 심정을 자각하게 됐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됐으며, 동시에 타인에게도 솔직해질 용기를 얻었다.
조아라에게 고민을 말하려던 찰나, 신아름이 인상을 찌푸렸다.
“조아라 너 이 씨, 바지 입어. 말을 하려고 해도 눈꼴 시려서 못 보고 있겠네. 옛날에 리카한테 옷 안 입는다고 화냈던 애 맞냐?”
“바지 없어졌다고.”
“안에 가서 찾아!”
조아라는 소파에 앉은 뒤 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 패딩 안으로 다리를 넣었다.
패딩 목 부분으로 튀어나온 무릎에 턱을 괸 조아라는 ‘이제 됐냐?’란 표정으로 신아름을 흘겼다.
신아름은 한숨을 내쉬곤, 술기운을 달래려 의자를 짚고 섰다.
“오늘 우효민 만나거든.”
“아, 네가 말했던…… 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랬나?”
“그렇게까진 안 말했어!”
“비슷하긴 했잖아.”
“……암튼, 걔를 만나는데. 나 걔 만나봤자 좋은 감정 안 들 거 같거든. 팀장님이 화해의 제스처라고 하긴 했는데. 내가 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렇지. 넌 만나봤자 비꼬고 놀리기나 하겠지.”
“……나도 뭐, 포유에서 나온 건 미안해. 미안하긴 한데, 1년간 걔가 나한테 했던 걸 떠올리면 안 빡칠 수가 없거든? 이제 와서 뭐야. 화해? 솔직히 걍 우리 뜨니까 척 지기 싫어하는 티가 나지 않냐?”
“그러게. 너랑 척지면 만날 때마다 꼽 처먹을 텐데 지금이라도 화해하고 싶겠지.”
“아 씨 너 내 말 들어줄 생각이나 있어?!”
“잘 듣고 있잖아. 신아름 이해도 200%구만.”
“……됐다. 됐어. 봉황이 참새랑 무슨 말을 하겠냐.”
“걍 가서 적당히 맞장구치고 와. 그것도 못 하냐?”
맞장구를 치라고?
그러고 싶진 않다.
정규 앨범으로 컴백하기 전, 김민주와 이벤트 무대를 했던 날. 그때부터 신아름은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괜히 가면을 쓰고 마음을 소모품처럼 대하고 싶진 않다. 참고 견뎌내며 버티길 반복하여,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게 익숙한 인간으로 살길 바라지 않는다.
“가면 쓰기 싫어.”
“본판으로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뭐?”
“걍 가면이 여러 개인 거지. 혼자만 있을 때라도 자기한테 솔직할 수 있는 인간이 있겠냐? 가만 보면 너 너무 어린애 같아.”
“…….”
“가면을 안 쓰는 게 더 괴로운 거 아니야?”
인간은 자기 자신이 어느 정도로 추악한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무의식의 영역이다.
본래의 자신을 자각하게 되면, 인간은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진정한 자신을 대면하고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왜 비바람이 오는데 굳이 집 밖으로 나가냐고.”
“……하.”
신아름이 웃었다. 하, 하하, 하하하.
“한 이사님한테 심리학 좀 배웠다고 꼴에 아는 척하네.”
“이건 뭐,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답을 말해주면 자기 얘기 안 듣는다고 하고. 나름 배운 거 말해주면 아는 척한다고 꼽 주고. 우효민 걔도 불쌍하다.”
“됐어.”
어느새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신아름은 얼룩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창이 깨끗해진 것을 느꼈다. 만약 그녀 홀로 시간을 보냈다면 또 어떤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조아라 얘도 쓸모가 있네.’
신아름은 ‘고맙다’는 생각조차도 에둘러서 했다.
“얘들아 안녕…….”
백설하가 눈을 부비면서 거실로 들어왔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나른하기 그지없었다.
“오, 쌤 웬일로 일찍 일어났어요?”
“하양이랑 약속했어…… 일찍 일어나기루…….”
“하양 언니는요?”
“씻어…….”
백설하는 하품하면서 크게 기지개를 폈다. 졸음으로 무겁던 눈꺼풀을 들자, 백설하는 깜짝 놀랐다. 바로 앞에 신아름이 있던 것이다.
“쌤.”
“으, 응? 어, 아름이 어디 가?”
“네. 사람 만나러요. 그래서 그런데 화장 좀 해줄 수 있어요?”
“사람 만나러 가는데 화장을 한다고?!”
아니, 화장이야 하지. 문제는 화장을 백설하에게 부탁했단 사실이었다.
소녀연맹의 공식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백설하의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그녀에게 화장을 부탁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우효민 만나러 가요. 포유에.”
“아, 그래?”
“와 쌤 너무하다. 내가 만나러 간다고 했으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끝까지 붙었을 거면서.”
조아라의 핀잔에 백설하는 묘하게 웃었다. 사실, 백설하는 요즘 조아라에 대한 걱정이 컸다.
논리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조아라에게서는 여자의 분위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여자의 분위기가 뭐냐고? 백설하도 모른다. 그냥 어렴풋이 그렇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러니 백설하도 무의식적으로 조아라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음, 화장이면, 어떻게 해줄까?”
“세게요.”
“응?”
“선도 막 살려서. 세게 보이게.”
신아름은 가면을 쓰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더욱 강렬하게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 * *
신아름과 우효민이 만나기로 한 곳은 독립된 방이 구비된 카페였다.
두 사람이 방 안에 자리를 잡자, 성필과 김명운은 음료만 전해주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자 우효민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대, 대표님…….”
“얘기 끝내면 불러. 나는 박 이사님이랑 있을게.”
김명운이 같이 와준다고 해서 용기를 냈건만, 정작 그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N플릭스 봐요?”
“아니, 결제하다가 끊었어.”
“요즘 진짜 재밌는 거 들어왔는데…….”
두 사람의 시답잖은 대화가 문 너머로 서서히 아득해져 갔다. 그리고 신아름과 우효민 사이에 침묵만이 남겨졌다.
우효민은 문을 아련하게 쳐다보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신아름에게로 눈을 돌렸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신아름이 더 무서워진 것 같다.
신아름은 우효민의 위축된 모습을 보자 만족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한번 말해봐. 무슨 말 하는지 들어줄게.’
신아름은 팔짱을 끼고 앉아 우효민이 입을 열길 기다렸다. 우효민이 먼저 말할 때까지, 신아름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럴 자격이 있어. 포유에서 나간 게 뭐? 다 자기만의 길이 있는 거지. 그걸 이유로 1년 동안 나를 쌩까?’
만약 목적이 화해라면 사과부터 나오겠지. 하지만 신아름은 사과가 나오자마자 ‘그렇구나’라면서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우효민이 어째서 그랬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결국엔 그녀의 속 좁음을 인정시킬 것이다.
“왜…… 나간 거야……?”
온갖 경우의 수를 그리던 신아름이 당황했다. 그녀가 고려했던 경우의 수란 오직 사과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효민이 신아름을 탓하는 듯했다. 아니, 탓하고 있었다. 우효민은 원망이 담긴 시선으로 신아름을 노려보았다.
“뭐?”
“왜 포유…… 나간 거냐고…….”
우효민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떨고 있었다. 목소리도 위아래로 오락가락하는 게 적잖이 흥분한 듯했다.
그러자 신아름은 어이가 없었다. 하, 가볍게 비웃음을 흘렸다.
“네가…….”
신아름은 우효민을 향해 언어의 칼날을.
“어?”
칼날을, 쏟아내려고 했는데.
“야, 야, 우효민, 울어……?”
우효민이 투명한 눈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왜, 왜애, 나만 두고 간 거야아…….”
“잠깐…….”
“나는 아름이랑 같이 데뷔하고 시펐는데에……. 나, 나 혼자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에…….”
“너 왜 이러…….”
“왜 그래써……? 나, 나아, 나느은, 힘들었단 말야……. 너 없이 있는 게에…… 너 없이 그룹 꾸려가는 게에…… 너무 힘드러써……. 가치, 같이이…….”
아름이 너랑.
“있고 싶었는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