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54화 (254/760)

254화

생각보다 입장에 걸리는 시간은 적었다. 넉넉잡아 30분만으로 모든 관객이 제자리를 찾았다.

성필의 일행이 차지한 곳은 1층, 그중에서도 무대의 T자형 돌출부와 가까운 장소였다. 우효민이 좌석 선택에도 신경을 쓴 게 여실히 느껴졌다.

“포유가 무대 끝까지 나오면 저희랑 열 걸음도 안 떨어져 있어요!”

리카는 과하게 흥분해선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단독 콘서트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모든 게 신기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러다가 리카는 이상한 현상을 눈치챘다.

“사진 찍는 소리가 많이 들려요.”

여기저기서 찰칵거리는 효과음이 끊이질 않는다.

“공연은 촬영 금지니까, 무대의 분위기를 미리 담아두고 싶은 거겠지.”

“왜 금지인가요?”

“공연도 창작물이니까. 정해진 장소와 시간을 제외하곤 함부로 유통되면 안 되지. 특히 영상으로 기록하는 건 더욱더 안 되고.”

좋아하는 아이돌을 영상으로 담고픈 마음은 알지만, 엄연한 저작권 침해 행위다.

누군가 콘서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영상으로 기록하여 인터넷에 올린다면, 굳이 콘서트를 오지 않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유통되지 않더라도 문제다. 콘서트 DVD나 블루레이도 아이돌의 주요 수입원인데, 팬이 따로 영상물을 남긴다면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거의 불가능하지.”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간은 스탭들이 관객을 통제한다. 핸드폰이 보이면 넣으라고 하고, 사진 찍지 말라고 주의도 주고 말이다.

걸린 사람은 ‘운 더럽게 없네’ 같은 표정으로 짜증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통제가 먹히는 것도 순간이다.

공연 스탭은 어느 순간 아예 통제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다수의 압력과 힘은 어느 순간 규칙마저도 넘어선다.

도덕적 개인, 비도덕적 사회라던가. 사람은 불법을 다수가 저지르면 불법이 아닌 줄 안다.

“콘서트도 힘든 거네요.”

“그래, 믿을 건 팬들의 애정뿐이야.”

팬덤의 잘 다져진 결속력과 건전함은 콘서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아이돌을 아껴주고 지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공연 관람의 공공연한 불법을 막기도 한다.

“아름아 물 마실래?”

리카가 묻자 신아름은 건조하게 고개만 저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은 후부터 줄곧 저 상태였다. 마치 자신이 무대에 서기라도 하는 듯 긴장을 유지하는 중이다.

“민 팀장, 부채 하나만.”

“역시 사장님도 가지고 싶으신 거죠?”

“더워서 그래.”

“이 부채를 쓰시겠다고요?!”

“쓰려고 산 거 아니야?”

“소장용이에요!”

“그래.”

“하지만, 가로 엔터 블랙리스트로 등록돼서 연봉 협상에 불이익이 있긴 싫으니까 하나 드릴게요.”

“방금 그 말로 블랙리스트에 등록됐어.”

“손나(그런)!”

“아앗, 매니저님 제 흉내 내지 마세요! 인종차별이에요!”

홍규헌은 민경섭에게 부채를 받아 더위를 식혔다. 그녀가 부채를 움직일 때마다 인쇄된 멤버의 얼굴이 잔상처럼 나타났다.

“덥네.”

겨울이라 히터를 틀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천 명의 관객이 내뿜는 열기가 겨울마저 잊게 할 기세로 공연장을 꽉 메웠다.

‘어디, 볼까.’

아틀라스의 사장인 조진만이 연출한 아이돌 콘서트를.

밝게 사방을 비추고 있던 조명이 서서히 꺼져들고, 무대에 앞에 설치된 보랏빛 조명이 천장을 뚫을 기세로 광채를 뿜어냈다.

동시에 포유의 데뷔곡 MR이 흘러나왔고, 곧 관객석엔 뜨거운 함성만이 자리했다.

* * *

“수건!”

우효민은 간이 의자에 누워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공연 스탭이 그녀의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대었다.

‘얕봤어.’

런스루 리허설(처음부터 끝까지 공연 계획에 따라 연속해서 진행하는 리허설)까지 해봤음에도, 우효민은 콘서트를 얕보고 있었다.

호흡과 체력 배분도 완벽하니 콘서트도 수월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관객이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다. 그들이 보내는 에너지를 받고 있자면, 우효민은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불안과 압박, 그리고 말로 형용하기 힘든 행복이 전신을 휘감아 그녀의 의식을 박탈한다. 그때부터 우효민은 신내림을 받은 듯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다.

“효민아 빨리 일어나!”

스타일리스트 팀의 재촉에 우효민이 재빨리 일어나서 간이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스타일리스트가 허겁지겁 그녀에게 새로운 무대 의상을 입혔다.

“3분 전!”

우효민은 물론이요 포유 멤버들의 거친 숨소리가 백스테이지를 달구었다.

마지막, 그러니까 공식적인 마지막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콘서트는 앙코르 무대가 관례처럼 자리 잡아, 공식적인 세트리스트보다 두세 곡을 더 부르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마지막이란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거의 3시간에 이르렀던 대장정의 마무리다.

‘아름아, 보고 있었지?’

우효민은 무대에서 신아름과 눈이 맞았었다. 바로 시선 처리를 했지만 그녀가 신경 쓰인다.

‘나, 아이돌이 됐어. 네가 곁에 없는 채로 아이돌이 돼버렸어.’

항상 모자라고 신아름에게 짐만 졌던 자신이 당당히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자랑하기 위해 신아름을 초대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 따위를 신아름에게 자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괜찮단 걸 보여주고 싶었어.’

이제는 신아름이 없어서 괜찮단 걸 알려주고 싶었다.

프로젝트 포유에서 1차 경연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토했던 날. 신아름이 우효민에게 말을 걸어주었던 건 위로임이 틀림없었다.

둘은 같은 방을 썼었다. 몰래 침대를 빠져나가는 우효민을, 신아름이 따라온 것이다. 그리고 우효민을 불쌍히 여겨 위로하고 이후에도 챙겨주었다.

그것을, 우효민은 미안하게 생각했다.

‘아름이 너를 미워한 게 아니야. 어떻게 내가 너를 미워하겠어.’

질투했던 것이다. 우효민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신아름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우효민은 신아름과 카페에서 만나 이 마음을 전했었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아름아, 이젠 나 신경 안 써줘도 돼. 고마웠어, 정말 고마웠어.’

자신의 무대를 보여주는 게 우효민이 신아름에게 전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다.

더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생각. 그렇기에 우효민의 사과는 순수하다. 마음만 전달된다면 형식은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신아름은 알아주었다.

“마지막 무대, 다 나간다!”

스탭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외치자 포유 멤버들은 정신없이 무대 입구 앞에 섰다.

무대 밖으로는 어두운 보라색의 조명이 퍼지고 있는 게 보인다.

“얘들아.”

포유 멤버들이 우효민을 보았다.

“고마웠어. 지금까지. 전부 다.”

토막토막 끊긴 파편적인 감사.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눈물짓고 흐느끼는 이들이 다수였다. 리더의 감사 인사이자 작별 인사에 멤버들이 슬픔을 표했다.

일렬로 선 그녀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 사슬처럼 이어졌다.

그와 함께 엔딩곡, 포유의 마지막 앨범에 담긴 마지막 트랙 ‘낙엽’의 MR이 재생되었다.

포유 멤버들이 무대로 나섰다. 2층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과 그들 사이사이 박힌 보라색 빛들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벽을 연상시켰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벽을 향해 포유는 노래를 불렀다.

‘1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 시간의 마무리가 지금 이 순간이다.

포유 멤버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무대 앞에 섰다. 그녀들의 등장에 관객석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엔딩곡 ‘낙엽’은 조용하고 아련한 곡이다. 관객들도 조용히 있는 게 매너다. 하지만 웅성거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니, 웅성거림보다는 흐느낌.

‘1년 동안 저희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잎이 떨어지고 순백의 눈이 모든 추억을 뒤덮는다. 하얗게 변한 세계는 더는 옛날과 같지 않다.

‘낙엽’이란 곡에는 슬픔과 씁쓸함만이 가득하다. 흔히 재생의 메타포로 쓰이는 봄은 끝끝내 곡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포유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것을 확정 짓듯 멤버들의 노랫말에 울음이 더해간다. 그러자 관객들의 흐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부족한 저희들을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우효민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참고 있던 눈물이 기어코 뺨을 따라 떨어졌다.

하필 그녀의 파트에서.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어느새 모든 멤버들이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이건 포유로서의 마지막 무대. 그러니까 한마디라도 더, 한 소절이라도 더 부르고 싶다. 모두의 마음이 일치되어 감미로운 유니즌이 만들어졌다.

“눈만이 남겠죠…….”

잎이 진 끝에는 오직 새하얀 눈만이 남겠죠.

무언가 쓰일 수 있는 도화지가 아닌.

돋아나던 푸른 잎도 타오르던 단풍도.

모든 걸 덮어버리는 새하얀 눈만이.

“눈만이…….”

우효민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세계가 흐릿하고 어지럽다.

눈물이 가시자 공연장을 모두 채울 기세의 비눗방울이 보였다. 관객석에 설치된 수십 개의 버블머신이 만들어내는 장관이었다.

또한 무대 아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새하얀 풍선이 속박을 풀고 천장까지 날아올랐다.

“오직, 눈만이…….”

팡, 순백의 꽃가루가 풍선과 교차되어 아래로 하늘하늘 떨어졌다. 공연장의 모든 공간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방울, 풍선, 꽃가루가 벌이는 퍼레이드를 보면서 멤버들은 전부 울었다.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워서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

“해체하지 마!”

참지 못한 어느 관객이 소리쳤다. 공연 매너가 아니지만 눈총을 주는 이가 없었다.

“계속 있어 줘!”

“포유 계속해줘!”

“얘들아 사랑해!”

여기저기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애정을 표현한다. 수천 개의 말이 뒤섞인 불협화음이다. 하지만 그 화음 안에 섞인 마음은 다들 같았다.

모든 이가 포유를 사랑한다.

어지럽게 몰아치는 고함 속에서 우효민은 전율했다. 수천 명의 애정이 집중되어 무대 위로 내리꽂힌다.

‘아…….’

우효민은 겨우 거두었던 눈물이 다시 시야를 가리는 것을 느꼈다.

‘나, 오늘을 위해 살아왔구나.’

이걸 위해 아이돌이 됐구나.

모든 연습생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 아이돌이 되는 게 틀림없다.

* * *

홍규헌은 아주 오랜만에 추억에 잠겼다.

그녀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큰마음을 먹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갔을 때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름 응원 도구라며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언니들이 대부분인 공연장에서, 그녀는 나이에 상관 않고 옆자리의 사람과 여러 대화를 나누었더랬다.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시작한 노래는 어느 순간 떼창이 되어 관객석을 채웠다.

메들리로 몇 곡을 부르고 나자 목에 쌓인 피로와는 상반된 충만감이 차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콘서트에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무대에 좋아하는 오빠들이 나타나고 나서, 홍규헌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인 감각에 사로잡혔다. 수만 명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그 안에서 홍규헌은 혼자가 아니라 하나였다. 오로지 사랑만을 지닌 하나의 유기체.

‘좋네.’

비록 홍규헌이 포유의 팬은 아니지만,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기엔 충분했다.

이 공연에는 그러한 힘이 있었다. 마치 홍규헌 자신이 처음부터 포유의 팬이었던 듯 기억이 조작당한 것 같기도 하다.

이곳저곳에서 우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포유를 향한 애정을 선언했다.

그뿐인가? 무대 위에 있는 포유 멤버들도 오열에 가깝다시피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 자리의 모두가 갖는 감정은 다른 아이돌의 콘서트와는 사뭇 다를 터다.

이토록 행복한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상실감.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억울함이 공연 끝에 남아버렸다.

“쟤네들 앙코르 할 생각은 없…….”

옆으로 고개를 돌렸던 홍규헌은 조용히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렇네. 신아름한테도 이 무대는 특별하겠지.’

신아름은 절대 울지 않겠단 마음을 표현이라도 하듯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떨리는 어깨와 찌푸린 눈매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신아름도 프로젝트 포유에서 100일 동안 있었으니까. 특별하지 않을 리가 없지.’

포유의 최초이자 최후의 콘서트.

포유였으면서 포유가 아닌 멤버는, 결국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토해야만 했다.

* * *

“1년 동안 다들 너무 열심히 잘해줬어요!”

리카는 공연장을 나오면서 시원하게 눈물을 털어냈다. 그녀의 눈동자엔 포유가 1년간 쌓아온 이야기와 인연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마지막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장식하고…… 정말 감동적이에요……!”

콘서트를 보더니, 리카는 자신이 포유 멤버인 것처럼 기억 조작을 당해버렸다.

확실히 마지막 피날레는 포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맥락적으로 감동할 만했다.

게다가 리카는 원래 프로젝트 포유에 나가기로 했었고, 신아름 때문에 모든 회차를 정주행했으니 감동이 더할 것이다.

“아타시(저)도 맹장염이 아니었으면 저기 서 있었겠죠?”

“리카, 사장 앞에서 다른 그룹 못 가서 아쉽단 듯이 말하지 마. 애인 뺏기는 기분이야.”

“헤헤, 질투 나시나요? 저는 사장님밖에 없어요!”

홍규헌은 자신보다 10cm가 큰 아이가 달라 붙어오자 달갑지 않은 듯했으나, 공연의 여운에 젖어서인지 그녀가 팔짱을 끼도록 내버려 두었다.

성필은 그 모습을 즐거이 바라보다가, 주변의 분위기가 어둡단 사실을 알아냈다.

보통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엔 들뜬 대화 소리가 지배적인데, 포유의 팬들은 우중충하게 걸음만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공연이 행복했던 만큼 아쉬움이 더한 것이겠지.

“팀장님.”

신아름의 목소리 또한 우울했다.

“저번에 우효민 만났을 때요.”

“응.”

“걔가 저한테 말했는데, 제가 없어서 힘들었대요. 방송에선 항상 제 뒤만 쫓았는데 갑자기 이끌어줄 사람이 사라지니까 무섭고, 걱정되고,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심지어 리더까지 맡아선.”

“응.”

“오늘 걔가 운 건 어떤 의미였을까요?”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포유도 끝이구나. 그런 후련함을 가지고 노래했던 게 아닐까?

“제가 있었으면…… 걔도 지금까지 보단 더 즐겁게 아이돌로 지낼 수 있었을까요?”

성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살짝 텀을 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기도 했고, 성필이 전생을 떠올렸기 때문도 있었다.

전생에서도 우효민은 리더였다. 그녀는 프로젝트 포유 촬영 때도 유독 심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정상을 쟁취하고 당당하게 포유로 데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신아름의 존재 유무는 우효민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던 것이다. 신아름과 우효민, 두 사람은 평생토록 모르겠지만.

“그건 모르지만, 효민 씨가 운 이유는 알 거 같아.”

“뭔데요?”

“네가 울었던 거랑 같은 이유겠지.”

여기서 끝내긴 아쉽다. 끝내고 싶지 않다.

“행복했던 거야, 이번 1년이.”

신아름은 무어라 반응하는 대신 성필과 걸음만 맞출 뿐이었다.

* * *

포유 해체.

언론은 이 사건을 담담하게 보도했다.

특별할 것도 아닌 원래 정해져 있던 일이니,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포유의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정도가 가장 감정적으로 쓰인 부분이었다.

“포유 얘기하니까 또 눈물 나잖아요…….”

민경섭은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았다. 홍규헌이 그것을 어처구니없단 태도로 바라보았다.

“민 팀장 진짜 포유 좋아했구나.”

“아뇨, 그건 아닌데, 자꾸 콘서트 때 떠올라서…….”

그건 포유 콘서트에 갔던 모두가 동의했다. 마지막 연출은 사람에게 눈물을 짜내려고 작정한 것만 같았다.

프로젝트 포유 때의 멤버들 인터뷰를 보여주면서 멤버들이 노래 부르게 하는데, 인간적으로 어떻게 안 울 수가 있겠는가?

머릿속으로 포유가 걸어왔던 1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눈물샘이 강제로 자극되겠지.

“빨리 울음 그치고 회의 준비하자. 2분 뒤에 시작이야.”

회의실에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홍규헌과 세 명의 이사, 그리고 매니지먼트 팀장인 민경섭을 포함한 화상 회의.

상대는.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일본 웨벡스 사무소의 소녀연맹 매니지먼트 담당인 히무라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 홍규헌입니다.”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화상 회의의 주제는 소녀연맹의 일본 데뷔 기간이었다.

소녀연맹은 1년 중 2개월을 웨벡스의 매니지먼트 아래 일본에서 활동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활동 기간은 웨벡스에서 자의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었다.

[슈이치 씨를 통해서 전달 드렸습니다만, 가로 엔터에서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 타이밍이 있습니까? 저희는 첫 번째로 4월을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웨벡스 사무소는 꾸준히 소녀연맹의 일본 데뷔를 준비해왔다. 그 사항은 웨벡스와의 연락책인 슈이치에게 지속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아, 4월이요.”

성필이 난색을 표하자 히무라가 그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자 성필은 깜짝 놀랐다.

‘화상으로 눈을 어떻게 맞추지?’

좌우도 안 맞을 텐데? 설마 각도를 연구한 건가?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4월이 한국에서 축제 시즌이거든요.”

소녀연맹이 공연 한 번만 해도 수천만 원의 이익이 손에 들어온다. 축제 기간을 한 번 보내면 가로 엔터의 매출도 급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아, 그렇군요. 소녀연맹도 이젠 한국에서 메이저라 불릴 그룹이 되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6월 초는 어떻습니까?]

“섬머 시즌은 또 걸그룹의 성수기거든요.”

[음,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여름이 지나서 9월은 어떨까요?]

“가을 축제 시즌…….”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가로 엔터도 모른다.

소녀연맹이 너무나 성장한 결과, 이젠 돈 벌 방법이 차고 넘쳤다. 소녀연맹의 모든 시간이 금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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