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78화 (278/760)

278화

“자자, 이젠 진저 씨도 면접관이에요!”

“저, 저는…….”

진저는 리카에게 이끌려 억지로 면접관석에 앉혀졌다. 지근거리에서 소녀연맹 멤버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자, 진저는 도저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항상 아이튜브로만 보던 연예인(본인도 연예인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특히 옆에 앉은 백설하에게 눈길이 갔다.

흔히 도자기 피부란 말을 쓰곤 하는데, 그건 백설하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임이 틀림없다. 얼굴이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하다.

‘피부과 어디 다니시는 걸까. 궁금하다…….’

진저의 열띤 시선을 느낀 백설하는 그녀를 향해 살포시 웃어주었다. 그 미소에서 풍기는 아우라를 느끼자, 진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됐다.

“전 가로 엔터로 들어올 자격이 없슴미다……. 그냥 신인개발팀으로…….”

“진저 씨 잘 부탁드릴게요. 앞으로 잘해봐요.”

세 칸 떨어진 메인 프로듀서 성필이 그리 말하자, 진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같이 돈방석에 앉는 검미다!”

그렇게 진저는 아티스트로 영입되었다.

다음으로 면접을 보는 이는 시에이스의 규영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스웩을 과시하면서 언뜻 불량한 태도를 취했다.

“규영, 퍼포먼스팀 지원입니다. 피스.”

“오, 혹시 주변에서 무섭게 생기셨단 말 안 들으세요?”

조아라의 물음에 규영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는 아이돌 예능에서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잘 못 대해요…… 얼굴 때문인가 봐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규영의 흑역사였다. 팬들은 ‘우리 꼬물이’라며 좋아했지만 말이다.

규영은 간신히 평정과 미소를 유지하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제가, 강렬한 인상이긴, 하죠? 춤은 더 강렬합니다. 한 번 보여드릴…….”

“애교 보여주세요.”

“퍼포먼스팀 지망이라고요!”

“우리 회사 들어오기 싫으세요?”

면접관과 면접자의 불꽃 튀는 신경전 끝에 규영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사이, 그가 손을 말고 고양이 흉내를 냈다.

“에, 에에, 에에.”

입술을 쭈뼛거리면서.

“에오오오오옹.”

수년 동안 연습해왔던 필살 애교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 애교 하나로 무려 3개의 예능에 출연했던 전적이 있다.

그야말로 필살(必殺).

“……사장님.”

조아라가 단호히 말했다.

“잘라야겠죠?”

“그쪽이 시켰잖아요!”

“그러게, 좀 그러네.”

“……?!”

“근데 퍼포먼스팀 지망이라니까 춤이라도 한 번 볼까요?”

규영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춤을 추었다. 그것을 본 홍규헌은 가로 엔터 2호 아티스트 진저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매니저팀은 어떻슴미까?”

가로 엔터에 완벽 적응한 진저는 아이돌계 선배인 규영을 향해 가차 없는 판단을 내렸다.

“덩치도 크시니 일 잘할 거 같슴미다.”

“……거기, 진저 씨 몇 년 차예요.”

“이제 2년 차임미다.”

“선배한테 그렇게 말해도 괜찮겠어요? 내가 무슨 소인 줄 알…….”

“좋네. 그럼 진저 씨 매니저로 배정할게요.”

“…….”

시에이스 메인 댄서 규영, 가로 엔터 매니저로 발탁!

다음은 전 포유의 리더였던 우효민이었다. 그녀는 파티 드레스에 모피 코트까지 입은 복장이었다.

“비주얼팀 지원, 우효민입니다.”

“비주얼팀이라…….”

신아름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효민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훑었다.

“딱히 패션 감각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요?”

“패션이 아니라 아트 디렉팅 쪽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력은요?”

“예고 나왔는데요.”

“우리 대졸자만 뽑는데.”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 경력도 있어요.”

“우연이네요. 나도 그런데. 그럼 소녀연맹의 아트와 비주얼에 관한 비전을 들을 수 있을까요?”

우효민은 자신의 손바닥을 보면서 미리 준비해온 대사를 줄줄 읊었다.

“약간 사막 같은 느낌이 나게? 사막에서 쓰는 양산처럼. 이 양산이 정말 필요하고, 또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필수적인. 그러니까, 아랍같이 퓨전스런 비주얼로.”

“그게 아트 디렉팅이에요? 디자이너분들한테 그렇게 요청하게요?”

“네.”

“사장님, 잘라야겠죠?”

“어.”

위기를 직감한 우효민이 모피 코트를 집어던지면서 카메라 앞으로 달려갔다.

“저 솔로로 데뷔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뽀뽀쪽!”

“규영 매니저 빨리 저 사람 끌어내!”

규영이 우효민을 끌어낼 때까지 그녀의 불꽃 홍보는 멈추지 않았다.

“가로 엔터의 앞날이 걱정됨미다.”

태도만큼은 가로 엔터의 이사나 다름없는 진저가 걱정을 표했다. 마지막 면접자마저 가망이 없다면, 가로 엔터의 신규 채용은 끔찍한 결과로 끝날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오, 발랄한 유빈이에요오!”

무려 분홍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웨이퍼센트의 유빈이 온갖 끼를 부리면서 면접장으로 들어왔다.

윙크하고, 뺨을 부풀리고, 손으로 꽃받침을 만드는 등, 연하의 매력(23세 남성)을 마음껏 선보이면서 좌중을 휘어잡았다.

“크흡.”

손혜빈은 유빈의 애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입을 가리면서 자꾸만 웃었다.

“어, 좋네요. 우리 연습생으로 들어올래요? 가로 엔터 최초의 보이그룹으로 데뷔할 생각 없어요?”

“아이돌도 좋지마안, 유빈이는 A&R팀으로 가고 싶어요오! 그래서! 장기자랑도 준비해왔습니다!”

“뭔데요?”

손혜빈과 홍규헌이 흥미가 가득한 시선을 그에게 주었다. 이전에 봤던 면접자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손혜빈 선배님의 ‘크라운’ 퍼포먼스 준비했습니다!”

“저 인간 끌어내!”

본인의 흑역사가 들춰질 위기에 놓이자 손혜빈이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그녀의 명령을 받은 매니저 규영이 유빈을 뒤에서 포박하여 바닥에 쓰러뜨렸다.

“감히 신성한 면접장에서 여성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희화화시켜? 남자가 골반 튕겨봤자 아무도 안 좋아한다고!”

“서, 선배님 저 아직 안 했는데요?!”

“누가 네 선배님이야! 난 데뷔한 적도 없어!”

끌려 나가는 유빈을 보면서 진저가 고개를 저었다.

“인재가 없슴미다.”

[가로 엔터, 진짜 리얼로 신규 직원 채용 중!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

* * *

[가로 엔터 채용 면접의 현장]

섬네일은 규영에게 포박당하는 유빈이 1/3, 그리고 그것을 보고 놀라는 멤버들과 진저가 1/3, 나머지는 화를 내는 손혜빈의 얼굴이었다.

어째서 손혜빈이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느냐면, 놀랍게도 손혜빈을 영상 섬네일로 쓰면 조회 수가 높다는 게 경험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손혜빈을 잊지 않고 있단 증거이기도 했다.

“진짜 누나 컴백하는 거 어때? 문현 씨는 요즘도 활동하시잖아.”

문현은 손혜빈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남자 솔로 아티스트다.

“맨날 영상에 누나 나오면 ‘언니 다시 데뷔해줘요’ 같은 댓글 달리잖아.”

심지어 소수 의견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손혜빈에 관해 이야기한다.

“성필이 너 그거 진짜 믿어? 나 컴백하면 사람들 며칠 좋아하고 끝낼걸? 호들갑 떠는 거 하루 이틀 보냐.”

“그런가.”

성필은 손혜빈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터라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필 수 있었다.

피부에 돈을 억 단위로 투자한 사람답게, 세월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손혜빈의 선천적인 노화가 느린 까닭도 있을 것이다.

“누나 필러 맞아?”

“얘가 못 하는 말이 없네. 내가 너 자꾸 용서해주니까 옛날 일 다 잊어버렸지? 또 구석에 끌려가서 갈궈지고 싶니?”

“아니, 피부가 너무 좋으니까 그러지.”

“다 현대 의술과 화학 기술의 힘이지.”

의과, 화학과, 항상 응원한다. 좋은 시술과 화장품을 계속 개발해주길!

“누나 진심으로 애들이랑 비교해도 안 밀려.”

“야 그만해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네. 내 나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래.”

“진짜라니까.”

“하, 참 나.”

“누나 보면 돈이 얼마나 좋은 건지 새삼 느끼고 그래.”

“참 나…….”

잠시 후, 성필은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다신 주먹을 쓰지 않기로 맹세했는데, 맹약을 어겨버렸군.”

“뉴, 뉴냐아, 나, 주글 거 가태애……. 구급챠아…….”

성필은 간신히 회복하고 다시 의자로 올라왔다. 그리고 새로고침 하여 영상의 조회 수를 다시 확인했다.

“며칠 지나는데도 상승세가 계속 있네.”

“입소문을 타나 봐.”

소녀연맹이나 이 영상에 출연한 다른 아이돌 팬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엔터계로 오고 싶은 이들 사이에서 영상이 돌아다니는 게 분명하다.

“인재들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네.”

“성필아 너무 기대하지 마. 상헌 씨 같은 분은 다시 안 올 거니까.”

양상헌은 가로 엔터에 있는 것 자체가 의문일 정도로 스펙이 높다.

“다 우리가 처음부터 키워야 할걸.”

그래도, 취업 사이트에 생으로 채용 공고를 올리는 것보다야 결과물은 더 좋을 것이다.

가로 엔터는 소녀연맹을 프로듀싱한, 성공할 가망이 높은 신생 기획사다. 가로 엔터의 초기 공신 자리를 보고 이직을 노리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채용 공고 영상을 제작함으로써, 확실히 업계에 홍보는 되었을 것이다.

“이대로 인원이 모이면…….”

소녀연맹의 일본 데뷔, 콘서트 투어를 끝내고 이어질 기획.

‘우리들의 프로듀싱’을 진행할 충분한 인력이 모인다. 가로 엔터는 그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멤버들을 아예 황무지에 던져서 그녀들끼리 해결하기만 바라지 않는다.

프로듀싱이란 일은 그저 ‘하고 싶은 것’만 고려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것만 늘어놓다 보면, 인터넷에서 아이돌 프로듀싱에 대해 열을 올리는 입만 산 인간들과 다르지 않게 돼버린다.

“일본 활동이랑 콘서트 하면서도 ‘우리들의 프로듀싱’을 같이 진행할 맨파워가 생길 거야.”

최대한 많은 레퍼런스. 최대한 많은 검토.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의견. 최대한 많은 회의.

‘우리들의 프로듀싱’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면, 준비가 50%는 끝나 있어야 한다. 멤버들은 준비물을 갖추고서 프로듀싱에 뛰어드는 것이 된다.

“그리고 연습생을 받고 차기 그룹을 기획할 여력도 생길 거고.”

성필과 손혜빈이 유대를 나누듯 주먹을 부딪쳤다.

“고생 많았다.”

“누나도. 누나 덕에 일이 잘 풀렸어.”

“내가 뭘. 다 메인 프로듀서인 성필 님 덕분 아니겠어?”

메인 프로듀서 박성필. 그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소녀연맹의 기획을 순조롭게 이끌어왔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 능력을 이후에도 원활히 발휘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믿는다.”

손혜빈은 성필을 향해 깊은 신뢰를 보였다. 성필은 그녀의 칭찬에 미소만 띨 뿐이었다. 속에 감추고 있는 말을 숨기고서.

‘다음 보이그룹 메인 프로듀서는 혜빈 누나야.’

처음 이사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학을 떼면서 거절했던 손혜빈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번에도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홍규헌도 메인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은 성필 쪽에 있다고 판단하겠지. 이미 검증된 사람을 놔두고 손혜빈을 중심이 앉힐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성필은 그때가 오면 손혜빈을 밀 것이다. 그녀가 지닌 잠재력을 알고 있으니까.

‘전생에선 누나는 잘 해냈어.’

오히려 이번 생에선 그 잠재력을 억누르고 있었다. 성필의 역할은, 손혜빈이 전생처럼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야, 근데 너 이제 보니까 피부 좋다. 나 칭찬할 애가 아닌데?”

갑작스러운 칭찬에도 성필은 당황하지 않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생에서 조아라에게 갖가지 피부 관리 비법을 전수받은 터였다. 그래서 30살에 미리 체계적인 피부 관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과 관리법을 알 수 있다?

이게 회귀하는 맛이지. 주식 그딴 거 다 필요 없다. 오로지 젊음, 오로지 외모뿐…….

“웃는 거 봐라. 기 살려주려고 한 말인데 진짜 믿네. 우리 성필이 귀엽다 귀여워.”

“…….”

‘그냥 다음 그룹 메인 프로듀서도 내가 할까?’

* * *

“너희들의 의견이 꼭 필요해.”

성필은 소녀연맹 멤버들을 불러 모으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가 ‘꼭’이란 단어를 쓸 정도이니 보통 사안은 아니리라.

“대학 축제 스케줄 두 개 중에 하나만 갈 수 있거든. 여기서 골라줘.”

백설하는 일본 데뷔와 관련된 일이거나 그에 비견되는 중요한 사안이라 예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축제요? 그걸 저희가 고르나요?”

작년의 축제 시즌엔 이런 일이 없었다. 멤버들은 회사에서 정해주는 대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던 것이다.

“응. 경섭이랑 계속 회의해도 결론이 안 나왔거든. 최종적으로 너희들 의견 받아서 하기로 했어.”

“어……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는데요?”

“오늘.”

백설하는 핸드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했다. 아직 3월 초인 것을 보고, 자신의 시간개념이 이상하지 않단 사실에 안도했다.

성필은 그녀가 의문을 품었단 사실을 깨닫고 이에 관해 설명했다.

“3월이면 웬만한 연예인들은 전부 스케줄이 확정돼 있어. 우리도 당연히 이전부터 축제 스케줄을 받아왔고.”

“아, 그렇구나. 그럼 어떤 축제들인데요?”

시간대는 같지만 위치가 경상도나 전라도라서 한 곳을 골라야 한다던가.

“입실렌티랑 아카라카.”

“저희 외국에 공연 가나요?!”

“설하, 입실렌티랑 아카라카 몰라?”

“…….”

뭐지? 엄청 유명한 지역인가?

백설하는 자신의 무식이 드러날까 걱정되어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너희들 다?”

멤버들도 백설하와 같긴 마찬가지였다.

멤버 전원이 대학에 관심이 없었단 게 여실히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다들 서울이 고향일 텐데…….”

“외, 외국 아니었어요?”

“고려대학교랑 연세대학교 축제를 뜻해. 고대는 입실렌티, 연세는 아카라카.”

이 두 곳 모두에 공연 섭외 제안이 왔다. 공교롭게도 학생회에서 제시한 금액이 다 같다. 그리고, 둘 중 한 곳밖에 가지 못한다!

“걍 아무 데나 해줘요.”

성필이 한껏 무게를 잡기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싶었는데, 같은 지역의 축제 두 개 중 고르란 거라니.

조아라는 실망해선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성필은 의외로 멤버들에게서 반응이 없자 곤란한 기색을 표했다. 최소한 한 명이라도 의견이 있을 줄 알았건만.

“이사님.”

그때 리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아카라카랑 입실렌티가 무슨 뜻인가요!”

“어? 잠시만.”

성필도 옛날에 들었지만 정확한 뜻은 잊어버렸다. 그는 인터넷에 검색하여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었다.

“아카라카는 옛날 연세대 교호에 들어가 있어. ‘아카라카칭 아카라카쵸 아카라카칭칭 쵸쵸쵸 랄랄라 시스붐바 연세선수 라플라 헤이 연세 야’래.”

“……하이(네)?”

“요즘엔 축약해서 ‘아라칭 아라쵸 아라칭칭쵸쵸쵸 랄랄라 시스붐바 연세선수 라플라 헤이 연세 야’라네. 아라카라 뜻은 여러 설이 있는데, 다들 동의하는 건 없대. 로마 장군이 외친 구호라거나.”

“연대가 마음에 드네.”

“교호에 아라 네 이름 들어가 있어서?”

“네. 교호 제창할 때 다들 내 이름 불러주는 거 아니에요.”

“그래, 이왕 가는 건데 그런 이유라도 있으면 좋겠…… 리카?”

리카가 이상하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은 물론 귀까지 새빨갛게 변해선, 시베리아 강의 얼음보다도 차갑게 굳어버렸다.

“리카 왜 그래? 갑자기 열나?”

“……이, 이잉, 으어, 아, 아니, 아니에, 에요!”

“뭔데. 걸리는 거 있으면 말해줘.”

“진짜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리카는 이상함을 넘어 성필에게 화까지 냈다. 그러곤 퍼뜩 정신을 차리곤 목소리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야. 괜찮아.”

성필은 도저히 리카가 과민 반응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캐물을 수 없는 분위기인지라, 더는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리카는 대화를 끝내고도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있었으니까.

교호가 일본어로 이상하게 해석되기라도 하나?

“입실렌티는 고대 교호에서 나왔어. ‘입실렌티 체이홉 카시코시코시코 칼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 칼마시 케시케시 고려대학’이래.”

“뜻은요?”

“‘알렉산드로스 입실란디스, 안톤 체호프,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그리고 칼 맑스가 계시는 고려대학’이라네. 유명한 혁명가, 독립운동가, 사상가 이름을 넣었대.”

“카를 마르크스?!”

이번에도 리카가 반응했다.

“저희는 소련이란 이름으로 욕먹는데 민족 고대 교호엔 왜 카를 마르크스가 있나요!”

“민족 고대라니. 리카 의외로 잘 아는구나.”

“민족 고대는 욕먹지 않는 건가요!”

“전통이니까 뭐.”

리카가 눈동자에 의지를 새겨 넣었다.

“칼마시 케시케시!”

“리카는 고대 가고 싶어?”

“저희랑 맞는 거 같아요!”

“……그래.”

설마 리카가 소련이란 이름에 역사적인 맥락을 따져서 애정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나는 연대 가고 싶어요.”

신아름은 조아라의 편을 들어 연대를 골랐다.

“고대 가서 교호 제창했다가 또 욕먹기 싫거든요.”

소녀연맹은 이름의 줄임말로 한때 꽤 주목을 받았었다. 부정적인 주목이었지만 말이다.

소녀연맹이 ‘칼마시 케시케시’라고 외치는 게 고대 축제 직캠에서 공개되면, 또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친 걱정이더라도 신아름은 부정적인 이슈로 소녀연맹의 이름이 언급되는 게 싫은 것이다.

“설하는?”

“저는 아무 데나 괜찮아요.”

백설하는 그렇고.

“하양이는?”

“케이어스는 어디 가는지 아세요?”

“케이어스는 저번에 듣기론 연대에…….”

“고대!”

조아라와 신아름이 단번에 의견을 뒤집었다. 지원군이 늘어나자 리카의 기세가 단숨에 살아났다.

“칼마시 케시케시!”

하지만 그 구호에 따라주는 이는 없었다.

“케시케시…….”

* * *

리카는 고대 축제 섭외를 받은 뒤 며칠 동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가 자꾸만 고려대학교의 교호를 연습했다.

보다 못한 성필이 리카를 붙잡고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교호라니, 청춘이잖아요! 멋져요!”

눈을 빛내던 리카는 갑자기, 그리고 서서히 어깨를 늘어뜨렸다.

“대학 축제, 아타시(저)는 아마 즐길 일이 없겠지만요. 그 열기를 공유해보고 싶어요! 대학의 소속감이요!”

일본 대학 진학률은 50~60% 사이다. 즉, 절반은 대학에 간단 뜻이다. 리카의 일본 친구들도 이젠 대학생이 됐을 것이다.

아마, 리카는 일본의 친구들과 연락할 때마다 대학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

‘리카는 고등학교 생활도 못 했고, 대학생이 될 일은 아마 평생 없을 테니까.’

캠퍼스 라이프에 낭만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열망이, 최근 들어 리카가 들뜬 이유였던 것이다.

비록 축제에서나마 교호를 외치고, 대학생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헤헤, 열심히 연습해서 안 틀리고 교호 제창할 거예요! 대학생분들 수천 명이랑 함께요!”

“리카.”

“네?”

“축제 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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