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32화 (332/760)

332화

약 2초간 혼절해 있던 장하양이 벌떡 일어나 홍규헌을 꼭 껴안았다.

“사장님, 반드시 우승해요.”

“반응이 너무 극과 극이잖아. 솔직히 말해. 나랑 같은 팀 돼서 별로지?”

“아니요. 오히려 꼭 이기고 싶어졌어요. 절대로 다른 멤버한테 넘겨줄 수 없어요. 반드시, 절대로, 꼭 저희가 먹어요.”

“랍스터가 그렇게 좋아……?”

다음은 신아름이 종이를 펼쳤다.

“지음 오빠 컴온.”

“어, 나야?”

“네. 잘해봐요.”

신아름과 정지음이 악수했다. 정지음은 두 눈에 승리를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오늘 배 터지게 먹…….”

“기대 안 해요. 오빠 특기가 체력적인 것도 아니잖아요.”

“……해보지도 않고 그래?”

“에이, 걍 쉬엄쉬엄해요. 져도 뭐라고 안 할게요.”

“하아.”

정지음의 승부욕이 더욱 강해졌다.

“아름이 너 진짜 두고 봐라. 오늘 내가 캐리해서 이긴다.”

“뭐, 이기면 좋고요.”

신아름은 손혜빈에게서 배운 남자 조종법을 그대로 써먹었다.

손혜빈이 말해주기로, 남자는 힘이나 체력적인 면으로 비교당할 때 자존심이 팍 깎인다고 했다.

자매품으로는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있다.

‘됐다. 이걸로 의욕은 확보했고.’

리카는 손혜빈에게서 저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남녀차별이야!’라고 외쳤었지만, 신아름이 직접 보기에 효과가 상당했다.

아마 멤버들 중 가장 지고 싶지 않은 이가 신아름일 것이다.

애초에 그녀는 주제가 무엇이든 승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뭐야, 그럼 내가 아저씨랑 팀이에요?”

조아라가 쪽지를 펴면서 성필에게로 다가갔다. 예상대로 종이에는…….

[33살 박성필]

“왜 내 쪽지에만 나이가 적혔어?!”

“아, 그거요?”

민경섭이 손혜빈을 가리켰다.

“손 이사님이 꼭 넣어달라고 했는데요?”

“……됐다. 난 나이에 자격지심 같은 거 없으니까. 30대의 저력을 보여주지 뭐.”

“성필아 너 아침에 건강하긴 하니?”

“죽인다!”

성필과 손혜빈이 때아닌 술래잡기로 체력을 소모했다.

민경섭이 손뼉을 쳐서 주의를 모았다.

“보물찾기는 무작정 공간을 정해두고 특정 물건을 찾는 방식이 아닙니다. 미션을 해결하면서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서 물건을 얻으시면 됩니다. 자, 이건 각 팀의 첫 번째 미션.”

그가 팀마다 작은 상자를 나눠주었다.

“나가서 펴보시면 됩니다. 자, 그럼 시……!”

10명이 한꺼번에 우당탕탕 펜션을 뛰쳐나갔다. 민경섭은 홀로 남아, 문방구에서 사 온 장난감 화약총을 주머니 안에서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작.”

민경섭이 피시시 웃었다.

“괜히 걱정했네.”

보물찾기라니.

멤버들은 몰라도, 어른들을 데려다 두고 이런 게임을 시킨단 게 살짝 걸렸었다.

그런데 걱정조차 필요 없었던 듯하다.

* * *

펜션에서 충분히 멀어진 후, 성필과 조아라는 숨을 고르면서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곱게 접힌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아저씨 빨리 펴요! 아, 신아름 쟤가 먼저 출발했잖아요!”

“펴고 있어 재촉 좀 하지 마!”

네이버 지도를 프린트해서 어느 곳에 붉은 점을 찍어두었는데, 어딘지 알 방도가 없었다.

간소화한 지도가 아니라, 실제 지형이 찍혀 있는 것이라 더욱 식별하기 어려웠다.

“……뭔데요 이게.”

“그, 일단 현재 위치를 찾자. 여기 펜션이 계곡 근처에 있고…….”

“회색 자갈밭. 산 모양을 보면…….”

성필과 조아라가 주변의 풍경을 세심히 살폈다. 그리고 지도로 확인하길 여러 번이었다.

위치를 특정하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조아라가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저 출발한 팀이 셋이나 있는 걸 보니, 전부 지도로 받은 건 아닌 듯했다.

아마 글이나 수수께끼, 특정 장소를 지시받은 팀도 있…….

“아저씨.”

“왜, 찾았어?”

“아뇨. 저기 봐요.”

조아라가 리카와 한구인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지도와 함께 어떤 물건이 놓인 게 보였다.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막막함이 느껴졌다.

“수수께끼인가?”

“그러게. 안 움직이시…….”

그때 한구인이 등에 멘 가방에서 나침반과 각도기를 꺼냈다. 그리고 지도에 가져갔다.

성필이 깜짝 놀라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헤이 헤이 헤이 헤이! 한 이사님 거기서 스톱!”

가방 안에 우연히 미션에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고? 성필은 그런 형편 좋은 상황이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박 이사님? 왜 그러십니까?”

“경섭이랑 짠 거죠?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요?”

“한의사님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네. 경섭 오빠랑 랍스터 나눠 먹기로 했어요?”

“아앗, 아라쨩이라도 내 팀원을 욕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두 팀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한구인은 자신이 꺼낸 나침반과 각도기를 보곤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확실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보여요.”

“여긴 산이잖습니까. 조난당할 수도 있으니 가져온 겁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요.”

“…….”

보통 사람이 저렇게 말했다면 절대 안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구인이 말하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나침반을 그렇다 치고, 각도기는 왜요?”

“지도 읽을 때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한구인이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주변의 지도를 꺼냈다.

대체 얼마나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지?

“흐흥, 마음껏 감탄하세요!”

리카는 자신이 준비해오기라도 한 듯 한껏 의기양양해졌다.

“미션이 뭐길래 그게 필요해요?”

조아라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자 한구인과 리카가 허겁지겁 종이를 숨겼다.

하지만 이미 본 이후였다.

“아라야, 뭐였어?”

“숫자랑 알파벳이던데요.”

“……좌표네.”

바닥에 펼쳐진 지도 위에는 한구인이 직접 준비해온 나침반과 각도기가 아니라, 미션 상자에서 나온 나침반과 각도기가 있었다.

즉, 한구인 팀의 미션은 독도법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밸런스 개판이다 진짜.’

독도법은 군대에서 배우기 마련이지만, 군필자도 전역하자마자 잊어버리는 기술이다.

한구인은 기억하는 듯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미션이 걸렸으면 손도 발도 못 쓰고 당했을 것이다.

“아라쨩 저리 가! 박 이사님도 저리 가세요! 전문경영인 과정을 수료한 초 엘리트 한 이사님이 딴 과실을 어부지리할 생각은 버리세요!”

“야 리카, 어차피 이거 팀마다 목적이 다르거든?”

“……아라쨩 치사해! 우리한테도 아라쨩 팀 미션 보여줘!”

“아니야 아라야.”

조아라가 되물을 새도 없이, 성필이 지도를 한구인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뭐 하는 거……!”

“미션이 겹치는 팀도 있어.”

“……네?”

성필의 지도에 찍힌 붉은 점을 본 한구인도 그것을 깨달은 듯하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대략적인 좌표 위치를 확인한 후 헛웃음을 띠었다.

“그렇군요. 보물찾기는 각 팀이 협력하지 않을 걸 전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든 팀이 각자 뛰쳐나갔으니, 그 전제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맞아요. 단계마다 난이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부 같은 걸 가리키고 있어요.”

“사기야! 박 이사님 팀은 저희보다 수고가 더 적잖아요!”

“그래. 하지만 2단계 미션 때는 어떨까?”

“……아!”

아마도, 1단계에서 고난도의 미션을 받았던 한구인 리카 팀은 2단계에선 쉬운 미션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역으로 성필 조아라 팀은 2단계가 어려울 것이다.

“단계마다 난이도 차등을 줘서 밸런스를 조절한 거야.”

하지만, 과연 민경섭이 알았을까?

“리카, 한 이사님. 동맹해요.”

이렇게나 빨리 두 개의 팀이 연합을 이루게 될 줄.

* * *

홍규헌과 장하양 팀은 1단계 미션을 완료했다. 그로써 얻은 암호를 민경섭에게 톡으로 보내니, 2단계 미션이 도착했다.

“우리가 제일 빠른 거 같은데?”

“이 기세를 몰아서 우승해요.”

장하양과 홍규헌이 뜨겁게 손을 맞잡았다.

“그래, 우승은 시간 문제야.”

1시간 후.

두 사람은 등산길 중간 쉼터에 앉아 땀을 식혔다. 1시간 동안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무슨 징표를 수집해서 암호를 풀어야 하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시 시작해요.”

“나 다리가 너무 아프다. 업어주면 안 돼?”

“업히세요.”

장하양이 든든한 등판을 내보였다.

“……됐어.”

30분 후.

장하양은 흙길에 쪼그리고 앉아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을 세밀하게 살폈다.

도저히 미션을 해결할 수 없어서, 두 사람은 전략을 바꾸었다.

“아마, 모든 팀의 미션이 가리키는 방향은 같을 거예요. 그럼 굳이 저희가 찾을 필요가 없죠.”

“그렇다면…….”

“네.”

미션 약탈이다.

더 쉬운 미션을 가진 팀을 찾아서 빼앗으면 그만이다.

장하양은 흙을 한 줌 집어서 코 근처에서 주르륵 떨어뜨렸다.

그녀는 흙의 냄새를 맡았다.

오래된 사냥꾼처럼 통찰력 깊은 눈빛이 번뜩였다.

홍규헌은 허허롭게 웃으면서 그 광경을 보았다.

“장하양, 뭐 해?”

“냄새를 찾아요.”

“…….”

“한 이사님이 추천해주신 다큐에서 봤어요. 파파투족 사냥꾼들은 흙에서 냄새를 찾아서 사냥감을 추적해요. 조화로운 냄새 가운데 섞인 이질적인 걸요.”

“……그러니?”

“네. 인간은 개보다 후각 세포의 종류가 두 배밖에 안 적대요. 인간의 후각도 쓸 만하죠.”

홍규헌은 ‘제정신이 아니군’이란 말을 꾹 참았다.

곧, 장하양은 바닥까지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곤 고개를 홱 들고 숨을 깊게 뱉었다.

“박 이사님 냄새가 나요.”

“제정신이 아니군.”

* * *

신아름과 정지음 팀의 2단계 미션.

버스킹으로 2,000원 가치 이상의 물건이나 돈을 벌 것.

두 사람은 사람이 북적이는 등산로의 초입까지 내려가 버스킹을 펼쳤다.

이미 둘의 앞엔 네다섯의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산에선 보기 힘든 이질적인 풍경을 즐기는 중이었다.

“북적이는 삶에서 나는 쉬길 바라요.”

신아름의 감미로운 보컬의 뒤로는 정지음의 피아노 연주가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는 두 개의 핸드폰에 피아노 건반 어플을 다운받고, 양손을 폰 위에 두고 연주했다.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살아가길.”

신아름은 관객에게서 정지음으로 눈을 돌렸다. 시선을 캐치한 정지음은 한 박자 쉬었다.

보컬이 끝나고 브릿지에 들어섰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솔로.

정지음의 손가락이 추적이는 비처럼 끈적하고, 하지만 나른한 한낮 오후처럼 여유로운 음들을 뽑아냈다.

솔로가 끝나갈수록 연주는 격해지고, 신아름은 하이라이트 파트에 들어갔다.

“그대가 내게 알려준 속삭임이―”

관객들이 탄성을 뱉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무와 산을 타고 풀을 휩쓸었다. 저 멀리서 가고 있던 행인들마저 등을 돌려 신아름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무성한 나무의 커튼을 뚫고 조명처럼 비추는 자연의 무대.

그곳에서 펼쳐진 때아닌, 동시에 반가운 공연에 사람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감사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버스킹이 끝나고, 정지음은 10명 이상으로 늘어난 관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공연료를 받았다.

그의 등산 모자 안에는 작은 초코바며 동전들이 쌓여갔다.

한 바퀴 돌자 2,000원어치는 가뿐히 넘을 돈이 쌓였다.

“됐다. 이거 찍어서 경섭이 형한테 보내자.”

“너무 쉬운데요?”

둘은 승리를 예감하며 미소를 교환했다.

그리고 다음 미션을 위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아직도 기대감에 차서 기다리는 관객들을 볼 수 있었다.

“……오빠.”

신아름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조금만 더 해요?”

“나쁘지 않지.”

정지음 또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는 두 개의 폰 중 자신의 것에 드럼 어플을 다운받았다. 몇 번 눌러보더니, 그는 즉시 감을 잡았다.

“오케이, 재즈로 간다.”

피아노와 드럼으로 이루어진 선율이 다가오자, 신아름은 감을 잡고 흥겹게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You're just too good to be true.”

여름의 음악회는 계속된다.

* * *

“아이돌에게는 그런 시기가 와.”

백설하는 손혜빈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경청했다.

어찌나 집중하는지, 그녀의 한마디마다 고개를 수도 없이 끄덕였다.

“정신력과 신체 능력, 기술이 정점에 이르러 세 수치가 교차하는 순간이. 아이돌로서의 멘탈, 마음가짐, 정신적인 내구도, 기술. 이건 계속 성장할 수 있어. 하지만 신체는 아니야.”

“그렇죠. 나이가 계속 드니까…….”

“인간의 신체적 최전성기는 22세에서 23세 사이야.”

백설하가 뜨끔했다.

손혜빈의 말대로라면, 백설하는 이미 신체적인 최전성기를 지난 게 된다.

“하지만, 그 나이에 정신까지 전성기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지.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해.”

“아…….”

“최대한 많은 테크닉을 배우고, 정통해지고. 또 정신도 성장하고. 몸이 하루라도 젊을 때 완성에 닿아야만 해.”

“그런 때가…… 손 이사님한테도…….”

“혜빈 언니, 라고 불러야지?”

“아, 혜빈 언니한테도 그럴 때가 있으셨어요?”

“있었지. 몇 개월 정도. 아, 이게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이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만 닿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이다. 그럴 때가 있었지. 그때가 25살이었어.”

“아…….”

까마득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손혜빈은 과거 2세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대선배이다.

백설하는 그녀의 무대를 보고 아이돌을 꿈꾸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런 손혜빈이 해주는 말은 하나하나가 금과옥조였다.

‘혜빈 언니는 25살에 절정에…… 아니, 정점에 달하셨구나. 인생에서 단 한 순간, 극히 짧은 시기밖에 겪을 수 없는 정점에…….’

백설하는 이제 24살이다.

약 4달 후에는 25살이 된다.

손혜빈이 정신적, 신체적, 기술적인 파트가 전부 교차하여 황금기에 이르렀다던 나이까지 겨우 4달밖에 안 남았다.

‘나는 가능할까?’

아이돌 3년 차에, 손혜빈처럼 능력의 황금기를 누릴 수 있을까?

“전문 무용수나 가수라면, 기술로 나이를 커버하는 게 가능해. 손에 꼽는 천재가 극에 이른 기술을 완성시켜서, 나이로 꺾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거지. 하지만 아이돌은 안 돼.”

아이돌에겐 나이 또한 중요한 능력이다.

선망과 동경, 환상과 아름다움을 파는 직업이니까. 외모란 시간이 지날수록 꺾여가는 것이기에,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대강 내가 하고 싶은 조언은 이 정도?”

손혜빈은 진지한 이야기를 한껏 해놓고서도, 정말 별것 아니란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고민에 빠진 백설하를 위로해주기 위함이었다.

“설하야 저기 봐.”

산 중턱의 식당이었다.

그 식당은 짧은 구름다리로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저기서 좀 쉬다 갈까?”

“그, 그런데 저희 아직 1단계 미션도 못 끝냈잖아요.”

산책하면서 담소를 나누다 보니, 미션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백설하는 미션보다 손혜빈의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중요했다.

백설하보다 먼저 아티스트로의 길을 걸었던 손혜빈의 경험은,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가치가 있었다.

“적당히 하자. 우리 많이 걸었잖아?”

“……그럴까요?”

“가자 가자!”

손혜빈은 백설하와 어깨동무하고 구름다리를 걸었다.

백설하는 어릴 적의 우상과 이런 관계가 된 것이 매우 기뻤다.

때론 예상치 못하게 몸을 더듬어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친근감의 표시라 생각하면 기쁠 뿐이다.

“어, 사장님?”

“손 이사?”

가게 바깥에 놓인 흰색 플라스틱 테라스엔 선객이 있었다.

테이블에 김치전과 막걸리를 놓고 즐기는 중인 홍규헌과 장하양이었다.

장하양이 벌떡 일어나 신참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받자마자, 백설하는 포식자에게나 받을 법한 위협을 느꼈다.

“우, 우리 미션 1단계도 못 깼어!”

장하양이 스르륵 앉았다.

“사장님 포기하셨어요?”

“2단계 미션을 도저히 못 깨겠어.”

“뭔데요?”

“흩어진 징표 찾기.”

“모르는 사람이 뽑아간 거 아녜요?”

“그럴지도.”

손혜빈과 백설하가 합석하고, 테이블의 분위기는 훨씬 떠들썩하게 변했다.

여름임에도 밖은 시원했다.

숲과 계곡이 가져다주는 상쾌함에, 네 사람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 * *

네 사람이 수풀을 뚫고 나타났다.

성필, 한구인, 조아라, 리카였다.

“한 이사님 조심하세요!”

성필이 한구인의 앞을 팔로 막았다.

수풀을 나오자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뿌리가 단단하게 지탱하는 내리막길은 흙과 몇몇 바위로 덮여 있었다.

“어, 저거.”

소녀연맹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보인다.

내리막길 아래의 강가에 있었다.

‘의표를 찔렸네.’

설마 최종 목적지가 펜션에서 불과 수십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니.

‘강의 폭은 4m에서 5m인가.’

수심이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강의 중앙에는 자갈로 이루어진, 섬이라고 불리기에도 초라한 작은 땅이 있었다.

그곳에 깃발이 꽂혀 있다.

“저게……!”

리카가 황급히 말을 멈추었다.

그렇다. 저게 미션의 최종 목표다.

깃발에 새겨진 글자를 민경섭에게 전송하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되는 것이다.

험한 길을 함께 헤쳐온 동료를 배신해야 할 때란 뜻이다.

“에잇!”

리카가 성필의 허리를 팔로 부여잡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족쇄가 생긴 성필은 당황했다.

“너……!”

그에 조아라도 한구인에게 매달려 족쇄가 되었다.

성필과 한구인은 사태를 파악했다.

“박 이사님! 순순히 가만히 있으세요! 랍스터는 아타시(저)랑 한 이사님 차지예요!”

“한의사님 전에 내 부탁 뭐든 들어준댔죠? 가만히 있어요! 걍 가만히 있어요!”

리카가 생각하기에, 조아라의 발언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래서 리카는 말을 바꾸었다.

“아직 친구 계약 1조 어긴 빚 있어요! 그거 쓸게요! 박 이사님 꼼짝하지 마세요!”

성필과 한구인은 소원을 입에 올린 멤버들을 보면서 수심에 잠겼다.

성필의 뇌리에는 리카와 함께해 온 나날들이 지나갔다.

소중한 보물인 추억들이.

‘리카,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이돌을 이토록 사랑하진 못했을 거야.’

리카는 성필 삶의 빛이요 태양이었다.

그녀 덕에 성필은 아이돌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

프로듀서로서의 기쁨을.

‘아라 씨.’

한구인도 조아라와의 지난날을 떠올렸다.

‘제가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라 씨 덕분이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어리다고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프로 의식, 멘탈리티에 경의를 표해왔습니다.’

춤을 향한 집착과 열정, 노력.

한구인은 조아라에게 수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기에 감사한다.

그녀 덕에 아이돌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한구인은 조아라를 시작으로, 아이돌의 아티스트십을 믿게 되었다.

‘제 인생에 찍힌 하나의 방점, 그게 바로 아라 씨입니다.’

두 남자는 동시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리카와 조아라, 둘에게 소중하기 그지없는…….

“방해되니까 놔!”

“끼에에에에엑!”

성필이 리카를 거칠게 떼어냈다.

“놓으십시오!”

“한의사님 이럴 거예요?! 약속은요!”

“사내가 승리를 탐하는 데 누가 무어라 하겠느냐! 그딴 약속 따위 백번 천번 어길 수 있다! 부와 영예, 그게 내 삶의 모든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나는 신의를 버리고 영화를 취하겠다!”

한구인이 조아라를 밀어냈다.

동시에, 두 남자가 비탈을 놀라운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땅에 닿은 즉시, 둘은 전혀 다른 길을 향해 갈라졌다.

‘여기가 최단 루트다!’

한구인은 강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성필은 빙 돌아서 강 중앙에 난 섬으로 이어지는 돌다리로 향하는 중이었다.

한구인의 머리가 비상하게 회전했다.

‘강의 수심은 언뜻 보기에 1.5m를 넘지 않는다! 상이 굴절되는 정도를 계산하면……!’

강을 그대로 건너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옷이 더러워진다고?

그래서 어쩌란 건가.

‘리카 씨, 저는 당신을 위해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물에 젖어?

상관없다.

‘리카 씨께 변변찮은 도움도 주지 못했던 저지만, 아이돌로서 빛나는 당신을 위해 이 한 몸 더럽혀 승리를 취하겠습니다!’

한구인이 힘차게 강을 밟았다.

그의 용기에 리카와 조아라가 감탄을 토했다.

“끄아아아악! 수심이! 수심이이!”

한구인이 강에 빠져 허우적댔다.

예상보다 강이 깊었던 모양이다.

성필은 빙 돌아 돌다리 앞에 이르렀다. 그것을 조심조심 밟을 생각도 하지 않고, 첫 번째 다리를 강하게 밟으면서 도약했다.

‘아라야, 아이돌이 돼줘서 고마워. 항상 너에겐 감사하고 있어. 나는…….’

“아저씨 못 이기면 진짜 가만히 안 둬요! 그거 뺏기기만 해봐 영원히 펜션에 발도 못 들이게 할 거야아아아!”

‘……그냥 져버릴까?’

아무튼, 성필은 돌다리를 쉽게 건너 깃발을 취했다. 소녀연맹의 깃발 아래, 매직으로 옅게 쓰인 글자가 있었다.

[투쟁, 해방, 소녀, 연맹, 승리.]

이게 승리의 키워드다.

성필은 즉시 그것을 민경섭의 톡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민경섭은 야유회 단톡방에 선언했다.

[우승팀, 박성필 조아라 팀]

성필이 힘차게 깃발을 치켜들었다.

“한의사님!”

그런데, 조아라는 한구인의 이름을 외쳤다.

왜 그러나 싶어서 한구인 쪽을 보니, 그가 얼굴만 겨우 물 밖으로 내놓고 천천히 하류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강의 아래는 폭이 꽤 넓고 수심도 깊어 보였다.

‘설마, 한 이사님 수영 못 하시나? 아니면 쥐가 났나?’

성필은 깃발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강에 뛰어들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리카가 강으로 몸을 던졌다.

“리카아!”

조아라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무색하게, 리카는 한구인을 이끌고 너무나도 쉽게 물 밖으로 나왔다.

“한 이사님!”

뒤늦게 성필과 조아라가 그 곁으로 다가갔다.

리카와 한구인은 물에 홀딱 젖어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한구인이 바닥에 누워 쿨럭쿨럭 물을 뱉어냈다. 그의 시선이 힘없이 리카에게로 향했다.

리카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고, 멋지게 브이를 그렸다.

“한 이사님, 이 빚은 절대 가볍지 않아요!”

“……하하.”

한구인이 성필의 부축을 받아 상체를 힘겹게 일으켰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떨린다.

그러면서도 그가 하는 말이라곤, 참으로 상황에 맞지 않았다.

“승리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때론 승리보다 값진 게 있죠. 한 이사님의 용기, 잘 봤어요! 이만한 일에 위험을 무릅쓰실 정도면 가로 엔터의 앞날은 창창하네요!”

“……예.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둘 사이에서 서로를 향한 인정과 우정이 엿보였다. 그게 부러워서, 성필은 조아라를 흘끗 보았다.

“뭐요.”

“나는 칭찬 안 해줘?”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요?”

“……하긴,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

잠시 후, 보물찾기가 끝나고 펜션에 먼저 돌아와 있던 다른 팀들은 진귀한 광경을 보아야 했다.

“더 아이돌 이시카와 리카 님의 행차시다!”

리카가 성필과 한구인의 어깨에 타고 의기양양이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조아라는 근처에서 풀잎을 마구마구 뿌렸다.

“우리 회사는 왜 이럴까.”

“회사 주인 닮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활기차고 좋네요.”

손혜빈이 홍규헌을 위로했다.

* * *

전기식 바비큐 기계 세 개가 전부 가동되었다. 그 위에 올린 고기들이 굽는 소리에 사람들이 홀린 듯 몰려들었다.

근처의 테이블에는 같이 먹을 채소며 반찬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홍규헌이 종이컵을 나무젓가락으로 두드렸다.

“술 채웠지? 다들 주목.”

10명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

“갑자기 권주사 하려니까 부끄럽고 그러네. 역사적인 가로 엔터 1회 야유회니까. 음…….”

홍규헌은 모인 인원들의 면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이들이다.

“하하, 잘 안 되네. 혹시 나 대신 권주사 하고 싶은 사람 있어?”

장하양이 손을 슥 들었다.

“어, 그럼 장하양이…….”

“언니가 못 말하게 막아!”

조아라가 명령했다.

리카와 신아름이 달려들어 장하양의 입을 막고 몸을 구속했다.

홍규헌은 의아했지만, 멤버들이 저러는 것을 보면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래 뭐어, 내가 해야겠네. 으음…….”

“사장님 빨리하세요! 팔 떨어지겠어요!”

“가로 엔터 파이팅!”

“재미없어!”

리카는 세상이 떠나가라 웃은 후 ‘가로 엔터 파이팅’을 외쳤다.

이어서 열 개의 술잔이 하늘 높이 향하면서 가로 엔터의 앞날을 축복했다.

모든 이들이 종이컵 안에 담긴 맥주를 마시는 중, 오직 두 사람만이 달랐다.

따로 테이블과 좌석마저 배정된 성필과 조아라였다.

“건배.”

“치얼스.”

성필과 조아라의 와인잔이 쨍 부딪쳤다.

보물찾기 우승자인 두 사람은 10만 원대의 와인과 랍스터찜을 즐길 권리가 주어졌다. 거기에 더해 고기를 안 구워도 되는 특권마저 있었다.

“웩.”

“왜, 별로 맛없어?”

“아니…… 모르겠어요. 맛이 오묘한데요? 이거 상한 거 아닌가.”

성필은 그녀에게 비웃음을 날리곤 천천히 와인을 음미했다.

“와인을 안 즐기는 아라는 잘 모르겠구나.”

“아저씨도 중국 술 좋아하잖아요. 와인 안 마시면서 폼은.”

“의외로 나를 잘 아네?”

“짬밥이 얼만데요.”

둘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잔을 부딪쳤다.

“아저씨.”

“어.”

“오늘 우승한 건 좀 멋졌어요.”

“걍 하는 말이지?”

“들켰네. 솔직히, 그때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못 했어요.”

“어른한테 ‘칭찬’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어른인데요?”

당돌한 반응에 성필이 하 웃었다.

옛날이었으면 ‘그럼 뭐라고 해요?’라고 물었을 텐데.

확실히 친해지긴 한 모양이다.

“너 점점 나한테 거리낌이 없어진다?”

“그래서, 싫어요?”

“어, 싫어. 리카나 보러 가야지.”

일어서려는 성필을, 조아라가 그의 손목을 잡아서 다시 앉혔다.

“왕은 연회에서 안 돌아다니는 거예요.”

“내가 왕이야? 그럼 너는?”

“나도 왕이요.”

“왕비는 어디 갔어.”

“공동 통치죠. 오렌지공이랑 메리 2세처럼요. 랍스터 까줘요. 나 이거 처음 먹어봐요.”

“뭐어?”

성필은 어처구니없단 기색을 보이면서도 착실히 랍스터를 쥐었다.

꽉 쥐고 홱 꺾으니 흰 속살이 드러났다. 성필은 살이 가득 붙은 껍질을 그녀에게 주었다.

“랍스터 까달라는 건 에바지.”

“뭐가요?”

“‘새우 까달라’는 부탁 어떻게 생각해?”

“……음, 뭐, 딱히 별생각 없는데요? 까줄 수도 있지.”

“남녀 친구끼리 새우 까주는 거 보면 뭐라고 생각할래?”

“쓰읍, 그건…….”

조아라는 진지한 얼굴로 성필을 바라보았다.

눈싸움이 이어지고, 조아라가 참지 못하고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에바죠! 거기서 더 나가면 과일도 깎아주겠네!”

“그치? 랍스터가 그런 거야.”

“처음 먹어본다고 했잖아요. 뭔데, 아저씨 막 그런 행동도 의미 해석하고 그래요?”

“치얼스.”

잔을 또 부딪치고, 성필이 리카를 불렀다.

리카는 고기가 구워지길 군침을 줄줄 흘리면서 기다리다가, 성필이 부르니 쪼르르 달려왔다.

“흥, 패배자를 조롱하려고 부른 건가요!”

성필이 랍스터 하나를 그녀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가 버티지 못하겠자, 리카는 그것을 덥석 쥐었다.

“한 이사님이랑 같이 먹어.”

“에, 그치만, 이건 우승자의…….”

“하사품이야. 한 이사님의 용기와 리카의 결단력에 경의를.”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잘 먹겠습니다!”

리카는 랍스타를 가지고 한구인에게로 향했다.

한구인은 흥겹게 재잘거리는 리카를 보곤, 성필에게로 몸을 돌려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근데 리카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어떻게 바로 물에 뛰어들 생각을 하지?”

“그러게. 나도 놀랐어.”

“아저씨, 내가 물에 빠지면 어쩔 거예요?”

“뭘 어째. 119에 전화해야지.”

“뭔데요. 한 이사님 빠지니까 아저씨도 물에 뛰어들려고 했잖아요. 근데 나는 119야?”

“아 진짜,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당연히 뛰어들지.

* * *

저녁을 해결한 가로 엔터의 임직원들은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술 마시는 시간이다.

각자의 앞에 소주가 한 병씩 놓였다. 곳곳에 안주가 놓여 부족할 일은 없어 보였다.

“술게임하자.”

벌써 어느 정도 취한 손혜빈이 제안했다.

“뭐 할 건데?”

“진실 혹은 도전 어때? 이건 세대를 무시하고 다 알 거 같은데?”

질문을 받으면 진실과 도전 중에 하나를 정한다. 진실을 말하거나, 도전을 택해 자신의 잔을 비우는 것이다.

다들 원으로 모여 중앙에 빈 소주병을 두었다. 발의자인 손혜빈이 먼저 병을 쥐었다.

“질문은, 첫 키스 상대 누구인지.”

다들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병이 회전했다.

병이 지목한 건 신아름이었다.

“아, 재미없어. 한 이사님 상대 듣고 싶었는데.”

“왜 저 걸리니까 실망해요?”

“어차피 없을 거 아냐?”

신아름은 부끄러운 듯 뺨을 살짝 붉혔다. 그러곤 한숨을 쉬면서 인정했다.

“네네, 없어요 저는. 근데 당연한 게…….”

“으하하핰! 21살인데 키스한 적이 없대! 으핰, 아이고 배야, 아이고 불쌍해, 아이고 내 배……!”

신아름에게 맞은 민경섭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내 배가…….”

“다음은 나죠? 질문은, 첫 키스 상대.”

신아름이 손혜빈을 응시했다.

손혜빈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과연, 모두의 관심이 손혜빈에게로 쏠렸다.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아시아까지 진출했었던 톱급 아티스트의 첫 키스 상대.

누구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

“잔 내가 채울게요!”

손혜빈의 옆에 앉아 있던 정지음이 소주병과 맥주병을 동시에 들었다.

1대1의 비율로 종이컵이 들어찼다.

“지음이 너 진짜…….”

“아름아 빨리 돌려!”

“네. 잘 노려서…….”

병이 돌아가서, 조아라에게서 멈추었다.

“아악! 진짜 조금이었는데!”

“에휴, 안 달아오르네. 어떻게 걸려도 아이돌 애들만 걸리…….”

조용해졌다.

조아라가 술잔을 바라보면서 주저하는 게 보였다. 다들 눈을 크게 떴다.

“어? 아라 너…….”

조아라는 술잔을 보면서 갈등하다가, 그것을 잡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전부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리카는 주먹을 입에 넣고 비명을 참았다.

“내 차례죠? 음, 이 안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

병이 돌아가고, 장하양에게서 멈추었다.

장하양은 종이컵 안에 담겨 있던 것을 전부 입 안에 부어 넣고 소주병을 잡았다.

“첫 키스 상대.”

병이 매우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조아라에게서 멈추었다.

조아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저의를 묻듯 장하양을 바라보았다.

장하양이 싱긋 웃었다.

“진실, 혹은 도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