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아주 오랜만에 케이어스의 숙소에 평화가 찾아왔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분위기는, 쇼케이스를 맞아 대대적으로 쇄신되었다.
정규 앨범, 뮤지션이 도전할 수 있는 가장 난이도 높은 작업을 마쳤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KS 엔터가 오늘 하루 특별히 허락해준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식들을 맛보았다.
“진소유 이거 먹어봐. 맛있어.”
웬일로 김민주가 진소유의 입을 배려했다.
진소유의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올라왔다.
“고마워 민주야.”
“어. 손 안 닿는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집어줄게.”
그래야 할 만큼 식탁은 넓고 풍성했다.
“그럼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뭐든지 해.”
“나 샤워 첫 번째로 하고 싶은데.”
“선 넘지 마라.”
진소유는 어깨를 으쓱이며 식사에 집중했다. 그녀는 굳이 고기 위를 덮은 기름과 조미료를 나이프로 발라내어 먹었다.
입이 즐거운 건 물론 좋다.
하지만 세상에 아름다운 것보다 좋은 게 없다.
패션모델 케이트 모스는 ‘날씬한 것보다 달콤한 건 없다’라는 말로 지대한 악명을 얻었다. 그녀가 인간의 몰개성화를 부추기고 고정된 성 관념을 만들어낸다면서 말이다.
‘케이트 모스가 틀린 건 아니지. 아니지만…….’
거기에 진소유는 ‘아름다운 것보다 달콤한 건 없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미(美)를 손에 쥐고 태어난 그녀는 아름다움의 힘을 잘 알았다.
이런 말을 대대적으로 하고 다니면 한국의 케이트 모스가 되겠지만 말이다.
어쨌건, 진소유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몸에 지방이 쌓이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에, 에리카 언니.”
김민주를 보고 배운 진저가 자신의 앞에 놓인 굴을 손질하여 에리카의 접시에 주었다.
거기에 레몬과 소스, 샐러드까지 그녀 쪽으로 살짝 밀어주었다.
“이거 맛있슴미다.”
“……응.”
에리카는 가냘픈 미소를 지으면서 진저가 권한 음식을 먹었다.
굴 특유의 향이 입 안에 퍼지자 에리카는 미간을 좁혔다.
“마, 맛 없슴미까?”
“아니야, 맛있어. 진저가 준 건데 맛없을 리 없잖아.”
“죄송함미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언니들에게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 된 진저였다. 에리카가 위로해줘도, 돌려 까는 줄 알고 기운이 죽어버렸다.
그에 에리카가 진저의 머리를 가슴에 품어주었다.
“진저, 좋은 날에 왜 그래.”
진저의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옛날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에리카가 김민주와 어깨동무를 하고, 그녀의 귓가에 ‘좋은 날에 분위기 X창 내지 말고 웃어’라고 했던 것이다.
진저가 바들바들 떨었다.
“요즘 작업하느라 내가 많이 민감했지? 정말 미안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괘, 괜찮슴미다! 하나도 신경 안 씀미다! 그냥…….”
진저가 조심스레 말했다.
“에리카 언니,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으셨슴미까?”
“일은 무슨. 너무 열심히 지내 번아웃이라도 왔나? 하하.”
에리카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식사에 임했다.
마음에 걸리는 일? 있었다.
데뷔 쇼케이스의 수록곡 무대 중 하나, 에리카의 솔로곡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에리카는 성필이 울길 기다렸지만, 울지 않았었다. 대체 왜? 내가 뭐가 부족해서? 왜 옛날에 진저의 연주와 노래를 듣곤 울었지? 무슨 차이지? 기교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곡의 감성 문제인가? 성필이 중국 소수민족 전통 노래를 좋아하나? 뭐 그런 마이너한 취향이…… 민속학자도 아니고…….
“나 먼저 일어날게.”
진소유가 식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김민주는 운동선수를 준비하던 시절처럼 마음껏 단백질류의 음식을 먹던 중,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저 씹!”
김민주가 벌떡 일어나 샤워실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이미 진소유가 점거하고 있었다. 김민주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진소유 너 또 1시간 넘게 있으면 죽는다!”
“같이 씻을래?”
“내가 돌았냐 안에서 뭔 짓 하는지 뻔히 아는데!”
김민주는 화를 삭이며 식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심히 에리카에게 말했다.
“정규라서 그래? 신경 쓰일 만도 한데, 우리 잘했거든? 아무도 뭐라고 못할 만큼 잘했어. 그니까 너무 그러지 마라.”
“나 위로하는 거야?”
“위로는…… 축 처진 거 보기 싫어서 그러지.”
“고마워, 민주야.”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고맙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김민주는 자기가 썩 위로를 잘한 줄 알고 기분이 좋아질 텐데.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래, 그렇지. 아무도 뭐라고 못할 만큼 잘했지.’
이만한 성적을 냈으니, 세상 누구든 케이어스의 실력을 의심하거나 가치를 깎아내리진 못할 것이다.
물론 앨범 판매량이 실력과 가치를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긴 하다.
‘우리보다 3년 먼저 데뷔하신 보이그룹 선배님들이, 저번에 앨범을 150만 장 파셨댔지.’
앨범 150만 장!
이 무슨 엄청난 성적인가?
그런데, 그 앨범의 타이틀곡은 음원 차트 100위권에 잠시 진입하곤 자취를 감추었었다.
‘세상엔 기준이 여럿이지.’
에리카는 교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앨범 판매량이 높으니 됐다. 차트 1위를 달성했으니 됐다. 상을 받았으니 됐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것들이다.
‘당연함 이상이 필요해.’
인생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가치가, 당연함 이상의 가치가 필요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에리카가 깜짝 놀랐다.
‘옛날엔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소녀연맹과 음악 방송 1위를 겨룬 이후 여러모로 달라졌다.
승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거나.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게 됐어.’
긍정적인 변화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뭐…….
‘이제 앨범 판매량으로는 소녀연맹이 따라오진 못하겠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해체할 때까지, 소녀연맹은 케이어스의 정규 1집 성적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면에서 걱정은 없다.
‘민주 말이 맞네.’
아무도 뭐라고 못할 만큼 성공했다.
닳고 닳은 표현이지만, 성공은 그녀에게 당연한 것이다.
‘박 이사님의 눈물을 보는 거…… 그건 조금 더 연구해보자.’
* * *
성필은 최근 업계 사람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봤다.
죄다 비슷한 얘기를 했다.
케이어스 뮤비 봤냐? 케이어스 앨범 판매량 이게 말이 되냐? 케이어스 이번 곡 어떠냐? 엔터 관련주 사도 되겠냐?
그리고, 소녀연맹의 컴백은 언제냐.
‘우리 애들이 케이어스 대항마로 조명받긴 했지.’
케이어스의 라이벌 소녀연맹.
가로 엔터가 의도한 구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녀연맹이 그 구도의 수혜자란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들 나한테 무슨 소싸움 결과 물어보듯이 얘기하네.’
다들 기대하는 것이다.
소녀연맹의 다음 앨범은 어느 정도의 결과를 보여줄지 말이다.
데뷔를 꼬박 1년 채웠을 때 사전 예약 판매량 12만 장을 달성한, 중소 기획사 걸그룹의 신화란 이름을 얻은 소녀연맹이 아닌가.
‘또 한 번 기적을 보여주길 바라는 거지.’
사람들의 기대가 집중된다.
달갑지만은 않은 기대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이제껏 띄워줬던 것 이상으로 까댈 테니까…….’
안 그래도 케이어스의 팬덤인 유스는 소녀연맹의 행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다.
좀 야성적인 커뮤니티에선 ‘감히 근본 없는 길바닥 놈들이 케이어스랑 비교돼?’라고까지 하는 실정이다.
급이 안 되는데 어떻게 라이벌 구도를 잡느냔 뜻이다.
‘가로 엔터가 언플 오지게 한다고 수건돌리기 하듯이 돌려 까대고 있지…….’
지금 그러한 여론은 음성적인 곳에서만 꽃피고 있지만, 소녀연맹이 한 번이라도 삐끗한다면?
‘옳다구나 싶어서, 이제껏 가만히 있던 인간들도 모여들 거야.’
케이어스와 소녀연맹에 관심 없던 이들도 파리가 썩은 내 맡듯 몰려와 더러운 손을 놀릴 게 분명하다.
물론, 이건 지금 신경 쓸 게 아니었다.
더 중요한 일이 코앞에 있다.
“이게 A스테이지입니다.”
조진만이 설치 감독을 끝내고 성필의 곁으로 왔다.
아틀라스의 조진만은 실내 농구장을 하루 빌려, 콘서트에서 쓸 A스테이지만 시험적으로 설치했다. 콘서트를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스태프들한테 무대를 직접 설치하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때가 왔을 때 더 수월히 설치하고, 직접 설치했을 때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서.’
오늘은 A스테이지만 설치했지만, 조만간 다른 장소를 빌려 B스테이지도 설치해볼 것이다.
두 스테이지가 합쳐지는 장소는 본 공연장인 올림픽홀이다.
그때까진 무대들을 따로따로 설치하고 운용해야 한다.
“여기서 시설물을 더 추가하는 거죠?”
“예. 시설 감독이 밖에서 장비 내리고 있습니다.”
성필은 최근 ‘감독’이란 단어의 무게감이 옛날보다 가볍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조진만이 함께 도와줄 타 회사의 스태프를 설명할 때마다 무조건 ‘감독’이 붙기 때문이다.
레이저 감독, 전식 감독, 무대 감독, 설비 감독, 조명 감독, 음향 감독, 비주얼 감독 등등…… 감독만 10명이 넘는다.
게다가 전부 다른 회사 사람이라 하니, 그 모두를 조율하는 조진만의 수고를 알 만했다.
“오늘은 추가하고 하나요?”
“아뇨. 장식이나 조명같이 무대 위에 추가로 설치되는 건, 한 번 설치해보고 전부 뺍니다. 무대만 남기고요.”
“그리고 그 위에서 저희 애들이 연습해보는 거죠?”
“내일 오전에 빼기로 했으니 연습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성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치된 무대를 보았다.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이에, 농구장을 널찍하게 가로지르는 크기였다.
어떻게 이걸 농구장 안에 들여왔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조립할 때부터 봤으면 나름 배우는 게 있었을 텐데.
“조 사장님, 아이돌 콘서트 많이 보셨죠?”
“공부했다고 자부할 정도로는 봤습니다.”
“올림픽홀 규모 콘서트도 보셨어요?”
“예.”
“그것들이랑 비교하면…… 아, 물론 비교라는 게 급을 나누라는…….”
“소녀연맹 분들의 콘서트가 가장 좋습니다.”
성필이 마음을 읽혀 눈을 크게 뜨자, 조진만이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가장 좋을 겁니다. 제가 자신합니다.”
“……그런가요.”
성필은 점점 색채를 더해가는 무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케이어스가 뭐 어떻다고.’
소녀연맹의 현재 과제는 콘서트다.
최고의 콘서트.
그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기에 다른 곳에 한눈팔 정신은 없다.
* * *
완성된 무대를 확인하고, 무대 리허설을 위해 시시각각 백댄서와 세션이 도착했다.
밴드 ‘데비’는 무대 위 본인들의 자리로 가서 악기를 설치했다.
“우리가 이런 크게 무대에 선다고……?”
“뭐 어때. 록페 메인 스테이지에 서보려면 이런 경험도 있어야지.”
겁에 떠는 밴드 멤버들을 리더인 베이시스트 권동하가 진정시켰다. 그는 미네랄 워터의 뚜껑을 따다가, 손을 떠는 바람에 조금 흘려버렸다.
“……있어야지, 경험이.”
당황한 분위기도 잠시, 음향 조절 단계가 되자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해졌다.
베이스를 조정하던 권동하가 손을 들고 외쳤다.
“이거 중음역이랑 고음역을 줄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저음은요?]
“이대로요!”
음향 감독이 활발하게 밴드와 조율을 이었다.
기타리스트는 눈을 감고 줄을 튕기다가 손을 들었다.
“에코를 더 줄여주세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먹혀들자, 움츠러들었던 드러머와 보컬리스트(포지션은 건반)도 본인들의 의견을 개진했다.
“지금 마스터 볼륨이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예요?”
“킥부터 아래에서 위로 계속 두드려볼게요! 하나씩 조정합니다!”
“잠시 마이너스 6 데시벨 해주실 수 있나요? 아, 네, 거기서 하나씩 올라가 볼게요.”
음향 감독은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그들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었다.
조금은 놀라면서 말이다.
‘역시 록밴드 하던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자기 악기랑 소리에 잘 집중하네. 되게 세밀하고.’
게다가 그들은 공연장 연주 경험이 풍부한지, 공간에 알맞은 음향을 감독의 지시 없이도 쉽게 잡아냈다.
그렇게 악기 음향 세팅이 완료되자 10명이 넘는 댄서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무대 감독의 지시에 따라 무대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공간을 파악했다.
“도면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통로가 좁은데?”
“우리가 어느 쪽에서 나와?”
“여긴 한 번에 들어올 때 조심해야겠다.”
백댄서의 역할은 무대 위에서 춤추는 것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콘서트에서 배우로 활약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관중석의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대로 우르르 뛰어와 임팩트를 준다거나, 곡에 맞은 분위기를 연출하려 군중을 연기하기도 한다.
“오늘은 방향감을 익히는 데 신경 써주세요.”
조진만은 연이어 도착하는 콘서트의 조연들을 상대하면서 진땀을 뺐다.
그들에게 공연장의 도면과 대본을 전달했다 하더라도, 직접 보면서 연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실제 무대가 설치된 후의 리허설만으론,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
이번 가설무대 리허설도 마찬가지였다.
조진만은 마음 같아선 리허설을 100번 넘게 하고 싶었다. 예산 때문에 그럴 수 없단 게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편케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함이었다.
‘10번이 안 되는 각종 리허설로 본방에선 완벽에 이르러야 한다.’
매 리허설이 중요하다.
‘장비를 점검하는 테크니컬 리허설은 여러 차례 했다.’
그리고 오늘의 리허설은 다른 때와 비교하여 훨씬 뜻깊다.
“안녕하세요!”
입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농구장 내에 있던 모든 스태프와 세션, 댄서들의 눈이 돌아갔다.
등장만으로 공간을 싱그럽게 만드는 마법.
“잘 부탁드립니다!”
소녀연맹의 등장이다.
조진만은 대본이 구겨질 것처럼 꽉 쥐었다.
‘그래, 테크니컬 리허설은 여러 차례 했다.
오늘은 그다음 단계.
‘아티스트 리허설.’
* * *
성필은 2층 관객석에 올라 리허설이 진행되는 것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런스루 리허설은 실제 콘서트처럼 단 한 번의 끊임 없이 대본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오늘의 리허설은 무대마다 점검, 확인을 거쳐야 하기에 쉬는 시간이 많았다.
‘실제 콘서트보다 4배는 길려나.’
그걸 가만히 앉아 확인하고 있자니 여간 지겨운…….
‘재밌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지겨워서 핸드폰 게임이라도 했겠지만, 프로듀서인 성필은 그러지 않았다.
프로듀서가 아이돌을 만드는 제작자란 뜻으로 쓰인다면, 콘서트는 프로듀서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난이도 있는 물건이다.
어떤 프로듀서든 최종 목표로 삼는 프로덕트. 그렇기에 지겨움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거 잘되겠지……?’
앞으로 몇 번의 리허설이 남았단 건 안다.
하지만 눈앞에서 실수가 터져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지간히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댄서들이 동선과 연출을 헷갈리고.
밴드와 음향 간의 합이 맞지 않고.
조명이 멤버가 아니라 멤버의 발끝만 비추며.
음악이 한 십수 초쯤 딜레이되는.
이외에도 말로 못 할 실수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조진만은 사색이 되어선 문제점을 찾고, 담당자에게 문제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스태프와 출연자들만 문제인가? 멤버들의 실수 또한 실제 상황에 오니 연달아 터졌다.
‘조 사장님도 참 힘들…….’
“힘들겠네.”
갑자기 옆에서 홍규헌이 튀어나왔다.
성필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홍규헌이 미소를 돌려주었다.
“왜, 사장이 리허설에 참여하는 게 이상해?”
“아, 아뇨.”
오늘 직접 온다는 소리를 못 들었으니 그런다.
성필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을 꺼내어 자신의 옆자리에 깔아주었다.
“오버한다.”
홍규헌이 손수건을 낚아채 접은 뒤 성필의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다. 성필은 실실 웃으며 다시 무대로 눈을 돌렸다.
“어떻게, 다운된 기분 푸시려고 오셨어요? 그럼 잘 오셨어요. 우리 애들 무대 보면 근심 싹 날아갈 거거든요.”
성필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평소엔 감히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이 담겼다.
요즘 홍규헌이 우울한 듯 보이는데, 도저히 이유를 말해줄 기미가 안 보였다. 물론 우울하단 건 성필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너무 사장님을 신경 쓰는 거라지만, 아니야.’
홍규헌과 4년째 사귀는(우정의 의미) 성필은, 그녀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잡아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무표정한 한구인의 배고픔을 알아채거나, 멀리서 지켜보는 장하양의 조용한 눈빛을 캐치하는 것처럼 말이다.
“4년 전 생각해보세요. 저희가 여기까지 온 게 안 믿기지 않으세요?”
성필은 ‘걱정되는 거 있으면 당장 나한테 말해!’란 의미를 담아 계속 말했다.
“뭐어, 그렇지. 솔직히 지금도 안 믿겨.”
하지만 홍규헌은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믿기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지, 그녀는 긴장된 태도로 자꾸만 양손을 매만졌다.
“콘서트라는 건…… 그러니까…… 숫자로만 보이던 애들의 지표를 현실로 확인하는 거잖아. 매일 ‘소련이들한테 치인다 진짜 유유(ㅠㅠ)’라고 댓글 다는 인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보는 거.”
“그렇죠.”
“웬만해선 할 수 없는 거…….”
[왜 자꾸 하울링이 잡혀요?]
조진만이 마이크로 크게 외쳤다. 이전에 무대를 지시하는 목소리보다 컸다.
홍규헌이 말을 이었다.
“웬만해선 할 수 없는 거고. 그거 알아? 중소 기획사의 그룹은 3년을 버티길 힘들대.”
“평균적으론요. 저희가 이름을 아는 수많은 그룹 아래에,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사라져간 그룹들이 있죠.”
“그래. 그리고, 회사란 건 10년을 버티기가 힘들대. 대부분의 회사는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나는…….”
홍규헌은 손이 저린 듯이 계속 마사지했다.
“곧 10년이네. 전에 망하고도 꾸역꾸역 회사 모양새는 맞춰서 살아오다 보니, 조금만 더 있으면 10년을 맞게 됐어.”
홍규헌의 어조는 담담했다.
하지만 말의 내용물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 안엔 그녀가 가로 엔터라는 회사를 키워온 기억이 서려 있었으니.
“옛날에 다 던지고 도망갈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그도 그럴 게, 40억을 태웠단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거든. 보통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회생할 수 없어. 사회적으로 죽는 거야.”
“사장니…….”
[아니 가설 벽 저걸 아직도 안 치우면 어떡해요?! 저런 게 버티고 있으니까 소리가 이상하게 반사돼서 음향이 안 맞지!]
무대 팀이 황급히 벽을 옮기는 게 보였다.
홍규헌이 픽 웃었다.
“방금 나 위로하려고 했지? 애들 말빨로 홀릴 때처럼?”
“뭐예요. 그거 저희 회사 유행어예요? 유이 씨도 그렇고, 제 언어 사용 행태를 자꾸 ‘홀린다’라고 표현하시네요.”
“왜 그런지 모르겠네.”
“음…….”
“혹시 박 이사가 백설하한테 고백하는 영상이 회사 내부에 퍼져서 그런가.”
“100퍼 그거 때문이잖아요?!”
분명히 조아라가 퍼뜨렸을 것이다.
그 영상을 기억하며 아직도 들먹이는 이는 그녀밖에 없기에.
성필이 이를 갈자, 홍규헌은 최근에 보이지 않았던 소리 있는 웃음을 들려주었다.
“박 이사, 콘서트 끝나면…….”
“잠깐만요.”
“왜?”
“리카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어요. ‘뭐뭐가 끝나면 뭐뭐 하자’라는 거요. 영화에서 그런 말을 한 캐릭터는 꼭 죽는다고요.”
“아, 사망 플래그란 거지?”
“그러니까 이왕이면 좀 더 희망적인 쪽으로 말해주세요.”
“다 같이 회식하자.”
의외로 별거 아닌 제안이다.
“소녀연맹 데뷔하기 전에는 애들이 안 유명해서 그랬지만, 회사 사람들 다 같이 식당에 가서 밥 먹고 그랬잖아. 요즘엔 그런 적이 없는 거 같아서. 옛날엔 다 한 식구란 느낌이었는데, 회사가 커지니까 여러 파트로 나뉜 기분이야.”
물론 홍규헌은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을 안다.
3과 10의 법칙이란 게 있는데, 직원이 3과 10의 배수에 도달할 때마다 회사의 모든 게 바뀐다는 내용이다.
스케줄 수립, 급여 처리, 사원 복지, 의사결정 모형, 예산 산정 등등, 모든 게 말이다.
가로 엔터의 직원은 3명에서 10명, 그리고 20명을 돌파했다. 정말 가로 엔터가 큰 성공을 거둔다면 30명이 넘고, 100명을 돌파할지도 모른다.
“그야 옛날이랑 같을 순 없겠지만…….”
홍규헌이 멋쩍게 자신의 목덜미를 꾹꾹 마사지했다.
“사장이 회식하자고 하는 건, 역시 안 내키나?”
“안 온다고 하는 놈들 다 제 손으로 다리 분질러 버리고 업고 올게요.”
“그렇게까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소녀연맹 데뷔 기간 1년으로 단축하자고 하실 때요.”
“아, 기억하지.”
홍규헌이 먼 곳을 보는 눈빛을 띠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시키면 다 한다는 거였지?”
“네. 사장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니까요.”
“그때가 박 이사 리즈 시절이었지.”
“지금은 전성기 지났어요?”
“뭐어, 지금도 괜찮지만 그때가 더 탱탱했지.”
“외모 얘기였어요?! 그리고 탱탱했단 거 명백히 성희롱이에요!”
“미안. 건의서는 쓰지 말아줘.”
둘은 4년의 인연과 신뢰가 쌓인 웃음을 교환했다.
“애들은 무대 앞두고 부담가지진 않아?”
“네. 다들 정말 대견해요.”
“케이어스 많이 신경 쓰잖아. 쇼케이스 보고선 괜찮았고?”
“오히려 동기 부여가 돼서 좋아졌죠. 이번 케이어스는…… 실험적이기도 실험적인데, 퍼포먼스 측면에서 케이팝 역사에 길이 남을 거예요.”
“그치. 어떻게 댄스 브레이크를 1분이나 집어넣겠어. 춤도 막, 어휴, 설명을 못 하겠다.”
“파편…….”
“전문적으로 설명 안 해도 돼.”
“……어쨌건, 케이어스의 실험은 우리 애들한테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도 몰라요.”
“‘우리들의 프로듀싱’ 말하는 거야?”
케이어스의 신곡은 실험이었다.
실험의 집합체다.
‘이런 게 한국에서 진짜 먹히냐?’라고, 본인들도 확신하지 못하고 내놓은 느낌이다.
‘원래 KS 엔터가 그랬지.’
한국에서 아이돌 문화를 탄생시킨 것 자체가 그들에겐 실험이었으니까.
업계 선두는 안정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업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의무가 있다. 적어도 성필은 그렇게 생각했다.
‘KS 엔터는 성공만큼이나 많은 실패를 했어.’
누군가는 그들의 실패를 비웃지만, 그런 무모해 보이는 도전과 실패가 쌓였기에 현재의 아이돌이 있다.
다만…….
‘케이어스로 실험을 할 줄은.’
전생과 확연히 다르다.
KS 엔터는 그러한 음악적 실험의 선봉에 보이그룹을 세웠었다.
보이그룹 팬덤은 걸그룹 팬덤보다 훨씬 견고하고 열렬하기에, 몇 번 미끄러져도 ‘우리 애들 그럴 수도 있지 응원해!’라면서 충성심을 유지한다.
‘대체 정호환 이사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업계 톱의 생각을 성필이 알 리가 없다.
미래의 지식을 알더라도, 성필은 미래의 성공을 그대로 복사할 능력 또한 없다.
프로듀싱이란 수백 수천만 개의 길 속에서 자신의 길을 택해 나아가는 것이다.
‘미래엔 이런 게 인기가 있었지’라는 대략적인 방향을 알아도, 그 방향엔 다시 수천 개의 길이 놓여 있다.
전생과 완전히 같은 성공의 방정식을 도출할 수는 없다.
“네, ‘우리들의 프로듀싱’에서, 저희 애들은 저마다의 생각이 담긴 곡을 만들게 될 거예요. 케이어스는 좋은 자극이 됐겠죠.”
성필은 길을 모른다.
하나의 길을 정해줄 순 없다.
그러니, 그녀들이 저마다의 아티스트십을 품고 택한 길이 빛나는 미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자기 자신이 생각했기에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아티스트의 신조는, 시대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것이니까.
“자극…… 그래.”
홍규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은 워낙 똘똘 잘 뭉치니까, 잘 해낼…….”
“당장 일어나서 자리 잡아아아아아아!”
신아름의 비명, 아니, 처절하다시피 한 외침이 들려왔다.
“콘서트에서도 이럴 거야? 1분만 더 쉬자고 할 거야? 정해진 시간이 있고 정해진 일이 있는데, 조금 길어진다고 이럴 거야? 당장…….”
다시 한번.
“일어나──!”
그녀는 악에 받쳐서 멤버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것을 보고, 홍규헌은 할 말을 잃었다.
“또, 똘똘 잘 뭉, 뭉치니, 잘 해낼……. 나 모르는 사이에 애들 사이에 불화 생긴 거 아니지?”
“……몰?”
“‘몰라’라고 하지 마라.”
성필은 황급히 계단을 타고 내려가 무대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