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67화 (367/760)

367화

장하양은 멍했다.

휴게실에 누워있는 내내 그러했다.

동생 라인이 나가고, 성필이 나가고, 장하양은 휴식을 위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마에는 얼음주머니가 놓였다.

스태프가 계속 온몸을 마사지해준다.

부채 바람이 뜨거운 몸을 식힌다.

그저 멍하다.

“하양 씨!”

스태프가 놀란 듯 소리쳤다.

그제야 장하양은 자신이 상체를 일으켰음을 깨달았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노랫소리로 판단하건대, 준비까지 남은 시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장하양은 자신의 차림을 보았다.

다행히 쓰러진 후 정신없던 차에 스타일리스트들이 옷은 갈아입혀 두었다.

“바지.”

“네?”

“바지랑, 상의, 제대로 입혀 줘요.”

스태프는 순간 망설였지만, 곧 의지를 굳히고 장하양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백설하는 옆에서 걱정 어린 시선을 던지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랑스러운 동생이 조금이나마 나아졌기를 바라는 수밖에.

장하양이 엎드려서 땅을 짚었다.

네발짐승이 기는듯한 모양새는 그녀의 상태가 결코 좋지 않음을 의미했다.

장하양은 제 발로 일어나려 했다. 갓 태어난 아기 염소가 다리를 덜덜 떠는 것처럼, 불안정한 다리에 의지한 채 상체를 겨우 일으킨 장하양이.

“하양아!”

그대로 벽에 박고 쓰러질 뻔한 것을 백설하가 겨우 받아냈다.

“하, 하양아 너 이거 못 해. 내가 대신 나갈게.”

대신 나가서 어쩌려고요.

장하양은 기운이 없어 입 밖으로 그 얘기는 하지 못했다. 단지 백설하의 부축에 의지해서 간신히 일어날 뿐이었다.

장하양이 휴게실 밖으로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들이 일말의 희망을 담아 그쪽을 보았다. 그리고 즉시 절망했다.

“도와줘요!”

장하양의 뒤에 있던 응급 스태프가 말했다.

몇 명의 다른 스태프가 달라붙어 장하양을 케어했다.

얼음주머니를 목에 대주고 부채를 부쳐주며, 숨이 거칠어지면 산소호흡기를 내밀기도 했다.

장하양은 피로로 처진 눈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스태프들을 한 명씩 확인했다.

‘죄송해요.’

장하양의 욕심으로 빚어진 일이다.

팬을 만족시키겠다는, 뮤지션으로서 올바르기 그지없는 감정으로 발생한 일이다.

뮤지션의 모범이라 불릴 만한 사고방식이지만, 프로의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정말 죄송해요.’

장하양은 부축받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상체가 크게 앞으로 기울었다.

부축이 없었다면 쓰러졌을 것이다.

“괜찮, 아요. 놔주세요.”

“네? 아니, 놓으면…….”

“익숙해져야 해요.”

이 고통에 익숙해져야 한다.

장하양은 여러 고통에 익숙했다.

맞는 것, 굶주린 것, 창피한 것, 인간이 겪을 수 있을 만한 고통이란 고통은 대부분 겪었다고 자신한다.

그렇기에 고통을 지니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선, 먼저 그 고통에 익숙해져야 한단 사실을 오래전에 깨닫고 있었다.

“놔, 주세요.”

부축하던 스태프는 장하양의 강경한 어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 상태로 장하양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너무 괴로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몸의 모든 근육이 파업을 선언한 것만 같다.

‘아, 이런 거였지.’

옛날에는 자주 이랬었다.

‘내 몸은 원래 이랬지.’

옛날이랑 다른 점이라면, 바닥에 드러누워 고통을 추스를 수 없단 것이었다.

혼절하거나 쓰러질 수도 없다.

계속 걸어야만 한다.

몇 걸음 더 걸은 장하양은 간절히 기도하게 됐다.

‘제발, 제발 이대로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제발 쓰러져줘…….’

당장 바닥에 주저앉아서 숨쉬기만 하고 싶다. 그러더라도 고통은 가시진 않겠지만, 이 이상으로 괴롭진 않을 것이다.

장하양은 또 한 걸음 내디뎠다.

이번엔 짜증이 치민다.

‘내 몸은 왜 이렇게 약하지? 그렇게나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고작 이거 하나 못 버텨?’

짜증이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자 외부로 향한다. 자신을 쳐다보는 수십 명에게로.

‘뭘 봐…… 내가…… 그렇게 신기해……?’

다들 불쌍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본다. 혹은 경외감을 담아 바라보고 있다.

그게 탐탁지 않다.

차라리 전부 자신에게 등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런 처참한 꼴은 보이지 않아도 될 텐데.

“하양 씨, 오기로 하겠다는 거면 무대엔 설 수 없습니다.”

무대 감독이 막아섰다.

“할 수 있어요.”

“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의 몰골입니까?”

안다.

알아.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러니까 제발 비켜줘 짜증 나서 죽겠으니까.

“제 몸이에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고 계세요. 그리고 저 밖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밖에는…… 팬들이 있다.

팬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 거야?’

이렇게나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나? 그냥 무대 한두 개 정도 미룰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면 될 거 같은데.

팬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을…….

“……저를 기다리는 팬분들이 계세요.”

장하양은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데 놀랐다.

몸과 마음, 정신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다.

“언니, 몸 괜찮……!”

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장하양은 옆의 스태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타올을 받아 목과 얼굴을 덮은 식은땀을 닦아내고, 기울어 쓰러지듯 동생들을 포옹했다.

‘너희들 때문에…….’

무대에 서는 거야.

소녀연맹을 망치지 않기 위해.

아니.

‘너희들 덕분에.’

무대에 설 수 있는 거야.

장하양은 아무 말 없이 포옹을 풀고 동생들을 지나쳤다.

“하아, 하아, 하아.”

목이 거칠어질 만큼이나 공기를 들이켜는데도 전혀 진정되지 않는다.

핏속에 흐르는 헤모글로빈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닐까. 그래서 산소가 전달되지 않는 걸까. 혹시 자신은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손발이 덜덜 떨려서 서 있기도 힘든데.

정말 힘든데.

도망치고 싶다.

기절하고 싶다.

죽을 것 같은…….

“아.”

장하양의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시야에 아름다운 빛이 번져간다.

빛에 홀려서 천천히 걷는다.

불꽃을 향해 몸을 날리는 부나방처럼.

아까까지 아팠던 게 전부 거짓말이란 듯 곧게 선 채로 나아갔다.

‘나는.’

이걸 보기 위해서 계속 걸었구나.

‘만면에 미소를 품고 정답게 나를 반겨주는…….’

팬들.

3,000개의 빛.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비춰주는.

‘내가 아이돌일 수 있는 이유.’

환호 속에서, 장하양이 입을 열었다.

음악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죽으면.”

고통 따윈 느껴지지도 않았다.

“묘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오직 팬을 향해서 전심전력을 쏟았다.

* * *

보라색 혜성이 장하양의 뒤를 가로지른다.

유성군이 떨어진다.

장하양은 별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 불렀다. 그게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김채현은 입을 틀어막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양 언니, 저는 언니가 얼마나 노력해서 이 자리에 왔는지 알아요. 잘 알아요. 매일 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봐왔어요. 연습생 시절부터 쭉이요.’

[닦아줄 필요 없어요

당신의 이름만 적어주세요.]

‘그거 아세요? 하양 언니는 유난히 다른 멤버보다 연습실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 올렸어요. 그거 그런 의미였죠? 나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절대 게으름 부리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저는 언니의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언니가 악플러들 말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어요. 얼굴로만 뽑힌 꽃병풍이라느니. 노래랑 춤 못 추는 게 너무 티가 난다느니. 얼굴 믿고 게으름만 부릴 줄 안다느니. 그런 쓸데없는 말들이요. 저는 그런 악플을 보면 계속 싸웠어요. 그런데, 저도 알아요. 언니가 그룹 내에서는 제일 바래있다는 거요. 저도 알아요…….’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당신이 왜 사랑했었는지.]

‘그래도요, 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잖아요. 에피타프 때처럼 생소한 창법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아라 언니한테 춤도 따로 배우고. 랩에도 열심이고. 작사까지 직접 하셨어요. 이 노래도 언니가 작사했잖아요. 저는 처음부터 빛나는 별보다, 빛나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언니 같은 별이, 아니. 별인 척 속이는 인공위성이라도 좋으니까, 저는 그런 언니를 계속 응원하고 싶어요.’

[알고 싶어요

그거면 돼요.]

‘언니가 가정사를 올리셨을 때도요. 뭣 모르는 사람들은 관심 끌려는 언플이라면서 욕하기도 했지만요. 저는 언니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상처를 감추기보다 바깥에 내놓고 딱지가 생길 때까지 참으려는 용기가, 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죽으면 묘비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언니는 왠지 모르게 항상 자신감이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계속 노력해왔던 거겠죠. 저는 언제까지나,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를 응원하고 싶어요. 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언니가 행복해하는 걸 볼 때마다 저도 너무 행복해져서…….’

[어두운 흙을 넘어

당신이 보여]

‘언니가 어두웠던 과거는 전부 잊으셨으면 좋겠어요. 언니한테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언니는 사랑받을 가치가 차고 넘치는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노력은 언제나 보상받는다고요. 언니, 언니는…….’

[당신을 보고 싶어

당신에게 듣고 싶어.]

‘언니는 제…….’

장하양이 와이어의 발판을 밟았다. 그곳을 밟고 날아오른다.

보라색 옷의 장하양이 꽃잎처럼 공중으로 아름답게 흩날린다.

천장에서 보라색 꽃잎들이 나풀거리며 떨어진다. 그 사이를 장하양이 비행한다.

수천 명이 넋이 나가 위를 바라본다.

[차가운 흙을 넘어

따뜻한 너를 직접]

김채현은 앞을 본다.

장하양이 흩날려온다.

여름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에 섞이는 보라색의 이방인. 그것은 무수한 꽃잎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여, 언제까지고 하늘을 여행할 듯하다.

점점 가까워지는 꽃잎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윽고 그녀가 주머니에서 튤립을 꺼내어 앞으로 내민다.

김채현에게, 내민다.

[아직도 너는 내 사랑이니까.]

김채현이 떨리는 손으로 튤립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미소 짓는다.

그것을 보고, 장하양 또한 싱긋 웃는다. 그녀의 얼굴에선 감동이 보인다.

노래에 맞는 감정을 잡았다, 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감정에 휩쓸려 있었다.

그 모습 또한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저 아름다웠다.

김채현은 튤립을 받고 환하게 웃었다.

‘언니는 영원히 제 아이돌일 거예요.’

진정한 의미의 아이돌은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에게 끌리는 건, 아이돌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돌과 만나기 위해서다.

아이돌은 자기 자신의 이상향을 보기 위한 거울이다.

김채현은 멀어져가는 이상향으로 튤립을 뻗었다. 그녀를 동경하여 이곳까지 왔다. 언젠가 자신이 닿고 싶은 미래를 향해, 김채현이 튤립을 흔들었다.

‘영원히…….’

김채현은 자신의 미래를 본다.

언제까지나 단단하고 올곧으며 아름다운, 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초라한 꽃 한 송이.

대지에 뿌리 박았으나 하늘만을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본다.

아이돌을.

* * *

김민주는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보라색 꽃잎을 살며시 집었다.

“조화(造花)였네.”

김민주가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서 보라색 꽃잎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착각이겠지만, 공연장 전체로 그윽한 꽃내음이 번지는 듯했다.

그건 연출을 위해 쏟아지는 조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눈을 돌렸다. 장하양이 하늘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신화적인 광경이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뮤즈가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마저 든다.

“조화겠지, 당연히. 진짜 꽃잎이면 수백만 원 단위로도 안 끝날 수 있어.”

에리카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 안에는 경탄이 섞여 있었다.

누가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런 연출을 대체 누가 기획한 것일까.

공연기획사?

왠지 그건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든다.

‘박 이사님일까.’

에리카는 2층 난간 아래를 보았다.

강림하는 천사를 바라보듯 경탄 섞인 얼굴로 고개를 높이 쳐든 수천 명의 관객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1층에서 봤어야 했어.’

2층에서 이 무대를 보면 하늘을 나는 장하양과 얼핏 시선이 맞는다.

아무래도 신성한 아우라가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에리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장하양을 바라보았다. 장하양은 와이어의 줄을 꼭 잡고 행복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굵은 눈물마저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러분, 저 정말 행복해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장하양이 품에서 보라색 튤립을 하나 꺼냈다.

멍하니 여신의 강림을 바라보던 관객들이 하나둘씩 팔을 뻗었다.

콘서트에 대한 정보를 발설하지 말아 달라고 가로 엔터가 신신당부했지만, 어쩔 수 없이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일 차에는 무대의 기믹이 일부 밝혀졌었다.

이 이벤트도 그중 하나였다.

진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꽃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슴미다.”

“받아서 뭐 하게?”

“네?”

“아니,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김민주의 질문에 진저가 턱을 괴고 고민했다.

“중고장터에 200,000원에 올릴 검미다.”

“진짜 너무하…….”

“온다. 이쪽으로 와.”

진소유가 경기를 일으키듯이 말했다.

그녀는 장하양과의 거리가 수십 미터는 될 법한데도 벌써부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소유의 얼굴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얼굴만 보면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서 장미꽃이라도 내민 줄 알겠다.

“하양아…….”

진소유가 아련하게 손을 뻗었다.

다른 케이어스 멤버들은 장하양의 경로를 유심히 보았다.

3D 와이어 플라잉은 네 각에 연결된 와이어의 길이를 조정해서 공중을 비행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그러니 장하양이 붙잡은 와이어 손잡이의 위, 네 개의 와이어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을 파악하면 경로도 알 수 있다.

“오, 정말 이쪽으로 옴미…….”

그 순간, 케이어스 멤버들은 할 말을 잃었다.

장하양이 꽃잎 속에서 이쪽을 보고 미소 짓는다.

그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인 아우라가 세계를 뒤덮었다.

한 명의 인간이 내뿜는 존재감이 이렇게나 거대할 수 있는가. 그러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드는 환상적인 미소였다.

그 미소와 함께 장하양이.

“하양아아…… 나한테 이런 이벤트를…….”

다가오다가, 옆으로 방향을 꺾었다.

장하양의 튤립을 받은 건 케이어스의 좌측 10m 거리쯤에 앉은 관객이었다. 그 관객은 튤립을 받곤 너무 기쁜 나머지 얼굴을 가리고 울어버렸다.

장하양은 관객에게 손 키스를 날리곤 멀어져갔다.

“…….”

진소유가 그쪽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한 걸음 나아갔.

“안 됨미다! 어쩌려고 그러심미까!”

“메이, 돈 빌려줘. 200,000원.”

“안 팔 게 당연하지 않슴미까?!”

* * *

백스테이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다들 장하양의 무대가 끝난 것을 기쁘게 생각했지만, 그녀의 상태가 어떨지…….

“수고하셨습니다!”

장하양이 백댄서들에게 깊이 허리를 굽히면서 백스테이지로 들어왔다.

그녀에게선 지쳤다거나 고통스러운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즉, 장하양은 너무나 건강해 보였다.

“하양아 괜찮아……?”

백설하가 장하양에게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장하양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눈에 V를 그렸다.

“얼굴 천재 장하양의 무대 어떠셨어요?”

“아, 안 아파?”

“아하하! 네, 안 아파요. 언니 보니까 기분 너무 좋네요.”

“으, 응?”

“귀여워요 언니.”

장하양이 백설하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역시 귀여움 천재.”

“…….”

백설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다.

응급 스태프가 장하양의 상태가 길면 30분을 간다고 했던가.

다행히 퍼포먼스를 하는 도중 상태가 완화된 모양이었다.

“언니 진짜 괜찮아요?”

조아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설픈 잰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누가 보면 장하양이 아니라 조아라가 아팠던 것이라고 착각할 듯했다.

장하양은 걱정을 전부 없애주려는 듯 조아라를 꽉 안아주었다.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 이제 괜찮아. 그리고 걱정 끼쳐서 미안해. 남은 무대에선 안 그럴게.”

조아라는 장하양을 마주 안았다.

“진짜 언니는 옛날부터 사람 걱정시키는 데 뭐 있다고요…….”

“아하하, 미안. 얼굴 천재니까 용서해주라.”

“그 단어 쓰지 마요……. 언니가 얼굴 천재면 리카는 얼굴 바보 되잖아요…….”

“……???”

리카는 ‘아라쨩이 아타시(나)한테 그런 말 할 처지끄아아악!’이란 단말마를 내지른 후 바닥에 널브러졌다.

“근데 언니 다리가 왜 그래요?”

“응?”

신아름이 묻자 장하양은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디스코팬츠 아래로 드러난 오른쪽 허벅지가 오토바이 엔진처럼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음?”

장하양은 허벅지에 힘을 주어 떨림을 멈추려고 했다.

그런데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근육이 말을 안 듣는다.

그녀가 사색이 되어서 응급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이거, 경련?”

응급 스태프가 헐레벌떡 장하양에게 달려갔다. 그 즉시 장하양이 바닥에 쓰러져서 자신의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끄으오악! 으오옥…… 아, 너무, 아파아아……!”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장하양은 오늘 그것을 몸으로 배웠다.

* * *

조아라가 주인공인 VCR 영상이 나오자 진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아라의 컨셉은 러시아 혁명이었다.

아이돌리시한 정장을 입은 조아라가 창밖을 행진하는 사람의 행렬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다.

영상에 몰입하는 진저를 보고 김민주가 놀리듯이 말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애라 그런가, 혁명을 유난히 좋아하네.”

“그래서 좋아하는 거 아님미다……. 애초에 관련 있슴미까?”

“관련 있지. 너 막 혁명 정신 같은 거 배우고 그랬던 거 아니야?”

“인종 차별임미다!”

“그냥 배운 거 아니냐고 물은 게 왜?”

“뉘앙스가 차별적임미다! 애초에 저는…….”

진저가 부끄러움을 숨기려 입술을 씹었다.

“별로…… 교육 같은 건 못 받았슴미다…….”

진저는 가난한 농민공 집안이었다.

제대로 된 공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그나마 농민공을 위해 설립된 민공자녀학교에 다녔지만, 학교란 이름을 붙이기에도 뭐한 곳이었다.

선생은 전부 자원봉사자고,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노동을 시켰었다.

진저는 학교에서 말린 닭이나 생선을 꿰어 창밖에 걸어놓는 등의 일을 질리도록 했었다.

진저가 한자로 그럴듯한 글을 적을 수 있게 된 것도 꽤 최근의 일이었다.

“민주야.”

에리카가 애정을 듬뿍 담아 극진공수도 정권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김민주의 머리를 애교스럽게 콩 쳤다.

“그거 정말 차별 맞아. 나한테는 황국 신민 교육 받았냐고 물어볼 거야?”

“그, 그러면 내가 진짜 나쁜 애 같잖아…….”

“나쁜 애 맞아. 빨리 진저한테 사과해.”

김민주는 어색하게 진저의 등을 쓸어주며 사과했다.

“미안.”

“괜찮슴미다. 민주 언니의 몰이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일 아님미까. 그런 걸로 탓하고 싶진 않슴미다. 저는 아량이 넓슴미다.”

“얘 봐라?”

잡담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VCR 영상도 끝을 맺었다.

진저는 기대감을 잔뜩 표출했다.

“다음은 분명 아라 씨의 솔로 무대일 검미다! 지금까지 나온 세트리스트를 고려하면 ‘댄스 위드 미’가 나올 검미다! 아라 씨 춤 잘 춤미다!”

“알아.”

김민주가 선선히 인정하자 진저는 뿌듯하게 웃었다.

‘조아라 걔 춤 잘 추지.’

아이돌의 군무를 보면 유달리 눈에 띄는 멤버가 있다.

유독 눈길이 가는, 군무 속에서도 숨기기 힘든 춤 실력을 가진 이들이 한두 명씩 꼭 있다.

개성을 억누르고 하나가 되어야 함에도 본연의 기량이 가려지지 않는 것이다.

조아라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고, 김민주는 그녀의 실력을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댄스 퍼포먼스에 집중했겠지? 조아라는 노래가 좀 그러니까.”

진저는 반박하려다가, 어쩔 수 없단 태도로 수긍했다.

“물론 아라 씨의 보컬은 부족한 부분이 있슴미다. 하지만 그걸 전부 상쇄할 정도로 대단한 춤 실력이 있슴미다. 그리고 ‘댄스 위드 미’ 자체가 댄스 퍼포먼스를 위해 만들어진 검미다.”

“되게 자세히 아네.”

“다들 잘 보는 게 좋슴미다! 평생 못 잊을 춤일 검미다!”

“야, 너무 띄우는 거 아니야? 조아라만큼 추는 사람 우리 회사에 널리…….”

“당장 그 말 취소해!”

“너 방금 발음 안 뭉개지지 않았냐?”

“무슨 소림미까?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취소하는 게 신상에 이롭슴미다!”

그때 조명이 폭발하듯이 켜져서 무대를 밝혔다.

진저의 예상대로 조아라가 중앙에 서 있었다.

“아라 씨의 ‘댄스 위드 미’……!”

진저의 말문이 턱 막혔다.

조아라는 도저히 춤을 출 거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한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가죽 치마 위에 편백나무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넓은 셔츠 차림이었다. 거기에 핸드 마이크 하나만 덩그러니 들고 있었다.

댄서보다는 보컬리스트의 풍모가 돋보였다.

“여, 역시 아라 씨임미다! 저렇게 불편한 옷으로 춤을 추……!”

진저가 필사적인 실드를 펴려던 순간, 조아라가 감정선을 잡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가 노래 불렀다.

케이어스 멤버들이 진저를 뚱하니 쳐다보았다.

진저는 고장난 기계처럼 몇 초 멈춰 있더니, 갑자기 박수를 쳤다.

“아라 씨는 노래도 잘 부름미다! 다들 귀 파고 들으십시오!”

“진짜 흐린 눈 흐린 귀란 건 널 보고 하는 말인가 보다.”

“당장 그 말 취소해! 아라 씨는 완벽한 아이돌이란 말야!”

“너 발음 씹는 거 컨셉이지? 그리고 아까부터 왜 반말이야!”

조아라 보컬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몇 초 정도 지났을까, 진소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나왔지?”

“그 말……!”

진소유가 노려보자 진저가 깨갱 입을 다물었다. 김민주가 어이없단 듯 허허 웃었다.

“너 소유랑 나이 차이 좀 난다고 쫀 거야? 아니, 몇 살 차이 난다고.”

“6살은 너무 높슴미다…….”

“아니,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진소유는 나이 이야기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 검지로 조아라를 가리켰다.

아니, 가리켰다는 건 너무나 순화된 표현이었다.

진소유는 조아라를 향해 삿대질했다.

“진짜 무슨 자신감이야?”

진소유는 딱히 진저를 상처입힐 생각은 없었다. 조아라를 모욕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본심을 말한 것이었다.

진저는 대꾸할 거리가 없어 애절하게 조아라만을 보았다.

‘아라 씨,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왜 ‘댄스 위드 미’를 보컬 퍼포먼스로 들고나왔어요…….

당황한 건 케이어스 멤버들만이 아닌 듯, 관객석에서도 동요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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