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윤상열은 맨정신이 아니었다.
이번 글로브의 컴백은 소녀연맹과의 승부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대뜸 케이어스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소녀연맹은 도망쳤다.
아, 그래. 그렇군. 오히려 이게 마음에 든다.
‘정호환.’
꼬리를 말고 도망간 비겁자들은 내버려 두고, 우리 함께 무대 위에 올라 해묵은 논쟁을 끝내자.
정호환 네가 포기한 방법, 틀렸다고 말한 방법으로 나는 끝에 달하겠다.
윤상열은 그 마음가짐으로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자신을 쫓아낸 정호환에게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당신이 다키스트를 만들어냈던 방식은 옳았으며, 자신은 그 방식의 유일하고 정통한 계승자라고.
그런데.
“뭐?”
글로브의 리더인 라희가 윤상열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른 멤버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너, 나한테…….”
감히 명령을 해?
그만하라고?
은혜도 모르는 년이…….
신아름을 내보내고, 그나마 하는 짓이 마음에 들어 데뷔시켜줬더니. 이딴 식으로 은혜를 갚아?
“PD님이 저희를 신경 써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요.”
라희에게선 두려움이나 긴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미소는 상급자를 대하는 관성에 물들어 있지도 않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맑음만을 드러냈다.
그게 윤상열의 마음에 닿았다.
정말 별것 아닌데, 윤상열은 무너지지 않는 라희의 표정에 감명받았다.
어쩌면 잠을 제대로 못 자 정신이 이상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PD님 몸도 생각하셔야죠.”
글로브 멤버들은 민감하게 신경을 곤두세운 채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라희는 글로브의 리더다. 그녀는 멤버들을 대신하여 회사 사람들과의 교섭을 담당하곤 했다.
하지만 교섭이란 단어는 윤상열에게 적용될 만한 게 아니었다. 그는 명령을 내리는 지배자였으므로, 하급자와 교섭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라희가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도 계속하셔야겠다면.”
라희가 윤상열의 옷자락을 잡고 천천히 문 쪽으로 끌었다.
“조금이라도 쉬시고 오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직후, 모두 믿을 수 없는 사태에 눈을 부릅떴다.
“……그래, 그래야겠어.”
윤상열이 힘없이 라희에게 끌려가고 있다.
끌려간다기엔, 윤상열이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모양새이긴 했다. 하지만 멤버들은 윤상열이 라희의 손에 끌려가는 것처럼 느꼈다.
라희는 일부러 ‘멤버들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윤상열의 피로도에만 맞춰 휴식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게 통한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이 연습실을 나왔다. 문이 닫히고, 휴식하러 간다고 했던 게 거짓말인 듯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 섰다.
“…….”
“…….”
윤상열은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뜨거웠다.
“많이 힘드시죠?”
라희가 물었다.
윤상열이 힘든 건, 그가 글로브 컴백을 하나부터 열까지 감독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석세스 엔터가 몰락한다는 듯 언론에서 떠들고 있다.
배우와 아티스트들이 재계약을 거부하는데, 보여주기식으로 억 단위의 돈을 써서 탑스타들과 단기계약만 할 뿐.
거기에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난이 왔니, 석세스 엔터의 확장세가 멈춘 게 그 증거이니, 마땅한 자금줄도 없다느니.
“힘들…… 군. 그래, 그런가 보다.”
윤상열은 그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사업은 그의 영역이 아니었다. 프로듀싱할 자본만 똑바로 들어온다면 괜스레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이래선 안 됐다.
‘난 언젠가 KS 엔터로 돌아가야 해. KS 엔터로 돌아가서 정호환을 몰아내고…… 그 늙은이를 쫓아내서…….’
세상에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석세스 엔터가 이 꼴이면 어떡하는가?
심지어 글로브가 케이어스와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윤상열은 자존심을 세웠지만, 내심 압박감 때문에 밤을 새는 날이 많았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글로브의 성공만이 윤상열의 유일한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옛날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그녀들을 몰아세웠다.
“PD님이 없으셔도 제가 애들을 잘 이끌게요. PD님이 만족하실 수준으로 반드시 끌어올릴게요.”
라희.
신아름 대신 데뷔조에 포함되어, 짧은 기간 내에 기적적인 기량 향상을 이뤄 리더까지 된 아이.
아니, 기량이 올라갔다 하더라도 글로브의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우월하진 않았었다.
그럼에도 윤상열이 라희를 리더로 꼽았던 건 그녀의 의지 때문이었다.
데뷔하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라희에게선 그 정도의 결심마저 엿보였었다. 천재인 신아름과는 대조적이다시피 한 아우라였다.
“저한테 믿고 맡겨주세요.”
“…….”
윤상열은 목소리를 내려는 듯 입을 뻐끔댔다. 하지만 목구멍이 말라 있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믿고 맡겨달라.
윤상열은 글로브 멤버들을 믿은 적이 없었다. 그녀들에게만 일을 맡긴 적은 더욱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단 걸…… 의미 없던 게 아니란 걸…….”
윤상열의 눈이 피로 때문에 게슴츠레 감겼다.
“증명해라.”
“네.”
라희가 시원스럽게 답하자마자, 윤상열은 비틀거리며 떠나갔다.
라희는 윤상열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마자 연습실로 들어가려다가, 문에 귀를 대고 안쪽의 소리를 들었다.
조용했다.
멤버들은 쉬고 있는 듯했다.
라희는 시간을 확인하곤, 멤버들에게 휴식을 더 주고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세면대 앞에서 거울 안의 자신과 마주했다.
‘보이는 건…….’
신아름이다.
아니, 신아름이었다.
라희는 실력도 부족하고 아이돌에 대한 열정마저 부족한 주제에, 신아름을 밀어내고 데뷔조에 포함되었다.
라희는 그에 죄책감을 느꼈더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따라잡을 상대는 아름이가 아니라.’
거울의 뒤에 비치는 얼굴이 바뀌었다.
진소유였다.
라희는 우효민, 장하양, 진소유와 같이 특별 무대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다.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로 뽑힌 애들은 정말 뭔가 다른 게 있구나. 아이돌 각자에게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급이 있구나.
라희의 목표는 진소유다.
아니, 진소유였었다.
‘이제는…….’
남자가 보인다.
라희의 아버지였다.
비토리오 그라비나.
이탈리아인이면서 독일의 발레리노로 활동했던, 이제는 독일인이 된 남자이다.
라희는 그녀의 인생 거진 20년 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제대로 인식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몇 개월 전부터, 라희는 아버지의 대단함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라희가 거울을 보며 손을 살랑 흔들었다. 그 움직임은 아버지의 것에 비하면 목각 인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직이야. 한참 멀었어.’
라희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큰 극장이었다.
아버지가 무대에 올라 상을 받았었다.
[발레리노 비토리오의 업적을 기리고, 그가 발레계에 새긴 신화와 영원토록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그의 영혼을 칭송하며, 그를 캄머텐저린(Kammertanzerin)에 임명한다.]
캄머텐저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수여하는 궁중무용가 직책을 뜻한다. 역사상 한 손에 꼽는 이들만이 누리는 명예다.
그건 단순한 상이나 지위가 아니다.
특권의 이름이기도 했다.
독일 전역의 어느 곳이든, 캄머텐저린을 해고하는 건 불가능하다. 취업을 요청하면 거의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캄머텐저린은 만에 하나라도 굶어 죽어선 안 되기에.
그리고 독일 전역의 어느 곳에서든, 캄머텐저린은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면책 특권을 부여받는다.
캄머텐저린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독일 국민 전원이 그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라희는 그런 아버지를 두었지만, 딱히 자랑스러워한 적은 없었다. 그 의미를 깨닫기 전에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왔었으니까.
‘냉전의 영웅, 이라고 했었지.’
발레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쟁 도구로 사용되었을 시기였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과 비인간적인 훈련을 거듭한 러시아의 무용수들에 맞서, 라희의 아버지는 서방세계의 예술혼을 보여주었더랬다.
라희의 아버지는 발레리노였고, 어머니 또한 발레리나였다. 물론 현재는 달랐다.
아버지는 은퇴하여 발레단의 감독으로 있고, 어머니는 발레 마스터가 되어 후학들을 양성한다.
독일에서.
어머니는 라희와 한국에서 지내다가, 아버지가 그리워 돌아갔다. 가기 전, 어머니가 말했다.
‘연습생은 그만두고 엄마랑 독일로 가자.’
라희는 어릴 때 발레를 배웠었다. 하지만 영 흥미가 없던 터라 그만두었다.
부모님은 ‘우리 애가 예술엔 흥미가 없구나’ 싶었지만, 한국에 오니 달랐다.
라희는 아이돌에 매료되었더랬다.
‘난 조금 더 한국에 있을게. 데뷔조에서 떨어지면 독일로 갈게, 엄마.’
그렇게 라희는 한국에 남았다.
사실, 크게 열정이 있지는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딱 그 수준이었다.
그런데 반드시 되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내가 아름이를 밀어냈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신아름보다 훨씬 모자란 자신이, 감히 그녀를 내쫓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쫓겨난 신아름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라희는 열심히 해야만 했다.
“……음.”
거울만 바라보는 사이 10분이나 지났다.
라희는 연습실로 향했다. 들어오자마자 정진이 헐레벌떡 다가와 라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씹새가 뭐래? 이상한 짓 안 당했냐?!”
라희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눈가는 정진을 나무라듯 찌푸려졌다.
“괜찮아. PD님은 잠시 쉬신대. 우리끼리 연습하자.”
“윤상열 없으니까 설설 한다!”
노아가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윤상열은 모든 연습을 마치 무대에서 하듯이 온 힘을 다할 것을 요구했었다.
체력 소모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 글로브 멤버들은 거의 마라톤 주자와 비슷한 상태였었다.
“힘들긴 했어…….”
위세라가 다가와 칭찬하듯 라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워, 고생했어. 항상 미안해.”
“아니야. 그럼 다시 시작하자. 충분히 쉬었지?”
멤버들은 대형을 잡고 섰다. 윤상열이 있었을 때보다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곧 컴백이다.
연습에서 중요한 건 대형을 틀리지 않는 것과 대략적인 흐름을 머릿속에 박아 넣는 것이다. 기계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도록 말이다.
디테일을 점검하는 게 아니라면, 체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연습하는 게 가능하다.
“하나, 둘.”
연습이 시작됐다.
그리고 3초 후, 모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라희는 전혀 설렁설렁 추지 않았다. 마치 윤상열이 앞에 있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퍼포먼스를 소화했다.
노아는 우물쭈물 당황하다가, 눈을 질끈 감곤 라희를 따라 퍼포먼스를 완벽히 소화했다. 다른 이들도 분위기에 이끌려 라희의 페이스에 맞췄다.
결국, 연습이 끝나자 다들 또 숨을 헐떡였다.
“라희야아…….”
지유가 장난스러운 원망을 담아 라희를 불렀다.
“PD님 없잖아. 왜 빡세게 해……?”
“언니는 설렁설렁해도 괜찮아요. 아니, 너희들 다 그래도 되는데.”
라희는 상쾌한 미소와 함께 물을 마셨다.
“난 이렇게 추고 싶어서 그래요.”
“안 힘들어? 그러다가 쓰러져.”
“안 쓰러져요.”
“그치만, 이건 연습이잖아.”
지유는 진심으로 라희를 걱정했다.
“무대랑은 다르게 해도 돼.”
“음, 언니. 연습은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게. 무대에선 모든 걸 끌어올려서. 그런 말씀이시죠?”
“응. 보통…….”
“그래선 무대에서 모든 걸 보여줄 수 없어요.”
라희는 어느새 아버지가 하던 말을 그대로 읊고 있었다.
“연습에서 하지 않으면, 무대에서도 못 해요. 연습하는 모든 순간 최고에 이르려고 노력하면, 최소한 후회할 일은 없잖아요. 전 후회를 남기기 싫어서…….”
끝, 정점은 그렇게 다가온다.
시간은 유한하다. 모든 시간 최선을 다하고, 최고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무용수로 남을 뿐이다.
멀지 않은 과거, 부모님을 보러 독일로 갔을 때였다. 세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보통 발레하는 사람들은 30이 되면 은퇴해. 몸이 안 따라주는 거야. 하지만 역으로 정신은 무르익어 있어. 다들 후회하더구나.’
드디어 뭔가 잡힐 것 같은데.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발레를 그만둬야만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 더 열심히 했으면 다다를 수 있었을 텐데. 몸을 쓰는 분야는 어디서든 마찬가진 거 같아. 딸은, 그런 후회는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버지는 그리 말했었다.
라희는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제 자기만족일 뿐이지만…….”
라희는 거울을 보았다.
신아름의 환영이 사라지고, 다음으로 나타난 건 진소유였었다.
이젠 진소유마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라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진소유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었다.
퍼포먼스적으로 그녀와 비등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에, 더는 진소유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가 라희를 지켜보고 있다.
세계 최고에 닿았던 무용수가 항상 라희를 바라본다.
“……에휴.”
지유는 한숨을 쉬곤 다시 자리를 잡았다.
“누군 안 그런 줄 아나.”
라희의 말은 단순한 격려 이상이었다. 그녀는 노력의 산증인 자체였으니까.
라희가 신아름을 대신해 데뷔조로 들어왔을 때, 다들 그녀가 얼마 안 가 일반 연습생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라희는 이를 악물고 노력을 거듭하여, 마침내 정식 데뷔조가 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윤리의 1원칙은,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그것을 지켜야 한단 것이다.
‘도둑질하지 마라’는 사람이 도둑질을 한다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라희의 이야기에는 설득력이 넘쳐흘렀다.
“해보자.”
글로브 멤버들은 리더를 보면서 의지를 다졌다. 윤상열이 억지로 시킬 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맞다.”
연습을 다시 시작하기 전, 라희가 말했다.
“PD님이 전하셨던 말 있어요.”
“뭐, 한눈팔면 죽여버리겠대?”
“정진아.”
정진은 윤상열을 욕하고도 해맑게 웃기만 했다. 다들 윤상열을 안 좋아해서, 정진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희는 정진의 태도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라희가 보기에 윤상열의 방침은 크게 잘못되진 않았으니까.
어머니가 아버지를 훈련시킬 때와 비슷했다.
발레 마스터, 전문적인 트레이너로 전향한 어머니는 아버지의 트레이닝을 도맡았었다.
아버지가 주저앉아 울 때까지 몰아붙이는 게 일상이었다.
그걸 여러 번 보았던 라희로선, 윤상열이 조금씩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엔 나도 욕했었지.’
하지만 신아름의 그림자를 보내고.
‘윤상열과 비교 가능한 씹년’이라던 진소유의 그림자마저 없애버렸을 때, 라희는 윤상열의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었다.
‘PD님은 우리에게 끝을 보여주시려는 거야.’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글로브는 끝에 다다를 것이었다.
라희는 윤상열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려다가, 자기식으로 바꾸었다. 그대로 전했다간 멤버들의 기분 나빠질 뿐이니까.
“너희를 믿는다. 너희의 노력과, 글로브란 이름에 새겨진 자부심을 증명해라.”
“웩.”
정진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라희는 여느 때처럼 살짝 곤혹스럽단 듯 말했다.
“저어, 정진아. 예전부터 PD님을 부르는 게 좀…… 과격하지 않아?”
“뭐? 내가 여기서 더 어떻게 부드럽게 불러야 하는데?”
“아니, PD님도 우리가 다 잘됐으면 해서 하시는 거니까.”
“야 너 그거 가스라이팅 당한 거야! 잘 됐으면 해서? 이 회사에서 안 그런 사람 어딨어? 잘 됐으면 좋겠단 마음이면 사람 채찍으로 패면서 가르쳐도 무죄냐?”
다들 놀란 눈으로 정진을 쳐다보았다.
정진은 갑자기 찾아온 침묵에 쭈뼛쭈뼛 눈치를 보았다.
“뭐. 나, 그, 말이 너무 심하긴 했나……?”
“아니…….”
라희가 픽 웃었다.
“평소랑 다르게 논리적이어서.”
“나 똑똑하거든!”
라희는 다시 앞을 보고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렇긴 하지.’
라희가 윤상열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태도는 바르지 않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트레이닝을 도맡으면서, 도저히 부부라 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그래, 윤상열이 하는 것처럼 서슬 퍼런 비난도 서슴지 않으면서.
하지만 하나가 달랐다.
어머니에겐 있고 윤상열에게 없는 것.
‘애정.’
그러니 윤상열은 트레이너로서 반쪽이다.
이대로라면 글로브는 머지않은 미래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불쌍한 인간.’
자신이 틀렸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본인만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환상. 그 환상이 깨졌을 때 얼마나 절망하게 될까.
하지만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분홍빛 환상이 깨질 일은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라희와 그의 목적이 일치하니까.
‘난 애들과 함께 끝을 볼 거야.’
라희는 윤상열이 절대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것이다.
사랑.
멤버들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그건 아틀라스와 같은 고행이겠지만, 라희는 기꺼이 감내할 용의와 능력이 있었다.
“언니들, 얘들아.”
라희가 씩 웃었다. 멤버들은 거울로 그녀의 웃음을 보았다.
“이번엔 케이어스한테 기죽지 말자. 내가 보기에, 기죽을 필요 전혀 없어. 소녀연맹은 도망갔지만, 우린 아니잖아. 거기서부터 우리가 1점 더 먹고 들어가는 거야.”
우리가 이겨.
“We are the World.”
멤버들이 구호에 화답했다.
“We are the One.”
“Globe!”
음악이 재생되었다.
글로브 멤버들은 연습도 실제 무대처럼 했다. 라희의 말마따나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끝에 이르기 위해서.
글로브는 전생과 달라졌다.
신아름이 없다. 대신 라희가 들어와 리더가 되었다.
예명, 라희.
본명, 라우라 그라비나.
캄머텐저린인 아버지와 발레 마스터인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
그녀는 전생처럼 데뷔조에서 떨어지지 않고 아이돌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돌로서, 아버지처럼 이 세계의 끝을 보기 위해 달려간다.
전생에선 파티시에가 되었을 아이는, 현재 본인의 재능을 완벽히 개화했다.
예술단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그리고 예술가 그 자체로서의 재능은 글로브를 전생과 다른 길로 이끌었다.
* * *
글로브 컴백 사흘 전.
최종 평가.
멤버들은 퍼포먼스를 마친 후, 억지로 거칠어진 숨을 갈무리하며 평정을 연기했다.
엔딩 포즈를 취할 때 흔들려선 안 된다.
그녀들은 진짜 음악 방송 무대처럼 약 10초에서 20초간, 정면을 향해 끼를 부렸다. 개인 캠이 자신을 찍고 있다 상상하면서, 홀로 정면에 앉은 윤상열을 향해…….
“…….”
기분 나쁜 침묵이었다.
엔딩 포즈를 취한 지 20초가 넘어갔다. 멤버들은 평정을 잃고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기 시작했다.
윤상열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왼손에 든 서류 받침 위엔 평가표가 있었다.
윤상열은 평가표 위를 볼펜으로 끄적였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최종 평가는…….”
평가표에는 감점 목록뿐이었다.
득점 요소는 있지 않았다.
거의 초 단위로 나뉜 수십 가지의 평가 목록은, 초인적인 집중력이 있지 않고서야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평가는…….”
윤상열은 평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말끔했다.
감점할 부분을 찾지 못한 건…… 아니었다. 몇 가지가 있었던 듯하다. 분명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윤상열은 이번만큼은 홀려서 글로브의 퍼포먼스를 보았다. 아니, 감상했다.
“…….”
윤상열은 의자에서 일어나 재킷의 아웃포켓에 볼펜을 넣었다.
“오늘 이 수준에서 더 떨어지지만 마라.”
그러곤 윤상열은 연습실을 나갔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양소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라희에게 물었다.
“합격…… 이야?”
글로브는 지금까지 몇 번의 컴백을 겪었다.
그때마다 최종 평가가 있었다. 그리고 항상, 컴백 무대보다 최종 평가가 훨씬 더 떨렸다.
음방 무대에선 욕이라도 안 들어먹지, 최종 평가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모독에 가까운 비판을 들여야 했으니까.
윤상열은 음방 무대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이 최종 평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왔다.
“우리, 합격한 거야……?”
글로브는 최초로, 최종 평가에서 윤상열에게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았다.
라희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아.”
“끼아아아아악!”
정진이 비명을 내지르며 문을 향해 중지를 들었다. 양손으로 만든 중지를, 윤상열이 나간 문 쪽으로 계속 들이밀었다.
“시바 이겼다아아아아아아!”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이도 있었다.
옆에 선 동료를 안으며 감동하는 이도 있었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음악 방송 무대에서 1위를 한 것도 아니고, 초동 판매량이 극적으로 상승한 것도 아니고, 관객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환성을 들은 것도 아닌데.
글로브는 더없이 기뻐했다.
마치 연습생들처럼.
회사의 평가가 세상 모든 것인 이들처럼.
글로브는 하염없이 행복해했다.
* * *
글로브 컴백일.
윤상열은 회사에서 기다리면서도 흥분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선주문량 70,000장 돌파.’
이것만으로 이전 앨범의 초동 판매량을 넘었다.
‘엄청난 호조(好調)다. 케이어스와 컴백 기간이 겹치는데도 앨범 판매량이 전보다 상승하다니.’
이번 컴백 앨범은 판매량에 목숨을 건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이번 컴백은 심혈을 기울였다.’
성필에겐 ‘음원 차트에서 승부를 보자’고 당당히 선언했더랬다. 비록 소녀연맹은 꼬리를 말고 도망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소녀연맹은 케이어스란 메인 요리를 맛보기 전의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니까.
‘차트는 순조롭게 등반하고 있다.’
최근엔 다크 서클이 무게라도 가진 것처럼 눈가가 무거웠었는데, 오늘은 그런 고통도 없었다.
윤상열의 가슴은 봄바람을 맞은 젊은이처럼 따스했다. 앞으로 영원히 느껴보지 못 하리라 여겼던 세찬 설렘이 그를 감쌌다.
‘본격적으로 반응이 오는 앨범 발매 3일, 4일 차에 판매량 급상승을 노려봐도 괜찮겠어. 그럴 만해. 그럴 만하다고…….’
윤상열은 버릇처럼 케이어스를 검색했다.
컴백 앨범 ‘테이스트 더 넥타르’, 선주문량 200,000장 이상…….
‘이전 앨범인 타임에서 전혀 나아가지 않았어.’
케이어스의 팬덤 확장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케이팝 시장이 3세대에 비해 훨씬 커졌다 하더라도, 걸그룹의 팬덤 확장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윤상열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쩌면 케이어스의 성장은 이제 한계점…….’
만약 그렇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케이어스를 따라잡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한계점이 아닌가?
‘글로브의 선주문량이 늘어난 걸 보면, 글로브가 케이어스의 팬덤을 일부 흡수했다고 봐도 되겠군.’
이기고 있다. 넘어서고 있다.
‘봐라 정호환, 이게 내가 옳았단 증거다. 케이어스는 한계점에 도달했고, 글로브는 더욱 나아간다.’
윤상열은 그날 행복 속에서 살았다.
생방송으로 음방 무대를 확인하곤 적당히 만족했다. 아니, 굉장히 만족했다. 오늘만큼 글로브 멤버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그녀들이 앞에 있었다면 칭찬이라도 한 바가지 부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윤상열에게도 만물이 생동하는 여름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져버렸다.
* * *
우효민의 메인 의상은 민소매 패딩을 닮았다. 아니, 구명조끼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디자인의 영감은 구명조끼에서 왔으니, 구명조끼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김명운은 공기주입기로 구명조끼에 바람을 넣었다. 진짜 구명조끼는 아니고, 얇은 폴리에스터를 사용해 조끼 모양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됐다!”
김명운이 조끼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우효민이 기다렸다는 듯 뒤로 돌아 양팔을 옆으로 펼쳤다.
김명운은 코트를 씌우듯 조심스레 그녀에게 조끼를 입혔다.
우효민은 펄쩍 뛰어 뒤로 돌았다.
“어때요?”
우효민은 흰색 스니커즈에 하늘색 핫팬츠, 크롭티 위에 구명조끼를 입은 모양새였다.
그녀가 마이크를 든 흉내를 내며, 반대 손으로는 브이를 만들어 눈가에 가져다 댔다.
“사랑의 응급구조 요원! 러브 레스큐, 효민!”
우효민이 흥겹게 이번 컴백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루함으로 물든 세계에 빠진 너를 내가 구해주겠다,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었다.
무반주였음에도 우효민이 내뿜는 젊음의 힘이 사방으로 넘실거렸다.
김명운이 눈물을 글썽였다.
“대표님 우세요?!”
“효민아, 나 배우가 아니라 아이돌을 맡아서 다행이야. 네가 이음 엔터 1호 아티스트라서 너무 행복해…….”
“에이, 1호 아티스트는 포유잖아요! 벌써 애들 다 잊으신 거예요?”
“하하, 맞다 그랬지…….”
내친김에 우효민은 엔딩 포즈 퍼레이드까지 했다. 포즈가 바뀔 때마다 김명운은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10번을 넘어갈 즈음, 소재가 떨어진 우효민이 바디 프로필 포즈를 취했다.
가슴을 내밀고, 허리에 손을 얹고, 엉덩이를 쭉 뺀 포즈였다. 김명운이 박장대소했다.
“바프 찍게? 이야, 아이돌이 바프 찍은 적이 있었나?”
우효민은 거울을 보았다.
자신이 취한 포즈임에도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어서, 그녀도 김명운처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서서히 웃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저번보다는 앨범 많이 팔았으면 좋겠어요.”
“차트 50위권 뚫는 걸 목표로 하자. 앨범은 기대하지 말고.”
“하긴.”
우효민은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히 저 이번 곡이랑 헤메코(헤어, 메이크업, 코디) 진짜 제 인생 레전드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경쟁자들이 좀 그렇지?”
“네에. 보자마자 기 팍 죽었어요.”
“신경 쓰지 마. 효민이는 슬로 스타터잖아. 나중엔 선반 다 채우도록 상도 받고, 음방 1위도 질리도록 하자. 솔직히, 이번에도 한 번쯤 노려봐도 될 거 같은데?”
“1위요?”
우효민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트 1위 찍는 거 아니면 절대 못 하죠.”
“그럼 차트 1위를 노릴까?”
“대표님 막말하지 마요. 현실적으로오…… 70위 안에 들면 파티 열어요.”
“그러자.”
그 정도만 되어도 우효민은 전국 각지를 돌며 행사로 돈을 꽤 벌 수 있으리라.
음방 1위…… 하면 좋겠지만, 기대는 안 한다.
“그나저나, 케이어스 대단하네.”
“그러게요. 요즘 케이팝씬 이상하지 않아요? 진짜 끝을 모르고 치솟아요. 꼭 주식 시장 호황기 같아요.”
“우리도 언젠가 이 큰 파도에 타자.”
“넵! 사랑의 응급구조 요원이니까 파도 정도야 얼마든지 타죠!”
우효민은 서핑 보드에 탄 흉내를 냈다.
언젠가 케이팝의 빅 웨이브에 올라타 주류가 될 수 있도록.
힘내라, 이음 엔터.
* * *
케이어스 컴백 앨범 ‘Taste the Nectar’.
선주문 200,000장.
1일 차 판매량 약 140,000장.
컴백 이틀 만에 커리어하이 경신 예정.
“…….”
성필은 그 결과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너무하다 싶을 만큼 가파른 성장세다.
전생보다 훨씬 성장이 빠르지 않은가.
“아저씨 입 벌린 거 봐라. 침 흘리겠어요.”
조아라가 살짝 벌려진 성필의 입을 부드럽게 닫아주었다.
성필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케이어스의 뮤비와 곡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 황홀경에서 끄집어낸 조아라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와, 얘네 춤 봐. 개빡세.”
신아름도 감탄했다.
같은 아이돌이 보기에, 케이어스의 숙련도는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웠다.
춤만 커버한다면 다른 이들도 어찌어찌 하겠지만, 보컬마저 재현하는 건 불가능할 게 틀림없다.
이전 앨범 타이틀곡인 ‘타임’도 굉장했지만, 이번엔 그 이상이었다.
“설하야, 어때?”
성필이 묻자, 백설하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렇네. 판매량으론 못 따라잡을 게 확실하지.”
“이해해요. 이만큼이나 잘 만들었는데…… 그 정도는 팔아야 수지가 맞겠죠…….”
케이어스의 이번 타이틀곡 ‘넥타르’의 작품성과 예술성은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나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들은 케이팝에 관한 안목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리라.
“설하야.”
“네.”
백설하는 케이어스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도달한 수준에 기꺼이 박수를 쳐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겼다.”
승리는 소녀연맹의 것이다.
[케이어스 - Nectar]
“처음 1위 진입부터, 계속 내려가기만 하고 있어.”
[실시간 9위(―1)]
“네. 아마도…… 저희가 이겼어요.”
공고하고 거대한 팬덤의 증거? 앨범 판매량?
얼마든지 가져가라.
성필이 단언했다.
“섬머퀸은 너희 거야.”
“어, 아저씨 목소리 좀 우울한데? 사랑하는 케이어스가 나락 가서 슬퍼요?”
“섬머퀸은 너희 거야―!”
“박 이사님.”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되려 할 때, 장하양이 진지한 얼굴로 성필을 불렀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보았다.
장하양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해주세요.”
“응?”
“‘섬머퀸은 너희 거야’보다 더 나아가주세요. 정말 저희의 승리를 바란다면요.”
“……그거, 말이지?”
“네.”
“그건 좀…….”
“하아.”
조아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요. 아저씨도 결국엔 잡덕이죠? 우리가 최고니 뭐니 해도 ‘유스’잖아요.”
“아, 아니…….”
“아 됐어 우리끼리 해! 팀장님은 빠져요!”
신아름이 성필을 밀어버렸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멤버들이 그 위에 손을 겹쳤다.
최근 소녀연맹의 구호로 쓰이는 것으로, 도저히 성필은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었다.
다들 실실 웃으면서 백설하를 보았다.
백설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전신공명(全身共鳴).
“케이어스 뒤졌다 소녀연맹이 섬머퀸 타이틀 가지고 케이어스 커리어 나락 박는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