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그걸 회사가 허락해줄 거 같아?”
“허락하게 해야지.”
“……진심?”
에리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자주 이야기하셨어. 인생을 길게 보라고. 걸어온 길에 남겨야 할 걸 잘 선택하라고.”
잠깐의 수치.
잠깐의 쾌락.
잠깐의 굴욕.
잠깐의 이익.
잠깐의 손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남겨야 할 것.
그건.
“사람이야. 난 내 인생에 박 이사님을 남기기로 결정했어. 찰나의 굴욕과 수치 따위 얼마든지 감내하겠어.”
“뭐라는 건데.”
“엔자쿠 이즈쿠소 코코쿠노 코코로자시오 시란야(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
“진짜 뭐라는 건데.”
“도와줘.”
“엉?”
“남홍범 이사님 뵈러 갈 거야.”
KS 엔터 매니지먼트 이사, 남홍범.
“남 이사님이 널 특별히 아끼시잖아.”
“뭐? 싫어! 내가 왜!”
“민주야. 정호환 이사님께 얘기 들었어. 나 때문에 이사님한테 반항까지 했다면서.”
“미친 씨 그걸 너한테……!”
“한 번만 더 해줘.”
“싫어!”
김민주는 완강했다.
“이건 너 혼자 뭐 어쩌고 할 일 아니거든? 케이어스 리더가 회사와의 불화로 도망갔단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냐? 회사 자체에 타격이 간다고! 상식적으로 그걸 허락해주겠냐! 어지간히 머리가 꽃밭이어야지!”
“싫다면.”
에리카가 김민주를 지나쳐갔다. 김민주가 당황하여 에리카를 돌아보았다.
에리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출구로 나아갔다.
“나 혼자라도 가.”
“너, 너 야!”
김민주가 다급히 에리카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옛날부터 사람들한테 아양 떠는 거 존나 꼴 보기 싫었거든? 여기저기 꼬리 치는 거 같아서? 근데 이번엔 아양 좀 떨어! 너 씨 그거 말하는 순간부터 회사가 어떻게 보겠냐? 어떻게든 리스크 관리하려고 폰 뺏고 감시하고 지랄이 날 거야! 너 지금 네 위치 몰라? 너 회사에서 도망갔던 애야! 도망간 애를 회사에서 곱게 봐주겠어? 너 정호환 이사님이 커버 안 쳐줬으면 뭔 꼴을 당했을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어.”
에리카는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김민주의 손을 부드럽게 떨쳐냈다.
“그게 도리(道理)야.”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
* * *
민경섭이 성필에게 따로 연락해왔다.
오늘 애들 음방 끝나자마자 봐야 할 일이 있으니, 퇴근 시각이 지나고 잠시만 회사에서 기다려달라고 말이다.
그 때문에 오늘은 에리카를 도와주러 가지도 못했다.
‘무슨 일이지.’
성필은 사무실에서 소소하게 덕질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이 불안했다.
매니지먼트 팀장의 독대 요청이다. 가볍게 받아들일 순 없다.
요즘 성필의 머릿속은 ‘우리들의 프로듀싱’ 프로젝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문일까, 민경섭이 부른 이유를 그쪽으로 끼워 맞췄다.
‘경섭이는 나를 포함해 우리 애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 중 한 명이야.’
그러니 소녀연맹의 심경에 가장 해박할 것이다.
‘애들이 동요하고 있는 게 보이나……?’
거대한 성공을 거둔 ‘애플 크러쉬’ 활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창 1위를 휩쓸며 돌아다닐 땐 다들 기뻤겠지만, 그것도 끝이 다가오자 다시 불안감이 올라오는 걸까?
‘리카는 애들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했었지. 하지만 그건 리카의 평가일 뿐이야.’
다들 내심 다음 타자 선정을 꺼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날이 오지 않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고.
‘경섭이는 그 얘기를 하려는 거 아닐까.’
소녀연맹에게 부담이 되니, 그 프로젝트를 조금 수정하는 게 어떻겠느냐.
민경섭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성필도 언제까지고 이 계획을 밀고 가긴 힘들다.
‘성장 서사의 상품화.’
아이돌의 완성도와 무결성뿐 아니라, 아이돌의 서사조차 인공적으로 다듬어 팬들에게 선보인다.
무대 위의 이야기뿐 아니라 무대 아래의 이야기도 팬들의 가시권에 두어, 아이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
그게 성필이 생각한 프로듀싱 전략이었다.
약 10년, 혹은 20년 후 국내시장의 축소가 확정되다시피 한 아이돌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난 창조성과 아티스트십에서 발생하는 아우라가 있다고 믿어. 본인이 생각했기에 본인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하지만 그게 지속 불가능한 이상이라면…….
성필은 고민이 깊어졌다. 어느새 인터넷 서핑도 멈추고, 사무실 안은 침묵에 잠겼다.
그때 문이 열리며 민경섭이 나타났다. 성필이 허겁지겁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 형. 갑자기 시간 내달라고 해서 미안해요.”
“으응, 아니야. 뭐, 여기서 이야기할래?”
“응접실로 올래요?”
“그래.”
성필은 민경섭과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 성필은 민경섭의 의중을 살피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딱히 심각한 분위기는…… 아닌 거 같아.’
매니지먼트 팀장 민경섭.
훗날 가로 엔터의 아티스트 풀이 넓어지면 매니지먼트 담당 이사까지 될 수 있는 인물.
그는 회사의 방향성에 따라 착실히 매니지먼트팀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리 성필이라도 그의 눈치를 안 볼 순 없다.
‘눈치를 본다, 라…….’
과거의 성필이 지금의 그를 본다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난 확신이 없어.’
‘인트로: 러브’ 앨범 작업을 하면서.
괴로워하는 백설하를 보았다.
눈물을 흘리는 백설하를 보았다.
못 하겠다고 부탁하는 백설하를 보았다.
그리고 성필은 그런 백설하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이 아이돌 활동을 마쳤을 때, 좋은 추억을 쌓았다며 행복해하길 바랐으니.
‘설하가 그토록 괴로워했다면 다른 애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성필은 확신이 없다.
믿음이 옅어졌다.
아니, 그런 표현은 어폐가 있다.
성필은 본인의 믿음과 소녀연맹의 행복을 저울 양편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 옳은지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나 슬퍼하는 백설하는, 그리고 멤버들은, 앞으로도 웬만하면 보고 싶지 않다.
‘만약 내가 계속 강행한다고 하면, 옛날에 리카한테 했던 이야기는 뭐가 돼?’
아티스트가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성필은 리카에게 그리 말했던 적이 있다.
진심이었다.
“형.”
민경섭이 응접실 문을 연 채 옆으로 살짝 비켜나 있었다. 먼저 들어가란 뜻이었다.
둘만 있는 자리에서도 상사 대우를 해주니, 성필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사석에선 간간이 욕도 섞어 쓰는 사이면서 말이다.
‘진지한 얘기라 이거지?’
성필은 기꺼이 그의 배려를 받아, 그보다 먼저 응접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신아름이 있었다.
“어?”
성필이 나타나자 신아름은 쭈뼛쭈뼛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얼떨떨하게 인사를 받았다.
“어, 그래. 숙소로 안 갔어?”
“형한테 할 얘기 있다고 했잖아요.”
민경섭이 문을 닫고 그의 맞은편, 신아름의 옆으로 가 앉았다.
“아름이랑 관련된 얘기예요. 형 얘기이기도 하고요.”
“나랑 아름이?”
이야기는 이러했다.
신아름이 성필과 에리카의 이야기를 SNS에 올리려고 했단 것이다.
성필이 에리카를 찾으러 가서 김하슬을 바람맞혔고, 그 때문에 성필이 욕을 먹고 있으니 모든 건 에리카 탓이란 논리였다.
“잠시 얘 폰도 압수해뒀어요. 진짜 올릴 거 같아서요.”
민경섭이 품에서 신아름의 폰을 꺼냈다.
“뭐, 둘이 얘기 좀 했으면 해서 이렇게 불렀어요.”
“…….”
성필은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었으나, 당황스러워서 쉽게 할 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일단 민경섭은 성필이 예상했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였다.
“아름아, 경섭이 말이 진짜야?”
KS 엔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에리카가 도망갔단 사실을 SNS에 밝히려고 했다고?
성필이 욕먹는 거 때문에?
“괘씸하잖아요…….”
신아름이 무릎 위에 주먹을 올려둔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팀장님이 그년 찾아줬는데, KS 엔터는 뭐 했어요? 그거 때문에 팀장님이 욕먹고 있잖아요…….”
“그래서, 나를 커버하려고 에리카 씨가 도망간 이야기를 퍼뜨리려고 한 거야?”
“왜, 왜 내가 잘못했단 거처럼 말해요?”
신아름이 목소리를 높였다.
목이 막히는지 발음이 부정확했다.
“잘못한 건 KS 엔터잖아요. 팀장님은 피해자고요. 물론 팀장님이야 워낙 사람이 좋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겠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하겠죠. 근데, 근데, 팀장님 힘들잖아요?”
신아름이 성필의 표정을 살피려 시선을 살짝 올렸다.
“팀장님은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내가 하려고 했어요. 팀장님 사람들한테 욕먹으면 안 되니까, 내가아…….”
“누가 날 욕해?”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데려와 봐.”
“……네?”
“한 명이라도 내 앞에 세울 수 있어?”
신아름이 얼떨떨하게 성필을 바라보았다.
“없잖아. 그럼 뭐 없는 거지.”
“그게 무슨…….”
“아름아, 그 사람들 평가는 나한테 하등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지. 나한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들이야. 그 사람들이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때문에 날 욕한다고, 뭐 내 직업이 없어지거나 집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럼 뭐, 안 보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리카가 여기 있었다면, 옛날처럼 버클리의 ‘유아론’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달을 눈에 담지 않는 동안, 달은 존재하지 않는 거다. 달은 누군가 관찰하는 순간 비로소 존재한다.
“네가 날 걱정해주는 건 이해해.”
신아름은 연예인이다.
당연히 사고방식이 연예인답게 흐른다.
과학자가 과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듯이.
사회학자가 사회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듯이.
연예인에겐 연예인의 시야가 있다. 그리고 그 시야로 성필을 재단하려 하니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딱 잘라 말하자면, 난 아무렇지도 않아. 애초에 사람들 반응을 안 보니까 어떻고 할 것도 없지.”
“그치만…….”
신아름이 민경섭을 흘끗 보았다.
민경섭은 성필이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었는데…….
민경섭은 신아름의 시선을 받고도 딱히 당황하진 않았다. 그는 성필이 신아름을 달래주려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아름이 탓하듯 민경섭을 보는 도중, 그녀는 갑자기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화들짝 놀랐다. 성필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보다는, 우리 아름이가 나 때문에 화내고 슬퍼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마음이 아프네.”
성필이 마사지하듯 신아름의 손을 꾹 잡았다가 느슨하게 푸는 것을 반복했다.
예전부터 성필이 신아름을 위로할 때 자주 해주었던 것이다.
손이 마사지되어 시원하다.
그리고 손의 온기가 전해져 기분이 좋다.
서로 이어진 느낌이 들어서 안정된다.
“미안.”
성필이 사과했다.
그로써 신아름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팀장님이 왜 사과해요오…….”
“아름이가 이렇게 마음 쓸 줄 알았으면 그냥 나가지 말걸 그랬어. 미안해.”
“사과하지 마요오, 팀장님이 왜애…….”
성필은 신아름을 한동안 달랬다. 그러면서 결심했다.
‘앞으로 방송이든 뭐든, 나를 드러내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어째서 정호환이 미디어 출연을 극히 삼갔는지 이해가 갔다. 어떤 식으로든 그룹에게 영향이 갈 것을 경계한 게 확실하다.
프로듀서는 어디까지나 무대 뒤의 존재로 남아야 한다.
본인의 명성을 마케팅 도구로 쓰는 이들도 있지만, 성필은 그런 이들의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름이를 위해서, 내가 나서는 경우가 있어선 안 돼.’
전생에선 겪어보지 못한 사태였기에 성필의 배려가 충분하지 못했다.
어느새 신아름은 기분이 풀렸는지, 마사지 받기만 하던 손을 성필과 맞잡은 모습으로 바꾸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꾹꾹 감싸며 온기를 공유한다.
성필과 신아름은 한바탕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확인하고, 분위기를 더 가볍게 바꾸었다.
“경섭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 네가 큰일 했어.”
“진짜요. 아름이가 날 상담 상대로 골라줘서 다행이죠. 폭발을 미연에 방지했잖아요.”
“아 오빠, 내가 뭐 폭탄이에요?”
“어느 정도는…….”
신아름이 픽 웃으면서 민경섭의 어깨를 툭 쳤다. 민경섭이 과장되게 앓는 소리를 냈다.
성필을 그걸 바라보며, 민경섭이 신아름을 빠르게 막아주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름이가 정말 그랬으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에리카가 도망간 건 사적인 일이다.
아이돌의 사적인 모습을 SNS로 공개하는 건 공격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아티스트든 그렇지만, 아이돌은 특히나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다. 회사는 심혈을 기울여 아이돌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유지하며 관리한다.
다른 이가 무대 뒤에 존재하는 아이돌의 본모습을 알리는 건, 그게 어떤 내용이든 커다란 문제다.
‘그야말로 KS 엔터를 향한 공격.’
KS 엔터가 오랜 시간 막대한 자본과 능력을 투사하여 만들어낸 케이어스 에리카란 이미지를, 신아름이 SNS에 올릴 짧은 글로 부술 수 있었다.
정말, 공격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수준이다.
‘KS 엔터가 보복이랍시고 소녀연맹의 미디어 출연을 틀어막을 수도 있었겠지.’
KS 엔터가 레거시 미디어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영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30년의 세월 동안, KS 엔터가 쌓아 올린 건 자본만이 아니다. 방송가와의 유착 또한 그들의 힘이다.
‘에리카가 도망갔단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KS 엔터는 매니지먼트 능력을 의심받을 거야. 주주들은 물론 팬들도 KS 엔터를 욕할 거고.’
아니, 가장 최악은 KS 엔터가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일 없었는데?’라고 이 악물고 부정하면 신아름과 가로 엔터만 이상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가로 엔터에겐 최악의 미래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성필은 이참에 신아름에게 확실히 이런 일이 없을 거란 확답을 듣고자 했다.
“아름아, 앞으로 그런 고민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줘야 해. 알겠지?”
“팀장님은 힘든 거 있어도 나한테 말 잘 안 하잖아요. 나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어른이니까 그렇지.”
“나도 이제 어른이에요.”
“그럼, 앞으론 아름이한테 더 기대도 될까?”
신아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성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퇴근한 후 바로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합숙소로 갔던 한구인이었다.
[박 이사님, 지금 기사 뜨는 것들 보셨습니까?]
“기사요? 뭐 관련해서 떴는데요?”
성필은 스피커 모드로 전환하곤, 폰으로 그와 통화하는 동시에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곧바로 연예 기사란을 찾았다. 한구인이 언급할 기사 이야기라면, 연예 관련 내용뿐일 테니까.
[박 이사님이 에리카 씨를 찾으러 가셨던 내용입니다!]
“…….”
한구인이 말함과 동시에, 성필도 연예란 최상단을 차지한 기사들을 보았다.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설마, 이거, 이, 이거…….”
[에리카 씨가 그날의 일을 전부 밝히셨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에리카는 본인의 믹스테입 작업과 협력 프로듀서로서 성필과 리카의 협력, KS 엔터의 계속된 거부, 회사와의 불화, 도망.
그 모든 것을 SNS에 밝혔다.
[지금 합숙소에서도 난리여서 연락드렸습니다. 이건 에리카 씨의 도망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실상 박 이사님이 하슬 씨를 바람맞힌 일을 옹호…….]
성필은 손에서 힘이 빠져선 폰을 떨어뜨렸다. 민경섭이 기겁하면서 떨어진 성필을 폰을 주워서 살폈다.
성필의 폰은 가로 엔터에서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다. 안엔 수많은 연락처가 들어있으니.
“왜 이렇게…….”
어째서 에리카가?
아니, KS 엔터가 돌아버렸나?
그것도 아니면…….
‘에리카 씨의 독단……?’
만약 그렇다면, 에리카는 회사 수준의 제재를 받게 될 터다.
그녀가 케이어스든 뭐든, 앞으로 그녀의 앞길이 밝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성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미래가 얼마나 꼬이려고…….’
* * *
몇 시간 전.
KS 엔터 매니지먼트 이사 집무실.
매니지먼트 이사 남홍범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에리카는 부동자세로 서서 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았다.
숨 막히는 침묵 끝에, 남홍범이 입을 열었다.
“아, 요약하면 네가 도망간 걸 밝혀도 되냔 거지?”
“네, 이사님.”
남홍범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간 것도 그렇고, 넌 회사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네. 호환이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아주 우습게 봐. 그치? 잘 안 돼도 일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 마인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