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화
“박 이사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게 있어요! 자기표현의 즐거움이요! 그런데 그건 박 이사님께는 해당되지 않는 건가요! 박 이사님은 저로 표현하고 싶은 게 없으신 건가요!”
성필은 프로듀서다.
그가 처음 소녀연맹을 맡을 때부터 일관적으로 지켜오고 있는 철칙이 있다. 바로, 멤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아니’의 혁명 컨셉은 이런 식으로 탄생했다.
‘롱 포’로 보여주었던 사랑의 표현법, ‘아라베스크’의 안무 구성. 그리고 그 방식의 정점이었던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1’, ‘애플 크러쉬’까지.
“정작 박 이사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간 적이 없어요! 저희와 회사의 팀원들을 존중해주시는 건 기쁘지만, 한 번쯤은 괜찮지 않나요!”
그리 말한 리카는 급히 발언을 수정했다.
“박 이사님이 하고픈 게 있으시다면요!”
성필이 하고 싶은 것.
소녀연맹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
그건 지금까지 아주 잘 이뤄왔다.
성필이 가로 엔터에 들어오자마자 제출했던, 이젠 가로 엔터의 보물처럼 되어버린 기획서가 있다.
그곳에서 성필은 모두에게 천명했다.
가로 엔터의 아이돌이 보여주어야 할 건 그들만의 꿈과 사랑, 바람과 가치, 아티스트십이어야 한다고.
그게 성필이 표현하고 싶은 것이고, 미래에서 보고 온 최고의 아이돌이 지닌 힘이고, 종국엔 소녀연맹을 승리로 이끌 필승법이다.
“아타시(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성필이 멤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말했던 자기표현의 즐거움.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오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네가 하고 싶다고?’
성필은 한숨과 함께 마른세수했다. 그가 거칠게 얼굴을 비비자 리카가 잔뜩 긴장했다.
리카는 혹여나 자신이 말실수를 한 건지, 성필을 실망시킨 건지 불안했다.
성필이 겨우 입을 뗐다.
“리카, 내가 프로듀서로서 완전히 키를 쥐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주도하지 않는 건…….”
그는 이 순간, 그가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고민과 마주하게 되었다.
멤버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은 미래에서 따온 성공 공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성필은 어째서 그것에 집착해왔는가?
성필이 어떤 사안을 집요하게 밀고 나간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그의 태도는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다’였다.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리더란 건 존재하기 매우 힘들다.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게 계속되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된다.
이른바 이상적이기만 한 리더상(相)이란 뜻이다.
세상의 많은 리더들이 세종대왕처럼 되고 싶지 않겠는가? 부하들을 존중하는 리더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힘들고 짜증 나서 못 하는 거다.
성필이 많은 이들에게 인망을 얻는 건, 그 어려운 길을 부단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길을, 자기 자신을 깎아가면서, 굳이 왜?
“그러니까, 나만의 비전으로 프로듀싱을 이끌어오지 않은 건…….”
리카는 성필의 그러한 모습을 다르게 바라봐왔다.
분명 성필도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주변에 밀려서 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젠가는 성필의 비전대로 행해지는 프로듀싱에 참여하고 싶다.
성필의 억눌린 욕망을 일깨우고 싶다.
리카는 성필의 리더십을 그런 방식으로 보아온 것이다.
“않은 건……?”
리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필의 입에서 나온 답은 예상외였다.
“모방할까 봐 그래.”
“모방요?”
성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레 미래에 등장할 온갖 혁신적인 그룹들을 안다.
지금도 제목만 말하면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올 노랫말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아직은 등장도 하지 않은 그룹 멤버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성필이 감탄에 마지않았던 미래의 아이돌들.
만약 성필이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듀싱의 모든 조각을 맞출 수 있게 된다면…….
‘결국 모방작에 머무르게 될 거야.’
혹은 열등감에 머무르거나.
성필의 상대는 현재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미래에도 상대가 존재한다. 오직 성필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는, 넘어서야 할 그룹들 말이다.
비교 대상이 미래이니, 현재를 기준으로 잘 만들어봤자 성필의 눈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미래에 등장할 혁신을 끌어오면, 그건 결국 미래의 모방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알겠어.’
성필이 그렇게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건, 그가 모방작을 만들었단 혼자만의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현대를 사는, 현대인의 감각으로 만들어진 독창적인 생각은, 성필이 하듯 미래의 모방이 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완전하게 디렉팅한 작품은 절대 미래의 영향력에서 못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의 합작(合作)이기에, 성필은 한두 가지 요소만 추가하는 선에서 멈춘다.
하지만 그가 전권을 휘두른다면 최종적으로는 미래에 존재할 어떤 그룹을 따라 하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선지자의 고뇌다.
90년대 한국 가요계를 들썩였던 표절 논란.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히트곡이, 문화적으로 훨씬 발전했던 미국과 일본의 카피곡이었단 사실이 대대적으로 드러났던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사실상 미래를 보고 온 거나 마찬가지였지.’
미국과 일본의 문화를 보고 한국으로 왔다.
그런 가수들은 더 이상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일평생을 갈고 닦은 오리지널티리는, 영원히 미국과 일본의 진보한 아티스트들을 넘어설 수 없을 테니.
이미 자신을 아득히 넘어선 예술이 존재하는데, 굳이 그걸 놔두고 스스로를 혁신할 리 없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게 표절로 얼룩진 한국 90년대 문화계였다.
이른바, 성필은 그 고뇌를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90년대의 표절 가수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는 지금과 같이 가는 거야.’
서포트형 프로듀서로서 아티스트의 성장, 발전을 성심성의껏 돕는다.
가로 엔터의 인재들과 함께 문화기술(文化技術) 발전에 매진한다.
90년대엔 표절 가수들만 있던 게 아니다.
타국의 문화를 참고삼아 한국적으로 로컬라이즈하고, 그보다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려 한 뮤지션들도 많았다.
성필이 바라는 건 그런 모습이었다.
미래의 영향력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 말이다.
‘아, 이제 알겠다.’
성필은 속이 시원해졌다.
글로브의 컴백을 보고 심란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오직 성필만이 느끼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괴리. 그로 인한 고통. 그게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결국 성필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 열쇠는 성필이 지닌 미래의 지식이 아니다. 가로 엔터 모두와의 인연이며 소녀연맹 멤버들의 힘이다.
‘미래가 앞당겨졌다면…….’
소녀연맹이 정점에 서기 위한 타임 리미트, 진정한 4세대가 더욱 빨리 도래한다면.
그것 또한 좋다.
성필은 그 상황에서도 반드시 최고의 아이돌을 만들어내고 말 테니.
“모방이라면, 누굴요?”
그리 성필 혼자 후련해진 가운데, 긴 침묵 끝에 리카가 물었다.
“응?”
“모방할까 봐…… 라뇨? 누구를요?”
누구를?
그야 미래에 등장할 그룹들…….
‘이라고 말할 순 없지……?’
성필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리카는 건수를 잡았단 듯 성필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케이어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이건.
“케이어스가 박 이사님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라서, 박 이사님이 프로듀싱을 하면 케이어스처럼 될 거란 말씀이신가요!”
익숙한.
“그래서 프로듀싱을 독단적으로 하지 않으신단 건가요?!”
너무 익숙한 패턴…….
“저를 최고의 아이돌이라고 생각하신단 것도 그냥 저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인 거죠! 썸이 1호가 됐을 때부터 알아봤어요! KS 엔터에서 이직 제안이 오면 바로 가실 거 아닌가요!”
“아…….”
정말, 차라리 프로듀싱에 관련한 미래 지식만 사라졌으면 좋겠다.
미래와 현재를 헷갈려서 이런 곤혹을 얼마나 많이 치르는지…….
* * *
“응? 성필이 너 리조트 가게? 일해야 해서 안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됐어.”
손혜빈은 ‘음, 뭐, 알겠어’라면서 참가자 목록에서 성필의 이름에 동그라미 쳤다.
“근데 리카는 왜 네 등 마사지하고 있어?”
“마사지하는 게 아니라 때리는 거야.”
“또 무슨 잘못 했어?”
“잘못은 아니고, 나 야유회 같이 갈 때까지 이러겠대서. 계속 맞고 있을 순 없잖아.”
“부럽다. 같이 놀러 가자고 때리는 친구 있어서.”
“그냥 친구가 아니에요!”
리카가 성필의 등을 마사지하길 멈추었다.
“실버타운 메이트예요!”
“하여튼, 성필이 얜 리카가 해달라는 거면 다 해주고 그러네. 성필아 제발 지조 좀 있어라. 언제까지 그렇게 끌려다니기만 할래?”
성필은 미묘한 표정으로 리카를 보았다. 리카는 그의 시선을 받자마자 헤프게 웃었다.
“이런 애가 부탁하는데 어떻게 거절해.”
“한 이사님 들으셨어요? 한 이사님은 성필이가 생각하는 ‘이런 애’가 아닌가 봐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박 이사님께 리카 씨보다 못한 친구인 거겠죠…….”
“에이, 한 이사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맞아요! 박 이사님이 저랑 더 친한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
그날, 리카는 한구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매우 노력해야 했다. 계속 삐친 한구인을 따라다니면서 ‘친구에는 급이 없어요!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라고 재잘거렸다.
아무튼 그렇게, 성필은 야유회에 참여하게 됐다.
* * *
“갑자기 날짜 바꿔서 미안.”
성필은 친구들에게 사과하며 테이블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약속한 세 명의 친구들은 술을 몇 잔 돌린 듯했다. 밑반찬과 육회가 1/5 정도 사라져 있었다.
“그러게.”
친구인 우혁이 성필의 앞에 수저를 두면서 말했다.
“네가 웬일로 금요일에 만나자고 하냐. ‘평일엔 일해야지’라면서 계속 주말에 만나자던 애가.”
“주말에 야유회 가게 돼서.”
“안타깝구만.”
성필은 육회를 한 점 집어먹으면서 오랜만에 모인 면면을 바라보았다.
모두 고등학교 때의 인연이다.
우혁, 상연, 희경.
그들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학년마다 같은 반이었던 것도 있지만, 동아리 활동 때문이었다.
성필이 학생이던 시절 인문계 동아리 활동이라고 하면 단순한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았었다. 선생이든 학생이든 동아리 활동 땐 시간만 때웠었다.
그런 인연이다.
“성필이 왔으니까 제대로 건배하자.”
상연이 잔을 들어 올리고, 곧이어 모두 잔을 부딪치며 건배했다.
“‘역사 인물 탐구부’ 건배!”
그들이 속했던 동아리는 ‘역사 인물 탐구부’라는, 이름만 들어도 재미없는 곳이었다.
영원토록 자신들이 학생일 거라고 믿었던 그들은, 어느새 번듯한 사회의 일부가 되어 술잔을 나누었다.
“나는.”
희경은 성필이 오기 전 들이마신 소맥 다섯 잔 때문인지 벌써 얼굴이 불콰했다.
“아직도 얘가 기획사에서 일한다는 게 안 믿겨. 저거 몸 우락부락한 거 봐. 개섹시해.”
“어? 플러팅?”
“지랄. 아니, 진짜 안 믿긴다니까? 너희들도 얘 고딩 때 어땠는지 기억하지?”
희경이 운을 띠우자 다른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다.
“얘 진짜 살벌했지.”
“살벌하긴 뭘…….”
“진짜 살벌했다니까. 아, 추억이다 참.”
희경의 눈이 아득한 과거를 바라보듯 희미한 빛으로 물들었다.
* * *
고등학교 교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1교시만 더 지나면 동아리 활동 시간이었다.
즉, 1교시만 더 버티면 남은 시간은 대충 때울 수 있단 뜻이다. 학생들은 저마다 들뜬 분위기로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중 특이한 조합의 학생들이 있었다.
희경, 우혁, 상연이었다. 그들은 희경의 책상 근처에 도란도란 모여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때 희경이 뒤로 홱 돌아보았다.
교실의 가장 뒷자리, 어느 남학생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불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진짜 못 참겠다.”
희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우혁과 상연이 기겁하면서 그녀를 말렸다.
“야 하지 마.”
“하지 말긴 뭘 하지 마.”
“아니, 쟤잖아…….”
“쟤가 왜? 쟤라도 설마 여자를 팰까?”
“아니이…….”
우혁과 상연의 불안을 뒤로하고, 희경은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용기 있는 말씨와는 다르게 희경의 얼굴은 공포로 덮여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화가 나서 그에게로 돌진하는 중이지만, 그는 이 학교 누구도 상종하길 꺼려하는 인간이었으니까.
“야.”
희경이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불렀지만 그는 책상에 계속 머리를 박고 있을 뿐이었다.
“야!”
살짝 크게 부르자 그가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곤 ‘으으음’ 잠기운이 잔뜩 배어 나오는 신음을 흘렸다.
희경이 깨운 건 그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이목 또한 깨웠다. 모든 학생들이 희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움이 가득 깃든 눈으로.
“야, 박성필!”
그, 책상에 머리를 박은 성필이 크게 몸을 꿈틀댔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짜증이 잔뜩 밴 얼굴.
험상궂게 찡그린 표정.
선생들도 손을 놓은 문제아.
“뭐.”
“너, 너, 우리 도, 동아리 활동 팀원이잖아! 조, 조사 과제, 어? 주제, 정해야지!”
희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성필을 몰아붙였다.
그녀는 성적이 우수하며 교사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반장직까지 겸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대충인 것을 못 참는다.
설령 상대가 성필이라도 해야 할 건 하…….
“뭐?”
성필이 의자를 거칠게 끌면서 일어났다.
“뭐라고?”
성필이 몸을 일으키자, 희경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 때문에 몸을 움츠렸다.
그가 듣지 못하는 뒤에서, 학생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애미애비 없는 새끼.
그의 인성을 뜻하는 별명이긴 했으나, 실제로 그는 고아이기도 했다.
“뭐라고 했냐?”
박성필, 17세, 질풍노도의 시기.
* * *
“야 씨 부끄러우니까 고딩 때 일 꺼내지 마!”
성필은 술을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얼굴이 거하게 붉어져선 다른 이들의 입을 막으려 안달이었다.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리면 창피하기 그지없다.
“갑자기 과거 회상을 왜 해. 각성이라도 하게?”
“각성?”
“만화에서 싸우기 전에 회상하면 세지고 그러잖아.”
“몰라, 만화 안 봐.”
성필은 또 창피해졌다.
리카의 닦달에 못 이겨 서브컬처 소설이나 만화를 읽어버린 그는, 리카와의 대화에서 너무 당연하게 서브컬처 지식을 쓴다.
그게 친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버렸다.
성필은 괜히 술을 홀로 들이켰다.
“근데 오늘은 왜 늦었어?”
“백화점 들르느라.”
“백화점은 왜. 여친 선물 사?”
“일단 여친 없고, 수영복 사야 해서. 야유회 가잖아.”
“와, 무슨 회사가 야유회를 바다로 가냐.”
“프라이빗 리조트 간다. 진짜 바닷가에 건물 따로 떨어져 있는 데.”
성필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브이를 그렸다.
우혁이 감탄했다.
“거기 어디 회사냐? 나도 좀 들어가자.”
“가로 엔터. 넌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돼. 그리고 이거 임원 포상이야.”
“30대 임원, 진짜 우리 동아리의 자랑이다.”
희경이 또 건배를 권했다.
성필이 그녀를 띄워주었다.
“너만 하겠냐. 야자수 들어갔으면서.”
“진짜 진짜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인 듯. 헤드헌터한테 연락 왔을 때 눈 딱 감고 옮기길 잘했어. 일은 좀 재미없긴 한데.”
“우리 회사에도 야자수 출신 있어.”
“진짜? 누군데?”
“양상헌 씨라고, 알아?”
“몰라.”
하긴, 직원이 몇 명인데 알겠는가.
희경은 자랑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 몸은 글로벌 IP 사업부 직원이라서, 진작 회사를 뜨신 분은 잘 모르시겠네?”
“야자수 국내 원툴 기업 아님? 해외 사업부가 따로 필요해?”
희경이 우혁의 목을 졸랐다. 우혁이 ‘야자수는 세계 최고의 IT 기업입니다!’라고 선언하고 나서야 그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성필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멍하니 핸드폰을 만지는 상연이 눈에 들어왔다.
상연은 뭐가 그리 바쁜지 열띠게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희경이 짜증이 서린 투로 상연을 타박했다.
“극혐이다. 사람 얼굴 보러 나와서 유리 감옥에 갇혀 있네.”
“자동사냥 돌리는데 어떤 새끼가 치잖아. 근데 니들 그거 알아? 요즘 난리 났잖아.”
“난리?”
성필은 귀를 쫑긋 세웠다.
트렌드에 항상 발을 걸쳐야 하는 그로서 ‘난리’라는 단어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뒷광고. 아이튜버들 다 정장 차려입고 줄줄이 사과하던데.”
“뒷광고……?”
“그니까, 광고 표시를 안 하고 광고 하는 거야.”
“그게 잘못이야?”
우혁이 아무것도 모르는 투로 반문했다.
상연이 헛웃음을 뱉었다.
“잘못이지. 광고인 줄도 모르고 우리가 보는 거잖아.”
“그렇게 따지면 티비 예능은 다 뒷광고 아니야?”
텔레비전 방송은 협찬이 아닌 이상 모든 상표를 블러, 모자이크 처리한다. 만약 상표명이 한 번이라도 나온다면 그건 협찬 광고이다.
그렇지만 광고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운 터라, 시청자들은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예능에서 연예인들이 밥을 먹으러 간 식당이 있다. 그 식당의 간판이 살짝 노출되면 시청자들은 ‘그냥 저기에 밥을 먹으러 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간판이 한 번이라도 노출됐다면 그건 협찬 광고이다. 광고인 줄도 모르게 노출하는 것이다.
“그거랑 좀 다르다니까?”
“하튼 이 새끼 옛날부터 호들갑 떠는 거 좀 심해. 그게 왜 난리냐?”
“진짜 난리라니까! 인터넷에 다 그 얘기야!”
상연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사안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광고업계에서 일하기 때문인지 이 일에 민감한 듯했다.
“‘쭈이’는 알지? 200만 아이튜버인데 걔도 막 사과하고, 아이튜버들 전부 그러고 있다니까?”
“아 몰라.”
“그래, 늙은이가 뭘 알겠냐.”
“야, 여기서 너만 걔 알아. 성필이 너 ‘쭈이’ 알아?”
“아니.”
“희경이 넌?”
“몰라.”
“아니 어떻게 ‘쭈이’를 모름? 영상 한 번이라도 봤을 건데.”
“모를 수도 있지 왜 억울해해.”
“유명하다니까…….”
“소녀연맹보다?”
희경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상연이 당황했다.
“아이돌보다야, 뭐, 안 유명하겠지. 근데 유명하다니까?”
“아 맞다, ‘애플 크러쉬’ 좋더라.”
“어, 나도 그거 자주 들어.”
우혁이 부드럽게 화제를 넘기자 상연이 따라왔다.
성필은 아이돌 주제가 나오자 허허 웃었다.
“됐어. 아이돌 얘긴 왜 하냐.”
“너 옛날엔 우리 만나면 침 튀기면서 아이돌 얘기만 했잖아.”
“너희들 관심 없잖아.”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게, 자기가 배우는 게, 자기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그런 관념이 더 강하다.
옛날의 성필은 아이돌이란 멋진 문화를 친구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돌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었다.
당연히 친구들은 아이돌 이야기라면 학을 떼는 수준까지 갔었다.
“관심 없긴. 친구가 만든 그룹인데 어떻게 관심이 없어?”
“……진짜?”
“그래.”
성필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눈이 별처럼 반짝이는 수준이었다. 그는 기대감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상연에게 물었다.
“그럼 너 뮤비 봤어?”
“아니.”
“근데 뭘 ‘애플 크러쉬’가 좋대?! 뮤비도 안 보고 뭐 한 건데!”
“노래만 들었지. 노래는 좋아, 노래는.”
“아이돌이란 건 종합예술이야! 뮤직비디오가 그 정수라고! ‘쭈이’ 볼 시간은 있는데 뮤비 볼 시간은 없다고?!”
“이 새끼 표정 달라지는 거 봐라. 알겠다 알겠어, 가서 볼게.”
“근데 요즘은 누가 제일 잘나가냐?”
희경이 물었다.
“나 아이돌 챙겨본 건 ‘소녀시절’이랑 ‘다키스트’? 그때가 끝인데.”
“제일 핫한 건…… 케이어스?”
“아, 케이어스. 이름 알아. 근데 최근에 나온 노래 좀 이상하지 않아?”
아마 ‘넥타르’일 것이다.
“신곡 나왔다길래 한 번 들어봤는데 한 1분? 듣고 말았어.”
“뮤…….”
“뮤비 안 봤어.”
“…….”
“근데 이상하네. 내가 소녀연맹 노래 자주 들어서 그런가, 소녀연맹이 제일 인기 많은 줄 알았어. 차트에도 계속 올라와 있고. TOP100 재생하면 계속 있던데?”
“응, 그렇긴 한데…….”
“글로브인가?”
갑자기 상연이 말했다. 그는 PK를 시도하는 플레이어를 죽이는 데 성공했는지 표정이 밝았다.
“성필이 네가 전에 있던 회사에 아이돌 아니야?”
“어, 맞아. 걔네 알아?”
“티비 틀었는데 예능에 나오길래.”
“글로브 요즘 되게 갑론을박이 많아. ‘후 어’ 스타일 자체가 케이팝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왜.”
희경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물었다.
“‘난리’야?”
그 물음을 듣고 성필은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 뒷광고 같은 거처럼? 막 ‘난리’ 났어?”
“…….”
성필은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곧이어 하하 웃었다.
“술이나 마시자.”
* * *
성필은 차 뒷좌석에 앉아 훅훅 지나가는 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운전석에선 대리기사가 능숙한 솜씨로 차를 몰았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동시에 차가웠다.
‘난리야?’
희경이 던졌던 질문이 자꾸만 뇌리에 멤돈다.
오늘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는 성필이 미래에서 보았고, 또한 옛날부터 진행되던 현상을 더욱 확고하게 인식하도록 해주었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 문화 교류의 증대.’
고작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진 이 급작스러운 변화는 세계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세계와 세계의 즉각적인 연결.
미디어 플랫폼의 다양화와 거대화.
새로운 세대가 사회의 주역으로 부상.
이런 기술문화적 발전을 두고, 과거의 학자들은 이렇게 예측했다.
‘인류는 하나로서 더욱더 깊고 강하게 연결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로 인류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세상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
아이튜버들이 뒷광고 논란에 휩싸이든, 글로브가 케이팝씬에 변화를 몰고 오든, 어떤 당에서 공천비리가 발생했든,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이 사는 세계의 이야기다.
인간의 관심사와 취향, 문화는 하나로 연결되긴커녕 더 다양하게 세분화되고 있다.
성필은 술기운을 내뱉으려는 듯 깊고 긴 한숨을 뱉었다.
‘중심의 해체.’
미국의 팝.
20년대 재즈란 대중문화의 등장, 50년대 로큰롤의 흥성, 80년대 파티클럽 문화 발흥, 이렇듯 다양한 혁신들로 철옹성과 같은 위세를 유지하던 아메리카 팝.
미국은 세계 문화의 중심이다.
중심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중심일 수 없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중심은 갈가리 찢겨 세계로 흩어진다.
과거에 흥성기를 누렸던 제이팝이나, 현재에도 강세인 스웨디시팝과 라틴팝. 그리고 그들 둘과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주변 문화인 케이팝.
이렇듯 지역의 음악 문화들이 글로벌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던 건, 미디어 발전과 함께 중심의 해체가 큰 역할을 했다.
‘더는…….’
인류는 더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팝이라는 강력한 중심이 세계를 압도하여 타 지역을 거의 문화식민지화시키거나.
압도적 다수의 인간이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같은 취향을 가지거나.
인간이 문화적으로 통합된 세상은 결단코 재림하지 않는다. 다신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다수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세상.’
즉,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은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성이란 말은 허상이 됐어.’
글로브의 컴백곡이 보여준 혁신성. 현재에는 존재할 수 없는, 시대를 뛰어넘은 곡과 컨셉.
성필은 그것을 보고 공포를 느꼈었다.
소녀연맹이 정점에 오를 수 있는 타임 리미트가 앞당겨졌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한 명에게라도 더 소녀연맹의 음악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아라의 ‘오토마타’가 그 해결책이 될 것인가…… 의문을 가졌었다.
‘아니야.’
고민할 필요는 없다.
‘대중이 좋아할까’를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3세대와 4세대에 걸친 애매한 시기. 대중성과 예술성이 첨예한 간극을 두고 경쟁하던 시기. 모호함 속에서 여러 그룹이 명멸(明滅)하는 시기.
모두가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치사하게도 성필은 답을 쥐고 있다.
‘글로브가 옳다.’
본인만의 색을 갖추어야 한다.
팬덤의 견고한 충성심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조아라가 옳다.
‘오토마타’로 펼치려는 조아라의 세계는, 한물 지난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길 희망하고 있다.
조아라는 아이돌 퍼포먼스를 다음 차원으로 이끌려고 한다.
조아라가 댄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었다.
‘신기한 건 그 자체로 미덕이라고 했지.’
‘오토마타’ 퍼포먼스는 신기함을 케이팝 팬들에게 아낌없이 선사할 것이다.
소녀연맹은 다른 아이돌과 비할 수 없는 퍼포먼스 역동성과 무대 장악력으로 씬을 주도할 것이다.
4세대 아이돌은 스마트폰이란 미디어 플랫폼에 최적화된 안무를 주요 강점으로 세웠다. 아이튜브나 ‘클락’에서 유행을 탈 수 있도록 말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3세대가 갖추었던 미덕이 희미해졌었다.
‘퍼포먼스의 실감.’
실제로 보고 압도당하는 역동성과 힘.
진정한 무대에서 아티스트가 방출하는 아우라.
‘오토마타’의 소녀연맹은 3세대의 미덕을 극한까지 갈고닦아, 곧이어 나타날 4세대와 맞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덕이 통할 만한 나라가 있다.
아니, 통해야만 하는 나라가 있다.
성필은 꿈을 담아 작게 읊조렸다.
“미국…….”
소녀연맹, 현재 3년 차.
내년, 혹은 내후년.
성필은 미국을 노린다.
케이팝 소비국 규모 1위를.
* * *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한구인이 물었다.
성필은 이국적인 의자에 앉아 심각하게 허공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한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뇨, 그냥요.”
“그렇습니까. 주말까지 일을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제 술을 마셨거든요.”
“숙취해소제를 가져왔는데, 드시겠습니까?”
“좋죠.”
성필은 그에게서 해소제를 받아먹었다. 머리가 조금은 깨는 기분이 들었다.
한구인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쿠아 레깅스에 트렁크 수영복, 그 위에 착실하게 레쉬가드까지 걸친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성필은 슬리퍼에 수영복 바지만 입은 심플한 복장이었다.
“오, 한 이사님 스타일리쉬한데요?”
“제가 물과 인연이 없어서 사장님께 코디를 부탁드렸습니다. 수영에 이렇게 많은 복장을 입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저도 사장님한테 추천받을 걸 그랬네요.”
“지금도 멋지신데 뭘 그러십니까.”
그 순간 한구인이 성필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성필은 당황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세요?”
“박 이사님 그거 혹시…….”
한구인이 급히 성필의 앞으로 다가와 상체를 수그렸다. 그리고 그의 갈비뼈 부근을 자세히 살폈다.
“이거 전거근(前鋸筋)입니까?”
전거근.
갈비뼈 부위의 근육이다.
일반 사람들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느낄 수도 없는 근육이다. 굉장히 한정된 동작만 수행하는 근육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느낄 일이 적단 건 그만큼 단련하기 어렵단 뜻이다.
“네.”
성필이 쑥스러운 기색으로 자신의 갈비뼈를 슬슬 쓸었다.
“꽤 형태가 잡혔죠?”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건 처음입니다.”
관찰이라니, 무슨 희귀 동물이 된 기분이다.
한구인은 허락이라도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성필의 전거근을 만질 듯한 느낌이었다.
“열심히 하시는군요. 매일 힘들지 않으십니까?”
“운동은 힘들지만 재밌어요. 정직하게 보상이 돌아오잖아요.”
“하긴, 저희 일은 정직하진 않으니까요.”
엔터테인먼트업(業)이란 시장을 설득하는 게 일이다. 그리고 시장과 대중은 변덕스럽다.
아무리 열심히 만들었다 하더라도 관심조차 못 받을 수 있다. 심혈을 기울여 집어넣은 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도 있다.
들인 공과 반응이 정비례가 아니다.
‘우리 업계 사람들이 말하곤 하지.’
누가 이길지 모른다. 이건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니까.
예술이란 모호한 영역이다.
“저희 일은 일을 해도 해도 확신이 안 서잖아요. 프로젝트의 끝에 다다르고도 가슴 졸이고 있어야 하고요.”
그에 비해 운동은 정직하다.
한 만큼 돌려준다.
재능의 차이는 있겠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이 보상을 못 받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노력을 준 만큼 돌아온다.
“스트레스 해소가 되죠.”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래서 저도 독서를 합니다. 읽은 만큼 머릿속에 들어오니까요.”
“그것도 일맥상통하네요.”
성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에 놓아둔 태닝크림을 집어 들었다.
“이 날씨에 태닝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되지 않을까요? 운 좋게 20도 후반이잖아요. 구름도 없고요.”
“여긴 햇볕이 강하긴 하더군요. 남쪽이라 그런 걸까요.”
10월.
일교차가 극심한 계절이다.
낮엔 20도 중후반이었다가 밤이 되면 10도 중반으로 떨어진다.
성필은 햇볕이 잘 들면 태닝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어 태닝크림을 가져왔다. 그다지 수영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나가면 등에 좀 발라주실래요?”
“정말 상상도 못 한 이벤트군요.”
“애들이나 사장님한테 발라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멤버들에게 부탁하면 권력형 성희롱이 될 수 있다. 홍규헌에게 부탁하면 하극상 혹은 강렬한 구애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부적절하다.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성필이 힘차게 숙소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자마자 쨍쨍히 내리쬐는 햇볕과 곡선형의 수영장이 반겨주었다.
디귿(ㄷ) 자 형태의 건물 중앙에 있는 수영장은, 외부의 어떤 시선으로부터도 차단되어 있었다.
“신나게 놀아볼……!”
“아, 드디어 나오셨네요!”
성필은 입이 굳었다. 뒤따라 나오던 한구인은 아예 몸이 얼어붙었다.
둘의 눈에 어느 사람이 잡혔다.
“빨리 수영하러 오세요!”
앞에서 리카가 뭐라고 외쳤지만 보이지 않았다.
성필은 입술을 뻐끔대다가 겨우 어느 단어를 뱉었다.
“설하,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