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오토마타’ 뮤직비디오는 2절이 끝나고 브릿지에 들어섰다.
여태껏 소녀연맹이 보여준 건 완벽한 인형의 모습이었다. 그녀들은 격렬한 춤과 노래를 소화하면서도 조금도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는다.
배경은 인공적인 장소뿐이다.
종이 공예로 만든 숲의 가운데.
잘 다듬어진 인공적인 광장.
사방이 검은 금속 재질인 방.
그녀들은 어디까지나 인형으로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존재로서, 인공적인 공간 안에만 머무른다.
‘드디어.’
윤상열은 자기도 모르게 참았던 호흡을 재개했다.
격렬한 2절 퍼포먼스의 끝, 최후의 하이라이트로 이어지는 브릿지 파트.
드디어 멤버들이 한숨 돌릴 만한 구간이 나왔다. 이전과 비교하면 텅 비다시피 한 사운드 속에서, 소녀연맹은 그레고리안 성가(聖歌)를 연상시키는 합창을 시작한다.
낮은 피치의 한음 멜로디(하나의 음으로만 구성된 멜로디라인)를 유지하며, 멤버들은 처음 있던 부스 안으로 들어와 유리벽을 향해 외친다.
[승리를 향해 이 노래를 불러라
더 높은 Stage 더 높이 Higher
어둠과 뒤섞인 새벽길 끝까지]
마치 그 옛날 시위대가 불렀던 민중가요 같다. 가사가 그렇다기보다, 한음작업으로 만들어서인지 분위기가 비슷했다.
부르기 쉽고 힘이 들지 않는…….
‘여기서 힘을 비축하는 건가.’
이 뒤로 엄청난 퍼포먼스가 있다는 거겠지.
윤상열은 조용히 화면을 응시했다.
이윽고, 음악이 멈추었다.
윤상열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뮤직비디오에서 이런 연출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장면 연출을 위해 음악을 끄는 것 말이다.
‘스토리도 없는 뮤비면서 이딴 연출을…….’
그 순간 카메라가 조아라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음악이 꺼짐과 동시에 조아라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였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도 똑같이 몸이 축 늘어졌다. 전원이 나간 장난감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1초, 2초, 3초…….
‘길다.’
쉴 새 없는 장면 전환과 강렬한 퍼포먼스가 끊임없이 교차되던 뮤비다.
갑자기 이런 장면이 나오면 ‘길다’란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아니, 빨리 다음 장면이 나왔으면 하고 짜증 난다.
‘만약 진짜 무대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면 전부 시선이 아라한테로 몰리겠군.’
설마 본래 곡까지 이렇게나 긴 공백을 넣을 리는 없지만.
그때였다.
3초.
고개를 숙였던 조아라가 홱 앞을 바라보았다. 음악이 재생됐다.
[승리!]
다시금 시작된 함성과 함께.
[투쟁!]
그녀들을 가두던 모든 벽이 무너지고.
[해방!]
인형이 아닌 인간의 춤이 펼쳐졌다.
* * *
2절의 끝자락.
하이라이트 2페이즈.
무대 위에 선 조아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음에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을 느꼈다.
조명이 너무 밝아 눈이 부시다. 무엇보다, 뜨겁다. 몸을 뒤덮은 얇은 천 조각이 세상 그 어느 가죽보다 두껍게만 느껴진다.
덥고, 뜨겁고, 괴롭고, 힘들고, 동시에.
‘닿는다.’
멤버들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기분이 그녀에게 더없는 충만감을 주었다.
관객석에선 백 명이 넘는 관객들이.
관객석 밖으로는 생방송 무대를 구경하기 위해 온 다른 회사의 직원들이나 아이돌들이 보였다.
‘다들 나를, 아니.’
우리를 보고 있다.
소녀연맹을 응시한다.
‘오토마타’의 끝을 보기 위하여.
‘마음껏 봐라.’
2절 끝.
가장 앞에 선 조아라가 무대의 한쪽 끝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신아름, 장하양, 백설하, 리카가 차례로 그녀의 뒤를 따른다.
[승리를 향해 이 노래를 불러라.]
브릿지 파트는 최후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유일한 휴식 구간.
[더 높은 Stage 더 높이 Higher]
멤버 전원이 한음으로 낮게, 그렇지만 노래의 형식을 지켜 크게 부른다.
멤버 전원이 부르지만, 백설하에게 부담을 더 주었다. 이만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사람들을 향해 온전하고 완벽한 라이브 보컬을 선보일 수 있는 사람은 백설하가 유일하니까.
실제로 사람들은 백설하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 것이다. 그녀가 있기에, 다른 멤버들은 보컬에서 힘을 빼고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
[어둠과 뒤섞인 새벽길 끝까지]
백설하에겐 미안한 마음이다. 동시에 고맙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든 멤버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모든 멤버의 지지 아래에, 조아라는 도달해야만 하는 지점이 있다.
이건 그 시작.
‘간다.’
잔상 파트, 시작.
* * *
무대 위의 소녀연맹은 무대의 끝으로 걸어가더니 일렬로 줄 세워 섰다. 가장 앞의 사람에게 가려져 뒷사람이 안 보이는 모양새로 말이다.
‘아니, 뒷사람 머리 다 보이는데.’
조아라가 가장 앞인 데다가, 거의 키의 역순으로 서서 그러했다.
시에이스의 규영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흥미롭게 퍼포먼스를 보았다.
이런 안무는 케이팝에서 흔하다. 흔히 ‘천수관음’이라고 불리는 군무를 할 때 주로 잡는 포지션이다.
혹은 멤버의 수가 많은 다인원 그룹이 잔상을 표현하듯 차례로 앞으로 뛰쳐나가곤 한다.
‘브릿지는 아예 쉬는 파트구나.’
만약 천수관음 안무라면 발을 고정해야 할 테니 쉴 수 있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거라면 몇몇은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휴식의 의미뿐인 안무…….
“어?”
아니다.
멤버들 전원 같은 춤을 춘다.
그것 때문에 규영이 놀란 건 아니었다. 그녀들이 선보인 춤이.
‘한국무용?’
느릿하게 내디딘 걸음걸이 속에선 여유가 느껴진다. 한 번 휘두를 뿐인 손엔 바람을 잡는 듯한 무게가 담겨 있다.
그리고, 가장 뒤에 선 리카는 한국무용을 펼치던 상태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잔상이다.
다음으로 멤버들은 도약했다. 그리고 사뿐히 바닥으로 내려앉아 고아한 스텝과 팔짓을 보였다.
백설하가 봄바람에 섞여 일렁이는 나비와 같은 자세로 멈추었다.
‘초마다 춤의 장르가 바뀐다.’
그렇기에 신기하다.
그리고, 그렇다면 가장 앞의 사람에게 눈이 가야 한다. 왜냐하면, 몇 초마다 춤의 장르가 바뀌는 진풍경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규영의 눈은 차례로 멈춘 이들에게, 잔상에게로 갔다.
“…….”
규영의 가슴이 아려왔다.
그는 시에이스의 메인 댄서다.
메인 댄서란 어떤 의미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다. 케이팝은 퍼포먼스가 중요하다지만 결국은 노래다. 사람들이 들어줘야 춤도 봐준다.
춤은 언제나 뒷전이다.
그도 옛날엔 열정이 넘쳤었다.
‘이 춤은 사람들이 꼭 봐줄 거야.’
관심을 가져줄 거야.
나도 우리 팀 메인 보컬처럼 인기도 많아지고, 춤이 화제가 돼서 팀에 기여할 수 있을 거야.
난 메인 댄서니까 멋져야 해.
사람들의 눈길을 뺏는 그런 춤을 춰야 해.
그렇게 생각했고, 춤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춤이란 건, 아니, 춤추는 개인이란 건 놀랄 만큼이나…….’
관심받을 수 없다.
아무리 춤을 잘 춰도 결국 군무(群舞)의 일부에 불과하다. 규영이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마한 춤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적다.
그가 얼마나 디테일에 신경을 써도.
다른 이들보다 얼마나 뛰어나도.
결국엔 다른 포지션의 이들에게 밀린다.
춤이란 건 결국 곁다리에 불과해.
그런데.
“하하…….”
소녀연맹의 잔상은 춤을 전시한다.
보란 듯이 고정시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춤은 언어다.
쓰이는 동시에 공기 중에 허무하게 사라진다.
박제할 수 없는 탕진의 예술.
춤은 오직 사라진 시간 안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소녀연맹은 그 사라질 시간 속에서나마 춤을 박제하여 사람들에게 전시한다.
“멋지다…….”
잔상으로서 멈춘 멤버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의 춤은,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이렇게나 아름다웠노라고.
규영은 춤이란 예술을 공기 위해 부지런히 적어왔다. 그 춤이 존재하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해서, 사람들이 잘 알아봐 주지 못했다.
그걸, 소녀연맹은 억지로 허공에 붙잡아 두었다.
그녀들은 사람들의 눈을 억지로 자신들에게, 춤에게로 박아 넣는다.
순간의 아름다움, 결국 찰나 속에 풍화되어갈 것을 강제로 박제시켜 깨닫게 만든다.
규영도, 사람들도 다 깨달았다.
소녀연맹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시간의 박제.
그리고 여운에 잠길 새도 없이 사람들의 눈은 조아라에게로 향한다.
음악이 멈추었다.
방송 사고인가?
‘아니다.’
조아라가 움직인다.
다른 멤버들이 태엽이 멈춘 인형처럼 멈춰 선 가운데, 오직 조아라만이 앞을 응시한다.
* * *
조아라는 멤버들 중 누구보다 춤에 정통하다.
당연히 소녀연맹 내에서 가장 춤을 잘 춘다.
즉, 잔상 파트는 멤버들이 조아라의 춤에 따라오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고마워, 다들.’
첫 번째 잔상.
조아라는 멤버들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던가.
멤버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정말, 고마워.’
두 번째 잔상.
이 파트를 출 때마다 조아라는 이렇게 느꼈다.
멤버들이 등을 떠밀어준다고.
‘여기까지 해줘서 정말.’
세 번째 잔상.
리카, 백설하, 그리고 장하양.
차례로 조아라의 등을 밀어준다.
네 뒤엔 우리가 있으니까 걱정 말고 마음껏 하고픈 걸 해보라고.
‘고마워.’
네 번째 잔상, 그리고 마지막 잔상.
신아름의 차례다. 조아라는 그녀가 완벽히 자신과 겹쳐졌으리라 확신했다.
퍼포먼스는 완벽했다.
‘이제.’
모든 건 이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모두가 나를 본다.’
음악이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시선이 조아라에게로 향했다.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약해진 가운데, 유일하게 움직이는 조아라에게로.
‘나만을 바라본다. 내 몸을.’
노래도 없이, 음악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이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것, 봐야만 하는 건 조아라의 몸뿐이다.
즉, 조아라의 춤만이 무대의 모든 게 된다.
‘단 3초.’
그녀에게만 허락된 시간 속에서.
잔상의 끝에 도달한 진공 상태에서.
모든 선망과 기대를 가슴에 품은 채.
‘절대무용(絶對舞踊, Absolute Dance).’
이건 음악을 배제한 순수한 춤.
조아라의 움직임이 시간과 공간을 집어삼킨다.
60년 전에 사멸한 표현주의의 절정이자 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험.
단 3초 동안 절대무용이 부활한다.
그 춤은 즉흥이다. 즉흥이어야만 한다.
이재호가 주장했던 아주 상업적인 이유.
‘무대마다 춤이 다르면 그걸 찾아보는 재미로 조회 수가 오르지 않을까요? 아라 씨가 가능하시다면요.’
그리고 서유선이 주장했던 아주 예술적인 이유.
‘아라 씨가 가능하시다면, 이게 가장 좋을 거예요. 춤은 감정의 표현이니까, 가장 순수한 춤이라면 그때그때의 감정을 표현해야겠죠.’
이윽고 조아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변은 놀랍도록 조용하다. 그 흔한 기침이나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신발이 바닥과 마찰하여 내는 소리만이 스피커를 작게 울릴 뿐이다.
그녀는 격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적(靜的)이었다. 그 조용한 움직임이 사방의 주의를 모은다. 그러면서도 잔상 파트의 연장으로 보일 만큼 통일성이 있다.
1초.
‘알겠다.’
수많은 안무가들과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
모든 춤에는 뿌리가 있다.
원형이 있다.
2초.
‘알겠고, 보인다.’
이 순간에 이르기 위해 정적 속에서 추었던 춤만 수백 수천 번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에 와서야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오아’에서 보았던 ‘배드’의 원본처럼, 조아라는 그것에 닿았다.
원형(原型)에.
‘이사도라, 당신이었네요.’
이사도라 덩컨이 보인다.
최초로 창작 안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무용가. 그녀가 등장하기까지 인류에겐 ‘춤이란 인간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녀는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같은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춤을 이용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추었다.
모든 댄서의 스승이자 어머니.
‘당신 덕분이에요.’
그녀의 일생이 조아라의 눈앞을 스쳤다.
마을에서 춤추길 좋아했던 소녀 시절.
미국과 유럽, 그리고 발레의 제국인 러시아에서마저 갈채를 받았던 청년기.
하지만 늙어버린 그녀는 무대 위에 설 수 없었다. 그녀는 애원했었다.
‘춤을 추고 싶어요. 춤을 추고 싶을 뿐이에요.’
그럼에도 그녀는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누구도 그녀를 무대 위에 세워주지 않았다.
무용수에게 젊음은 축복이며 늙음은 저주이다.
그리고 조아라는 축복 속에 있다.
축복 속에서만 출 수 있는 춤이 있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신 닿지 못할 경지가 있다. 아니, 닿아도 무대에 서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다.
이사도라는 무용수의 저주 속에서 쓸쓸히 죽었다.
하지만 이사도라의 춤은 영원불멸이다.
모든 댄서가 그녀를 불멸로 만든다.
춤이란 가지는 영원토록 뻗어나가고, 현재 그 끝 가지 위에.
‘내가 서 있다.’
3초.
절대무용이 끝났다.
다른 멤버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후, 노래가 재생된다.
‘이건 무모한 퍼포먼스다.’
무지막지하고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조아라는 이대로 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이 나이, 이 신체, 이 정신, 이 기술로만 할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판단했다.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다.
그러니.
‘후회는 없다.’
그녀는 노래한다.
[승리! 투쟁! 해방!]
최후의 하이라이트를.
모두의 결심을.
자신의 의지를.
‘이게 나의.’
세상을 향해.
‘아이돌리즘.’
외친다.
* * *
떠들썩했던 식당이 정적에 잠겼다.
모든 직원들이 숨을 삼킨 채 텔레비전만을 바라본다. 소름 끼치는 정적은 자연스레 진공 상태를 유발한다.
모든 이목이 텔레비전 안의 한 소녀에게로 몰린다.
조아라.
소녀연맹의 메인 댄서.
모든 관심을 빨아들이는 진공 속에서, 멈춘 시간 안에서 조아라의 춤만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1초.
2초.
3초.
그게 끝나고, ‘오토마타’의 선율이 들리고서야 숨소리가 식당 여기저기서 퍼진다.
“이거 방송 사고 아니죠?”
윤희연 이사의 물음에 정호환이 답했다.
“의도된 거야.”
의도된 침묵이고 정적이다.
이 3초의 고요는 음악을 듣기만 해서는 모르겠으나, 퍼포먼스의 영역으로 끌려 나오면 훌륭한 장치가 된다.
소리가 없어진단 건, 때론 시끄러운 소리를 갑작스레 터뜨리는 것보다 더 이목을 끈다.
그리고 펼쳐지는 건 1절의 하이라이트 퍼포먼스다. 고작 1절의 춤만으로 멤버들을 땀범벅으로 만들었던 춤이 재현된다.
“진짜 대단하다 얘네들도. 칼을 갈고 나왔네.”
윤희연 이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정호환은 감탄 이상의 감정을 품었다. 그는 다키스트의 서유선을 떠올렸다.
‘콘서트 때…….’
다키스트의 어느 콘서트 때, 서유선이 정해진 파트를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었다.
그의 아우라는 수만 명의 관중을 묶었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퍼포먼스를 재개했었다.
아니, 관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게 퍼포먼스를 시작하는 조건이었다.
만인을 매혹하는 힘, 아우라.
그는 그 콘서트에서 마침내 자신의 힘을 확신한 듯 혼을 불살랐더랬다.
정호환은 그걸 다시 본 듯했다.
하이라이트 1페이즈.
“얘네 무대 끝나면 다 같이 박수나 쳐줄래요? 보니까 막 박수 쳐주고 싶네.”
“저도요.”
정호환은 춤이란 형식미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고도로 계산된 표정 연기로 충분히 가능하다.
춤의 감정 표현이란 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기준일 뿐이다. 춤은 동작의 완성도만이 유일한 기준이다.
그리 믿어왔다.
하이라이트 2페이즈.
“이제 끝나겠다. 자, 다들 박수 준비!”
하지만 소녀연맹의 무대를 보니, 그 생각이 바뀌고 있다.
춤이란 건 감정이 아닐까.
그 왜, 그런 경우 있잖은가.
너무 기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하늘로 치켜든다거나. 슬픔에 몸을 늘어뜨리고 비틀거린다거나. 분노에 가득 차 팔을 휘젓는다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몸으로 나타내는 것.
그건, 춤이 아닌가?
누구든 납득하고 이해하는 언어이지 않은가. 감정을 춤이란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끝…… 어?”
“더, 더 하는데요?”
“한 파트가 더 있어? 마지막에?! 애들 죽겠다!”
춤은, 감정의 표현이 맞다.
정호환은 텔레비전 속 조아라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조아라도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를 보니 자연스레 표정이 따라간다.
하이라이트 3페이즈.
지금까지의 모든 움직임을 넘어서는 힘찬 걸음과 강렬한 표현력.
조아라는 표정으로도, 또 춤으로도 말하는 듯하다.
‘나를 봐라, 라고.’
조아라의 춤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 * *
엔딩 포즈.
‘오토마타’ 퍼포먼스를 마친 조아라는 엔딩 포즈를 취한 채 정면의 카메라만을 바라보았다.
방송으로 나가는 건 소녀연맹이 오전에 녹화한 사녹본이다. 그녀들이 생방송 시간에 맞춰 퍼포먼스를 보이는 건, 오로지 방송을 찾아준 관객들 때문이다.
당연히 관객들은 여러 그룹의 팬들이 섞여 있다. 주로 행동력이 좋고 수가 많은 보이그룹 팬들이다.
보통 경쟁자인 다른 그룹에겐 환호를 짜게 하는 편이다. 그걸 메우기 위해 자기 그룹이 나오면 팬들은 일부러 목청을 더 높인다.
그런데 소녀연맹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
뭐라고 외치는지도 모를 함성이 귀를 덮었다.
인이어를 뚫고 들어올 지경이어서 조아라는 진지한 표정을 풀고, 자기도 모르게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여자 관객들이 더 큰 비명을 질러댔다.
‘아, 이건 뭐.’
압승이다.
엔딩 포즈는 의외로 길다.
어차피 방송으로는 녹화본이 나가니, 그동안 멤버들은 팬을 찾아 손 키스를 날리거나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조아라도 사전녹화 때는 하지 않았던 일탈을 조금 저질렀다. 그녀는 눈으로 관객석을 살폈다.
그러자 관객석으로 들어가는 복도 쪽에 찾던 사람이 보였다.
‘아저씨.’
조아라는 그쪽을 보고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치켜올렸다.
‘봤죠?’
이번엔 그의 평가도 필요 없다.
성필의 얼굴만 보아도 알겠다.
조아라는 원하던 곳에 닿았다.
그녀가 그리 확신한 동시에, 성필도 속으로 생각했다.
소녀연맹의 퍼포먼스.
‘100점이다.’
* * *
양소민이 나간 후, 윤상열은 뮤직비디오 공개 후 아이튜브에 올라올 음악 방송 녹화본을 기다렸다.
나오자마자 봤다.
보고 또 봤다.
진득한 패배감과 함께, 그는 익숙하고도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윤상열은 의자 깊이 몸을 뒤로 묻었다.
‘나는…….’
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됐는가.
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가.
좋은 교육이란 교육은 다 받아놓고서, 왜 하필 아이돌인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의 대중음악이 아이돌, 즉 케이팝이니까?
아니다.
그런 밥 벌어먹기 위한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좋으니까.’
아이돌이 좋으니까.
윤상열은 어릴 적 1세대 아이돌을 보고 감동했었다.
신선한 노래가 있다. 멋진 춤이 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있다. 이건 정말이지 새롭고도 놀랍고도 아름답고도 멋지다.
나중에 그게 일본이랑 미국 파쿠리였단 걸 깨닫곤 좀 깨긴 했지만, 아무튼 윤상열은 아이돌을 좋아하게 됐다.
“하…….”
윤상열은 뜻 모를 한숨과 함께, 팔꿈치를 책상 위에 걸치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그리 생각했던 때. 아버지가 옛날에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윤상열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대학교를 나왔다. 집이 잘살아서 가능한 일이었고,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집안을 더욱 크게 일으켰다.
그런 아버지는 항상 집에서 레코드판으로 비틀즈나 서핀 U.S.A(surfin’ U.S.A) 노래를 듣는다.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새롭고 좋은 노래들도 많은데, 왜 항상 같은 것만 듣냐고.
‘나한텐 이게 제일 좋은 음악이란다.’
대학 시절, 어느 날 아버지는 친구 집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게 바로 그 유명한 비틀즈의 ‘페퍼 상사(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말했었다.
‘정말 놀랍다. 이건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야. 너무 새롭다. 너무 좋아.’
그건 비틀즈와 같은 세대를 살아본 사람만 느낄 수 있던 혁신성이었다.
혁신적이었던 비틀즈의 송폼(Song form)은, 지금에서야 개나 소나 쓰기에 현대인이 들어봤자 새롭지도 딱히 좋지도 않다.
동시대인만이 느낄 수 있던 감탄이다.
그 감탄과 행복은 영원히 아버지의 가슴속에 새겨졌다.
‘나한테는 영원히 비틀즈가 최신 가수인 거야.’
모든 사람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윤상열은 그 감정을 이해한다.
사람은 10대나 20대에 들었던 음악이 영원토록 취향으로 굳어진다. 그들에겐 그 음악이 가장 혁신적이었고, 또 나중엔 가장 익숙해지니까 그것만 듣게 된다.
아이돌의 부흥기, 2세대로부터 약 10년이 지났다.
10대에 그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20대가 되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 노래가 좋았지. 요즘 노래 해괴하고 어려워서 잘 안 들어.’
10년만 지나도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
정작 요즘 10대들은 전부 그 해괴하고 어려운 노래에 열광하는데 말이다.
같은 이유로, 윤상열은 요 근래의 트로트 열풍을 이해한다.
옛날 트로트만 주야장천 듣던 어르신들이, 젊고 예쁘고 잘생긴 애들이 자기네들 청춘 시기의 음악을 불러주는데 눈이 안 돌아가고 배기겠는가?
인간의 음악 취향이란 건 영원히 청춘에서 멈추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프로듀서인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윤상열은 언제나 젊어야만 한다.
항상 청춘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감정을 잊고 있었다. 억지로 트렌드를 따라갔다. 억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려고 했다.
음악을 즐기지 않고, 그저 공부했다.
왜냐하면, 공부하지 않으면 ‘이게 왜 좋은 거지? 이딴 걸 왜 듣지?’란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까.
그의 마음은 늙어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런데.
“하.”
윤상열은 짧게 웃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모니터에 떠오른 소녀연맹을 바라보았다.
‘나도 아직은 괜찮나.’
아버지가 비틀즈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윤상열이 1세대 아이돌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리고 다키스트를 탄생시켰을 때처럼.
그는 이번에도 느꼈다.
동시대인만이 느낄 수 있는 새로움과 혁신성.
윤상열은 다시 아버지가 대학 시절에 떠올렸다던 생각을 곱씹었다.
‘정말 놀랍다. 이건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야. 너무 새롭다. 너무 좋아…….’
조금 바꾸자면.
‘이건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퍼포먼스야…… 정도겠지.’
윤상열은 팔로 눈을 덮었다.
그렇게 웃다가, 이윽고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