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화
소녀연맹의 대기실엔 프로젝트 안무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첫 컴백 무대를 축하해주기 위함이었으며, 고된 프로젝트의 성료(盛了)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안무가들은 다 같이 모여 소녀연맹의 무대가 어떠했니, 눈물이 멈추지 않느니, 보다가 숨이 멎을 뻔했다느니, 아이돌들 실제로 보니까 너무 예쁘고 잘생겼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허설 때 아이돌들이 다 같이 박수 쳐주는 거 보셨죠? 저 진짜 막 심장이 감동으로 찌르르 울리더라니까요?”
“그니까요. 아, 제 공연 무대 끝난 느낌이에요.”
“티비로 나온 사녹본도 미쳤잖아요. 아니, 편집이…….”
안무가들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성필은 뿌듯함을 느꼈다. 마치 소녀연맹이 데뷔했을 때 가로 엔터 직원들의 모습 같았다.
안무가들은 이번 컴백에 한정해선 가로 엔터의 스태프나 마찬가지였으니, 저토록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어쩌면 이번 일을 기점으로 저들도 인민이가 되어 소녀연맹을 응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사님.”
성필의 옆에서 조용히 있던 서유선이 그를 불렀다. 그는 성필과 마찬가지로 소란의 외곽에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성필은 그에게서 풍기는 미묘한 기쁨의 분위기를 읽었다.
“네.”
“저 있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처음 말하는 건데, 정호환 이사님을 미워했었어요.”
이제 보니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성필로선 그가 현재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가슴 안이 어떠한 종류의 감정으로 요동치고 있단 건 알았다.
“다키스트 활동은 그게, 물론 기쁜 일이 많았어요. 장막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저희를 정말 사랑한단 걸 느낄 때마다…….”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는 이 순간을 위해서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팬들의 사랑은 세상 그 어떤 사랑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 쾌감과 기쁨은 향후 애인에게서도, 아내에게서도, 심지어 부모에게서조차 얻을 수 없을 것이었다.
마약과도 같은 환희였다.
“그런데 다키스트로서의 활동은 그냥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었어요.”
정호환이 항상 말했던 게 있었다.
노력을 게을리하면 가장 먼저 자신이 안다. 그다음은 주변 사람이 안다. 이윽고 팬들이 안다.
팬은 노력하지 않는 아이돌을 사랑하지 않는다.
네가 느끼는 기쁨은 등가교환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가치를 만들어내라고…….”
목숨과 맞바꾸어 빛나라고 했었다.
성필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추임새조차 넣지 못했다. 서유선의 이야기는 성필의 우상이 가지는 어두운 면을 밝히고 있었으니까.
‘다키스트는 오인조. 그중 세 명이 정신적 이상을 호소하면서 활동을 그만뒀어.’
성필의 앞에 다시 나타난 서유선은 정상이 아니었다. 다른 두 명도 정상적이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다키스트. 세상에서 가장 빛났던 오토마타는 속에서부터 녹슬어 종국엔 망가져 버렸다.
“무대에 오르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전까지가 정말 힘들었어요. 노력하는 시간이요.”
그랬을 것이다.
다키스트는 케이팝의 퍼포먼스 자체를 바꾼 그룹이다.
여러 댄스 장르를 춤에 포함하고 단조로웠던 안무 구성을 과감하게 바꾸었다.
이전까지의 아이돌들은 한 소절에 반복적인 한두 동작만 하면 됐지만, 다키스트 이후로는 한 소절에 대여섯 동작이 기본이 됐다.
그들이 컴백할 때마다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그룹’이라고 했었다.
“불합리할 정도로 괴로워서…….”
선구자는 언제나 괴롭다.
그들은 현재엔 당연해진 테크닉과 노력을 최초로 숙달했던 것이다. 그에 맞는 교육체계나 멘탈 관리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다키스트는 동시대 동료들보다 몇 배, 수십 배의 노력으로 그 경지에 닿았던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겠지.
다키스트는 대체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프로듀서의 명령만으로 달려가다가 결국엔 망가졌다.
서유선은 잠시 말을 쉬었다.
“그런데, 아직도 기억나요.”
서유선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저희가 컴백 무대를 할 때마다 정 이사님은 꼭 방송국까지 오셨어요. 저희를 보셨어요. 그리고 무대가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 미소를 짓고 계시는 거예요. 그땐 짜증 났어요.”
대체 뭐가 그렇게 행복한 거지?
그래,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인형사는 인형의 마음을 알 리가 없지.
인형이 망가지는 것 따위 신경 쓸 리 없지.
공감 능력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런데 오늘 알았어요.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런 빛을 보면…….”
“이리 오너라!”
리카가 힘찬 외침과 함께 대기실로 들어왔다. 곧바로 스태프들과 안무가들이 열띤 환호와 함께 소녀연맹을 맞아주었다.
“정호환 이사님은, 오늘 제가 소녀연맹분들에게서 보았던 빛을 보셨을 거예요.”
“저희 애들을 다키스트랑 비교하시는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하긴 초동판매량 고작 10만 장 찍어본 저희가 감히 소녀연맹이랑 비교될 수 없긴 하죠…….”
“아뇨 그게 아니라, 영광이란 뜻이었어요. 저희 애들을 다키스트랑, 유선 씨랑 같이 봐주신다는 게…….”
갑자기 다들 조아라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조아라는 부끄러워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두지 않았다. 억지로 조아라를 중앙으로 불러들여 환호와 찬사를 바쳤다.
조아라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러고선 한구석에 떨어져 있는 성필을 바라보았다.
“아뇨.”
서유선이 성필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가보란 듯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앞으로 밀었다.
“저희보다 훨씬 낫죠.”
성필은 그의 손길에 밀려 앞으로 가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렸다. 서유선은 성필과 눈을 맞춘 채 온기가 서린 미소를 보였다.
“소녀연맹은 무대를 즐기니까요. 실에 묶인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 태엽을 감고 움직이는 자동 인형이에요.”
그 말을 듣고서, 성필은 얼떨떨한 얼굴로 조아라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메인 프로듀서와 총괄 프로듀서가 마주 보게 됐다. 다들 다시 환호하기 시작했다.
조아라가 물었다.
몇 점?
성필이 답했다.
10점 만점.
조아라가 당연하단 듯 오만하고도, 환희가 깃들어 순수한 웃음을 만면에 띠었다.
성필이 어처구니없단 듯 웃었다.
내가 만점이라고 말해주는 게 그렇게 좋아?
조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10점이라고 해주는 건요, 10점 만점에 11점 맞은 기분이에요.
오오…… 청중들은 조아라의 능숙한 플러팅에 감탄했다. 언젠가 써먹겠단 듯 입으로 조아라의 대사를 외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지켜보면서 서유선은 이렇게 생각했다.
‘네, 이사님. 저희보다 훨씬 낫죠. 소녀연맹도, 이사님도요.’
어쩌면 정호환이 바랐던 다키스트는 저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 마음이 사라진 채 기계적으로 살아갈 뿐이었지만, 마침내 마음을 손에 넣은 인형.
아니.
‘인간.’
인형을 벗어나 인간이 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소녀연맹처럼.
* * *
[소녀연맹 ‘Automata’ 발매 첫날,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차트 110위로 진입. 현재 77위로 자체 기록 경신.]
[‘Automata’ 아이튜브 톱 송 차트 1위 달성]
[‘Automata’ 아이튜브 뮤직비디오 차트 1위 달성]
[‘Automata’ 발매 일주일도 안 되어 조회 수 7,000만 돌파]
[소녀연맹 미니 3집 ‘오토마타’ 초동판매량 41만 장 돌파. 자체 커리어하이 경신]
[‘애플 크러쉬’ 뮤직비디오 조회 수 1억 5,000만 돌파…….]
“…….”
홍보 자료를 정리하던 강지혜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녀는 황급히 작업 목록을 뒤져보다가 ‘아!’ 소리를 내었다.
강지혜가 성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사님, 이번에 ‘애플 크러쉬’가 조회 수 1억 5,000만 넘었거든요.”
“SNS에 올릴 기념 포스터 이미 준비됐지 않아요?”
“아뇨, 그게 아니라 스케줄러에 이런 게 있잖아요.”
[‘애플 크러쉬’ 조회 수 1억 5,000만 돌파 시 설하한테 깜짝 선물.]
“그, 어떡할까요? 준비…… 하나요?”
“……음.”
성필은 답을 망설였다.
지금 상황이 아주 미묘하다.
왜냐하면…….
“여기 다 준비해놨습니다.”
A&R팀 이재호는 백설하가 프린트된 슬로건과 포스터를 한가득 품에 안고 왔다.
‘애플 크러쉬’가 목표 조회 수에 도달했을 때를 위해 미리 업체에 의뢰해서 받아둔 것이었다.
“케이크 지금 사 올까요?”
“어…….”
“이사니 악!”
손혜빈이 이재호의 어깨를 팍 쳤다. 이재호는 갑자기 사료를 빼앗긴 강아지처럼 억울함에 가득 차 손혜빈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요?”
“누, 눈치요?”
“지금 설하 축하하면 어떡해요.”
“어떻냐니요?”
“아라요.”
“아라가요?”
“아니 진짜…….”
손혜빈이 답답해서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그에 성필이 웃으면서 둘 사이를 말렸다.
“아니야 누나. 그게, 그렇지. 축하는 해야지.”
“뭐? 성필이 너 제정신이야? 설하를 축하한다는 건…….”
“내가 아라한테 말하고 올게.”
손혜빈이 진심이냐는 듯 성필을 쭉 응시했다.
성필은 자신이 없어서 은근히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건 피한다고 어찌할 게 아니다.
조아라에게 일이 있다고 정해져 있던 축하를 하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설하 성격이면 엄청 기대하고 있을 거야.’
어제 잠도 못 자고 축하받을 생각에 두 눈을 똘망똘망 빛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 일 없단 듯 넘어가면 백설하가 잔뜩 실망할 수도 있다.
“어차피 부딪쳐야 했어.”
“뭐? 너 이 일로 아라랑 얘기 안 해봤어?”
“그럴 분위기가 아니잖아…….”
손혜빈은 성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래. 이참에 아라 마음 좀 알아 와.”
“응.”
성필은 조아라를 찾으러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은 성필이 좋아하는 월요일이다. 성필이 월요일을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지만, 음악 방송이 없는 날이다.
게다가 민경섭은 멤버들의 긴장이나 체력 소모를 고려하여, 활동 둘째 차의 월요일은 스케줄을 비워두었다.
숙소에서 쉬는 멤버들도 있지만, 조아라는 오늘 회사에 나왔다.
‘얘가 어딨지.’
성필은 조아라에게 톡을 보내려다가 그만두었다. 조아라 성격이면 ‘왜 찾아요?’부터 나올 텐데, 그러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차라리 얼굴 보고 이야기 시작하는 게 낫지.’
성필은 한동안 회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조아라는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회사 현관 앞의 휴식용 테이블석에 앉아 있었다.
굳이 찬 바람 쌩쌩 부는 바깥에 있는 것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라야.”
성필이 부르자 조아라가 홱 돌아보았다. 그리고 반갑단 듯 씩 웃었다.
“오, 아저씨.”
“안 추워?”
“이 패딩 따뜻해요.”
“오리털이야?”
“난 그런 거 안 입어요. 안쓰럽잖아요.”
“어제 오리 먹었잖아.”
조아라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느냔 듯 성필을 흘겼다. 성필은 웃으면서 그녀의 앞에 앉았다.
“나도 수요랑 공급 알아. 농담으로 한 말이야.”
“나 찾았어요?”
“응.”
“나 보고 싶어서요?”
“그냥 물어볼 거 있어서.”
“아, 나 요즘 바쁜데. 아저씨한테 따로 내줄 시간 없을 거 같아요. 뭐, 아저씨가 정 보고 싶다고 하면 내줄 수도 있고?”
“물어볼 거 있다니까.”
“그런 식으로 접점 만들려고 하는 거 다 보이거든요? 으웩, 너무 속 보인다.”
얘가 도끼병에 걸렸나?
아니면 도끼병에 걸린 컨셉인가?
물론 조아라는 도끼병에 걸릴 만하다. 애인과 부인이 없단 가정하에, 그녀가 ‘데이트할래요?’라고 말해서 거절할 남자 없을 것이다.
아니, 애인과 부인이 있어도 잠시 고민할 수도 있다.
‘이 말 해주면 웃겠지.’
이 농담으로 조아라를 웃길까도 생각해봤지만, 성필은 그럴 수 없었다.
앞으로 성필은 웃음이 사라질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저, 저, 아라야.”
“왜 말을 더듬어요. 아저씨답지 않게. 뭔데, 진짜 들이대게요? 우리 연애 금지 곧 풀린다고 이래요? 진짜 미인의 삶이란…….”
“…….”
죽여버릴까?
“아저씨 방금 ‘죽일까?’라고 생각했죠?”
“반쯤 맞추긴 했어. ‘죽여버릴까’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아저씨 맘 다 알지. 그래서, 왜요?”
성필은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체스판을 무아지경으로 바라보는 체스 선수처럼 그녀를 응시했다.
‘좋아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말한다.
한다.
정말 할 거다.
“아, 아라야.”
“왜요.”
“서, 설하 ‘애플 크러쉬’ 때문에 깜짝 축하를 하는 것을 질문하는 것을 허락을 구하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에 대해 입 밖으로 내도 될 지에 대한 질문이 있음을 묻는 것에 대해 적절한지를 검토하는 것에 이상이 없는지를…….”
“뭐라는 거예요.”
“……설하 ‘애플 크러쉬’가 조회 수 1억 5,000만을 넘었어.”
“흐음.”
조아라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단발 끝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기 시작했다.
“잘됐네요. 우리 뮤비 중에 조회 수가 제일 높은 거죠? 쌤이 좋아하겠네.”
“그래서, 어, 설하한테 깜짝 파티…… 해주려고 하거든. 너도 올래?”
“그걸 물어봐야 해요? 당연히 가야 하는 거잖아요. 아니 뭐…….”
조아라는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입꼬리를 올렸다.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것만 같은 미소였다.
“내가 언짢아하기라도 할까 봐요? 내 성적이 좀 안 좋다고?”
성필과 조아라는 오래도록 침묵을 지켰다.
아니, 그건 둘의 착각이었다.
실제로는 5초도 되지 않는 정적이었다.
성필이 호쾌하게 웃었다.
“그치. 내가 너무 예민했네. 미안.”
“사과도 하지 말고요.”
성필의 표정엔 아까와 같은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조아라는 멀쩡하게 보이길 바란다. 마음의 그늘을 드러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그녀를 대하는 성필도 밝아야만 한다.
“그럼 설하 어떻게 놀라게 할지 토론하러 갈래? 개인적으로 설하 놀리는 건 ‘선(先) 안 좋은 일 후(後) 좋은 일’이 제일 좋아. 근데 안 좋은 일은 없으니까, 어떡하는 게 좋을까?”
“진짜 아저씨도 악질이다.”
“그래. 그럼 어두운 방에 숨어 있다가 서프라이즈만 하자.”
“누가 안 하겠대요? 연애금지 연장 계약서 꾸며서 들고 가면 바로 울상 지을 거예요.”
“악질은 너 같은데.”
백설하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성필이 근엄한 얼굴로 ‘연애 금지 연장이다’라고 하면 백설하는 울지도 모른다. 사실 울지는 모르겠지만 실망할 건 분명하다.
“그럼 갈까? 춥다.”
“네.”
성필이 먼저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나아가려던 성필은 저항감을 느꼈다. 돌아보니, 조아라가 손을 뻗어 그의 외투 끝을 붙잡고 있었다.
“축하란 건 밝은 얼굴로 해야 하잖아요.”
“……응.”
“밝은 표정일 수 있게, 내 속풀이 좀 들어줄래요?”
조아라는 동물털이 들어간 옷을 안 산다. 옛날에 털이 뽑힌 오리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 후로 그렇게 결심했다고 한다.
조아라가 말하길 안쓰럽다고 했던가.
지금 그녀의 표정이 그러했다.
털이 죄다 뽑힌 오리처럼 처량했다.
성필은 다시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아저씨, 저희 이번에 앨범 41만 장 팔았잖아요.”
“응. 엄청난 기록이지. 걸그룹 TOP5니까. 보이그룹 중에서도 쉽게 따라올 그룹이 없어. 대단한 기록이야.”
“근데, 앨범은 그런 거잖아요. 기대감이 반영되잖아요. 이전 곡이 좋았으니까 이번 앨범을 사겠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거라고 하잖아요.”
곡이 발표되고 팬이 되어 앨범을 사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지만 아이돌의 앨범은 특수한 상품이다. 이전 곡으로 팬이 된 사람이 사는 것. 그렇기에 앨범 판매량은 팬덤의 크기를 평가하는 지표로 쓰인다.
즉, 앨범 판매량은 아이돌의 이전 컴백 성적이 반영된다. 그러니 ‘오토마타’의 성공은 조아라의 성공이면서도 백설하의 성공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내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음원이죠?”
성필은 답을 아꼈다.
조아라의 목소리가 서서히 젖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허탈하게 웃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좋은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닌 사람도 많고. 아, 진짜, 후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후회가 생기네요. 뭐가 잘못일까요?”
“잘못은 없어. 넌 최선을 다했고, 최고를 만들었어. 넌 소녀연맹의 프로듀서로서 최고의 성과를 낸 거야. 누구도 부정 못 해.”
조아라는 계속 하늘만 보았다. 마치 무언가 있단 것처럼 절대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건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숙인단 건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한 것. 하지만 동시에 우울한 기분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아라는 표정을 숨기고팠으나, 동시에 우울함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프로듀서인 성필에게 이런 표정을 보여줄 순 없으니까. 성필이 얼마나 슬프겠는가.
“다음 타자한테, 멤버들한테, 소녀연맹이란 이름에, 너무 미안해요.”
앨범 판매량이 아이돌의 이전 성과를 드러낸다면,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의 프로듀서는…….
“내, 내가 망친 거잖아요…….”
조아라는 기어코 코를 훌쩍였다.
눈물을 참을 수 없던 것이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마구 문질렀다.
“내가 부끄러운 것보다, 다음 멤버한테 너무 미안해서…….”
성필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손수건 줄까? 아니면 어깨?”
조아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보통 그런 건 말없이 하지 않아요? 옆에 은근슬쩍 다가와서 어깨 감싸준다거나.”
“네 거리감이랑 내 거리감이 다를 수 있잖아.”
“진짜 어이없네…….”
조아라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면서 훌쩍였다. 간간이 웃음이 섞여 나왔다.
“그럼 아저씨 거리감은 뭔데요?”
“손수건. 네가 원하면 어깨도 빌려줄 수 있고.”
“안아줘요.”
조아라는 겨우 고개를 내려 성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음 속에서 필사적으로 웃고 있었다.
“나 진짜 크게 좀 울게.”
성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아라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슴을 빌려주었다.
조아라는 그에게 얼굴을 묻고 나서야 참고 있던 울음을 마음껏 터뜨렸다.
성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너를 의심하지 마. 자책하지도 말고. 욕하는 사람 말은 안 들어도 돼. 좋다고 생각했잖아. 확신했잖아. 네 판단이 옳아. 너만이 너에게 옳을 수 있어. 그리고 네가 옳아. 내가 보장할게.”
조아라의 울부짖음은 성필의 안에서 서서히 멎어갔다. 누구도 들을 수 없도록.
소녀연맹 ‘Automata’ 컴백 첫째 주, 워터멜론 차트 주간 22위.
현재, 실시간 차트 67위.
주간 차트 50위권 아웃 확정.
소녀연맹 역대 최저 성적.
* * *
미리 설명한다.
현재 빌보드에는 주요 차트 세 개가 존재한다. ‘빌보드 핫 100’, ‘빌보드 200’, ‘빌보드 글로벌 200’.
빌보드 핫 100.
싱글 뮤직 차트다.
즉, 싱글 앨범 판매량과 곡 스트리밍, 곡 다운로드, 라디오 방송 횟수, 아이튜브 조회 수를 총합하여 순위를 매긴다.
빌보드 200.
앨범 판매량과 스트리밍 횟수, 디지털 다운로드 횟수를 종합하여 계산, 순위를 매기는 차트다.
스트리밍 1,500회와 디지털 다운로드 10회를 앨범 한 장으로 계산한다.
빌보드 글로벌 200.
빌보드 차트는 미국을 기준으로 한 차트이며, 일반적으로 미국의 곡이 차트에 오르기에 유리하다.
그 주요한 이유는 미국 라디오 방송 점수 때문이다. 미국은 라디오가 아직까지 주요 음악 매체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는 과거 주크박스 시절까지 흘러 올라가는……(중략).
하지만 이 차트만은 전 세계의 곡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긴다. 즉, 다른 두 차트와 달리 미국만이 점수 집계 범위가 아니다.
전 세계 200개국 이상을 대상으로 스트리밍, 다운로드 횟수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요약하자면.
‘빌보드 핫 100’과 ‘빌보드 200’은 미국에서의 인기를 가늠하는 지표다.
‘빌보드 글로벌 200’은 세계적인 인기를 가늠하는 지표다.
“이거 실화야?”
손혜빈은 어안이 벙벙하여 물었다.
이재호는 프린트한 종이를 그녀에게 내밀고, 이제껏 본 적 없이 흥분하여 외쳤다.
“실화예요!”
“성필아, 실화래.”
성필은 멍하니 이재호가 가져온 종잇조각만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적힌 글자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Billboard 200]
[Automata: 3rd mini album - Girls’ League]
[PEAK POS(최고 순위): …….]
“나, 눈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재호 씨, 우리 애들이 몇 위라고…….”
“14위요!”
[Billboard 200]
[Automata: 3rd mini album - Girls’ League]
[PEAK POS(최고 순위): 14
WKS ON CHART(차트에 몇 주 있었는가): 1]
소녀연맹, ‘빌보드 200’ 진입.
14위.
한 주 동안 미국에서 열네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란 뜻이다.
성필이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무릎을 꿇으려던 순간.
“또 있어요!”
[Billboard Global 200]
[Automata - Girls’ League]
[PEAK POS(최고 순위): 42
WKS ON CHART(차트에 몇 주 있었는가): 1]
소녀연맹, ‘빌보드 글로벌 200’ 진입.
42위.
한 주 동안 전 세계에서 42번째로 많이 스트리밍되고 많이 다운로드 된 곡이란 뜻이다.
그걸 바라보던 성필의 검은자위가 눈꺼풀 뒤로 넘어갔다.
“성필아!”
“이사님!”
박성필, 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