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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53화 (553/760)

553화

“형.”

성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점차 감각이 돌아왔다.

괸 팔꿈치로 전해지는 단단한 원목 테이블의 감촉부터, 오랫동안 주먹을 대고 있어서인지 뻑뻑하게 굳은 볼까지.

“형.”

성필의 시야로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형?”

민규였다.

석세스 엔터의 보이그룹 ‘히에라주’의 리더인 민규. 이제 아이돌 4년 차…….

“부대표님……?”

성필이 대답이 없자 민규는 불안한 어투로 그의 직함까지 불렀다.

거의 20살 차이지만, 민규는 당돌하게도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둘 사이에 있던 여러 고난과 청춘(성필 말고 민규) 드라마의 결과였다.

“어, 그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니…….”

성필은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분명 방금까지 민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랜 꿈을 꾸었다 깨어난 것처럼 머릿속이 몽롱했다.

민규는 그런 성필을 보면서 은근히 실망한 티를 냈다. 성필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서였다.

“저희 미주(美州) 투어 끝나면요…….”

“그래, 휴가. 한 달…… 이라고?”

“네, 그, 아무래도 투어는 체력 소모가 크고 하니까 적어도 한 달은…….”

“그래, 그래라.”

“네?”

민규는 경악하여 굳이 되물었다. 하지만 곧 한껏 밝아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성필이 말을 바꾸기 전에 확정 사실로 만들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행님!”

민규는 춤을 추면서 집무실을 나섰다.

‘집무실…….’

성필은 의자를 돌려 벽면을 확인했다. 석세스 엔터가 키운 수많은 아티스트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빽빽이 장식되어 있었다.

성필에겐 어떤 트로피나 상보다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석세스 엔터 부대표, 매니지먼트 총괄…….’

자신의 직함을 되새기자 머리가 어느 정도 맑아졌다.

성필은 책상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다가 벽 한편에 세워진 전신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왠지 모르게 자신의 체격이 작아 보인다.

성필은 가슴이며 배, 팔을 더듬었다. 맨몸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의 감촉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왜소하게만 보인다.

이거보다 컸던 거 같은데.

헬스한 사람처럼…….

‘헬스?’

평생 헬스장엔 가본 적도 없다.

그나마 군대에서 체력 단련실에 드나들었던 게 유일한 사례일까.

“팀장님.”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성필의 집무실을 제집 제방 드나들 듯할 수 있는 사람이야 손에 꼽는다. 그게 여자라면 두 명밖에 없다.

그중 한 명, 신아름은 한 손에 든 고가의 명품 핸드폰을 무심하게 빙빙 돌리면서 성필에게로 걸어왔다.

“왜 안 오…… 뭐 해요?”

성필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가 뻘쭘하게 손을 내렸다.

“살쪘어요?”

“아니, 그냥…….”

“빨리 가요. 늦었어요.”

“어…….”

어디에 늦었다는 걸까.

그것도 모르고 성필은 신아름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십수 층을 내려가자 지하 주차장이 나타났다.

신아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연스럽게 성필과 팔짱을 꼈다. 그러곤 콧노래를 부르며 주차된 차로 향했다.

“……카드 두고 왔어요?”

성필이 차 앞에 오고서도 우두커니 있기에 신아름이 물었다. 성필은 주머니를 뒤졌다. 무광 재질의 남색 카드가 나왔다.

카드를 운전석 문의 센서에 가져다 대니 차가 열렸다.

성필은 운전석에, 신아름은 조수석에 앉았다. 신아름이 재잘재잘 무어라 얘기하는 동안 성필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나간 직후 성필은 차창으로 사옥을 바라보았다.

지상 20층, 지하 6층의 석세스 엔터 사옥이다. 방금까지 성필은 저곳의 최상층에 있었다.

“팀장님, 조아라 걔 진짜 느낌이 쎄했다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매일 연습실에 갇혀서 남자 댄서들이랑 부대끼는데 썸씽이 안 생기고 배겨요? 내가 봤을 때 은밀한 프렌드만 열 명 넘어요. 딱 봐도 그렇게 안 생겼어요? 잘 헤어졌어요. 우리 팀장님 착해.”

신아름이 장난스럽게 성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름아.”

“뭐요. ‘그래도 내가 옛날에 사랑했던 여자야’라면서 명예 지켜주려고요?”

“우리 어디로 가지?”

“네?”

신아름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성필은 그걸 따라서 차를 몰았다.

도착한 곳은 어느 개인 베이커리점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의 진열대에는 맛있어 보이기보다 아름답기까지 한, 거의 예술품의 경지에 도달한 케이크와 과자들이 있었다.

파티시에, 혹은 파티시에르의 예술적 집념마저 느껴졌다.

“이열, 아름이!”

카운터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반가움을 한껏 담은 채 신아름에게로 다가왔다.

신아름도 반갑게 그녀와 포옹했다.

“또 내 가게 바이럴해주려고 왔어?”

“예약한 건?”

“인증 사진 찍어주면 줄게.”

신아름은 픽 웃으면서 가게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여자는 그걸 흡족히 바라보곤 성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팀장님, 앗, 아니다. 부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어…….”

성필은 멍한 투로 말을 끌었다.

“그, 아, 라희야.”

그래, 라희는 파티시에르가 됐다.

석세스 엔터에서 데뷔조가 되는 데 실패하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베이커리를 열었다.

글로브 멤버들이 한 번씩 다 들렀던 터라 입소문을 타서, 먹고 사는 게 궁하진 않다고 한다.

“잘 지내지……?”

“네? 어, 네, 저야 뭐…….”

성필의 말투는 옛날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남자와 같았다. 이유 모를 향수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난다.

성필도 자신의 목소리가 왜 그런지 몰랐다.

“팀장님 뭐예요?”

신아름이 성필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아니, 성필을 넘어 어떠한 이유로 라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라희 너 팀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

“몇 년 만에 보는데 일은 무슨 일!”

“진짜야? 그럼 팀장님 왜 이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희도 한껏 당황해버렸다.

그녀는 우수에 가득 찬 성필의 눈빛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신아름은 가게를 나서는 내내 라희를 의심했다. 그러곤 차에 타자마자 취조하듯 성필에게 질문 세례를 던졌다.

하지만 취조는 곧 끝났다.

“팀장님 어디 아파요?”

신아름은 곧바로 성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성필의 상태가 평소와 명백히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쉴래요? 우리 집 가요?”

“아냐, 나 괜찮아.”

“아프면 바로 말해요.”

“응. 근데, 우리 어디 가지?”

“진짜 안 아픈 거 맞아요?!”

신아름은 성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가, 약국에 들르자고 했다가,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성필은 신아름의 인도에 따라 목적지로 향했다.

장소는 7층짜리 빌딩이었다. 임대형 오피스 건물로, 층마다 각기 다른 회사들이 들어와 있었다.

눈에 띄는 건 5층과 6층이었다.

두 층 모두 ‘놀리지 사운드’라는 레이블, 혹은 기획사가 들어와 있었다. 신아름은 엘리베이터로 그곳을 향해 갔다.

“아, 안녕하십니까!”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성필과 신아름을 보자마자 기겁하더니 내선 전화로 어딘가에 연락했다.

곧바로 대표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비굴하다시피 한 태도로 성필을 대했다.

“이쪽입니다.”

성필과 신아름은 그가 안내한 곳으로 갔다.

널찍한 회의실엔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키가 190cm는 되는지, 앉은 키가 엄청났다. 그는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성필이 들어오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부대표님.”

성필은 ‘아’ 하며 그를 불렀다.

“지음아.”

“……네?”

신아름은 경악해서 성필의 팔을 툭툭 쳤다. 그제야 성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즈, 죄송합니다. 정지음 작곡가님.”

“아, 아녜요. 지음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예. 제가 동생이니까요.”

성필과 신아름은 정지음의 맞은편, U자형 테이블의 반대쪽 끝에 앉았다.

정지음은 성필과 신아름이 가져온 커다란 종이백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신아름이 살가운 미소와 함께 답했다.

“오늘 애들 오면 선물로 주게요. 으쌰으쌰 힘내자! 그런 의미예요.”

“확실히 아름 씨가 선물까지 주시면 애들이 좋아하겠네요. 저도 약소하게 선물 준비하긴 했는데.”

“저보다야 이번 앨범 프로듀서이신 지음 님이 주는 선물이 더 기쁘겠죠.”

“무슨 그런 말씀을…….”

정지음은 겸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부정했다.

“저야 일개 작곡가고, 아름 씨는 모든 아이돌의 우상 아니겠습니까. 우상의 선물이 진짜 가치 있는 거죠.”

“애들……?”

성필이 그리 반문하자 신아름과 정지음의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다.

신아름은 아무 일 아니란 듯 정지음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오늘 팀장님 상태가 이상해요. 꼭 잠 덜 깬 사람처럼 이러거든요. 신경 쓰지 마세요. 팀장님, 밖에 나가서 음료라도 마실래요? 너무 힘들고 나랑 있기 싫고 내가 증오스러우면 여기서 기다리실래요? 저 혼자 쓸쓸하게 가서 사 올게요.”

“괜찮아.”

“그러고 보니.”

정지음은 무슨 작업 중인지 노트북을 보면서 말했다.

“글로브 앨범 발표한다면서요?”

“하하, 어쩌다 보니까요.”

“저는 완전히 해체한 줄 알았어요. 되게 아쉬웠었는데, 팬으로서 기쁘네요.”

“음, 이런 얘긴 하면 안 되는데요. 노아가 있잖아요, 이번에 주식에 재산을 다 꼬라박았거든요.”

“네, 네?”

“그래서 막 저희한테 다 연락 와서 ‘제발 앨범 하나만 더 내자 얘들아!’라면서 엄청 부탁하는 거예요. 막 일본에서 한국까지 와서 팀장님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래서 뭐…… 저희들도 또 하고 싶긴 했었고, 결국 하기로 했죠.”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았는데에…….”

정지음이 울상을 지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대표와 일곱 명의 소녀들이 쪼르르 들어왔다.

“얘들아, 인사.”

그녀들은 신아름을 보자 표정이 뻣뻣하게 굳어선, 평소보다 훨씬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야, ‘아이돌 아카데미’ 수석들.”

그녀들은 연습생 경연 프로그램 ‘아이돌 아카데미’의…….

“아, 아이돌리시 아카데미예요, 헤헤…….”

소녀들 중 한 명이 신아름의 말을 정정했다. 다른 소녀들은 경악, 절망, 좌절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신아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뭐?”

분위기가 철보다 더 무겁고 얼음보다 차가워졌다.

소녀는 신아름이 ‘뭐?’라고 했을 뿐인데도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작 1초 만에 자신이 저지른 경솔한 죄악을 참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죄, 즈, 죄송…….”

“농담이야 농담! 그래, ‘아이돌리시 아카데미’ 수석들. 데뷔조를 수석이라고 부르는 거 맞지? 나 드문드문 챙겨봤어. 너희 주려고 선물도 사 왔고. 아, 내가 너희들 팬이니까 조공이라고 해야 하나?”

소녀들을 황송하여 눈물겹단 태도로 또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감히 신아름을 지적한 소녀는 바들바들 떨며 고개도 들지 못했다.

신아름은 뻘쭘해서 성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팀장님, 말해야죠.”

“……뭘?”

“뭐긴요. 팀장님이 맡게 된 그룹이잖아요. 팀장님이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으면서 왜 그래요. 내가 기껏 같이 왔는데.”

“내가…… 맡아?”

성필은 일곱 명의 소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석세스 엔터의 부대표 성필은 ‘아이돌리시 아카데미’의 데뷔조를 맡게 됐다.

원래 석세스 엔터에서 기획했던 걸그룹의 프로듀싱 권한을 어처구니없게 윤상열에게 빼앗겨버렸다.

김태훈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성필은 이곳에…….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성필이 차갑게 부정하자 소녀들이 깜짝 놀랐다.

성필이 벌떡 일어났다.

“뭔가 이상해.”

“네, 네?”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신아름은 일어난 성필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팀장님 왜 그래요…….”

“아름이 너만 봐도 그래.”

“네?”

“너무 자연스럽게 팔짱 끼잖아.”

“그.”

신아름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려왔다. 마치 부모에게 ‘넌 내 자식이 아니다’란 선언을 들은 것처럼, 그녀가 눈동자에 담던 세상이 거세게 무너져내렸다.

“그러면 안 돼요오……?”

성필은 그런 신아름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성필은 일곱 명의 소녀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맡게 된 그룹.

“일곱 명이 아니야. 다섯 명이야.”

이제껏 흐리멍덩했던 성필의 눈동자가 밝아졌다.

“소녀연맹…….”

그 이름을 기억하자마자 주변의 모든 풍경과 사람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이건 꿈이다.’

성필이 꿈을 자각했다.

‘아니, 진짜 꿈인가?’

성필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해보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리카가 나타났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이젠 영원히 함께네요!”

“꿈이 맞군.”

“에에엑?! 이거 꿈인가요! 그럼 이사님이 저한테 프러포즈했던 것도 꿈인가요!”

“그렇다.”

“손나(그런)! 그럼 다시 해주세요!”

“안 된다.”

“그럼 아타시(제)가 할게요!”

리카가 무릎을 꿇고 부케를 성필에게 내밀었다.

“실버타운 전에 신혼집으로 먼저 같이 들어가주세요!”

“안 된다.”

“손나 바카나(그런 바보 같은)?! 그럼 동거부터!”

“그럴 순 없다.”

“손나 바카나 우소(그런 바보같은 거짓말)?! 그럼 연인부터! 아, 아니 일단 데이트로 서로를 알아가는 것부터!”

“아직 우린 못다 한 게 있잖아.”

“못다 한 거?”

“빌보드 메인 차트 입성도 못 했고…….”

“에, 그건 이미 했는데요?”

“역시 꿈이 맞군.”

“손나(그런)…… 엄청 기뻤는데 꿈이었나요……. 그럼 꿈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네요!”

“자, 잠깐. 뭐 하는 거냐. 다, 다가오지 마아아아아앗……!”

“어차피 꿈이에요! 앗, 이건 이사님의 꿈이니까 이사님은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거네요!”

“아니야아아아앗!”

“금방 끝나니까 가만히 있으세요!”

아흣……!

‘근데.’

성필은 꿈과 같은 감각에 몸을 맡기면서 의문을 품었다.

‘왜 꿈을 꾸고 있지? 난 분명 사무실에서…….’

* * *

“으어.”

성필은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눈을 떴다.

아침인가.

요즘 온갖 영양제를 챙겨 먹어서 그런지 활기가 넘친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될 거 같다.

“앗, 이사님이 일어났어요!”

눈앞에 리카의 얼굴이 보였다.

성필은 화들짝 놀라서 자신의 하체를 보았다. 다행히 담요가 덮여 있었다.

“뭐, 뭐야. 꿈이 아니었나?”

“이사님 말투가 이상해요! 이세계 전생이라도 하셨던 건가요! 어떤 세계로 갔나요!”

“꿈인가…….”

“아아, 대충 알겠네요! ‘지구로 돌아가면 모든 기억을 잊는다’ 루트예요! 너무 상심하진 마세요, 그쪽 동료들보다 저희와의 인연이 훨씬 아름답고 소중할 테니까요!”

성필은 몸에 돌던 활기가 가라앉자마자 소파에서 발을 내리고 정자세로 앉았다.

1층 휴게 공간의 소파였다.

“내가 잠들었었나?”

“기절했어요!”

“아니, 사람이 기절했는데 1층에 덩그러니 가져다 놔? 손님 왔다가 나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타시(제)가 가져다 둔 거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직원들이 편히 쉬어야 할 휴게실에 둘 순 없잖아요!”

“이사 취급이 말이 아니구만. 근데 기절을 왜 해. 누가 내 목이라도 졸랐어? 아라야?”

“저희 빌보드 200 차트 14위를 달성했어요! 빌보드 글로벌 200은 40위권이에요!”

“아, 맞다. 그랬었지.”

박성필, 다시 혼절!

“이사님?! 정말 기절한 건가요? 이사니임? 자꾸 안 일어나면 큰일 난다구요? 가만히 있으면 동의로 받아들일 거예요?”

성필은 대답이 없었다.

리카는 한숨을 쉬면서 옆 소파를 바라보았다. 한구인이 마찬가지로 기절해 있었다. 그도 성필과 같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쓰러졌었다.

‘우리도 울기만 했지 기절하진 않았는데.’

리카는 헤실헤실 웃었다.

하긴, 저 둘은 소녀연맹의 여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언제나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으니, 저럴 만도 하지.

리카마저도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다. 남들 앞에선 필사적으로 평정을 유지했었지만, 쉽진 않다.

‘빌보드에 들었어.’

세계가 소녀연맹을 바라보고 있다.

‘최고에 한걸음 더 다가갔어. 아니.’

한걸음이 무엇인가.

소녀연맹은 걷는 수준을 넘어 달리고, 달리는 것을 넘어 날고 있다.

리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더듬었다.

“유메쟈 나이(꿈이 아니야)…….”

소녀연맹,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걸그룹 중 두 손가락으로 꼽는 기록.

즉, TOP2.

케이어스마저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발을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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