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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54화 (554/760)

554화

가로 엔터 대회의실. 임원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홍규헌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성과 확인회다. 임원들은 수합한 자료를 홍규헌에게 간략히 보고했고, 지금의 침묵이 생겨났다.

“우리…….”

긴 침묵 끝에 홍규헌이 입을 열었다.

“갈 수 있는 거 아냐?”

“어딜요?”

“신사옥!”

홍규헌이 음원과 앨범 판매량, 그로 인한 수익이 적힌 서류를 테이블에 쾅 내리찍었다. 그녀의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이 새겨졌다.

“미친 거 아냐?! 나, 나 음원으로 이렇게 돈이 많이 찍힌 거 처음 봐!”

소녀연맹은 한국 음원 차트에선 역대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소녀연맹의 진정한 성공은 해외에 있었다.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거의 올킬하다시피 하면서 막대한 음원 수익을 벌어들였다.

고작 발매 2주 남짓한 기간에 말이다.

“이게 말이 돼? 대형 기획사는 지금까지 이렇게 돈 번 거야? 음악이란 게 이만한 규모로 돈을 벌 수 있는 거였어?!”

“뭐…….”

얼떨떨한 건 한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겨우 정상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음원 시장 규모가 앨범 시장을 추월한 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요. 물론 그건 음원 시장 전체 규모라, 곡 하나로 앨범 판매량 수익을 넘어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곡 ‘Automata’의 스트리밍 횟수가 많다지만, 앨범 판매 수익엔 미치지 못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건…….”

한구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기록이군요. 수록곡까지 합치면 총 스트리밍 횟수가 1억을 넘습니다.”

해외 스트리밍 성적이 좋다.

이건 가로 엔터보다 소녀연맹 멤버들에게 더 좋은 소식이다. 해외 스트리밍 플랫폼의 수익구조는 한국과 판이하게 다르다.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은 음원 수익의 약 5% 정도가 가수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해외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낮게는 16%부터 높게는 45%까지 가수에게 수익이 분배된다.

기획사, 즉 가로 엔터와 거의 비슷한 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소련이들은 돈방석에 앉게 생겼다.

“원인은?”

홍규헌이 다급히 물었다.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기에 불가해한 사태였다. 그 원인을 알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그냥 ‘우리 애들이 많이 컸다’로 일축할 수 있는 문제야?”

“저희가 생각하기론…….”

성필이 입을 열었다.

그도 홍규헌에게 보고하면서 살짝 흥분했던 터라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했다.

“바이럴이 잘 됐다고 봅니다.”

“입소문이 났다, 그게 끝?”

“주요 통로는 트잇터고요, 그리고 다음으로 아이튜브랑 클락이겠네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춤이었습니다.”

춤.

홍보팀은 소녀연맹이 성공한 원인을 찾으려고 며칠을 노력했다. 그 결과 납득할 만한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성공은 춤에 있다.

“‘보는 맛이 있다’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어요. 보는 맛이 있기에 어느 콘텐츠랑 결합했는데, 리액션 비디오예요.”

리액션 영상.

그중 케이팝 뮤직비디오 리액션이 ‘오토마타’의 성공을 견인했다.

리액션 영상이란, 쉽게 말해 무엇을 보는 사람을 찍은 영상이다. 그 사람이 리액션하는 것을 보는 게 세일즈 포인트다.

“그게 우후죽순처럼 올라와요.”

리액션 영상이 가장 활발한 분야가 바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매니아층까지 들어가면 굉장히 딥한 취미이다. 조금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오타쿠끼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향유하는 문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길 좋아한다.

‘이거 재밌어. 봐. 재밌지?’

이런 마음가짐이다.

평론가나 학자들은 그들의 마음가짐이 인정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즐기는 문화가 이렇게 재밌다고, 그러니까 무시하지 말고 인정해달라고.

또 다른 이론으로는 공감이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리액션 비디오라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이미 본 공포 영화를 다른 사람과 함께 볼 때는 영화보다 그 사람의 반응에 집중하곤 한다.

‘여기서 무서운 장면 나오는데, 얘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리고 리액션 비디오는 케이팝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선 꽤 메이저한 콘텐츠다.

케이팝이 관심이 있는 사람, 아예 모르는 사람, 관심은 없지만 아는 사람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리액션을 한다.

2010년대 중반, 케이팝 리액션이 화제가 되자 국뽕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하지만 리액션 비디오의 제작자와 시청자는 대부분 외국인이니, 굳이 표현하자면 국뽕이 아니라 케이팝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리액션 비디오에는 어느 조건이 필요해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박 이사 생각이면 가치가 있지. 가감 없이 말해봐.”

“직관적인 즐거움을 줘야 해요.”

리액션의 소재가 되는 영상은 즉물적이고 직관적인 즐거움이 필요하다.

세계관 설명이나 얼빡샷(얼굴이 빡빡하게 채워진 화면), 아이돌 개인의 연기에 집중한 비주얼 영상은 리액션 소재로 그리 좋지 않다.

“그런 종류는, 아는 사람만 즐겁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래서 이게 뭔데 씹덕아?

“이런 상태가 되거든요. 물론 노래를 듣고 ‘좋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보통 리액션 비디오를 찍는 사람이 외국인이니…….”

“못 알아들어서 재미가 반감되는 거구나.”

“그렇죠.”

리액션 비디오의 조건.

즉물적이고 직관적인 재미.

이를 충족하는 것이 하나 있다.

“춤.”

그것도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만큼 신기하고 역동적이며 아름다운 춤. 문외한이 봐도 ‘와, 대단하네’ 소리가 나올 만한 춤.

데뷔 초중기의 WTP가 유행을 탄 것도 격한 춤이 한몫했다. 그들이 해외 케이팝 팬덤을 집어삼킬 수 있게 한 공신 중 하나가 바로 춤이었다.

“오토마타는.”

성필이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보기만 해도 재밌어요.”

발레리노가 거의 자기 키만큼 날아오를 때.

스트릿 댄서가 각 관절이 제각각인 것처럼 움직일 때.

비보이가 현란하고 화려한 움직임을 선보일 때.

사람은 그게 무슨 춤인지 모르고, 또 춤을 접한 경험이 없어도 무심코 감탄하게 된다.

“과장 조금 보태서 ‘오토마타’ 뮤직비디오만 6시간 연속으로 볼 수 있어요.”

다른 이들은 과장이 아닌 거 같다고 생각했다.

성필은 정말 뮤직비디오 하나만 6시간 동안 봐도 안 질릴 듯한 인간이니까.

“거의 2주간 저희가 확인한 리액션 영상만 해도 200개가 넘어요. 조회 수를 모두 합치면 ‘오토마타’ 뮤직비디오를 따라잡을 수준이에요. 거기에 ‘클락’이나 트잇터에 짧게 잘라서 올려둔 영상까지 합치면 조회 수가 억은 가뿐히 넘죠.”

성필이 처음 말했던 ‘바이럴이 잘 됐다’는 의미가 이것이었다.

“‘오토마타’는 분명 한 달 이내에 조회 수가 1억을 넘을 겁니다. ‘애플 크러쉬’보다 훨씬 빠른 속도예요.”

“저어, 저기.”

정지음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형, 그럼 음악적인 요소는…… 성공 요인으로 작용 안 했나요?”

성필은 ‘왜 안 그렇겠어?’란 뜻을 담아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컴플렉스트로. 애초에 서양권에서 유행했던 장르고, 한국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거였어. 먹힌다면 당연히 해외에서 먹히겠지.”

지금은 유행이 시들었다지만, 한 번 유행했던 장르란 게 중요하다.

한 번이라도 유행했단 이유로, ‘오토마타’는 해외에서 국내와 완전히 다른 위상을 가지게 되니까.

“교육비.”

손혜빈이 말했다.

“서양에 ‘오토마타’가 퍼지는 데는 교육비가 없어요.”

교육비란 사업에서 쓰이는 용어다.

사람들이 접해보지 못한 신제품을 시장에 소개할 때 들이는 비용을 뜻한다.

사람들은 그 신제품을 접한 적이 없기에 광고를 많이 보아도 사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업은 그 아이템을 시장에 정착시키기 위해 향후 몇 년간 적자를 감수해야만 한다.

값을 낮추고, 홍보하고, 이벤트를 열고, 그렇게 시장이 제품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퍼스널 컴퓨터가 그러했고, 스마트폰이 그러했고, 전기차가 그러하다.

이를 교육비라고 한다. 대중에게 제품에 대한 교육을 시키는 비용.

“저희는 이번에 컴플렉스트로에 대한 교육비를 지불한 거고요. 보통 이런 건 대형 기획사들이 하는 건데.”

“그렇지. 대형 기획사는 팬덤이 탄탄해서 신기한 걸 내도 일단 들어주니까.”

그러니 중소 기획사는 신기한 걸 할 수 없다. 교육비를 지불할 여력도 없거니와, 신기한 걸 만들어낼 힘도 없으니까.

대형 기획사들이 계속 혁신적인 시도를 거듭하여 문화 선도자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니 ‘오토마타’의 성공은 해외를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이걸로 인기가 한국으로 역수출되는 현상도 기대할 수 있을 거예요.”

“왜?”

홍규헌이 웃었다.

“한국 사람 다 알게 동네방방곡곡 홍보할 거니까?”

“당연하죠!”

성필이 흥분하여 외쳤다.

“한국 사람 중 우리 애들이 빌보드 간 거 모르는 사람 없게 만들 거예요! 이런, 이 정도의, 이, 이만한…….”

“박 이사 좀 진정해.”

진정하기 어려웠다.

성필이 기억하는 미래에, 케이팝 그룹이 빌보드 200이나 글로벌 200에 드는 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된다.

탑티어 그룹이라면 빌보드 200에 이름을 올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린다.

그게 200위든 100위든 50위든 10위든, 결국 자연스러워질 일이다.

미국에 유의미한 수의 케이팝 팬덤이 정착한 이후의 일…….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걸그룹이 빌보드 앨범 차트 14위를 기록한 건…….’

정말 진짜 말이 안 되는 대기록이다!

보이그룹 몇을 제외하면 사례조차 찾기 힘들고, 걸그룹도 소녀연맹 위의 기록이라곤 하나뿐이다.

“어떻게 진정해요!”

소녀연맹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별이다.

성필은 확신했다.

그가 미래를 끌어온 게 아니다.

소녀연맹이 미래를 향해 먼저 발을 디딘 것이다.

“이러면, 이럼!”

성필은 감격에 젖어 눈물을 글썽였다.

“할 수밖에 없어요!”

“뭘?”

성필이 절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미주(美州) 투어!”

미국 투어.

그 말에 다들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기뻐서 웃는 것이다.

“그래서?”

성필은 아직 눈물이 가시지 않는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그곳엔 아까부터 쥐 죽은 듯 앉아 있던 조아라가 있었다.

“프로듀서님 기분이 좀 풀렸어?”

조아라는 성필의 질문을 받곤 뻣뻣하게 굳더니.

“헤헤.”

머쓱하니 머리만 긁적였다.

“뭐, 그냥, 뭐, 기쁘긴 하네요.”

“에이, 소리 지르고 ‘내가 누구?’ 외쳐도 되는데? 너 ‘내가 다 망쳤어요오’라면서 펑펑 울었잖아. 그거 보상받아. 여기 다 울리도록 환희의 함성을 질러!”

“아저씨 그 말만 아니었음 진짜 기뻤을 텐데.”

그제야 조아라가 헤프다 싶을 만큼 웃기 시작했다.

“아라야, 애들한테 갈 준비하라고 해.”

“한의사님 저거 성희롱으로 징계해줘요.”

“바로 검토하겠습니다. 사장님?”

“어, 징계 허가할게.”

“아니 그런 뜻 아니에요!”

“뭐, 어디 보내줄 건데요?”

성필은 검지를 입술 위에 가져갔다. 다들 침묵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놀라지 말란 뜻으로, 아니, 마음껏 놀라란 뜻으로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미국 투어, 전엔 2,500명씩 4개 도시에서 했었지? 이번엔 총합 4만 명 규모 투어야!”

그엔 다른 이들도 기뻐하기보다 놀랐다.

“4만 명 말씀이십니까?”

“형 그걸 바로 정해도 돼요?”

“시장 조사도 안 끝났는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아저씨 기쁜 건 알겠는데 그걸 바로 정하는 건…….”

다들 당황했다.

성필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이전에 소녀연맹이 데뷔 1년도 안 됐을 때 ‘월드 투어’를 하겠다며 선언했었고, 진짜 시켰었다.

5만 명 규모 미국 투어를 하겠다면, 성필은 진짜로 한다.

“해요. 4만 명으로.”

성필은 단호했다.

다른 이들의 반응은 당연하다.

미국에서 반응이 좋대도, 4만 명 규모의 투어 콘서트에 객석이 다 차기나 할까?

다른 걸그룹의 예시가 많다면 몰라도, 아직 사례로 꼽을 것조차 찾기 어렵다. 4만 명 규모라면 더욱더 그렇다.

“누구도 발 디뎌 본 적 없던 미개척지잖아요.”

성필에겐 미개척지가 아니다.

그는 미래를 아니까.

미래의 걸그룹들이 미국에서 어느 정도 규모로 콘서트를 열었는지 전부 알고 있다.

소녀연맹의 성적이면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견적이 선다.

이건 현재로선 성필만이 누릴 수 있는 어드벤티지다. 정말 오랜만에 사용하는, 미래를 알기에 쓸 수 있는 특권.

“소녀연맹이 미국에 깃발을 먼저 꽂습니다.”

물론 투어라고 해도 4만 명 규모란 건 살짝 버거운 감이 있다. 하지만 성필은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향후 1년, 2년간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을.’

소녀연맹이 달성한다.

소녀연맹은 신화가 될 것이다.

그 입지전적인 기록을 마음껏 활용하여 시장을 정복할 것이다.

“…….”

회의실이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걸 깬 건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러면 진짜 갈 수밖에 없잖아…….”

홍규헌이었다.

“신사옥 이전이다! 회사 규모 열 배 팽창이다! 대형 기획사가 되는 거야!”

임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걸 보면서 조아라는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 풍경을 자신이, 소녀연맹 모두가 함께, 가로 엔터 전원과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환희가 가시지 않는다.

“아…….”

절로 입술 사이로 기쁨의 신음이 새어 나올 지경이다.

“하하…….”

조아라는 어릴 적 사촌이 태어나던 순간 함께 있었었다. 숙모의 품에 안겨 있던 사촌을 보고 가족 모두 기뻐했었다.

그때 조아라의 어머니가 이리 말해주었다.

‘네가 태어났을 때도 다들 이랬어.’

다들 이렇게 행복해했다.

조아라는, 아마 자신이 태어났을 때를 볼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에게 사랑받는 기분.

‘고마워요 다들.’

그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평생토록 이런 행복을 느껴보지 못했겠지.

조아라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 행복을 음미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고마워요…….’

하지만.

“뭘 다 끝난 것처럼 말해요.”

조아라가 호기롭게 테이블을 쿵 쳤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던 손혜빈과 민경섭이 화들짝 놀랐다.

조아라가 씩 미소 지었다.

“해외만 정리하면 끝이에요?”

“으, 응?”

“아저씨가 옛날에 그랬어요. 한국은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라고요. 해외에서 선전했다? 좋다 이거예요. 근데, 자국을 정리 못 하면 기분 찝찝하지 않겠어요?”

“아라야 근데 ‘오토마타’는 한국에서 개처럼 멸망…….”

잠시 후, 민경섭은 기절한 듯 조용히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신사옥 이전이든 미국 투어든 월드 투어든, 기뻐하는 건 EPL 끝나고 해요.”

케이팝의 EPL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당연히 한국이다.

조아라는 일단 한국에서 마무리 짓길 원했다.

“이번 HPT 뮤직 어워드.”

장소는 홍콩.

올해 HPT 뮤직 어워드는 한국의 그 어떤 대중음악 시상식보다 규모가 크다. 미디어 재벌의 계열사 중 하나가 주최하는 시상식답다.

“우리한테 본상의 영광을 처음 안겨줬던 곳에서, 노릴 거예요.”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음악상, 그리고 대상. 당연히 이런 것들이 메인 트로피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시상식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케이팝은 퍼포먼스 팝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그러니 올해의 퍼포먼스상은 메인 트로피와 같은 위상을 지닌다. 모든 케이팝 아이돌 중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그룹이 거머쥘 수 있는 상이다.

“올해의 퍼포먼스 상, 메인 트로피 중 하나를 따낼 거예요.”

그게 이번 목표였다.

그리고 다음은 다음 타자들이 얻어줄 것이다.

올해의 앨범상, 음악상, 마침내 대상까지.

내후년, 어쩌면 내년에.

이건 대상까지,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계단 중 하나다.

“먼저 한국에 깃발을 꽂아요.”

“그래.”

성필의 표정도 조아라와 같이 흥분으로 상기됐다.

“그래야지. 그래야 우리 아라지.”

소녀연맹은 차근차근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 * *

시상식이 곧이다.

케이어스의 에리카는 귀금속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됐다.

그녀는 브랜드가 제공해주는 형형색색의 쥬얼리로 귀와 손, 목을 과하지 않을 수준으로 꾸몄다.

브랜드 광고를 위한 화보 촬영을 마친 후 인터뷰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이야기, 그룹의 이야기, 그리고 시류에 맞는 이야기.

“곧 한 해의 마무리를 짓게 되는데요, 아이돌의 마무리라면 역시 시상식이죠?”

모든 아이돌이 개성적인 무대를 꾸민 채 격돌을 벌인다. 그건 경연이 아니지만 경쟁이다.

아이돌팬들은 전부 시상식을 보니까.

혹자는 ‘남의 팬들 합법적으로 갈취할 수 있는 기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 세계의 케이팝 팬들이 주목하는 행사이니, 그 주목도는 다른 방송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것만은 꼭 받고 싶다’라고 하는 상이 있으신가요?”

에리카는 오만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로 답했다.

“대상이요.”

대상(大賞).

정점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트로피.

“대…… 대상이요?”

인터뷰어는 순간 당황했다. 에리카가 겸손하게 ‘어떤 상이든 감사하게 받을 것’이라고 답할 줄 알았던 것이다.

탑티어 선배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현역으로 활동 중인데, 대상이라고?

에리카는 인터뷰어의 당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당연하지 않나요?”

에리카가 검지를 들었다.

“케이어스는 이제 모든 방면에서 1위인걸요?”

케이어스.

앨범 판매량, 역대 걸그룹 중 1위.

음원 성적, 3달째 주요 월간 차트 1위.

“대상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에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확신해요.”

“WTP는요?”

“정정할게요. 걸그룹 중에서요.”

케이어스, 올해 바로 정점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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