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59화 (559/760)

559화

관객석은 웃음, 환성, 웅성거림, 여러 가지로 가득 차 있었다. 주고받는 말은 다양했으나 모든 관객의 눈은 한곳만을 향했다.

스크린에 떠오른 조아라였다.

마이크를 쥔 조아라는 말을 하다 말고 눈가를 닦았다.

화장과 조명 탓에 유난히 하얀 그녀의 얼굴. 그중 유독 눈가만 붉었다.

그녀는 울음을 참는 아기처럼 오만상 찌푸린 채 눈물을 안 보이려 노력했다.

[제가…….]

마침내 조아라가 입을 열었다.

성필은 관객석 가운데서, 다른 관객들과 같은 위치에서,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성필이 지니는 감상은 여타 관객들과 달랐다.

성필은 스크린의 조아라에게서 여러 얼굴을 겹쳐 보았다. 18살 시절의 조아라부터 22살의 현재까지,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이 상을 받은 건, 저희를 좋아해주신 팬분들 덕분이구요…….]

처음 만났던 조아라는 뭐라고 해야 할까, 깜짝 놀랄 만큼 불량스러웠었다.

어른을 향해 기세를 조금도 죽이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드는 모습.

‘난 잘못한 거 없다’는 듯 단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는 모습.

‘후회하게 해줄 거다’라며 악착같이 연습에 매달리던 모습.

그러고서 정작 정식 연습생이 되자 헤실거리며 좋아했던 모습.

[우리 소련, 아니, 소녀연맹 멤버들, 믿어줘서 고맙고, 정말 고맙고, 네, 멤버들 덕분이구요오…….]

팬미팅 후 ‘아이돌이 되길 잘했다’면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던 아라.

춤에 집착했지만 팀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던, 조금은 어른스러웠던 아라.

케이어스를 이기고 싶다면서 분한 듯 눈물을 흘렸던 아라.

[좋은 안무 만들어주신 퍼포먼스 디렉팅팀의 모두들, 안무가분들 덕분이고…….]

다음 프로듀싱은 자신이 맡겠다면서 호기롭게 선언했던 아라.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도 걸음을 내딛길 망설이지 않던 아라.

자신에겐 계획이 다 있다면서도, 사사건건 성필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어보던 아라.

[가로 엔터의 모두들 덕분이고, 그리고…….]

‘내가 하기 싫은 일로 성공하기 싫다’면서, 부모님에게 으름장을 놓던 아라는.

[아저씨.]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대중음악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한 손에 들고,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아, 아니.]

울음을 참느라 인상을 찌푸리고만 있던 조아라는 그제야 웃음 비슷한 것을 보였다.

[아저씨가 아니라 박성필 이사님…….]

“응.”

성필은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녀의 부름에 답했다.

“우리 아라…….”

감격이 뱃속에서부터 올라온다.

벅차오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무대의 조명보다 더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 너무나 밝아 그녀밖에, 그녀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조아라는 숨길 수 없는 장난기를 드러내면서, 이젠 눈물 따위 아무래도 좋단 듯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 한의사님! 규헌 언니! 내가 돈방석에 앉게 해준다고 했죠!]

조아라가 그리 외치며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성공하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한국어를 알아들은 아이돌석에선 난리가 났다.

가식을 벗어던지고 손뼉을 거칠게 두드리면서 웃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배를 잡고 끅끅거리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이래도 괜찮나?’란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만들었고, 몇몇은 소곤대다가 깔깔 웃었다.

또 누군가는 치켜올린 주먹을 빙빙 돌리면서 환호성을 보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자기가 다 뿌듯하단 듯 인자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음. 자랑스럽죠? 다들?]

말해서 뭐 하겠는가.

조아라에게 보일 리 없겠지만, 성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뿌연 시야가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렸다.

[이 상을 받는 건 저희지만, 이 상은 저희 게 아니에요.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만의 것이 아니니, 다 함께 기뻐해주세요. 너무 흔한 말이라 제 감상이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는데요.]

조아라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들, 정말로.]

수상 소감이 끝나자 그 빈 자리를 박수가 휩쓸었다. 성필의 전신으로 전율이 내달렸다.

박수 한 번 한 번이 마치 번개처럼 성필의 마디마디로 꽂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소녀연맹을 향해 축하를 바치고 있다. 성필이 프로듀싱한 아이돌을 향해.

“아…….”

성필이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건 인간관계 때문이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든 온갖 상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기에 외로운 것이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타인과 온전히 공유할 수 없기에 느끼는 고독.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수만 점의 그림을 그린 건. 모차르트가 죽기 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곡을 남긴 건. 토니 베넷이 죽기 직전까지 노래한 건.

그런 종류의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그림이 아니고선, 음악이 아니고선, 노래가 아니고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성필에게 주어진 세상과의 유일한 길은 아이돌이다. 소녀연맹이다. 소녀연맹만이 성필의 모든 것이다. 소녀연맹에게 성필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소녀연맹은 성필이 세계와 마주하는 방법이다. 성필은 세계에 소녀연맹을 보이며 이렇게 묻는다.

‘어때, 아름답지?’

그리고 세계는 답한다.

‘응.’

자신만의 방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성필은, 그제야 바깥세상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감주를 받아마신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세계와 자신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녀연맹에게로 주어지는 찬사는 그대로 성필에게 흘러들어온다.

마치 인류란 과실의 껍질을 베어 문 듯하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감정은 전부 느끼는 듯한, 울렁거릴 정도의 격한 벅차오름.

‘나는…….’

살아있다.

수만 명의 함성이 삶을 실감하게 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피(血)라는 연결고리를 잃은 그는, 이런 식으로 타인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성필은 언제까지나 아이돌의 그림자로 살아갈 것이다. 소녀연맹의 뒤에 서 있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 * *

보통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대상(大賞)이라고 하면 이 세 개를 일컫는다.

올해의 가수, 올해의 음악, 올해의 앨범.

하지만 이런 구조의 대상은 옛날부터 많은 지적에 직면해왔다.

올해의 가수는 당연히 올해의 앨범을 만들었을 테고 그 앨범에 올해의 음악이 있지 않나?

즉, 대상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어느 시상식도 쉽게 대상 하나로 통일하지 못했다.

주최자들은 하나의 곡, 한 장의 앨범, 한 명 혹은 그룹은 서로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상 하나만 놔두면 시비가 걸리기 너무 좋다.

예를 들어.

‘우리 누구누구는 앨범을 몇백만 장 팔았는데요?’

아니면.

‘우리 누구누구의 무슨무슨 곡은 차트 10위권에 몇 달 동안이나 있었는데요?’

혹은.

‘우리 누구누구는 음원이랑 앨범 합쳐서 수익이 가장 높은데요?’

이런 식으로 시비란 시비는 죄다 걸릴 수 있다.

그래서 대중음악 시상식의 대상은 드래곤볼처럼 여러 갈래로 찢겨 있을 수밖에 없다.

아니었다면 진작 주최 측 건물 외벽에 화염병 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대상들은 어떻게 될까?”

2부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대상 격 상들의 발표는 3부에 몰려 있다.

“케이어스도…… 받겠지?”

백설하는 조아라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케이어스를 꺾었다고 방금까지 잔뜩 좋아했던 조아라다. 케이어스가 대상 격 상을 받으면 금방 시무룩해질 것이다.

‘올해의 퍼포먼스상’이 대상 자격을 지니는 건 아이돌 한정이다.

최고의 가수, 최고의 앨범, 최고의 노래는 솔로 아티스트도 포함이니 경쟁 폭이 훨씬 크다.

케이어스가 이 세 개 중 하나로부터 수상한다면 객관적으로 케이어스의 승리다. 그럼…….

“아 받으라 그래요.”

조아라는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난 춤으로만 이기면 돼요. 춤으로는 우리.”

조아라가 검지를 들었다.

“소녀연맹이 1위란 거잖아요.”

“그, 그렇지.”

백설하는 살짝 시무룩한 티를 냈다. 그제야 조아라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소녀연맹은 조아라가 메인 프로듀서를 맡은 ‘오토마타’로 상을 받았다. 그러면 ‘애플 크러쉬’는?

백설하는 본인이 프로듀싱한 앨범으로 상 하나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아니, 뭐…….”

조아라는 머릿속으로 ‘애플 크러쉬’가 받을 만한 상을 훑었다.

그나마 떠올려보자면 ‘올해의 노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

‘애플 크러쉬’는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보였지만, 끝끝내 차트 1위엔 오르지 못했었다.

오랫동안 한국의 발라드계에서 군림해온 발라드 괴물이 하필 그때 컴백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래방과 거리가 그 노래와 ‘애플 크러쉬’로 도배된 시기였다.

게다가 1년 전체로 비교하면 ‘애플 크러쉬’는…….

“케이어스는 ‘올해의 노래’ 받을 거야.”

장하양이 말했다. 그녀의 어투는 담담했다.

“월간 차트 3개월 연속 1위잖아. 올해엔 비교할 만한 곡이 없어.”

조아라는 이번에도 ‘가지라 그래요’라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백설하가 걱정되어서였다.

‘만약 내가 언니였으면…….’

본인이 프로듀싱한 앨범 곡으로 상을 하나도 못 받았다면 굉장히 우울했을 것이다.

아직 시상식이 끝나지 않았다. 지금 백설하를 위로하는 건 못할 짓이다.

그때였다.

[올해의 ‘클락’ 베스트 송, 소녀연맹 ‘우파루파’!]

“으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소녀연맹의 이름이 불렸다. 백설하가 어벙한 소리를 내면서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스크린에 백설하의 어벙한 얼굴이 잡혔다.

“으어?”

“언니, 나가야 해요 빨리.”

“으, 으어?”

백설하는 다른 멤버들에게 붙잡혀 재빨리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들이 올라가는 동안 사방에서 ‘우파루파!’란 외침이 들렸다.

사회자는 무대로 오르는 그녀들을 보면서 설명했다.

[네, ‘우파루파’는 올 한 해 숏폼 SNS ‘클락’을 뜨겁게 달군 곡이죠! 그야말로 올여름은 우파루파 신드롬이었습니다!]

스크린엔 무대로 오르는 소녀연맹의 모습과 함께 ‘클락’에 등록된 온갖 우파루파 영상들이 떠올랐다.

약 15초 동안 사람들이 우파루파 춤을 출 뿐이었다. 그런 영상이 수천수만 개나 있었다.

마침내 소녀연맹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백설하는 마이크를 쥔 채 얼떨떨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관객석에서 ‘우파루파’란 함성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이윽고 함성은 하나의 외침이 됐다.

사방에서 들리는 그 외침에, 백설하는 할 수밖에 없었다.

“우…….”

양쪽 손을 머리 위에 올려 강아지의 귀처럼 보이게 하고 가볍게 폴짝폴짝 뛰었다.

“우파루파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을 응원하는 브라질 팬들보다 더 강렬한 함성이 뒤따랐다.

우리는 우파루파의 시대에 살고 있단 걸 보여주려는 듯 환호는 끝나지 않았다.

백설하는 바들바들 떨면서 그걸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마음의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나는, 어째서…….’

소녀연맹은 상을 받은 후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리카가 백설하를 콕콕 찔렀다.

“안 기쁜가요!”

“기뻐, 기쁜데에…….”

대체 ‘우파루파’는 언제까지 백설하를 따라다닐 것인가. 이러다가 대표곡이 ‘애플 크러쉬’가 아니라 ‘우파루파’로 바뀌어버리겠다.

대체 우파루파가 뭐기에…….

우파루파 잠옷을 입고 폴짝폴짝 뛰는 게 그렇게나 좋은 건가? 대체 왜애…….

“와.”

다음 순서는 놀라웠다.

HPT 뮤직 어워드는 이번에 홍콩에서 진행된 만큼, 꽤 국제적인 스케일을 자랑했다.

바로 아시아 각국의 아티스트들을 초청하여 상을 주는 것이다. 그중엔 당연히 일본도 있었고, 무려 초청된 사람이…….

[후나비키 세이코, 베스트 아티스트 인 재팬 프롬 디스 이어(Best artist in japan from this year)!]

세이코는 무대 위에 올라 ‘페이디드 러브’를 불렀다.

‘페이디드 러브’가 수록된 세이코의 앨범은 올해 판매량 200만 장을 달성했다. 전 세계 4위의 성적으로, 글로벌적인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판매량 대부분은 일본에서 나왔기에, 세계적인 판매량과는 다르게 인지도 자체는 낮았다.

“노래 잘 부르네. 저 사람 가수 맞긴 한 하양 언니 표정 펴요. 카메라가 찍으면 어쩌려고요.”

“표정 펴고 있어.”

“아니, 무표정이라고 다 같은 무표정이 아니잖아요.”

세이코의 무대는 그 발성만으로도 좌중을 휘어잡았다.

비록 일본어라 가사는 전해지지 못했고, 관객 대부분이 케이팝 팬이라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그래도 정상급 무대란 데는 이견이 없었다.

세이코는 상을 받곤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머으, 먼저 이 상을 주신 HPT 뮤지크 어워드…….]

그녀는 무려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소녀연맹 멤버들은 다 깜짝 놀랐다.

“뭔데, 한국어 연습해온 거야? 대단하 아니 하양 언니 표정 펴라니까요.”

“폈다니까.”

“펴긴 폈는데 좀 무서워요.”

“저 노래 가사가 기분 나빠.”

“그냥 이별 노래 아녜요?”

세이코는 우아한 몸짓으로 무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오면서 관객석 쪽을 두리번거렸다.

세이코는 소녀연맹 멤버들을 찾아내곤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다른 멤버들도 그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세이코는 소녀연맹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자 아예 대기석으로 걸어갔다.

아이돌들은 ‘재팬 베스트 아티스트’라는 세이코가 다가오자 가볍게 묵례했다.

세이코는 그간 사회성을 좀 길렀는지 아이돌들의 인사에 마찬가지로 묵례해주며 소녀연맹에게로 다가갔.

다가가려고 했는데 장하양의 얼굴을 보곤 홱 돌아섰다. 마치 패션쇼에서 모델이 런웨이 끝을 찍고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뭐야. 왜 저런대.”

“아하하, 그러게.”

시상식은 3부에 들어섰다.

모든 대상 격 시상이 몰려 있는 순서이다.

분위기가 슬슬 풀렸다.

다들 결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조아라는 앞으로 펼쳐질 일을 점쳐보았다.

‘HPT는 대상 쪼개기로 유명하지.’

한 아티스트에게 몰아주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일단은.

‘WTP 선배님들이 받을 거야.’

WTP는 올해 미국에서 싱글 곡 위주의 활동을 펼쳤다. 미국 가수들의 활동 전략을 모방하여, 아예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그들은 올해 말, 그리고 내년 초의 미국 시상식에서 입지전적인 성과를 낼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들을 초청한 HPT 뮤직 어워드도 그와 급을 맞춰야 한다.

가장 영예로운 상을 그들에게 줄 것이다.

‘올해의 아티스트상.’

HPT 뮤직 어워드는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직접적으로 ‘대상’으로 명시한다. 이 시상식에 한해서만큼은 대상 격(格)이 아니라 진실로 대상이다.

WTP는 미국을 공략한 싱글 위주의 전략을 펼쳤다. 아직 그 싱글들을 모은 앨범은 발매하지 않았다. 앨범 수록곡을 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앨범상은 다른 그룹이 받을 것이다.

‘아마 라이츠 선배님들.’

초동 판매량 190만 장을 달성한 YJS 엔터의 보이그룹이다. 누가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없다고 했던가? 그들은 올해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는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대상 격, ‘올해의 음악상’이다.

그건…….

[‘올해의 음악’!]

올해 차트를 휩쓸다시피 한 곡.

한국 아이돌 음악 역사상 사례가 극히 희귀한 ‘3개월 이상 월간 차트 1위’를 달성한 곡.

대중성의 정점.

[케이어스의 ‘I Want You’입니다!]

조아라와 소녀연맹 멤버들은 기다렸단 듯 박수를 쳤다.

옆자리의 케이어스 멤버들도 기다렸단 듯 일어나 무대 위로 향했다.

‘베스트 퍼포먼스’ 때는 케이어스가 소녀연맹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가 됐다.

소녀연맹이 케이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백설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따라잡았다고 생각하면…….”

“저 멀리 가 있네요.”

조아라가 씁쓸하게 답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다.

생각만큼 쓰리진 않다.

“시작점이 다른 것뿐이에요.”

이른바 뱁새와 황새의 차이다.

이만큼 따라잡은 것도 잘했다. 물론, 소녀연맹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결승점은, 우리가 더 빨리 도착할 거니까요. 아니, 우리가 더 멀리 나갈 거예요.”

“……응.”

사방이 케이어스의 ‘IWY’로 가득 찼다.

듣기만 해도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중독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다.

케이어스 멤버들이 사랑이란 주제를 정하고 진소유가 작사를 맡았다고 하던가.

이게 케이어스 멤버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이다. 케이어스는 그녀들이 표현하는 사랑으로 저 자리에 올랐다.

[네.]

마이크를 쥔 에리카가 만인을 향해 미소를 띠었다.

[케이어스입니다.]

케이어스, 대상 격.

올해의 음악상 수상.

* * *

성필은 무대 위의 케이어스를 바라보았다.

‘IWY’가 낮은 음량으로 배경을 장식했다.

성필은 그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IWY’의 멜로디였지만 ‘IWY’의 멜로디가 아니었다.

성필은 전생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저희에겐 과분한 상입니다.]

전생에서 케이어스는 이 멜로디로 청춘의 자의식을 표현했었다. 그녀들만의 언어로 그녀들만이 할 수 있던 것을 노래했었다.

[저흰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어찌 보면 뒤틀린 미래였다.

동시에 바르게 된 미래였다.

성필이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현재로 가져온 미래이자 현재였다.

[더 열심히 하라는 팬분들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게다가 이 멜로디, ‘IWY’는 전생보다 훨씬 큰 성공을 구가하고 있다.

원래 사라졌어야 할 곡은, 성필의 노력으로 현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뻐해야 한다.

성필은 이 모습을 보기 위하여 그토록 노력했던 것 아닌가.

케이어스를 원래 있어야 할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성필은 필사적으로 사라진 에리카를 뒤쫓았었다.

그건 올바른 미래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성필이 뒤틀어버린…….

[우리 ‘유스’들.]

성필이 망가뜨린, 케이어스가 정점으로 가야 할 미래.

성필은 다시 그녀들을 정점의 위치로 돌려놓았다. 그가 이룬 업적이었다.

기뻐해야 한다.

[사랑해요.]

기뻐해야 하지만,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다.

소녀연맹보다 빠르게 대상을 얻은 케이어스. 사실상 아티스트로서 최고의 커리어에 도달한 케이어스다.

‘……아니.’

성필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을 그대로 두었다.

이건 당연한 감정이다.

성필은 케이어스의 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녀연맹의 프로듀서이니까.

이 불쾌함은 ‘케이어스를 그대로 놔뒀어야 했다’란 마음이 아니다.

한 그룹의 프로듀서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감정이다.

‘다음은 우리다.’

프로듀서는 그 그룹 최초의 팬이다.

누구보다 자신이 맡은 그룹을 응원한다.

그룹이 정상에 서길 염원한다.

성필은 소녀연맹이 정점에 오르길 바란다.

‘우리 애들도…….’

저곳에 설 자격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년에, 아니면 내후년에.

‘케이어스보다 훨씬 더 높은 곳 선다.’

성필은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을 한 번에 품었다.

팬으로서 케이어스의 성공을 축하하고, 프로듀서로서 소녀연맹이 케이어스를 전복하길 소원한다.

성필은 생각을 정리하곤 케이어스에게 박수를 보냈다.

올해 최고의 걸그룹을 향해.

그리고 언젠가 소녀연맹이 꺾을 걸그룹을 향해.

* * *

‘예상했던 거야.’

백설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올해의 음악상’을 받는 케이어스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었다.

언제나 케이어스를 따라잡길 염원했던 그녀들이다. 그런데 마침내 케이어스가 정상에 서는 것을 보니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예상했던 일.’

예상했다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아쉬워.’

하지만 아쉬울 뿐이다.

백설하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열등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그러했다. 그녀들은 케이어스를 향한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우리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케이어스는 대형 기획사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고작 3년 만에 따라잡는단 건 너무나 꿈 같은 소리다.

성필이 말했었다.

‘성공엔 시간이 걸려.’

당연한 진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자주 까먹곤 한다.

새해에 다이어트나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곧 그만둔다. 고작 몇 개월 투자했으면서, 머릿속에 그린 이상적인 자신처럼 되지 않았다며 포기한다.

마음먹고 외국어를 공부하겠단 사람은, 단시간 내에 실력이 늘지 않아 짜증 내면서 그만둔다.

다들 빠르고 즉각적인 성공을 바란다.

그러니 자신에게 실망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과 승리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해.’

조급함을 버리고, 열등감을 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시간과 함께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빛나는 성공 아래에 감춰진 노력을 어둠 속에서 조금씩 쌓아간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게 그거니까.’

케이어스가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백설하는 에리카를 보면서 말했다.

“축하해.”

“고마워요, 언니.”

“대단하다.”

“아뇨.”

에리카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언니한테 대단하단 말을 들으려면, 단 한 곳에서라도 져선 안 됐어요.”

“……으, 응?”

“만약 저희가 가로 엔터에 있었고, 언니네가 KS 엔터에 있었다면 결과는 정반대였을 테니까요.”

백설하는 에리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요컨대…….

“회사 덕분…… 이라고?”

“저희가 대단하다면, 저희가 더 위라면, 어느 곳에서도 져선 안 됐어요. 출발선이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대단하단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축하로 충분해요. 진짜 대단한 건…….”

인간 개인으로 치자면.

“프로듀싱을 직접 한 언니랑 아라 씨니까요. 그러니까 축하는 받을지언정 대단하단 칭찬은 받고 싶지 않아요.”

백설하는 물론 소녀연맹 멤버들도 에리카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회사 덕분에 대상을 받은 거다’라고 말하는 것 같긴 한데, 솔직히 너무 겸손 차리는 듯하다.

겸손이 과해서 얼굴이 찌푸려질 지경이다. 그냥 시원하게 ‘저희 대단하죠?’라고 말하는 게 나을 텐데. 에리카 나름의 인성질인가.

“언젠가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볼 때가 오길 바라요.”

“……으응.”

그래도, 이렇게 인정해주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할 건…….”

백설하는 에리카의 인정을 체면치레로 되돌려주려 했다. 그때 에리카가 고개를 저었다.

“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응?”

한 아티스트의 무대가 끝나고 스크린 화면이 번쩍였다.

또 수상 시간이었다.

대상 순서가 끝났는데, 또 수상자가 있나?

소녀연맹이 받은 건 공연 순서뿐이다. 그 공연 사이에 어떤 상이 있는지는 전달받지 못했다.

스크린에 뜬 글자는…….

“스태프……?”

뒤에서 아이돌을 지원하는 모든 이들.

그들을 일컬어 스태프라고 한다.

매니저부터 프로듀서까지 여러 인원을 포함한다. 하지만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스태프라고 하면…….

[올해의 아트 디렉터.]

아이돌 프로듀싱에 관여한 자들을 뜻한다.

[윤희연, 케이어스 ‘넥타르’]

스태프들은 직접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올해의 사운드 엔지니어.]

스크린 영상으로만 빠르게 지나갈 뿐이다. 이곳은 음악 시상식인 동시에 케이팝 콘서트이니까

[강동현, 케이어스 ‘넥타르’.]

HPT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 추가된 수상 목록이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영감을 받아, 케이팝 일선에서 활동하는 스태프들을 치하하기 위해 만든 상들.

[올해의 작곡가.]

여러 이름들이 지나갔다.

그중엔 유독 KS 엔터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 소녀연맹의 눈엔 ‘케이어스’란 이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KS 엔터의 비중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

[정호환, 케이어스 ‘IWY’.]

다른 기획사, 주로 대형 기획사 스태프들과 프로듀서의 이름들이 있긴 했다.

가로 엔터의 이름은 없었다.

정확히는, 가로 엔터 정직원의 이름은 없었다.

[올해의 안무가

서유선, ‘오토마타’.]

가로 엔터 중 수상 스태프난(欄)을 채운 건 현재 일본에 있는 서유선뿐이었다.

소녀연맹은 그 이름을 보자 반가운 동시에 기대하게 됐다.

어쩌면 저 중 하나에 성필의 이름이 걸릴지도 모른다.

[올해의 프로듀서]

그래, 올해의 프로듀서 같은 것 말이다.

그 단어를 보자 멤버들의 심장이 동시에 쿵쾅거렸다. 하지만.

[윤상열, 앨범 ‘그래피티’]

성필의 이름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올해의 총괄 프로듀서.]

마지막 순서가 됐다.

본인 기획사 스태프의 이름이 나온 그룹들은 전부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소녀연맹도 서유선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다.

허전하기에 기대하게 됐다.

총괄 프로듀서. 성필의 직함이다.

‘제발.’

백설하는 기도했다.

그때였다.

지금만 해도 꽤 많은 수가 일어났건만, 곧이어 그들을 전부 압도하는 숫자가 몸을 일으켰다.

대기석으로부터 수십 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KS 엔터 소속 아이돌과 아티스트 전원이.

PTR―17, 븨이에스, 부테스, 다키스트의 멤버 둘, 몇 명의 유명 솔로 아티스트들, 그리고 케이어스까지.

[올해의 총괄 프로듀서

(Executive producer of the year)

정호환]

그 이름이 나오자 KS 엔터의 아이돌과 아티스트들 수십 명이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보셨죠.”

수십 명의 박수 소리 안에서 에리카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데, 제가 어떻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겠어요.”

백설하는 멍했다.

에리카의 목소리가 박수에 묻혀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먹먹하다.

심장의 고동이 너무 커서,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듯하다.

아닌가.

KS 엔터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너무 큰 건가.

모르겠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

박수 세례 속에서, 백설하는 입만 뻐끔거렸다. 그리고 그녀를 대신하듯 조아라가 얼이 빠진 목소리를 냈다.

“아저씨는……?”

우리들의 프로듀서.

“에, 이사님, 은……?”

우리들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우리의.

“박, 이사님…….”

우리의 프로듀서, 성필.

성필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 * *

‘당연하지.’

성필은 수상 목록을 보면서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 아니, 씁쓸하단 감상 자체가 도둑놈 심보일 것이다.

애초에 성필은 저곳에 이름이 걸릴 수 없으니.

성필이 수상자가 된단 건 이런 뜻이다.

‘KS 엔터를 이긴단 거.’

소녀연맹이 케이어스뿐 아니라, KS 엔터의 모든 아이돌을 압도한단 뜻이다.

소녀연맹 홀로 KS 엔터를 넘어선단 것이다.

가로 엔터가 KS 엔터를 꺾는단 뜻.

‘그러니까.’

이건 당연한 일이다.

향후 10년 후에도 성필이 저곳에 이름이 걸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가로 엔터의 차기 보이그룹이 나오고, 걸그룹이 나오고, 또 보이그룹이 나올 시기가 되어서도.

‘당연한 거야.’

성필은 결코 쓰러지지 않을 우상에게 후련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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