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화
신아름은 성필과 마주 보았다.
둘은 가로 엔터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신아름은 성필의 코트 여기저기를 정성스레 손으로 털어주었다.
“팀장님, 빌리 아일리시 알죠?”
“알지.”
“빌리 아일리시가 일부러 펑퍼짐한 옷만 입는 건요?”
“알아.”
“왜 그런지도요?”
“……응.”
빌리 아일리시는 미국 Z세대의 상징이다. 아니, 어쩌면 전 세계의 Z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일지도 모른다.
뉴미디어와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기 전, 세계 각국의 세대가 갖는 경험은 천차만별이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한국, 일본, 미국, 유럽의 젊은 세대들은 같은 시기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전방위적인 반체제, 반국가 투쟁을 펼쳤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궁핍한 삶을 살았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경직되고 부패한 전후 체제에 불만을 품고 68년의 혁명을 기다렸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권위주의, 인종차별 철폐,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고, 동시에 찬란한 경제 성장의 과실을 퇴폐적으로 누렸다.
이렇듯 같은 시대의 같은 세대이지만, 서로의 경험과 가치관이 완전히 다르다.
“빌리 아일리시는, 누가 자기 몸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길 원하지 않아서 펑퍼짐한 옷을 입지…….”
하지만 흔히 Z세대라고 불리는 현재의 젊은 세대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시대, 같은 세대, 그리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
뉴미디어의 발전과 인터넷으로 인한 세계 각국의 즉각적 문화접촉,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기에 현대의 팝스타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스타이고, 현대의 아이콘은 글로벌한 아이콘일 수 있는 것이다.
빌리 아일리시가 Z세대의 상징이라고 불린다는 건, 그녀의 가치관이 곧 지구의 젊은 세대를 일정 부분 대변한다는 의미였다.
“누가 자기를 마음대로 판단하는 게 싫어서…….”
“맞아요.”
하지만, 신아름은 그런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빌리 아일리시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
“팀장님도 좀 그래야 해요.”
신아름은 그냥 성필이 달라붙는 옷을 입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뭐예요 이게. 남사스럽게.”
“내 사이즈에 맞는 옷인데…….”
성필은 털스웨터에 코트 차림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몸매가 완전히 덮이지 않았다. 근육이 옷을 뚫고 나올 듯했다.
“더 큰 걸로 입어요. 팀장님 프리하게 입는 것도 멋지니까요.”
“너 진심으로 설하가 나한테 유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몸만으로?”
“굳이 쌤을 콕 찝어서 말하는 거 아녜요. 팀장님 몸만 보고 접근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팀장님이 그런 관계 때문에 상처받으면 어떡해요? 뱀 같은 여자한테 넘어가면?”
“아름아, 내가 몇 살인데 그렇겠어.”
“팀장님 저희 7년 활동 끝낼 때까지 연애 안 한다면서요.”
그렇다.
성필은 장하양과 맹약(盟約)을 맺었다.
“그랬지.”
“자, 제가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해드릴게요. 예를 들어 쌤이 연애를 안 한다고 했다고 쳐요.”
“응.”
“근데 킬힐에 데니아 20짜리 스타킹, 망사 바디수트 위에 핫팬츠랑 크롭티, 거기에 엄청 얇은 코트를 매일 입고 온다고 생각해봐요.”
성필은 상상했다.
“상상하지 말고 대답을 하라구요!”
“어…… 아름아 너 되게 패션 감각이 있구나?”
신아름은 패션 잡지를 챙겨 보며, 스타일리스트와 모델들의 계정을 잔뜩 팔로우해 둔다. 명품에도 관심이 많아 카탈로그를 자주 본다.
그 때문일까, 그녀가 떠올린 복장은 아이돌 무대 의상으로 손색이 없다 못해 매우 적절했다. 이유이와 자주 시간을 보냈던 것도 도움이 됐으리라.
“컬러 배치는 어떻게 할…….”
“대답해요!”
“지, 진의를 의심하겠지!”
‘저 연애 안 해요’라고 하는데, 백설하가 매일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닌다면 당연히 의심하지.
어쩌면 ‘연애를 안 한다고 했지 육체적 관계를 안 맺겠단 뜻은 아닌데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상상만 해도 눈물로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쓸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건 정위전해(精衛塡海, 정위가 바다를 메우다, 불가능한 일을 뜻함)일 것이다. 성필의 눈물 따위로는 백설하의 자유분방함을 막을 수 없겠지…….
“하지만, 난 설하처럼 헐벗고(백설하는 헐벗은 적 없음) 안 다니잖아…….”
“팀장님, 패션계에 이런 말이 있어요. 여자는 벗을수록, 남자는 입을수록 아름답다고요. 남녀의 패션은 아주 달라요. 그러니까 팀장님은 상상 속의 설하 쌤 같은 거라구요. 남자는 두껍게 입었는데도 몸매가 드러나는 게 더 섹시해요.”
“섹시, 라니.”
성필은 진실을 깨달은 오이디푸스(아내가 어머니인 것을 알고 스스로 눈을 찌른 신화 속 인물)처럼 경악을 가득 담아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름이 너 나한테 섹슈얼리티를 느껴?”
신아름은 대답 대신 성필의 뒤를 가리켰다.
한구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깔끔한 세미 정장 차림이었다. 회사 안은 따뜻해서 굳이 정장을 풀로 입을 필요가 없었다.
슬랙스에 와이셔츠 차림인데도 남성미가 가득했다. 반짝반짝 닦여 빛을 발하는 구두마저도 섹시하다.
“저는 팀장님이 약속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분이란 거 알아요. 그 약속을 지키게 도와드리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남사스러운 옷 입고 오지 마세요.”
“알겠어…….”
신아름이 헐벗은 백설하의 비유(헐벗은 적 없다)와 한구인의 예시를 들자, 성필은 반박 한 줄 하지 못하고 수긍했다.
복장까지 간섭받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기엔 성필도 전적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있던 일로는, 이유이가 신아름에게 입히려던 라틴 무용복을 거부했던 게 있다.
현재의 신아름이 그때의 성필과 같은 심정이 아닐는지.
“착해요 우리 팀장님.”
신아름은 잘했단 듯 성필의 어깨를 쓸어주었다.
“그럼 파이팅! 잘하고 오세요!”
신아름은 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며 성필을 배웅해주었다. 마치 성필이 빨리 어딘가로 가버리길 바라는 듯했다.
성필은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신아름이 했던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여자들 때문에?
성필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야 뭐어…… 내가 좀 생기긴 했지.’
의외로 성필은 자존감이 높다.
그리고 남들에겐 못 할 말이지만, 그러한 자존감은 전생 덕분이다. 전생의 조아라 덕분 말이다.
‘내가 좀? 여자들한테? 먹히긴 하니까? 조심을? 해야겠지? 그럼 그럼.’
누가 보았다면 기분 나쁘다고 할 만한 음흉한 웃음을 자꾸만 흘리며, 성필은 차 안에 탔다.
수년 넘게 그와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중고차였다. 옛날에 ‘핑핑이’인지 ‘콩콩이’인지, 이름도 지어줬던 것 같은데 잊어버렸다.
“…….”
이런 차를 몰고 다니는데 여자가 꼬이긴 개뿔.
성필은 갑자기 현실 인식이 됐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다운돼서 힘없이 시동을 걸었다.
‘전세이긴 해도 서울에 살고…… 연식 오래된 중고이긴 하지만 자차도 있고…… 유망한 엔터 이사고…….’
이 정도면 결혼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편이겠지. 물론 그건 동년배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전에 리조트에서 장하양의 로맨스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로맨스 소설엔 어린 여자가 중년 남자를 사랑하는 구도가 많이 나온다고 하던가.
그 이유는 중년 남자가 지니는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정말 소설 같은 얘기네.’
성필은 느긋하게 액셀을 밟았다.
당연하지만 소설은 소설이기에 재밌고 아름답다. 현실과 허구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세계에선 그런 이야기도 있겠지.
하지만 성필이 파악하기에, 현실의 사람들은 완벽함을 좋아한다.
완벽한 재산, 완벽한 커리어, 완벽한 외모.
불완전함이란 건 그다지 큰 경쟁력이 아니다.
성필은 불안정한 재산, 불안정한 커리어, 불안정한…… 아니, 그가 생각하기로 조금 먹어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신아름이 걱정하는 만큼 매력적인 인간은 아닐 것이다.
‘세이코 씨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이런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자신이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던 여자가 있다.
세이코다.
‘지금쯤이면 나를 잊으셨을까. 아니면 몇 개월 후나, 몇 년 후.’
과거에 그녀가 했던 말처럼, 어느 날 집에 찾아갔더니 꽃미남 밴드맨 여러 명과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성필은, 어느 순간 기묘한 감상을 지녔다.
‘뭔가…….’
불안함이 없다.
옛날에 성필은 멤버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도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큰 것이라고. 집으로 돌아가면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하게 지내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느냐고.
그렇게나 큰 결심이었으니, 이 일로 놀리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그때는 정말 속상하고 억울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결혼이니 연애니, 그런 걸 떠올려도 불안함이 없다. 오히려 꼭 필요한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음.”
신호에 걸렸다.
성필은 창턱에 팔을 괴고 창밖을 보았다.
눈이 올듯한 날씨다. 구름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눈 묻은 어깨를 털던 한구인이 떠오른다.
상념이 이렇게나 사소한 부분에 닿을 정도로, 성필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와는 아주 달랐다.
‘남성 호르몬이 적어졌나?’
아니면.
‘프로이트적 해석은 안 좋아하지만…….’
성필의 무의식은 이미 생의 업적을 달성했노라고 느끼는 걸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동기가 리비도라고 했다.
건물을 세우고, 정치를 하고, 글을 쓰고, 항공사 VIP가 되어 비행기 꼬리에 이름을 새기려고 하는, 그런 모든 행동이 성욕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그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DNA를 남기려는 의도와 닮았다.
중세 수도사들이 혼신을 기울여 금박 입힌 성경을 필사하듯이, 교회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한땀 한땀 조각했듯이.
성필은 문화라는 거대한 강에 자신의 흔적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걸로 됐다고…… 이만하면 만족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연애나 결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솟아 나왔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성필은 액셀을 지그시 밟았다.
‘아냐.’
성필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소녀연맹은 아직 최고라고 불리지 않는다.
가로 엔터는 아직 작은 회사일 뿐이다.
그제야 성필은 자신의 변화가 무엇 때문에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으니까.’
최고의 아이돌을 만든단 꿈은 이제 지척으로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에 있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다.
돌려선 안 된다.
과거의 성필이 연애나 결혼 문제로 불안했던 건, 다르게 말하면 도망칠 장소가 필요했단 것이었다.
‘내가 최고의 아이돌을 프로듀싱하지 못했을 때,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것, 내가 도망칠 장소가 필요했으니까…….’
이른바 인생의 두 번째 해답을 마련하려는 충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손에 잡을 수 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손에 들어온다.
전생부터 현재까지 꿈으로만 그려왔던 것이.
‘최고의 아이돌.’
그리고, 멤버들과 약속했던 또 다른 꿈.
‘최고의 프로듀서.’
성필은 주차한 후 차 밖으로 나왔다.
흐린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옐로 서브마린 엔터 근처에 있는 한적한 카페였다.
오늘 이곳에서 유하음을 만난다.
오늘의 만남은 가로 엔터가 정상으로 이어지기 위한 한 발자국이고, 성필이 최고의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이다.
운전할 때 머릿속을 흐려두었던 쓸데없는 고민은 전부 사라졌다.
이제 그의 가슴을 채운 건 정상을 향한 열망뿐이었다.
성필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어, 왔냐.”
먼저 온 유하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정신을 차리니 유하음과 술을 먹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온 초반부에는 그럭저럭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었다.
‘너희 회사 괜찮아?’
유하음도 가로 엔터가 옐로 서브마린을 삼킬 거란 사실을 들었으리라.
그랬기에 만나자고 연락을 보낸 지 몇 분 만에 바로 OK 사인이 돌아왔던 거겠지.
그렇게 성필이 조심스레 운을 떼자, 펼쳐진 건 하소연 파티였다.
‘우리 애들 진짜 열심히 했어.’
회사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웨이퍼센트 5년간의 여정이 성필의 앞에 쫙 펼쳐졌다.
유하음은 ‘너 오늘 잘 걸렸다’는 듯 한시도 쉬지 않고 웨이퍼센트의 열정을 노래했다. 그리고 회사의 가혹한 스케줄링까지.
그걸 듣는 성필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했다. 아이돌도 비즈니스이므로, 수익을 최대한으로 뽑아먹으려면 아이돌을 갈아 넣어야 한다.
웨이퍼센트는 5년간 맷돌에 갈려왔다.
성필은 유하음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내심 마음에 걸렸다.
‘하음이네 회사 사정이 안 좋단 건 알겠지만, 그게 회사를 시원하게 팔아버릴 이유는 아닐 텐데?’
요약하면 신대영은 이런 인물이었다.
그는 회사의 대표이자 여러 입을 책임지는 경영인답게, 회사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웨이퍼센트를 맷돌에 넣어 갈아버리고.
‘회사가 어렵다’면서 직원들에게 야근 강요, 월급 인하 수십 차례 시도.
‘회사가 너무 어렵다’면서 직원들에게 주말 반납 강요, 월급 대폭 인하 수차례 시도.
대충 그랬다.
‘그런데 이건 뭐, 중소기업 일상이고…….’
모든 게 부정확한 엔터테인먼트사(社)는 이러한 중소기업의 악폐습이 극대화되는 경우가 많다.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고, 연예인의 일이란 게 주말 평일 가리지 않기에, 자연스레 직원들의 업무 패턴도 개판이 난다.
아마 직업 만족도가 가장 낮은 업계 중 하나가 엔터계일 것이다. 물론 엔터 직원뿐 아니라 아이돌도 포함해서 그렇다.
‘이 정도로 사람 갈아대면 수익은 날 텐데.’
유지성이란 배우를 영입한 게 그 증거였다.
소녀연맹이 데뷔하기 전, 유하음은 웨이퍼센트 외에도 유지성이란 배우의 1일 로드매니저를 뛰어달라고 부탁했었다.
덕분에 나석문 PD와도 인연이 트여 백설하가 ‘음악을 위한 동행’에 나갈 수 있기도 했었다.
유지성은 옐로 서브마린 엔터가 영입할 정도로 급이 낮은 배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영입했다면, 계약금을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으로 퍼부었단 뜻이다.
이에 관한 것을 묻자, 예상했던 답이 돌아왔다.
‘그치. 유명 배우 영입하는 게 회사 이름값 올리는 고전적인 수법이잖아. 결과는…… 알지?’
계약금만 버렸다.
웨이퍼센트 멤버들이 온 힘을 다해 벌어온 회사 자본금 약 십억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옐로 서브마린 엔터는 아이돌도 제대로 못 굴리면서 배우를 맡았던 것이다. 유명 배우라는 유지성을 영입하고도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를 제공하지 못했다.
성필은 웨이퍼센트 막내 유빈을 떠올렸다.
‘안녕하세요오! 발랄한 유빈이에요오!’
매일 면도 안 하면 수염 자국이 나는 20대 남자애가 상큼발랄 컨셉을 지키면서까지 벌어온 돈을 그토록 허무하게…….
아무튼, 유하음의 하소연 파티 다음은 술자리였다. 둘은 육회 집에 가서 불콰하게 취했다.
어느새 일 이야기는 뒷전이었다.
취하고 해도 상관없단 듯 술을 들이부었고, 일 얘기보다는 오랜 기간 쌓아온 우정만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야 성필아, 담배 피러 가자.”
“나 끊었다니까.”
“맞다. 근데 진짜야? 너네 리카 때문에 끊었단 거? 그게 가능해? 무슨 애인도 아니고 회사 아이돌이 끊으라고 끊는단 게?”
“다 그 말 하네. 나랑 리카는 그냥 그저 그런 아이돌과 프로듀서 사이가 아니야.”
“이거 미친 도둑놈 아니야?!”
“아니, 친구라고.”
“친구?”
“못 믿겠지만 사실이야. 우정으로는 너한테도 안 밀려. 같이 실버타운에 들어가기로 약속도 했어.”
“뭔 그따위 약속을 해.”
“우리 우정을 모욕하지 마!”
유하음은 끅끅 웃으면서 손에 쥔 담뱃갑을 바라보았다.
“야. 여기 적혀 있는 거 있잖아. ‘흡연은 발기부전의 원인이 됩니다’ 이거. 나 안 믿었거든? 근데 진짜인 거 같아.”
“담배가 아니라 네 나이가 문제 아닐까? 우린 이제 10대도, 하물며 20대도 아니잖아…….”
“너도 그래?”
“난 아직…… 괜찮아…… 괜찮은 거 같아…….”
몇 년 동안 쓴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성필의 30대는 여자와 인연 하나 없는 세월의 연속이었다.
“내가 영양제 하나 소개해줄게. 아르기닌이라고, 너 카사노바 알지? 걔가 굴을 하루에 50개 먹었대. 근데 굴 100개 치 영양소가 거기 들어 있대.”
“뭔, 그거 무슨 처방 받아야 살 수 있는 약 같은 거야? 치료제? 나 그 정도론 안 절박해!”
“내가 영양제라고 했잖아. 비타민 같은 거야.”
“내가 그거 먹어서 뭐 하겠냐.”
성필은 유하음이 시킨 복분자주를 마셨다.
“아니 아니, 이게 운동에도 도움 돼. 스태미나를 높여주거든. 나도 그거 먹고 나서 운전할 때 잘 안 졸리더라.”
“아, 진짜?”
성필은 곧바로 폰을 꺼내어 배달 주문을 넣었다.
홍규헌, 한구인과 했던 바디프로필 약속은 성필을 충실한 헬창인생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권강철 트레이너의 혹독하고도 즐거운 PT가 큰 도움을 주었다.
“너 그거 먹고 잠 안 온다면서 나한테 하소연하지 마라. 네 몸 만들어서 뭐 해? 좀 쓰고 다녀. 무덤 들어가면 썩어 없어질 거.”
유하음이 앉은 채로 허리를 튕겼다.
성필이 혐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웃었다.
“넌 옛날부터 음담패설이 끊이질 않네. 그 나이 먹고도.”
“그러는 넌 옛날부터 선비 같네. 섹드립 하나 안 치고.”
“난 말하는 것보다 하는 걸 좋아하거든.”
유하음이 ‘미친놈!’이라며 크게 웃었다. 성필도 흥에 겨워 이야기를 이었다.
“꼭 능력 없는 애들이 말만 겁나게 하지. 인터넷에 천박한 글이나 쓰고. 너처럼, 아니야?”
“응 능력 없는 나는 결혼해서 잘 사는데 넌 7년째 솔로죠? 애인 없죠? 결혼 못 했죠? 천사 같은 딸 없죠?”
“부럽다 임마.”
“스읍, 하아…….”
유하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숨에서 취기가 느껴졌다. 눈도 처음 봤을 때보다 게슴츠레 변했다.
유하음은 손에 쥔 담뱃갑을 바라보다가 꽉 쥐었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흡연 좀.”
“나도 갈게.”
“한 개비 달라고 하게? 안 줘 새끼야.”
“달라고 안 해.”
둘은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가게 옆에 흡연구역이 있었다.
둘은 재떨이 앞에 섰다. 유하음은 굵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 그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밖은 추웠다.
곧 담뱃불이 그의 얼굴을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민정 씨는.”
유하음은 조아라의 선생님이자, 가로 엔터와 여러 번 협업한 안무가인 백민정을 언급했다.
“민정 씨랑은, 요즘도 잘 지내?”
“응. 넌 민정이한테 시안비 잘 주고 있어?”
“그때 이후로 안 맡겼지 쪽팔려서.”
유하음이 프흐흐 웃었다.
그리고 또 연기 한 모금.
성필은 그의 담배가 절반쯤 타들어 가자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희 회사 인수하려는 건 알지?”
“알지, 알아. 알아서 너 오늘 만났지.”
“네가 힘들다고 했잖아. 웨이퍼센트가 우리 회사로 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러냐.”
“그러니까, 그 일이 부드럽게 흘러가려면 네가 도와줘야 해. 신 대표님이 왜 회사를 팔려는 거야? 반응이 너무 극적으로 긍정적이던데?”
유하음은 입에 담배를 물고 성필을 물끄러미 보았다.
“너는.”
그가 바보처럼 짧게 웃었다.
“좋겠다. 소녀연맹이 있어서.”
“……뭐?”
“소녀연맹이 네 담당이라서 좋겠다고.”
유하음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그것을 눈앞에서 천천히 돌려보았다.
“넌 내가…… 얼마나 좆같은 기분인지 모를 거야. 모르겠지, 당연히 모르겠지. 대단하신 프로듀서님이…….”
“너 왜 그래 갑자기.”
유하음은 담뱃불 너머로 성필을 보았다.
성필은 그의 눈에 맺힌 게 질투인가 의심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프다는데, 꼬꼬마 매니저일 때부터 친분을 나누었던 친구가 프로듀서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평소엔 웃는 낯이었어도, 술을 마시자 본심이 나올 수도 있다.
성필은 그가 실수하기 전에 물러나려고 했다.
“대리 부를까?”
“매일…… 매일…….”
유하음은 답 없이 자신이 할 말만 했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하루하루 살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
“…….”
“내 인생은…… 아니, 우리 애들, 웨이퍼센트 애들……. 우리 애들의 인생은 변하지가 않아.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웨이퍼센트에겐 ‘10만 장벽’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들은 활동 5년 차에 들어서고도, 아주 과거에 세웠던 기록인 초동판매량 10만 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입덕도 탈덕도 거의 없는 그룹, 이라고 불린다.
“그 젊은 애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만 하는 거야. 바뀔 거란 기대도 없이. 차라리 말야, 폭싹 망하기라도 했으면 으쌰으쌰 단합해서 힘이라도 낼 텐데. 우린 그런 게 없어…….”
“…….”
“하루의 목적이 뭔지 알아? 잠이야. 눈 감을 때만 기다리면서 사는 건 말야, 그냥 죽을 날 기다리는 송장이나 다름없잖아.”
변하려고 노력했다.
나아지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는 멤버들의 문제라기보다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웨이퍼센트는 옐로 서브마린 엔터의 역작이었다. 요행과 행운이 쌓여 이룩해낸 성공이었다.
회사는 그걸 지속하고 발전시킬 힘이 없었다.
근본적으로, 프로듀싱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전문적인 A&R 시스템을 확립하지도, 프로듀싱에 관한 청사진을 그리지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정체됐다.
평범한 중소 기획사의 모습이다.
설령 미래를 보는 데다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매니저가 웨이퍼센트에게 붙어도,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리라.
비전을 지닌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으니까.
매니지먼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이돌은 매니지먼트, 프로듀싱, 마케팅, 팬 관리, 콘서트 기획,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가 힘을 합쳐 만들어내는 시너지다.
“시발, ‘펑크 내고 싶은 날’? 장난하냐?”
웨이퍼센트의 타이틀곡 중 하나였다.
“뭔데 펑크 내고 싶은 날이? 뭘 표현하는 건데? 별 시발, 그지 같은…….”
유하음은 급하게 담배를 빨았다.
“넌.”
그리고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내가 얼마나 좆같은 기분인지 모를 거야. 우리 애들, 불쌍한 우리 애들. 이제 2년밖에 안 남았어. 2년 뒤엔 기술이든 지식이든 배우지도 못한 애들이 사회에 그대로 내던져져서, 뭘 하겠어? 심지어 유빈이는 중졸이야. 어떻게든, 어떻게 해서든, 뭘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하음아…….”
“내가 너 부럽다고 한 건, 소녀연맹이 엄청 엄청 성공해서가 아니야. 그 눈. 그 눈이 부러워. 눈에 꿈이 꽉 차 있잖아. 그에 비해 우리 애들은 뭐야? 송장이야, 송장.”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게 있다.
어떤 사람이든 좌절로부터 한 번쯤 일어날 용기는 있다. 혹은 두 번, 세 번.
하지만 그 이상 도전해도 안 된다면, 사람은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웅크리기만 한다. 그걸 남이 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포기란, 현재에 가장 확실히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꿈을 잃은 자들의 눈은 탁해진다.
성필은 이미 옛날에 그런 사람을 본 적 있다.
‘설하.’
처음 만난 백설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뛰어오르기를 거부했다.
바닥에 들이박았던 경험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럴 바에야, 미래에 후회하더라도 안전하게 바닥에 붙어 있길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소녀연맹이 부럽고, 그래서 우리 애들이 불쌍해. 그 애들은 실패도, 성공도, 아무것도 모른 채 송장이 돼서 사회로 갈 거 아냐……. 그리고…….”
유하음은 추위 때문인지 입술을 떨며 말했다.
“나도…….”
탁했던 유하음의 눈이 잠깐이나마 밝아졌다.
그의 눈은 과거를, 빛났던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자신은 너무나 초라했다.
우울증 약을 포함하여 매일 수십 알의 알약을 퍼먹고, 고통스러운 출근길과 퇴근길을 거치고, 억지로 애들 앞에서 밝은 척하며, 집으로 돌아와서도 밝은 척해야만 하는.
그 일상속에서 진짜 자신은 아무 데도 없다.
인간은 인생의 1/3을 꿈속에서, 1/3을 가정에서, 1/3을 직장에서 보낸다.
유하음의 인생 중 1/3은 회색이었다. 잠을 제외한다면, 유하음의 인생 절반은 무채색이었다.
유하음은 힘없이 담배를 떨어뜨렸다.
“이게 뭐냐…… 대체…….”
유하음은 자기 자신을 향해 읊조렸다.
성필은 아까 카페에서 유하음과 대화할 때, 그가 하소연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꾸며낸 익살과 불만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마주하는 유하음이 토하듯이 늘어놓는 것이야말로 진짜 하소연이다. 술기운을 빌려서야 겨우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초라한 삶이다.
“이런 어른이 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술기운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거겠지.
맨정신으로 ‘내 삶은 회색이다’라고 인정하면, 삶을 지탱하던 실이 뚝 끊어질 테니까.
그가 품에 안은 회색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도 바뀔 수 없기에 평생토록 지고 나아가야만 하는 가방이다.
그 가방을 남에게 내보이며, 또한 웃으면서 ‘쓰레기 같네’라곤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진심으로 슬픈 눈을 한 채 ‘쓰레기네’라고 말하면, 과거의 자신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신도, 미래의 자신까지 망가진다.
바꿀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택한 길을 아름답게 꾸며야만 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인 세상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해야만 한다.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도, 내심 그 무의미에 아름다운 의미를 새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게 아닌데…….”
유하음은 자신이 받는 형벌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시시포스였다. 하지만 그건 술의 힘 때문이었다. 내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는 척하면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성필은 문득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백설하였다. 그녀와 춤을 추면서, 그녀를 껴안으면서 느꼈던 체온을 떠올렸다.
성필은 어느새 팔을 펼치고 있었다.
“야.”
그리고 유하음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유하음이 깜짝 놀랐다.
“야, 너 뭐, 미쳤냐?”
“힘들었지? 고생했다.”
성필이 유하음의 등을 약간 거칠게 두드려주었다. 몇 번이고 계속.
밀어내려던 유하음의 손이, 담배를 떨어뜨릴 때처럼 힘없이 늘어졌다.
그는 생각했다. 누군가와 포옹을 해본 게 대체 얼마 만이었는지.
“고생했어.”
흔히 남자는 자라면서 갑옷을 입는다고 한다.
시몬 보부아르가 ‘제3의 성’이란 개념을 찾아낸 이후, 그러니까 ‘사회적 성별’이란 개념을 포착해낸 이후,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별 이상의 역할이 있단 걸 알게 되었다.
사회의 근원적인 존재 목적은 구성원의 생존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집단의 생존률을 올리기 위하여, 인간의 성별에 따라 역할을 부여했다.
여자에게는 코르셋을 입히고, 남자에게는 갑옷을 입혔다.
남자는 투구로 얼굴을 감추어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됐다. 갑옷을 입고 두려움에서 비롯된 떨림을 감추어야만 했다. 검을 들고 용기를 쥐어 짜내야 했다.
친구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신화 속 영웅들이 그러하듯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역사 속 위인들이 그러하듯이, 남자는 강인해야만 했다.
중세의 남자아이는 황금옥좌에 앉은 샤를마뉴와 12기사의 이야기를 흠모하며, 기사가 된 자신을 상상했다.
근대의 남자아이는 나뭇가지를 들고 병정놀이를 하며, 장군이 된 자신을 상상했다.
현대의 남자아이는 모니터 안에서 적을 싸우며, 동료들의 찬사를 기대하고 멋지게 활약하는 자신을 그린다.
강함은 미덕이고, 눈물은 죄악이었다.
“아…….”
유하음은 죄악을 흘렸다.
친구의 포옹에, 오랜만에 느끼는 인간의 온기에, 그는 갑옷과 투구를 벗었다.
마침내 검을 내려놓았다.
그는 남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슬픔과 고통을 드러냈다.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둘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럴수록 성필은 ‘고생했다’는 말을 크게 하며, 그의 등을 더욱 강하게 두드리고 쓸어주었다.
이윽고 유하음이 말다운 말을 꺼냈다.
“하, 이거, 말하면 대표가 지랄할 텐데……. 그냥, 모른 척할까도 고민했는데…….”
그래도 친구한테 그럴 순 없지.
“나는…….”
유하음은 여전히 흐느꼈다.
“도저히, 애들한테 말을 못 하겠더라고…….”
근데.
할 수만 있다면.
“네가 대신…… 설득해줄래……?”
그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이 있을 수 있단 걸 가르쳐줘.
* * *
다음 날.
홍규헌은 사장실 테이블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그녀의 이마엔 고뇌가 가득했다.
성필은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웨이퍼센트, 활동 6년 차.”
남은 계약 기간 2년 미만.
“멤버 하나가 재계약을 거부한다고?”
“예.”
“왜 빨리 팔아버리려고 했는지 알겠네.”
옐로 서브마린 엔터는 웨이퍼센트 이후 걸그룹을 론칭했었다. 그리고 거하게 말아먹었었다.
신대영도 결국엔 깨달았다. 자신이 회사를 유지할 능력이 없음을.
“그러게, 우리는 당연히 3년 재계약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네.”
웨이퍼센트는 아주 망한 건 아니었다.
7년 활동 이후 3년 추가 활동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대영이 안도감을 표하며 시원하게 회사를 팔아버리려고 했던 건…….
“우리에게 폭탄을 넘기려고 했던 거야. 아, 이제 알겠네. 아마 인수 전에 웨이퍼센트랑 면담했어도, 진실은 알 수 없었겠지.”
대표가 재계약을 거부했던 멤버에게 당부했을 것이다. 아니, 협박이었을 것이다.
‘남은 2년 개처럼 살기 싫으면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말이다.
“이 일은 없던 걸로 해야겠지?”
물론, 재계약을 거부한다는 멤버가 추후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가로 엔터에서 지내보곤 만족하여 재계약에 동의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가능성일 뿐이다.
그 멤버의 심지가 굳다면, 가로 엔터는 유통기한 2년짜리 그저 그런 보이그룹을 사는 게 된다. 자금 회수도 어려우리라.
게다가 재계약할 마음이 없는 멤버가 활동에 열심히 임할지도 의문이다.
그 멤버가 마음을 바꿀 수 있단 가능성 하나만으로 투자를 감행하는 건 모험이다. 사실상 돈을 하늘에 뿌리고 터뜨리는 일이다.
“박 이사 생각은 어때?”
성필은 유하음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이 있을 수 있단 걸 가르쳐달라, 고…….
“설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