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그럼(쟈아), 안녕이다(사라바다).”
리카는 쿨함의 정점(만화 캐릭터 한정)이라는 뒤로 돌아 안 보고 손 흔들며 인사하기를 행했다.
밤바람에 리카의 패딩 자락이 흩날렸다.
유우토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동시에 누나가 무게를 잡아주니 그걸 따르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아아)…….”
리카의 뒷모습이 점점 흐릿해져.
“앗!”
리카가 다시 유우토에게로 빠르게 달려왔다.
“유우쨩 등 내밀어봐 등!”
“에?”
“빨리 빨리! 뮤즈가 강림했어!”
“에, 에에.”
유우토는 허둥지둥 뒤로 돌았다. 그의 등을 책상 삼아 리카가 수첩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신들린 듯 이미 쓰인 글귀를 지우거나 새로운 문장과 단어를 썼다.
필기를 마친 리카는 두 페이지를 부욱 뜯었다.
“이걸 하양 언니한테 전달해줘! 이사님한테도!”
“에…….”
장하양은 상대하기 힘겹다. 왠지 모르게 대하기 어렵다고 할까.
“맞다, 유우쨩도 그거 읽어봐! 그리고 유우쨩이 보기에 이상한 부분은 적당히 수정해줘!”
“수, 수정이라니, 내가?”
“유우쨩은 밴드부 때 자작곡도 만들어봤잖아! 그럼, 이만!”
리카가 검지를 관자놀이에 살짝 댔다가 튕기듯 흔들었다. 눈에 모래가 들어간 사람처럼 부자연스러운 윙크는 덤이었다.
그렇게 리카가 떠나갔다.
이번에야말로 그녀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유우토는 홀로 남아 리카가 남긴 것을 보았다. 수정해달라는 말을 들었기에 짐작했지만, 역시나 가사였다.
“에에…….”
누나가 직접 쓴 가사를, 그것도 소녀연맹의 다음 타이틀곡에 들어갈 가사를 수정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무리무리!
“에, 그치만…….”
무리가 아니었다?!
유우토는 재킷 안쪽에서 펜을 꺼내어 접미사와 접두사, 전치사 정도만 바꾸었다.
그의 머릿속엔 소녀연맹의 타이틀곡이 완벽하게 재생됐다.
때론 입으로 흥얼거려가며 글자의 자수를 맞추고,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쉽도록 윤색했다.
유우토는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곡에 맞춰 리카의 가사를 따라불렀다. 물론 멜로디는 순전히 그의 창작이었지만, 리카에게 할당된 파트의 길이는 얼추 맞았다.
“……흐.”
유우토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가사 속의 리카는 영웅이었다.
영웅이긴 영웅이지만.
‘귀여운 영웅이네.’
* * *
리카는 택시를 타고 가며 멤버들이 쓴 가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심각한 얼굴로 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택시 기사도 말을 걸지 않았다.
[다들 말해 내 날개가 커졌다고
맞아 난 날고 있어 알고 있어
이 날개는 네 거라고 내 게 아니라고
You brought me to sky so fast
I fly so fast that I can’t see you
So 다시 내려갈게
너와 같은 높이로 너와 눈 맞추러
하늘이 아니라 너에게로]
신아름.
[우리 대회엔 포도알이 없어
지껄이며 몰려드네 취객이
재료는 없어 물지 거품만
내가 걔래 개래 아 미안
對不起 Sorry すまん
구름과의 데이트 flight airline
하늘 위라 안 들려서 alright
얘기하려면 쫓아와 봐 성지에
내가 밟은 땅 세계를 순례
(웃음 소리)
미안 허세 좀 부려봤어
진심 좀 말해볼게 두려웠어
네가 날 우러러 봐
마주 않고 돌고 싶어
but 나는 너의 영웅이니까
네가 나를 부르니까
그게 나도 좋으니까
이번엔 위가 아닌 아래에서
너와 같은 곳에 서볼게]
조아라.
[그날을 상상하곤 해
도전을 포기한 삶으로
나는 아이돌이었지
노래를 불렀었지
내 꿈의 주인은
낮이 아닌 밤이었겠지
관객 하나 없는 들판에
홀로 소리치는 나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영원히 기다리는 삶을
이젠 노래해 내 목소리가
너에게 닿을 걸 알아]
백설하.
그리고.
“…….”
장하양.
‘좋아.’
리카는 멤버들의 가사를 보고 다시금 용기를 충전했다.
다들 저마다의 고민이 있었다.
저마다의 시련이 있었다.
그리고 이겨내 왔다.
‘이번엔 내 차례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RRBKZ의 아지트.
리카는 그곳으로 발을 들였다. 2층으로 올라가 아지트의 문을 쿵쿵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싶어 기운이 빠지려던 순간, 문이 살짝 열렸다.
어둠 속에 걸린 불꽃처럼 떠 있는 눈동자, 하민의 눈동자가 좁은 틈 사이로 비쳐왔다.
“……리카 씨?”
하민이 문을 활짝 열었다.
“어쩐 일이세요?”
“RRBKZ에 가입하고 싶어서 왔어요!”
“갑자기요?”
“하이(네)!”
하민은 고개를 주억이더니 문에서 비켜났다. 리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시험이 기다리고 있나요!”
“시험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크루원이 전부 동의하면 끝이에요. 단,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대면으로 허락받아야 해요. 그게 시험이라면 시험이겠네요.”
하민은 시험이 없다고 했으나, 이건 시험이다.
무려 아이돌 세 명의 시간을 빼앗아야 한다.
즉, 크루 가입 지원자는 모든 크루원의 인정이 필요하다. 크루원 전체가 자신의 시간을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안 되겠네요…….”
“뭐, 유빈이는 가로 엔터에서 연습하고 있겠고. 수련이는 모르겠네. 연락해볼게요.”
“지금요?”
하민은 폰을 꺼내어 두 사람에게 연락을 돌렸다. 문자가 전송됐단 알림과 동시에 하민이 냉장고로 향했다.
그는 캔 음료를 하나 가져와 리카의 앞에 두었다.
“……두 분이 오실까요?”
리카는 불안했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리카는 유빈과 박수련, 두 사람의 앞에서 RRBKZ 가입을 거절했었다. 괘씸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르죠. 안 된다는 답이 오면 나중에 모이면 될 일이고요.”
“그런가요.”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선배와 후배란 지위 차이, 까마득한 나이 차이. 이 두 가지가 서로를 얼어붙게 했다.
하민이 데뷔했을 때 리카는 초등학생이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유우토와 함께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나이였던 것이다.
그 시절 하민은 첫 무대에 오른 직후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었다. 무대에 서기 전 청심환을 먹는 게 일상이었던 때다.
그만한 세월의 격차가 있다.
사실, 나이보다는 지위 차이가 둘 사이를 더 얼어붙게 했다. 하민은 대선배에다가 이름뿐이지만 KS 엔터의 이사이기도 하니.
“…….”
“…….”
“아.”
리카가 목소리를 내자 하민이 반색했다.
“제 목표는 최고의 아이돌이에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에 임해야 다키스트처럼 최고가 될 수 있나요!”
“무슨 마음가짐이 있어요. 그냥 활동하는 거지.”
“아…….”
“…….”
다시 침묵이 내려앉을 찰나, 하민이 뒤늦게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그런데 그런 건 있어요. 최고가 되는 데는 아무래도 회사빨이 중요하죠.”
“전혀 참고가 안 되는데요?!”
“저야 모든 회사가 구멍가게였을 시절이니 실력으로 톱이 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기만당했다?!”
모처럼 정점에 앉았던 사람을 만났다.
서유선에게 물었을 땐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만 했었다. 그런데 하민의 답도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노력이 답인가요…….”
“음, 근데 확실히 이게 없었으면 안 됐겠다 싶은 건 있어요.”
“어떤 건가요!”
“다잡아줄 사람.”
“다잡아줄 사람…… 리더?”
“네, 제 경우엔 리더였죠. 유선이. 연습생 중에 유독 인간관계에 능하거나 지휘 통솔을 잘하는 사람 있죠? 저흰 지휘자형 연습생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애들이 진짜 중요해요. 기량이 100인 애들을 다섯 모아둬도 붙지 않으면 끝이거든요. 그런 애들은 모아둬도 500이에요. 근데 접착제 같은 멤버가 있으면.”
하민의 눈은 과거를 보았다.
언제나 가장 먼저 앞서나갔던 리더, 서유선을.
“시너지는 1,000도 10,000도 될 수 있어요.”
리카는 백설하를 떠올렸다.
순진하고 맹하고 마냥 유하게만 보이지만, 묵직할 땐 묵직한 리더다. 게다가 인망이 좋아 멤버 전원이 그녀를 의지한다.
삼국지로 따지면 유비(소설 삼국지연의 기준).
전국시대라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일까(소설 대망 기준).
“유선 선배님은 어떤 리더였나요!”
“음, 무서운 애?”
“……무서운?”
“옛날에 있던 일인데. 제가 진짜 너무 정말 힘들어서 막 죽고 싶고 그랬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눈물부터 나오고요. 차만 타면 온몸이 벌벌 떨리고.”
“에, 에?”
그건 병 아닌가?
정신적인 병이잖아.
“그래서 어느 날 이사님한테 대놓고 반항했었어요. 이대로 못하겠다고. 이사님 미쳤냐고. 우리가 기계처럼 보이냐고. 그러니까 평소엔 엄했던 이사님, 아…… 정호환 이사님도 당황하시더라고요. 우리 앞에선 항상 강철 같으신 분이었는데, 당황해서 자리까지 피하셨어요. 그리고 그 자리 끝나고 유선이가 저를 불렀어요.”
“‘옥상으로 따라와’ 같은 건가요!”
“어어 네! 맞아요! 옥상으로!”
“……에?”
거기서 서유선은 하민의 멱살을 잡았다.
심각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말하는 하민의 입가엔 웃음밖에 없었다.
“뒈지려면 너 혼자 뒈져라. 나는 올라갈 거다. 올라가고 올라가서 최고가 될 거다. 도와줄 생각 없으면 그냥 구석에 짜져 있기라도 해라. 분위기 조지지 말고. 와, 내가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이걸 다 기억하지?”
“…….”
리카는 도저히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의 서유선과 비교하면 완전히 딴판 아닌가.
“그리고 내려왔더니 윤상열이란 인간이 2차 갈굼…… 음?”
답장이 왔는지 하민이 폰을 보았다.
“아, 유빈이는 온대요. 박성필 이사님한테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연습 빼고 올 테니까 꼭 기다려달라는데요?”
이제 박수련의 답만 남았다.
* * *
“우리 티티들, 7년 동안 함께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박수련의 생일 기념 방송 촬영.
븨이에스 멤버들이 촬영장에 모여 여러 이벤트를 진행했다. 박수련은 고깔모자를 쓰고 중앙에 앉아 케이크를 잘랐다.
“리얼 30대 축하한다아하하하핳하핳!”
죽이고 싶은 새, 아니, 동료가 혼신을 다해 웃으면서 박수련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박수련은 눈은 가만히 두고 입꼬리만 올리면서 하하 웃었다.
스태프들도 웃었다. 죽일 새끼들, 아니, 인간들이 한가득하다.
“네, 여러분. 제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올라갈 때는 제 생일은 지나 있겠네요. 직원분들이 초과근무를 감수하고 자정까지 일하셔서 제 생일이 지나기 전에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스태프들이 농담인 줄 알고 웃었다.
농담 아니다.
“어?”
죽이고 싶은 멤버1이 박수련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거 인사 다시 한번 해줘.”
“뭐를? 인사를 왜?”
“30대 버전으로아하하하하흐하핳핳!”
박수련은 눈을 한 번 깜빡하는 순간 모든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프로로서 임했다.
박수련이 머리칼을 뒤로 쓸어 올리고, 목소리를 고혹적으로 바꾼 후 말했다.
“고마워요.”
스태프 사이에서 낮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어느 작가가 ‘진짜 더럽게 예쁘다……’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라 소리가 꽤 컸다.
다른 스태프들이 작가에게 눈총을 주었다.
작가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내리깔았다.
“혹시 40대 버전은 없어?”
죽이고 싶은 멤버1이 박수련의 어깨를 팍팍 치면서 말했다. 당연하지만 진심으로 웃으면서.
“아 빨리 빨리. 보고 싶단 말야앙.”
박수련이 케이크에 검지를 꽂아 넣었다.
다들 놀라서 숨을 헛삼켰다.
박수련은 죽이고 싶은 멤버1의 얼굴을 빵 부스러기와 크림이 잔뜩 묻은 손가락으로 치덕치덕 문질렀다.
“끼에에에엑!”
멤버1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망쳤다. 어찌나 놀랐는지 카메라 앵글 밖이었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단 듯 박수련을 쳐다보곤, 테이블 위의 플라스틱 과도를 집어 들고 돌진했다. 돌진하여 케이크를 슥슥 보기 좋게 자르곤 자신의 접시에 담아 손으로 꾹꾹 누른 다음.
“너 그거 내 얼굴에 묻히면 진짜 가만 안 있.”
박수련의 얼굴을 크림으로 치덕치덕 문질렀다.
그렇게 약 2시간의 촬영이 막을 내렸다.
멤버1과 박수련은 지친 낯빛으로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둘은 같이 화장실로 가 얼굴과 머리카락을 물티슈로 꼼꼼하게 닦아냈다.
둘 다 방송 때 미처 닦지 못한 크림과 빵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클렌징 워터 가져왔어?”
“어. 세안할 거 다 있어.”
폼클렌징 프하프하.
속눈썹 분리. 입술 물티슈로 박박 문지르기.
화장이 불었을 즈음 폼클렌징 프하프하.
물 푸흐크흐후흐흡.
클렌징 워터 묻힌 솜으로 세세하게 눈썹, 눈가, 콧날, 입술 닦기.
폼클렌징으로 2차 세안 프하프하.
수건으로 얼굴 닦기.
“야, 화장품.”
“로션만 가져왔어.”
“아 씨 세안할 건 다 가져왔으면서 화장품은 로션밖에 없단 게 말이 돼?”
“냐눈 아직 20대라셔어 피부가 탱탱한디요? 로숀만 뱔랴듀 되는 뎨요?”
박수련이 죽이고 싶은 멤버1의 옷에 물을 뿌렸다.
로션 바르기.
그렇게 화장 지우기가 끝났다.
“퇴근이다!”
멤버1이 날개를 편 듯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뒤로 홱 돌아 술잔 기울이는 시늉을 했다.
“술 먹자 술. 생일주 먹자.”
“응 엿이나 먹으렴.”
박수련이 무시하고 떠나가려 하자 멤버1이 그녀의 팔을 꽉 붙잡았다.
“아잉 언니잉 같이 먹어요옹.”
“나 할 일 있어.”
박수련이 매정하게 떠나가자 죽이고 싶은 멤버1이 외쳤다.
“이 남자에 미친년아! 너 혼자 잘 먹고 잘살아라! 가다가 그냥 활동에 지장 없을 정도로만 다쳐라!”
박수련은 뒤를 보지도 않고 중지를 들어 올린 후 목적지로 향했다.
케이어스가 컴백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연습실이었다.
박수련이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 때문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케이어스 멤버들의 눈엔 거울에 비친 자신들만이, 귀에는 노래만이 들렸다.
박수련은 구석에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퍼포먼스가 끝났다.
엔딩 포즈가 약 10초 이어진 후, 진저가 탈진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이 정도면 쌤도 컨펌해주시지 않겠슴미까?”
“응, 나도 느낌이 좋아. 컨펌 영상은 내일 아침에 찍어보자.”
“안무가 쌤 누군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케이어스 전원이 놀라 그쪽을 보았다. 그녀들은 상대가 박수련임을 인지하자마자 일렬로 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박수련이 편히 있으란 듯 손을 저었다.
“쌤 누구야?”
“서학준 안무가님이요.”
에리카가 답했다.
“나도 너네 퍼포먼스 원본 봤어. 그 안무가님이시면 만족하실 거야.”
“아, 네…….”
왜 온 거지?
그 의문에 답하려는 것처럼 박수련이 에리카의 앞까지 걸어갔다.
“에리카, 믹스테입 해볼래?”
“선배님이랑요?”
박수련이 고개를 저었다.
“연습은 이만하면 됐어.”
그걸 왜 네가 정해.
“나랑 어디 좀 갈까?”
“지금은 좀…….”
“이사님이 부르셔.”
그러면 가야지.
* * *
드디어 리카가 정식으로 가사를 제출했다.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로 엔터 지박령인 성필은 퇴근하지 않았다. 그런 고로 장하양은 성필과 함께 리카의 가사를 확인했다.
“옛날이랑 비교해서 약간 바뀌었네요.”
“유우토가 수정했다고 했잖아. 그거?”
“아뇨. 볼펜 굵기로 비교하면, 이렇게 간단한 첨삭만 유우토가 한 걸 거예요. 나머지는 다 리카가 바꾼 거구요. 전체적으로…… 한 절반쯤 바뀌었어요.”
“옛날 버전보다 지금이 더 나아?”
“음…….”
장하양은 다시금 가사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히어로 랜딩! 영웅 두둥등장!
날 기다린 걸 알아 슝!
Distant―Yet―Mysterious…….
……하고 싶어!
나는 없어 널 구할 초능력도
바로 날아갈 Mk.1 슈트도
그래 난 쩌리인 걸
그래도 꽤 멋진 쩌리라구
위기의 순간 날아갈 순 없어도
달려가 꽤 가까운 거리라구
보잘것없는 나지만
실수투성이 이런 나지만
그래도 Hero야 난!]
“네.”
장하양이 즉답했다.
“훨씬 더 나아요.”
* * *
연락은 받았다.
고작 수십 초 후, 문을 넘어 그녀가 온다.
리카는 문 앞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방음벽 때문에 바깥의 발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리카는 그 소리가 훤히 들리는 듯했다. 아마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착각한 거겠지만.
역시나 얼마 안 가 문이 열린다.
리카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리카?”
에리카가 왔다.
뒤에는 박수련이 서 있다.
“응, 에리쨩.”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
“나랑, 아니. 우리랑.”
4/5.
“믹스테입 하자!”
그리고.
* * *
성필은 모니터에 완성된 가사를 전부 적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지음에게 전송했다.
“드디어 모두 모였다.”
성필은 뒤로 의자를 돌린 후 장하양과 하이파이브 했다. 경쾌한 마찰음이 텅 빈 사무실을 울렸다.
“아, 이제 한시름 놨어.”
“한시름 놓긴요.”
장하양이 장난스럽게 엄한 말투를 꾸며냈다.
“이제 시작이에요.”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