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화
웨이퍼센트 리더, 강현.
가슴 피로골절.
2주간 연습에서 빠지고 숙소에서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
“몇 주 전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어요…….”
유빈은 마치 자신이 강현의 가슴을 부러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죄책감을 내비쳤다.
성필은 그의 앞으로 캔 음료를 내밀었다. 유빈은 감사하다곤 했으나 마시진 않았다.
“기침을 자주 하고, 한번 시작하면 잘 안 멈췄거든요. 담배 피우기 시작한 건가,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었어요. 아니었죠…….”
담배 피우는 사람도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침을 토하진 않는다.
“형은 연습을 엄청 했어요. 숙소에 돌아와서도 혼자 밖에 나가서 춤추고…….”
가슴 피로골절은 과격한 회전, 반복 운동 때문에 발생한다. 강현의 경우엔 갈비뼈 한 곳에 실금이 갔다.
성필은 안타까움에 한숨을 쉬었다.
전생에선 신아름도 피로골절을 겪었었다. 거기에다가 ‘신 스프린트(Shin―splints)’까지 발생했다. 외에도 여러 통증과 부상을 달고 살았다.
신아름의 신체는 신아름의 재능을 버틸 순 없었다. 뇌가 눈으로 복사한 동작을 신체의 가동 범위를 넘나들며 수행하니, 신체엔 무리가 쌓인다.
최고의 퍼포머란 영광스러운 타이틀 뒤엔 만신창이가 된 신아름이 있었다.
“연습을 많이 한 게 전부지? 다른 이유는 없는 거지?”
“네, 제가 알기로는…….”
성필이 매니저들에게 들은 이유도 비슷했다. 그는 유빈을 내보내고 회사를 나섰다.
차를 몰고 웨이퍼센트의 숙소로 향했다.
미리 강현에겐 숙소로 간다고 말해두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숙소 안은 한구인이 처음 찾았을 때보다 훨씬 쾌적했다.
웨이퍼센트가 가로 엔터로 온 후 가장 처음 한 게 바로 숙소 청소였다. 매니저들이 달려들어 묵은 때와 의미 없이 쌓인 물건들을 지워버리고, 그나마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강현아.”
방으로 들어가니, 강현이 힘겹게 상체를 올려 일어나려 했다.
성필이 놀라서 제지했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아니야. 아픈 건?”
“파스 붙이고 진통제 먹으니까 괜찮아요. 안 움직이면요.”
“일반식은 먹어도 괜찮아?”
“네.”
“밥은 먹었고?”
“네, 멤버들이 나가기 전에 해줬어요.”
“그래. 간단한 거 사 왔으니까 여기 둘게.”
“감사합니다.”
성필은 강현과 마주 보는 2층 침대의 1층에 앉았다.
강현은 성필을 바라보려고 노력했으나, 누운 상태로 상급자를 보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때인데 다쳐서요.”
“다친 것도 서러울 텐데, 그렇게 말하면 네가 더 비참해지잖아. 열심히 연습한 훈장…… 이라고 말하면 기분이 좀 안 좋겠다. 아픈 걸 좋아할 사람은 없잖아.”
“아뇨, 훈장.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필은 강현의 심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강현아, 열심히 노력해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원래 제가 할 일인데요…….”
“2주간 푹 쉬어. 쉬는 동안은 일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돌아와선 널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연습량은 유선 씨가 정해주신 대로만 해줘. 그분도 아이돌 생활을 오래 해왔으니 인간의 한계를 잘 알아. 어쩌면 너보다 더.”
“…….”
“물이 얼마 없네. 받아올게.”
성필이 일어나려 할 때였다.
“인정받고 싶어요.”
“대중들한테?”
“일단 직원분들한테요.”
“……가로 엔터?”
강현은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직원분들께 저희는 이방인 같은 거잖아요. 알아요.”
그 대목에서 성필은 강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다. 아니, 그가 가로 엔터에 있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간파했다.
가로 엔터의 직원들이 웨이퍼센트를 탐탁잖게 여긴다. 성필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사생아…… 운 좋게 입적된 사생아 같은…….”
그는 말하고 있다.
웨이퍼센트는 가로 엔터의 적자(嫡子) 아니라고. 서자(庶子)도 아니었다. 밖을 떠돌다 우연히 주인의 눈에 띄어 입적된 사생아다.
눈칫밥을 먹고 살아간다.
강현의 목소리가 탁해졌다.
“평가 때마다 직원분들의 눈을 보면 알아요. 저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어요.”
눈부신 업적을 이룬 소녀연맹.
소녀연맹의 뒤를 이을 기대주 카오틱 에너지.
그들의 눈은 가로 엔터의 적자들과 웨이퍼센트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중에서도 적대적인 이들이 있다.
소녀연맹과 카오틱 에너지를 맡다가, 별안간 웨이퍼센트를 담당한 A&R팀 직원들이다.
그들로선 유력한 후계자를 섬기다가 계승 서열이 낮은 왕자의 시중을 들게 된 것만 같겠지.
“그래서 직원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단 거야?”
“네. 저는 이사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믿어요. 저희를 다시 축제의 장으로 데려가 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이사님을 최고의 자리로 올려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 전에, 저희를 둘러싼 환경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다칠 정도로 노력했다…….”
“연습하지 않고선 미칠 거 같았어요. 편히 쉬어도 될 입장이 아니니까요. 이사님, 유빈이는 웹진이나 잡지에 프로듀서의 인터뷰가 올라오면 꼭 찾아봐요. 그중에 윤상열 PD란 분이 계시는데.”
웨이퍼센트는 성필과 석세스 엔터의 악연을 모른다. 안다면 윤상열의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을 것이다.
성필은 윤상열에 대한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다.
계속 이야기하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의 퍼포먼스란 건 부공감(不共感)의 예술이래요.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거라고 했어요.”
대한민국엔 노래방이 발에 챌 만큼 많다. 사람들 대부분이 노래 깨나 불러 본다.
취미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최소한 한두 번쯤은 노래를 부른다. 학교 음악 과목에 가창 시험이 있을 테니.
춤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때 필수적으로 추어 본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장기자랑이나 학교 축제를 위해 연습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아요. 자기가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으니까 대단하다고 해요. 사람들은 댄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아요. 본인이 못하는 걸 하고,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워지는 동작을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퍼포먼스는…….”
의식적으로라도 수행해본 인간이 드물다.
누가 시키지 않고서야, 어떤 인간이 춤추는 동시에 노래를 부르겠는가.
해보진 않아도 대강 ‘힘들겠구나’ 생각할 뿐, 진정으로 공감할 순 없다.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춤을 춘다는 게 어떤 행위인지,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렇기에 부공감의 예술. 대중이 공감할 수 없는, 공감하지 않는 예술이다.
“아이돌이 감동을 줄 수 있는 포인트는 종합 퍼포먼스가 아니다. 노래와 춤이 별개다. 노래로 감동시키고, 춤으로 감탄시키는 거다……. 그런데 그건 정말, 가수에게도, 댄서에게도 힘든 거잖아요. 가수와 댄서 둘 다 그걸 목표로 연습하잖아요.”
강현은 숨을 골랐다.
가슴이 답답한지 손으로 꽈악 쥐었다.
“저희의 춤과 노래는, 아이돌을 직접 봐온 직원들에게조차 감동을 못 주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팬과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겠어요?”
길은 명확했다.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연습이다.
마음의 문을 닫은 이에게조차 닿을 수 있는 춤과 노래.
그걸 만들기 위해 쉬는 시간을 자진해서 반납하고 연습에 매달렸다.
매달린 결과가 이거다.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납득시키지 못하는데…….”
강현이 기어코 울먹임을 뱉어냈다.
“어떻게…… 마음 편히…… 쉴 수 있겠어요……?”
심지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경지에 닿았던 인간, 서유선이 바로 곁에 있는데.
“어떻게 조급하지 않을까요…….”
* * *
A&R팀은 월요일마다 전체적인 상황을 공유하고 보고하는 주간 회의를 갖는다. 그리고 말미엔 성필이 짧든 길든 연설을 덧붙인다.
주로 사기 진작과 노력을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여러분.”
회의실.
연단에 선 성필이 단상을 손바닥으로 쿵 쳤다. 가장 앞에 앉아 있던 정지음과 이재호가 깜짝 놀랐다. 그 뒤론 열 명 정도의 인원이 더 있었다.
참고로, 가장 뒤엔 프로듀서의 모습을 참고한단 이유로 장하양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형 기획사와 가로 엔터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재호가 손을 들었다.
“예, 재호 씨.”
“돈입니다.”
“오, 맞아요. 대형 기획사는 가로 엔터에 비하면 순이익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습니다. 재투자할 자금이 많단 건 퀄리티 상승으로 이어지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정지음이 손을 들었다.
“그래, 지음이.”
“제가 있고 없고의 차이…… 손나 칸지(그런 느낌)?”
A&R 팀원들이 실소를 터뜨렸다.
“자만하지 마!”
A&R 팀원들이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을 굳혔다.
“물론 지음이 너는 나의 장자방이요 한중왕의 제갈량이야. 그런데 유비가 제갈량이 있다고 천하를 통일했어?”
“장량을 가졌던 한고조는 중국을 통…….”
“아니야 지음아. 한 사람으로 천하를 얻을 순 없어.”
성필은 정지음의 태클을 무시했다.
“비록 천하를 얻는 데 가까워질 수 있더라도.”
“형…….”
정지음은 성필이 자신을 제갈량에 비유해준 것에 감명받았다. 얼마 전 만화책 ‘전략 삼국지’를 읽어서 감동이 더욱 거셌다.
“여러분, 대형 기획사와 가로 엔터의 차이는 바로 이겁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 고정 팬층의 존재예요. 다르게 설명하면 브랜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다들 성필의 설명을 듣곤 납득했다.
“대형 기획사에서 나온 그룹은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습니다. 그 주목도는 곧 대형 기획사가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반영합니다. 제가 지켜봐 오기로, 많은 기획사들은 이 브랜드 가치란 걸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재호 씨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죠.”
성필은 추후 정식 A&R 팀장이 될지도 모르는 이재호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했다.
손혜빈의 가혹한 가르침을 받아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그라면, 성필의 의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
모르나 보다.
‘그래, 내 설명이 부족했구나.’
성필은 웬만해선 타인을 탓하지 않는다.
“소속 그룹의 가치를 지키려곤 노력하지만, 정작 회사의 이미지는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병크(병신짓 크리티컬)가 터졌을 때 팬들이 그룹보다 기획사를 욕하는 경우가 많죠. 또 팬들이 기획사를 유머 소재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초에 기획사가 소속 가수보다 자신들이 욕을 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소속 아이돌의 이미지를 지키는 건 단기적인 전략이에요. 실수를 회사의 탓으로 돌린다, 그럼 아이돌의 이미지는 지켜지겠죠. 아이돌이 활동하는 동안은 수익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그 아이돌이 사라지면?”
오명은 회사에게 남는다.
이 회사는 옛날에 그런 일을 했어.
이런 병크를 터뜨렸어.
얘네는 앨범 디자인에 신경을 안 써.
구성품이 너무 부족해.
노래를 왜 이딴 것만 고르지? 이런 노래만 아니었어도 우리 애들이…….
이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다.
“잘못을 아이돌에게 돌리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회사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형 기획사와 가로 엔터의 차이. 바로,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의 무게입니다. KS 엔터면 믿고 덕질하지. SMS 엔터 걸그룹이라니 너무 기대된다. YSL은 대체 컴백을 언제 시키는 거야. 늦어도 좋으니까 나와주기만 해줘……. 이런 이미지가 저희 가로 엔터에도 필요합니다.”
거기서 이재호는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가로 엔터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기획서를 써오라고 하시진 않겠지?’
A&R팀의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다행히 성필은 그럴 목적이 아니었다.
“제가 가장 갖고 싶은 이미지는 바로 이거예요.”
믿고 듣는 가로 엔터.
“네, 소녀연맹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그룹은? 다다음 그룹은? 가로 엔터가 신뢰를 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성공을 안정적으로 이어 나가기 위해서. 이 목적을 위한 가장 단기적인 목표가 무엇일까요? 재호 씨?”
이것만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카오틱 에너지의 성공입니다.”
“아니에요!”
이재호가 손혜빈에게 혼나기 직전처럼 바짝 쪼그라들었다.
“A&R팀에 이런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걸 압니다. 웨이퍼센트는 어쨌거나 바깥 자식이라고요. 가로 엔터의 적자(嫡子)가 아니라고요. 아닙니다, 오히려 웨이퍼센트가 가장 중요해요.”
10만 장벽.
성장 포텐셜을 모두 쓰고, 이젠 점점 쇠퇴할 일만 남은 보이그룹.
“헌드레드(웨이퍼센트의 팬덤)들은 가슴 졸이며 웨이퍼센트의 컴백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온갖 추측과 걱정이 SNS를 뒤덮고 있어요. 과연 가로 엔터가 웨이퍼센트를 잘 케어해줄까? 소녀연맹과 차기 그룹도 있을 텐데, 내놓은 자식 취급이 아닐까? 앨범 한 개 내주고 성적 개판 나면 버리는 게 아닐까? 지금은 걱정 반 기대 반이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걱정을 환호로 뒤바꾸는 것이다.
“재호 씨. 사람들이 저희가 웨이퍼센트를 영입할 걸 가지고 뭐라고 떠들죠? 알고 계시죠?”
“……돈 낭비.”
“그리고요?”
“제정신이 아니다. 이사진 중에 노망난 인간이 있는 게 분명하다. 웨이퍼센트 인수하고 앨범 내줄 돈으로 소녀연맹 의상이나 하나 더 맞춰줘라. 돈 벌더니 초심을 잃었냐. 사업가들 다 이렇게 망한다. 당장 진료받은 후에 약 먹고 10만 장벽 망돌들 내쫓…….”
“그만해요, 됐어요.”
“……내쫓아라. 6년 차 그룹을 인수하다니 머리에 곰팡이가 핀 게 아니면 절대 안 이런다. 박성필 프로듀서 ‘빛나솔그’에서도 정병 티 내더니 여기서 폭발하네. 에리카 쫓아간 거처럼 KS 엔터로 가…….”
“됐다고 했잖아요?!”
성필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성필에겐 안타까운 사실인데, 흑화한 인민이들은 가로 엔터를 욕할 때 가로 엔터를 욕하지 않는다. 성필을 욕한다. 방송 출연으로 성필이 얼굴마담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씨 좋은 인민이들은 가로 엔터를 칭찬할 때 성필을 칭찬한다.
‘박성필 이사님 믿고 있었습니다’처럼.
“여러분들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겠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웨이퍼센트는 굉장한 포텐셜이 있어요. 비록 6년 차 보이그룹이더라도요.”
“…….”
“뭐요 재호 씨. 내 머리에 곰팡이 핀 거 같아요?”
“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
“생각도 안 했습니다!”
이게 가로 엔터의 현실이다.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잡음이 있다.
직원들은 월급받는 입장이니 입을 다물고 있지만, 내심 반감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웨이퍼센트가 10만 장벽을 돌파해 봐요. 어떻게 되겠어요? 지음아, 어떨까?”
“스스로 위기를 연출하고 깔끔하게 반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게 되겠죠.”
“……스스로, 뭐?”
“스스로 위기를 연출하고 깔끔하게 반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게 된다구요.”
“……어.”
거창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성필이 웨이퍼센트 영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러분들께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정호환 이사님조차 저에게 경고하셨어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요. 가로 엔터는 위기를 맞을 거라고요.”
“…….”
“재호 씨 뭐요. 정호환 이사님 말씀이 옳게 들려요?”
“예.”
“부정도 안 해?!”
“그러니 더 카타르시스가 크겠네요. 업계 최고의 프로듀서조차 안 된다고 했는데, 박 이사님이 해내시면요.”
성공만 한다면, 이건 성필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총괄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입증하고.
동시에.
“가로 엔터의 프로듀싱 능력을 증명하는 게 되겠죠. 10만 장벽조차 돌파시킨 기적의 기획사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또 이어서 투 쓰리 펀치가 들어갑니다.”
소녀연맹 컴백.
카오틱 에너지 데뷔.
“올해는 가로 엔터의 해가 될 겁니다. 시상식에 소녀연맹, 웨이퍼센트, 카오틱 에너지, 거기에 효민 씨까지 나란히 서서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리겠죠.”
“…….”
이재호는 ‘카오틱 에너지’라는 이름을 정말 쓸 건지 궁금했다. 이사들은 항상 ‘차기 그룹’이란 말보다 ‘카오틱 에너지’란 이름을 썼으니까.
진짜 그룹 이름이 카오틱 에너지인가?
“그 찬란한 미래가 여러분의 손에 달렸어요.”
성필이 직원들과 눈을 한 번씩 맞추었다.
그들은 성필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허리를 꼿꼿이 펴며 자세를 다잡았다.
갑자기 성필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여러분, 이번 웨이퍼센트의 앨범이 실패하면 정말 앨범 발매를 중단할까요? 제가 그럴까요? 재호 씨, 제가 그럴까요?”
“……아, 아니요?”
“예, 절대 안 그럽니다. 한 이사님이 펑펑 울면서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려도 앨범 계속 낼 겁니다.”
“……?”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그것도 안 되면 네 번. 웨이퍼센트의 3년 재계약이 끝날 때까지 무한으로 낼 거예요. 성공할 때까지 계속!”
이재호가 두려움에 떨었다.
최고의 총괄 프로듀서란 호칭을 갖고 싶어서 정말 머리에 곰팡이가 핀 걸까?
계속 망해도 최후에 한 번 성공하면 된다, 그런 마음인가? 애초에 7년 차를 넘어선 그룹이 새로운 팬덤을 확보할 수 있을 리 없다.
무슨 뜻이냐면, 성필의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앨범이 실패하고, 다음 앨범까지 실패하면 웨이퍼센트는 그냥 사망선고를 받는다.
“제가 최고의 총괄 프로듀서 호칭 때문에 머리에 곰팡이가 핀 걸까요?”
직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아뇨, 절대 아닙니다. 왜 그러냐면, 가로 엔터의 이미지 때문이에요.”
“이미지……?”
“책임감.”
실패한 그룹을 내치는 기획사엔 어떤 딱지가 붙을까. 돈 안 되는 멤버를 방치하는 기획사는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될까.
돌판 커뮤니티에 흔히 보이는 ‘으휴 XXX이 그렇지 뭐’란 말이나 들어 먹을 것이다.
“실패한 사업을 폐기하는 건 단기적인 수지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고용된 전문 경영인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바로 사업부 폐지입니다. 단기적인 적자 만회와 수익 향상을 주주들에게 자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문 경영인들은 10년 20년 고용된 게 아니에요. 단기적인 성과에 목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필은 다르다.
“저는 가로 엔터에 뼈를 묻습니다. 뼈를 묻으니 미래를 봅니다. 가로 엔터 브랜드는 책임감과 꺾이지 않는 마음, 불굴의 정신의 상징이 될 겁니다. 결코 담당 그룹을 버리지 않는 기획사. 가능성을 한계까지 파헤치는 회사. 그렇기에.”
대중들이 믿고 들으며, 팬덤이 충성도를 보이고, 설령 어느 그룹이 재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마음 놓고 덕질을 시작할 수 있는.
그리하여 마침내 가로 엔터가 하나의 명품으로 오르는.
고작 몇 년이 아니라 십수 년을 보아야만 낼 수 있는 전략.
열변을 토하던 성필이 갑자기 픽 웃었다.
“애초에, 저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폭삭 망하진 않아요.”
그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성필이 선언했다.
“웨이퍼센트는 바깥 자식도, 서자(庶子)는커녕 얼자(孼子)도 아닙니다. 가장 찬란한 승리로 향하는 첫 번째 계단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트로피 가운데 하나예요. 여러분이 만드는 겁니다, 가로 엔터의 브랜드를. 여러분이 가로 엔터입니다.”
성필은 직원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여러분. 어쩌면 미래엔 여러분이 가로 엔터에서 나가실 수 있으시겠죠. 만약 이곳을 나가 다른 기획사로 갔을 때, 이력서에 박힌 이 시기 가로 엔터에서 근무한 커리어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이 될 겁니다. 여러분!”
성필은 회의실을 중앙으로 나가 섰다.
“올해 초, 제가 아주 터무니없는 말을 했었죠. 그게 향후 5년 이내 가로 엔터의 목표라고. 다들 함께 다시 외쳐봅시다.”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재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KS 엔터를 꺾는다.”
그제야 여럿이 입을 맞추었다.
KS 엔터를 꺾는다.
성필이 연말 시상식 후 사장인 홍규헌 앞에서, 그리고 소녀연맹 앞에서 했던 맹세였다.
직원들은 현실성 없는 말을 하면서 내심 껄끄러움을 느꼈다. 거짓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 전자제품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 ‘애플을 꺾는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직원들의 거짓말이 끝났을 때, 성필이 진실로 답했다.
“제가 여러분의 손을 빌려, 그 말을 진실로 만들겠습니다.”
* * *
성필이 회의실을 나갔다. 장하양도 직원들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성필을 따라갔다.
“이사님 진심이실까요?”
그가 나가자마자 한 직원이 이재호에게 물었다.
이재호는 보고서를 정리하며 가볍게 답했다.
“진심이시겠죠, 언제나 진심이셨잖아요.”
“그건 그런데요. 최근엔 뭐라고 할까, 공격적으로 보여서요.”
“조급해 보이시긴 해요.”
“그죠!”
직원은 자기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란 사실이 기쁜 듯했다.
“이음 엔터도 그렇지만, 특히 웨이퍼센트가요.”
이 직원은 아예 뒷담을 시작할 셈인 듯했다.
특히 웨이퍼센트, 인가.
이재호는 속이 쓰렸다.
웨이퍼센트 영입 후 A&R팀엔 불만을 가지는 이들이 나왔다. 소녀연맹을 맡다가 웨이퍼센트 담당으로 배속받은 이들이 그 중심이었다.
‘이해해.’
이재호도 그중 한 명이었으니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이해했다.
소녀연맹을 두고 A&R 업무를 수행하는 건 꿈만 같았다.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렜다.
그런데 갑자기 웨이퍼센트라는, 업무의 일환으로만 동향을 파악해왔던 그룹으로 배속된 것이다.
황금 사다리에서 밀려난 기분이었다.
‘소녀연맹은 박 이사님. 카오틱 에너지는 손 이사님. 그리고 웨이퍼센트는…….’
이재호가 일차적으로 감독한다.
최고 관리자는 역시나 성필이지만, 이재호가 웨이퍼센트의 A&R 업무를 책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분 상승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재호는 신분이 내려가더라도 다시 소녀연맹을 맡고 싶었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뿔이 났다.
‘오늘 이사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아쉬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납득하게 됐다.
여태까지는 유배(流配)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유배일 리 없다. 성필의 말마따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일 것이다.
‘찬란한 미래로 가는 첫 번째 계단 중 하나, 인가.’
이런 말은 뭐하지만, 이젠 소녀연맹의 성공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팬들은 물론 가로 엔터 내부에서도 그러했다.
즉, 소녀연맹 관련 업무는 성공한 커리어를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가장 중요한 파트인 A&R팀에선 더욱 그러했다.
그에 비해 웨이퍼센트 담당은 실패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은 것 같다. 피하고 싶다.
피하고 싶지만.
‘스스로 위기를 연출하고.’
아까 정지음이 했던 말은 의외로 이재호의 가슴에 와닿았다.
‘깔끔하게 반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웨이퍼센트 담당으로 성공한다면, 소녀연맹의 성공에 일조한 것 이상의 의미를 얻는다.
“이사님이 아무리 동기부여를 해주려고 하셔도, 솔직히 의욕이 안 나요.”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잡무 같이 느껴지고. 계속 소녀연맹 맡는 사람들은 좋겠다. 안 그래요? 재호 님은 여기서 일도 제일 오래 했…….”
“제 생각인데.”
이재호가 직원의 말을 끊었다.
“월급의 절반은 버티는 값이에요.”
“……네?”
“사장님과 이사님들 모두 우리한테 딱히 기대를 걸지 않아요. 특별한 능력을 보여달라고도 안 해요. 그냥 자리에 앉아 버티고 주는 일이나 잘하면 될 뿐이죠. 딱 그만한 돈이잖아요. 반대로 말하면, 저희의 능력은 딱 저희 월급의 절반 정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물건을 사기에도 고민될 정도의 돈밖에 안 된다.
“그냥 저희는 시키는 일이나 하죠.”
소녀연맹 때도 그러했다.
시키는 일만 했더니, 자기도 모르는 새에 소녀연맹이 성공해 있었다.
옛날에도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녀연맹에 대해 걱정을 토로하곤 했었다. 이런 게 정말 성공하는 걸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어디 사람 구하는 기획사 또 없나?
성필도 당시 직원들의 걱정을 알았을 것이다.
현재의 불만이나 불안도 당연히 알 것이다.
대중들과 타 팬들의 비아냥과 비웃음도 안다.
그럼에도 딱히 변명이나 대응하지 않았다.
“오늘 이사님이 하신 말씀은 동기부여 같은 게 아니에요. 그냥 ‘불안해하지 말고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뜻일 거예요. 직설적으로, 괜한 소리 하고 다니지 말란 거겠죠.”
성필이 일일이 자그마한 불안과 걱정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런 말들엔 무게가 없으니까.’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말엔, 무게 따위 먼지 한 톨만큼도 없다.
그래서 책임지는 소녀연맹 멤버들에게 무게감이 실리는 것이고.
성필이 ‘KS 엔터를 꺾는다’고 했을 때, 이재호는 가볍게 흘려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죠.”
책임 있는 자, 시키는 자.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는 자가 성필이다.
성필의 지시엔 무게가 있으며, 그 무게는 성필이 현실로 불러온 꿈의 값이다.
그의 꿈이 일궈내는 현실을 직접 보아온 이재호는 충실히 따를 뿐이다. 비록 자그마한 불만이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충실하게.
어차피 몇 개월 뒤엔, 이런 불안을 품었었단 게 우스워질 정도의 황금이 나타나 있을 것이다.
* * *
“하양아 어땠어? 동기부여가 좀 됐을 거 같아? 막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웨이퍼센트가 성공하면 성과급 300% 준다’는 말이 있었으면 동기가 더 생겼을 거 같아요.”
“그렇구나…….”
성필은 머쓱해졌다. 그가 시무룩해진 모습을 재밌게 구경하던 장하양이 당근을 주었다.
“그런데 울림이 있었어요. 피가 붉어지는 기분이었어요.”
“피는 원래 붉잖아.”
“이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피가 뜨거워져요.”
“고마워.”
“흥분했어요.”
“내 연설로 감정이 북받쳤단 뜻 맞지?”
“비슷했어요.”
“하양이는 유머 감각이 전혀 안 느네.”
“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텐데 유머 감각이 필요할까요?”
성필이 낮게 웃자 장하양은 해냈단 듯이 같이 웃었다.
“아무튼, 나도 내가 헛소리하는 거 알아. 나도 말단으로 일해봤으니까. 대표가 ‘1위 기업을 이긴다’라고 할 땐 박수를 치지만, 내심 조소를 품기도 해.”
“저는 안 그래요. 제가 이사님이 꾸신 꿈의 산증인이잖아요.”
“……유머 감각은 안 느는데 말솜씨는 엄청나지네 점점?”
“아하하,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일까요. 혹시, 또다시 사랑에 빠지셨어요?”
“난 그렇게 쉽게 반하지 않아. 이 정도로는 부족해.”
둘은 사무실 앞에서 갈라졌다.
성필은 사무실 자리에 앉아 잠시 아까 회의 때 했던 말들을 되새겼다.
‘올해는 가로 엔터의 해가 될 겁니다.’
‘그 찬란한 미래가 여러분의 손에 달렸어요.’
‘여러분이 만드는 겁니다, 가로 엔터의 브랜드를. 여러분이 가로 엔터입니다.’
‘이력서에 박힌 이 시기 가로 엔터에서 근무한 커리어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이 될 겁니다.’
‘KS 엔터를 꺾는다.’
‘제가 여러분의 손을 빌려, 그 말을 진실로 만들겠습니다.’
“…….”
성필은 서서히 붉어지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내가 어떤 얼굴이었을까.’
아마 한껏 자아 도취되어 있었겠지.
실제로 성필은 약간의 몰입 상태였었다.
사실이 아닌 생각도 입 밖으로 꺼내어 반복하면 실제처럼 느껴진다고 하지 않던가.
성필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최면이 너무나 잘 걸려서 스스로의 말에 도취되었다.
“야, 성필아.”
손혜빈이 의자를 끌고 다가왔다.
성필은 얼굴에서 손바닥을 치웠다. 다시 평소의 근엄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누나 왜?”
“왜 놀고 있어. 올해는 가로 엔터의 해가 될 거라면서.”
“누구한테 들었어?!”
“재호 씨한테.”
이 전서구 같은 인간이!
“나 놀리려고 왔으면 저리 가. 안 어울려 줘.”
“아니야, 이거 보여주려고.”
손혜빈이 의자를 휙 끌고 와 성필과 툭 부딪쳤다. 성필의 의자가 옆으로 서서히 밀려나고, 손혜빈이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손혜빈은 검색창에 ‘엡실론’을 검색했다.
그러자 기사가 여러 개 떴다.
“어? 엡실론 해체해?”
“응. 네가 관심 있을 거 같아서.”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석세스 엔터의 반석을 쌓았던 보이그룹.
정확히 10년은 아니지만, 10년 차의 추가 연장 활동까지 마치고 해체한다는 모양이다.
이달의 앨범을 마지막으로, 엡실론도 끝난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네.”
“뭐…… 그렇, 지. 같이 지낸 시간이 있으니까.”
“추억도 많겠네.”
“…….”
사실, 성필은 엡실론과 큰 친분이 없다.
글로브의 후보 연습생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했던 것이나, 소녀연맹 멤버들과 만들어왔던 감정의 깊이도.
엡실론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 활동기까지.
어수룩한 아이돌과 어수룩한 매니저의 좌충우돌 연예계 극복기였다.
즐겁고 보람찬 일도 많았지만, 나이 든 지금에 와선 후회되는 행동이나 말도 많았다. 나중에 좀 더 성숙했을 때 만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성필은 턱을 괴고 찬찬히 기사를 살폈다.
기사 한 줄마다 엡실론과 그려왔던 추억이 하나씩, 엡실론에게 찍었던 후회 하나씩이 씨실과 날실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얘들이 활동을 끝내는 날이…….”
오긴 왔구나.
“만나보기라도 하지? 연락은 왔어?”
“아니. 나 석세스 나오고선 딱히 없었어.”
“글로브도 비슷했었지?”
“응. 뭐, 회사를 나간 이상 아예 타인이나 마찬가지니…….”
그때 성필의 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아까 회의실에 들어갈 때 진동으로 바꾸어두었다. 문자거나 톡일 것이다.
“오, 설마 엡실론?”
“……아니.”
석세스 엔터인 건 맞지만.
[양소민.]
엡실론은 아니다.
더욱이 10년 활동의 성료를 축하해달라는, 그런 훈훈한 내용도 아니었다.
[시간 괜찮으실 때 뵐 수 있을까요? 고민이 있습니다. 팀장님이 상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시면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