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50화 (650/760)

650화

성필과 만나기 전.

2주차 첫 음방에서 진소유에게 보기 좋게 패배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침울함만이 감돌았다.

우효민은 넋 놓고 창밖을 보았다.

그때였다.

김명운이 말했다. 표정은 우울함으로 넘치지만, 목소리엔 옅은 희망이 비쳤다.

“젊은 나이의 시련은 훨씬 아프고 쓰리지. 그 나이의 고뇌를 아름답게 미화하는 작품이 많아. 인생에 단 한 번뿐일 고통이니까.”

우효민의 눈이 천천히 김명운에게로 옮겨갔다.

“그렇잖아. 시련이 쓰리고 아플지라도, 여러 번 겪으면 둔감해지기 마련이거든. 내가 그래. 40이 넘게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있어도 그냥저냥 넘기는 법을 배우게 되거든.”

“……저는.”

우효민이 차창에 힘없이 머리를 기댔다.

“아직 23살이에요.”

“그런데, 나는 40살 넘게 먹고도 10대 소년처럼 삶이 비참해졌던 때가 있었어.”

우효민은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김명운의 넋두리에 반응할 기운이…….

“포유가 데뷔하기 전이야.”

“……!”

우효민은 다시 김명운을 보았다. 그의 눈은 참담한 과거를 그리고 있었다.

“학폭 그룹. 학폭이 밝혀진 멤버가 한 명 있는 것만으로도, 포유는 비난받았지. 멤버를 방출하고도 그랬어. 너희들에게 그룹을 나가도 좋다고 한 건, 사실 자포자기였는지도 몰라.”

“자포자기…… 포기하셨다구요?”

“그래. 차라리 전부 다 나가라. 나가겠다고 해라. 그러면 SMS 엔터로 돌아가서 강성욱 대표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전부 다 활동할 상황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에 투자하신 자금은, 아쉽지만 버렸다 생각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대로 데뷔해봤자 손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아름이가 나갔어. 됐다 싶었지. 그런데…… 아름이를 빼곤 다 남아 있는 거야. 너희의 눈을 봤어. 불안하고, 슬프고,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어하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있었어.”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세월이 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신아름처럼 형편 좋지 못하다.

그러니 버텨야만 한다. 침몰하는 배지만 계속 버티고, 견딜 수밖에 없어.

“황망했지. 너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어. 갑자기 피 안 섞인 애들 8명을 강제로 입양한 기분이었으니까. 그 애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도 정상이 아니었거든.”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잔인할까.

아이돌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다.

매니저가 회사 대표가 되는 일이 가장 많았으니, 매니저로 아득바득 살아왔다.

SMS 엔터에서도 신뢰받는 매니저였다. 매니지먼트 관리자급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강성욱과 담판을 지어 이음 엔터를 맡게 됐다.

단기 프로젝트 그룹을 위한 회사였다.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도 포유로 좋은 성적을 낸다면, 강성욱이 추가로 투자해준다고 했다.

힘내자.

하지만.

“인생이 낭떠러지로 가버렸어.”

“…….”

“아침에 말야, 태양이 뜨잖아. 내 삶과 다르게 너무 밝은 거야. 눈을 뜰 때마다 태양도 같이 떠. 그걸 보고 생각했지. 태양이 저렇게 밝은 건 나를 비웃는 거다. 나를 조롱하려고 저렇게 밝은 거야. 그래서 아침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거야.”

김명운은 태양의 조롱을 받으며 매일 이음 엔터로 출근했다. 가망 없는 아이들을 맡으러.

“전부 다 포기하고 싶었어. 죽고 싶기까지 했고.”

“주, 죽고 싶은…….”

“내가 말했잖아. 10대 소년처럼 시련에 힘들어했다고. 그 시절처럼, 난 내 자아에 가해지는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죽음까지 생각했어. 어린애처럼. 내가 수십 년간 그려온 꿈과 미래가 한순간에 박살 났으니.”

비록 진심이 아니었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에 불과했지만.

사람이 죽겠단 마음을 순간이라도 떠올린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때, 효민이가 보였어.”

“저요……?”

“어떻게든 애들을 다잡고 연습시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포유를 이끄는 자랑스러운 리더…….”

우효민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의미 없는 노력이라고 생각했지. 효민아,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해봤자 우리는 이미 망했어. 다 헛발질이야. 그만해도 돼.”

그런데 그게 하루, 일주일, 한 달, 마침내 여러 달까지 이어졌다.

우효민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김명운의 삶이 바뀌었다.

“너를 떠올리면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밉지 않았어. 어느 순간부터 다르게 생각하게 됐지. 태양이 아침에 빠짐없이 떠오르는 건 나를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라…….”

응원하기 위해서다.

나는 네가 태어난 날부터 죽을 날까지 영원토록 떠올라 너를 응원할 것이다.

네 삶에 빛을 드리운다.

네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 있는 매 순간, 너를 위해 빛을 비춰줄게.

그러니까 힘내.

내일 아침에도 찾아올게.

“효민아, 네가 나의 태양이야.”

우효민이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울먹임이 들리지 않는단 것처럼, 김명운은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간신히, 이어간다.

“아껴온 이야기야. 네가 언젠가 엄청난 뮤지션이 되면, 같이 술을 마시면서 과거를 추억하려고 아껴둔 이야기. 그런데 지금 할게. 효민아, 꺾이지 마. 너는 태양이니까, 내일도 떠오르길 바라. 매일…….”

내가 죽는 순간까지, 태양은 당연하단 듯 아침마다 떠오른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온다.

조롱처럼 느껴졌던 아침의 빛이 응원으로 느껴질 때가.

빛이 진정한 빛이 되는 순간.

기적이 찾아온다.

“매일, 새롭게.”

태양은 꺾이지 않고 꺾지 않는다.

꺾이는 건 인간이다.

김명운은 꺾이지 않을 테니, 너도.

“떠오르자.”

태양처럼.

* * *

우효민이 3주 차에 음악 방송 1위를 하는 건 기적이다.

음반 점수 없이.

방송 점수 없이.

음원 성적만으로 다른 아이돌과 뮤지션을 꺾어야 하니까. 그 진소유마저 3주 차의 승률을 계산하곤 깔끔하게 물러났다.

진소유조차 압도적인 음반 점수 없이 1위를 이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기적.

“말도 안 돼…….”

출근하자마자 우효민의 차트 성적 추이를 확인한 A&R팀 이재호가 경악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이게…… 말이…….”

[2주 차 ‘콜 미 설튼리’.

8일 차 TOP 7.

9일 차 TOP 6.

10일 차 TOP 5.

11일 차 TOP 4.

12일 차 TOP 3.

13일 차 TOP 1.

14일 차 TOP 1.]

그리고 3주 차.

월요일 현재.

[주간 차트 TOP1]

2주 차의 계단식 성적 상승.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TOP7에서 시작했던 곡이 주간 차트 1위에 등극했단 건…….

‘주말에 압도적으로 스트리밍 횟수가 증가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음원 플랫폼은 아이돌 팬덤의 스트리밍 줄 세우기를 막으려 혈안이 됐었다.

그 때문에 생긴 조건이 하나 있다.

한 시간에 한 번만 스트리밍 횟수를 집계한다.

그 조건이 생겨난 이후, 팬덤이 강한 보이그룹이 차트를 도배하는 일이 사라졌다.

더는 팬덤 화력으로 1위에 박아 넣거나, 앨범의 모든 곡을 차트에 밀어 넣는 게 불가능해졌다.

즉, 현재 음원 차트의 순위는 과거와 비교하면 철저하게 ‘대중이 많이 듣는 순위’였다.

‘주말의 스트리밍 횟수로 주간 차트 1위에 등극했다면…….’

심지어 TOP5 안에 줄곧 자리 잡고, 이제야 하향세를 보이는 진소유의 ‘하나였어’를 꺾었다면.

이건 과장 하나 없이…….

‘국민 대부분이 한 번쯤 들어본 수준이 아니면, 절대로…….’

* * *

[효민 ‘콜 미 설튼리’ 축하드립니다!]

꽃가루 폭죽이 터지며 모든 출연자가 웃는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바닥을 보고 있던 우효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전광판에는 그녀의 승리가 새겨져 있었다.

MC들이 우효민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마이크도.

[아.]

그리고.

[아, 흑…….]

우효민이 눈물을 터뜨렸다.

1위다.

컴백 첫 1위.

3주 차 음악 방송 1위.

우효민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진소유가 없는 왕좌를 채갔기에, 분한 마음에 우는 것일까.

아니었다.

이젠 진소유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말도 안 돼.’

아래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김명운은 경악했다.

‘진짜…….’

1위를 해버렸다.

음반 점수 없이.

투표 점수 없이.

방송 점수 없이.

‘음원만으로…….’

1위를 따냈다.

단순히 음악 방송 1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에, 결코 벌어질 리 없던 미래.

성필이 언급했던 ‘기적’이 펼쳐졌다.

‘만약 효민이가 3주 차에 1위를 한다면.’

저번 주 술자리에서 성필이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월간 차트 1위를 한단 것과 같은 말일 거예요.’

1년에 단 12곡.

1년 중 두 손에 꼽히는 뮤지션들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

‘음원만으로 소유 씨를…….’

아니.

‘모든 뮤지션을 꺾었단 뜻이 됩니다. 음반 점수와 방송 점수, 팬덤의 화력을 뒤로 둔 아이돌들마저 모두 꺾고 올라선 자리.’

그렇기에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자 기적이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상황과 기적이 펼쳐졌다.

김명운은 할 말을 잃었다.

앵콜 무대를 마친 우효민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우효민은 바로 앞에 김명운이 서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대, 대표니임…….”

“효민아…….”

김명운이 우효민을 거칠게 껴안았다.

우효민이 들고 있던 꽃다발이 둘 사이에 끼어 멋지게 흩날리며 떨어졌다.

“제가, 제가 말했잖아요!”

우효민이 거의 오열하며 외쳤다.

“진짜로 일어났잖아요, 기적!”

“기적이 아니야……!”

네가 이뤄낸 거야.

* * *

“이거 미쳤네 진짜…….”

성필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지만,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무실 모니터엔 믿을 수 없는 결과가 펼쳐져 있었다. 모든 직원이 모여 넋을 놓고 그걸 바라보았다.

총 스트리밍 횟수 1,300만 회 이상.

뮤직비디오 조회 수 3,000만 돌파.

이게 정말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솔로 가수의 기록인가? 보는 와중에도 믿기가 힘들었다.

연말까지 가면 재생 횟수와 조회 수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수준까지 증폭할 것이다.

‘1억 스트리밍까지 닿을지도 몰라.’

‘앨범의 황금 시기’ 때는 대성공의 기준이 앨범 100만 장 판매였다. 밀리언셀러.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단어다.

하지만 인터넷 발전으로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자, 앨범 판매량은 급감했다.

뮤지션들에겐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다.

밀리언셀러를 대체할 기준.

그게 바로 ‘1억 스트리밍’이다.

‘한국에서 1억 스트리밍이면 못 들어본 사람이 없을 수준이야.’

앨범의 황금기였다면 1억 스트리밍 곡은 앨범도 수십만, 수백만 장 팔았을 것이다.

‘이 기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반드시 닿는다.’

우효민은 올해 어떤 상이든 자랑스럽게 거머쥘 게 분명하다.

“가로 엔터가…….”

이재호가 황홀하여 말했다.

“월간 차트 1위 뮤지션을…… 배출했네요……. 방송을 미친 듯이 나간 효과를 본 걸까요?”

“아마 그것도 주요한 요인이었겠죠. 아무튼 한 사람에게라도 더 효민이의 노래를 듣게 했으니까요.”

“입소문이 퍼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걸까요. 어쨌건 효민 씨 고생이 보답받아서 다행이네요. 하긴, 그렇게 노력했으니…….”

“근데 또 그것만은 아니죠. 방송에 미친 듯이 나간다고 누구나 1위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요?”

방송 출연은 매니지먼트에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이었다. 그게 이번 결과의 원인이겠지만,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뭐, 돌고 돌아서 결국은…….”

* * *

이음 엔터.

우효민은 화려하게 꾸민 소파에 앉아 여왕처럼 술잔을 들어 올렸다. 김명운을 필두로 이음 엔터의 직원들이 잔을 들었다.

“자, 대표님. 발표해주세요.”

“그래.”

김명운이 스읍 숨을 삼키고, 외쳤다.

“막판의 대역전! 신화를 쓴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티스트, 월간 차트 1위 가수 효민이를 위하여!”

건배―!

김명운의 함성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잔이 솟아올랐다. 술이 비처럼 내리자 다들 크게 웃으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우효민이 아기처럼 까르륵 웃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워터 멜론 차트에서 인쇄한 순위표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다.

[월간 차트 1위

효민 ‘Call me certainly’]

김명운의 말마따나 막판의 대역전극.

돌고 돌아, 프로듀싱의 승리.

* * *

‘콜 미 설튼리’는 초기 김명운의 계획과 달라졌다. 퍼포먼스와 화보를 결합한 일반적인 아이돌 뮤직비디오와 달리 스토리가 들어갔다.

그 스토리를 위해 음악이 멈추고 연기와 서사가 주가 되는 순간이 추가됐다.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다. 이런 식의 연출은 독이 될 수 있다. 김명운이 그리 말했지만, 성필은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이 곡은 뮤직비디오이면서 ‘필름’일 수 있어요. 필름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서사가 있어요.”

뮤직‘비디오’.

댄스 가수의 시초인 마이클 잭슨은 뮤직비디오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었다. 뮤직비디오의 새로운 스테레오타입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뮤직비디오를 ‘필름’이라고 불렀다.

“현재와 같은 뮤직비디오가 시초인 게 아니에요.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뮤직비디오는 ‘음악 영화’예요. 효민이의 곡엔 그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하여 ‘콜 미 설튼리’의 재생 시간은 곡의 3분 10초보다 1분 30초나 더 길었다.

뮤직비디오 총 재생 시간 4분 40초.

그 중간.

전단지를 뿌리던 우효민이 누군가와 부딪쳐 전단지를 쏟는다. 그녀는 무릎을 꿇는다.

앵글이 그녀에게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묻는다.

[그만할까?]

무릎 꿇은 우효민 뒤로 무채색 무관심의 군중이 끝도 없이 지나간다. 그녀가 뿌린 전단지를 관심 없단 듯이 밟으면서.

카메라는 우효민에게서 천천히 하늘로 옮겨간다.

하늘 저 멀리 구름 사이엔 돌고래가 날아다닌다.

비현실적인 풍경을 비춘 카메라는 다시 우효민을 내려다본다.

우효민이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줍는다.

그리고.

[아뇨.]

곡이 이어진다.

‘콜 미 설튼리’의 하이라이트.

세상이 화려하게 물든다.

지루함에서 모두를 구하러 온 사랑의 응급 구조 요원.

그녀가 외친다.

[나를 불러줘!]

사람들이 하늘을 본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돌고래를 본다.

비현실적인 풍경은 사람들이 어릴 적 잃어버린 꿈이다.

꿈을 보게 된 사람들 속에서 우효민이 다시금 노래한다.

[Call me certainly!]

나를 꼭 불러줘!

내 이름을!

[지루함에서 너를!]

구하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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