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67화 (667/760)

667화

홍규헌은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민경섭이 몇 개피째인지도 모를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한두 번은 우연일 수도 있잖아요. 근데 그게 계속되면 누가 뭘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의상 때문에 첫 주차 음방 출연을 거부했던 방송국은, 그래, 그럴 수 있단 거고. 그 방송사의 예능 출연이 막히는 것도, 그래, 그럴 수 있단 거지?”

“근데 나머지 하나까지 입장을 바꾸는 건 확실히 이상해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제가 피해망상인 게 아닙니다.”

“알아.”

홍규헌은 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진 않았다.

충분히 폐가 아프다.

“KS 엔터인가?”

“그럴 수 있죠. 소녀연맹이 사다리 잡고 올라가니까 발로 얼굴 퍽퍽 밟는 거예요.”

“SMS 엔터는?”

“케이콘에서 처발린 걸로 앙심을 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죠. 소련이들이 못 올라가게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는 거예요.”

“YJS는 우리랑 접점이 없지?”

“네.”

“WTP 소속사는…….”

“사장님이 인수를 거부하셨어요.”

홍규헌이 미간을 좁혔다.

“왜 내가 잘못했단 것처럼 말해?”

“잘못이란 건 아니구요…….”

“또 야자수 뮤직도 접촉해왔었지. 산하 레이블로 들어오라고.”

“그것도 사장님이 찼…….”

홍규헌이 술병을 몽둥이처럼 역으로 들자 민경섭의 목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홍규헌은 술병을 천천히 테이블 위로 올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인가…….”

세상이 억까한다.

“가시를 너무 빨리 드러냈나.”

우효민과 웨이퍼센트를 가로 엔터로 들인 건 경쟁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특히 우효민의 성공엔 간담이 서늘해졌겠지.

“아니요, 지금이어야만 했습니다.”

한구인이 우울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조금이나마 희망찬 부분을 보려 노력했다.

“소녀연맹만 성장해선 안 됩니다. 가로 엔터의 브랜드 파워가 소녀연맹에게 투사될 때 임계점을 넘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다 같이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그 판단이 흔들리진 않았어. 단지, 예상외로 외풍이 거세잖아. 이게 뭐야. 진짜 대형 기획사들이 다른 아티스트의 방송 출연을 막을 수 있는 거였어? 아니, 기획사가 이 정도면 재벌은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거 아냐?”

다들 대답하지 않았다.

“농담이었어. 웃어.”

다들 억지로 웃었다.

안 웃으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

재벌 농담에 면역인 한구인만이 아까와 같은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잖습니까. 수없이 많은 우연이 겹쳐서 우연히 발생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세상이 우릴 까내리는 거지.”

홍규헌은 눈가를 비볐다. 아까부터 걱정만 했더니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사 들고 3대 기획사와 대형 유통사에 인사라도 다닐걸. 그럼 예쁘게 봐줘서 이런 짓은 안 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실없는 농담을 떠올린 홍규헌이 픽 웃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자신만만한 얼굴인 박 이사는 어떻게 생각해?”

모두의 이목이 성필에게로 향했다.

홍규헌의 말대로, 성필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무표정이었지만, 그 무표정엔 달관한 자 특유의 아우라가 감돌았다.

분명 어떠한 계획이 있는 것이다.

“…….”

성필은 대답이 없었다.

“박 이사?”

“……아, 네? 부르셨어요?”

“어떻게 생각하냐고.”

“아…… 뭘요?”

홍규헌이 성필을 구타했다.

그녀의 무호흡 연타에 성필은 가드를 올리며 필사적으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옛날부터 봤어. 조금씩 내 말 씹기 시작하더니, 사장실에 불려온 상황에서도 이래? 죽을래? 아니, 죽어라.”

“죄, 죄송합니다! 제가 멀티태스킹이 진짜 안 돼서요! 수첩도 맨날 가지고 다니면서 잊어먹을까 봐 써두잖아요!”

“‘영원히 함께야’ 선언은 철회다.”

“그것만은……!”

홍규헌의 구타가 끝났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곤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무슨 생각이었는데? 뭐, 퍼포먼스 디렉팅 관련해서야?”

“아뇨, 슬슬 다음 단계로 가야 할까 하고요. 좀…… 경우의 수? 같은 거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음 단계?”

“탈조선이요.”

…….

“아, 이게 인터넷 밈인데 탈조선이 대한민국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나도 알아.”

“우리나라 유통사 제끼고 해외 유통사와 직계약을 맺는 겁니다.”

세계 음악 시장은 3대 유통사가 지배한다.

다국적 뮤직 엔터테인먼트사(社)이자 초국적 음악 유통사인 동시에 초거대 음반 레이블.

그들 앞에선 워터 멜론 뮤직이든 야자수 뮤직이든 전부 하룻강아지다.

물론 한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긍적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 기업들이 다국적 자본의 침식을 저지한 것이다.

케이팝이 글로벌성을 획득하고도 한국 미디어와 유통사에 휘둘리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럼 한국 유통에서 어드밴티지를 많이 잃을 텐데. 레코드점 이벤트나 홍보 같은 걸로.”

“상관없어요.”

홍규헌은 옛날이 이 계획을 들은 적이 있었다.

들은 데서 그치지 않고 기획서까지 올라왔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먼 미래의 일일 터였다.

이렇게 가까운 시기에 성필이 주장할 줄은 몰랐다.

“소련이들은 해외 팬덤이 더 세니까? 근데 그건 너무…….”

“네, 배수진을 치자는 겁니다.”

성필은 진심이었다.

홍규헌도 그걸 눈치챘다.

그는 현재 상황에 분개하여 모든 걸 놓은 게 아니었다.

“원래부터 한국보다 해외 팬덤이 세서, 그쪽에 중점을 맞추면서 활동했잖아요. 지금까진 해외에서 반응이 오면 ‘와 좋다’ 수준이었는데, 이젠 안 그럴 겁니다.”

“그러면?”

“해외에서 성공 못 하면 진짜 X된다는 마인드로 갑니다.”

“어, 진짜 X될 거 같긴 하네.”

“사장님의 꿈이 최고의 기획사 수장이 되시는 거잖아요.”

“내 꿈은 내가 반할 수 있는 걸그룹을 만드는 거였어.”

“그 꿈을 들었을 때부터, 저는 이런 상황이 올 걸 예상했어요. 귀엽게만 봐주던 기획사들이 ‘이 새끼 봐라?’라면서 본격적으로 식칼 들고 달려드는 상황이요. 슈슉 슈슈슉, 저희 얼굴에 칼끝을 들이밀고 있어요.”

“내 말 듣고 있어?”

“저는 사장님의 꿈을 꼭 이뤄드리고 싶어요. 그 꿈에 맞춘 스텝이 다 있습니다. 옛날부터 제가 미국 미국 노래를 불렀던 게 그 이유 때문이었어요.”

“강성욱 대표를 동경해서가 아니었어?”

“특히 이번 앨범은 영어 버전 곡도 넣었으니, 분명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롱 포’의 발매 이후 해외 팬을 위한 팬 인프라 확립에 힘을 쏟았던 것도 이때를 위해서입니다.”

“그건 한 이사가 먼저 제안했지 않나.”

“‘뉴아사’라는 도박수를 두면서까지 일본 진출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저희의 성장을 막을 기득권층의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웨벡스한테 속아서 어쩔 수 없이 나간 거 아니었어?”

“시원하게 갑시다. 한국 시장 X까라.”

정확히 3년 전부터, 성필의 눈은 한국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연맹의 두 번째 곡인 ‘롱 포’가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고, 그 성과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부터였다.

“텔레비전 방송? 라디오? 유통사 아이튜브 콘텐츠 채널? 얼마든지 막으라고 해요. 우리 애들이 다시 이 땅을 밟았을 땐, 제발 나와달라고 사정하게 될 거니까요.”

“와, 자기 할 말만 지껄이는데 멋있을 수도 있네.”

“헤헤. 그리고 또 다른 기획사 뮤지션들이 일본에 진출하려고 하면 웨벡스한테 부탁해서 새싹부터 밟읍시다.”

“그건 정정당당하지 않아서 싫은데.”

“사실은 저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성필이 민경섭에게 검지를 까딱였다.

민경섭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성필이 다시 검지를 까딱였다.

“뭐 어쩌라고요.”

“좀 마음이 맞았으면 좋겠다, 경섭아. 그거, 컴백 트레일러 1번 아이튜브로 좀 찾아줘.”

민경섭이 폰을 꺼내어 ‘에, 아타시? 소오, 아타시!’ 뮤직비디오를 찾았다.

“소녀연맹의 가장 주요한 홍보 채널은 아이튜브였습니다.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건 변치 않아요. 그게 제가 정한 신념이고 법칙이었습니다.”

백설하가 ‘음악을 위한 동행’에 출연했을 시점.

성필이 없는 가로 엔터에서 콘텐츠팀 양상헌이 이런 제안을 가져왔던 적이 있었다.

소녀연맹의 영상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하자고. 뷔라이브의 독점 콘텐츠 시스템과, 독점 계약에 따른 뷔라이브의 지원을 활용해서 수익 모델을 새롭게 추가하자고.

성필은 반대했었다.

성필의 신념을 잘 아는 한구인도 반대하여, 결국 그 안은 무산됐었다.

소녀연맹은 무료로 콘텐츠를 푼다.

기한은, 세계로 퍼질 때까지.

“이젠 세계로 퍼졌어요. 그 시기에 맞추어 위어스 입점도 결정됐습니다. 또한 ‘오토마타’에서, 매우 고맙게도 빌보드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세상이 억까함에도, 저희가 쌓아온 발판이 착실히 저희를 위로 데려다줍니다.”

공들여 쌓아온 탑은 배신하지 않는다.

첫 발판을 잘 쌓았다면, 결국엔 원하는 장소에 닿을 수 있다.

이젠 닿을 때다.

“이게 그 근거입니다.”

성필이 민경섭을 보았다.

“레거시 미디어 프로모션 따위 조금도 필요 없다는 증거.”

민경섭이 폰 화면을 돌려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 컴백 트레일러#1, 에, 아타시? 소오, 아타시!’.

조회 수 약 2,500만.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컴백 트레일러로 사용된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가 2,000만이다.

“이 뮤비의 조회 수가 1,000만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아세요?”

23시간이다.

“하루도 안 되어 1,000만 명이 봤습니다.”

이건 타이틀곡이 아니다.

그 어떠한 프로모션도 진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뮤직비디오 자체가 프로모션이니까.

“이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두고, 제가 두려워할까요? 겁을 먹을까요?”

죽이라고 해라.

팔을 비틀고 다리를 잘라내라고 해라.

그래도 소녀연맹은 주저앉지 않는다.

가로 엔터는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 무엇보다 강력한 홍보 수단이 있으니까.

“저희의 뒤엔 인민이들이 있습니다.”

인민이 소련의 힘이다.

“거인들이 방해하면, 소련이들에게 흠집을 줄 순 있겠죠. 이번 앨범에서 원하던 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코 무너지진 않습니다. 조금이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결국엔 목표에 닿을 겁니다. 대형 기획사들이 쌓은 30년의 인맥. 대형 유통사들이 가진 자본의 힘. 그걸 뛰어넘을 수 없다면, 한국을 벗어납시다.”

글로벌 뮤지션이라면, 세계를 대상으로 놀자.

“사장님께 약속드리겠습니다. 올해 내에, 모든 방송국이 가로 엔터로 찾아와 제발 방송에 나와달라고 무릎 꿇고 빌게 될 겁니다. 못 이룬다면, 그때야말로 ‘영원히 함께야’ 선언을 철회하셔도 됩니다.”

“…….”

홍규헌은 멍하니 성필을 쳐다보았다.

민경섭이 그녀에게로 다가가 소곤소곤 말했다.

“프러포즈 받으셨잖아요. 빨리 대답하세요.”

“받아줘, 짝! 받아줘, 짝!”

참고로 방금 건 성필이 말했다.

“그래, 받아줄게.”

“우와아아아악!”

성필과 민경섭이 서로 껴안고 방방 뛰었다.

“김덕팔 부장…… 님 모셔와!”

홍규헌의 호령이 떨어지자 얼마 안 가 김덕팔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자욱한 담배 연기를 보곤 굉장히 당황했다.

“김 부장님, 지금 당장 캐리어 싸세요. 글로벌 3대 유통사와 접촉해서 글로벌 배급 계약 조건을 검토해서 가져오세요.”

“누구, 저요?”

김덕팔이 스스로를 가리켰다.

홍규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요.”

김덕팔의 눈꺼풀이 노화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파들파들 떨렸다.

“아……?”

그가 30년 전을 떠올렸다.

사장이 록스타를 섭외해서 오란 명령 하나만 던져왔던 때였다.

‘아, 늙으면 좀 편해지나 싶었건만…….’

졸지에 세계여행을 떠나게 됐다.

“부장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건 전부 드릴게요.”

김덕팔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노리시는 시장은 어디입니까?”

“미국입니다.”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미국 뮤직 비즈니스에 정통한 변호사요. 일단 미국에 들르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소통이 중요합니다. 계속 사장님께 연락드리며 조건을 계속 검토하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답변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김덕팔이 척 사장실을 나섰다.

문을 나서선, 그가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저 해외로 출장 가야 해요…….”

[아니 아니, 그 나이에 무슨 해외 출장이에요?]

“그렇게 됐어요…….”

[거기 사장님도 너무하시지, 늙고 병든 당신 너무 막 쓰는 거 아니에요?]

“전 늙고 병들지 않았어요. 출장 따위 수백 번도 더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건강해요.”

[지금 건강해서 뭐 해요. 이젠 쓸 데도 없는데.]

“……지금 집에 갈 텐데, 짐 좀 싸주세요.”

[며칠?]

족히…….

“한 달은 넘겠지요.”

* * *

김채현 20세.

여름방학.

그녀는 포도밭에 깔린 비닐을 질질 끌어 한곳으로 모았다. 비닐이라 얕봤더니, 무게가 수십 킬로그램은 될 듯했다.

땀이 비처럼 흐른다.

“시이바알…….”

잘생긴 선배가 많아서 들어간 봉사활동 동아리.

끌리는 선배가 있었다.

그런데 동아리를 나가버렸다.

심지어 동아리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고서 사라져버렸다.

“시이발…….”

농촌 봉사 활동.

김채현은 안 그래도 마음이 적적한데 힘겨운 육체노동까지 하니 죽을 지경이었다.

“어이, 김 처자! 새참 먹고 해!”

김채현은 사흘 만에 농촌인이 다 됐다. 그늘로 들어가 막걸리와 국수를 후루룩 쩝쩝 해결했다.

그늘에 있는데도 땀이 미친 듯이 흐른다.

시간이 좀 남았다.

김채현은 몸빼 바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알림이 있다.

트잇터. 트잇터. 트잇터. 스타그래프. 스타그래프. 그리고 아이튜브…….

“어?”

[Girls’ League(소녀연맹)

OUR PRODUCING SEASON THREE : SONG FOR PEOPLE

SECOND TRACK ‘호흡(Breathe)’

Comeback trailer #2]

눌렀다.

2분 30초의 뮤직비디오였다.

송 포 피플 두 번째 트랙.

즉, 앨범의 두 번째 곡.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은 백설하였다.

“컴백 프로모션으로 뮤비를 두 개……?”

덥고 힘들어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기쁨이란 감정만이 느껴진다.

멍하니 백설하의 ‘호흡’을 듣다 보니, 머리가 번쩍였다.

하드하게 소련을 판 인민이라면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

첫 컴백 트레일러는 리카였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컴백 트레일러는 백설하였다.

소녀연맹 멤버 영입 순서다.

‘설마?’

김채현은 재빨리 트잇터에 접속했다.

컴백 트레일러가 뜨자마자 소녀연맹 이야기로 난리였다. 게다가, 다른 인민이들도 이 규칙성을 발견한 듯했다.

‘다른 멤버들 개인곡 뮤비도 다 나오는 거야?’

컴백 프로모션 때문에 뮤비를 다섯 개나 만들었다고? 그걸 컴백 타이틀곡 공개 전까지 차례로 발표하는 건가?

‘6년 차 아저씨 그룹 웨이퍼센트를 사들였다더니, 머리에 곰팡이가 핀 게 아니었어?’

만약 정말 멤버별로 솔로곡 뮤직비디오를 발표한다면, 타이틀곡 뮤비까지 합쳐 총 6개다.

공연예술학과인 김채현은 선배들에게 뮤직비디오 제작 비용을 들을 기회가 몇 있었다.

정말 많이 쓰면 5억 이상도 간다.

사람들이 봐줄 만하게 만들자면 1억을 넘긴다.

‘퍼스트 트랙인 리카의 뮤비도 그랬지만, 설하 뮤비도 퀄리티가 도저히…….’

최저 수준인 1억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가로 엔터는 소녀연맹 프로모션 비디오 제작만으로 벌써 10억 이상을 태웠단 계산이 나온다.

오로지 컴백 홍보만을 위해서.

가로 엔터의 작년 영업익이 30억, 아니, 50억은 될까? 이음 엔터에 지분 투자하고, 웨이퍼센트를 사들였으니 곤궁할 것이다.

30억도 많이 친 거다.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겠지.

그런 곤궁한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돈을 죄다 이번 앨범에 들이박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건 다른 의미로 머리에 곰팡이가 핀…… 건가?’

엔터 관련 학과에 있다 보니, 김채현이 소녀연맹을 바라보는 시선은 고등학생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힘을 좀 준 그룹을 데뷔시키는 데 20억이 든다는데. 가로 엔터는 그룹도 만들 수 있는 돈을 소녀연맹 컴백 홍보를 위해서 쓴 거야? 갑자기?’

턱에 맺힌 땀이 툭 액정에 떨어졌다. 떨어진 땀 액정을 어지럽혔고, 저절로 ‘좋아요’가 눌렸다.

‘아니, 갑자기가 아니야. 가로 엔터는 항상 이랬어.’

자그마한 회사일 때부터, 꽤 힘을 주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로 엔터는 작든 크든 소녀연맹에게 진심이었다.

김채현은 트잇터의 바다를 다니며 뮤비 ‘호흡’에 나온 백설하의 움짤을 수집했다.

“흐헤헤, 설하 너무 예쁘다…….”

“어이 김 씨! 중얼거리지 말고 와서 비닐 벗겨!”

여름이었다.

소녀연맹 컴백까지 D―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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