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화
교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활기를 뿜어냈다.
슬슬 날씨가 쌀쌀하지만 학생들은 아직 반팔 하복을 입었다. 옷만큼 하늘거리는 생기 있는 움직임과 말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남학생들은 무슨 목적에선지 책상 사이를 빠르게 왔다갔다거렸고, 여학생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떨었다.
개중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매우 좋은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공부하는 학생이 몇 섞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 한 소녀가 있다.
김마리아, 17세(만 16세).
그녀는 친구가 없다.
“…….”
김마리아는 입 안이 건조하여 입술을 혀로 살짝 핥았다. 그녀의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은 책상 위에 놓인 화집(畫集)이었다.
학교 미술 교사의 특이한 취향 덕분에 도서실에는 온갖 화집이 가득했다.
친구가 없는 김마리아가 쉬는 시간에 하는 일은 그 화집을 하염없이 보는 것이었다. 지금 보는 화집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것이었다.
“아.”
김마리아가 낮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디선가 자주 본 적 있는 파도 그림이 나왔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라는 이름이라고 한다.
미디어에서 보일 때는 파도만 신경 썼었는데, 가만히 뜯어 보니 배가 있다. 거기에 개처럼 엎드린 인간들이 여럿 매달려 있다.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 김마리아는 특별해보였다. 과연, 김마리아는 친구들과 비교할 수 없는 남다른 감수성으로 단단한 고독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나도 얘기하고 싶어…….’
그냥 사회성이 없는 것이었다.
중학생이라고 해도 어련히 믿을 법한 작은 체구와 마른 몸. 거기에 축 늘어진 어깨와 소심한 목소리.
몸도 성격도 오빠인 김사무엘과는 완전히 달랐다.
학기 초 가끔 대화를 나누러 오던 아이들도 어느샌가 자신들만의 무리를 이루었다. 김마리아는 특유의 목에 무엇이 걸린 듯한 긴장한 목소리와 사회성이라곤 없는 화법 덕에, 친구가 없었다.
그녀는 친구를 바랐지만,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은 그녀에게 너무나 힘겹고 고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비참하다.
그래서 김마리아는 열중할 것을 찾았다. 마치 이 일 때문에 인간관계에는 관심이 없단 것처럼.
그게 화집을 보는 일이었다.
일부러 아이들이 시야에 안 들어오도록 고개를 팍 숙인 채, 인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몰두했다.
“남돌 새로 나왔더라.”
“진짜? 이름 뭔데?”
“카오틱 에너지.”
김마리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소리는 옆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녀는 숙인 얼굴에 베일처럼 내려온 머리칼 너머로 눈을 돌렸다. 머리카락의 커튼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보인다.
“카오틱 에너지?”
그룹명을 들은 아이가 웃었다.
“질리지도 않고 나오네.”
“관심 없어?”
“어차피 다 대형 기획사 하위호환이잖아. 마이너 아이돌 빠는 거 다 홍대병이라니까?”
“티저 봤는데 중소 느낌 없어.”
“어디서 만들었는데?”
“소녀연맹 기획사.”
“아 진짜?”
그제야 조소하던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학생이 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핸드폰 수거 시간 때 공기계를 낸 모양이다.
“얘가 리더인데 좀 잘생기지 않음?”
카오틱 에너지의 리더라면 김사무엘이다. 김마리아의 오빠.
‘오빠가 잘생기긴 했지…….’
김마리아는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뺨을 발그레 붉혔다.
그때 사진을 본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버터 처먹은 공룡처럼 생겼는데?”
김마리아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떨렸다.
“별로.”
별로, 별로라고?
그리고, 버터 처먹은 공룡?
김마리아는 살면서 자신의 오빠보다 잘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비빌 만한 인물이라면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을 배우 정도였다.
그런데, 별로라고?
저 아이 주변의 남자들은 대체 얼마나 잘생겼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김마리아가 검지와 엄지로 꾹 쥔 페이지가 조금씩 구겨졌다.
“아 근데 춤도 잘 춰.”
“……뭐야, 너 영업하는 거였어?”
“너 그룹 데뷔할 때부터 좋아한 적 없댔잖아. 이거 티저인데 봐봐.”
“좋아해도 메이저 좋아하지 중소를…….”
김마리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만을 그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조각난 유리잔에 난 금처럼 붉은 선이 이리저리 그어졌다.
감상을 끝난 아이가 말했다.
“야, 요즘은 다 이 정도 하잖아. 당연하지.”
당연하다.
그 말을 듣고 김마리아는 어지러워졌다.
김사무엘의 티저 영상을, 김마리아는 수십 번도 넘게 보았다.
김사무엘이 댄스 스튜디오에서 여러 댄서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중앙으로 나선다. 그는 어깨를 몇 번 돌리더니 곧이어 춤을 춘다.
하체에 방점을 둔 춤이어서 그의 스텝은 독수리의 날갯짓처럼 현란했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로 관절이 움직이고, 해보지 않아도 힘이 많이 필요한 동작을 부드럽게 해낸다.
최후는 비보잉 파워 무브로 끝내고 주변의 갈채와 환호가 쏟아진다.
‘당연…….’
당연하지 않다.
김마리아는 김사무엘과의 어느 데이트를 기억한다. 함께 식사하는 와중 김사무엘은 미간을 좁히며 검지 마디로 앞니를 꾹꾹 눌렀었다.
피가 배어 나왔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김사무엘은 주저하다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동생이 더 걱정하리라 여겼는지 간단하게 이유를 읊었다.
연습하던 춤 중에서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신체를 지탱하게 하는 동작이 있었다. 바닥을 짚은 채 상체를 기울이고 마침내 하체를 올려 발을 천장으로 향하게 한다.
그때 팔에서 힘이 빠져, 그대로 얼굴을 바닥에 박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앞니가 흔들린다고.
김마리아는 눈물이 나왔었다.
오빠는 자신을 위해 이런 상처를 감내하면서까지, 매일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빠가 만들어낸 춤을.
‘당연하다고…….’
당연한 노력 같은 건 없는데.
보기에 쉬워 보인다고, 그게 정말 쉬운 건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노력 또한 결코 적은 게 아닐 터다.
김마리아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갑자기 의자를 드르륵 끌면서 일어났으니 그럴 만하다. 심지어 학교에서 한두 마디조차 하지 않는 김마리아가 그러니 이목이 모이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 아…….”
김마리아는 그대로 교실을 뛰쳐나갔다.
‘오빠, 미안…….’
오빠의 노력이 무시당하는데도 제대로 한마디 쏘아붙일 수도 없는 자신이 미웠다.
* * *
카오틱 에너지 멤버들이 대기실에 일렬로 서 있다. 그들은 전신을 덮는 올블랙 테크웨어 복장이었다.
누군가는 번쩍이는 검은 가죽 재질이었고, 또 누군가는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는 새까만 나일론 재질이었다.
살짝 움직일 때마다 전신에 주렁주렁 걸친 은빛의 액세서리들이 흔들린다.
그들의 앞에, 성필과 손혜빈이 서 있다.
“케이아틱 에너지.”
손혜빈이 혀를 굴리며 그들을 불렀다.
“잠은…… 못 잤겠지.”
어제 새벽까지 회사 연습실에서 대기하다가 그대로 샵에 가서 스타일링을 마쳤다.
그리고 아침에 방송국에 도착하여 현재, 사전 녹화 시간에 이르렀다.
“너희 선배들도 그랬어. 연습실에서 자기들끼리 얘기 나누다가 한숨도 못 자고 데뷔 무대 치렀지. 너희도 똑같네. 나도 그랬었고.”
손혜빈은 본인의 데뷔 무대를 떠올렸다.
긴장 때문에 토할 것 같았었다. 차라리 토를 하고 싶어서 변기를 부여잡고 손가락을 혀 깊숙이 넣기도 했었다.
토는 하지 못했다.
기분도 좋지 못했다.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그럼에도, 손혜빈은 완벽히 무대를 마쳤었다.
“헛된 격려는 안 할게. 이 순간에 너희가 믿을 건 너희의 노력밖에 없어. 자다가 깨워도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을 수준으로 했잖아. 그러니까, 오늘 무대에 서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다섯 명의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명 고글을 쓰고 있던 유우토는 그것을 이마로 올린 후 눈가의 땀을 닦았다.
손혜빈이 웃으면서 그의 고글을 벗겨주었다.
“무대 가기 전에 스타일리스트님한테 맡겨서 쓰게 해달라고 해.”
“네, 네에.”
“음, 다시 보니까…….”
손혜빈은 유우토에게 고글을 돌려주곤 콜베르를 쳐다보았다. 그의 귀에 주렁주렁 달린 피어싱 체인을 보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너무 과했나 싶네. 그 피어싱 귀찌지? 춤추다가 떨어지진 않으려나?”
“한두 번 떨어졌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안쪽에 끼워서 괜찮을 겁니다.”
“불편하진 않고?”
콜베르가 씩 미소 지었다.
“살짝요. 그런데 원래 패션은 불편한 거니까요. 특히 테크웨어는 이름과 다르게 그다지 편함을 추구하지도 않으니까요.”
“스타일링에 불만 있어?”
“아,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손혜빈은 콜베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무언가 또 말하려고 했지만, 더는 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카오틱 에너지처럼, 혹은 그들보다 훨씬 더 심장이 크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목소리에 짙은 떨림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성필에게 차례를 넘겨주었다.
총괄 프로듀서가 자신들의 앞으로 나오자 멤버들은 또 긴장했다.
“시간 더 필요한 사람?”
다들 무슨 뜻인지 몰라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했다거나, 준비가 부족했다고 느끼는 사람. 조금만 더 준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있어?”
사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마음 같아선 데뷔가 영원히 찾아오지 않길 바라기도 했었다. 연습하면 할수록 부족한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였으니까.
적어도 일주일만 더 있어도 이보다는 나았을 거고, 한 달이었다면 그보다 훨씬 더, 그리고 또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부족했다면 데뷔 안 시켰어.”
그 말이 전부였다.
성필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그건 카오틱 에너지 멤버들에게 전에 없던 의지를 불어넣었다.
기적을 만든 프로듀서가 자신들이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스스로를 믿는 데 그보다 더 나은 계기는 없었다.
“설령 망하더라도, 그건 내 책임이니까.”
성필이 말했다.
“너희가 가진 것 이상이 아니라, 딱 너희가 가진 것만 보여주고 와. 그걸로도 충분하고 넘쳐.”
“예!”
군인 같은 대답에 옆에 있던 민경섭이 웃었다.
저들 중 세 명은 훗날 정말 군대에 갈 거라고 생각하니 씁쓸해지기도 했다.
“자, 구호 외치고 가자!”
손혜빈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카오틱 에너지 멤버들이 머뭇거렸다. 그때 김사무엘이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손혜빈의 손등 위에 손을 겹쳤다. 이어서 멤버들의 손이 몰려왔다.
손혜빈이 외쳤다.
“컴베인드 위어들리, 케이아틱 에너지!”
멤버들이 외쳤다.
“조인 어스!”
다 함께 손을 위로 쳐들었다.
“포 유어 라이프!”
민경섭을 필두로 멤버들이 따랐다.
민경섭의 바로 뒤로 따라가는 김사무엘이 자신의 뺨을 세게 짝짝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화장이 망가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통풍이 잘 안 되는 소재의 옷을 입어서 현기증이 날 만큼 더웠다. 아니, 옷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인 듯했다.
몸에 밴 땀을 느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스테이지에 도착했다. 이전 차례인 선배 그룹, PTR―17의 유닛 멤버 두 명이 내려왔다.
그 뒤로 가로 엔터의 스테이지 스태프들이 무대를 꾸미기 시작했다.
‘소녀연맹 선배님들이 데뷔할 땐 꿈도 못 꿨을…….’
자본이 들어간 스테이지.
그곳은 검게 그을린 세계 같았다. 온갖 구조물이 마법처럼 자리를 채울 때마다, 그곳은 단순한 무대가 아닌 또 다른 세계로 화했다.
마치 레이저 폭격이 휩쓸고 지나간 듯 검은 그을음이 남은 대지(大地). 그 뒤의 스크린에 짙푸른 우주가 떠오르자, 세계가 완성됐다.
멤버들이 꿈에도 꾸지 못했던 그들만의 세계다.
가로 엔터의 모두가 혼신을 다하여 준비했을 그 세계로, 멤버들이 발을 디뎠다.
무대로 한 발자국 나온 순간, 스테이지 옆의 스태프 공간에선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관객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조명이 비쳐와 눈을 찌푸린 순간.
“와아아아아아―!”
함성, 거의 비명이 귀를 휩쓸었다.
수축했던 동공이 빛에 적응하여 팽창했다. 그러자 보인 건 수십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카오틱 에너지가 나타나자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내질렀다.
김사무엘은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 데뷔했는데…….”
사전 녹화에 찾아올 팬이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김사무엘은 소름이 돋았다.
‘팬이라고?’
나한테 팬이 있다고?
팬,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자신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건가? 어째서?
“야.”
그때 등에 닿은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옷 너머로 느껴지는 것이라, 감촉보다는 압력에 가까웠다.
백수현의 얼굴이 옆에서 나타났다.
“움직여. 멀뚱히 뭐 해.”
“아.”
김사무엘은 뻣뻣한 다리를 움직였다. 그것을 보고 웃는 이들이 몇 있었다. 그답지 않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화장이 진해서 다행이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정면으로 들었다. 그러자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손끝과 발끝이 덜덜 떨리며, 감각이 사라졌다.
토할 것 같다.
몇 대나 되는 카메라가 칠흑 같은 렌즈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그 응시가 뱃속을 꿰뚫어 헤집는 것 같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얼굴색도 그와 같아졌다.
철분이 부족한 사람처럼 입술이 흔들린.
“아으아아악!”
김사무엘이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누군가 그의 뒷목을 붙잡고 꽉 쥐었다. 마사지 이상의 힘을 받은 목에 고통이 전해져 김사무엘의 사지가 기괴하게 꺾였다.
무릎을 꿇으려던 순간, 뒷목에서 손이 떨어졌다.
김사무엘은 괴로움 때문에 젖은 눈동자로 이 폭행의 진원지, 백수현을 바라보았다.
그가 씩 웃었다.
“긴장 풀어.”
“죽고 싶……!”
김사무엘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막았다. 아직 인이어 마이크가 ON 상태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백수현이 말을 이었다.
“긴장 풀고, 저기 봐. 아는 사람 왔어.”
아는 사람이란 소리에 김사무엘이 퍼뜩 그곳을 보았다.
“끼에에에에에엑!”
괴상한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정말로, 아는 사람이었다.
“채현이…….”
고등학교 동창 김채현이었다. 그녀는 발광 스틱을 양손에 들고 미친 듯이 흔드는 중이었다.
괴성은 덤이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김사무엘은 넋이 나갔다. 김채현이 응원하러 왔다. 카오틱 에너지의 팬으로서. 아니, 자신의 팬으로?
친구가 팬이 됐다고?
“끼아아아아악!”
저 괴성이 향하는 곳이…….
“음?”
김사무엘은 김채현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단 것을 깨달았다. 그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실 따라가듯 따라가니, 임한결이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그는 나이대다운 싱그러운 수줍음과 함께, 소심하게 여기저기 손을 흔드는 중이었다.
그의 시원스러운 눈썹이 움직일 때마다 여럿이 비명을 내지른다. 특히 김채현이.
“끼에에에에엣!”
“…….”
김사무엘은 헛웃음을 뱉었다.
“긴장 풀렸냐?”
백수현의 물음에, 김사무엘은 크게 심호흡했다.
“내려가서 보자.”
“그러든가.”
스탠바이!
모든 카메라에 일제히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긴장한 마음과는 별개로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스피커 주위만이 아니라 공간을 진동시키는 베이스 음이 무대를 휩쓸었다.
그게 신호였다.
일렬로 서 있던 멤버들이 발을 바닥에서 떼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산개했다. 얼음 위에 발을 올린 것처럼 움직이던 중, 김사무엘이 손을 앞으로 확 뻗었다.
“You, it’s fantasy.”
기묘하게 뒤얽힌 환상.
“잡아.”
떨어지지 않도록.
카오틱 에너지 데뷔곡, ‘트위스티드 카오스(Twisted Chaos)’가 울려 퍼졌다.
* * *
스테이지 스튜디오의 구석.
성필은 옆에 선 손혜빈의 반응을 보았다. 카오틱 에너지의 무대보다 그녀를 보는 시간이 길었다.
멤버들에겐 미안하지만, 당연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예를 들어, 감독이 시사회에서 영화보다 관객과 스태프, 평론가와 초대 손님들의 반응을 더욱 살피는 것과 비슷했다.
손혜빈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이마를 감싸 쥐는가 싶다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또 팔짱을 끼거나 강박적으로 발을 구르기도 했다.
정신 사나운 변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다. 위치를 바꾸는 별, 형태를 바꾸는 달과는 전혀 다른 눈이다.
그녀의 눈에는 태양이 깃들었다.
‘내 눈도 저랬을까.’
성필은 소녀연맹의 데뷔를 회상했다. 그때 성필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었다.
무대는 신전(新殿)이 되었고 소녀연맹은 여신이 되었으며, 성필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일개 인간이었다.
그냥 인간은 아니다.
성필은 신을 창조해낸 인간이었다.
성필은 울었다. 아이돌, 현대의 영웅을 만들어내는 스타시스템에 대한 감동으로. 자신이 그 시스템의 끝자락을 떼어내어 마침내 아이돌을 만들어냈다는 환희에. 또한, 자신이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는 감격에.
‘왜 아이돌을 만들고 싶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성필은 이렇게 답했다.
‘멋져서.’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냥 감동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정과 끌을 든 후에 돌을 찾으러 다니는 인간도 있다.
성필은 후자였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일은 의미가 있었다.
이 일이 좋은 점은 자신이 구구절절 의미를 붙일 필요가 없단 것이다.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대신 의미를 붙여주고 그 업적을 칭송한다.
칭송이란 직접적인 찬양이 아니다.
음악을 듣고 영상을 봄으로써 그 칭송을 이룬다. 현대의 제단(祭壇)으로 기능하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공물을 투여하여 신을 소리 높여 칭송한다.
그 제단에 세워진, 신을 닮은 조각상의 제작자인 성필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이룬 업적과, 자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미를 창조해냈다는 충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고.
그 쾌감을.
“누나, 어때?”
손혜빈도 느끼고 있다.
“사, 상상한 것 이상으로…….”
손혜빈의 눈가에 고였던 눈물. 그녀의 감정을 담아내기엔 너무나 미약한 것이고, 또한 적은 양이었으나.
감히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눈물은 어떤 말보다 더욱 강렬하다.
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행복해…….”
인간이 이성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이데아(Idea)라고 한다.
손혜빈은 이데아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그건 비록 현실을 그림으로 모사한 듯 열등한 실체이지만, 그럼에도 이데아를 닮아 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환상을 현실에 강림시킬 수 있단 건, 모든 예술가들이 운명으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일 터다.
“그렇지?”
성필은 자부심 넘치는 투로, 손혜빈의 눈물에 대해 그리 답했다.
“멋진 일이야.”
퍼포먼스가 끝나고, 카오틱 에너지는 진실로 신을 모사한 조각상처럼 굳었다.
엔딩 포즈.
턱에 맺힌 땀이 떨어지고, 중앙에 선 김사무엘이 미소를 띤다. 오늘부로 무수한 인간들의 사랑을 얻어낼 소년의 미소였다.
* * *
김마리아는 힘없는 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다리엔 기력이라곤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못 구했어…….’
선생님한테 거짓말까지 치고 야간 자율 학습을 빼먹었다. 그러고서 한 짓은 음반 가게를 돌아다니며 카오틱 에너지의 앨범을 구한 것이었다.
구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 매진.
그 이외의 장소는 몰랐다.
김마리아는 절망했다. 그녀의 생활 반경은 보육원과 학교를 넘어서지 않는다. 친구가 없어서 어디에 놀러 갈 기회도 없었다.
있다면 아주 가끔 있는 오빠와의 데이트뿐이었다. 그마저도 오빠가 전부 길 안내를 해주었고, 김마리아는 그 길을 외울 정도로 똑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음반 가게로, 마치 탐험된 적 없는 정글을 헤쳐 나가는 심정으로 향한 것이다.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발할라로 떠나기 위해 굳게 검을 쥐고 돌진하던 노르만 전사처럼 세 번째 음반 가게로 향했고, 그곳도 품절이었다.
그래서 현재.
“…….”
너무 절망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 하지도 않던 거짓말까지 해서 오늘 음반을 사고자 했느냐면, 복수하고 싶어서였다.
오늘 다른 학생들에게 카오틱 에너지가, 오빠가 무시당했다. 그래서 음반을 사서 첫째 날 초동 판매량을 미미하게나마 올려서, 복수해줄 심산이었다.
첫째 날 판매량으로 성패를 대강 점칠 수 있으니, 김마리아는 그 성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주고 싶었다.
물론, 김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었다.
‘앨범은 안 사줘도 돼. 내가 종류별로 가져다줄게. 네가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인도 넣어서. 근데 백수현 건 필요 없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앨범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더.
얼마 있지도 않은 용돈을 쥐어짜 내서 살 생각이었다. 용돈이 떨어지면 쉬는 시간에 군것질도 할 수 없을 테지만, 그 비참한 삶도 버틸 생각이었다.
그런데, 돈은 남았지만 앨범을 못 사니 더 비참해졌다.
괜히 눈물이 나왔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될 테지만, 그건 김마리아가 보기에 의미가 없어 보였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
같은 반 애들에게서 들은 모욕의 말을 씻기 위해선 오늘이면 안 되는데…….
“마리아.”
김마리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오빠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눈가를 소매로 꾹꾹 문질렀다. 오빠가 자신이 우는 걸 보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보육원 입구 근처에 쪼그려 앉아 있던 김사무엘이 일어났다. 어두워서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가올수록 선명해졌다.
도저히 ‘버터 처먹은 공룡’처럼 생기지는 않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진 얼굴이다.
자신을 향해 무한한 호의를 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애틋하다.
“오늘 몸이 안 좋다면서, 늦었네.”
“아, 아, 응……. 그, 그거 때문에 일부러…….”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던 건가?
원래라면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친 시간에 보육원으로 왔을 텐데,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대체 몇 시간을 허비한 거지?
그럼에도 김사무엘의 얼굴엔 자그마한 짜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들린 종이백을 조금은 수줍은 투로 내밀었다.
“여기, 카오틱 에너지 앨범이야. 종류별로 있고, 네가 좋아하진 않을 테지만 백수현 버전 앨범도 있어. 사인도, 네가 절대 안 좋아할 테지만 받아왔고.”
김마리아는 종이백을 받아들였다. 그 안에는 앨범과 사전 예약 특전, 판매 사이트별 특전이 모두 들어 있었다.
“흐에에에엥…….”
갑자기 김마리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김사무엘은 한껏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했다.
“마, 마리아 왜 그래? 왜 울어? 왜 우는 거야?”
마리아가 종이백을 툭 떨어뜨리고 엉거주춤하게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뜻이었다.
김사무엘은 중학생 때와 비교하여 전혀 자라지 않은 동생을, 조심하지 않으면 부서질 것 같은 인형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김마리아는 오빠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면서 계속 울었다. 김사무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녀의 머리만을 계속 쓸어내려 주었다.
“오빠 미아안…….”
“뭐가? 마리아가 왜 미안해?”
김마리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인과관계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오늘 있던 일을 일러바쳤다.
“오빠가 무시당하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어…….”
“…….”
김사무엘은 온화한 얼굴로 동생을 더 세게 안아주었다.
“고마워 마리아. 나 대신 슬퍼해 줘서. 다정하네.”
“미안해…….”
“그러면.”
김사무엘의 말이 멎었다.
김마리아는 코를 훌쩍이며 얼굴을 위로 향했다. 오빠가 감동하여 젖은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더 유명해져서, 더 대단한 아이돌이 돼서, 우리 마리아가 슬퍼하지 않게 해줘야겠네.”
“으, 크흥…….”
김마리아는 코를 훌쩍이며, 슬픈 상황에서도 웃어 보였다. 오빠가 자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었으니, 그의 눈물을 멈추게 하려고 웃은 것이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오빠 무대 봤어? 어땠어?”
약간은 바보처럼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김마리아가 큰소리로 외쳤다.
“멋졌어어……!”
“고마워.”
김사무엘이 동생의 머리에 쪽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 네가 멋지다고 말해주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뭐라든 아무런 상관도 없어. 그래도 마리아가 슬퍼하면 안 되니까, 꼭 될게.”
누구도 흠집 내지 못할, 최고의 아이돌이.
“사랑해, 마리아.”
“나두…….”
* * *
방송국 대기실.
아카이브의 리더인 유경민이 신경질적으로 발을 까딱였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넘었다.
유경민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사를 안 오네?”
“누구요?”
아카이브의 막내가 바닥에서 왈왈거리는 로봇 강아지를 보며 물었다. 막내는 며칠 전에 휴게소에서 산 저 강아지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카오틱 에너지. 사녹 있는 것도 아니고, 리허설 사이에 시간 충분히 있었을 텐데 안 오잖아.”
“좀 늦을 수도 있죠오.”
막내는 로봇 강아지를 이리저리 옮기며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했다.
유경민은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가야겠어.”
“네? 왜요?”
“신경 쓰이니까.”
막내가 ‘또 시작이네’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다른 멤버들은 익숙한지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유경민은 계획형 인간이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보통 사람 이상의 스트레스로 괴로워한다. 신인 그룹인 카오틱 에너지가 아카이브에게 인사 오는 건 계획되었으며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완료되지 않는다.
게임 필드에서 하나 남은 서브 퀘스트가 발하는 느낌표처럼, 유경민은 그 일이 계속 머리에 밟혔다. 그래서 짜증 난다.
그녀가 아카이브의 신보(新譜)를 집어 들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매니저님, 같이 가요.”
“에이, 그냥 기다리지? 굳이 이래야…… 하는구나. 갈게.”
유경민은 매니저를 따라, 아니. 매니저를 거느리고 카오틱 에너지의 대기실로 향했다.
‘어이가 없네. 가로 엔터는 인사도 제대로 안 다니게 하는 건가?’
아무리 요즘 가요계 분위기가 쇄신됐다 하더라도 선후배 사이의 예의는 지켜야 할 게 아닌가.
‘멤버 중 한 명이라도 인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건가? 나 때(겨우 데뷔 2년 차 진입)는 이런 일 상상도 못 했는데.’
유경민은 카오틱 에너지의 대기실 앞에 서서 매니저에게 눈짓했다. 그가 노크하고 신분을 밝혔다.
문이 열리고, 유경민은 미약한 신경질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카이브의 경민입니다.”
가로 엔터 총괄 프로듀서 성필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에 서 있다.
연예계 대선배이자 카오틱 에너지의 메인 프로듀서인 손혜빈이 대장처럼 중앙에 떡하니 앉아 유경민을 바라보았다.
카오틱 에너지 멤버들은 대기실 여기저기 듬성듬성 앉아 있었고, 유경민이 등장하자 급히 몸을 일으켰다.
“…….”
외에도 많은 스태프들이 있었고, 목표하던 카오틱 에너지가 이쪽을 바라보았지만, 유경민은 그런 건 신경 쓰지 못했다.
이쪽을 노려보듯이 응시하는 손혜빈만이 눈에 들어왔다. 대선배님의 응시가 족쇄처럼 유경민의 신체를 구속했다.
유경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 그냥 나갈게요.”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들어와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오지 말고 지금 들어와요.”
손혜빈이 벌떡 일어났다.
“요즘 분들은 알지 모르겠는데, 손혜빈이에요.”
“안녕하심까 슨배임―!”
유경민이 00년대 폴더폰보다 허리를 더 깊이 굽혀서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