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753화 (753/760)

753화

유빈은 부담감에 짓이겨져 제대로 회의를 이끌어 나갈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해야겠다면서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세 총괄 프로듀서와 세 명의 아이돌 그리고 두 명의 작곡가만 남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역시나 윤상열이었다.

“희연이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윤희연은 가타부타 이유를 덧붙이지 않았다.

“재밌어 보여서.”

윤상열은 그 이유에 동감했다.

글로브, 케이어스, 소녀연맹, 세 그룹의 멤버가 모인 협업 프로젝트다. 프로듀서로서 구미가 동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느 직업을 가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생계를 위해서, 혹은 꿈을 위해서.

그리고 이곳에 모인 프로듀서들은 전원 꿈을 좇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일은 또 하나 있었다.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유빈이 ‘아마노가와’에게서 투자를 끌어냈다.

윤상열로선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박성필 저 새끼가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건 웨이퍼센트를 홍보하기 위함이었어.’

웨이퍼센트의 컴백만 끝나면 고기를 다 발라낸 뼈다귀처럼 던져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마노가와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면 성필도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박성필이 이 프로젝트에 흥미가 사라질 때 내가 완전히 삼켜버릴 생각이었는데…….’

그 계획이 빗나갔다.

하지만 아예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원래는 윤상열이 사비를 들여서라도 사무라이 걸즈에 투자하려고 했으나, 아마노가와라는 물주를 잡아냈으니까.

일단 돈은 굳었다.

성필도 이 프로젝트의 세세한 프로듀싱엔 관여하지 않기로 했으니, 윤상열의 계획은 일정 부분 건재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변수가 나타났다.

“에리카가 정식 음원 발매를 하는 데 부정적인 거 아니었나?”

윤상열은 평소 에리카를 ‘에리카 씨’라 부르며 예의를 갖추었었다.

나이가 어리건 어쨌건 다른 회사의 아이돌인 데다가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당황해서 그런 당연한 예의마저 잊고 그냥 에리카라고 불렀다.

“부정적…….”

부정적인 척을 한 것뿐이었다. 사무라이 걸즈에게서 원하는 조건을 얻어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부정적이었지. 그런데 개인적으로 심경의 변화도 있었고, 여기 박 이사님이랑 이야기가 잘 끝나서.”

윤상열은 어색하게 성필을 쳐다보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둘 사이에 쌓인 앙금이 많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건 성필도 마찬가지였다.

자아 찾기 여행 때 그를 따로 찾아가기도 했었지만, 그건 딱히 화해의 제스처는 아니었다. 적끼리도 함께 마주 앉아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네가 설득…….”

윤상열이 우물쭈물 물었다.

성필이 딴청을 피우듯 뒷목을 마사지했다.

“뭐, 윤 이사님이 날 설득한 거지…….”

“그래.”

“어.”

“…….”

“…….”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리카였다.

리카는 처음 윤희연과 윤상열이 인사했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두 분은 남매 사이이신가요!”

“어머.”

윤희연은 입을 가리며 웃고, 윤상열의 얼굴은 당혹을 가득 담아 찌푸려졌다.

“그러면 우리 글로브의 정진이랑 KS 엔터의 정호환 이사님은 조손간(祖孫間)입니까.”

“에, 조손간……?”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냐는 겁니다.”

즉, 성만 같지 남매는 아니란 뜻이다.

그때 윤희연이 윤상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팍 쳤다. 성필과 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KS 엔터의 누구라고?”

“뭐? KS 엔터의…….”

윤상열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다. 정호환은 더는 KS 엔터에 있지 않다.

“그래, 그거. 대체 뭐냐. 왜 정호환 이사님이 회사를 나간 거지? 네가 손을 쓴 거냐?”

“나이가 드신 거지. 내가 어떻게 감히 정호환 이사님을 쫓아내? 내가 뭐라고?”

“그렇긴 하다만…….”

윤희연이 또 윤상열의 어깨를 팍 쳤다. 채찍이 살을 후리듯 그녀의 팔이 깔끔한 곡선을 그렸다.

노아와 성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럼 두 분은 무슨 사이신가요!”

“옛날에 사귀었어요.”

“에엑!”

이번엔 리카가 경악했다.

가로 엔터의 사람들은 성필과 윤상열의 갈등을 알고 있다. 윤상열의 등장으로 성필과 김태훈 사이에 금이 갔고, 결국 굴러온 돌 윤상열이 박힌 돌 성필을 쫓아냈다는 것 말이다.

그 이야기가 뇌리에 깊게 남아서일까, 지금까지 리카는 윤상열을 둘도 없는 쓰레기로 그려왔다.

그런 쓰레기에게 연인이 있다니.

심지어 이렇게 수려한 외모에다가 능력까지 겸비한 연인이 있었다니!

“윤희연 이사님이 아까워요!”

윤희연의 인상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그녀는 명백한 적의를 담아 리카를 노려보았다.

“실례되는 말 하지 마세요.”

“고,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리카가 성필의 등 뒤로 호다닥 숨어들었다.

노아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윤상열에게 물었다.

“윤 피디, 모솔 아니었나?”

윤상열은 노아를 흘끗 보고 답도 해주지 않았다. 저런 저능아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팔다리만 멀쩡하면…….”

윤희연이 대신 답했다.

“웬만해선 20대에 연인이 생기죠. 상열이 오빠가 멀쩡하지 않단 거예요?”

“아니, 아니다. 그런 뜻은 아니다.”

지유가 말하길 윤상열은 마음의 장애를 앓고 있다고 했었다. 그가 멀쩡하지 않은 건 신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게다가 오빠는 외모에 능력까지 겸비했는데 세상 여자들이 가만히 뒀겠어요?”

“그런가…….”

“그런데 왜 반말하세요?”

“미, 미안하다요…….”

“오빠한테도?”

“그만해라.”

윤상열이 윤희연을 제지했다.

“얘는 한국어가 서툴러서 처음부터 나한테 반말했어. 존댓말을 가르쳐도 제대로 못 하니까 가만히 둬.”

“……?”

성필은 윤상열이 기억력 감퇴가 왔나 의심됐다. 노아는 존댓말을 제대로 하는데?

물론 노아는 현재 성필에게 반말을 한다. 그래도 과거에는 착실히 해왔다. 갑자기 반말로 바뀐 건 친밀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상열은 아예 노아가 처음부터 반말을 한 것으로 기억했다. 이상한 일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핼쑥해진 유빈이 다시 아지트로 돌아왔다. 어색하면서도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제대로 잡혔다.

그 분위기에 윤희연이 놀랐다.

‘유빈을 제대로 프로듀서로 대접해주잖아?’

세 명의 아이돌은 물론 정지음과 강동현, 그리고 윤상열마저도 그러했다.

윤상열이 왜 그러는지는 이해가 갔다.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신성시하니까.’

그러니 명함만 붙은 거라도 존중을 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돌이나 작곡가들의 태도는 예상외였다.

윤희연은 성필을 곁눈질했다.

‘아마 박 이사 때문.’

그가 유빈을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윤상열의 태도가 시너지를 일으켜 유빈에게 어느 정도의 권위가 생긴 것이리라.

윤희연도 그 분위기에 적응하려 했다.

‘은근히 재밌는데?’

저 어린애에게 책임자로서의 예의를 표해야 하다니.

‘내 처지가 처지이니 그래야만 하지만 뭐…….’

성필이 윤희연을 프로듀서로 받아들이는 조건이 바로 무권한(無權限)이다.

애초에 윤희연 본인이 A&R 직원처럼 부려 먹어달라고 요청한 마당이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부당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장소에 오니 옛날이 생각나 활력이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먼저 오늘 논의해야 할 게…….”

유빈은 성필에게 신호를 주었다. 성필이 목청을 가다듬고 모두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소녀연맹은 며칠 후 일본 활동을 위해 한국을 떠납니다. 리카가 없을 텐데, 당연히 회의에 참석할 순 없습니다.”

“조율은 끝냈어요.”

유빈이 성필과 합의한 내용을 줄줄 읊었다.

리카는 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나, 일본에서 계속 작업에 참여할 것.

뮤직비디오 촬영과 레코딩엔 시간을 내어 참석할 것.

그리고 안무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원격으로 맞춰봐야 하리란 것.

“멤버 전원이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그렇지만 리카 후배님이 잘해주시리라 믿고, 제가 잘 컨트롤하겠습니다. 후배님, 괜찮으시겠죠?”

“맡겨만 두세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걸요! 흐지부지될 일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또, 에리카 씨 쪽도 하실 말씀이 있다고.”

“예. 커트라인을 설정해주셨으면 해요.”

윤희연이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에리카의 솔로 데뷔 프로모션은 크게 없을 예정이니까.’

사무라이 걸즈는 에리카 스스로 찾아낸 돌파구였다. 즉, 에리카의 목적은 사무라이 걸즈 자체가 아니라 솔로 데뷔 홍보였다.

그러니 에리카가 내걸 커트라인은…….

“시상식 이전. 12월이 되기 전에 사무라이 걸즈 프로젝트가 끝났으면 해요.”

빠듯한 시간이다.

유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인원 프로듀싱을 한 경험이 없는 그로선, 에리카가 제시한 커트라인이 합당한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조언을 구하려 성필을 보았다.

“곡만 확정되면 가능해.”

곡만 확정되면 가능하다.

유빈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했다.

사무라이 걸즈 전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면 기한에 맞출 수 있단 뜻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유빈이 미는 중인 카와이 베이스는 전방위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에리카와 노아 둘 다 ‘모르겠다’고만 했으니.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잠깐만.

유빈은 깨달음을 얻었다.

‘에리카 씨는 커트라인을 설정했어. 그렇다면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

그러니까, 에리카는 카와이 베이스의 성공을 불확실하게 여기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최우선 사항은 완성도가 아니라 시간이다.

‘2대 1이야.’

유빈은 남몰래 쾌재를 불렀다.

이러면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상 한 명의 기권과 두 명의 동의를 얻은 셈이니까.

그런데…….

‘이런 어중간한 상황에서 밀어붙여도 되나?’

프로젝트 멤버 전원의 열광적인 동의를 얻지도 못한 채, 억지로 데뷔를 강행해도 괜찮나?

사실상 유빈의 아군은 리카뿐이다.

리카를 못 믿는 건 아니다. 그녀는 유빈보다 훨씬 더 창작에 능하다.

‘그런데 창작에 능하다는 게 대중적인 성공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있단 건 아니잖아.’

리카의 취향은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 리카의 지지를 받는 곡을, 사무라이 걸즈의 타이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내 첫 번째 커리어…….’

성필이 표현하기를, 유빈은 그 어떤 프로듀서도 받은 적 없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데뷔할 것이라고 했다.

그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게 실패라면, 유빈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아.”

유빈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혀부터 움직였다.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 억지로 외부 자극을 만들어냈다.

“노아 씨는 제언이라든가 있으신가요?”

“있다. 윤 피디가 신곡을 만들었어. 좋다.”

비록 노아가 들어보진 못했지만, 윤상열이 만들었으니 좋을 것이다. 윤상열 본인이 그리 말하기도 했고, 노아도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윤상열은 노아에게 새 곡에 지지를 표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노아는 부탁을 충실히 수행했다.

“사무라이 걸즈에 부족함이 없다요.”

“그 곡은 폐기다.”

“나를 가지고 노는 거다!”

“그런 게 아니야. 아마노가와의 광고 제안을 받아들인 거겠지? 그럼 내가 만든 곡은 어울리지 않아.”

“아.”

윤상열은 믹스테입 프로젝트를 가정하고 곡을 만들었다. 즉, 아마노가와의 제품이 홍보될 만한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다.

윤상열이 폐기한다고 했으니 실제로도 그러할 것이고 말이다.

“새로 만들어야겠지.”

그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말이 몰고 온 효과는 그러지 못했다.

“신곡이요?”

정지음이 반응했다.

“곡은 이미 있잖아요.”

“진심으로 그게 먹힌다고 생각합니까?”

“아마노가와에 걸맞은…….”

“유빈 씨의 목적이 뭐였습니까?”

지목당한 유빈이 흠칫했다.

“제 목적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것이다.

일본인 케이팝 아이돌이 셋의 협업 프로젝트. 그게 대성공을 거두고, 성공을 한국으로 수입한다.

그로써 한국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구체적인 최종 목적은 음악 방송 출연이다.

일본어가 제한되는 방송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유빈은 그게 훗날 케이팝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리라고 예상하기에.

처음부터 그런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다.

“카와이 베이스로 무슨 선풍적인 인기, 무슨 공전절후의 성공입니까? 일본에서도 대중적인 반향을 끌어낸 적이 없는 장르인데요. 그리고 그딴 걸 왜 한국 음악 방송에서 틀어준답니까?”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에 낸 앨범의 타이틀곡도 한국 무대엔 안 세우는 판인데.

“그러면.”

정지음이 곧바로 되받아쳤다.

“제이팝을 못 만드신다고 했던 분이, 일본에서 성공할 곡을 뚝딱 만들어내시겠단 말이에요?”

“최소한 카와이 베이스보단 낫겠죠.”

“그, 그렇지만…….”

태그하듯 강동현이 끼어들었다.

“저희가 만든 곡은 아마노가와에서 제시한 조건과 부합하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유빈 씨가 먼저 제시하신 목적이 있잖습니까?”

‘유빈의 목적’이란 말은 전가의 보도였다.

윤상열은 그 명분만으로 카와이 베이스를 추풍낙엽처럼 베어 넘겼다.

“유빈 씨의 목적이 좋은 광고 음악을 만드는 겁니까?”

“그 유빈 씨가 좋다고 하셨잖아요…….”

“판단이 잘못된 거죠.”

윤상열이 딱 잘라 유빈이 틀렸다고 선언했다. 그는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여기 프로듀서가 많군요. 프로듀서는 자고로 확신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그 확신은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어요. 그러니 프로듀서의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는 믿음은 줄이고 생각을 늘리는 겁니다. 생각을 늘리는 것, 유빈 씨.”

유빈이 화들짝 놀라 답했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정면에서 반박당하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예, 옙.”

“왜 카와이 베이스입니까.”

“……왜냐는 건, 무슨 뜻인지.”

“왜 카와이 베이스를 선택한 겁니까? 그냥 좋아서? 그러고 싶어서? 탐구 끝에 나온 겁니까 감정이 시킨 겁니까. 만약 이러한 결론을 낸 게 감정이라면, 유빈 씨의 정신은 오염된 겁니다.”

오염.

인간을 향해 쓸 수 있으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단어다.

“망상에 빠진 거예요.”

유빈은 두려움에 심장이 차가워지는 동시에 모욕감 때문에 피가 뜨거워졌다.

그는 눈에 번지는 열기를 확연히 느끼며 말했다. 자기가 느끼기에도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윤상열 피디님은 탐구로 내신 결론입니까?”

“경험.”

윤상열이 단호하게 답했다.

“수백 개의 곡을 발매하고, 그로써 피드백을 얻었습니다. 또한 타인이 쓴 곡 수만 개를 들어보고, 그 곡의 피드백을 살폈습니다. 누구에게 피드백을 얻었을까요?”

“…….”

“대중입니다.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이 마침내 재능과 교차하면, 개인의 판단이 대중의 취향과 일치하는 시점이 옵니다. 제가 음악을 업으로 삼기에 볼 수 있던 풍경입니다. 그에 비해, 유빈 씨는 곡을 몇 개 쓰고 발매해보셨죠?”

“…….”

“하나, ‘하나사키 인 서울’ 단 하나. 그리고 이번에 카와이 베이스를 택한 이유는 느낌 하나뿐. 그럴 거면 대중적 성공을 입에 올리면 안 되죠. 지금이라도 믹스테입 프로젝트로 돌아가서 자기만족을 추구…….”

“그만하세요!”

윤상열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눈에 불을 켠 리카가 있었다.

“선배님도 그 정도는 알아요!”

“알면서…….”

“알 수밖에 없잖아요! 이 프로젝트에 가장 많은 걸 건 사람이 유빈 선배님이니까요! 유빈 선배님의 꿈은 아이돌 프로듀서예요! 이번 프로젝트는 선배의 평판이 걸렸어요! 미래가 걸렸다구요! 그런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리 없어요! 프로듀서인데도 모르시는 건가요!”

“훌륭한 프로듀서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윤상열은 리카의 일갈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돌에게 기가 죽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아니, 죽어선 안 된다.

윤상열도 유빈이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었단 것을 안다. 그러나 윤상열도 그에 못지않게 이 프로젝트를 아낀다.

역사상 다신 없을지도 모를 기회다.

그 기회를 똥통에 버리는 꼴은 절대 못 본다. 문화유산을 부수고 얻은 돌로 아파트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첫 번째 프로듀서는 일신의 능력이 뛰어나 모든 선택을 성공시킵니다. 두 번째 프로듀서는 남의 말을 잘 듣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경청을 잘해야 하는 겁니다. 다행히…….”

윤상열은 유빈을 흘겼다.

유빈의 시선은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있지 않았다. 바닥까지 처박힌 마음을 따라가듯 바닥을 향해 있었다.

“듣는 능력은 있군요. 확신을 더해 줄까요. 희연아, 말해줘라. 목적과 수단이 얼마나 크게 괴리되어있는지.”

“난 그런 거 말하면 안 돼. 그게 내가 여기 온 조건이야.”

“그래? 그러면, 박성필? 네가 말하지?”

“그만해.”

“뭐?”

“형이 하는 건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그냥 비난하는 거야. 이유를 대.”

“이유가 필요한가? 누가 봐도 카와이 베이스인지 뭔지가 유빈 씨의 목적을 이루게 할 가능성이 없는데, 이유?”

“답을 피하지 마.”

윤상열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답을 피하지 말라고?”

“형은 그냥 무서운 거야. 일본이라는 시장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서 익숙한 곳으로 도망가는 거지. 익숙한, 케이팝으로.”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케이팝은 일본에서도 먹혀.”

“케이팝이 일본에서 구가하는 인기는 음악 자체에 있기보다 팬덤에서 기인해. 이 멤버로 케이팝을 가지고 일본에 간다? 아, 그래, 먹히겠지. 그런데 유빈이의 목적에 닿을 순 없어.”

윤상열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황당함이 짙게 묻어났다.

“너한테 케이팝 강의를 들을 줄이야. 악보에 음표 하나도 못 그려 넣는 게.”

“윤 이사님한테도 똑같이 말해봐.”

“…….”

윤상열은 할 말이 없었다. 주제를 바꾸려 했다. 그런데 그전에 성필이 선수를 가로챘다.

“대화를 하고 싶으면 생산적인 쪽으로 해. 유빈이를 압박해서 형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애초에 유빈 씨한테는 버거운 일이야. 그래, 아이돌 프로듀서 꿈이라고? 그럼 차라리 우리한테 다 맡기는 쪽이 낫겠지.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테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꿈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

“박 이사님.”

유빈이었다.

어느새 그는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고 있었다. 눈매와 입가에도 우울함이 사라졌다.

그는 미소와 함께 성필을 보는 중이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성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뭐가……?”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하려는 일이, 뽕짝으로 한대음(한국 대중 음악상)을 수상하려는 거라고요.”

성필은 심장이 진흙으로 처박히는 듯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확실히 있었다. 유빈이 처음 카와이 베이스에 대한 열의를 드러냈을 때였다.

“정말 그런 걸까요?”

유빈의 고개가 다시 천천히 숙어졌다.

힘내어 앞을 보고자 하지만,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눈이 바닥을 보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제 판단이…… 무모한 걸까요? 박 이사님이 제대로 말씀해주세요…….”

“……유빈아.”

유빈은 주먹 쥔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이마를 약하게 툭툭 두드리던 그는 만개한 웃음을 지으며 성필과 마주 보았다.

“네, 이사님.”

“그건…….”

타인이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성필은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집어넣었다.

상대가 새싹이 아니라 이미 자라난 꽃이었다면 성필은 얼마든지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으리라.

상대가 손혜빈이고 이재호이며 정지음이었다면, 그랬으리라.

결국 성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정적 끝에 윤상열이 코웃음을 흘렸다. 그는 성필을 칭찬했다.

“그래, 딱 네가 한 말대로군. 뽕짝으로 한대음을 수상하는…… 그 정도의 터무니없는 헛소리.”

* * *

리카가 참석하는 마지막 회의였다. 그런데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회의가 끝났다.

유빈은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가슴에 쌓인 검은 덩어리는 어떤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배 속이라도 비우고 싶었다.

‘윤상열 프로듀서.’

KS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였으며 글로브라는 히트 그룹의 창조자다. 그가 유빈의 판단을 의심하고 깎아내렸다.

아니, 그건 너무 공격적인 표현이다.

윤상열은 반대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반대했고, 지지해주는 사람이라곤 리카뿐인데, 유빈이 자신의 판단을 밀고 가는 게 옳을까.

모르겠다.

무지(無智)와 불신(不信)이 이렇게나 괴로운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지혜를 위해 수명을 바쳤던 고대의 신과 영웅들이 어째서 그랬는지 알겠다.

‘미래를 볼 수만 있다면 수명 몇 년은 줄 수 있을 거 같아.’

유빈은 아지트 건물 밖으로 나와 벽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다.

‘프로듀서는 이런 압박감을 계속 견뎌야 하는 건가? 이런 일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야?’

성필은 어떻게 매일 행복한 얼굴로 출근할 수 있는 거지? 이토록 큰 책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온통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이 괴로움이 프로듀서가 계속 달고 살아야 할 고질병이라면, 유빈은 프로듀서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란 건 알아. 사람들한테 곡을 들려줘도 좋은 반응이 안 나오는 게 증명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나 처절하게 매달리는 걸까.

왜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윤상열이 말했던 프로듀서로서의 재능이 자신에겐 없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은 날개도 없으면서 날려고 하는 걸까…….

“유빈 씨!”

누군가 등에 손을 올리자 유빈은 기겁했다. 새처럼 파닥대며 뒤를 보니 윤희연이 있었다.

윤희연은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뭐 해요?”

“윤 이사님…….”

“힘들죠?”

그 한마디에 유빈은 눈물이 쏟아질 듯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진 못했다.

성필이 말했다.

책임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속마음으론 ‘X됐다’고 생각해도, 절대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고.

“당연해요.”

유빈은 또 눈물이 줄줄 흐를 듯했다.

원래 울 것 같을 때 누가 위로해주면 더 슬픈 법이다. 기대고 싶은 마음에 더 나약해지기도 한다.

“어떤 작사가한테 들었거든요. 자기가 가사를 준 곡이 못 되면 우울해진대요. 가사 때문에 실패했나, 계속 그런 생각만 난대요. 작사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작곡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일개 A&R 직원마저도 그래요. 그런데 총괄은 어떻겠어요?”

사람들은 권력을 꿈에 그린다.

하지만 책임까지 가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보통은 권력욕이 유아적인 망상에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기꺼이 책임까지 짊어지려는 인간도 있다.

그 첫발을 내디딘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윤희연이 유빈을 위로했다.

기어코 유빈은 닭똥 같은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윤희연이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위로해주었다.

그의 눈물을 멀뚱히 바라보던 윤희연이 말했다.

“직접적인 충고는 할 수 없지만, 조언은 해줄 수 있어요. 시간 있어요? 밥이나 먹어요.”

* * *

노아는 자신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늘 윤상열이 카와이 베이스를 부정하자 기쁨을 느꼈으니까.

그녀는 최유현과 함께 만든 곡이 좋았다. 그것을 사무라이 걸즈의 곡으로 쓰고 싶었다.

그 전제조건은 리카와 정지음, 강동현이 만든 카와이 베이스가 폐기되는 것이다.

‘난 아이돌 같은 게 되면 안 됐어…….’

기쁨을 느낄 때마다 진득한 자기혐오도 같이 올라왔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상황이 이렇게 됐음에도 노아에겐 용기가 없단 점이었다. 그녀는 자신 있게 ‘곡을 썼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유빈 선배 같은 소리를 들었으면 바닥에 드러누워 울었을 거야…….’

용기가 필요하다.

“더 있다 오겠다고?”

윤상열은 노아의 요구를 별다른 말 없이 수락해주었다. 그는 혼자 갈 수 있겠냐고 되묻지도 않고 차를 탄 채 쌩하니 가버렸다.

물론, 노아는 혼자 숙소까지 못 간다. 매니저나 글로브 멤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노아가 굳이 남은 이유가 있었다.

‘박 팀장님, 이 아니라, 박 이사님을 만나야 해.’

노아는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며 몇 년을 살아왔다.

글로브 멤버들과 비교하여 딱히 뛰어난 점이 없다. 그럴진대 리카, 에리카와 비교해서 뛰어난 점이 있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사무라이 걸즈에 참여한 이유가 있다.

자신을 긍정하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사무라이 걸즈에 뽑힌 특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걸 찾는 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였었다. 그런데, 그걸 찾기 전에 먼저 꺾일 것만 같았다.

용기가, 필요하다.

“아.”

성필의 차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아지트에서 나오는 그가 보였다.

“박 팀……!”

성필을 큰 소리로 부르려던 때, 그의 곁에 선 리카가 보였다. 노아는 자기도 모르게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둘이 차로 다가오며 큰소리로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에엑, 정말인가요!”

“진짜야.”

“하양 언니 혼자 브랜드쇼에 그렇게 많이 초대받은 건가요!”

“소녀연맹이 다 같이 초대받은 것도 있어. 올해 활동은 기대해 볼 만해. 소녀연맹이 일본에서만큼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정상에 설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케이팝 그룹 중에서만이 아니라…….”

성필의 눈이 꿈을 담아 빛났다. 아까 회의에선 볼 수 없던 짙은 확신이 드러났다.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될 수도 있어.”

“하양 언니가 가장 많잖아요!”

“브랜드쇼 이야기 계속하는 거야?”

“왜 아타시(저)는 초대받지 못하는 건가요!”

“네 이미지 때문 아닐까.”

“제 이미지가 어때서요! 인간 명품 아닌가요!”

“명품의 고아한 이미지에 비해…….”

“비해?”

“넌 너무 귀엽지.”

“저는 귀엽지 않아요! 예쁘다구요!”

“어떻게 넌 나이가 들어도 귀여움이 줄어들지를 않니.”

“나이가 든 게 아니에요! 더 활짝 피는 나이라구요! 성장하는 나이예요! 나이가 든다는 표현은 저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게.”

둘이 차 앞에 섰다.

리카가 조수석 문을 벌컥 열었지만, 성필은 운전석 앞에서 뜸을 들였다.

“리카.”

“하이(네)?”

“카와이 베이스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

“에?”

“유빈이한테 카와이 베이스를 영업한 것도 너지? 혹시 이유가 따로 있으면 알고 싶어서.”

“……곡이 별로인가요?”

성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장르야. 조예가 없으니까. 차라리 엘릭 씨한테 물어보는 편이 낫겠지.”

“저는 확신이 있어요! 잘될 거예요! 그리고…….”

“또 이유가 있어?”

“제가 왜 사무라이 걸즈를 시작했는지 아시나요!”

“네가 말해줬잖아. 소녀연맹 없이, 에리카 씨와 같은 높이에 서고 싶다고.”

노아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심 자신의 이름도 나오길 기다렸다.

“맞아요!”

그런데 노아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병사 개인의 힘도 중요하지만,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장을 정하는 거예요! 카와이 베이스는 제가 가장 빛나는 전장이에요! 에리쨩을 이길 수 있는 곳이에요!”

“혹시 에리카 씨보다 너한테 더 어울리는 스타일이라서 계속 미는 건…….”

“저를 뭘로 보시는 건가요?! 그러면 유빈 선배님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저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구요! 다시 말하지만, 확신이 있어요!”

확신이 있다.

노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부럽다.’

자신도 리카 같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소리엔 있을 리 없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 자신감이 그녀를 아이돌로서 빛나게 하는 거겠지.

“윤상열 피디님 정말 최고의 케이팝 작곡가가 맞나요! 감이 너무 없어요!”

“그야 다루는 장르가 다르니까 카와이 베이스는 모르겠지.”

“왜 싫어하는 사람을 감싸주나요!”

노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용기를 바라 성필을 기다렸다. 그에게서 용기를 얻고자 한다. 그리고 리카처럼 빛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싶었다.

‘카와이 베이스가, 리카 씨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전장이라고…….’

노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골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카와 성필이 동시에 굳었다.

“노아?”

“노아 씨?”

“아, 안녕하다요…….”

노아는 둘 앞에 나올 때만 해도 가슴이 충만했다. 그런데 정작 리카를 마주하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무리에서 왕따당하는 초식동물이 본인의 무해함을 증명하려고 비굴해지는 모양새였다.

자신과 달리 빛나는 리카를 보기 힘들어서, 노아는 성필을 바라보았다.

“바, 박 이사. 잠깐만 얘기를…….”

“응, 당연하지. 여기서 기다린 거야? 아지트 안에 있을 때 말하지. 따로 해야 할 이야기야?”

“…….”

노아는 리카를 흘끗 보았다.

리카의 눈이 말하고 있다. 양심에 찔리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라고.

노아가 발작하듯이 말했다.

“박 이사!”

“응, 노아.”

“아, 그게, 그…….”

노아는 요 몇 년간 자신의 가치를 확신한 적이 없다. 그런데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하나 있다.

바로 석세스 엔터 오디션에서 합격했을 때였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보았던 오디션인데, 보기 좋게 합격했었다.

그때 노아를 합격시킨 게 바로 눈앞의 남자, 성필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노아의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왜 나를…… 연습생으로 뽑았나……?”

“그게 궁금했어?”

성필의 눈이 먼 과거를 향했다.

노아는 그의 입술만 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열리고, 노아가 그토록 알고 싶던 답이 나왔다.

“귀여워서.”

리카의 눈에 불꽃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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