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나의 ■■■ (1)
리네아는 사과하지 않았다.
다소 과한 대응을 한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사실 그녀가 사과할 이유가 없긴 하다.
그때의 내 생각이 어떻든, 나는 병실을 탈출한 환자니까.
담당의가 화를 내는 건 나를 걱정해서가 아닌가.
그러니 바가지 긁는 마누라라도 된 것처럼 못 살겠다며 내 등 짝을 찰싹찰싹 때리는 리네아의 모습에도 차마 항거하지 못했다.
“몸은 좀 어때요?”
“때릴 만큼 때려놓고 그걸 묻는 건가…….”
“말하는 거 보니 괜찮나 보네요. 그래도 오늘 하루는 쉬세요.”
“알아. 나도 그냥 바람이나 쐬려고 잠깐 나온 거니까.”
“여기까지?”
“바람이 좀 많이 쐬고 싶었어.”
“……조금 더 성의 있는 변명을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리네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아가죠. 할 얘기도 있고, 부탁도 있으니까.”
“부탁?”
“네, 저도 신성 마법 덕 좀 보고 싶은데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
그녀도 상처를 입었다는 건 안다.
기절하기 직전에도 내 옷을 적시던 그녀의 피를 느꼈으니까.
그런데 저렇게 당당하게 맡겨 놓은 걸 받아가는 듯이 말하니까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진 거겠지.
* * *
숙소로 돌아온 직후.
곧바로 리네아의 상처를 살피기로 했다. 나는 신성 마법으로 이미 내 상처를 치료한 뒤였기에 차후 경과만 지켜보면 될 뿐이다.
“일단 보자.”
“네.”
리네아는 늘 몸에 걸치고 다니는 백의를 벗고서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물론 뒤돌아선 상태에서다.
그렇게 옷을 벗고 속옷까지 벗은 뒤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곱게 모아 앞쪽으로 끌어당기자 그녀의 새하얀 등과 마치 맹수가 할퀸 듯한 느낌의 상처가 보였다.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흉터.
그걸 보고 있으려니 괜히 씁쓸해지는 느낌이다.
“뭐에 당했어?”
“으음, 저도 모르죠. 등 뒤를 당했거든요.”
처치는 완벽하다.
굳이 내가 손대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아물 상처다.
하지만 여기에 신성 마법을 더하면 그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
오래 남을 흉터도 없겠지.
“저기.”
그렇게 상처를 살피고 있더니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고 있던 클레어가 말을 걸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뭐가?”
“뒤돌아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옷을 벗은 상태인데 서로 너무 무신경하지 않나 싶어서요. 흑심이라든가 생기지는 않는 건가요?”
“쪼끄만 게 못 하는 말이 없네.”
무슨 말을 하는 건진 알겠다.
하지만 클레어는 상황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부상자를 그런 눈으로 볼 리가 없잖아. 더군다나 나 때문에 다친 사람의 상처를 보는 중인데. 애초에 의사가 환자 보면서 부끄러워하는 거 본 적 있어?”
“그렇군요. 그래도 한 번 볼 사람과 앞으로도 볼 사람이라는 점에 어색함은 없을까요?”
“없어.”
그런 일 하나하나에 어색함을 느낄 정도로 나는 풋풋하지 않다.
이미 전장에서 닳고 닳아버린 내가 그런 딜레마에 빠질 리가.
“어, 잠깐만요…….”
하지만 리네아는 달랐던 모양.
얌전히 듣고 있던 리네아가 당혹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저, 역시 다른 사람한테 치료받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신경 쓰지 마. 애초에 니다벨리르에서도 비슷했는데 뭐.”
“그때와는 또 상황이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한데요…….”
다르긴 하다.
그때의 그녀는 처참한 상태였고 지금은 비교적 괜찮으니까.
화상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등과 지금 보고 있는 새하얀 살결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
거기다 그녀가 정신을 잃은 상태와 멀쩡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신경 쓰지 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데요.”
긴장과 어색함 때문인지 리네아의 행동거지가 더욱 어색해진다.
그리고 긴장이라는 건 주변에도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저는 나가 있을게요.”
이 화제를 꺼내 분위기를 조져놓은 클레어가 도망쳤다.
그렇게 클레어가 방을 나가자 남은 건 나와 리네아뿐.
분위기의 어색함이 박차를 가하고 나한테도 전염된다.
이건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겠다.
“히약?! 뭐, 뭔가요?”
“아니, 아픈가 싶어서.”
상처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찔러 봤더니 리네아가 튀어 오른다.
엄청난 반응이다. 긴장한 탓에 이쪽까지 놀랄 정도였다.
“……미리 말이라도 해주세요.”
“유의할게.”
리네아는 입을 삐죽이며 꼬리를 이용해 내 손을 치웠다.
등을 내미느라 옷을 벗고 있기에 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훔쳐볼 생각은 없지만, 저런 조심스러운 행동거지를 보고 있으려니 괜히 이쪽도 신경 쓰인다.
“간지러울 수도 있으니까, 혹시 놀랐다고 꼬리로 때리지는 말고.”
“이걸로 때려도 안 아프거든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농담에 리네아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꼬리로 내 팔을 툭툭 친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꼬리가 휘둘러질 때마다 깃털로 된 이불에 몸을 뉜 것처럼 폭 들어간다.
겨울에 안고 자면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괜찮을 거 같은 느낌이다.
리네아의 말대로 아프기는커녕 푹신푹신한 감촉만 느껴진다.
물론 살랑거리며 때려서겠지.
원래 세게 때리면 꽃으로 때려도 아픈 법이니까.
“이 정도면 많이 아팠을 텐데, 다른 사제한테 치료받지 그랬어?”
도시에 사제가 나만 있었을 리는 없다. 어딜 가나 교회나 신전은 하나씩 있는 법이니까.
다 망해가는 도시나 사람 몇 없는 시골 마을에도 사제가 있다.
아마 여기에도 있었을 거다.
“이건 로스트 씨를 위해 남겨둔 일이에요. 스피린 백작가 소속 의사의 진료비가 얼마인데요?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봐 이렇게 치료할 기회를 주는 거죠.”
리네아가 툴툴거리며 말한다.
“이렇게 어색해질 줄 알았다면 그냥 치료했겠지만요…….”
꼭 뒷말을 덧붙여서 분위기를 더욱 조져놨어야 했던 걸까?
아무튼, 그녀가 상처를 내버려 둔 이유가 내 마음의 부채를 줄이기 위한 배려였다는 건 알았다.
아니, 이게 배려가 맞나?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고 시위하는 거 아닌가?
잘 모르겠다.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도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다.
등 뒤라 표정도 안 보이고 평소 그녀의 감정을 알려주는 꼬리는 긴장 탓인지 뻣뻣하게 굳어있다.
“로스트 씨.”
긴장된 공간 속에서 치료를 이어나가고 있었더니 리네아가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가만히 치료만 받는 것도 어색해서 싫은 모양이다.
“밖에서 약초를 캐왔는데 말이에요. 좀 이상한 게 있었어요.”
“이상한 거?”
리네아는 가방을 뒤지려는 듯 몸을 숙이며 손을 뻗나 싶더니 슬그머니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 조금 전보다도 더 몸을 움츠렸다.
“어흠! 치, 치료 끝나고 하죠.”
“그, 그래.”
너 자꾸 분위기 이상하게 할래?
* * *
“이거예요.”
치료가 끝난 뒤. 어째서인지 평소보다도 두껍게 입은 리네아가 가방을 뒤적거려 약초를 꺼냈다.
나한테도 익숙한 약초다. 외상에 그럭저럭 쓸만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뭔가 색감이…….
“독초로 변했어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떤 약도 쓰기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긴 해요. 환경에 따라 성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뭐든 조심해야 하는 편이죠.”
“이게 그런 쪽이었나?”
“아뇨, 이건 돌연변이에 가까워요. 기존에 있는 성분이 변하거나 강화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성분이 섞여 있거든요.”
“…….”
기존의 성분이 아닌 전혀 다른 성분이 섞여 있다. 이건 즉 환경 차이가 아닌 보다 직접적인 뭔가에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다.
“독초, 독초란 말이지.”
그렇다면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사실 리네아의 말을 들은 순간 떠오른 점이 있긴 했다.
“침식…….”
<침식하는 자>의 권능은 독이다. 그것도 영혼마저 침식하는 독.
그 독에는 해독제가 없다. 어떤 의미로는 마기보다도 치명적이다.
‘침식’의 영혼은 육신과 영혼 양쪽에 영향을 끼치니까.
어느 한쪽이라도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죽는다. 뭐, 지금까지 <침식하는 자>의 독에 노출된 사람이 살아남은 경우는 없지만 말이다.
멀리서 녀석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침식하는 녀석이다. 당장에 내가 그렇지 않나.
녀석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과거까지 따라붙는 맹독이 내게 스며들어버렸으니까.
녀석이 직접 뿜어대는 독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거다.
“이제야 알겠네.”
“뭘요?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아무래도 그 꼬맹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거 같아.”
리네아는 내 결론에 미간을 찌푸리나 싶더니 내 등을 후려쳤다.
“오늘은 안정을 취하세요.”
“말로 해.”
“오른손에 쥔 그 비옷부터 내려놓고 그런 변명을 하세요.”
아니, 이게 왜 내 손에 있지?
* * *
그로부터 3일 뒤. 나는 아직 그 망할 꼬맹이를 찾지 않았다.
최선의 상태를 만들고 싶기도 했고 지금은 아직 확신할 수 없기에 추측이 확신으로 변할 때까지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 나는 모른다니까 그러네!”
그중 하나는 그동안 릴리아라는 꼬맹이의 폭주에 편승에 아첨하고 떨어지는 것들을 주워 먹던 기회주의자들을 심문하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 누님은 평소에 어디 갈 때 말하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누님이라…….”
나이 서른은 됐을 새끼가 열다섯 언저리로 보이는 애새끼한테 누님이란다. 참 대단하지 않나?
어떻게 사람 새끼가 저러지?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할까.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나 보네.”
비아냥대긴 했지만 놀랍긴 하다.
이렇게 잡혀 온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뻗댈 수 있는 게.
당연히 이건 충성이 아니다.
애초에 녀석에겐 남을 끌어들일 만한 사상이 없다.
그러니 이놈들은 필연적으로 기회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 놈들이.
기생하던 숙주가 사라지고, 감옥에 갇혀 있는 이 상황에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건.
“돌아올 거라고 확신하나 봐?”
그 외에는 있을 수가 없다.
“아는 게 아예 없지만은 않은 거 같은데 이거?”
“이야,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이게 교육의 차이인가 그거냐?”
“맞습니다. 쿠루드 마스터. 기초 교육이 왜 중요한지 알겠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고. 농담한 건데 왜 그렇게 진지하냐?”
“전 진심입니다.”
봐라, 이렇게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 한 집단의 장마저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법이다.
대단할 정도도 필요 없다. 딱 기초 교육 정도만 되도 된다.
이 세상에는 머리보다 몸을 써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 정도로도 충분히 특별하다.
그리고 우리 클레어는 더 특별해져야 한다. 우리 애는 나중에 크면 재판관이 될 거니까.
“자, 그럼 심문 강도를 올려볼까? 응?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가시죠.”
“그래! 그 방법이…… 응?”
“지금부터 못 볼 꼴 볼 테니까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나는 품 안을 뒤져 목적으로 하던 물건을 찾아냈다.
이미 앞서 그 망할 꼬맹이와 싸울 때도 쓴 적 있는 물건이다.
“어, 그거 지금 보니까…….”
“8시간 안으로 끝내죠. 인권 운운은 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역십자가 새겨진 새하얀 가면.
반쯤 도시 전설이나 다름없는 이단심문관의 표식.
이게 허세가 아니라는 건 내가 실제로 만신전 소속의 사제라는 걸 알고 있는 쿠루드밖에 없다.
“마인이 되어버린 자, 혹은 그와 내통하고 이용해 이득을 취한 자.”
눈앞에 있는 놈?
그건 상관없다.
“그 죄를 같은 무게로 다스린다.”
깨닫게 만들어주면 되니까.
“지금부터 이단에 대한 심문을 시행합니다. 이는 신에 대한 반역을 다스리는 행위이니.”
이것도 참 오랜만이 아닐까 싶다.
내 본업 말이다.
지금까지 벨리알의 계획을 부숴온 건 이단심문관보다는 성기사단이나 성전수도회 녀석들의 일이다.
물론 내가 하는 일도 그에 부합하긴 한다. 다만 전문적이라기에는 조금 잡다함이 많다.
그럼 나와 내 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 게 가장 명확할까?
“이는 결코 고문이 아닌, 부정함을 씻어내는 일이 될 겁니다.”
아마 ‘모든 교단을 통틀어 가장 잔인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 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없겠지.
“잠깐만.”
그제야 눈앞에 있는 놈이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안색이 창백해진다.
“다, 다 말할게! 그러니까 잠깐만! 나 아는 거 많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녀석은 본보기다.
그러니 최대한 고통스럽고 괴로운 꼴을 당하게 될 거다.
이 공포를 다른 녀석들도 알 수 있도록. 나는 내가 아는 가장 끔찍한 광신도의 모습을 빌려 말했다.
“부정해진 지금의 형제님에게 필요한 건 정화입니다. 이야말로 진정 신의 뜻이지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걸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해시킬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건 이해할 수 없는 광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