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9화
마광수.
과거 루트비히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몬스터와 마인들을 사냥한 전직 S급 영웅.
고약한 인성이나 싸가지 없는 말버릇 탓에 평가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때는 차기 완등자로 언급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바벨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지금도 그의 손을 거쳐 간 졸업생들에 한해서는 한없이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
“…….”
주물주물.
이세훈 앞에서는 그저 쉴 새 없이 몸을 주물러 대는 노망난 영감탱이에 불과했다.
“움직이지 마라. 경고했다.”
어깨부터 시작해서 팔뚝과 가슴. 등이나 배 허벅지와 종아리는 기본이며 손과 발까지 여기저기 누르고 만지작거린다.
의자에 앉혀진 채 쉴 새 없이 만져지던 이세훈은 계속해서 몸을 살피는 마광수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노망난 거 같은데…….’
원래도 반쯤 노망이 났다 싶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확실하게 노망이 난 것 같다.
이것도 혹시 자신의 개입으로 생겨난 나비효과인가 싶어 이세훈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너. 정체가 뭐냐?”
10분 만에 손을 떼어낸 마광수가 날카로운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는 다 늙은 대장장이 같은 자세를 하더니 이번에는 숙련된 창술사의 자세를 취하다니. 무슨 수를 쓴 거지?”
“예?”
“고유스킬? 아니면 그게 네 본래 실력인가?”
단순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추궁에 가까운 모습. 마광수의 시선에 섞인 의심과 옅은 적개심에 이세훈은 자연스레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만마전의 첩자로 생각하는 건가?’
지구의 환경을 잠식하고 생태계를 변화시켜 마수를 탄생시키는 만마의 늪. 그리고 그런 만마의 늪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일컫는 것이 바로 ‘만마전’이었다.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히 대답하는 것이 좋을 거다.”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광수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으며 오른손이 아래쪽에서 손날을 세웠다.
아직은 의심이라 공격하지는 않지만 첩자라 확신하는 순간 사지 중 하나는 확실하게 날아가리라.
A급 영웅조차도 식은땀을 흘릴 법한 상황.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오히려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이야. 이건 또 오랜만이네…….’
생각해 보면 마광수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던가.
갑작스레 떠오른 옛 기억에 이세훈이 속으로 슬쩍 웃었고, 그 감정을 읽어낸 마광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미친놈이었나?’
자신이 살기까지 드러내며 추궁하는데 저런 반응을 보이니 첩자보다는 그냥 정신이 반쯤 나간 천재처럼 보였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마광수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세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요컨대 제 자세가 너무 훌륭해서 수상하다는 말씀이네요.”
“……그래.”
마광수의 대답에 이세훈이 자신의 몸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몸을 정밀히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상상 이상이었던 모양이네.’
창을 능숙하게 사용했다가 아니라 숙련된 창술사의 자세를 취했다.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들리겠지만 이세훈은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창을 다루는데 최적화된 상태. 재능뿐만 아니라 그것이 몸에 익기까지 걸리는 세월까지 필요한 것이 바로 마광수가 말하는 ‘자세’였다.
‘이건 해명을 잘해야겠네.’
오해를 산 덕분에 마광수와 인연을 맺긴 했으나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기껏 맺은 인연이 ‘악연’으로 변질되어 버릴 수도 있다.
모처럼 얻은 기회를 날리고 싶진 않았기에 이세훈은 과거에 마광수를 상대하던 기억을 되짚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가진 스킬을 응용한 잡기술입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잡기술이라고?”
“잠깐 일어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세훈은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며 익숙한 방식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몸에 꽂혀 있던 실이 한 올 한 올 풀려가며 꽉 조여졌던 몸이 풀어진다.
몸에 남아 있던 사접석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한 이세훈은 뚫어져라 보고 있는 마광수를 바라보았다.
“방금 자세는 스킬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모방한 거지 이렇게 효과가 끝나면 금방 사라집니다.”
“흠…….”
“근육을 이리저리 조정해서 얻는 효과인데…… 이 정도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변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몸의 일부를 조정한다면 강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장기를 비롯한 신체의 말단부위까지 해당된다면 그것은 이미 평범한 강화라고 말할 수 없다.
‘이거 생각할수록 엄청난 기술이구만…….’
사접석도 그렇지만 이러한 응용법을 가능하게 만든 탐철, 류은하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이 간다.
다음에 장비를 만들어줄 때는 더 신경을 써줘야겠다고 이세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마광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스킬. 제한은 있나?”
“관찰에 시간도 걸리고 강제로 적용시키는 거라 몸에 부담도 상당합니다. 지금도 겨우 서 있는 정도고요.”
실제로는 회귀 전에 알고 있는 기술을 사접석의 힘으로 완벽하게 재현한 것이었지만, 이번에 효과를 보니 그런 식으로 응용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관찰인가…… 그렇다면…….”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마광수. 생각보다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이세훈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도플갱어 그놈 생각하나 보네.’
십악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인 ‘도플갱어’.
상대의 무술을 모방한 뒤 그것을 사용해 죽이는 녀석으로 수많은 영웅의 비전을 끊기게 만든 악랄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마광수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도플갱어와 원한이 깊었는데, 어디든 목격담이 들리면 어디든 곧장 날아갈 정도로 깊은 악연을 가졌다.
‘이번에 인연이 맺어진 것도 그 녀석 때문이겠네.’
도플갱어로 의심했던지, 아니면 녀석을 찾는데 유용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던지 어느 쪽이든 유용한다고 판단하여 자신과 인연이 생겨났다.
즉, 앞으로 마광수의 인연레벨을 쉽게 올리기 위해서는 저 도플갱어를 쫓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크흠. 앞에 몰아붙였던 건 그…… 미안하게 됐다. 마인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어서 조금 민감하게 반응했어.”
어느 정도 의심이 가셨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마광수.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역시 그렇지? 요새 영웅이라는 놈들은 마인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단 말이야. 나때는…….”
쓸데없는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재빨리 몸을 비틀거렸다.
“으음…….”
“아, 그러고 보니 부담이 심하다고 했었지. 아무래도 오늘 수업은 힘들겠구만.”
“죄송합니다.”
“아니. 마침 잘됐어.”
이세훈을 위아래로 훑어본 마광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네 스킬을 보아하니 수업방식을 전부 바꿔야겠다. 처음에는 기술만 개량해 주려고 했는데……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좋겠군.”
“근본적이라면……?”
“몸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는 법이다. 확실히 정해지면 그때 설명해 줄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알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꾸벅인 이세훈이 연무장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광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저런 놈이 왜 보르시파를 간 거지?’
방금 대련도 그렇고 저 재능도 그렇고 마음만 먹는다면 아칼쿠프에서도 수석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집안이 영 별로였다 했나…….’
이전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광수는 나중에 이세훈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세훈을 도플갱어의 수색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성장만 한다면…… 졸업 후에 ‘집행관’쪽으로도 권유해도 괜찮겠지.’
물론 그만한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 좋으리라.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있어 무신경하던 마광수가 처음으로 의욕을 드러냈고.
“검…….”
구석에 밀려나 있던 제이크도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이세훈이 나간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 *
“흐음…….”
강의실 밖으로 나온 이세훈은 방금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마광수 저 양반이랑 인연이 생길 줄이야…….’
이세훈이 자신의 고유스킬인 인연의 대장장이를 각성한 것은 본격적으로 만마전, 육대마신과의 전쟁이 시작된 뒤.
그리고 마광수는 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도플갱어를 추적하다가 실종됐었는데 사실상 녀석에게 죽었다고 봐야 했었다.
‘어떤 인연석이 나올지 궁금하네.’
마광수의 기술을 생각하면 아마 신체 능력과 관련된 것이 나올 터. 정확한 건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S급 영웅인 만큼 쓸 만한 것이 나오리라.
나중에 어떻게 자연스레 인연을 추출할지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우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
전화번호를 아는 이가 별로 없었기에 이세훈이 곧장 발신자를 확인했다.
[염성하]
“……쯧.”
영 내키지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이세훈은 전화를 받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대가로 뭘 받을지 정했나?
단도직입적인 염성하의 물음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잖아. 뭐가 그리 급해?”
-……대가를 지불 안 하니 뭔가 속이 불편하다.
“뭐?”
-아무튼 그렇다. 일부라도 좋으니 뭔가 지불하고 싶군.
값을 지불하지 않고 있으니 거래가 아니라 단순히 호의로 도움을 받은 것 같아 걸리적거린다. 염성하의 속내를 얼추 알아차린 이세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 피곤하게 산다…….”
-잔말 말고 뭐든 말해봐라. 재료든 뭐든 구해줄 테니.
“대가라…….”
그냥 적당히 비싼 재료나 구해오라고 시켜볼까. 잠시 곰곰이 고민하던 이세훈은 문득 그럴싸한 대가를 떠올렸다.
“사람 좀 찾아줘.”
-……사람?
“개인적으로 좀 궁금한 사람이 있어서. 이름은 루이제 발렌트. 마법사인데 바벨 출신일 거야.”
삼견 중 한 명인 폭견 루이제 발렌트.
염성하와 달리 과거에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던지라 단순 검색만으로 찾아내기가 어려웠는데 그래도 염성하라면 좀 다르리라.
‘게다가 이놈은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녀석도 아니니까.’
괜히 이쪽에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간 예민한 폭견의 성격상 일이 틀어지면 틀어졌지 절대로 잘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군. 아는 사이인가?
“그건 알 거 없고 그냥 어디서 뭐 하는지만 알아봐 줘. 근데 너 알아볼 인맥은 있냐?”
-날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할 만하지. 너 염화문에서 개털이잖아.”
-……다른 루트가 있다.
개털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못하는 염성하의 대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뭐 아무튼 그냥 뭐 하고 있는지만 알아봐 주면 돼. 내가 알아봤다는 건 숨기고. 뭔 말인지 알지?”
-알겠다. 찾는 대로 연락하지.
뚝─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끊어지는 전화. 용건이 끝나면 바로 끊어버리는 것이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놈도 이런데 루이제 그놈은 어떨지…….’
광견 염성하가 독불장군 같은 성격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면 폭견 루이제 발렌트는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성격.
멀쩡히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불이 붙어서 온갖 사건 사고를 다 저질렀는데 저지른 사건의 규모로만 보자면 삼견 중에서도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까칠해진 건 부상 이후부터 그랬다고 했으니 조금은 덜하겠지.’
물론 염성하가 그렇듯 사건 전이라고 해도 인격파탄자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회귀 전 수준만 아니라면야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그렇게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우웅─
손안에서 다시 떨리는 휴대폰. 방금 끊어진 염성하의 이름이 다시 떠 있는 것을 본 이세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뭔가 다른 용무라도 생긴 것인가. 이세훈이 전화를 받자 염성하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뭐?”
자신은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던 정보가 몇 분도 안 돼서 나오다니? 염성하의 정보력이 상상 이상인가 싶어 이세훈이 의아해하던 찰나.
-원소학부 2학년 루이제 발렌트. 학부에서도 차석으로 본래 유망한 생도였었다더군.
“오. 차석이라 꽤…… 잠깐. 였었다고?”
어째서 표현이 과거형인 것인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이세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반년 전 무학관에서 대련 중에 무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큰 부상을 입고 휴학 중이다.
“아.”
돌대가리인 자신의 머리통이 처음으로 저주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