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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62화 (62/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62화

따르르릉!

책상 위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

침대를 뒤덮은 이불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팔만 빠져나와 알람시계의 버튼을 힘껏 후려갈겼다.

카앙─!

알람시계에 새겨둔 인챈트가 손을 가볍게 튕겨내며 알람이 꺼졌고, 잠시 후 이불 틈새로 머리가 사방으로 뻗친 레아가 기어 나왔다.

“……가기 싫다.”

철야로 작업을 했을 때보다 더 퀭해진 얼굴.

오늘 해야 할 인챈트를 생각하다가 밤잠을 설친 탓이었는데 온몸이 삐걱거리며 닭살까지 돋았다.

‘그냥 아파서 못하겠다고 할까?’

머릿속으로 떠오른 핑계에 레아가 잠시 갈등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한다고 뭐가 되겠어.”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각오를 다진 레아는 빠르게 씻고 나온 다음 머리를 간단히 묶어 붉은 보석이 박힌 비녀를 꽂았다.

화악─!

비녀에 새겨진 인챈트로 순식간에 증발하는 수분.

머리가 뽀송뽀송하게 마른 것을 확인한 레아는 생도복으로 갈아입고 보라색 보석이 박힌 비녀를 꽂았다.

스스슥

이번에도 비녀에 새겨진 인챈트가 머리카락 전체에 마력을 흘려보냈고, 잠시 후 머리카락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한 줄기로 땋아지기 시작했다.

“흐음…… 조정할 때가 됐나.”

평소보다 느리게 땋아지는 머리카락을 살피던 레아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탁자 위에 올려둔 액자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안경을 쓴 채 웃고 있는 장발의 사내와 무릎 위에 앉아 한줄기로 묶어둔 사내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아이.

“…….”

젊을 적 아버지와 5살밖에 안 된 천진난만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아의 자연스레 한쪽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어깨 끝을 살짝 감싸고 있는 새하얀 손. 하지만 그 주인이 있을 자리는 찢겨 나가 알 수 없었다.

“후우…….”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보던 레아는 숨을 내쉬었고, 초조하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정신 차리자.”

이런 곳에서 안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새기던 말을 다시 곱씹으며 레아가 땋아진 머리카락에 남은 비녀와 머리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겉옷 대신 새하얀 의사 가운을 걸치며 장비를 넣어둔 아공간 포켓을 챙겼고.

콰앙!

있는 힘껏 문을 박차고 열며 공방 밖으로 나섰다.

* * *

“허어…….”

제련학부 본관에 마련된 공방. 이세훈의 중급제련 신청을 수락하고 먼저 도착한 김인철은 이번에 다루는 재료 목록을 살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몽상아에 남화우라니…… 용케도 이런 물건들을 구해왔군.’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희귀한 재료들.

특히 주작의 깃털인 남화우는 교수들 중에도 욕심을 내는 이들이 있을 만큼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이것들을 도대체 어디서…… 설마 학원장님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재료 목록을 살피고 있을 때. 곁으로 인기척이 느껴지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신입생은 참 겁이 없네요. 이렇게 희귀한 재료들을 덜컥 다룰 생각을 하고.”

갈색머리를 단아하게 땋아 올리고 갈색 숄을 걸친 부드러운 인상의 여인.

겉보기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지만 그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그 모습에 김인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레베카 교수가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소만.”

“어머. 제가 뭘요?”

“6년 동안 찾아 헤맨 전설 등급 재료를 무턱대고 써먹었다가 모조리 날려 버렸잖소.”

“…….”

김인철의 핀잔에 여인, 인챈트학부의 교수이자 고대인챈트학을 가르치는 레베카 클로델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날려 먹은 게 아니라 연구에 사용한 거예요. 다음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죠.”

“그런 거였군. 6년 뒤에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대하리다.”

“…….”

자신의 아픈 곳을 서슴없이 찌르는 김인철의 모습에 레베카가 눈꼬리를 파르르 떨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히도 아끼는 생도인가 보네요.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시고.”

아직 슬럼프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손녀를 끌어들였기에 조금 투덜거린 것 가지고 이렇게 까칠하게 대응하다니.

예상치 못한 반응에 레베카가 의외라는 듯 묻자 김인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레베카 교수가 손녀를 생각하는 만큼 아끼고 있지.”

“……그 정도라구요?”

김인철의 대답에 레베카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보르시파의 학과수석이 범상치 않다는 건 손녀에게 전해 듣긴 했지만 김인철이 이만큼 아끼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아직 만나본 적 없소?”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첫 수업 때 레아에게 맡겼어요. 그 뒤에는 부상으로 입원해서 못 만났고요.”

레베카의 대답에 김인철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 거였군.”

만나봤다면 당연히 인정했을 것이라고, 그렇게 확신을 담아 이야기하는 김인철. 그 모습에 레베카가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공방의 문을 열며 들어오는 이세훈과 레아. 그 모습에 김인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담하게 레베카에게 이야기했다.

“보고 판단하시오.”

“……좋아요.”

두 생도를 맞이한 김인철은 곧장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레베카를 소개했다.

“오늘 나와 함께 감독을 맡은 인챈트학부의 레베카 클로델 교수일세. 인사하게나.”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진작 봤어야 했는데 서로 일정이 잘 안 맞다 보니 오늘 처음 보게 됐네요.”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옆에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레아를 힐끔 본 이세훈이 레베카에게 물었다.

“레아 선배의 할머님 되십니까?”

“……할머님?”

이세훈의 물음에 레베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할머님이라고 했나요?”

“예. 아니십니까?”

“아뇨. 맞기는 한데…….”

의아해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레베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레아가 나에 대해서 말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30대 중반 정도인 자신의 외모 때문에라도 언니나 이모, 하다못해 어머니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의문에 휩싸인 레아가 재차 이세훈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아본 건가요?”

“그냥 딱 보니까 알았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이세훈은 레베카를 처음 본 순간 그 나이대를 곧장 알아차렸다.

회귀 전에 노화가 느린 영웅들과 만나거나 그들의 시체를 살피면서 자연스럽게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빛이나 마력의 분위기. 그리고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 육체는 숨기기가 어렵지.’

재능보다는 세월의 흔적이라 볼 수 있는 것들. 알아보기가 어렵긴 하지만 감만 잡으면 신분을 숨긴 놈들을 발각할 수 있어 꽤 유용한 노하우였다.

“…….”

이세훈의 대답에 레베카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을 때. 뒤에서 지켜보던 레아가 끼어들었다.

“여기 왜 오셨어요? 주말에 일 있으시다면서요.”

“……한 달 동안 공방에 틀어박혀 있던 네가 갑자기 소리치면서 뛰쳐나갔다길래 잠시 들렀지. 그러다 중급 인챈트 신청이 들어와서 내가 받았고.”

팔짱을 낀 레베카가 살짝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상아탑의 특기생 선발대회도 이제 두 달밖에 안 남았어. 제출할 물건은 다 만들었니?”

“…….”

레아가 슬쩍 시선을 피하자 레베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뭘 하든 간섭은 안하겠지만, 약속은 잊지 마려무나. 알겠니?”

“……네.”

“그래. 그럼 됐다.”

그걸로 더 할 말없다는 듯이 뒤로 물러서는 레베카. 그 모습을 본 김인철이 이야기를 이었다.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되면 바로 이야기하게. 바로 도와줄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김인철과 레베카가 의자가 놓인 곳으로 가 다시 앉았고 이세훈이 레아를 바라보았다.

“…….”

원래도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는데 방금 대화로 더더욱 위축된 것 같다.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뭔가 사정이 있나 보네.”

“아, 걱정하지 마.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니까.”

애써 웃으며 이야기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하는 건 아니고 못 할 것 같으면 미리 말하라고.”

“뭐?”

“제대로 집중도 안 되는데 억지로 시켰다가 망하면 내 재료만 날아가잖아.”

“…….”

이세훈의 냉담한 이야기에 레아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서로 걱정해 줄 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리 냉정하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럼 나 말고 다른 사람 부르지 왜 떠맡겨서는…….”

억지로 떠넘길 땐 언제고 이제는 또 그만두라니. 레아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자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거야 네가 제일 잘 만들 것 같으니까.”

“…….”

“그거 말고 협업을 요청하는 이유가 있나?”

안정적으로 간다면 아직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한 레아보단 다른 사람을 쓰는 게 맞겠지만, 이세훈은 자신의 선택이 맞다고 생각했다.

인연레벨도 있지만 이번에 다룰 재료들은 그 누구보다도 레아의 인챈트가 가장 어울렸기 때문이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쉰 레아는 곧장 의사가운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 다음 땋아놓은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보라색 보석이 박힌 비녀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앞머리까지 머리핀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세훈을 노려보았다.

“그런 기특한 소리 할 거면 좀 더 예쁜 말투로 해. 알겠어?”

“…….”

“시작해. 나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자기 할 말만 하고 아공간 포켓에 넣어둔 도구를 세팅하기 시작하는 레아. 그 뒷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역시 정상은 아니야.’

재료통에서 필요한 발화석들을 종류별로 골라잡은 이세훈은 화로를 가동시킨 다음 냉큼 안에다가 집어넣었다.

화르르륵!

여러 종류의 발화석이 뒤섞여 난잡하게 피어오르는 화로의 불꽃. 그 모습에 레베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난잡한 불꽃으로 도대체 뭘 하려고……?’

실수라도 했나 싶어 옆에 앉은 김인철을 살펴봤지만, 오히려 이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는 눈으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레베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타닥! 딱!

이세훈의 손바닥 안에서 흘러나오는 건조한 소리와 화려한 불꽃. 그것이 발화석끼리 충돌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으며 레베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따악─

청명한 울림과 함께 붉게 빛나는 발화석이 화로 안으로 던져졌다.

콰아아아앙───!!!

화로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폭음. 공방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에 레베카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무, 무슨……!”

“진정하시오.”

손바닥만 한 엠블럼을 꺼내 드는 레베카를 손으로 가로막은 김인철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지금 화로에 금 간 거 안 보여요?”

저만한 불꽃이 화로 밖으로 터져 나오면 사실상 폭탄이나 다름없다. 당장 제련을 중지시키려는 레베카의 모습에 김인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놀라지만 말고 자세히 좀 보시오. 그럼 알 테니.”

“뭘 자세히 보라는…….”

거듭된 김인철의 이야기에 레베카가 다시 화로를 보았고, 눈앞의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의 폭발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화로의 안쪽이 잠잠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안쪽에서 ‘새하얀’ 불꽃이 당장에라도 꺼질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색 불꽃……?”

마치 표백이라도 한 것처럼 새하얗게 물든 불꽃.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모형을 가져다 둔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일렁이는 모양이나 화로에 마력을 공급받는 것을 보니 실제 불꽃이 분명했다.

“저게…… 도대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레베카가 멍하니 보고 있을 때. 화로의 불꽃을 살피던 이세훈이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

‘최신식 화로라더니 백란화白卵火도 제대로 못 만드네.’

본래라면 불꽃이 원형을 이뤄야 하는데 화로의 기능이 부족해서인지 위쪽이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금이 가 삐걱거리는 화로의 상태에 이세훈이 입맛을 다셨다.

‘몸으로 때워야겠구만.’

작업복 상의를 벗은 다음 허리춤에 대충 걸친 이세훈은 곧장 한쪽에 꺼내놨던 남화우를 집어 들었다.

푸른색 결정 안에 보관되어 있는 붉은 광석.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별생각 없이 꺼내면 곧장 타오르며 사라지리라.

‘어디 보자…….’

화로를 조작해 백란화를 입구 가까이 꺼낸 이세훈은 남화우가 보관된 결정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흑염의 망치를 꺼내 잡았다.

“흐음…….”

한 손으로 결정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살피는 이세훈. 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레베카가 김인철에게 물었다.

“저거. 라플스 결정 아닌가요?”

“맞소.”

김인철의 대답에 레베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걸 망치로 부순다고요?”

특수한 재료를 보존하는 데 쓰이는 라플스 결정. 가공 전에는 강도가 그리 강하지 않지만, 보존 마법이 부여되면 매우 단단해지는 특성을 지닌 희귀한 광물이었다.

그렇기에 재료에 손상을 주지 않고 꺼내려면 반드시 영구보존 마법부터 해제해야 했는데 이세훈은 그걸 망치로 부수려 하는 것이다.

‘재료 손상은 둘째 치고 부수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그런데도 이세훈은 아무런 불안함도 없었고, 지켜보는 김인철은 여전히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손녀인 레아조차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그 광경에 레베카는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뭔지…….’

레베카가 혼란스럽게 바라보고 있을 때. 한참 결정을 매만지던 이세훈이 두 눈을 번뜩였다.

“찾았다.”

엄지 끝으로 결정의 한 부분을 꾹 누른 이세훈은 곧장 백광류를 사용하여 예기를 끌어올렸다.

우우웅

엄지 끝에 맺히는 새하얀 예기. 그 날을 한 부분에 가져다 댄 이세훈은 곧장 흑염의 망치로 엄지 위를 가볍게 때렸고.

파캉!

남화우를 뒤덮은 라플스 결정이 단숨에 갈라졌다.

“저건……!”

“뭔…….”

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는 김인철과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레베카.

바벨에서도 알아주는 두 교수를 경악하게 만든 뛰어난 기술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세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재빨리 움직였다.

화륵!

결정이 부서지고 영구보존 마법이 풀리기가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남화우.

겉보기만 타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내구도가 소모되고 있는 중이었기에 이세훈은 재빨리 남화우를 백란화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우웅!

남화우가 백란화 내부로 들어가자 붉은빛이 더욱 진해지더니 심상치 않은 파동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파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김인철은 이내 그 원인을 알아차리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남화우가 저 새하얀 불꽃과 공명현상을 일으키며 강해지는 건가?’

재료의 성질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제련의 역할 생각하면 좋은 징조였지만, 남화우의 본체인 마수 ‘주작’의 특성을 떠올린 김인철은 다급히 소리쳤다.

“이세훈 생도! 당장 꺼내게!!”

몬스터들 중에 위험지역에서 벗어나 마인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체를 가리키는 ‘마수’.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S급 마수 주작은 지능이 매우 뛰어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살상도 꺼려 했기에 자신에게 덤빈 영웅들도 그냥 살려 보내주었다.

하지만 이 자비는 어떤 의미에서 더 끔찍한 결말을 안겨주었는데 주작의 불꽃은 인간의 ‘정신’도 불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 파동이면 백치나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

심각한 상황에 두 교수가 재빠르게 움직이려던 그때.

“괜찮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한 이세훈이 백란화를 두 손으로 감쌌다.

사라락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새하얀 불꽃이 이세훈의 손길을 따라 천천히 닫혔고, 새하얀 알처럼 변한 백란화가 그대로 남화우의 불꽃을 안에 가둬냈다.

우우웅!

백란화의 안쪽에서 거세게 타오르며 발버둥 치는 남화우.

만약 평범한 불꽃이었다면 남화우의 성질에 잡아먹혀 뚫렸겠지만, 이세훈이 만들어낸 백란화는 달랐다.

‘불순물을 모조리 날려 보낸 순수한 불꽃.’

금속을 달구어 제련하기보다는 사나운 불꽃을 품기 위한 껍데기. 그것이 바로 이 백란화의 쓰임새인 것이다.

스스슥

도자기를 빚어내듯 쉴 새 없이 백란화를 쓰다듬으며 가다듬자 내부의 남화우 역시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렬하게 울려 퍼지던 파동도 진정되었을 때쯤. 백란화가 완성된 것을 본 이세훈이 자신의 화속성마력인 ‘홍륜염’을 끌어올렸다.

화르륵

손바닥 위로 원을 그리며 타오르는 불꽃. 그 흐름을 조정한 이세훈이 조심스레 백란화의 밑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화로에서부터 두 손을 들어 올렸고.

우웅─

백란화가 화로에서 벗어나 이세훈의 두 손 위에 올려졌다.

“…….”

“…….”

불꽃을 품은 거대한 알을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이세훈.

그 신비로운 광경에 김인철과 레베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어이.”

백란화를 든 이세훈이 레아에게 다가갔다.

“응? 왜 불…….”

인챈트 준비를 하다 뒤돌아본 레아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제련한다더니 저 커다란 알은 또 뭐고, 안쪽에서 느껴지는 불꽃은 또 뭐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은 광경에 레아가 설명을 요구하듯 올려다보았고.

“여기다 인챈트해.”

이세훈이 미소를 지으며 백란화를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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